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 잃어가는 지방자치 공허한 외침일 뿐
단체장들 ‘묘지명’ 쓴다는 각오로 1년 반성해야
시인 정호승의 작품 중에 ‘새들을 위한 묘비명’이란 게 있다. ‘여기//가장 높이 나는 새가 되고 싶었던//밥 먹는 시간보다//기도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새들의 노숙자 한 마리 잠들어 있다’. 다섯 줄짜리 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읽을수록 긴 여운을 준다. 생각해 보자. 나는 영락없는 이 묘비명의 주인공 새 신세가 아닌가. 늘 남들보다 더 얻기 위해 애썼다. 학생 때는 더 나은 성적을, 졸업하고는 대우가 더 좋은 직장을, 더 잘난 배우자를, 더 뛰어난 자식을 갖고자 몸부림쳐 온 일생이다. 시인은 우리네 인생을 새에 빗대 깊은 반성에 잠기게 한다. 이름만 ‘새’라고 붙였지 실상은 ‘인간의 묘비명’인 셈이다.
묘비명은 보통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인생을 정리해 기록하게 마련이지만,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죽음을 상정하고 지나온 인생을 반추하는 글을 짓기도 했다.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나 ‘자만시(自挽詩)’ 등이 그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냉정히 돌아보기에는 죽음을 전제한 것 이상이 없을 듯하다. 이런 점에서 정호승의 시는 ‘죽음’으로, ‘새’로 하여 내 삶을 두 번이나 객관화하면서 자화자찬이나 변명이 끼어들 여지를 미리 차단했다. 삶을 반추하고 더 나은 생을 위하자는 데 변명이나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면 그게 제대로 되겠는가. 내 인생을 남의 것 바라보듯 하는 게 잘된 ‘자찬묘지명’의 최대 강점이리라.
7월 1일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일제히 2년차 일정을 시작했다. 광역이건 기초건 가리지 않고 단체장들의 취임 1주년 인터뷰가 쏟아지고 있다. 단체장들은 대개가 지난 1년의 성과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저 ‘자기 자랑’ 일색이다. 단체장들은 늘 관내 주민 수를 입에 달고 다닌다. 몇 십만 명이니 몇 백만 명이니 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뒤에는 그 많은 주민이 버티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주민들에게 단체장은 어떠한 존재일까.
며칠 전 부서원들과 인천시장 취임 1주년 기획회의를 하면서 어떤 꼭지를 준비할 것인지를 놓고 이야기했다. 분야별 공약 이행이 어떻고 하는 식의 통과 의례적 기사보다는 기자가 주민과 단체장을 직접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는 것을 준비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지하철에서 만난 주민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싸늘했다. 인천시민이면서도 절반 가까이가 시장의 이름조차도 모른다고 했고, 구청장이 누구인지는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명함만 ‘구청장’이라고 팠을 뿐이지 실질적 주민의 대표자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구의원이나 시의원은 사정이 더 심한 지경이다.
지방자치가 본격화한 지 20년이 지났다. 주민 없는 지방자치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4년 임기 중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단체장들은 묘지명을 스스로 쓴다는 각오로 자신의 1년을 반성해 보길 바란다. 주민조차도 그 이름을 모른다는데 과연 그 대표자는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할 수가 있을까. 많은 경우 단체장들은 1년 단위로 매기는 성과에 집착한다. 외자유치를 얼마나 했느니, 일자리를 얼마나 늘렸느니 하는 것들이다. 2년이면 임기 절반이 지난 것이고, 3년이면 다음 선거에서 내세워야 할 것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게 마련이다. 그렇게 강조했던 일들이 내가 죽은 뒤에도 주민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남들은 나의 묘비명에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겸허히 생각해 보자.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