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페셜

  • 15평 '대궐'서 쏘아 올린 작은 희망 [자물쇠 걸린 땅 '도시 개발 자치권'·(上)]
    기자들의 기억법

    15평 '대궐'서 쏘아 올린 작은 희망 [자물쇠 걸린 땅 '도시 개발 자치권'·(上)] 지면기사

    꿈, 추억 그리고 '보람채 아파트' 40년전 구로공단 청년노동자들닭장집·기숙사 등 좁은 곳 생활철산리에 생긴 아파트 들어가자한 집 5~6명 지내도 '여유' 생겨보금자리 마련 기반 돼 준 공간 꽤 오랫동안 우리 마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마을과는 선이 그어져 정체조차 알 수 없었던 공간들이 경기도 곳곳에 있다. 국유지이거나 서울시가 소유한 땅들인데, 이들의 기능은 오로지 국가, 서울시민을 위한 것들이다. 워낙 오랫동안 그래와서 그러려니하며 살았다. 그렇게 서울 변방, '위성도시'로 태어난 숙명을 안고 참아왔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도시와 시민은 성장했다. 이제 경기도의 도시들은 독립된 자치권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확립했고 주도적인 도시개발이 가능해졌다. 경기도 도시들이 빼앗긴 '도시개발의 자치권'은 그래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 편집자 주일당 3천300원, 월급 9만9천원.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밤 10시는 넘어야 끝이 나는 근무. 40여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오정애씨는 참 고되고 힘들었어서, 이보다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산다고 했다. 정애씨는 지금은 가산디지털단지로 이름과 모습을 바꾼,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1986년, 스무살을 막 넘긴 즈음부터 8년여간 구로공단에서 청춘을 보냈던 그는 우리가 한번쯤 들어 본, 이른바 '여공'으로 불린 청년노동자다. 그리고 가진 것 없던 그 시절, 나아질 것이라 희망을 쥐어준 것이 3년간 살았던 광명 보람채 아파트였다. "구로공단에는 주로 전자회사, 봉제공장들이 많아서 거의 여공들이 일을 했어요. 인건비가 워낙 싸니까. 가리봉 시장 쪽에 가면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아주 좁은 방들이 늘어서 있는데, 화장실도 없고 몸 하나 뉘일 공간 정도…. 화장실은 보통 1층 공용화장실 하나로 같이 쓰는데, 그렇게 열악한데도 월세 아끼겠다고 2~3명씩 같이 살았어요." 이런 집들을 '닭장집'이라고 했고 또 가장 열악했다. 회사·구로공단에서 제공하는 기숙사들도 간혹 있었지만, 수

  • 대화포비아, 중도 모르는 중도… 그럼에도 직면할 이유 [20대 무당(無黨)을 찾아서(2·끝)]
    기자들의 기억법

    대화포비아, 중도 모르는 중도… 그럼에도 직면할 이유 [20대 무당(無黨)을 찾아서(2·끝)]

    이럴바엔, 차라리 입을 다물겠다. “왜 토론하지 않을까?" “왜 무당층이 됐지?" 라는 질문에 지난 1편에서 우리가 만난 20대 청년들은 '침묵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결론내렸다. 전략적 침묵을 선택한 이유는 꽤 납득할 만했다. 온라인이 더 편한 20대에게도 작금의 온라인 공론장은 불편하다. 불편한 배경엔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나뉜 소수의 부류가 공론장을 지배하면서 이들의 짠 프레임에 의해서만 이야기가 오고간다는 것이다.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거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고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만 모든 이야기가 오가니 '대화를 하는 게 피곤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여기에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성역'이 생겨버린 현상도 심각하다고 했다. 젠더, 진영, 계층 등 사회구성원을 분류하는 모든 지점에서 '절대 지켜야 하는' 선이 그어지고, 다원화된 사회에 이분법식 접근만 강화되면서 차라리 입 다물고 사는 게 속 편한 세상이 된 셈이다. 이들이 바라보는 더 큰 문제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온라인 현상이 오프라인의 공포로 전염되며 일종의 '대화포비아'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만, 상대의 생각을 잘 아는 이들끼리만 정치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아예 대화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리고 이런 현상과 '20대 무당(無黨)'층이 늘어나는데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고도 말했다. 취재팀은 당사자 격인 20대의 '자가진단'을 듣고 이 현상을 둘러싼 '공론장'을 더 확대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토론주의자' 이준석 개혁신당 국회의원에게 20대 무당층을 물었다. 또 '프로보커터' '급진의 20대' 등 20대와 정치를 연구하는 김내훈 작가를 만나 현상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물어보았다. 아래는 이들의 인터뷰를 주요 주제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나무위키에 기대 설명 넘기고 급발진… 20대도 문제 있다 대학생들 토론하는 모습 보면 나무위키의 장점란과 단점란이 싸우는 듯. 1차 소스 모르는 '밀키트 토론' 난무.

  • [영상+] 말을 잃은 자, 말이 없는자, 우리는 무당입니다 [20대 무당(無黨)을 찾아서·(1)]
    기자들의 기억법

    [영상+] 말을 잃은 자, 말이 없는자, 우리는 무당입니다 [20대 무당(無黨)을 찾아서·(1)]

    '20대를 무당(無黨)이 지배했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이 서너개인 내동생처럼, '중도'라고 불리고 '부동'층이라고도 일컫는 대한민국 20대. 선거철만 되면 캐스팅보트로 막강한 힘이라도 쥐어준 듯 띄우다가 철 지나면 쪼그라든 풍선마냥 사라지는 우리 사회 20대. 여론조사에서 이토록 꾸준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절반의 무당(無黨)'이 존재하는, 이상한 세대. 이러한 이상현상을 두고, 20대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자평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정치 혐오'라고도 자조하기도 한다. 20대를 바라보는, 인생을 조금 더 살았다는 어른들은 현상을 무관심으로 뭉뚱그려 손가락질하거나, 놀고먹는 쾌락만 좇는 '정치 무지렁이'로 격하하기도 했다. 취재는 아주 근본적인 호기심, “대체 왜?"에서 비롯됐다. 무당(無黨)이 된 20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20대 무당을 마주한 우리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럴 수도 있지'로 쿨하게 넘어갈 현상이 결코 아니었다. 혹은 반대로 20대를 손가락질하거나, 기성 정치권을 손쉽게 탓하는 일차원적인 분석은 오히려 현실을 오독하는 것이라 결론내렸다. 복잡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이 깊었다. 결론은 쉽게 말해보자.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1편은 '무당이 된 그들만의 사연'을 20대 청년들이 직접 진단했다. 2편은 20대 유권자를 상대로 '표 장사'를 해야 하는 정치인과 20대 무당을 연구하는 전문가를 만나 그들만의 진단을 들어봤다. 솔직히 말해서, 정답은 없다. 세상에 정답있는 질문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신 정도(正道)를 함께 찾아볼 뿐이다. 20대 무당(無黨)이 바라는, 우리 정치사회의 건강한 정도를. →편집자주 취재팀은 지난달, 2차례에 걸쳐 아주대학교 학보사 학생 3명을 대면 인터뷰했고, 국민의힘 경기도당 청년 당직자 7명과 함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긴시간 토론을 했다. 아래는 이 곳들에서 나온 내용 중 주요 맥락들을 중심으로 '단톡방'을 재구성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3인을 정해 대화를 요약했다.

  • 젊음의 고유명사 안양1번가, 청춘 사진첩 닮은 그 길 [레트로K: 보통의 역사]
    레트로K

    젊음의 고유명사 안양1번가, 청춘 사진첩 닮은 그 길 [레트로K: 보통의 역사]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름은 '경부선'. 세로로 길쭉한 우리 국토의 중추선을 따라 서울 용산에서 부산까지 연결된 길입니다. 경부선은 산넘고 물건너 걷거나 말타고 서울서 부산까지 가던 구시대의 종식을 의미했죠. 경부선을 따라 수많은 '교통 요충지'들이 탄생했고 요충지마다 행정이 커지고 상업이 융성해졌으며, 산업도 발달했습니다. 안양이 '별의 순간'을 맞는 시점도 바로 이때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길, 그 첫번째 길목이 바로 '안양역'이기 때문입니다. 1905년 안양역은 경부선이 만들어지는 그 시기에 함께 건설됐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생전 본 적도 없는 기차라는 것을 타고 사람들이 내리고, 또 기차를 타기 위해 사람이 모였습니다. 사람이 모인다는 건 곧 도시의 발전과 직결됩니다. 근방에 있던 시장, 음식점, 여관 등 상업시설들이 안양역 인근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경기 중부지역의 경제중심지라 불렸던 '군포장'이 안양역 인근으로 옮겨왔고 그게 '안양시장'으로 발전했습니다.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1973년 안양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시흥군 안양읍에 속했는데 시흥군청이 서울 영등포에서 1949년 안양역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안양은 명실상부 경기중부 행정의 중심지 역할까지 도맡게 됩니다. 군청에 교육청, 읍사무소, 경찰서 등 공공기관들이 역사 맞은편에 줄줄이 자리를 잡았고 주변으로 식당과 유흥주점, 상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이 한번쯤은 들어본 '안양1번가'의 시작입니다. 안양1번가는 지금도 건물 곳곳에 걸린 간판들에서 '잘 나갔던' 그 시절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1번가 콜라텍' '1번가 노래방' 등이 상점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안양을 비롯해 군포, 과천 등 경기 중부지역 주민들에게 안양1번가는 젊음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불립니다. 그래서 안양1번가에는 청춘들의 재밌는 추억이 많습니다. 1970년대 안양역에 지하철이 개통되며 안양

  •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下)] 가족의 큰짐 사회가 나눠 질때 '간병할 자유' 보장된다
    기자들의 기억법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下)] 가족의 큰짐 사회가 나눠 질때 '간병할 자유' 보장된다 지면기사

    안전망 부재 집단간 '불평등' 비롯정부 간호간병 통합, 실효성 부족가족돌봄휴가 제도는 사용률 저조인식 전환·완충지대 마련 등 필요'간병할 자유'.가족을 간병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이 두 집단 사이에 불평등의 벽을 세운 건 그저 단순히 '가족 간병의 여부'가 아니다. 불평등의 핵심은 '완충지대', 다시 말해 한 사람이 가족 간병을 할 동안 사회·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시간과 감정을 뒷받침해줄 사회 안전망이 없다는 데서 시작한다.완충지대를 일구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 그리고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조화가 필요하다.정부도 가족 간병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전담 간호 인력이 가족 간병을 대신하는 것이다. 비용 역시 민간 업체에서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80%가량 저렴하다.하지만 반쪽짜리 정책이란 비판이 꾸준히 터져나온다. 가족 간병 때문에 일상이 흔들릴만큼의 중증 질환은 그 대상이 못되기 때문이다.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홀로 13년 동안 돌봐온 경험을 토대로 에세이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도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는 일부 병원에서 경증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한국은 일본처럼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전 병원에서, 그리고 '간병 살인'을 막을 정도의 실효성 있는 수준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실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만족도는 높지만 양질의 간호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지난해 5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에서 발표한 '간병 국민인식 조사'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적절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약 7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가족 간병을 도맡고 있거나, 갑작스레 가족 중 누군가가 쓰러질 때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응급 조치로 '가족돌봄휴가' 제도도 있다. 정책과 현실은 꽤 다르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에서 지난 8일 발표한 '공공기관 돌봄휴가제도 활용 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정책 시행 이후 4년간 중앙공공기관의 가족돌봄휴가 사용 비율은 평균 12.7%로 보고됐다.

  •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下)] 가족의 짐, 사회가 나눌때 '간병할 자유' 보장
    기자들의 기억법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下)] 가족의 짐, 사회가 나눌때 '간병할 자유' 보장 지면기사

    안전망 부재 집단간 '불평등' 비롯정부 간호간병 통합, 실효성 부족가족돌봄휴가 제도는 사용률 저조인식 전환·완충지대 마련 등 필요'간병할 자유'.가족을 간병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이 두 집단 사이에 불평등의 벽을 세운 건 그저 단순히 '가족 간병의 여부'가 아니다. 불평등의 핵심은 '완충지대', 다시 말해 한 사람이 가족 간병을 할 동안 사회·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시간과 감정을 뒷받침해줄 사회 안전망이 없다는 데서 시작한다.완충지대를 일구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 그리고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조화가 필요하다.정부도 가족 간병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전담 간호 인력이 가족의 간병을 대신하는 것이다. 비용 역시 민간업체에서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80%가량 저렴하다.하지만 반쪽짜리 정책이란 비판이 꾸준히 터져나온다. 가족 간병 때문에 일상이 흔들릴만큼의 중증 질환은 그 대상이 못되기 때문이다.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홀로 13년 동안 돌봐온 경험을 토대로 에세이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경증의 일부 병원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한국은 일본처럼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전 병원에서, 그리고 '간병 살인'을 막을 정도의 실효성 있는 수준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실제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만족도는 높지만 양질의 간호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지난해 5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에서 발표한 '간병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72%가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적절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가족 간병을 도맡고 있거나, 갑작스레 가족 중 누군가가 쓰러질 때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응급조치로 '가족돌봄휴가' 제도도 있다. 정책과 현실은 꽤 다르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에서 지난 8일 발표한 '공공기관 돌봄휴가제도 활용 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정책 시행 이후 4년간 중앙공공기관의 가족돌봄휴가 사용 비율은 평균 12.7%로 보고됐다. 10명 중 1.5명 정

  •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下)] 병원비 걱정 옥죄어 오고,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간다
    기자들의 기억법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下)] 병원비 걱정 옥죄어 오고,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간다 지면기사

    노노간병인 헌신 기대는 우리 사회노부모 부양자 57% 경제적 어려움수입은 없고 고정적으로 큰 지출뿐요양보호사 쓰기엔 인건비 부담 커정부 운영하는 제도 실효성 물음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장사는 없다. 젊은 시절 건강한 신체는 나이 먹을수록 쇠약해지고, 질병에 취약한 몸이 된다. 내 가족도 노쇠할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1차적인 책임은 늘 그 가족이다. 그래서 누구나, 언젠가는 가족 간병의 책임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다음은 최명숙(가명·64세)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논픽션'이다.2018년, 어머니가 쓰러졌다. 어머니는 '뇌경색'이었다. '좌측 편마비' 증상으로 어머니는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가 됐다. 오랜 시간 아버지를 돌봤던 어머니는 이제 간병의 대상이 됐다. 어머니의 입원과 아버지의 간병이 동시에 파도처럼 밀려왔다.아버지의 아침식사를 차린 후 곧장 어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이동해 하루 종일 간병했다. 그동안 집에 혼자 있는 아버지는 하루에 3시간씩 방문하는 요양보호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식사 때가 되면 집에 돌아와 아버지를 챙겼다. 집과 병원의 반복이었다.엄마를 병원에 모신 5년간 병원비 걱정은 항상 나를 쫓아다녔다. 일을 못해 수입은 없는데 고정적으로 큰 지출만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카드 돌려막기와 대출로 간신히 막아보지만 매일이 버겁다.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치매까지 앓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중 21시간을 어머니 옆에 있었다. 쉼 없는 간병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결국 4개월만에 어머니는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갔다. 잠시라도 쉴 수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요즘 매일 어머니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최씨의 사례처럼 우리 사회는 노노간병인의 헌신에 기대, 이들의 일상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간병 환경조차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부양부담과 불안한 노후, 진퇴양난에 빠진 한

  • [영상+] ‘간병―가족’ 막다른 길 벗어나길 [밀려난 삶의 반: 가족 간병과 나·(4-1)]
    기자들의 기억법

    [영상+] ‘간병―가족’ 막다른 길 벗어나길 [밀려난 삶의 반: 가족 간병과 나·(4-1)]

    #'간병할 자유'. '시간 빈곤자', '간병 약자', '누구나·언젠가' 앞서 경인일보 취재진은 '가족 간병―일상'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다양한 시민을 만났습니다. 누구는 간병과 일상을 유지하려 압축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머니를 돌보면서도 꿈을 향해 조금씩 달려가는 중이었습니다. 아예 노년의 삶이 송두리째 가족 간병에 빼앗긴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이들은 계층도, 세대도 모두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 간병이라는 굴레에 얽혀 저마다 불평등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들의 시공간은 가족 간병을 하지 않는 이들과는 참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뿐 언젠간 우리 모두의 삶으로 밀려 들어올 일들이죠. 가족을 간병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이 두 집단 사이에 불평등의 벽을 세운 건 그저 단순히 '가족 간병의 여부'가 아닙니다. 조금 더 구조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평등의 핵심은 '완충지대', 다시 말해 한 사람이 가족 간병을 할 동안 사회·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시간과 감정을 뒷받침해줄 사회 안전망이 없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완충지대가 없는 사회에서 위험부담과 기회비용은 오롯이 개인의 책임, 가족 간병을 맡은 자가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이 됩니다. 김은희(40대 초반)씨, 이정민(20대 초반)씨, 최희숙(60대 중)씨(이상 가명), 김정희(80대 중반)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 단서는 무엇일까요. 일차원적인 해법은 정책 설계와 예산 투입입니다. 그간 소홀했던 가족 간병 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가족돌봄휴가, 치매 국가책임제, 희귀·난치병 지정 및 지원 강화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이런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세심히 살피는 작업일 것입니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합니다. 가족 간병 관련 정책을 살피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

  • “사회적 책임 n분의 1 어때요?” [밀려난 삶의 반: 가족 간병과 나·(4-2)]
    기자들의 기억법

    “사회적 책임 n분의 1 어때요?” [밀려난 삶의 반: 가족 간병과 나·(4-2)]

    #진짜 선택을 위한 '완충지대' 이제야 본격적으로 간병할 자유를 바탕으로 정책과 제도를 논해볼 수 있습니다. 가족 중심의 간병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진정한 선택권을 보장하는 건 사회 시스템, 즉 앞서 설명했던 든든한 '완충지대'입니다. 간병할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죠. 핵심은 3가지입니다. 이 완충지대를 일구기 위해서는 민간 차원과 국가적 차원, 그리고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민간 차원의 실마리는 박성자 상임이사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24일 서울시 강남구 승일희망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자 상임이사는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할 방향을 보여줬습니다. 이 방향성은 박성자 상임이사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무수한 환우 가족들을 직접 만나보며 매듭지은 결론일 것입니다. 지난 2002년 농구 지도자로 활동하던 동생 박승일씨는 희귀질환인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투병 와중에도 루게릭병을 사회에 알리는 운동을 해왔습니다. 박성자 상임이사 역시 그런 동생의 뜻을 이어 승일희망재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환우 가족들이 직면한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봐주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실효성 있는 방법을 찾는 거죠. 공공기관이나 정부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역할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희귀질환 간병은 다른 간병보다 비용이 훨씬 높게 책정돼 있어요. 그렇다보니 가족들이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직접 간병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건 환우 가족들이 현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양질의 요양병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겁니다. 환자의 가족은 경제활동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환자는 원활한 의료 서비스를 받는 식으로 순환이 필요하죠." 실제 오는 12월 용인시 처인구에는 국내 최초로 희귀질환인 루게릭병 전문 요양병원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정부 지원금(100억원)과 시민 모금을 통해 건립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노력이 합쳐진 사례입니다. 정부가 모든 걸 책임질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죠. 민간이 주축이 돼

  •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上)] 언젠가 가족은 아플 것이고, 당신도 간병인이 될 수 있다
    기자들의 기억법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上)] 언젠가 가족은 아플 것이고, 당신도 간병인이 될 수 있다 지면기사

    체력·정신 쏟아내는 간병약자겨우 직장 유지하는 시간빈곤사실상 일상과의 공존 불가능 오랜 시간 '간병=가족'이라는 명제가 우리 사회에 통용돼 왔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픈 일은 우리의 삶에 불쑥 찾아오지만, 가족이 간병을 해야 한다는 명제만큼은 변함없이 굳건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당연한 명제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다. 가족간병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는, 극단적으로는 '간병살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현대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이 파괴될 만큼의 무거운 책임을 감내하는 게 당연한가, 간병과 일상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가에 대한 물음이 커졌다. 경인일보는 그 답을 찾는 여정에서 여러 연령, 다양한 상황에 놓인 가족간병인을 만났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시간빈곤' '간병약자' '언젠가·누구나' '선택할 자유'라는 공통의 주제를 찾았다.무엇보다 주목한 부분은 가족간병 문제의 바탕에 '간병과 일상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공존이 가능하려면 최소한의 필수조건이 필요하다. 필수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채 8살때부터 어머니를 간호하기 시작한 이정민(가명·20대 초반)씨의 일상은 간병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수준이다. 이씨는 간병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간병약자'에 속한다. 우리가 만난 가족간병인 중에는 이 필수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편인데도 24시간 난치병에 걸린 아이를 돌보는 데 체력과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도 있다. 김씨 일상의 공존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정도,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다. 개인적인 시간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시간빈곤'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다.가족간병은 '누구나' '언젠가' 겪어야 하는 모두의 일이다. 기획기사에 담긴 모든 인터뷰를 1인칭 시점에 담은 이유도 모두의 일에서 비롯됐다. 언젠가 우리의 가족은 아플 것이고, 당신도 가족간병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관련기사 (돌봄이 드리운 일상, 멈춘 나의 시계 [밀려난 삶의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