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주하는 역사 철도·23]남기고 싶은 이야기-철도박물관에 가다

    [질주하는 역사 철도·23]남기고 싶은 이야기-철도박물관에 가다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사진┃철도박물관 손길신 관장 제공]기억이란 무엇인가.뇌과학의 관점에서 이는 기억을 관장하는 중추인 해마의 작용이거나 뉴런들 간의 연결방식 같은 세포와 신경전달물질의 작동이겠지만, 인문학의 관점에서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된 핵심 사안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나'와 성인이 된 이후의 '나'는 분명 같지 않다. 아니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나를 하나로 연결하여 '나'라는 동일성에 대한 감각, 곧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인간을 기억하는 존재(Homo Memorius)로 보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억은 균질적이지 않고, 불친절하며, 또한 정치적이다. 같은 사건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어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하며,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나치즘, 한국전쟁, 5·18민주화운동 등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집단기억은 투표나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문학이 기억을 예술화하고 역사는 기록하는 반면, 박물관은 기억을 보관하고 전시한다.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봄기운이 완연한 화요일 오후. 한국철도의 기억의 저장고 의왕시 월암동의 한국철도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 1호선 의왕역(옛 부곡역)에는 한국철도대학·철도기술연구원·화물터미널·철도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으니 가히 철도타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철도타운의 원조는 사실 인천이었다. 한국철도사의 서막을 연 경인선을 비롯하여 철도 관련 전문 인력을 키워낸 최초의 교육기관인 철도이원양성소가 1905년 5월 28일 제물포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1907년 11월 8일 용산으로 옮겨갔고, 종래에는 철도종사원교습소로 경성철도학교로 발전하면서 결국 현재 한국철도대학으로 발전하였으니 경인선(제물포)은 한국철도교육의 산실이기도 했던 것이다. 철도를 대상으로 한 만큼 철도박물관이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오해다. 오히려 이곳은 내 안의 '어린이'를 일깨우는 추억의 사진첩이요, 그 때 그 시절을 적적성성(寂寂惺惺)하게

  • [질주하는 역사 철도·22]남기고 싶은 이야기 - 탐정소설과 철도

    [질주하는 역사 철도·22]남기고 싶은 이야기 - 탐정소설과 철도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철도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국경을 허물면서 육상교통의 총아로 떠오르던 19세기 중반. 아메리칸 드림은 인류의 나이트메어(nightmare)라고 부르짖던 괴이한 작가가 특이한 소설 한 편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런 형식의 소설은 철도 레일을 따라 전국으로, 세계로 퍼져나갔다. 1841년에 발표된 세계 최초의 탐정소설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의 단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이야기다.소설과 신문과 잡지 등이 미디어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인쇄산업의 발달과 철도와 같은 전국적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를 단일한 네트워크로 묶어내고 시공의 단축이라는 놀라운 생활혁명을 이룩한 철도지만 단점도 적지 않았다. 바로 권태와 지루함이었다. 장거리 승객들은 편리함을 얻은 대신 긴 열차여행이 주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에 직면해야 했다. 그런 지루함과 단조로움을 재빨리 산업화하여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장르가 추리소설이다. 정교한 논리로 퍼즐이 깔끔하게 해결되는 범죄와 추리의 이야기에 승객들은 열광했다. 탐정소설이 철도문학으로 연착륙하는 순간이었다. 철도는 추리소설 같은 신생 장르문학들의 인큐베이터였다.추리소설은 많은 하위장르들과 별칭을 갖고 있다. 탐정소설·경찰소설·미스터리·하드보일드·스파이소설 등등. 복잡한 설명들은 쳐내고 간단하게 말하면 탐정소설은 영국과 미국에서, 그리고 경찰소설은 프랑스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다. 터프한 탐정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와 냉전시대를 반영하는 스파이소설은 추리소설 장르가 현대에 와서 분화, 발전된 것이다. 현대에는 워낙 다양하고 복잡한 형식의 이야기들이 많이 출현하자 이들 장르를 통칭하는 장르명으로 미스터리 혹은 추리소설이라 부르게 됐다. 참고로 근대 이후에 사용하는 우리 근대어의 대부분이 그렇듯 탐정소설은 디텍티브 픽션의, 추리소설은 미스터리의 일본식 번역어로 이를 차용한 것이다.우리의 토종 추리소설은 포의 작품보다 꼭 67년 늦은 1908년에 출현하였다. 한글신문 '제국신문'에 연재된 이해조의 '쌍옥적'이 그것이다. 아쉽게도 신소설

  • [질주하는 역사 철도·21]남기고 싶은 이야기 - 경인선의 이모저모

    [질주하는 역사 철도·21]남기고 싶은 이야기 - 경인선의 이모저모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걸음이 문제를 해결한다." 아우구스투스의 말이다. 초대 황제로서 제정로마 시대를 열고 자신이 태어난 8월에 오거스트란 이름을 붙인 절대권력 옥타비아누스만큼 걷기의 효용과 위력을 날카롭게 꿰뚫은 이도 드물다. 걷기는 가장 완벽한 운동으로 신진대사를 돕고 두뇌에도 좋은 최고의 건뇌술(健腦術)이라 한다. 모든 문제들로부터 일정한 거리와 심리적 간격을 만들어냄으로써 통찰력과 지혜와 여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불교의 행선(行禪)과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동산을 산책하면서 강의한 데서 유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peripatein),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와 소설가 박태원의 구보 등 유명 학파와 작가들이 모두 걷기와 관련 있다. 오늘은 경인선을 화제의 중심에 올려 놓고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걷기'를 해 볼 참이다. 주요 거점역들을 중심으로 경인선과 수인선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는 공간이동 방식에서 벗어나 대략의 흐름만 유지한 채 자유기술화법으로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인선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철도가 경인선이고, 철도의 날이 경인선 개통식이 열린 1899년 9월 18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렇다면 경인선 철도의 기공식이 거행된 곳은 어디인가? 우각리, 지금의 수도권 전철 1호선 도원역 근방이다. 그러면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장사꾼 제임스 모스가 1897년 3월 22일 다른 장소도 아닌 우각리에서 전격적으로 기공식을 거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존의 철도사와 연구서에서 여기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은 없고 그저 이를 우연적인 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대한 의문은 우연한 산책길에 얻은 생각 하나에서 풀려나갔다. 한국철도사, 특히 경인선과 수인선을 산책의 의제로 삼고, 동네 공원과 천변을 거닐던 중 문득 의왕의 철도박물관이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10일 부평역 연재를 끝내고, 한참 부천역 관련 원고를 쓰다말고 내친 김에 한국철도박물관을 찾았다. 한 지상파 방송국과 긴 인터뷰를

  • [질주하는 역사 철도·20]남기고 싶은 이야기 - 철도는 문화

    [질주하는 역사 철도·20]남기고 싶은 이야기 - 철도는 문화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철도와 문화는 아직 살짝 낯설다. 철도는 교통수단이며 기계일 따름이지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철도는 대체로 희뿌연 증기를 내뿜으며 질주하는 기관차, 통근열차와 수도권 전철, MT갈 때 타던 경춘선 등 몇 개의 이미지로 고착화돼 있다."할아버지의 시대는 경제를, 아버지의 시대는 정치를, 그리고 자식의 시대가 되면 문화를 생각한다"는 토마스 만(1875~1955)의 말대로 어느새 우리도 경제개발시대와 민주화운동시대를 거쳐 문화시대를 맞이하였다. 당연한 말이다. 맹자의 말대로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기고, 먹고 살만해야 삶의 여유와 마음의 풍요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레포츠·한류·문화콘텐츠산업 등 문화담론들이 차고 넘치는 이 문화의 세기에 철도문화란 무엇이고, 어떤 문화가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문화는 수많은 정의를 지닌 악명 높은 개념이다. 문화가 농업과 경작에서 파생되어 나왔다는 어원학적 설명에서 '삶의 총체적 양식(the whole way of life)'라는 문화유물론의 명제에 이르기까지 그 정의만 해도 200여개가 넘는다. 요리에 대한 백 마디 말이 단 한번 시식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문화에 대한 수백마디의 설명보다 직접 피부에 와닿는 생활 속의 사례가 있어야 할 터이다.패션문화가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예를 들어 번잡하고 불편한 속옷들로부터 20세기 여성들을 해방시켜 주고 그들에게 몸의 자유와 아름다움을 선사한 가브리엘 샤넬의 새로운 패션문화야말로 여권신장에 기여한 생활혁명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제는 그 선구성과 역사성은 없고 그저 고가의 브랜드로만 남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철도의 등장은 여행 문화와 패턴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에 속박돼 있었던 인류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일거에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특히 범선과 무역이 주도하던 상업자본주의와 해양교통시대를 마감하고 육상교통시대와 산업자본주의 시대로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견인차가 바로 철도였기 때문이다. 철도를

  • [질주하는 역사 철도·19]'수인선의 데누망' 수인역

    [질주하는 역사 철도·19]'수인선의 데누망' 수인역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수인선은 드라마 같다. 아름다운 장면들과 이야기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 또 플롯도 있다. 수원역과 수인역이 발단이자 대단원이라면, 야목역과 군자역은 전개요 소래역은 절정이다. 해변과 소나무 숲이 일품인 송도역은 지나간 소래포구의 풍경이 못내 아쉬운 관객을 위해서 한 차례 더 되풀이하는 유사유추반복(pseudo-iteratif)이다. 차창 밖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들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와 대화도 있는, 모두가 주인공이었고 모두가 관객이었던 작은 대하드라마였다. 수인역은 사람과 사람이, 이웃과 이웃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소통하며 물정과 시국을 걱정하던 작은 광장이었다. 꼬마기차 수인선이 만든 이곳은 한동안 경기-인천의 아고라였던 셈이다. 야목리 쌀과 군자 천일염과 소래 방게와 동죽이 한데 모여 매일같이 작은 장터가 열리고, 경기도의 민심과 이야기들이 모여들던 곳. 이렇게 한 편의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또 다른 이야기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수인역은 꼬마열차가 연출한 드라마의 대단원(denouement), 곧 수인선의 데누망이다.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를 앞둔 겨울의 끝자락 신흥동 수인역을 찾았다. 수인역이 있는 신흥동은 1914년부터 화정(花町)이라 하다가 해방 후에 새롭게 발전하고 부흥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천에는 이름을 세 개나 가진 역이 두 개 있다. 축현역·상인천역으로 불리던 동인천역과 인천항역·남인천역으로 불리던 수인역이 그렇다. 1937년 개통 당시 수인역의 본래 이름은, 여주·이천 쌀과 군자·소래의 소금 수탈이라는 부설 목적이 반영되어 인천항역으로 명명됐었다. 그러다가 1946년 수인선이 국철로 흡수, 통합되면서 일제 때의 이름을 버리고 남인천역으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승객들은 남인천역 대신 수인역으로 부르면서 이것이 공식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열차 노선이 하나 더 있다. 1957년 9월에 착공하여 1959년 5월에 준공된 3.8㎞의 화물 전용 노선 주인선이다. 주인선은 화물운송의 편의

  • [질주하는 역사 철도·18]송도역, 일제때 지워진 아름다운 이름

    [질주하는 역사 철도·18]송도역, 일제때 지워진 아름다운 이름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언어는 사회의 풍향계다. 한파·무상급식·구제역·4대강·UDT·스티브 잡스·박지성 등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주요 검색어들을 포함한 최근의 유행어들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관심사와 환부와 열망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언어는 역사적이다. 인간이 쓰는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자 자의적이기에 기원을 알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지만, 기원과 유래가 분명한 것들도 있다. 조선시대 궁중어의 상당수가 몽골에서 왔다고 한다. 고려시대 왕실은 정략혼으로 인해 몽골어와 풍습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는데, 조선 왕실에서 고려왕실의 언어를 그대로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가령 임금님의 밥상을 뜻하는 '수라' 등이 그렇다. 참고로 황제를 뜻하는 독일어 '카이저'나 러시아어 '짜르'도 제정 로마를 이끈 '시저(Caeser)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당연히 철도의 등장과 함께 출현한 단어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쓰는 외래어 트레이닝·트레이닝복·트레이너 등은 모두 기차를 뜻하는 트레인(Train)에서 나왔다. 훈련과 교습이란 뜻을 지닌 트레이닝은 기차(Train)에 '-ing'를 붙인 말로 지도자가 정해진 목적지까지 사람들을 인도한다는 의미다. 트레이닝의 유의어인 코칭도 마차를 뜻하는 헝가리어 코치(coach)에서 나온 것으로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모셔다 드린다는 뜻에서 나왔다. 다만, 트레이닝이라는 말에는 엄격하고 기계적이며 일방적이라는 의미가, 코칭이란 말에는 유연하고 개인적이며 헌신적인 서비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철도의 등장은 일상생활과 지도와 언어생활에까지 영향을 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으며, 지역과 역사를 지우고 백성을 시민으로 트레이닝시킨 강압적인 훈육관 곧 근대의 트레이너였다. 그래도 수인선만큼은 다른 철도에 비해 덜 위압적인 서민들의 친근한 벗이었다. 수인선의 열여섯 번째 정거장 송도역은 1973년 7월 1일 송도~남인천간의 궤도 5.1㎞가 철거되면서 20년가량 수인선 종착역의 역할을 하였다. 장손을 대신한 계자(系子

  • [질주하는 역사 철도·17]'철도와 자연이 그린 풍경화' 소래역

    [질주하는 역사 철도·17]'철도와 자연이 그린 풍경화' 소래역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사리가 문학적이고 일리가 지적이라면, 소래는 낭만적이다. 소래포구는 일단 포스가 다르다. 우선 해풍이 들려주는 노래와 속삭이듯 다가오는 풍경이 발길을 멈춰 세운다. 저녁노을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낡은 철교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어선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허기가 느껴진다. 가슴 속에 있지만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옛 추억처럼 가져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공복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여기는 수인선 소래역이다.철도의 등장은 이전까지 인간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이었다. 열차가 질주하면서 시시각각으로 펼쳐지는 차창 밖의 파노라마와 터널과 교량들이 전에 없었던 새로운 산업적 풍경을 만들어내며 우리의 감각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소래도 그렇다. 찰스 실러(Charles Sheeler)가 말한 테크노스케이프(Technoscape), 이른바 공업기술풍경이 바로 이 것 아니겠는가.소래역은 테크노스케이프이긴 하되, 자연과 철도가 함께 빚어낸 합작 풍경화다. 이 그림 속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이곳에서는 청년시절의 뜨거운 열정이 살아날 것 같기도 하고, 만인의 지탄을 받지 않을 수준에서의 가벼운 일탈 정도는 허용이 될 것도 같다. 잊고 지냈거나 잃었던 내 안의 낭만적 충동을 일깨우며, 현실인식을 잠시 무중력 상태에 빠뜨릴 정도로 소래의 풍경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이곳에 서면 일흔의 나이에 가정부 소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열렬한 사랑 고백을 했고 극심한 좌절 끝에 가스를 틀어놓고 생을 마감했다는 야사를 남긴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젊음에 대한 사랑, 잃어버린 열정에 대한 전도된 그리움 같은 것. 연인 소피 폰 퀸의 환영을 쫓으며 그녀의 무덤 앞에서 밤새 적포도주를 마시고 취하길 반복하다가 불후의 로망스 '밤의 찬가'를 남긴 노발리스(Novalis, 1772~1801)의 열정과 광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윤후명의 장편소설 '협궤열차'나 단편소설 '협궤열차에 대한 보고

  • [질주하는 역사 철도·16]철로 위에 새겨진 기억들 : 고잔역에서 군자역까지

    [질주하는 역사 철도·16]철로 위에 새겨진 기억들 : 고잔역에서 군자역까지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소금이 없는 인류의 삶과 문명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우선 인체생리학적으로도 항상 0.71%의 염도가 유지돼야 한다. 또한 김치·젓갈·장(醬) 등 우리의 독특한 음식문화만 놓고 보더라도 소금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백색의 황금이란 별칭이 허언이 아닌 것이다. '삼국지'의 영웅 관우가 무신 관제(關帝)의 반열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소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관우가 신으로 숭앙되는 것은 그의 뛰어난 무용과 영웅적 행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가 산서성 해주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산서성 해주는 중국 최대의 소금산지인 염호(鹽湖) 곧 해지(解池)가 있었다. 예로부터 소금은 왕실의 전매사업으로 독점됐을 만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나라 말기 황소의 난 같은 정변의 배후에 소금 상인들이 있었고, 중국 현대사를 장식한 총통 장제스(蔣介石)도 소금 상인의 아들이었다. 막대한 군사비와 정치적 비용은 모두 소금 상인들한테서 나왔던 것이다. 중국의 모든 정치적 사건과 전란의 기저에서 소금이 그 뒤를 받치고 있었다.'삼국지의 영광'을 쓴 김문경 교수에 의하면, 산서성 출신의 소금상인들은 해주가 낳은 최고의 인물이며 향토영웅인 관우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들은 고향의 자랑인 관우를 마스코트이자 수호신으로 만들어 짊어지고 중국 전역을 누볐으며, 이 과정에서 관우를 수호신·재신·군신(軍神)으로 받드는 관우 신앙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지하철 1호선 동묘앞 역의 동묘는 임진왜란 당시에 건립된 관우의 신상을 모신 사당이었고, 전주에 있는 관성제묘는 명성황후가 정권의 안녕과 개인적 기복을 위해 세운 것으로 관우 신앙의 구체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수인선도 따지고 보면 소금으로 인해 태어난 열차다. 인천과 수원 사이 동북으로 이어진 고잔·원곡·신길·군자역 등은 작아도 그냥 스쳐 지날 수 없을 만큼 수인선의 알짜들이다. 원곡역은 상·하행 열차들이 교행을 하거나 냉각수를 채워 넣던 중간 기착지였고,

  • [질주하는 역사 철도·15]경기 실학 1번지 '수인선 일리역'

    [질주하는 역사 철도·15]경기 실학 1번지 '수인선 일리역'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기차에 등급이 있듯 독서에도 레벨이 있다. 책과 내가 하나가 되는 책인합일(冊人合一)의 문자선(文字禪)이 최상의 경지라면, 세상에 유익을 주고 세계를 경영하고자 하는 경세적(經世的) 책읽기는 공리적 독서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이름난 세계적 독서가들의 독서론들이 많고 많지만, 이 중에서도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독서철학은 단연 발군이다. 이른바 '한 선비가 책을 읽으면 혜택이 사해에 미치며 그 공이 만세에 드리운다(一士讀書 澤及四海 功垂萬歲)'는 연암의 이 삼엄한 독서론은 그저 직업적으로 책보고 습관적으로 연구하는 동시대 학자와 책벌레들에게 책읽기의 의미와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매서운 회초리와 같다.연암이 이 같은 공리적·실천적 독서론을 바탕으로 한국 실학의 한 축인 이용후생의 북학파를 이끌었다면, 성호 이익(1681~1763)은 독서를 통해 한국 실학의 양대 산맥인 경세치용 학파를 이끈 조선후기 최고의 실천적 독서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호는 남인 명문의 후손으로 대사헌을 지냈던 아버지 이하진(1628~1682)이 숙종 6년(1680) 경신출척으로 진주목사로 좌천되고, 다시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돼 왔을 때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가족 모두가 성호가의 영지인 성호장과 선묘가 있는 안산 첨성리, 즉 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내려왔고 성호는 이곳에서 평생을 독서와 학문에 매진하였다.성호가 출사에 뜻을 접고 평생을 독서에 주력하게 된 것은 중형(仲兄) 이잠(1660~1706)이 노론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장살 당하는 등의 정치적 어려움과 붕당정치에 대한 환멸 그리고 부친이 연경에서 사온 수천 권의 장서가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주이씨가(驪州李氏家)가 처한 불우한 정치적 환경과 학문적 인프라가 성호를 최고의 독서인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독서는 산림처사를 자처했던 일사(逸士)들처럼 자폐적이거나 도피적인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실용적이고 경세적인 것이었다. 요컨대 사농합일·균전제·삼한정통론

  • [질주하는 역사 철도·14]사리역·최용신·상록수

    [질주하는 역사 철도·14]사리역·최용신·상록수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기차와 궁합이 잘 맞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잠과 독서다. 요즘에는 트위터나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스마트 몹(Smart Mob)들이 대세지만, 열차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 맛있는 토막잠과 독서삼매다. 기차를 성인들의 요람이라 하는 이유는 수면을 유도하는 적정한 진동 때문이며, 이동 독서실이라 하는 것은 책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어 평소와 다른 놀라운 집중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기발한 착상과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아예 열차의 몇 량을 수험생과 독서인들을 위한 전용칸으로 꾸미면 어떨까 한다. 한국에서만 운행되는 세계 유일의 독서열차!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철도가 독서 습관과 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꾼 근대적 독서의 산실이라는 것은 일반상식이 되었다. 철도망의 확장으로 인해 신문과 잡지 등 근대 미디어들이 전국에 유통될 수 있었으며, 장거리 철도여행의 지루함을 산업화한 읽을거리(Railroad Story)들의 등장을 촉발하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철도여행이 보편화하면서 소리내서 책을 읽는 전통적인 낭독 대신 조용히 책을 보는 근대적 묵독으로 독서의 습관과 패턴이 급속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새롭게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바짝 몸이 단 것은 출판업자들과 신문사들이었다. 특히 사세의 확장과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신문사들의 경쟁은 갈수록 가열되어 갔다. 이같은 맥락에서 1931년부터 수년간 지속된 동아일보사의 브나로드 운동은 전국적인 문맹퇴치운동으로 한국 계몽주의 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성과였지만, 동시에 이는 민중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독자로 만들려는 구독자 확보운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브나로드 운동의 대표적인 성과가 심훈(1901~1936)의 '상록수'이다. '상록수'는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공모에 당선된 장편소설로 춘원 이광수의 '무정' '흙' 등과 함께 한국 계몽주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심훈은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민족 해방과 광복의 순간을 고대하는 격정적인 시 '그날이 오면

  • [질주하는 역사 철도·13]고색에서 야목까지

    [질주하는 역사 철도·13]고색에서 야목까지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황석영의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조용한 보통의 날들"이라는. 작가는 특별한 의식없이 이 문장을 썼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멋진 행복론이다. 행복은 미래의 일도, 특별한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에 있다는 것이다. 멋지고 찬란한 내일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외면하고 살다가 몸이 아프거나 큰 일이 생기면 그때서야 조용한 보통의 나날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절감하게 된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축복이었다는 것을. 행복은 바로 그 순간에 역설의 베일을 벗는다. 조용하고 평범한 보통의 날을 잃었을 때 그 조용하고 평범한 범사가 참 행복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수인선도 그랬다. 작은 기차의 공백이 미처 이토록 클줄 몰랐다. 효율성과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문화적 비중과 정서적 가치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철도문화유산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팔순을 앞둔 수인선 기관사였던 동네 아저씨와의 인터뷰가 불발로 그친 다음, 그런 반성과 자책과 함께 이제 더 늦으면 수인선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책임감에 공연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12월 12일 우리 가족의 수인선 답사는 그런 조급함 속에서 돌발적으로 이뤄진 심심한 여행이었다. 일단 가족들 중에서 수인선에 대한 경험이 제일 풍부한 아버지 남당(楠堂) 선생을 모시고 노선을 따라가면서 사진도 찍고 핑계김에 소래까지 가서 회 한 접시 먹고 내려오는, 밑져도 본전이요 빈손이어도 좋을 나들이 길을 나선 것이다. 우선 어린 시절 친구들과 '고새기'라 부르며 가끔 오가던 수인선의 첫 번째 정거장 고색역부터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시작부터 대박이었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협궤열차 레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쾌재를 부르며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일요일 오전 불각시에 운전기사로 끌려 나온 동생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이

  • [질주하는 역사 철도·12]수인선과 수원역

    [질주하는 역사 철도·12]수인선과 수원역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수원은 자부심이 강한 도시다. 한마디로 유구한 역사적 전통과 문화를 가진 경기도의 수부(首府)라는 것. 그러나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은 팔달산처럼 도도한 자부심과 꼬장꼬장한 합리주의는 때로 '발가벗고 삼십리'라는 볼멘소리를 듣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단 한 번의 출항으로 일 년치 연봉을 해결하는 배포 큰 국제도시 인천에 비하면 수원은 정조시대부터 상업이 번성한데다가 주로 봉급 생활자가 많다보니 계산에 밝은 소심한 상업도시로 오해를 받을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발가벗고 삼십리'는 수원 사람이 아니라 남양에 사는 효자로 어느 날 그가 수원에 장을 보러 나왔다가 그만 술에 취해 주막에 곯아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아버지 제사인 것을 알고 의관을 갖추지 못한 채 속곳 바람으로 삼 십리 길을 내뛴데서 유래한 것이라는 해명성 설화도 전해 내려오는데, 아직도 이 말이 회자되는 것을 보면 수원 사람들 중에 깐깐한 실리파들이 진짜로 있긴 있었나 보다. 이런 깐깐함에도 유서 깊은 역사가 있다. 요컨대 개혁군주 정조의 화성 성역이 계기가 된 작은 서울이라는 선민의식 그리고 경부선·수여선·수인선 등 철도가 사통팔달로 열리고 연결되면서 빠르게 근대화될 수 있었던 데서 생겨난 자신감 등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화성행궁과 수원역은 수원의 역사를 상징하는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전통도시 수원이 철도도시로 순조롭게 이행한 것은 아니었다. 이같은 자긍심이 일제와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광무6년(1902)의 '수원군민 집단항의 사건'이다. 경부철도 노선이 수원의 관문인 지지대 고개와 화서문을 거쳐 팔달산 후록(後麓·뒤편 기슭)을 관통하는 경부선 부설이 부당하고 무례하다며 수원 군민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이다. 경부선이 지나가는 길목이 정조대왕의 영정을 모신 화령전의 등 뒤였으니 수원을 작은 왕도로 여기던 수원군민의 대쪽같은 자존심이 이를 그냥 묵과할리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여론에 힘입어 경기관찰사 이근명(李根命), 철도

  • [질주하는 역사 철도·11]시(詩)가 된 추억열차 '수인선'

    [질주하는 역사 철도·11]시(詩)가 된 추억열차 '수인선'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낡은 사진, 녹슨 철길, 건널목 표지판….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소품들이다. 여기에 민폐가 되지 않을 착한 눈이라도 내려준다면 친구들과 함께 이런 얘기를 안주 삼아 따끈한 어묵 한 사발과 소주를 나누는 게 제격일 것이다.추억은 늙지도 않는가. 어스름 저녁 기적 소리 울리며 세류 삼각선을 돌아 수원역으로 되돌아가던 까만 기관차와 기차 바퀴에 납작하게 눌려 만들던 대못칼 그리고 뒤뚱대며 느릿느릿 인천으로 향하던 두 량짜리 동차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참, 레일 위의 대못이 기차바퀴에 튕겨나가지 않도록 입안에 침을 가득 모았다가 뱉어 두는 건 수인선(水仁線)과 함께 잔뼈가 굵은 우리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노하우였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때 그 시절 인천과 수원을 오가며 군자 염전의 소금과 소래포구의 참게를 쉼 없이 실어 나르던 바지런한 꼬마열차. 황혼녘 드넓은 야목의 들판과 소래철교를 지나 햇빛이 노루꼬리만큼 남았을 때 수원역 혹은 송도역에 도착하여 통학생들과 좌판 아주머니들을 부려놓던 서민열차. 바람과 갯벌과 사연들이 모여 시(詩)가 되어버린 추억열차, 수인선! 수인선은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미지의 열차라 할 수 있다. 낭만열차의 상징이요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로, 노장들 사이에의 이야깃거리로 호명되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이 나오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그 점에서 수인선은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의 아랫면처럼 또 세상의 모든 사물을 보면서도 정작 자신은 볼 수 없는 눈처럼 보되 보지 못하며, 알되 잘 알지 못하는 한국철도사의 블라인드 스팟 이른바 마리오트의 맹점(Mariotte's spot)일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에게나 과거는 언제나 돌아가고픈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고단한 현실과 돌이킬 수 없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과거라고 어찌 모두 아름다울 것이며 절실하게 돌아가고픈 유토피아이겠는가. 특유의 친근함과 정취에 매료돼서 그렇지 수인선의 탄생 배경과 기원만큼은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 [질주하는 역사 철도·10]한국철도의 클라이맥스 '서울역'

    [질주하는 역사 철도·10]한국철도의 클라이맥스 '서울역'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세밑. 겨울을 재촉하는 막바지 체로금풍(體露金風)에 서울역 주변의 헐벗은 나목(裸木)들이 진저리를 치며 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마저 훌훌 떨어내고 있었다. 떠남과 이별이 어찌 수월하랴만 떠나야 만남이 있을 것이고, 오늘의 아쉬운 이별이 있어야만 내년의 신록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차역은 이 같은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떠남과 귀환의 역설을 가장 잘 체현하는 곳이다.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안정애의 '대전 블루스', 나훈아의 '고향역', 다섯손가락의 '새벽기차' 등 만남을 희구하는 이별의 노래들에서 유독 기차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리라.한국철도의 상징 서울역은 만남과 이별을 가장 많이 겪은,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하는 거대한 역설의 공간이다. 뿐인가. 경인선·경부선·호남선 등 모든 노선의 종착점이자 시발점이며 식민의 굴욕과 한국전쟁의 상흔과 고도성장의 영광과 무작정 상경의 아픔이 교차하는 살아있는 역사였으며, 또한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및 신군부의 등장 같은 정치적 겨울의 빌미가 됐다는 점에서 서울역은 한국철도사와 한국현대사의 상징이요 모순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그 서울역이 철도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00년 11월 12일 경인선 전통식과 함께 '남대문정거장'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하면서 부터이다. 그런데 아무리 언어생활의 편의성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남대문이란 말은 영 마뜩지 않다. 숭례문이란 어엿한 이름이 있는데, 남쪽에 있는 큰 대문이라니.전통사회에서 공공건물과 기관의 이름은 절대로 범상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우주의 철학과 동아시아의 사상이 배어 있으니, 근대 이전 도시공학이자 대원칙이었던 '주례'의 '고공기(考工記)'를 한 예로 꼽을 수 있다. '고공기'에 의하면, 도성의 공간구성은 좌묘우사(左廟右社)와 전조후시(前朝後市)가 기본적인 대원칙이다. 즉 왕성을 남향으로 향하게 하고 그 왼편에 종묘와 오른편에 사직단을 두고, 전면에는 조정과 관아를, 그리고

  • [질주하는 역사 철도·9]경인선의 랜드 마크-노량진역과 한강철교

    [질주하는 역사 철도·9]경인선의 랜드 마크-노량진역과 한강철교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길의 본령은 소통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를 매개하고 이어주는 것은 길의 사명이며, 존재이유일 것이다. 강물은 흘러야하는 것처럼 길은 늘 열려있어야 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렇게 흐르고 소통하면서 우리는 삶을 이어왔고, 문명을 만들어냈다. 모든 문명은 강에서 태어났다. 소통하고 흐르는 강에서.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지역과 지역을 잇는 길을 통해서. 그러고보니 뉴욕의 허드슨, 런던의 템스, 파리의 센, 도쿄의 아라카와, 카이로의 나일, 그리고 서울의 한강 등 세계적인 대도시들은 모두 흐르는 강을 끼고 있는 강변 도시들이거나 길과 강이 어우러진 도진취락(渡津聚落)이었다. 도진취락은 육로와 수로가 교차하여 강변 양안에 사람들과 물산이 모여들고 소통하면서 형성된 자연취락으로 대개가 교통의 요지요, 물류의 중심지들이었다. 천년의 영광을 누린 신라의 경주, 일본 고대 문명의 젖줄이었던 백제의 웅진과 부여, 그리고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평양 역시 형산강과 금강과 대동강을 끼고 있던 강변 도시들이었다.여기, 흐르고 소통하는 강과 길의 도시가 있다. 경인선이 시작된 곳.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개통식이 열리고 한국 철도의 새 역사를 연 곳. 바로 노량진. 노량진은 수양버들이 군집을 이루고 백로가 날아들던 노들나루, 곧 전통적인 도진취락이었다. 도진취락이 철도로 인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을 보면, 확실히 철도는 야누스적이며 마키아벨리적이다. 한편에서 전통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정선에서 전통과 기민하게 타협하며 이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나루터 노량진이 철도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도진취락이었기 때문이다. 물동량과 유동인구가 많아 언제나 안정적으로 승객이 확보될 수 있는 황금 노선이었기 때문이다.지명에서 도(渡)·진(津)·제(濟)가 붙은 도시 혹은 마을들은 수상교통의 요지인 나루터 곧 진도처(津渡處)의 표식이며, 우리나라 철도역 상당수는 도·진·제같은 전통적인 도진취락에 다리를 놓고 정

  • [질주하는 역사 철도·8]영등포역에서

    [질주하는 역사 철도·8]영등포역에서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철도는 근대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철도야말로 근대문명의 표상이자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나 정보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일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감각기관을 확장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술들을 가리킨다. 옷과 안경이 피부와 눈의 확장이라면, 철도와 책은 발과 사고의 확장이다.미디어는 정보의 밀도와 참여도에 따라 쿨 미디어와 핫 미디어로 나뉘는데, 안경이 핫 미디어라면 선글라스는 쿨 미디어다. 예를 들어 안경 쓴 여성보다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더 끄는 이유는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적기 때문에 남성으로 하여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고 상상력을 통해서 상대의 외모와 전모를 파악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과 인식에 영향을 주면서 인간관계와 사회제도를 변모시키기도 한다. 요컨대 인쇄술의 등장이 근대인들의 시각적·논리적 사고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민족주의와 산업주의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철도의 등장은 실로 어마어마한 미디어 혁명이었다. 시간과 공간의 단축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근대 도시 출현과 새로운 노동 형태 그리고 여가 생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은 사람과 화물을 운반했으며 근대적인 삶과 정신과 정보와 문화를 세계 방방곡곡으로 실어 나르고 전파했다. 증기 엔진은 도입된 지 채 몇 십 년도 지나지 않아 거대한 세계적 연결망과 교역의 네트워크를 구축해냈다. 세계의 축소, 거리의 소멸 그리고 근대의 완성이라는 위업을 이루어낸 것이다. 한마디로 철도는 근대 자본주의 형성과 발전의 견인차였다. 제국주의 시대 열강들이 철도 부설권을 놓고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며 철도에 광적으로 집착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영등포(永登浦)는 이와 같은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한국근현대사의 디스플레이어이다. 철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영등포는 한강과 안양천 그리고 도림천과 대방천이 교차하고 합류하는 낮은 지역으로 홍수가 잦던 한촌(閑村)이었다. 젊은 날 신촌과 이 일대를 오가며 대

  • [질주하는 역사 철도·7]오류동역 단상(斷想)

    [질주하는 역사 철도·7]오류동역 단상(斷想)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한국문화 속에서 오류(梧柳)는 삶의 쉼표와 같은 것이었다. 표주박에 버드나무의 잎을 동동 띄워 나그네의 갈증을 풀어주던 설화 속의 댕기머리 처녀와 어린 딸의 혼수를 위해 오동나무를 심던 아비들의 깊은 속정의 표상인 오류는 오랫동안 우리식 풍류와 고운 심성을 대변해왔다. 전래의 이야기와 설화 속에 유독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이다.경인선이 등장하기 이전의 경인가도 시대 오류동은 서울 진입을 앞두고 우마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면서 요기도 하던 쉼터였다. 경인선이 등장한 이후에도 이런 관행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이쯤해서 기관사는 과열된 엔진과 냉각수를 점검해야 했을 것이고, 책벌레 통학생들도 이제는 보던 책을 덮고 창밖이라도 보며 머리를 식혔을 것이다. 서울이 가시권에 들어왔으나 앞으로도 영등포와 노량진을 거쳐 한강철교를 건너야 한다. 많이 달려오기도 했지만 갈 길이 아직은 멀다.그런 오류동역이지만, 이야깃거리가 늘 궁색한 스토리텔러에게 경인선의 여섯 번째 정거장 오류동역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 정차역이다. 서 너 줄의 문장으로 역사의 페이지를 다 채울 수 있을 만큼 이야기가 가난한 곳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축력과 도보를 이용하던 경인가도 시대. 장죽 물고 버드나무에 기대어 또는 주막거리에서 장국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겠으나 그저 스치고 지나갈뿐 머물지 않는 바람처럼 정작 전해지는 이야기는 별로 없는 빈손이다. 오류동역은 이야기들을 저장하고 쌓는 곳이 아니라 교환되고 흘러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경인가도시대 오류동은 잠시 지친 몸을 추스르고 허기도 채우던 휴식의 공간이요 중간 기착지였다. 임오군란 때 청으로 납치됐던 대원군도 머물렀다고 하는 오류2동 경인로의 주막거리 객사가 바로 그 증거이다. 경부선이 지나는 수원과 오산 사이에 자리잡은 떡점거리 병점(餠店)이 점심 및 요깃거리로 떡을 판데서 유래한 중간 기착지였듯이 오류동 역시 잠시 쉬어가던 휴게소였으며, 상인과 나그네들이 모여 물건 값도 묻고 세상 돌아

  • [질주하는 역사 철도·6]경인선의 아인스월드, 부천 : 부천역

    [질주하는 역사 철도·6]경인선의 아인스월드, 부천 : 부천역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던가. 복숭아의 도시(桃市) 소사를 현대도시(都市) 부천으로 만든 것은 8할이 철도이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1731~1800)의 말대로 부천은 인간이 만든 인공의 도시-경인선의 아인스월드이다. 도시는 삶의 터전이며, 삶의 예술이다. 그리고 이 예술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는 진행형의 작품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시인이자 영화평론가였던 리치오토 카누도(Ricciotto Canudo)는 영화를 제7의 예술로 선언하면서 연극→회화→무용→건축→문학→음악의 순서로 예술의 목록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사진-만화-게임 등이 이 대열에 합류하여 모두 열 개의 장르가 예술의 반열에 올랐다.예술의 개념과 목록이 이러하다면, 도시야말로 예술 가운데서 가장 최상위의 창작물이며 종합예술일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삶이 모여 만든 가장 리얼한 공동의 예술. 이 속에는 지난날의 역사 유적과 삶의 흔적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꿈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에 발표된 UN 인구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세계 평균을 한참 웃도는 전체 인구의 81%가 도시에 살고 있으니 우리에게 도시야말로 최고의 생활예술이며 거대한 삶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동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또는 가장 근대적인 삶의 방식인 도시. 이제 우리는 산기슭에서 태어나 산기슭으로 돌아가 묻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영면하는 새로운 생의 주기를 갖게 되었다.이같은 근대 도시의 형성과 발전에 끼친 철도의 영향은 실로 압도적이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시간 네트워크와 교류를 가능하게 했으니 철도는 도시화와 근대화의 엔진이었으며, 도시공간이라는 캔버스 위를 질주하는 페인터였던 셈이다. 그러니 안남도호부에 속해 있었던 복사꽃 피는 마을 소사가 일약 수도권 대표도시의 하나인 부천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

  • [질주하는 역사 철도·5]기차, 자동차와 만나다 : 부평역

    [질주하는 역사 철도·5]기차, 자동차와 만나다 : 부평역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기차와 자동차는 여러 면에서 곧잘 대비되곤 한다. 교통의 한일전이라고 할까. 철도가 증기를 바탕으로 한 석탄문명의 총아였다면, 자동차는 내연기관을 바탕으로 한 석유문명의 결정체다. 기차가 하드웨어와 역사성과 안정감에서 앞선다면, 자동차는 소프트웨어와 유연성과 편리성에서 기차를 추월한다. 자동차가 기차를 따돌리고 앞서나가는가 했더니, 곧이어 고속전철과 자기부상열차가 등장하여 자동차를 맹렬히 추격한다. 철도와 자동차는 이렇게 드라마틱한 경쟁관계를 이루면서 현대문명의 발(足)로 그 역할을 다해 왔다. 부평은 이런 곳이다. 기차의 도시이며, 자동차의 도시라는 것―즉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상지이며, 인천지하철과 교차하는 경인선의 결절점이라는 점이다. 기차의 등장으로 이룩된 근대공업도시 부평이 석유문명의 결정체인 자동차산업의 산실이 되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첫 번째 국산 자동차인 시발자동차의 뒤를 이어 현대적인 생산라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승용차인 새나라가 출시된 곳이 바로 부평이다. 비록 설립 1년 만인 1963년에 문을 닫았지만, 부평은 새나라자동차에서 신진·GM코리아·새한·GM대우로 이어지는 한국자동차산업의 발상지라는 역사를 열게 되었다. 세상만사 얽히고설켜 돌아가듯 결과가 좋다고 해서 기원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위대한 삶을 살다 간 문인이라고 해서 작품도 저절로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듯이. 부평이 근대공업 내지 자동차산업의 원조가 된 역사는 그리 탐탁하지 않다. 서울과 인천의 사이에 위치한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특성에 주목한 일제가 부평을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군사산업도시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1939년에 설립된 일본 육군조병창이 바로 그러하다. 오늘날 부평1동의 아파트 단지와 산곡동의 미군부대 그리고 화랑농장 일대가 바로 조병창이었다. 그리고 조병창보다 꼭 2년 앞선 1937년 일본의 군용차 생산을 위한 자동차조립공장도 이미 들어서 있었다. 이를 계기로 초창기 한국 자동차산업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경성 모터스·중앙 모터스·대

  • [질주하는 역사 철도·4]보들레르·전강 그리고 주안역

    [질주하는 역사 철도·4]보들레르·전강 그리고 주안역 지면기사

    [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풍경이 폭발하고 있다. 동인천행 급행 열차의 출입문이 열리자 사방에서 꽃망울 터지듯 인파가 쏟아진다. 마음도 조급한 오전 출근시간. 수많은 잰걸음들이 만들어내는 스태프들의 요란한 합주와 형형색색의 의상들이 빚어내는 현란한 콜라주가 플랫폼을 물들인다. 휴대전화를 꺼내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보폭과 걷는 속도는 군중에 의해 결정된다. 각종 소음과 통행으로 요동치는 시지각적(視知覺的) 복잡함은 더욱 증폭된다. 언제나 어디서나 반복되는 대도시 아침의 풍경 혹은 군무. 여기는 경인전철의 거점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역이다. 평범한 갯가 주안이 뜨기 시작한 것은 한국 최초의 천일염전(天日鹽田)이 들어선 1907년 무렵부터였다. 이전까지 한국의 전통적인 소금 제조법은 전오법(煎熬法)이라 하여 바닷물을 농축하여 함수로 만든 다음, 이를 옹기나 솥에 넣고 가열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소금의 품질은 좋으나 생산력이 떨어져 값싼 중국 소금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1927년 조선척식자료조사회에서 펴낸 '조선철도연선요람'을 보면, 주안역과 그 일대의 현황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19세기 중반. 인류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거대도시 문명의 출현을 한 발 비켜서 비뚜름하게 바라보는 창백한 관찰자가 있었다. 일명 파리의 고독한 산책자 보들레르(C. P. Baudelaire, 1821~1867). 그는 근대 도시 파리를 떠도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일상 그리고 이미지들을 채집하여 두툼한 관찰기로 묶어낸다. 거대한 군중들과 도시적 일상의 출현을 노래한 '악의 꽃'과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이 바로 그 것. 그 보들레르가 출근길 인파의 물결로 넘치는 러시아워의 주안역 풍경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1961년. 주안이 아직 염전이었을 때 기린산 주안신사에 주장자를 꽂은 벽안의 선지식이 있었다. 33세의 나이에 불보종찰 통도사 조실로 추대된 전강(田岡·1898~1975). 열반의 순간 구구단을 외고 좌탈입망했다는 이 무애의 자유인은 바쁜 발걸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