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한 여야 정치권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지난달 29일 새벽 공무원연금 개정안 통과의 조건으로 여야가 합의 처리한 국회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로 돌아올 경우 정치권은 격랑 속에 빨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당도 서명한 법안을 거부한 만큼 당청과 여당 내 친박(친 박근혜), 비박간 파열음은 물론 여야간 정면 충돌도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내일 거부권 행사 가능성 = 청와대는 개정안이 국회의 시행령에 대한 '수정·변경' 권한을 과도하게 부여해 위헌이라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어 현재로서 거부권 행사는 거의 확실한 것으로 여겨진다.

거부권 행사 시기는 25일 국무회의가 유력하게 거론되며, 늦어도 30일에는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속에 정치권이 정쟁을 벌인다는 점이 부담이지만 시기의 문제일 뿐 거부권 행사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겸임하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24일 KBS라디오에서 "개정안은 국회가 시행령을 강제로 조정하겠다는 발상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위헌"이라면서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당연히 시정을 요구해야 하며, 거부권 행사는 책무"라고 말했다.



◇시나리오는 세 가지…與 '자동폐기론' 확산 = 박 대통령이 이의서를 첨부해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를 할 경우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3가지다.

여야가 재의 절차에 합의해 국회 본회의를 열어 가결 요건을 충족시킴으로써 그대로 통과시키거나 본회의는 열되 부결시키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아예 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동 폐기' 수순으로 가는 것이다.

헌법(제53조)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면 법률안은 법률로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160석으로 원내 과반을 점한 새누리당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의결정족수를 갖추지 못해 법안 상정권한을 가진 정의화 국회의장이 상정해도 본회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서는 이러한 '재의 무시'가 대세로 보인다.

한 핵심 당직자는 2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개정안이 돌아온다고 해도 결코 재의 절차를 밟을 수는 없다"면서 "그대로 폐기 절차를 따르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재안을 반영해 위헌성이 해소된 만큼 재의결을 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지만 소수 의견이다.



◇유승민, 의총 절차 밟을 듯…재신임론 당내 확산 = 개정안에 서명한 당사자인 유승민 원내대표는 거부권 행사시 곧바로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들의 의견을 따를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의를 반대하는 의원이 다수일 경우 무리하게 재의를 요구하는 의원들을 동원함으로써 재의 요건을 갖춰 본회의를 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거부권을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해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청와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공무원연금 개정안 협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만큼 재신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김무성 대표 역시 유 원내대표 책임론을 제기한 일부 친박계 의원을 직접 만나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 대여 강경투쟁 모드 전환 = 새정치민주연합은 개정안이 폐기되면 청와대와 여당을 상대로 한 강경 투쟁에 돌입할 태세다.

특히 유 원내대표뿐 아니라 김 대표가 청와대와 보조를 맞춰 개정안 폐기론으로 돌아섰다고 보고 투톱에 대한 공세를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내의 한 핵심관계자는 "김 대표는 거부권 행사를 수용할 것처럼 나서고 당내에서 개정안의 폐기론에 앞장섰다"면서 "김 대표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유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카드를 검토했지만 공세의 수위를 한 단계 높이겠다는 의미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일단 청와대가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장 "이의서 보고 판단" = 거부권이 행사돼 국회로 돌아올 경우 재의에 키를 쥔 정 의장이 기존 입장에서 변화를 보여 주목된다.

정 의장은 국회 등원 길에 기자들과 만나 재의를 위한 본회의 상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때는 이의서가 따라오는데, 그 이의서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야 어느 쪽이든 재의를 위한 본회의를 요구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던 태도에서 다소 물러난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