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화합형’·이 ‘소신형’… 지역현안 탄력 기대감
도민 ‘팔 안으로…’ 바라는거 못잖게 통큰 애정 중요
원유철은 지방선거가 부활한 1991년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거대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도의원에 당선됐을 때의 나이가 겨우 28세, 최연소 도의원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7천777표라는 당시 득표수도 화제가 됐다. 행운의 숫자라는 7이 네개나 들어가 뭘 하든 네 번은 될 거라는 덕담도 들었을 터, 실제 15대 총선에서 33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된 후 탄핵 역풍에 고배를 마신 17대를 제외하고 4선에 성공했다.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이지만 아마추어 5단의 바둑고수답게 정치인으로서의 승부근성과 도전의식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17대 낙선 후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새로운 경험을 쌓았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도의원-부지사-국회의원을 두루 거친 스펙을 토대로 경기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에 선출된 만큼 사퇴한 유 전 대표와 공동운명체였음에도 오히려 후임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됐다. 2013년 출간한 그의 책 제목 ‘나는 오늘도 도전을 꿈꾼다’라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정치 이력이다.
이종걸은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답게 정치 입문전부터 반 유신, 야학 운동, 인권변호사 활동을 해온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16대 총선 때 안양 만안에서 당선된 뒤 내리 4선에 올랐고, 비주류·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면서도 선이 분명한 언행으로 야당 내에서도 강성으로 분류된다. 국회에서 ‘장자연 리스트’ 실명을 공개해 해당 언론사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고, 2012년에는 트위터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하 표현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유의 강직함 때문인지 4선 중진임에도 이렇다 할 당직을 맡지 못해, 민주통합당 시절 이해찬 지도부에서 최고위원을 지낸 것이 전부다. 지난해에도 두 차례 원내대표 선거에서 모두 쓴 잔을 마셨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수행실장을 맡았지만 비노(비노무현)계로 어느 계파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선명성이 강하다고 말할 만큼 강경하되,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게 중론이다.
경기지역 국회의원이 동시에 여야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그동안 안상수와 황우여, 김진표, 박기춘 등 수도권 지역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은 적은 왕왕 있었지만, 같은 대 국회에서 서로 파트너가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 정치사에 기록될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영호남의 언저리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만 지켜봐 온 경기도민들로서도 박수치며 반길 일이다. 벌써 수도권 지역 각종 현안들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나온다. 한쪽은 온화한 화합형, 한쪽은 강경한 소신형이라는 스타일의 차이는 있되 두 사람 모두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오랜 시간 지역발전에 기여해 온 인물이라는 점도 기대감에 힘을 보탠다.
하지만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국회 안에서 각각의 당론을 모으고 이를 관철시켜야 하는 총괄 책임자의 자리로, 매번 화합과 협력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기는 하되 현실은 치열한 수 싸움과 힘겨루기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 역시 상견례 직후부터 추경 일정과 국정원 해킹 진상규명 등 현안을 놓고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 여물을 먹여 덩치를 키운다는 말처럼 도민들께서 꾸준히 여물을 먹여주셔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될 수 있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원내대표도 마찬가지 심경일 것이다. 두 정치 주역을 지켜보는 도민들은 기왕이면 ‘내 새끼’들의 팔이 안으로 굽어 주기 바라겠지만, 사람을 더 크게 쓰는 통 큰 애정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배상록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