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지난해 메르스 검역강화 ‘황색등 권고’
정부, 우왕좌왕 ‘장롱면허’ 수준의 미온적 대처
에러 발생때 순발력 있게 상황정리 능력 필요


운전 중 교차로를 앞두고 신호등에서 황색등이 켜진다. ‘주의’를 하라는 교통신호다. 운전자는 곧바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현재 속도와 정지선까지의 거리, 뒤차와의 차간거리 등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것인지, 아니면 빨리 교차로를 벗어나기 위해 액셀을 밟을 것인지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에는 두세번 브레이크를 밟는 등의 행위로 뒤차에 자신의 의도를 알린다. 교차로를 그냥 지나칠 때에는 비상등을 켜거나 상향등을 깜박이는 것으로 다른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준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다시 들춰보게 된 책이 있다. 일본 심리학자가 쓴 ‘실패학’ 관련 서적으로, 책이 나온 지 15년이 지났다. 책이 발간될 즈음 일본에서는 실패나 사고의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사회가 공유하고 실패학을 새로운 학문분야로 발전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이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실패를 교훈으로 삼기 위한 여러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책 또한 그중 하나다.

앞서 운전사례는 인간을 정보처리 장치에 비유해 인재, 즉 휴먼에러(human error) 발생 가능부분을 입력(신호등 인지)·매개(판단·의사결정)·출력(동작의 계획·수정)과정 등으로 단계별로 나눠 소개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운전대를 잡은 정부는 어떤가? 우선 입력과정에서부터 에러를 범한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메르스의 국가간 전염의 가능성이 급증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회원국들에게 메르스 감염예방과 검역을 강화할 것을 권고한 게 지난해 5월이다. 그러나 정부는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운전 중 코앞에 황색등이 켜졌는데 눈을 감아버린 형국이다.

적색등이 들어온 교차로에선 우왕좌왕하면서 ‘장롱면허’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WHO 합동 평가단의 지적처럼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가 제일 중요한데도 ‘괴담’에만 집착한 나머지 위기관리 시스템에 혼선을 야기하고 말았다. 이러니 출력과정 또한 제대로 될 리 없다. 중국으로 출장 간 한국인 메르스 의심환자가 현지에서 확진 판정을 받아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것은 뒤차에 대한 배려 없이 운전하다 뒤차를 사고현장으로 끌어들이는 ‘출력과정에서의 에러’를 떠올리게 한다.

그간 실패와 시행착오의 경험을 그 어느 곳보다 축적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아 타이어가 펑크 나고, 차가 퍼지고…. 얼마나 많이 실패학의 도로를 질주했던가. 그런데도 운전실력은 향상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라는 대형사고가 난 게 바로 1년 전인데도 말이다.

엊그제 인천신항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크루즈에서 내리지 않으려는 관광객을 위해 ‘찾아가서 보여주는’ 특별한 공연이 열린 것이다. 그야말로 관광객은 배 안에, 무대는 부두에 설치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해외 관광객을 어떻게든 잡아 보려는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할 것은 K-POP이나 치어리더들의 역동적인 댄스가 아니다. 에러가 발생했을 때 순발력있게 상황에 적응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변화하는 능력, 바로 실패학의 학습효과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