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리 내정됐던 인물 복지를 ‘공짜’로 여겨 아쉬워
‘복지’를 선동적 몇마디로 왜곡시켰다면 비약일까?
올해 인천시·인천시건축사회·경인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인천건축문화제’의 주제는 ‘공존’(共存)이다. 같은 사전적 의미지만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함’ 보다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이란 뜻풀이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더구나 신도시와 구도심의 간극이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건축물마저 디자인 등 여러 측면에서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는 인천에서 아주 적절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행사를 함께 꾸려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필자 또한 건축문화제준비위원회 회의에 종종 참여하곤 한다.
한번은 회의에서 건축문화제의 주제어를 놓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Live Together’로 정한 ‘공존’의 영문 표기가 적절한지를 놓고 준비위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간 것이다. ‘Live Together’가 공존이라는 행사 주제어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리였다. 다른 영문표기가 제시되기도 했지만 결국 한자표기(共存)는 병기하되 ‘Live Together’는 아예 빼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인 것 같다. 사실 공존에 대한 사유(思惟)의 깊이는 개인주의 문화에 젖어있는 서양보다 동양이 한 수 위 아닌가.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하고 서로 밥값을 내려고 실랑이하는, 서양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 그리고 그 바탕에 깔린 정신세계를 ‘Live Together’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서양인은 자기 행위의 기준이나 정당성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반면 동양인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담보해 준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동양에서의 공존의식이 서양보다 앞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과도한 공존의식이 불러오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 사회에서 ‘공존’은 시대를 초월한 소중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우연한 계기로 공존의 의미를 되새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소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인사가 강사로 나섰다. 강사가 열변을 토하던 한 대목에서 박수가 터졌다. 복지정책과 관련해 자신의 주장을 역설하던 중이었다.
“정치인들이 왜 자꾸 복지하자고 합니까? …중략…우리 사장님들, 직원들 월급날 돌아오면 10만원, 100만원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절실히 느끼면서 살아왔는데 정치인들이 그런 삶을 사셨던 분들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못 합니다. 지금 다 공짜로 해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돈은 누가 냅니까? 여기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생색은 정치인들이 냅니다.”
물론 이 강연 내용의 큰 줄기는 정치권에 대한 일갈이다. 중소기업인들이 박수를 보낸 것도 정치권에 대한 일종의 반감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아쉬운 점은 복지를 바라보는 강사의 관점이었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복지 수혜자를 ‘공짜로 얻어먹는 군상’정도로 여기는 강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한발 양보해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하자는 뜻으로 해석하려 해도 ‘공짜’라는 말의 잔음이 가시지 않는다. 복지는 공존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공존을 실현하는 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회적 수단인 복지를 선동적 몇 마디로 왜곡시켰다면 비약일까? 그 강사가 한때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로 내정됐던 인물이어서 더욱 씁쓸했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