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

  •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下)] 해외 사례서 찾은 방향성은?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下)] 해외 사례서 찾은 방향성은? 지면기사

    정부는 '처벌'에 중점을 둔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노동자 사망률을 현저히 줄이지 못했다고 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1년 산재사고로 1만명당 0.43명이 숨졌는데, 중처법 시행 이후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음에도 여전히 0.4~0.5명이 숨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정부는 현행 중처법을 '예방' 위주로 개선하기 위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만들어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만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존의 행정 규제, 처벌 위주에서 벗어나 기업 스스로 예방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예방' 위주 개선 로드맵 발표유족 우려·5인미만 예외 맹점 지적"적극적 법 해석에 달렸다" 시각도 노동계를 비롯한 중대 재해 유족들은 현행법으로도 제대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는 상황을 떠올리며 '예방' 위주로만 재편되는 개정안에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중처법 시행 이후 1호 사건이던 양주시의 '삼표 산업 채석장 붕괴사건'도 1년여째 기소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예외라는 부분 역시 여전히 맹점으로 지적된다. 한규협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중처법 시행 뒤에도 중대재해가 줄지 않았는데 법을 개정해 사고를 예방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더욱이 고용부 개정안의 참고 사례로 언급된 영국도 결국에는 '처벌' 성격을 보완하도록 법을 개정한 바 있다. 영국은 1974년 '보건안전법' 제정을 산업재해 감독기관인 보건안전청을 설립하고 검찰처럼 경영자에 대한 기소권을 갖는 등 막강한 예방 조치를 일찌감치 마련했다. 하지만 34년 뒤인 2008년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기업살인법)을 시행했다. 이는 경영자 개인을 넘어 기업과 법인 단위에게 범죄 책임을 부과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벌금 상한선도 없어 고용부가 제안하는 자율규제는 물론 현 중처법의 수위보다 훨씬 높은 처벌이 가능한 법안이다. 고용부는 선진국이 자율규제에

  •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下)] 같은 현실, 다른 해석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下)] 같은 현실, 다른 해석 지면기사

    "죽음에도 차별이 있나요?"지난 2020년 12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단식 농성에 나섰던 고(故) 김태규씨의 유족 김도현씨가 한 말이다. 도현씨는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이한빛씨 아버지와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제정에 앞장서왔다. 재계 논리 받아들여 법 개정 추진노동계 "시행착오 기간 필요" 주장유족을 중심으로 시민 사회의 연대가 이어졌다. 특히 산재사망 외에도 대구 지하철·세월호·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모여 중처법 발의로 이어졌다. 중처법 제정운동본부는 지난 2020년 9월 국민동의 청원 기준인 10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으로 지난 2021년 1월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적 266인 중 찬성 164인, 반대 44인, 기권 58표였다. 중처법은 지난해 1월27일 시행됐다. 이 법은 중대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하도록 한다. 그러나 중처법을 시행한 뒤에도 산재사고로 숨진 이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1~9월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510명으로, 1년 전(502명)보다 8명 늘었다. 이 같은 수치를 두고 노동계와 재계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노동계는 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시행착오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재계는 처벌만이 능사는 아닌 만큼 법 개정으로 사고 예방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정부는 재계 논리를 사실상 그대로 받아들여 최근 중처법 개정에 착수했다. 그러는 사이 현장 노동자 중 일부는 중처법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평택항에서 이동식 크레인(TC) 운전 업무를 하는 김모씨는 "항만 작업은 여러 하청 업체가 일을 분업하는 형태인데 사고나 안전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가리는 게 애매하다. 따로 안전지도를 한다고 하지만 위험한 현장이 발견돼도 본청이 따로 있으니 반영되기 어렵고 처우도 부

  •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中)] 막을 수 있는 추락, 못 막는 사이 법은 '유명무실'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中)] 막을 수 있는 추락, 못 막는 사이 법은 '유명무실' 지면기사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시행된 1년 동안 경기도·인천지역에서 중대산업재해로 82명이 숨졌다. 반면 중대재해로 안전 관리 책임자가 법정에 선 경우는 단 3건이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이학영(군포)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경기도·인천의 중처법 사고 75건 중 22건(29%)은 추락(떨어짐)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끼임(17건), 맞음(11건), 깔림(6건) 등이 뒤를 이었다중처법 1호인 '양주 채석장 사고'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해 1월29일 채석장 하부에서 천공 작업을 하던 노동자 3명이 20m 높이에서 무너져 내린 토사에 매몰 돼 숨진 사고로 중처법 시행 3일 만에 벌어진 일이지만, 경찰은 지난해 6월에야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현장소장, 안전과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해 2월8일에는 성남시 수정구의 한 신축건물 공사 현장에서 승강기 위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2명이 숨졌고, 8일 뒤에도 평택에서 캐노피 상부에서 우수받이를 설치하던 중 1명이 추락사했다. 올해 1월 초까지도 세 사건 모두 수사 단계에 머물러있다. 중처법 대상 75건의 사건 중 고용노동부에서 검찰에 송치한 건 8건(10.6%)이고 실제 기소된 사례는 3건(4%)이었다. 3건은 경기 북부·인천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런 결과는 법 시행 첫해의 시행착오라고만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대상 75건 중 검찰 송치 사례 8건'산안법보다 난해' 기소 미미 원인'비용 절감' 예방 안한 사례 최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수사보다 난이도가 높고 수사 범위가 넓은 게 중처법으로 기소까지 이어지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경영 책임자를 특정하고 사업주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필사적으로 무죄를 입증하려는 사측과 이미 사망한 노동자 측의 힘의 균형이 붕괴돼 법이 유명무실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노동계의 평가다.고용노동부 경기지청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수사는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수사보다 난도가 높고, 수사 범위가 넓어 다소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며

  •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中)] 사고현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中)] 사고현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면기사

    자욱이 안개가 낀 지난 13일 오후 평택항. 끝이 안 보이는 축구장 35개(28만㎡) 넓이 항만에 형형색색 컨테이너 수백 개가 포진해 있다. 그 사이로 중장비들이 굉음을 내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6층 높이 이동식 크레인(TC)이 하나에 20t가량인 컨테이너들을 천천히 옮기고 있다. 2년 전 선호씨는 이 중 300kg 가량의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이곳에서 만난 50대 남성 김모씨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TC 운전을 10년째 하고 있다. TC는 마치 '움직이는 아파트'와 같은 모양새로 수십 t의 컨테이너를 나르는 만큼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김씨는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많다고 토로한다.이선호씨 숨진 평택항 컨 작업장"사람 부족해 10명할 일 8명 소화"한 달전에도 거대장비 충돌 아찔그는 "평소에는 사람이 부족해서 10명이 운행할 것을 8명이 소화할 때도 있다. 야간에는 주간보다 물류 반입량이 적어서 한 명이 한 대를 연달아서 운행하라고 지시받는다"고 말했다. 당국의 안전 점검은 잦아졌지만, 현장에서 발견되는 위험 요소들은 여전히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김씨는 "단속 기간에나 조심하라는 지시가 나오지, 현장은 늘 똑같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했다.겨우내 폭설로 항만에도 눈이 쌓이면서 경로마다 미끄럼 구간이 생겼다. 제설작업자들이 화물차량 운반 경로 중심으로 눈을 치웠지만, 정작 TC 같은 중장비들이 이동하는 경로는 방치하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한 달 전에는 커다란 장비가 펜스에 충돌하는 아찔한 일도 벌어졌다. 상흔은 온데간데없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재건'에 성공한 곳도 있다. 이날 오후 이천시 모가면의 한익스프레스 남이천저온2센터는 화물을 실은 대형 트레일러와 팔레트를 짊어진 지게차가 바쁘게 오갔다. 막혀 있던 대피로, 우레탄폼 근처에서 튀던 용접불꽃 등 재해 원인이 곳곳에 퍼져있던 장소는 이제 화물 상·하차가 이뤄지는 도크 9개가 자리 잡은 대규모 신축 건물이 됐다.이곳 물류창고 인근에서 만난 한 노동자가 어느 5층 건물을

  •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上)] 평택항 이선호씨 사망사고 그 후…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上)] 평택항 이선호씨 사망사고 그 후… 지면기사

    이것은 사부곡(思父曲)이자 가슴에 자식을 묻은 아비의 초혼(招魂)이다. 태어남은 일관되게 모두 출생이지만 죽음은 여러 가지로 나뉜다. 이 이야기는 자연사가 아닌 사고사, 그 중 재해로 인한 사망을 다룬다. 더 정확히는 사망이 남기고 간 흔적, 재해 중엔 중대한 재해가 대상이다.지난해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누고 가·나·다, 1·2·3 항목을 들어 사고를 분류했다.이 법이 가리키는 죽음의 갈래는 여럿인데 남은 가족에게 죽음은 '사랑하는 자의 영구한 부재(不在)', 단 하나다. 부재는 너무나 뚜렷해 잊을 수가 없는데 '처벌'은 온데간데없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처벌이 사라지고 재해만 남은 형국이다.이 법의 시행 1년을 맞아 흩어진 부재의 흔적을 좇았다. → 편집자 주 아들과 함께 다닌 식당 찾은 아버지스물셋에 떠난 자식 눈앞에 있는듯"절대로 아빠를 용서말라" 눈시울 돼지국밥 뚝배기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뿌연 김 사이로 9살 선호가 앉아 있다. 깍두기를 올려 밥을 먹으니 순식간에 그릇 바닥이 보였다. "원 녀석아 천천히 좀 먹어라. 누가 안 쫓아와."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지 못했다. 안개처럼 김이 사라지자 앞자리는 부재였다. 그렇다, 선호는 없다. 스물 셋 이선호는 스물 넷이 되지 못했다. 그의 시간은 2021년 4월 22일 오후 4시 10분 평택항에 멈췄다.이재훈(60)씨는 사고가 난 22일 직후에 현장을 두 번 찾았다. 사고 이튿날엔 현장에 흩어진 선호 유품을 찾았다. 사흘 뒤엔 문득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그냥 선호랑 점심 먹던 구내식당에 갔다. 선호는 식판을 앞에 두고 휴대전화를 만지며 점심을 먹곤 했다. 자기는 바람 부는 항만에서 몸 쓰며 일해도 저 밖에서 또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을 테다. 구내식당 주인은 "아버지랑 같이 일하고 아들 참 착하다"며 늘 선호에게 분홍색 캔음료를 줬다.이씨는 선호가 없는 구내식당에서 선호가 먹지 못할 분홍색 캔음료를 두고 말했다. "선호야 절

  •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上)] 죽은 이들이 만든, 사람을 살리는 법

    [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上)] 죽은 이들이 만든, 사람을 살리는 법 지면기사

    ■법률 제정, 영향 준 사건들# 23세 청년, 부두 바닥청소중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희생'평택항 대학생 사망사건'은 지난 2021년 4월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바닥 이물질 청소작업 중 300㎏ 가량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이선호(당시 23세)씨가 숨진 일을 말한다.# 남이천물류창고 신축 현장서 화재로 38명 안타까운 죽음'한익스프레스 38명 사망 사건'은 2020년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남이천물류센터 신축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불이 나 38명이 숨진 사건이다. 사건은 공사현장 지하에서 우레탄 폼 작업과 화물 엘리베이터 설치 용접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며 유증기에 용접불꽃이 튀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파트형공장 공사장, 화물 엘리베이터 폐자재 싣다 추락'수원시 권선구 건설현장 추락사건'은 2019년 4월 10일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아파트형 공장 신축공사현장에서 김태규(당시 26세)씨가 화물 엘리베이터 폐자재 등을 싣는 일을 하다 추락해 숨진 사건이다.이 사건들 자체, 혹은 사건 피해자 유가족 활동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시행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막내아들 물건 방 한칸에 그대로…상실감에 같이 무너진 주변 사람들"합의했다는 미안함에 지옥에 살아"발생 이유 찾아 '인과성 증명' 노력사회적 구조 못바꾸면 재해 되풀이다른 유가족들과 대응 연대 고민도그 일은 사고였을까 사건이었을까.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고'였을리 없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 대신 돈과 효율성을 따져 발생한 일이므로 그 일은 '사건'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이의 영구한 부재는 어느 날 다가오는 운명이 아니라 명백한 인과관계 속에 존재한다.2020년 4월 29일 그 일이 발생한 날,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선 우레탄 폼 마감과 용접작업이 동시에 이뤄졌다. 공사기간을 단축하려 폭발 위험이 큰 두 작업을 함께 한 것이다. 공사 현장에 결로를 막기 위해 대피로는 인위적으로 막혀 있었다. 원인과 이유가 쌓여 아버지 김형주씨를 앗아가는 '사건'이 터졌다.장녀 김선애(43)씨는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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