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 수십차례 사건 열거 ‘순방리스크’ 쓴소리
우연 겹친 징크스일뿐 정략적 활용 억지스러워
스포츠엔 유독 징크스(Jinx)가 많다. 메이저 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뒤 80년이 넘도록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밤비노의 저주’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축구경기에서 공을 골대에 맞춘 팀이 패배한다는 골대 징크스, 신인 때 펄펄 날던 선수가 다음 해만 되면 죽을 쑨다는 2년차 징크스도 단골 메뉴다. 선수들의 개인적 징크스도 다양해, 한동안 타이거 우즈가 붉은 셔츠를 입고 나서 동반자들을 주눅 들게 하더니 최근엔 김세영의 빨간 바지가 믿기 어려운 기적적 샷들과 오버랩 되며 징크스 대열에 합류했다. 홈런칠 때 입은 유니폼을 다음 경기에 다시 입는다는 이승엽, 레이스 마다 수염을 기른다는 이봉주, 오른쪽부터 스케이트를 신어야 경기가 잘 풀린다는 김연아 등 숱한 선수들이 저마다의 징크스를 안고 ‘감히’ 거스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일상에서도 세차만 하면 꼭 비가 온다거나 특정 숫자를 재수 없다고 믿는 애교 섞인 징크스, 시험이나 면접을 앞두고 절대로 미역국을 먹지 않는 것처럼 이미 관습화된 징크스도 있다. 징크스는 재수 없고 불길한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적 믿음이지만, 몇 차례의 우연을 짐짓 보편화 시켜 스스로 징크스라고 믿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타이거 우즈는 여전히 붉은 셔츠를 입고 경기에 나서지만 더는 골프황제의 위용을 찾아보기 어렵고, 경험이 축적돼 2년차에 훨씬 더 빛을 내는 선수도 더 많다. 일부 선수들이 2년차에 부진을 겪는다지만, 그건 신인 때의 성과에 자만해 노력을 게을리 했거나 상대팀이 치밀한 분석을 통해 대응에 나선 까닭이다. 통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골대를 맞히고 경기에 이기는 경우가 골대를 맞추고 지는 경우보다는 훨씬 많을 법 하다. 활발하게 공격한 쪽이 골대를 맞출 확률도 높고, 당연히 이길 확률도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완종 파문과 이완구 총리의 사의 표명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 징크스’가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 몇몇 언론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 추문에서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남북정상회의록 공개, 이석기 내란음모,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 사퇴, 그리고 최근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빚어진 십수 차례의 대형 사건들을 열거하며 ‘순방 리스크’라는 표현까지 썼다. 순방의 성과가 퇴색해 버린 것을 빗댄 표현이되, 악재가 끊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냉소의 의미도 섞여 있는 듯 하다. 여기에 일부에서는 순방 징크스를 통해 대통령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싶은 의도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두세 차례만 우연이 되풀이 돼도 징크스 운운하는 판에, 대통령 외국 순방때 마다 10차례 이상 큼직한 사건들이 발생했으니 호들갑을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사건으로만 치자면야 대통령이 외국에 있을 때보다 국내에 있을 때가 훨씬 더 빈번할 터, 대통령이 국내에 있다는 사실을 굳이 결부시키지 않을 뿐이다. 대통령의 순방 징크스가 술자리 호사가들의 안주거리로 족한 얘기인 건 맞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가기만 하면 일이 터진다’며 비아냥거리거나 이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건 아무래도 좀 치졸하고 억지스럽다. 세차만 하면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세차를 자주 하지 않아서 비오는 날 세차한 아쉬움의 기억이 강렬한 것이다.
/배상록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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