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장소까지 끌려간 수백m
CCTV ‘흐릿’ 피해자 안보여
비상벨 역시 3대중 2대 ‘먹통’
몸부림쳤어도 ‘도움’ 못받아
강력사건 안전대책 무용지물

실종된 지 하루만에 20대 꽃다운 나이의 여대생은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다. 경찰이 용의자의 차량을 확인하고 뒤를 쫓았지만 때는 늦었다. 용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납치된 여대생은 숨진 채 발견됐다. 

오원춘을 시작으로 박춘풍까지, 사건해결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지만 이번 여대생 납치 사건에서도 무용지물이었다.

경인일보 취재팀이 이번 사건의 최초 발생지점부터 범인의 행적을 재구성해 봤다.

키 150㎝, 몸무게 45㎏의 왜소한 체격이었던 A씨는 윤모(46)씨에 의해 수원역 앞 노상에서 도청방향으로 무려 550~750m를 끌려갔다.

최초 사건발생 지점에 설치된 CCTV는 단 1대. 하지만 이 CCTV에는 어쩐 일인지 윤씨의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다. 윤씨가 A씨를 데리고 도보로 이동하다가 차를 탔는지, 처음부터 차를 이용했는지 조차 파악되지 않는 이유다.

윤씨가 A씨를 부축하거나 들쳐업는 방식으로 걸어갔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로와 골목길 등 세 갈래다. 550m에 이르는 길에는 각각 3~4대의 CCTV가 있었지만, 역시 윤씨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CCTV에는 화질이 흐릿해 윤씨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윤씨가 처음부터 A씨를 차에 태웠을 경우 750m를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동선에 설치된 CCTV에도 윤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막상 A씨가 윤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어도 구원의 손길은 닿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갈림길 중 1곳에 설치된 비상벨 3대 중 정상작동하는 비상벨은 1대뿐이었다.

이후 A씨는 윤씨가 다니던 도청주변 건설회사 건물로 끌려왔다. 이 건물은 오후 6시 이후에는 1층 출입문을 폐쇄하고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된 문만 개방하는데, 윤씨는 익숙한 듯 차를 타고 곧바로 주차장으로 들어와 A씨를 3층 남자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격한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감식이 끝난 3층 화장실은 검은색 약품으로 처리된 상태로, 바닥 타일 곳곳이 깨지고 부서져 당시 상황을 짐작케 했다.

윤씨는 A씨를 숨지게 한 뒤 시신을 등에 업고 건물을 내려와 트렁크에 실었다. 불과 1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윤씨는 A씨를 싣고 수원서부터미널, 영통 경희대 등 수원 일대를 배회하다 오전 7시께 수원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 경찰은 피해자의 지갑과 신발·손거울 등 소지품을 발견하는 데 그쳤고, 결국 윤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A씨는 평택시 진위배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오원춘과 박춘풍을 거치며 경찰은 물론 수원시까지 나서 안전대책을 외쳤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강영훈·조윤영기자 ky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