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대북 확성기 방송’ 상응 조치인지 의견분분
엄중하고 단호하되 극도의 인내심도 필요하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절단작업 중이던 미군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도끼 만행 사건’은 분단 이후 북한이 자행해온 수많은 도발 중에서도 대표적인 반인륜적 범죄로 꼽힌다. 당시 사건을 보고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당장 군화와 철모를 가져오라’며 일전불사의 결의를 보였다고 하고, 실제 특전사 대원들로 구성된 결사대가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하는 즉각적인 보복 응징 작전도 이뤄졌다. 당장에라도 전면전으로 번질 뻔했던 사건은 우리의 단호한 대응과 미국의 대규모 무력시위 계획에 위축된 북한이 뒤로 물러서며 일단락 됐지만, 이후 북한이 한동안 준전시 상태를 풀지 못한 채 남북 긴장이 지속되는 등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분노한 국민들의 감정과 맞물려 오랫동안 유행어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지난 4일의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사건은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한 지 꼭 39년여 만에 재연된 닮은꼴 도발이다. 희생규모에선 차이가 있지만, 두 사건 모두 그 의도와 수법의 잔혹성에서 체감 충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국민’(국민 중에는 자작극 냄새가 난다거나, 우리 군 대인지뢰에 의한 사고라는 등의 괴담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들이 분노했고, 또 그 중 ‘많은 국민’들이 한쪽만 속절없이 당하는 남북현실에 분개했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응징’ ‘보복’ ‘단호한 대응’ 등 말 잔치는 풍성했지만, 정말로 상응하는 대응이 이뤄졌던 기억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 군은 “북한이 비열한 행위를 한 만큼 우리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국방부장관 역시 장병들에게 “적이 도발하면 과감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힘주어 지시했다. 그 상응의 조치로 이뤄진 것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다. 대북방송이 북한 정권에서 노이로제 반응을 보일 만큼 위력이 대단한 우리 군의 대표적 심리전 수단이라지만, 그것이 이번 도발에 ‘상응하는 조치’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확성기를 크게 틀어 북한군들 고막을 터뜨리자는 전략’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뢰 도발을 규탄하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도 힘을 얻어,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도 재등장하고 있다.
우연이겠지만, 지뢰 도발 이후 굵직한 북한 관련 소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남북 경색에 한 몫을 했던 개성공단 임금인상 문제가 타결되더니, ‘한미 군사훈련이 중지되면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것’이라는 내용의 북한 노동신문 논평이 나왔다. 19일엔 북한이 남측 대북 확성기 타격 훈련을 강화했다는 뉴스도 보도됐다. 그 틈바구니에서 또 하나, 평양에서 열리는 U-15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 경기도·강원도 대표단이 참가했다는, 다소 ‘뜬금없는’ 소식도 전해졌다.
우리가 지뢰폭발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하는 데 6일이 걸리고 SNS에 괴담이 난무하는 사이에 북한은 ‘무차별적 타격’이라는 으름장에서 개성공단 임금타결, 이산가족 상봉에 이르기까지 종잡을 수 없는 카드들을 잇따라 내민 꼴이어서, 매번 당하기만 했던 현실에 속상해 했던 많은 국민들로선 또다시 분통이 터질 일이다.
하지만 미친개한테 몽둥이 찜질을 하는 건 쉬운 일, 정말 어렵기는 미쳐 날뛰는 개를 잘 길들여서 더불어 사는 것이다. 엄중하고 단호하되 극도의 인내심도 필요하다. 불쑥불쑥 자존심 상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건 어쩌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 그 중 양식 있는 국가의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숙명인지도 모른다. 극한 대립 속에서 어린 청소년들의 축구대회 소식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상록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