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 외국어도 AI로 번역하는 시대, 점자로 카톡대화 할 수 있어야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에필로그)]

    외국어도 AI로 번역하는 시대, 점자로 카톡대화 할 수 있어야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에필로그)] 지면기사

    점자 활성화, 전문가들 해법은 "미국서 점자 배운 30% 직장 얻어""컴퓨터 등장땐 불용론… 여전히 사용""스웨덴서도 포장지에 표기 계속 노력""스스로 요구해야 사회 전체 바뀌어"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한글 점자, '훈맹정음'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점자 활용과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한국, 미국, 스웨덴 등 국내외에서 점자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는 이들에게서 훈맹정음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해법을 들어봤습니다.■ 미국 보스턴 국립 점자 출판사 '내셔널 브레일 프레스' 브라이언 대표"Braille is still relevant."(점자는 여전히 유의미합니다.)미국 보스턴 '국립 점자 출판사'(National Braille Press, 이하 NBP) 대표인 브라이언 A. 맥도날드(Brian A. Mac Donald)는 점자 책을 만드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그가 생각하는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똑같이 정보를 얻고, 차별 없이 학습하고, 자유롭게 취미생활을 즐기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합니다. 브라이언은 "미국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배운 30%는 독립성이 강하며, 덕분에 어디에든 직장을 얻어 일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반면 나머지 70%는 점자를 알지 못해 '미고용' 상태라고 합니다.NBP가 소설이나 동화책 등 여가 생활을 위한 서적 외에 학생들이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대학생 전공서적, 진학시험을 비롯한 각종 국가자격시험의 시험지까지 학습에 관한 모든 것을 점자판으로 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시각장애인들도 배우길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적어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도전해볼 기반은 조성돼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브라이언은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며 이렇게 말했어요."1970년대 컴퓨터가 처음 개발되면서, 일부에서는 '이제 더 이상 점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돼. 컴퓨터에 말하면 다 해결해줄 거야'라는 인식이 생기기도 했어요

  • 전체 신간 대비 미미… 원문 제공 명문화 필요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전체 신간 대비 미미… 원문 제공 명문화 필요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지면기사

    국내 가장 오랜 점자책 기업 '도서출판점자' 故 육병일 선생이 세운 한국점자도서관 자회사기관의뢰 출판물 아닌 경우 일일이 스캔 어려움특수잉크 'UV 점자' 기술 보유… 관련 특허도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점자 책 제작 업체는 지난 2009년 설립된 (주)도서출판점자다.이 출판사는 국내 최초 점자도서관인 '한국점자도서관'의 자회사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국점자도서관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 중인 사립도서관이다. 시각장애인 고(故) 육병일 선생이 1969년 사재로 세운 이 도서관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점자 책 제작을 해왔고, 이후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시작한 도서출판점자가 점자 책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육 관장의 딸인 육해근씨가 초기에 대표를 맡았고, 광주세광학교의 교사였던 김동복 대표가 2015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김 대표도 저시력자다.도서출판점자는 시각장애인 학생에게 제공되는 교과서, 학습서를 비롯해 각종 도서를 점역해 제작한다. 또 공공기관의 출판물, 달력, 명함 등도 만들고 있다. 이와 함께 시각장애인 작가나 시각장애 관련 도서를 쓴 작가들의 신간을 출판하기도 한다.국립특수교육원과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만 매년 40여억원 규모의 대체 자료 제작을 이곳 도서출판점자에 맡긴다. 김 대표는 "큰 금액이긴 하지만 매해 국내에 출판되는 전체 도서 신간의 약 5%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렇게 국립특수교육원과 국립장애인도서관 등 정부기관의 의뢰로 제작하는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원문을 제공받아 작업 시간이 길지 않다. 두 기관이 요청한 도서가 아니라면 일일이 스캔 작업 등을 해야 한다는 것은 지역 도서관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대체 자료를 제작하는 이곳에서도 겪는 어려움이다.다만 도서출판점자는 국내 대표적 점자 책 제작 업체인 만큼 상주 인력이 50여명이나 되고 분업이 이뤄져 비교적 작업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프린트, 제본 등 모든 과정이 완전히 자동화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 점자 책은 아무래도 일반 도서보단 제작이 늦어

  • 누군가 해야 할 일… 귀로만 공부 어려워 점자 콘텐츠 절실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누군가 해야 할 일… 귀로만 공부 어려워 점자 콘텐츠 절실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지면기사

    훈맹정음 보급 앞장선 곳, 인천 '송암점자도서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제작 한창긴 과정… 신작 바로 접하기 어려움점역후 부피 늘어… 공간 확보 문제우편·모바일 대출… 오디오도 제공"강제성 없는 점자 제도, 현실 미흡"인천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점자 책을 읽으려면 미추홀구에 있는 '송암점자도서관'으로 가야한다. 이 도서관은 인천에서 점자 책을 제작하고 보급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도서관 이름은 인천 강화군 출신으로 한글 점자를 창제한 박두성 선생의 호인 '송암'을 따왔다.송암점자도서관에는 올해 9월 기준 점자로 점역된 소설, 그림책, 점자 혼용 도서 등 1만7천여권이 있다. 2주에 1~2권의 신간 도서가 점자로 제작돼 열람실 책장에 꽂힌다.지난달 25일 찾아간 송암점자도서관 점자도서제작실에서는 최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점자 책 제작이 한창이었다. 국가적 경사에 시각장애인들이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시각장애인이 신간이나 화제작 등을 곧바로 점자 책으로 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 도서를 점자 책으로 바꾸는 과정에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우선 온라인 파일 형태의 도서 원문을 점역 프로그램을 통해 점자로 바꿔야 한다. 이어 점역교정사가 페이지를 조정하고, 어문 규정에 따라 표기와 어법 상의 오류를 수정하며 오탈자를 잡는다.도서 원문을 온라인 파일로 제작하는 데에만 족히 한 달은 더 걸린다고 한다. 원문을 스캔하는 방식이 있으나, 오탈자가 많이 생겨 손수 입력해 파일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도서관에 소속된 점역교정사 1명이 1권을 점역하는 데 통상 1~2주가 걸린다. 송암점자도서관은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 교재 등 시각장애인이 신청한 도서를 제작해 보급하는 업무도 하고 있다. 신간 도서들을 충분하게 점자 책으로 제작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도서관 측의 점자 책 발간에 힘을 크게 덜어줄 방법이 있다. 출판사가 도서 원문 파일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 누구나 누릴 권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직접 읽고 싶어요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누구나 누릴 권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직접 읽고 싶어요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지면기사

    지역 유일의 시각장애인 특수학교 '인천혜광학교' 유치원~고교 교육과정 통합 진행'전국 초중읽기대회' 대상 영예도교사들 "점자 중요성 적극 알려야교단 서보니 저시력장애인도 필수"인천 유일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교실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교탁 없이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책상 앞에 마주 보고 앉아 수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선생님들은 학생이 점자로 된 교과서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살피며 수업한다. 점자를 읽는 손가락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글을 잘못 이해할 수 있어 학생의 자세와 손 모양을 수시로 확인한다고 한다.인천혜광학교는 잔존 시력이 남아 있는 저시력 장애인에게도 모두 점자를 가르친다.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알지 못하면 세상과 소통할 길이 막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과정을 통합해 가르치는 인천혜광학교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점자 교육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한 학기 안에 점자를 익힌다고 한다. 인천혜광학교를 포함해 전국 13곳의 시각장애인 특수학교가 학령기 아이들에게 점자를 가르치고 있다.지난달 29일 전국의 시각장애 초·중등학생이 참가한 점자 읽기 대회에서 인천혜광학교 학생이 중등부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홍예준(15)군은 "대상을 타서 기쁘지만 시간이 부족해 읽기 문제를 하나 풀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점자를 계속 사용해야 점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닳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 학교에 다니는 한서윤(11)양은 며칠 전 엄마와 서점을 갔다가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고 했다. '수상한 영화관'이라는 제목이 흥미로워서 꼭 읽고 싶었지만 점자로 된 책이 없어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한양은 "엄마가 점자책을 받으려면 오래 걸릴 테니 소리 내서 읽어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직접 읽고 싶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도 나를 따라 점자를 배우겠다며 몇 달 동안 노력했는데 결국 포기했다"고 미소 지었다.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윤효원(44) 교사는 "시각장애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자녀와 소통하고 싶어서 점자를

  • 시각장애인 눈 되어준 미국 '국립 점자 출판사'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시각장애인 눈 되어준 미국 '국립 점자 출판사'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지면기사

    보스턴 '내셔널 브레일 프레스' 1927년 시각장애인이 설립북미 전역이 사용하는 스타벅스 점자 메뉴판부터 유명 소설인 '해리포터'의 점자판까지…. 미국 시각장애인들이 글을 읽고, 정보를 얻고, 일상을 지낼 권리를 지켜주는 출판사가 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국립 점자 출판사'(National Braille Press, 이하 NBP)다.지난달 9일 오후(현지시간) NBP 건물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운 점자 책들이었다. 이곳 대표인 브라이언 A. 맥도널드(Brian A. Mac Donald)의 사무실 책상, 심지어 바닥에도 점자 책과 원고들이 쌓여 있었다. NBP는 미국 시각장애인들이 읽는 각종 간행물을 발간하는 것은 물론, 점자가 표기된 교구를 개발하는 등 점자 교육을 지원하는 일에도 힘쓴다고 했다. NBP 설립자는 이탈리아계 시각장애인 프랜시스 레라르디(Francis Ierardi)다. 그는 1901년 보스턴 소재 '퍼킨스 시각장애인 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에 입학하면서 가족과 함께 미국에 정착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프랜시스는 시각장애인들이 라디오의 음성, 혹은 다른 사람들이 전해주는 말을 듣지 않고서는 아무 소식도 접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전쟁 소식을 점자로 번역해 시각장애인들에게 배포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프랜시스는 이를 계기로 점자 신문 제작을 위한 펀드 모금과 점역 기반(인쇄기 등) 마련 등 9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1927년 초 NBP를 공식 설립했다. 그해 3월 '더 위클리 뉴스'(The Weekly News)를 창간했는데, 북미·유럽에선 최초로 만들어진 점자 신문이라고 한다. 구독 쇄도 석달만에 '전국신문'동화책 등 각종 콘텐츠도 펴내북미 '스타벅스 메뉴판' 개발소설 등 유명시리즈 동시 발간 처음에는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주(州)에만 배포할 계획이었는데, 다른 주에서도 이 신문을 구독하겠다는 요청이 쏟아져 발간 3개월 만

  • 국제 통용 '6개 점'에 한글 자모음 원리 입혀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中)]

    국제 통용 '6개 점'에 한글 자모음 원리 입혀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中)] 지면기사

    훈맹정음, 문자로서 우수성 인정 받아수학기호·단위 등 기타정보 포함 노력'6개 점' 중에서 왼쪽 상단 첫 번째 점을 콕 찍으면 한글 점자로는 'ㄱ'을, 미국과 스웨덴에선 알파벳 'a'를 의미합니다. → 그래픽 참조미국과 스웨덴, 그리고 한국의 점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획취재팀의 막내로 참여하며 배운 점자를 독자들에게 아는 만큼 최대한 쉽게 소개해 볼게요.가로 2줄과 세로 3줄로 이뤄진 6개 점 형태의 점자는 프랑스 시각장애인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가 1821년에 발명했어요. 미국과 스웨덴, 한국 등 점자를 가진 국가들은 모두 6점 점자를 사용하고 있죠.A, B, C로 시작해 Z로 끝나는 '라틴 알파벳'을 기반으로 하는 언어들은 대부분 유사한 점자 규칙을 가지고 있어요. 미국과 스웨덴 점자도 비슷한 점형(점자 모양)인데, 스웨덴에서는 영어 알파벳 26자에 스웨덴 모음 3자( )를 점자에 더 활용합니다.과거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끼리도 점자 규칙이 달랐는데, 혼란을 막기 위해 국제영어점자위원회가 '통일영어점자'(Unified English Braille)를 개발했어요. 이젠 영어를 점자로 표기할 경우 모두 이 규칙을 따르고 있어요.그렇다면, 한글 점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자음은 입 모양을,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본뜬 독특하면서도 과학적인 창제 원리로 배우기 쉬운 한글처럼 '훈맹정음'도 문자로써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모음 'ㅏ'의 점형은 모음 'ㅑ' 점형과 대칭 모양이에요. 'ㅓ'의 점형도 'ㅕ'와 대칭입니다. 이처럼 모음은 대칭의 원리를 이용했답니다.자음은 어떨까요. 훈맹정음은 같은 자음도 첫소리(초성)에 있는지, 받침(종성)에 있는지에 따라 표기가 다른데요, 너무 헷갈리지 않도록 최대한 점의 모양은 유지하고 위치만 다르게 정했습니다. 'ㄴ'을 초성으로 쓸 때는 첫 번째 줄의 점 2개를, 종성으로 쓸 때는 두 번째 줄의 점 2개를 찍으면 돼요.올해 3월 '한국 점자 규정'이 새롭게 개

  • 정부 산하기관 주도, 출판사도 적극적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中)]

    정부 산하기관 주도, 출판사도 적극적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中)] 지면기사

    스웨덴 점자 콘텐츠 보급 환경, 국내와 차이는 MTM, 외국인 등 언어 어려움 전반 대응"점자, 평등하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디지털 14만권 "더 빠른 점역 기술 개발"'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읽게 한다'. 스웨덴 정부 문화부 산하기관으로 점자 콘텐츠를 제작·보급하는 MTM(Myndigheten For Tillgangliga Medier)의 정책 목표다. 시청각 장애인뿐만 아니라 스웨덴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등 읽는 것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대체 콘텐츠 전반을 담당하는 곳이다.스웨덴 시각장애인들은 문학 서적, 대학 교재 등 원하는 책이 있다면 MTM에 신청해 점자 도서를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점자 크기와 간격 등 시각장애인 요구대로 맞춤형 제작이 이뤄진다.MTM에서 점자 책 제작을 담당하는 말린 쇠블롬 블락(Malin Sjoblom Vrak)은 "매년 수요에 대비해 일반 도서를 미리 점자 책으로 변환해 둔다"며 "점자 책은 시각장애인이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스웨덴은 시각장애인의 읽고 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점자 책 제작과 배포를 정부가 온전히 맡아 책임진다"고 설명했다. MTM은 매년 750여권을 점자 책으로 제작한다. 시각장애인의 요청이 없어도 내부 회의를 통해 신간 도서 중 점자로 바꿀 책을 정한다. 이 기관이 운영 중인 레거무스(Legimus) 전자도서관에는 디지털 파일 형태로 된 점자 책이 올해 10월 기준 14만여 권 등록돼 있다. 이 외에도 시각장애인이 읽고 싶은 서적은 모두 점자 책으로 제작될 수 있다. 대학 교재는 점자정보단말기로 읽을 수 있도록 디지털 파일 형태로 제공된다.우리나라도 시각장애인들이 점자 책 제작·보급 기관인 지역 점자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해 점역(점자로 번역)된 책을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스웨덴처럼 정부 주도로 점자 도서가 제작되진 않는다. 점자 책으로 전환되는 규모도 우리나라는 미비하다. 출판업계의 협조를 받기도 어렵다.MTM

  • "세상엔 쿠션이 없기에…" 수많은 헬렌 켈러가 부딪히며 일어섰다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中)]

    "세상엔 쿠션이 없기에…" 수많은 헬렌 켈러가 부딪히며 일어섰다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中)] 지면기사

    해외 시각장애인의 일상엔 점자가 있다 미국 보스턴 '퍼킨스 시각장애인학교'의 교육철학 헬렌 켈러와 스승 설리번 다닌 곳수강동에 대리석, 배려 대신 자립작은 소리 인식, 사물 촉감도 배워기본적 생활·타인과 소통법 교육전문가 5~6명이 1명 맞춤 전담도시력 없이 정보 습득 '점자' 핵심미국 보스턴 퍼킨스 시각장애인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 시청각 장애인 최초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헬렌 켈러(Helen Keller)와 그의 스승 앤 설리번(Anne Sullivan)이 다닌 곳으로 유명한 이 학교는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시각장애인 교육기관으로 꼽힌다.지난달 8일 고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하우빌딩'(Howe building)에 들어서자 단단한 대리석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라면 넘어지거나 부딪쳐도 크게 다치지 않도록 바닥과 모서리를 쿠션으로 보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여긴 여느 건물과 다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퍼킨스 시각장애인학교 관리부 직원 마누엘 가르시아(Manuel Garcia)는 "바깥 세상에는 쿠션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이 학교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독립적으로 살아갈 힘을 키워주는 걸 교육 목표로 삼는다. 학생들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대리석과 나무 바닥의 차이를 배우고, 딱딱한 벽을 어루만지며 벽돌의 촉감을 익힌다. 작은 소리까지 잘 들리는 아치형 천장, 창가를 향해 살짝 기울어져 있는 바닥의 경사면 등도 학생들이 자력으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건물 밖으로 나오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이 직원은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에 집중해보라고 했다. 16만㎡ 교정에는 일부러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무마다 바람에 흔들려 내는 소리의 차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학교 내 작은 연못도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공간이다. 학생들은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연못 주변의 풀이 얼마나 젖어 있는지 손으로 만져보며 최대한 연못에 가까이 다가가는

  • 스웨덴 도서관들의 특별한 코너… 손·눈·귀로 '사과를 점 찍다'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中)]

    스웨덴 도서관들의 특별한 코너… 손·눈·귀로 '사과를 점 찍다'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中)] 지면기사

    트란스트뢰메르 공립 '사과 선반' 점자 도서에 실제 질감 그림 흥미소도시인 말뫼 시립 '사과 가방'정부 MTM "점자, 국민적 지지"시각장애인에 책 배송 서비스도스웨덴은 '85.7%'(2013년 기준)의 독서율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만큼 독서가 일상인 국가다. 스웨덴 국민이 즐겨 찾는 도서관에 가보면 아주 특별한 '사과'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미소 짓는 눈과 입이 그려진 빨간 사과는 눈·귀·손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안내한다.지난달 15일 오후 6시께 찾은 스웨덴 스톡홀름 트란스트뢰메르 공립도서관(Transtromerbiblioteket). 2층 어린이 도서 열람실로 들어서자 '사과 선반'(appelhylla) 앞에서 금발 머리의 아이가 아빠와 함께 책을 고르고 있었다. 이 선반에는 눈과 손끝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된 점자 도서가 있다.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아직 글자를 모르는 아이도 흥미를 느낄 만한 것들이었다.선반에서 스웨덴의 고전 아동문학인 구닐라 베리스트룀 작가의 'Raska pa, Alfons Aberg'(서둘러요 알폰스·국내 제목 잠깐만요, 이것 좀 하고요)를 꺼내 책을 펼치자, 주인공의 얼굴이 올록볼록하게 표현돼 있었다. 시각장애인 등이 손끝으로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모든 글은 점자로 쓰여 있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파나 신문 등은 실제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흥미로웠다.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소도시 말뫼(Malmo)에서도 사과 선반을 만날 수 있다. 지난달 18일 오후 1시께 말뫼시립도서관(Malmostadsbibliotek) 1층 어린이도서열람실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빨간 사과 모양이 보였다. 점자 책과 더불어 '사과 가방'도 눈에 띄었다."말뫼도서관의 사과 가방을 빌려 보세요! 이 주머니에는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되는 자료가 담겼습니다. 직원에게 물어보세요." 안내 문구 옆 사과 그림이 그려진 남색 가방에는 그림, 점자로 읽을

  • 11월 4일은 '한글 점자의 날'… 일상의 글자로 점점 다가가기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上)]

    11월 4일은 '한글 점자의 날'… 일상의 글자로 점점 다가가기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上)] 지면기사

    한글 점자의 날 '6개의 점' 박두성 선생 창안 98주년 맞아27개 약자·7개 약어 별도 표기생활필수품 포장지 점자 드물어시각장애인 10명중 1명만 습득교육기관 부족·생활 활용 한계'일상의 글자로 정착' 해외 취재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98주년이 됐습니다.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1888~1963) 선생은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송암은 1913년 특수교육기관이었던 '제생원'의 맹아부(현 국립서울맹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으며 시각장애인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국내 첫 점자 교과서(일본식 점자)도 송암이 만들었죠. 시각장애인 제자들이 일본식 점자로 글을 읽고 배우는 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송암은 1921년 조선맹아협회를 조직했어요. 1926년 11월4일, 우리나라 최초 6점식 점자 '훈맹정음'은 그렇게 반포됐습니다.한글 점자는 세로 3점, 가로 2점 등 모두 6개 점 중 일부를 찍는 방식으로 문자를 만듭니다. 기본적으론 초성·중성·종성에 위치한 자모음을 풀어씁니다. 예를 들어 '점자'는 점형(점자 모양) 1개로 'ㅈ' 'ㅓ' 'ㅁ' 'ㅈ' 'ㅏ' 등 자모음을 1개씩 풀어서 나타냅니다. 초성과 받침(종성)으로 쓰이는 자음은 구분해 씁니다. 또 점자 초성의 'ㅇ'은 표기하지 않습니다.박두성 선생은 점자 읽기와 쓰기 속도를 높이고, 문장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자주 쓰이는 약자와 약어도 별도로 표기하기로 정했어요. 한글 점자에는 27개 약자와 7개 약어가 있습니다.훈맹정음은 2020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어요. 인천 미추홀구 송암점자도서관 내 박두성 기념관에는 훈맹정음을 만들 때 사용했던 한글 점자 타자기, 한글 점자 설명서 등 관련 유물과 점자 책 초판 등이 전시돼 있어요.1936년 인천영화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 회람지 '촉불'(1945)을 발행하는 등 1963년 인천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시각장애인을 위해 일생을 보냈죠. 인천 강화군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