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질환으로 국제적 망신 당하는 현실 ‘씁쓸’
메르스 종식돼도 제2·3 전염병 또 엄습할 수 있어
경제 마비되는 홍역 또 치른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사스)유비무환(有備無患)·(신종플루)발본색원(拔本塞源)·(메르스)속수무책(束手無策)’.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자성어가 항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 속내를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자식 키우는 앵그리맘들이 많다. 중동산 독감 일종인 메르스가 국내에 들어와 지난달 20일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꼬박 한달이 지났다. 신규 감염 확진자와 사망자 확산세는 확연히 꺾였지만, 정부 당국조차 종식선언을 운운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병원공개를 미뤄 초기대응에 실패한 정부가 또다시 양치기 소년 불신을 자초할 까 우려하는 심정일 게다.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마비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메르스가 사람들의 생각과 일상생활의 패턴까지 바꿔놓았다.

특히 메르스 1차 진원지인 평택을 비롯한 수원, 화성 등 경기도 지역경제는 굳이 구체적 손실을 헤아리지 않더라도 대인 기피증 현상까지 불러올 정도로 소비를 위축시켰다. 심지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들르는 동네 슈퍼는 물론 미용실, 목욕탕, 칼국수 가게 등 골목상권들이 처참하게 당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메르스 추가 확진자와 격리자, 사망자가 얼마나 더 늘어났는지에 대한 실시간 생중계 보도에만 촉각을 곤두세울 뿐, 폐업위기로 치닫는 소상공인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는 정부나 자치단체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고 있다.

세계무역기구(OECD) 가입국인 대한민국이 이토록 전염병에 속수무책이었던가? 반도체, 조선 등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외 신뢰도가 이까짓 호흡기질환 하나 정도 잡지 못해 국제적 망신을 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무기력해진다고 씁쓰레하는 사람들이 많다. 홍콩과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매년 방학 때면 오고 가던 교환학생 파견을 저지할 정도로 창피를 당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3년 전 세계적으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창궐했을 때 발 빠른 초동 대처로 국내 감염자 수는 3명 선에서 그쳤다. 이어 2009년 들이닥친 H1N1인플루엔자(일명 신종플루)가 한국을 삽시간에 공포에 몰아넣었다. 적지 않은 사망자(20명)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발 빠른 대응으로 위기를 관리했다.

당시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별다른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 쓰고, 손만 잘 씻으면 나와는 무관한 질병이라는 식의 덤덤한 태도였다. 오히려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터져 돼지고기와 닭고기 가게들이 쑥대밭이 됐었을지언정 사스와 신종플루때는 실물경제와는 동떨어진 ‘의료계가 알아서 해결할 일’로 믿고 잊어버렸다. 이후 발전을 거듭한 의료기술과 시설은 해외에서 원정 치료를 받겠다며 외국인 및 교포 환자들이 몰려와 의료관광지로 급부상했다. 그래서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안일하고 미숙한 초동대처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며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2차 진원지가 삼성이 운영하는 병원 때문이라는 세간의 억측이 무리가 아닌 듯 싶을 정도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종료된다 할지라도 제2,제3의 전염성 질환은 또 엄습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때마다 나라전체 온 국민이 거기에 함몰돼 대중교통조차 이용하길 겁낼 정도로 일상경제가 마비되는 홍역을 또 치러야 한다면 더이상 우리의 미래는 없다. 작금의 세계경제가 심상치 않다. 미국이 하반기 금리인상을 검토하고, 일본의 엔저 후폭풍으로 수출기업들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초비상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인하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가계부채는 매월 최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자칫 부실채권으로 금융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시한폭탄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교훈삼아 유비무환이란 사자성어가 우리 사회 키워드로 정착됐으면 한다.

/김성규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