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업무 상습 방해·행패 ‘행정력 낭비’ 심각
경찰, 악성민원인 ‘동네조폭 규정’ 강력 처벌 방침
전문가들 “억지성 차단 제도마련 시급” 한목소리


고질적 억지 민원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크다. 이런 억지 민원은 공공기관의 행정력 손실은 물론 기업활동의 위축을 불러온다. 경인일보는 최근 ‘억지민원 이제 그만’이라는 기획시리즈를 보도했다. 취재과정에서 억지 민원에 ‘속앓이’ 하는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민원인의 반복적이고 꼬투리 잡기식 ‘집요한 민원 제기’에 놀랐고, 이에 대응하는 공공기관과 기업의 ‘무력한 대응’에 놀랐다. 고질민원인을 전담하는 담당자를 두거나 2~3명의 팀을 꾸린 자치단체도 있다. 민원 담당 공무원은 대부분 욕하면 듣고, 때리면 맞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민원현장에서 정당한 민원인과 담당 공무원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의무를 다할 수 있을까.

본보 보도내용 중 인천국제골프장 소유 부지를 불법 점유해 식물과 물고기를 키웠다는 한 민원인의 사례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는 수년간 10여 차례에 걸쳐 각급 기관에 골프장을 고발했다. 불법폐기물 매립과 그린벨트 훼손, 환경오염물질 배출 등이 그 이유다. 고발기관은 검찰과 경찰은 물론 구청, 시민사회단체와 환경단체, 언론사까지 다양하다. 오염물질 배출로 자신이 키운 난과 물고기가 폐사해 1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골프장은 모두 11차례에 걸쳐 민원인의 주장대로 오염된 폐토양·폐수 등에 대해 국가기관에 성분검사를 의뢰했지만 한결 같이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이 민원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 ‘이상 없음’ 판정을 내린 국가기관을 믿을 수 없다며 같은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본보가 ‘억지민원 이제 그만’ 시리즈를 보도한 이후 인천경찰청은 ‘공공기관의 민원 행정을 상습적으로 방해하거나 공무원에게 행패를 부리는 악성 민원인을 동네 조폭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처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악성 민원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지자체 민원 부서 실무자를 통해 억지 민원사례를 수집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매년 고질 민원 대응방안을 내놨다. 고질 민원에 따른 행정력 낭비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민권익위는 지난 2012년 6월 정부기관으론 처음으로 ‘고질민원 대응 매뉴얼’을 보급했다. 전국의 광역·기초단체들은 직원 교육용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만큼 고질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대처법은 형식적이고, 고질 민원의 행태는 점점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공공기관은 민원인의 행정서비스 만족도 평가에만 치중해 왔고, 악성 민원에 대한 진단은 부족했다. 전문가들은 억지 민원은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넘어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피하지 말고 ‘왜 억지 민원이 발생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억지 민원인을 적절히 차단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악성 민원인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억지 민원인에겐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명예훼손, 모욕, 무고 등 형사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충분하고, 민사적으로도 접근금지 신청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공익을 위해 민원인을 형사 고소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조언한다. 고질 민원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정당한 민원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