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8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해임되면서 사실상 경영 2선으로 물러나게 됐다. /연합뉴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8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해임되면서 롯데그룹이 신동빈 체재로 전환됐다.

일본서 껌 사업으로 출발해 한일 양국에 재벌그룹을 형성한 신격호 회장이 67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신 회장은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1941년 만 19세의 나이에 사촌형이 마련해준 여비를 갖고 일본에 건너간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던 중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쓰에게서 5만엔을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신 총괄회장은 이 돈으로 1944년 도쿄(東京) 근교에 윤활유 공장을 세웠으나 미군의 폭격을 받아 가동도 못 하고 불타 버렸고, 5만엔의 빚만 지게됐다. 

해방이 되자 친구들의 귀국권유를 뒤로 하고 신 총괄회장은 "나를 믿고 돈을 빌려준 사람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며 다시 우유 배달을 하고 공사장에서 일해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짓고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하루 200곳이 넘는 상점에 물건을 납품했다.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고 1948년 제과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껌 사업 성공으로 제법 큰돈을 만지게 된 그는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고 '롯데' 간판을 처음으로 내걸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 20개국에 74개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그룹의 첫 걸음이었다.

1961년 초콜릿 사업에 도전한 롯데는 이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종합 식품 메이커로 부상했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수교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에 대한 투자를 시작해 국내에서 다방면에 걸쳐 사업을 확장한다.

1974년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해 롯데칠성음료를, 1977년 삼강산업을 인수해 롯데삼강을 각각 세우면서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1973년에는 롯데호텔을 열어 관광산업 현대화의 기반을 마련했고, 1979년에는 롯데쇼핑을 설립해 유통 현대화의 토대를 구축했다.

1978년에는 평화건업사(현 롯데건설)를, 이듬해에는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을 인수해 건설과 석유화학 산업에도 진출했다.

식품-관광-건설-화학 등 진용을 갖춘 신 총괄회장의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친다.

롯데호텔은 1988년에 소공동 신관과 잠실 롯데호텔을 열고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일조했다. 세계 최대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롯데월드도 관광 인프라에 대한 신 총괄회장의 소신과 열정이 빚어낸 작품이다.

이런 고속 성장에 힘입어 신 총괄회장은 1990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9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롯데그룹 2세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61)이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94)을 앞세워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신 총괄회장은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경영일선에서 사실상 퇴진하게 됐고,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회장(60)의 2세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