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서 가장 오래된 책방 문 닫으려다 다시 열어
삶속에 문학의 향기 나는 ‘진짜 책의 수도’ 되길…
건조한 법조문과 씨름하며 각종 송사로 하루를 팍팍하게 살 것 같은 판사들. 이런 판사들이 모여 일하는 인천지법에 2년 전부터 소설과 수필·시 등 두꺼운 법전과는 거리가 먼 문학작품을 품에 안고 다니는 판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북스 홀릭’. 인천지법 판사들이 2년전 모여 만든 독서 동아리 이름이다. 15명의 판사가 활동 중인데. 회원들의 추천과 투표를 통해 이달의 책을 선정한 뒤, 모임이 있는 날 식사를 하면서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이 동아리 회원들은 그동안 읽은 책 중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고 얘기한다. 회원 중 10명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30대 워킹맘 판사라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들은 바쁜 와중에도 독서모임으로 인해 틈틈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세 자녀를 두고 이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이효선 판사는 “판사들은 2~3년 마다 근무지가 바뀌지만 독서모임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작은 희망을 말했다. 아무리 바빠도 마음의 양식 얻기에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천지역 기초자치단체들도 책읽기에 여념 없다. 인천 남구는 올해의 책을 선정해 5월부터 독서릴레이를 시작한다. 황선미의 ‘어느날 구두에게 생긴 일’, 김중미의 ‘모두 깜언’, 성석제의 ‘투명인간’ 등 3권을 각각 어린이·청소년·성인 부문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 연령대 별로 선정된 책을 읽고 한 줄 소감을 적어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게 된다. 10월에는 작가를 초대해 북 콘서트도 연다고 한다. 부평기적의도서관도 매년 ‘대표 도서’를 선정해 주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는 박효미의 ‘블랙아웃’이다. 지역의 아동센터와 복지관, 병원, 특수학교 등에 점자도서, 점자통합도서, 입체도서 등 특수 서적을 지원해 주는 ‘BOOK 소통’ 사업도 벌인다. 생활속의 독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2015년 4월 23일 인천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책의 수도’로서 지위를 부여받았다. 1995년 유네스코는 총회에서 4월 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지정, 책의 출판 장려와 독서증진을 위해 책의 수도를 선정하기로 했다. 2001년 스페인 마드리드가 첫 책의 수도가 됐고, 5개 대륙을 안배해 세계 책의 수도를 선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된 인천은 앞으로 1년간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저작권, 출판문화산업 등과 관련해 국내외 교류는 물론 도서 및 독서와 관련된 행사를 주관하게 된다. 1년간 세계에서 책과 관련한 가장 많은 행사들이 열릴 계획이다.
얼마 전 인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한서림’이 문을 닫으려다 인천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에 힘입어 폐업 방침을 번복했다. 경인일보가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하자 인천지역 각계 각층에서 격려가 이어졌고, 김순배 대표는 다시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경인일보 인천본사 간부들도 대한서림을 방문해 전 직원들이 읽고 싶어 했던 책을 단체로 구입했다. 인천지검의 김진모 검사장도 직원 30여명과 함께 이 곳에 들러 모두에게 책을 사주기도 했다. 이후 학생들과 직장인들의 정성 어린 발길은 자칫 폐업으로 ‘책의 수도 인천’의 오명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오래된 서점을 다시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다.
말뿐인 책의 수도가 아니라 책 읽는 소리가 도시 곳곳에서 새어 나오고 삶 속에서 문학의 향기가 배어 나오는 진짜 책의 수도 인천이 되길 갈망해 본다.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