
박대통령 ‘국가개혁 적임자 찾겠다’ 했지만 실패
책임은 대통령… 차기총리 지명자 누가 될지 걱정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괄하는 역할을 맡는다.(대한민국 헌법 제86조 제2항)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권한대행자로서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 수행이 없을 때 그 권한을 대행한다. 국무회의 부의장으로 정부의 주요정책을 심의하고 행정 각부를 통괄한다. 헌법에 보장된 국무총리의 권한이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 있기에 국무총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자리다.
하지만 요즘 국무총리 자리는 지나가던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지명해도 아예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지난 2000년 6월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이후 더 그렇다. 사실 청문회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지명하면 형식적인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됐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총리 지명자는 본인은 물론 가족과 사돈의 팔촌까지 모든 사생활이 까발려지면서 깊은 상처만 남겼다. 설령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국무총리에 임명돼도 존경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역대 국무총리는 이완구 현 총리를 포함해 모두 43명이다. 이 가운데 장면·백두진·김종필·고건은 두 번의 총리를 지냈다. 역대 총리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사람은 제6대 총리 허정으로 65일간 재임했다. 당시는 윤보선 대통령 때로 정치적 혼란기였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일권 총리는 2천416일(6년 7개월)로 최장기 재임기록을 세웠다. 역대 총리의 직업군으로 보면 전·현직 국회의원이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무위원 12명 등 정무·조정 능력이 검증된 인물들이 대다수다.
국회의 승인을 받지 못해 낙마한 총리 지명자도 12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2000년 6월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낙마한 총리 지명자는 6명, 그중 절반인 3명이 박근혜 정부 때다. 박 대통령은 취임하면서부터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총리로 지명된 정홍원은 세월호 참사도 있었지만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다. 두번째인 이완구 총리 역시 부패와의 전쟁을 외쳤지만 본인이 비리의혹에 휘말려 이미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최단기 재임이라는 불명예만 남았다. 총리라고 다 똑같은 총리는 아니다. 국무총리 정무비서관을 지낸 이재완씨가 쓴 ‘대한민국 국무총리’에서 역대 정권마다 총리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디.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는 ‘단순히 대통령 보좌 역할이 아니라 독자적인 업무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한승수 총리는 ‘자원외교’,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의 해결사로 나섰다.
또 노무현 정권에서는 ‘야구로 비유해 대통령을 구단주로, 총리는 감독’으로 표현했다. 과거 청와대가 관장했던 정책홍보 및 정책현안 조정을 총리가 진두지휘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당시 김종필 총리에게 국가정보원장이 한달에 두번씩 총리실을 방문해 보고할 정도로 막강했다.
김영삼 정권에서는 5년 재임 동안 6명의 총리가 경질되면서 ‘국면전환용’이였다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당시 군정 연장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정치색이 옅은 학자들을 중용하고 주 1회 종리와 대면하며 국정을 논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호남 출신 인사를 집중 등용, 탕평책을 폈고 박정희 정권에서는 행정의 안정을 도모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에서 총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박 대통령은 정권 출범 당시 총리의 자격은 ‘국가개혁의 적임자로 국민이 요구하는 사람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 실패다. 대통령은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다음 총리 지명자는 누가 될지 정말 걱정이다.
/박승용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