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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6]한국 국력·위상만큼 세계속 한글 자란다 지면기사
오는 9일은 탄생 560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이제 한글은 한국인만의 글이 아니다. 한글과 한국어를 찾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해외에서 한인 사회가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서 한글과 한국어 역시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되었다. 지구촌 시대가 되면서 해외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강해질수록 계속 확산될 전망이며 한류열풍과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맞물리면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이렇게 한국어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전세계 6천여개 언어중 한국어의 위상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유네스코가 2002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에는 6천528개 언어가 있는데 사용인구의 순서를 살펴보면, 한국어는 11위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어의 언어적 위치는 국내 총생산액(GDP)규모 세계 11위인 국력과 비례하는 수준에까지 와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어가 주목받는 언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글을 세계화하기 위한 더 없이 좋은 조건을 맞은 요즘, 한글을 ‘21세기의 표준문자’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한글은 발음기관을 상형화하였기에 우리말 뿐만이 아니라 어떤 언어라도 표기가 가능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약간의 변형과정만 거친다면 어떤 음운도 과학적으로 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자가 없는 언어에서 한글을 공식적인 문자로 삼고 싶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한글이 음성학적 바탕 위에 이루어져 있어서 어떤 언어에도 잘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재 쓰이는 한국어에 맞게 정비가 되었지만 예전에 쓰이던 글자들과 몇 가지 글자들을 새롭게 만들어 쓰면 현재 발음기호로 많이 쓰고 있는 국제음성기호(IPA: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에 버금가는 기호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한글은 이미 창제 당시부터 세계를 향해 태어난 글자라고도 할 수 있다.한국어가 문법이나 어원에 있어서 유사성이 많은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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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6] "한글, 21세기 문화소통문자 될 것" 지면기사
“21세기에는 한글이 문화소통문자로서 기능할 것입니다.” 문화관광부 산하 재단 법인으로서 한국어(한글)의 해외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영순(64)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주요한 나라에 많은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어서 한글 세계화의 바탕은 마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재외동포들은 잠재적인 한국어 학습자이고 이중언어 사용자가 될 가능성이 높죠. 또 한국에 온 국제결혼자나 해외입양인, 이주노동자 등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응시생의 숫자들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미국에서 한국의 수학능력 시험에 해당하는 SAT2와 일본의 대학입시센터 시험에 한국어가 포함된 것은 향후 한글의 보급이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법. 박 이사장은 한글사설학원이 난립해있는 해외의 현실은 한글 세계화의 역효과를 주고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현지에서 일부 민간단체와 학원이 학습자를 확보하기 위한 과도한 경쟁으로 현지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지나치게 돈을 많이 받고 있어 현지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죠. 수익사업의 수단으로 한글보급을 하다보면 한글이미지 악화로 연결되기에 경계해야 합니다.” 박 이사장은 그래서 한글 세계보급은 ‘국가적·전략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영어마을을 짓는 것처럼 국내외에 ‘한국어 마을’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한국을 알고 싶어 오는 이들을 위한 ‘한국어 마을’을 만들어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한글과 한국문화를 접촉할 수 있게 해준다면, 다른 어느 문자보다 쉬운 체계를 갖고 있는 한글이 ‘21세기 문화소통문자’로서 기능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한국어 마을에서 생활하며 한글을 접하다보면 외국문자라는 선입견도 자연스럽게 타파되고 훨씬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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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5]배우기 쉽고 쓰기도 편해 지면기사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세종대왕의 영도 아래, 한글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이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단순한(the best and the simplest) 글자라고 인정되고 있다. 이 24개의 부호가 조합될 때, 그것은 인간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세종 대왕과 그의 학자들이 한국 것은 물론이려니와 많은 외국의 문헌을 연구하여 음운론의 원칙을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세종은 천부의 재능의 깊이와 다양성에 있어서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할 수 있다.” -펄 벅,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의 서문 중.한국인이 제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것 하나만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꼽을 것이다. 간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국보 1호로 새롭게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한글에 대한 이런 자부심에는 넉넉한 근거가 있다. 한글은 `과학과 휴머니즘'이라는 대척점에 있는 두 개념을 모두 껴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한글은 본격화될 ‘음성인식’ 시대에 유리한 글자로 꼽힌다. 글자와 소리가 1 대 1 대응하는 특성 덕분에 음성인식률이 다른 문자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글은 한가지 문자가 한가지 발음으로만 소리난다. 영어의 ‘a’는 때에 따라 ‘아’ ‘어’ ‘애’ 등으로 발음되지만 한글 모음 `ㅏ’는 언제나 ‘아’로 소리난다. 인쇄체와 필기체,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분도 없다. 문맹률이 0%에 가깝고 독서 장애가 드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낮은 문맹률은 높은 교육 수준과 양질의 노동력으로 이어진다. 한글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는 해석은 비약이 아니다. 정치적 민주화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맹률이 높아 지식과 정보가 특정계층에 집중되고 나머지가 소외되면 민주주의 담론의 확산은 느릴 수밖에 없다.또 한글은 ‘IT강국 대한민국’의 튼튼한 날개이기도 하다. 지하철을 타면 수많은 청소년들이 휴대전화 화면에 코를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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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5] "읽기·쓰기 쉬운 한글 21세기 표준문자 적합" 지면기사
“한글은 쓰기와 읽기가 쉬워서 외국인들에게 무척 친근한 문자입니다.” 작년 9월에 한국으로 온 태국인 쏭 칸(38·화성시 봉담읍)씨. 지난해 12월부터 천주교 수원교구 이주사목국 `엠마우스'에서 1주일에 1번씩 한국어와 한글을 공부하고 있다. 짧은 한국어(한글) 수학기간에 비해 한글의 가독(可讀)수준은 우리나라 초등교재를 읽을만큼 발전한 상태. 쏭 칸씨는 이를 한글의 우수성에서 찾았다. “한글은 누가 보아도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모음은 반드시 가운데, 또는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죠. 한글은 또 소리나는 단위가 음절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활용, 한 자 한 자에 자모를 붙여 놓아 소리 단위를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쏭 칸씨는 또 태국글자(파싸타이)가 자음 44자, 모음 30자로 이뤄지는 데 반해 한글은 불과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만으로 수많은 글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며, 한글이 21세기 표준문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태국어는 5성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글자자체에 표시가 되어있죠. 하지만 한글은 높낮이와 길이가 글자 자체에 포함돼 있지 않아 세계 여러말을 표기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쏭 칸씨는 한글을 배울 때 뜻파악과 작문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글단어 하나하나는 잘 알 수 있지만 전체를 쭉 나열했을 때 뜻의 파악이 어렵습니다. 이는 한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어' 습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실력 향상이 눈에 띄게 보이니까 한글 공부가 정말 즐겁습니다. 앞으로 한글 공부를 꾸준히 해서 다른 외국인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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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4]부활한 히브리 문자 지면기사
이스라엘의 국어는 히브리어(문자)다.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의 기저에는 사실 유대인들의 피와 땀이 녹아들어 있다. 유대인들이 AD 70년이후 2천년간 나라 없이 전세계에 흩어져 유랑생활을 하면서 히브리어는 점점 사멸의 수순을 거쳤다. 히브리어는 성서, 랍비의 저술, 격식을 갖춘 기도 등을 통해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승되었지만 19세기에는 이러한 상황들 이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던 해에 사라졌던 히브리어가 다시 등장하는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히브리어는 이제는 한 나라의 국어로서 아마도 300만명 이상의 거의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사용하는 모국어가 되었다. 인위적으로 문자와 언어를 되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이 그 모든 것을 감수했던 것은 그만큼 ‘히브리어(문자) 부활 프로젝트’가 유대인들에게 중요하고, 또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는 단순히 말을 기록하는 도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유대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표지판의 역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취재진이 이스라엘에 머물동안 목격한 도시의 표지판은 모두 히브리 문자로 적혀 있었고, 그 밑에 영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1919~1948년,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통치하에 있었던 때에는 영어가 위에 오고 아랍어·히브리어가 차례대로 쓰였고, 요르단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는 아랍어·영어 순으로 쓰여진 표지판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요르단이 정치적으로 우세했음을 의미했으며, 히브리어를 없앤 것은 사실상 유대인들의 주장이 아무런 정통성도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이 1967년에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그들도 3개 국어로 된 표지판을 세웠다. 이번에는 히브리어가 위에 오고, 아랍어·영어가 밑에 왔다. 1984년경부터 유대인 지역에서는 도로 표지판에 적혀있는 아랍어를 페인트로 칠하거나 아예 벗겨버리거나 아랍어가 보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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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4] 인터뷰/로이트만 이스라엘 박물관 사해사본 보관소장 지면기사
“히브리 문자는 유대인들의 정체성이었습니다” 로이트만 박사는 아르헨티나계 유대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히브리 문자를 쓰지도 못하고 뜻도 몰랐지만, 히브리 문자를 소리내어 읽을 줄은 알았다고 말했다. 바로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어릴적 아버지는 내게 (유대교) 기도문을 읽도록 항상 시키곤 하셨습니다. 바로 그 기도문이 히브리 문자로 쓰여져 있었죠. 어릴적부터 받은 훈련으로 사실 뜻도 모른채 기계적으로 읽기만 했지만, 그것이 나를 포함한 유대인 어린이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준 것은 확실합니다.” 그는 로마에 의해 국가를 빼앗기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성전과 왕도 없이 히브리어를 지킨 것은 유대인의 언어 자체가 유대교로 대표되는 ‘유대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히브리어는 지역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각 디아스포라(Diaspora·이스라엘 지역 바깥으로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 구성원들은 히브리어를 통해 유대인을 ‘만들어’냈습니다. 히브리어가 민족을 유지시키는 주요 역할(Key role)을 담당했던 셈이죠.” 실제로 BC3~AD1세기 중반까지 고대 히브리어로 쓰인 문서 대부분은 종교문서였으며 그 대표격인 사해문서의 경우 80%가 히브리어, 15%가 아람어, 4~5%만이 그리스어로 이뤄져 있다고 로이트만 박사는 설명했다. “이는 중요한 점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히브리어가 그 당시를 지배하는 외국 문물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죠. 바로 히브리어 자체가 유대인들을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히브리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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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표준문자 '한글'·3]'문화의 힘'에 굴복당하다 지면기사
3.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필경사(筆耕士)들은 진흙판에 한쪽 끝이 뾰족한 갈대를 이용하여 신에 대한 찬송, 고대의 예언, 문학자료 등을 오랜 시간에 걸쳐 열심히 `그려'넣곤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이 쓴 문자를 읽어내는 것은 당시에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호를 쓸줄 아는 사람, 그리고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기호의 의미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기술이었다. 이 때문에 바빌로니아나 아시리아의 필경사는 독립된 계급을 형성했고, 때로는 글자를 모르는 궁신이나 심지어 왕보다도 더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들이 쓴 그림(문자)들은 주로 쐐기 꼴을 하고 있었는데, 이 특징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문자를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 쐐기문자)라고 부른다. 설형문자는 문자를 발견한 수메르인의 언어 뿐 아니라 다른 언어들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수도를 수사(오늘날의 이란)에 두고 있던 엘람인이 사용한 엘람어도 설형문자로 기록되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BC 1400~1200년에 강성한 문화를 형성했던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터키)의 히타이트족도 설형문자를 채택하여 널리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명된 설형문자 체계는 BC 3000~BC 1000년에 남쪽으로는 팔레스타인,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아르메니아 지역에서는 카난어와 우라르티아어를 기록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중동지역의 여러 부족국가들이 설형문자 체계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 시대의 역사적 비밀을 파헤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설형문자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현재 설형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역사속에 완전히 묻힌 셈이다. 취재진이 방문한 에블라(Ebla)에도 수메르 문자의 자취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에블라는 BC 2700년~BC 2240년까지 시리아의 알레포 남서쪽 53km 지점에 있었던 고대 도시국가다. 1970년대 중반에 설형문자가 새겨진 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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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3] "문자 지키려하지않으면 힘센 문명에 잃을수도" 지면기사
“문자는 강력한 외세의 문화에 휘둘려 잊혀지거나 대중성 획득에 실패, 경쟁력을 상실해 없어지기도 합니다. 설형문자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돼 결국 죽은 문자가 되고 말았죠.” 이스라엘에 위치해 있는 바이블랜드 박물관에 수석 큐레이터로 근무중인 설형문자 전문가 조안 구드닉 웨스턴홀츠 박사는 “알렉산더의 침입 후 그리스어(문자)가 점령층의 언어(문자)가 되면서 사람들은 출세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문자를 배워야만 했으며 그러면서 점차 그리스문화에 동화되고 설형문자를 잊어갔을 것”이라며 “자기 문자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없으면 결국 힘센 문명에 파묻혀 문자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설형문자가 ‘문명의 희생양’으로만 그려지는 것을 경계했다. 설형문자는 그리스 문자의 우수성에 스스로 도태되어 자취를 감췄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 “그리스문자에는 설형문자에는 없는 ‘모음’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소리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도 누구나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며 “대중들이 이 같은 매력을 떨쳐가면서까지 설형문자를 지켜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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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2] 대중교육·기록성 부적합 학자들만의 전유물 전락 지면기사
“나일강 물을 먹은 자, 나일강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라는 이집트 속담이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을 연결하는 지중해와 홍해 사이에 자리잡은 이집트는 앞의 속담과 같이 이집트를 거쳐간 여행자를 다시 불러올 정도로, 다양한 매력과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을 간직한 나라임은 분명하다.이집트 하면 흔히들 나일강의 기적과 불가사의한 나라, 4대 인류문명의 발상지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흔히 사람들은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라오, 투탕카맨, 람세스 2세, 클레오파트라, 신전 등 역사적인 코드를 연상한다. 5천년이라는 세월의 역사와 히스토리, 방대한 스케일이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둘러싸인 이집트는 또한 아름다운 상형문자 히에로클리프(hieroglyph)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원래 인간은 손가락을 움직여서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예로서 동굴벽화라든지 돌이나 점토판 따위에 새긴 그림 등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림은 결국 그림에 불과할 뿐이며 문자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간단한 도형이나 매듭 등 일정한 약속으로서 어떤 사실을 표시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추측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그림문자’. 이집트 히에로글리프 역시 전형적인 그림문자라 할 수 있다.취재진이 방문했던 이집트 남부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과 이집트 신전의 벽, 무덤의 내벽에는 여지없이 온갖 형형색색의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어 고대 이집트의 수많은 신들을 칭송하고 있었다. 이집트인은 토트신이 문자를 발명하여 인간에게 선물로 주었으며, 상형문자는 신의 계시로 만들어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문자는 일반인들이 알아볼 수도, 쓸 수도 없게끔 성스럽게 표현되었다.이집트 문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문자의 수가 거의 외울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이집트 문자의 초기 형태를 보면 문자 그 자체가 언어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문자체계를 표어문자(表語文字, 한 문자가 하나의 단어가 되는 문자)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 문자는 원래 1어 1자가 원칙이었으므로 말(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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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표준문자 '한글'·2] ■ 상형문자란? 지면기사
문자는 보통 딱딱하고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다. 하지만 상형문자는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인간의 머리, 새, 동물, 식물, 꽃-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시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이집트 문자가 5천년이 지나서까지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유다. 고대 이집트인의 문자체계를 가리키는 상형문자(hieroglyph:그리스어 hieros와 gluphien에서 유래한 것으로 hieros는 ‘신성’, gluphien은 ‘새기다’라는 뜻)는 실제로 신들의 글자를 가리켰다.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로 쓴 기록은 BC 3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상형문자가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그보다 먼저였을 것이다. 이 문자는 이집트가 로마인의 지배를 받던 서기 390년까지 별 변화가 없었다. 그렇지만 몇 세기동안 사용기호가 약 750개에서 5천개 정도로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상형문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을 수 있는데, 앞에 놓인 사람이나 새의 머리 방향으로 문장의 방향을 지시했다. 글씨를 읽는 사람들도 같은 방향으로 눈을 굴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늘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기념비나 신전의 벽이 오시리스나 아누비스 같은 중요한 신이나 파라오의 조상(彫像) 바로 옆에 위치하면 문장의 앞에 놓인 인간이나 새의 얼굴은 그 조상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이렇게 되면 읽기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어 문장의 해독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상형문자는 또한 밑에서 위로 쓸 수도 있었고 좌우로 1행씩 교대하는 좌우 교대서식으로 쓸 수도 있었다. 이 서식은 부스트로페돈(boustrophedon)이라고 하는데 소가 밭을 갈 때 좌우로 방향을 바꾸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이 단어는 그리스어 bous와 strephein의 합성어로 앞의 것은 ‘소’, 뒤의 것은 ‘방향을 바꾸다’라는 뜻).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