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사업을 하다 실패해 15억원의 부도를 낸 최모(34)씨는 신용불량자로 등록됐지만 생활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승용차와 휴대폰, 통장 등 필요한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유자의 명의는 각각 다르다. 최씨가 사용하는 신용카드 역시 남의 이름으로 된 것이다.
최씨는 “인터넷에 들어가면 사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을 모두 구입할 수 있다”며 휴대폰은 70만원, 통장은 20만원, 에쿠스 승용차는 2천만원,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신용카드 역시 100만원을 주고 통장과 연결된 카드를 발급받았다”고 말했다.
남의 이름을 빌려 사업자 등록을 한뒤 유흥업소를 경영하고 있는 최씨는 “어떤 때는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럽지만 채권자들의 추적을 피하고 사업을 계속할 수 있어 좋다”며 “누구든 돈만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 웬만한 것은 모두 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숙자의 이름을 빌리거나 훔치거나 분실된 주민등록증 등을 이용해 만들어진 뒤 인터넷을 통해 거래되는 속칭 '대포 폰, 대포 통장, 대포 카드, 대포 차' 등이 넘쳐나고 있다.
네이버, 야후, 다음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신용불량자라도 2억원 대출한도의 카드를 만들 수 있다”거나 “절대 흔적이 남지 않는 통장 등을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광고들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거래도 활발해 '대포 차'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건씩 계약이 성사되고 오프라인상의 중고자동차 매매상을 통해서도 공공연하게 팔리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신분증도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2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기혐의로 기소중지된 김모(45)씨도 수배중이지만 한번도 검문에 걸린 적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적사항에 사진만 바꾼 신분증을 구입해 갖고 다니기 때문이다. 통장도 있고 카드도 있어 김씨도 조만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처럼 인터넷이 범죄자들의 도피처나 범죄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대포 통장'이나 '대포 차' 등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지만 대책마련은 쉽지 않다. 포털사이트 운영업체의 관계자는 “통장, 카드 등 불법적인 거래를 원하는 광고나 게시판은 발견 즉시 폐쇄하거나 삭제하지만 모든 내용을 다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무적차량이나 신용카드 위조 등을 단속해야 하지만 통장 등의 경우 범죄에 사용된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단속법규가 마땅치 않다. 또 수십만개의 인터넷사이트를 다 검색하고 수사하기는 힘들다”고 실토했다.
대출카드·통장·신분증등 뭐든지… 인터넷 '대포' 판친다
입력 200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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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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