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9] 에필로그·끝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9] 에필로그·끝 지면기사

    인천 편입 20주년 강화·옹진 가치 ‘재조명’생소한 고려왕족 무덤·풍어제·굿 등 발굴섬마다 독특한 문화·역사적 다양성 소개앞으로도 인천이 오롯이 품어야할 보물들섬의 날씨는 늘 변화 무쌍했다. 뭍에서 출발할 때 괜찮았던 날씨는 바다 한가운데서 한 번 바뀌었고 섬에 도착해서 또 한번 표정을 달리 했다. 2015년 한해 취재팀은 수십 번씩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를 건넜고, 연안부두를 출발하는 여객선 한 쪽에서 쪽잠을 자며 지긋지긋한 배 멀미와 싸워야 했다. 강화도와 옹진군의 수 많은 섬들. 시커먼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어 보겠다는 취재팀의 생각이 독자들에게 오롯이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뭍 사람들이 모르는 섬 이야기를 잘 전달하려 무던히 노력했다. 지난 1월 취재팀은 경인일보 1996년 9월 4일자에 나온 기사를 인용해 기획의 첫 걸음을 뗐다. ‘인천 밖의 인천’, 강화군과 옹진군이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의 품으로 들어왔지만 역사·문화·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소외된 채 인천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취재팀이 지난 1년 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한 강화, 옹진군의 가치는 이들 섬을 ‘재생(再生)’ 시키는 것이었다. ‘죽게 됐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단어의 뜻처럼 역사 속에 잠들어 있거나 박물관 한 편에 박제돼 있던 강화·옹진군의 가치를 깨워 인천 시민들에게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표지판도 없는 강화도의 산 골짜기 여기 저기를 헤매며 이름도 생소한 고려 왕족의 무덤을 찾아야 했고, 강화도 주민 그 누구도 들춰내기 싫어하는 섬 사람들의 한국전쟁 학살 이야기를 밖으로 끄집어 냈다파시(波市)의 흔적을 찾아 연평도에 들어갔던 취재팀은 마을 텃밭에서 간통(파시 때 조기를 소금에 절이던 통)을 발견해 학계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조선시대 말목장 이야기와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섬 지역의 각종 설화들, 우리나라 해군사관학교의 시초로 불리는 강화 총제영학당에 관한 내용 들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이와 함께 섬마다 가진 독특한 문화·역사적 바탕 아래 전해 내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8]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옹진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8]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옹진 지면기사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 아름다운 섬’전국 33곳 중 옹진군내 3개 섬 1·6·21위 선재도 = 썰물땐 목도·측도 ‘모세의 기적’덕적도 = 갯벌·자갈 해변에 300살 소나무백령도 = 전세계 단 2곳 자연비행장 사곶 환경·생태 가치 산림청 숲 대상 ‘굴업도’인천AG 마스코트 물범, 亞 사랑 한몸에1816년 9월, 영국 해군장교 바질 홀(Basil Hall)이 백령도에 도착했다. 서양 외국인의 눈에 옹진군 섬의 모습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옹진군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등 인근의 섬을 묶어 당시 탐사팀은 ‘써 제임스 홀 군도(Sir James Hall‘s Group)’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질 홀의 아버지인 제임스 홀의 이름을 그대로 섬에 붙인 것이다. 그는 제임스 홀 군도로 이름 지은 백령도 등에 대해 관찰한 내용을 ‘코리아 서해와 루추섬 탐사기(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and the Great Loochoo Island of 1818)’라는 책에 적었다. 바질 홀은 당시 섬의 주민을 야만스럽다고 표현했다.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뒤 옹진군의 섬은 외국에서 전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옹진군 섬의 아름다움에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 CNN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옹진군의 3개 섬을 꼽은 것이다. 지난 2012년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의 문화여행 프로그램 ‘CNN GO’는 “한국에 3천300개 이상 섬이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여기 가장 아름다운 1%를 공개한다”며 한국의 섬 33곳을 소개했다. 이 가운데 1위로 옹진군 선재도가 꼽혔다.CNN은 선재도를 두고 ‘마법(Magic)’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하루에 두 번씩 나타나는 선재도와 목도, 측도를 연결하는 육지 길을 마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춤을 추었다고 이름 지어진 선재도와 인근의 섬을 연결하는 육지 길은 밀물 때 바다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 드러난다. CNN은 “많은 이들이 홍해를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7] 옹진군과 염전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7] 옹진군과 염전 지면기사

    조선시대 바닷물 끓이는 ‘화염’ 전통방식인천섬지역 예부터 주생산지로 문헌기록 천일제염, 1906년 주안염전이 ‘국내 최초’ 1933년 3곳서 전국 생산 절반 15만t제조 1980년대 50여개 중 시도·백령 2곳 ‘명맥’짠 맛이 나는 하얀 결정체 ‘소금’. 빛과 소금이라는 말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해석될 정도로 소금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소금은 바닷가 사람들에게 유독 중요했다. 물고기를 아무리 많이 잡아봤자 저장할 수 있는 냉장고가 없었던 터라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염장’이 필수였다. 젓갈을 담그거나 어획물을 보관할 때도 소금이 꼭 필요하다.소금은 과거 인천 지역의 토산물 중 하나였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당시 소금 생산지는 인천 6개, 부평 7개, 강화 11개, 교동 3개 등 모두 27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충청도 태안이나 서산, 전라남도 신안군 섬지역이 주된 소금생산지이지만, ‘짠물’ 인천에도 염전이 있었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일제염’ 방식은 1906년(광무10년) 인천 주안염전이 최초였다. 주안 일대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지역이라 제방을 쌓기에 적당했다. 경인철도를 통해 소금을 서울로 실어나르기에도 제격이었다. 이후 소래와 군자 등 수인선 근방에도 염전이 생겼다. 1933년 주안, 남동, 소래 3개 염전에서는 전국 생산량의 절반인 15만t을 생산할 정도였다.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연백염전이 북한에 속하게 되고, 6·25 전쟁 이후 염전이 파괴되면서 소금 생산량이 급감했다. 정부는 1952년 소금 증산 5개년 계획을 세워 염전 증설을 권했다. 천일제염 방식이 인천의 여러 섬지역으로 유입된 시기도 이 때 즈음으로 알려졌다. 영흥도, 백령도, 영종도, 용유도, 강화도 등지에서 천일염전이 발달했고, 섬에서 생산된 소금은 자체 소비를 하기도 했고, 남은 소금은 다른 섬이나 육지에 팔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염전 장려 정책은 소금 공급 과잉을 낳아 불황을 겪기도 했다.공교롭게도 천일염의 시발지였던 주안염전은 사라지고 없지만, 옹진군에서는 북도면 시도염전(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6] 철새의 낙원, 소청도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6] 철새의 낙원, 소청도 지면기사

    중국 산둥반도~한반도 ‘중간 기착지’국내 통과하는 철새중 68% 볼수 있어노랑부리백로 등 멸종위기종도 많아이동경로 위치, 면적 작아 관측 용이탐조관광지로 외국에서 먼저 주목해국가철새연구센터 2017년 개관 예정인천 옹진군의 수많은 섬 중 소청도는 철새들의 낙원으로 불린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우리나라로 이동하는 대부분의 철새를 볼 수 있어 철새 연구의 최적의 장소로 손꼽히며 철새 연구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철새들의 천국 소청도소청도에서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새를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환경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국가생물종목록(2013년 기준)에 등재된 조류는 모두 522 종이다. 이들 조류 가운데 450여 종인 86%가 철새고 이중 68%(307종)가 소청도에서 관측되고 있다. 소청도 한 곳에서만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철새들의 거의 70%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철새는 번식지와 월동지를 이동하는 새로 1년 내내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텃새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이동해와 여름에 번식하는 새를 여름 철새,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새를 겨울 철새라고 부른다.소청도에서 만날 수 있는 새 가운데는 희귀종도 많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노랑부리백로와 매, 흰꼬리수리 등과 먹황새, 붉은해오라기, 팔색조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조류도 29종이나 소청도에서 관측된다. 소청도는 특히 몸집이 비교적 큰 벌매, 왕새매, 솔개, 독수리 등 맹금류의 중요한 이동 경로 상에 위치한다. 국내 최대의 벌매 이동 지역이기도 하다.옹진에서 왜 이렇게 많은 철새를 볼 수 있는 것일까.옹진군의 섬들은 중국 산둥반도와 우리나라를 연결하는 중간 집결지의 역할을 한다. 바다를 건너는 모험을 해야 하는 새들에게는 옹진의 섬에 모여서 이동을 준비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긴 비행을 끝내고 처음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일반적으로 바다를 넘어 대륙을 넘나드는 새들에게 섬은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망망대해를 건너 수천㎞를 비행하는 새들에게 섬은 아주 중요한 휴식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5] 한국전쟁과 옹진·하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5] 한국전쟁과 옹진·하 지면기사

    백령·대청·소청 제외 나머지 도서들 북한 편입NLL로 같은 지명 인천·황해도 행정구역 달라인구 2400명 연평도 피란민 1만2800여명 몰려상당수 섬 떴지만 지척에 고향 못잊어 남기도40년 넘게 덕적도 혼혈아 등 1600명 해외 입양한국전쟁이 할퀸 상처가 한반도 어느 곳에야 없겠느냐마는, 옹진의 섬사람들은 더 많이 아파했다. 이웃처럼 왕래하던 섬과 섬은 북방한계선(NLL)이라는 ‘보이지 않는 철책선’이 갈라놓아 오갈 수 없게 됐다. 서해에 흩뿌려진 수많은 섬 중 하나였던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등은 ‘서해5도’라 불리는 외딴 섬이 되고 말았다. 섬에는 고향을 바로 눈앞에 두고 평생 가보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실향민이 생겼고, 인천 섬은 그렇게 전쟁의 아픔을 품었다. 인천 섬이 품은 전쟁의 아픔은 실향민만은 아니었다. 덕적도에는 전쟁고아와 혼혈아를 키우며 입양을 보냈던 보육원이 있었다.#남과 북, 두 개의 옹진군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총사령관, 북한군 최고사령관과 중공군 사령관은 전문 5조 63항으로 된 정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이 막을 내렸다. 한 달여 뒤인 8월 30일 마크 클라크(Mark Wayne Clark) 유엔군 총사령관은 동해안과 서해안에 설정된 군사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발표했다. NLL은 연평도 북쪽 약 1.4㎞ 해상에 그어지면서 같은 해주 생활권이던 대수압도, 소수압도, 용매도 등은 모두 북한으로 편입됐다. 백령도와 대청도·소청도를 제외한 옹진반도 연근해 섬들도 모두 북한지역이 됐다. 정전협정이 체결될 당시 한국군과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던 어화도·창린도·월래도·기린도·초도·난도·소수압도·대수압도·용매도·납섬·덕도 등은 우리 영토가 되는 게 당연한 듯했으나, 서해의 섬들에는 예외조항이 적용됐다. 정전협정문에는 ‘서해의 경계는 1950년 6월 24일의 전선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면서도 황해도·경기도의 경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등 5개 섬은 유엔군 사령관 통제하에 남겨두고, 나머지 모든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4] 한국전쟁과 옹진·상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4] 한국전쟁과 옹진·상 지면기사

    옹진반도·연안도서 무력충돌 빈번 ‘한국전쟁 전초전’1·4후퇴후 군번·계급없는 비정규군 ‘동키부대’ 창설고향수복 의지로 혁혁한 전공… 서해 5도 차지 밑거름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미군 특수전사령부(SOCOM) 역사관은 미군 특수부대의 전신 중 하나로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산하에 있던 ‘8240부대’(유엔유격군·UN Partisan Forces-Korea)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백령도 등 서해도서와 북한 옹진반도 등을 중심으로 활약한 8240부대의 구성원은 주로 이 지역 출신 한국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로 만들어진 부대가 어떻게 미군 특수부대의 ‘모체’가 될 수 있었을까.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가 38도선에 의해 분단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휴전선과 해상 북방한계선(NLL)이 설정되기까지 옹진반도와 서해도서는 격전지이자 요충지가 아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천 섬에서는 한국전쟁의 또 다른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옹진전투와 6·25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남북 간 무력충돌은 있었다. 특히 남북 접경지역이던 황해도 옹진반도와 그 연안도서에서 빈번했다. 한국전쟁의 전초전이 치러진 것이다. 북한군은 1949년 5월 21일 새벽, 병력 200여 명을 이끌고 옹진반도 두락산에 있는 한국군 진지를 공격했다. 이날부터 6월 29일까지 수천 명의 병력이 서로 옹진반도 땅을 뺏거나 빼앗기는 교전을 거듭했다. 같은 해 8월과 10~11월에도 남북은 산발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당시 황해도 옹진군 옹진읍에 살았던 백령도 주민 박순진(82) 씨는 “북한군이 늦은 밤 38선 이남으로 침입해 경찰이나 민간인을 납치해 가면, 국군이 다시 구출해 오는 등 접경지역 주민들은 늘 긴장 속에 살았다”며 “군복을 입지 않았어도 까까머리면 인민군, 머리가 길면 국군으로 구별했다”고 회상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서쪽 옹진반도부터 개성, 동두천, 춘천, 주문진에 이르는 38도선 전역에서 지상 공격을 개시하면서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순식간에 옹진반도를 접수한 북한군은 이틀 뒤 백령도에 상륙했다. 북한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3] 남북 대치의 최전선 서해5도·하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3] 남북 대치의 최전선 서해5도·하 지면기사

    1999년 연평해전 후 2002·2009·2010년 교전백령도 앞바다 천안함 침몰로 장병 46명 수장北, 연평도 포격도발 민간인 등 4명 목숨잃어평택 2함대 등지 위령탑·전시관 건립해 추모‘한반도 화약고’ ‘분쟁의 바다’ 수식어 붙기도백령도와 연평도 등 5개 섬을 일컫는 서해 5도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한반도의 화약고’, ‘분쟁의 바다’, ‘대한민국의 군사적 요충지’ 등이다. 그 동안 서해 5도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보면 왜 이러한 수식어가 생겼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전쟁 이후 벌어진 남북한 첫 해상 교전은 연평도 앞바다에서 발생했으며, 이후에도 수 차례의 교전이 서해 5도 바다에서 벌어졌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해군 초계함이 침몰했고, 연평도에는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떨어졌다. 서해 5도에서 교전 등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이 수 십 명이다.이러한 서해 5도의 상황은 서해 5도의 지리적 특성과 맞물려 있다. 1945년까지 서해 5도는 황해도 장연군(백령도·대청도·소청도)과 벽성군(연평도)에 속해 있었다. 1945년 9월에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점령한 후 황해도 옹진군이 경기도에 속하게 되면서, 38선 남쪽에 위치한 서해 5도가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됐다. 이후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1953년 이뤄진 휴전협정의 결과 옹진군의 육지 부문인 옹진반도는 북한지역이 되었으나, 서해 5도는 군사분계선 이남에 남아 있게 됐다. ■ 서해 교전분단 이후 최근 20 여년 간 발생한 해상 교전은 대부분 서해 5도를 배경으로 이뤄졌다.1999년 6월 15일 북한군 경비정 4척이 어선 20척과 함께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해상을 넘어왔다. 이에 우리 나라 해군은 참수리급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해 해군 교전 수칙에 따라 경고 방송을 한 뒤 상대 선박을 선체로 들이받는 ‘밀어내기’를 실행했다. 북한군 경비정은 25㎜ 기관포를 우리 군을 향해 발사하는 등 선제공격을 감행했고 해군은 초계함의 76㎜ 함포와 고속정의 40㎜ 기관포로 응사했다. 교전 결과 북한군은 어뢰정 1척이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2] 남북 대치의 최전선 서해5도·상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2] 남북 대치의 최전선 서해5도·상 지면기사

    백령·대청·소청·연평·우도 NLL두고 北 대치4명 목숨 앗아간 ‘연평도 포격 도발’ 내달 5년상처에 새살 돋듯 주민 심리적 평온 회복불구마을 곳곳 피폭 흔적처럼 일부 불안감 하소연“아직도 큰소리 나면 그때 떠올라 가슴 덜컹”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일컫는 서해5도는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사이로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해5도를 둘러싼 분쟁과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남한과 북한의 교전·대치 상황의 대부분은 서해5도의 바다·섬이 배경이 됐다. 그중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북한이 남한의 영토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군인과 민간인 등 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마을 한가운데 떨어진 포탄으로 조용하던 섬마을 연평도는 순식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폐허로 변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발한 지 다음 달이면 5년을 맞는다. 5년이란 세월이 흐른 연평도는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포격의 흔적처럼, 일부 주민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24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리에 위치한 안보교육장. 주말을 맞아 관광객들이 교육장을 찾았다. 안보교육장은 북한의 포격 2주기를 맞아 지난 2012년 11월에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한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교육관 옆에는 연평도 폭격으로 피폭됐던 주택 3동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붕은 내려 앉았고, 주택 내부는 폭발의 영향으로 모두 검게 타버렸다. 냄비와 같은 주방용품, 가전 등은 형체를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대구에서 안보교육장을 보기 위해 연평도를 찾았다는 지상구(55) 씨는 “연평도 포격에 대해 뉴스를 통해서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까 포격 당시에 얼마나 처참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평도가 얼마나 북한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지도 이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평화와 통일의 중요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1] 옹진군 무인도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1] 옹진군 무인도 지면기사

    인천 무인도서 95곳 중 63곳 소속… 자연환경 우수 특정도서도 18곳 보유천연기념물 노랑부리백로·매 등 ‘해양생태계 보고’ 영해기점 중요한 역할무절제한 출입에 번식수 줄고 이름조차 관리미흡… 사업붐 확산 분위기도무인도는 해양생태계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외부의 접근이 어렵다 보니 자연 원형의 모습을 갖춘 곳이 많고, 여러 생물의 번식지로서 ‘종자은행(Seed Bank)’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인도는 우리나라 해양영토 경계를 결정하는 등 안보적 가치도 크다. 이처럼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무인도가 인천 앞바다에만 100여곳이 있다.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인천 무인도서는 95곳인데, 이 중 63곳이 옹진군 소속이다. 환경부가 지정한 인천지역 특정도서 26곳 가운데 18곳도 옹진군 소속이다. 특정도서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섬 가운데 생태계·지질·지형 등 자연환경이 우수한 곳을 지정한다. 하지만 이들 무인도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걱정되는 부분이다. 최근 무인도 개발이 본격 진행되면서 개발과 보존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어 체계적인 관리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무인도의 가치옹진군의 무인도는 독특한 형태, 경관, 생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옹진군 덕적면 서포리에 있는 ‘곰바위섬’은 곰 모양의 암석이 인상적인 섬이다. 타포니(기계적 풍화 작용으로 암벽에 생긴 구멍 형태)로 인해 곰 모양의 암석이 형성됐는데, 근접해서 보면 곰이 앞발을 들고 있는 형태의 암석을 볼 수 있다.자월면 승봉리에 속해 있는 사승봉도는 국내 다른 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큰 규모의 해안사구가 인상적인 풍광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이곳에는 갯완두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고, 좀보리사초, 통보리사초로 이뤄진 군락도 면적이 넓다.사람의 출입이 적은 무인도는 생태적 가치도 크다. 옹진군 구지도, 신도, 어평도, 할미염, 통각흘도, 소통각흘도, 중통각흘도, 서만도 등의 섬은 천연기념물 제361호이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인 노랑부리백로가 번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도, 각흘도, 부도는 천연기념물 제3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0] 옹진군의 문화 예술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40] 옹진군의 문화 예술 지면기사

    옹진 100여개 섬 영화·소설 무대 ‘각광’1960년대 수작 ‘섬마을 선생’ 대이작도김기덕 ‘시간’ 찍은 모도 조각공원 명소 덕적·문갑도 장석남·이세기 시인 ‘고향’지리적·실존적 외로움과 자연교감 모태서해터전 사람내음 풀풀 생생한 詩 호평100개의 섬으로 이뤄진 옹진군은 영화나 소설 등의 무대로 각광받아 왔다. ‘섬마을 선생’ ‘연애소설’ ‘시간’ 등의 영화가 옹진군의 섬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또 많지는 않아도 장석남·이세기 등 문단에서 인정받는 주요 문인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영화 속 옹진1967년 만들어진 김기덕(1934~) 감독의 영화 ‘섬마을 선생’에서 대이작도는 통속 영화의 이별 장소로 등장한다.영화 속 섬마을 처녀 영주(문희 분)는 섬을 계몽하려고 들어온 도시 청년 명식(오영일 분)을 짝사랑하지만, 명식이 타고 떠나는 배를 먼발치에서 안타깝게 바라본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목포 인근의 한 섬이지만 실제 촬영은 대이작도에서 이뤄졌다.섬마을 선생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은 ‘5인의 해병’(1961년), ‘맨발의 청춘’(1964년) 등으로 관객 동원에 성공하며 이름을 알린 1960년대의 스타급 감독이었다.이 작품은 서울에서 온 도시청년인 총각 선생님과 순박한 섬 처녀와의 수채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토대로 하면서 젊은 지식인과 구세대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특히 월남전·농촌계몽·도농 간의 대립과 갈등 등의 요소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온전히 반영하는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섬마을 선생’의 주요 촬영지였던 학교의 정식 명칭은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로 지금은 아담한 학교와 사택 등의 건물만 남아있다. 1992년 문을 닫은 이후 학교의 1천650㎡ 부지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희 소나무’도 유명하다.2002년 개봉해 16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한 이한감독의 영화 ‘연애소설’에서 소야도는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여행 장소로 그려졌다.‘연애소설’은 절친한 친구 사이의 두 여자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한 남자의 순수하고 슬픈 사랑 이야기다. 영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9] 옹진군의 문화재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9] 옹진군의 문화재 지면기사

    현존 最古 8세기 중후반 건조 ‘영흥도선’ 국내 해양사·선박사 획기적 발견 조기파시 전설 임경업 장군 사당 ‘충민사’ 꽃게잡이땐 지금도 풍어제 지내 선사시대 주거문화 자료 ‘패총’ 백령·연평·승봉·선재·문갑도 등 총 68곳 100개의 섬으로 이뤄진 옹진군은 유독 바다와 관련된 문화재가 많다. 2010년 9월 영흥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선박 ‘영흥도선’은 수중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선박임이 확인됐다. 연평도 어민들에게 조기 잡는 법을 알려준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 ‘충민사’는 옹진군 향토유적 제1호다. 옹진군은 섬 곳곳에 조개로 만들어진 무덤 ‘패총(貝塚)’이 많기로 유명하다. #보물선이 가라앉은 영흥도 앞바다 2010년 9월 ‘섬업벌’이라고 불리는 영흥면 무인도 서남쪽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던 윤은성씨가 청자 4점을 발견했다. 윤씨의 신고를 접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그 해 11월 추가조사를 통해 246점의 도자기를 발견했고, 이듬해 4월 75점을 더 발견했다. 섬업벌 인근 해역에 침몰한 고선박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연구소는 2012년, 2013년 본격적인 수중 발굴조사를 진행해 고선박 1척을 인양하고, 도자기 870여점을 출수(出水)했다. 이 선박은 ‘영흥도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흥도선 주변에서는 주로 청자가 발굴됐다. 유물은 대접과 접시 등 생활용품으로 구성돼 있었다. 무늬와 모양, 제작기법 등을 고려했을 때 12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다면 섬업벌에 가라앉은 고선박도 고려시대 선박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하지만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인양된 선박 안에는 고려시대 청자가 단 1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도기(陶器) 6점과 철제솥 12점, 동제용기 1점, 사슴뿔 2점이 확인됐을 뿐이었다. 이 도기병에는 고려시대 이전에 주로 보이는 파상집선문(波狀集線文·파도모양의 선이 여러 개 겹쳐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 문양은 5세기 무렵부터 백제와 신라지역의 도토기(陶土器)에서 많이 보였다가 9세기 전반 이후 점차 소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성 탄소연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8] 옹진 농특산물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8] 옹진 농특산물 지면기사

    영흥 포도 타지 비해 달고 저장성 좋아 인기 백령·연평 백색고구마 숙성 거치면 당도 UP 북도면 단호박 육질 단단 식감 굿 일찍 동나 옹진군 “섬마다 재배 작물 특화해 지원 계획” 인천시 옹진군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때문에 옹진군에서 나는 농산물은 그 양이 많지 않지만,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섬의 특성상 공해가 발생하지 않는 청정지역이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내리의 한 포도농장. 9천㎡ 규모의 포도농장에서 홍성도(66)씨가 포도 수확에 한창이었다. 이달 초부터 수확을 시작해 절반 정도 수확을 마친 상태다. 추석 전까지는 수확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홍씨는 설명했다. 농장 옆 평상에서는 그날 수확한 포도를 부인 김금분(66·여)씨가 판매하고 있었다. 20여 년 동안 이 곳에서 포도를 재배했다는 그는 영흥도의 포도가 다른 지역보다 당도가 높고 저장성이 좋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날씨가 좋아 수확량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홍씨가 이 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이전에는 보리밭이었다고 했다. 영흥도에서 포도재배가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라고 한다. 영흥도의 포도재배면적은 48만㎡이며, 한 해 출하되는 포도는 약 800t 정도다. 이는 옹진군 전체 포도생산량 1천500t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전국의 포도생산량 27만t에 비하면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좋은 품질로 인기가 높다. 홍씨는 “우리 포도의 당도는 18브릭스(Brix)로 타 지역의 것보다 2~3브릭스 정도 높은 편”이라며 “봄부터 가을까지 꾸준하게 관리하는 것도 영향을 미치지만, 영흥도의 지리적인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주기적으로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포도농사가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것보다 힘든 측면이 많다고 했다. 12월과 1월을 제외하면 제대로 쉴 수 있는 기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0여 년을 재배하면서 포도 맛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영흥 포도를 잊지 않고 찾아올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그는 “우리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7] 바다가 준 선물 옹진군의 수산자원 (下)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7] 바다가 준 선물 옹진군의 수산자원 (下) 지면기사

    ▲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어내는 연평도 어민. /옹진군 제공섬면적 전국 141위 불구 갯벌은 국내 15% 1만1천가구 중 4100가구가 어업통해 생계 ‘꽃게’ 수산물 판매 50% ‘으뜸 효자’ 어종 ‘까나리’ 달고 감칠맛 나는 액젓으로 유명 ‘홍어’ 2010년부터 한해 빼고 어획량 최고 ‘다시마’ 알긴산 함유 해조류 양식 최적지 옹진군의 절반이 넘는 주민들이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바다는 육지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삶의 터전인 것이다. 군 전체 1만1천여가구 가운데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가구가 4천100여가구로 농가 2천900여가구에 비해 월등히 앞선다. 옹진군은 섬 면적만 따지자면 172㎢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141위로 아주 작은 지역에 불과하다. 하지만 바다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옹진군이 관할하는 갯벌 크기를 살펴보면 갯벌 면적이 전국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옹진군은 결코 작지 않다. 옹진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자산인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수산 자원은 어민들의 주요 소득원이 되고 있다. 바다가 준 보물인 옹진군의 대표적인 수산자원을 살펴보자. ■ 꽃게 옹진군의 여러 수산물 가운데 으뜸인 꽃게는 옹진군 어민들의 소득을 올려주는 효자 어종이다. 지난해 옹진군의 전체 꽃게 판매량은 263억원으로 옹진군 전체 수산물 판매량 524억원 가운데 50%를 차지했다. 잡히는 양 또한 2천420t으로 전체 어획량 6천744t 가운데 3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어종이 꽃게다. 꽃게 중에서도 연평도 꽃게는 옹진군의 절반, 전국 생산량의 5%를 차지한다. 옹진의 바다에서 꽃게가 많이 잡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에서 기인하는 정치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어민들에게는 남북이 대치하며 빚어지는 정치적 불안 요소가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꽃게를 인간의 남획으로부터 보호했던 것이다. 좋은 꽃게가 나는 옹진의 자연 환경적인 요인도 있다. 꽃게는 바닷속 모래에 산란한다. 정확히 말하면 몸에 알을 붙이고 있다가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6] 바다가 준 선물 옹진군의 수산자원 (上)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6] 바다가 준 선물 옹진군의 수산자원 (上) 지면기사

    이른 아침 해경에 출항신고후 승선 납작 원기둥 모양 ‘통발’ 조업 시작 첫 틀 건졌지만 ‘가구’ 못채워 실망 아침 ‘꽃게 라면’ 달콤한 속살 ‘별미’ 12시간동안 24회 작업 20가구 건져 “中어선·북한군 조용히 지나갔으면” 옹진군의 바다는 과거 조기와 민어가 넘쳐나고 고기잡이 배가 몰려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파시의 무대이기도 했다. 더 이상 파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됐지만, 바다에 의존하는 삶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시의 주인공이 됐던 어종 대신 꽃게와 홍어·다시마 등 다른 수산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옹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바다만큼 믿음직한 보물은 없다. 옹진군의 살림을 책임지는 수산자원 가운데 가장 으뜸은 바로 꽃게다. 잡히는 양으로 보나 팔리는 액수로 보나 꽃게가 어민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꽃게 하면 연평도 꽃게를 가장 알아준다. 지난 5일 올해 가을 꽃게 조업이 시작된 연평도를 찾았다. 만선의 꿈을 품고 꽃게잡이 조업에 나서는 통발 어선에 몸을 실었다. ■AM 05:10 지난 5일 오전 5시 10분께 가을 꽃게조업이 시작된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의 연평해양경비안전센터. 하얀 장화를 신은 7.93t급 통발어선 수광호의 오현석(46) 선장이 가장 먼저 센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센터 밖은 아직도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전날 꽃게조업을 마치고 들어가려는 선장 오씨를 붙잡고 동행 취재를 요청하니 흔쾌히 허락했고 약속을 잡아 이곳에서 만났다. 수광호 선장이 들어오자 태평호와 길영호 등 다른 통발어선 선장도 잠시 뒤 안전센터를 찾아왔다. 출어에 앞서 ‘카드’라 부르는 출입항신고서를 받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선장들은 반가운 표정으로 날씨와 전날 조업량 등을 서로 궁금해했다. 조업개시 시각인 5시 40분을 5분 남겨두고 센터 직원은 ‘음주운전 하지 말고, 조업구역을 이탈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애타게 기다리던 ‘카드’를 나눠줬다. 선장들은 카드를 받아들고 각자 부두에 묶어둔 배로 향했다. 부두에 도착하니 오전 5시 38분이 됐다. 비가 내리던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5] 자연의 신비, 이작도 풀등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5] 자연의 신비, 이작도 풀등 지면기사

    끝이 안보이는 1.5㎢ 모래섬 사막에 온 듯 색다른 풍광에 물결 따라 파인 독특한 문양 게·조개 등 지천에 생물 서식 ‘해양보호구역’ 지정·보존중 2012년부터 체험관광 합법화 해사채취로 해안침식 가속탓 매년 줄어드는 ‘풀등’ 아쉬워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 남단에 위치한 ‘자연의 신비’ 풀등을 찾았다. 언덕 모양의 모래풀이라는 뜻을 가진 풀등은 밀물 때 물에 잠겨 사라지고 썰물 때 수면 위로 드러나는 모래섬이다. 국내 여러 해안에서 이같이 독특한 지형을 관측할 수 있지만, 면적이 1.5㎢에 달하는 이작도의 풀등은 크기에서 압도적이고, 유일하게 관광객이 직접 올라가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9시30분. 대이작도 작은풀 해수욕장에 대기 중이던 유선에 올랐다. 대이작도에서 7대째 살고 있다는 김유호(49) 선장이 모는 유선에 10여명의 관광객과 함께 탑승했다. 5분 동안 시원한 바람을 가르자 금세 풀등에 도착했다. 풀등의 표면은 일반 모래 사장보다 매우 단단했다. 발을 힘껏 굴러도 파이지 않을 정도였다. 물결을 따라 쌓이고 파인 모래는 풀등 표면 곳곳에 독특한 문양을 만들었다. 풀등 위에서 육안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등은 컸다. 이날 풀등을 탐사하는 데 주어진 2시간 동안 풀등을 모두 둘러보기가 어려웠다. ‘대이작도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 시민모니터링’을 수행한 인하대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1월 조위가 136㎝일 때 풀등의 면적은 1.45㎢로 관측됐다. 모래가 드넓게 쌓여있는 풀등 위에서는 마치 사막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막 양쪽의 푸른 바다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이작도 풀등이 아니면 느껴보기 어려울 듯했다. 이날 풀등에서는 다양한 해양 생물도 볼 수 있었다. 대이작도의 한 주민이 ‘맛(죽합)’을 캐고 있었다. 맛의 숨구멍을 찾아 삽으로 얇게 뜬 뒤 구멍을 따라 끝이 뾰족한 쇠막대기를 넣어 맛을 고정시켰다. 맛을 고정한 뒤 숨구멍 옆쪽을 파서 맛을 캐내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방식으로 10여분 만에 길죽한 대나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4] 인천 옹진 섬 방언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4] 인천 옹진 섬 방언 지면기사

    가까운 육지말 닮지만 충청·황해·경기 혼재뱃길 전파후 뒤섞인 ‘토박이 말’ 섬마다 독특교통·통신 발달로 외지인 몰려 점차 사라져작은 고동→‘갱구’ 표현 등 이젠 흔적만 남아섬은 고립돼 있다. 그리고 정해진 뱃길을 통해서만 오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섬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전파경로와 변화과정이 육지와는 다른 특색을 보이게 마련이다. 인천 옹진군의 여러 섬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인 흐름, 행정구역의 변화에 따라 옹진 섬의 언어도 그만의 독특한 특색을 갖게 됐고 ‘옹진 방언’이라 할 수 있는 언어도 형성되었다. 지금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표준말을 주로 사용하는 통에 일상 속에서 옹진 토박이 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옹진 섬 만의 언어는 계속 연구되고 있고, 토박이를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옹진군 섬 방언옹진군의 각 섬은 어디 출신이 주로 정착해 살았느냐에 따라서 언어의 특성이 달라진다. 옹진군은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 백령·연평·대청 등 서해5도는 황해도와 가깝고, 덕적도는 충청도와 경기 남부지역과 가깝다. 또 과거에는 행정구역이 경기도·황해도 등 제각각이었다.그래서 옹진군의 언어는 섬 별로 가까운 육지의 언어를 닮아 있기도 하지만 충청도·황해도·경기도의 방언이 혼재돼 있는 독특한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덕적도는 기본적으로 충청도 방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피란민이 정착하면서 황해도 언어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오랜 세월을 통해 독자적인 언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2012년 발간한 옹진군지를 보면 옹진군 방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옹진군 방언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성은 받침 ‘ㅈ·ㅊ·ㅌ’이 각각 ‘~이·~을·~에·~으로’ 등 모음을 만나면 ‘ㅅ’으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낯을→나슬’, ‘낯에→나세’, ‘꽃을→꼬슬’, ‘꽃이→꼬시’, ‘팥이→파시’, ‘솥이→소시’, ‘시루밑을→시루미슬’이라고 발음 나는 경우다.또 ‘아·어·오·우·으’가 ‘애·에·외·위·이’로 바뀌는 역행동화 현상도 나타난다. 굉이(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3] 옹진군 섬과 에너지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3] 옹진군 섬과 에너지 지면기사

    소야도·소이작도 해역 조류이용 주목… 상용화 땐 8천억 규모 발전단지 조성해상 풍력도 중요 자원… 영흥화력, 수도권 전기 공급·온실가스 ‘뜨거운 감자’인천 옹진군 섬들이 해양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 전기를 생산해내는 에너지 자립 섬으로 우뚝 서고 있다. 육지와 떨어진 섬이라는 불리한 지리적 요건이 오히려 청정에너지를 활용하기에 제격이었다. 바람과 조류·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양질의 전기를 생산하는 친환경 시설이다. 다만, 석탄연료를 사용하는 영흥도 화력발전소 증설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바다는 에너지다옹진군이 품고 있는 바다는 무궁무진한 해양에너지원을 갖고 있다. 가장 주목되고 있는 것은 옹진군 소야도와 소이작도 사이 해역의 조류발전이다. 조류발전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는 조력발전과 달리 빠른 해수의 흐름을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발전기술이다. 남해안의 경우 울돌목이 대표적으로 조류가 센 지역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인천시가 지난 2010년 소야도~소이작도 해역 조류속도와 해저지형을 조사한 결과 평균 유속이 3m/s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는 조류발전 기술이 상용화되면 8천억원 규모의 200MW급 조류발전단지 조성을 추진할 계획이다.인천시 관계자는 “해저케이블 문제 등 아직 상용화를 위한 여러 과제가 남았지만, 이미 소야도·소이작도 해역은 에너지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사업비가 많이 들어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200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해상풍력단지도 중요한 해양에너지 발전이다. 2010~2013년 대초지도와 덕적도 인근의 풍향이 평균 6.5~7m/s인 것으로 나타나 풍력단지를 개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4천600억원 규모의 97.5MW급 발전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인데, 이 역시 기반시설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영양염류가 풍부한 한강하구 서해안의 특성을 이용한 해양바이오에너지 개발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해양바이오에너지는 바다의 미생물을 통해 얻은 에너지 원이다. 여기에 화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 ‘에너지 독립’ 외치는 덕적도 지면기사

    # 인천 해양에너지의 메카, 덕적 에코아일랜드덴마크의 삼쇠(Samsø)섬은 114㎢ 면적에 4천명의 인구가 사는 작은 섬이다. 삼쇠섬은 섬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만들어내는 ‘에너지 독립 섬’으로 유명하다. 해상에 설치된 발전기는 섬에서 사용하는 열·교통뿐 아니라 섬과 내륙을 이어주는 배에 필요한 에너지도 생산해 낸다. 태양열과 풍력·바이오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잉여전력은 에너지시장에 판매해 큰 수익을 얻고 있다. 인천 앞바다의 섬들도 덴마크 삼쇠섬처럼 에너지를 100% 자급자족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덕적도 ‘에코아일랜드’가 있다.덕적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60년대 중반으로 알려졌다. ‘덕적도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최분도 신부가 부산 레이더기지에서 발전기를 들여와 일반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들은 콘크리트로 직접 전신주를 만들어 각 가정에 전기를 보급했고, 이때 만든 사각기둥 모양의 전신주는 아직도 덕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후 덕적도를 비롯한 도서 지역에는 한국전력공사가 담당하고 있는 디젤발전기가 도입됐다.최분도 신부가 처음 전기를 들여온 지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덕적도가 100% 신재생 에너지만을 사용하는 무공해 청정섬으로 다시 태어난다. 태양에너지·바람에너지·바이오에너지·조류에너지·지능형전력 등 5가지 청정에너지를 발전원으로 이용하는 에너지 자립섬 ‘에코아일랜드’ 사업이다. 인천시는 지난달 KT컨소시엄을 에코아일랜드 조성사업 민간 사업자로 선정해 2018년까지 이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KT는 2018년 7월까지 덕적 본도에 1.5㎿ 풍력발전, 0.5㎿ 태양광 발전, 6㎿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설을 설치해 현재 디젤발전량의 40% 이상을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할 계획이다. 2016년에는 덕적면 지도에 신재생에너지 구축 정부공모사업을 유치해 기존 디젤발전을 100% 신재생에너지 전력설비 시스템으로 바꿀 예정이다.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2] 옹진군의 설화(說話)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2] 옹진군의 설화(說話) 지면기사

    설화(說話)를 알면 섬이 더욱 더 재밌어진다. 설화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담이나 전설을 일컫는다. 글이 아니라 말로 전하는 ‘구전문학’이기 때문에 전승자의 기억에 따라 한 가지 이야기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설화에는 당시 생활상이나 풍습이 반영돼 있다.바다로 둘러싸인 섬 지역은 내륙보다 비교적 설화가 많이 남아있으며, 설화의 원형도 잘 보전돼 있다. 옹진군은 인천 내륙의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대표적으로 서해5도인 연평도를 비롯해 옹진군 전역에서 어업의 신으로 떠받드는 임경업 장군 설화가 있고, 백령도가 주요 무대 중 하나인 심청 설화가 있다. 대청도에는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1320~1370)가 유년시절 귀양살이를 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각 섬의 특정 장소나 지명에 얽힌 이야기도 많아서 설화를 알고 현장을 찾아가면 색다른 재미도 누릴 수 있다. 앞으로 옹진군 섬을 찾는다면 오래된 가게에 들러 주인장에게 섬에서 전해지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 하나쯤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어업의 신 임경업 장군조선 중기 명장 ‘조기잡이 시초’ 신으로 모셔연평도 안목어장 ‘어살’ 40개 설치 전통 조업우리나라가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중기 명장이었던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장군 설화는 연평도에서 시작됐지만, 옹진군 전역은 물론 충남 태안반도까지 널리 퍼져있다.병자호란 패전 직후, 의주 부윤이던 임경업 장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임 장군은 상인으로 위장해 중국에 잠입하기로 했고,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뱃길 중간에 있는 연평도에 정박했다. 식량과 식수 등을 구하기 위해서다.연평도 조기잡이 배 선원으로 일했던 노창식(76) 씨는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은 겁을 먹은 선원들이 임경업 장군이 구출작전을 포기하게 하려고 몰래 식량과 식수를 바다에 버렸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풍랑을 만나는 바람에 식량이 몽땅 떠내려갔다고도 한다”고 말했다.식량이 필요했던 임 장군은 안목이라 불리는 연평도 앞바다에 물이 빠졌을 때 부하를 시켜서 가시나무를

  •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1] 옹진군의 풍어제

    [강화·옹진 인천20년 보석을 다듬자·31] 옹진군의 풍어제 지면기사

    연평도,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 설화 유명대규모 제례 전통 수년전부터 자취 감춰백령도 주민 대부분 기독교·천주교 신자영흥도만이 수협 중심 매년 대보름 진행“마을화합 위한 문화로 명맥 이어갔으면”뱃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작은 배에 올라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바다로 나가는 것은 죽음의 공포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뱃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만선의 꿈을 이뤄줄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난 것이 풍어제다.풍어제는 섬이나 해안가에서 선원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를 일컫는다.풍어제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삼국시대 때부터 바다와 물을 관장하는 신에게 비는 제의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삼국시대나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군산도 일봉산에 오룡묘가 있는데 그 입벽에 오신상을 그려 놓고 선원들이 용왕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1771년(영조 47) 조선 후기의 문신인 서명응(徐命膺)은 ‘고사신서(攷事新書)’에서 “동해의 양양, 남해 나주(전라도), 서해 풍천(황해도). 북해 경성(함경도)에서 중사(中祀)인 해신제를 지냈다”고 썼다.풍어제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사해제(四海祭), 사독제(四瀆祭), 사해사독제(四海四瀆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나, 신에게 어민들의 안전, 풍어를 기원했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섬으로 이뤄진 옹진군에서도 매년 풍어제가 열렸다. 옹진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어제와 관련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연평도 임경업 설화다.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이 병사들을 이끌고 연평도 해역을 지날 때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한다. 임 장군이 병사에게 나무를 산에서 꺾어 오게 한 뒤 이를 세워놓고 축문을 써 읊으니 수 많은 조기가 잡혔다고 한다. 이후 서해의 각 섬에서는 임 장군을 신으로 모시게 됐다. 지금도 옹진군 연평도에는 임경업 장군 사당이 남아있다.바닷가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로 이어져 내려왔으나, 최근 들어 그 명맥이 약해지고 있다. 서낭당 등 제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