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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인 김기동 검사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배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작년 11월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검·경과 국방부·국세청·관세청·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 등 7개 기관이 협업해 비리의 근원을 파헤치는 데 힘을 쏟았다.
정부가 관계기관을 총동원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라는 평가가 많다.
과거 노스롭 스캔들(1988년), 율곡사업 비리(1993년), 린다김 로비 사건(1998년) 등 굵직굵직한 방산 비리가 불거졌을 때 의혹 관계자 일부의 처벌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진일보했다는 것이다.
현역·예비역 장성을 포함해 비리 연루자 63명을 재판에 넘기는 등 외견상의 성과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합수단이 출범 당시 공언했듯이 비리 사슬 구조를 뿌리뽑는 데까지 나아가는 데는 다소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방산사업은 소요 결정→제안요청서 작성→제안서 평가→시험평가→가격 협상→기종결정→납품 등의 단계를 밟는다.
이 가운데 도입할 무기 종류를 정하는 소요 결정은 비리가 잉태되는 단계로 수사의 핵심으로 꼽히지만 합수단은 이 부분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는 평가다.
실제 합수단의 수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제안서·시험 평가와 납품 단계에서만 사법처리가 이뤄졌다.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214(1천800t·KSS-Ⅱ)급 잠수함·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등과 관련한 비리에서도 납품 단계에서 역순으로 수사가 진행되다가 대부분 제안서·시험 평가 부분에서 연결고리가 끊겼다.
절차상 가장 오래전에 이뤄진 일이라 공소시효가 일부 걸림돌로 작용한 게 사실이지만 비리 구조 자체를 제거한다는 합수단의 출범 취지를 고려하면 '2%' 부족했던 셈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소요 결정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입증이 어려웠다"며 "남은 기간 소요 결정 비리도 적극적으로 밝혀내겠다는 목표로 수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외국 사법기관과의 수사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합수단의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외국에서 무기를 조달해야 하는 방위사업의 특성상 비리가 불거지면 외국기업도 수사 대상이 되지만 대부분 합수단의 수사망을 벗어나 있다.
EWTS를 납품한 터키의 하벨산과 와일드캣 제작사인 아구스토웨스트랜드(AW)가 대표적이다.
합수단은 이규태(65·구속기소) 일광공영 회장이 1천100억원대 EWTS 납품 사기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하벨산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답보 상태다.
합수단은 수사가 한창이던 올 초 EWTS 납품 경위 및 과정을 확인하고자 하벨산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AW도 김양(62) 전 국가보훈처장을 군 로비스트로 고용해 와일드캣 세일즈를 했다는 의혹을 받지만 역시 합수단 수사에서는 한발 비켜나 있다.
AW는 김 전 처장에게 합법적인 고문료를 줬다고 주장하지만 AW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 진위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방위사업 비리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거물급 무기중개상의 경우 해외에 조성한 비자금으로 현지에서 금품 로비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사 공조 미비로 규명이 어렵다는 게 합수단의 입장이다.
합수단이 이런 장애를 넘어서서 지속적으로 수사 성과를 창출할지는 미지수다. 합수단은 제한된 인력으로 재판에 넘긴 63명의 공소 유지와 수사를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합수단 활동이 장기화하면서 표면화하는 군내 반발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군 내부에서는 보기에 따라 관례로 해석할 수 있는 일에도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무리하게 수사한다는 불만이 팽배해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군의 불만이 수사 비협조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까지 기소자 가운데 현역 군 관계자(방위사업청 포함)가 14명에 불과한 것도 결국 철벽같은 군의 폐쇄성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