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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7] 이세기作 '생계 줍는 아침' 지면기사
생계 줍는 아침할멈 둘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살얼음 갯바위 틈새얼어죽은 한 마리 주꾸미라도 주우려갯바위를 걸어서굴바구니 들고 갯티에 가는생계 줍는 아침-이세기(1963~)노후 대책이란 말은 도시에서나 들어맞는다. 엄밀히 말해 섬에서는 '노후'란 게 있지를 않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일을 해야 한다. 손을 쓰지 않고서는 생계를 이을 수 없는 곳이 섬이다. 겨울이라고 다르지 않다. 굴까는 기구인 '좨'를 들고, 굴 담을 바구니를 메고 가는 섬 할머니 둘. 할머니들은 어제도 그제도 그 길을 오갔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 지금은 뭍에 나가 있는 자식들을 그 걸음으로 키워냈다. 갯바위 겨울바람은 유난히 시리다. 그 찬 바람을 이겨내며 바다와 맞닿은 섬의 둘레, '갯티'를 지켜왔다. 덕적군도가 고향인 시인은 잘 안다. 할머니들이 늙어가면서 섬의 생계 줍는 아침도 자꾸만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섬의 생계가 살얼음판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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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6]조병화作, 소라의 초상화 지면기사
소라의 초상화당신네들이나영악하게 잘 살으시지요나야 나대로히나의 생리에 맞는 의상을 찾았답니다 -조병화(1921~2003)어릴 적 소라딱지를 귀에 대 본 적이 있다. 그저 윙~ 소리를 낼 뿐이었다. 시 잘 쓰는 시인은 확실히 다르다. 소라와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니 말이다. 시인은 해방 직후 인생 진로를 놓고 고심하던 시절, 인천 월미도 해변에서 소라를 만났다. 시인의 첫 작품 '소라'(경인일보 2016년 7월 27일자 1면 보도)는 그렇게 태어났다. 시가 막힐 때마다,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마다 시인은 '소라'와 이야기를 나눴던가 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소라한테서 혼쭐이 났다. 너무 이해타산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그만 좀 영악하라고. 백사장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던 소라가 약삭빠른 인간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빠르고 늦고, 많고 적고 하는 것은 다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라고. 죽비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더디게만 보이는 소라의 걸음을 놓고, 자기 집을 지고 다녀야 하는 소라의 신세를 놓고서 속 터진다면서 비웃어 온 우리가 아니던가. 소라의 더딘 걸음이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느림의 미학에 대해, 소라의 단출한 껍데기가 화려하고 비싼 집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재산 관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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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5] 정호승作, 부평역 지면기사
부평역봄비 내리는 부평역마을버스 정류장 앞허연 비닐을 뒤집어쓰고다리 저는 아주머니밤 깊도록 꽃을 판다사람들마다 봄이 되라고살아갈수록 꽃이 되라고팔다 남은 노란 프리지어 한 묶음젊은 역무원에게 슬며시수줍은 듯 건네주고승강장 노란 불빛 사이로허옇게 쏟아지는 봄비 속을절룩절룩 떠나간다동인천행 막차를 타고다운증후군 아들의어린 손을 꼭 잡고 -정호승(1950~)찡하다. 어려움은 왜 이리도 뭉쳐서 오나. 몸이 불편한데 가난하기까지 하다. 거기에 어린 아들마저 다운증후군이라니. 아주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주안역이나 제물포역에서 꽃을 팔 수가 없다. 저는 다리를 이끌고, 아픈 어린 아들을 데리고 부평역까지 나선 것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인천지하철 1호선과 경인전철이 교차하는 곳, 인천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 꽃을 하나라도 더 팔 수가 있는 곳이다. 아주머니에게는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지만 팔다 만 꽃을 누군가에게 선사할 여유는 충분하다. 아마도 꽃을 닮았나 보다. 그런데 왜, 정이란 놈은 없는 사람에게만 넘치게 되는 것일까.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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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4] 조병화作, 소라 지면기사
소라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 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조병화(1921~2003)인천은 이렇게 뭔가가 꿈틀거리는 태동의 공간이다. 설사, 희망이 허무가 되더라도 쓸쓸함을 달래줄 그런 곳이다.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 뛸 수 있게 하는 쉼터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적 다작 시인 조병화의 첫 작품 '소라'는 해방 직후 인천 월미도에서 탄생했다. '물리학도'의 꿈을 접어야 하는 그 상실의 순간 조병화는 월미도에서 해변을 기어가던 새끼 소라를 만났다. '시인 조병화'가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뒤로 50년, 조병화는 50권 넘는 시집을 채울 만큼 엄청난 양의 시들을 쏟아냈다. 그에게 월미도 소라의 나선형 껍질은 마르지 않는 시의 샘이 되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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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3]고유섭作 ' 해변(海邊)에 살기' 지면기사
해변(海邊)에 살기 1. 소성(邵城)은 해변(海邊)이지요 그러나 그 성(城)터를 볼 수 없어요 차고 찬 하늘과 산이 입 맞출 때에 이는 불길이 녹혔나 보아요 2. 고인(古人)의 미추홀(彌鄒忽)은 해변이지요 그러나 그 성(城)터는 보지 못해요 넘집는 물결이 삼켜 있다가 배앗고 물러갈 젠 백사(白沙)만 남아요 3. 나의 옛집은 해변이지요 그러나 초석(礎石)조차 볼 수 없어요 사방으로 밀쳐 드난 물결이란 참으로 슬퍼요 해변에 살기 -고유섭(1905~1944)한국미술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이 고향 인천을 향한 정을 '미학의 개척자'답게 그려 냈다. 늘 거닐던 백사장, 파도가 이는 그 찰나의 순간에 2천 년의 세월을 담았다. 비류 백제의 전설 미추홀의 흔적은 찾을 길 없건만 그 세월, 파도는 해변의 모래를 삼키고 뱉기를 쉬지 않았다. 우현은 그의 호(號)가 말하듯 가물가물하게 먼 과거에 한참 뒤 미래의 모습까지도 투영시켰다. 지금 있는 것들도 먼 훗날에는 다 사라지고 파도와 모래, 그리고 슬픈 그리움만 남을 것이라고. 읽을수록, 알 듯 말 듯 현묘(玄妙)하다.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 통학하면서 문학을 익힌 우현의 젊을 적 초기 시 5편이 '우현 고유섭 전집'(열화당·2013)에 실렸는데, 여기 '해변에 살기'는 그중 하나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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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2] 이가림作 '밴댕이를 먹으며' 지면기사
밴댕이를 먹으며 무게 없는 사랑을 달아보고 또 달아보느라 늘 입속에 말을 우물거리고만 있는 나 같은 반벙어리 보라는 듯 영종도 막배로 온 중년의 사내 하나 깻잎 초고추장에 비릿한 한 움큼의 사랑을 싸서 애인의 입에 듬뿍 쑤셔 넣어준다 하인천역 앞 옛 청관으로 오르는 북성동 언덕길 수원집에서 밴댕이를 먹으며 나는 무심히 중얼거린다 그렇지 그래 사랑은 비릿한 한 움큼의 부끄러움을 남몰래 서로 입에 넣어주는 일이지… -이가림(1943~2015)지난 6월 21일, 장마전선이 북상 중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푹푹 찌던 한낮의 인천역 앞 북성동 언덕길 어귀. 신태희(74) 서점분(69) 부부가 이 자리에서만 수원집 간판을 내걸고 밴댕이를 판 게 30년이 넘었다. 조용하던 가게에 손님이 들었다. 10여 명이 겨우 앉을 좁은 공간에 노인 4명이 몰려드니 왁자하다. 30년 단골이라는 이들은 앉자마자 밴댕이와 소주를 시켰다. 수원집은 주인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아프기라도 하면 문을 못 연다. 남편은 새벽에 연안부두에서 물건을 떼고, 부인은 손질을 해서 내놓는 분업체계가 확실하다. 노부부의 건강에 수원집 밴댕이를 먹고 못 먹고 하는 문제가 달렸다. 밴댕이로 사랑을 전하려거든 노부부의 건강부터 기원할 일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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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1] 정호승作 '정서진(正西津)' 지면기사
정서진(正西津) 벗이여 지지 않고 어찌 해가 떠오를 수 있겠는가 지지 않고 어찌 해가 눈부실 수 있겠는가 해가 지는 것은 해가 뜨는 것이다 낙엽이 지지 않으면 봄이 오지 않듯이 해는 지지 않으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벗이여 눈물을 그치고 정서진으로 오라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히 노을 지는 정서진의 붉은 수평선을 바라보라 해넘이가 없이 어찌 해돋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해가 지지 않고 어찌 별들이 빛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들 인생의 이 적멸의 순간 해는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찬란하다 해는 지기 때문에 영원하다 - 정호승(1950~)사람들은 동해로 가려는데 시인은 서해로 오라 한다. 사람들은 일출을 희망으로 여기는데 시인은 일몰이 희망이라 한다. 반전이다. 바다면 바다, 농사면 농사, 공장이면 공장, 수많은 일자리가 널려 있어 밑바닥 인생에게도 기회의 터전이 되는 인천은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는 그런 도시다. '정서진'이라는 말이 한양의 궁궐 안 임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서쪽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자면 서울 사람을 부르는 호루라기로 여길 수도 있겠다 싶다. 인천은 그렇게 내일의 희망을 잉태하는 반전의 땅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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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0] 박목월作 '松鶴(송학)' 지면기사
松鶴(송학) 한 그루 老松(노송)을. 굽히지 않는 뜻이 빛 속에 환하네. 새삼 높게 트이는 眼睛(안정) 세상일이 안까지 보이시리니 스스로 흥겨워 너울거리는 가지들 그윽한 솔바람 소리에 귀도 열리고 학이야 千年(천년)을 살기로니 辱(욕)되지 않음이어. 날갯짓 한 번이 無限(무한)을 출렁이네. -박목월(1915~1978)청록파의 시인 박목월이 인천 현대 초등교육의 주춧돌을 놓은 백파 조석기(1899~1976) 선생의 회갑 상에 시 '송학'을 올렸다. 1959년 조석기 선생의 회갑을 맞아 묶은 책 '노변야화'의 첫머리에 실렸다. 백파는 6·25 피란을 가면서도 가족보다는 제자들을 먼저 챙겼고, 경상도 고향 땅을 팔아서 교육 경비를 댔다. 그가 있었기에 전쟁 직후 그 배고픈 시절, 인천 창영초등학교 학생들은 어린이은행을 운영하고 어린이신문을 만들고 골프를 배웠다. 굽히지 않는 한 그루 소나무와 욕되지 않는 학의 날갯짓으로 남은 백파. 지금의 인천 교육은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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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9] 이가림作 '바지락 줍는 사람들' 지면기사
바지락 줍는 사람들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저녁 종소리가천도복숭아 빛깔로포구를 물들일 때하루치의 이삭을 주신모르는 분을 위해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간절함이여거룩하여라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이가림(1943~2015)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땀을 흘리지 않고 손쉽게 돈을 버는 쪽에 더 신경을 쓰고는 한다.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도 않게 되었다. 시인은 20여년 전 송도갯벌의 해질 녘 풍경을 성스러운 눈길로 포착했다. 노동이 종교만큼이나 신성하다는 메시지가 간절하다. 밀레(Millet)의 그 유명한 그림 '이삭 줍는 사람들'이나 '만종'을 떠올리게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천은 그런 땀내나는 삶의 터전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줄 약속의 공간이었다. 계속해서 그런 신성함이 물씬 풍겼으면 좋겠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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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8] 함민복作 '밴댕이' 지면기사
밴댕이팥알만 한 속으로도바다를 이해하고 사셨으니자, 인사드려야지이분이우리 선생님이셔 -함민복(1962~)강화도 사는 시인이 강화의 대표 수산물 밴댕이 속을 참 깊게도 들여다보았다. 밴댕이 속에서 바다를 건져내다니. 밴댕이 속보다도 더 작은 심보를 가진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 늘 안절부절못한다. 정작 남에게는 '밴댕이 소갈딱지네' 하면서 욕을 해댄다. 이 짧은 시 한 편이 우리의 좁디좁은 속과 바다만큼이나 너른 밴댕이 속에 관하여 오래도록 생각하게 한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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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7] 조병화作 '추억' 지면기사
추억잊어버리자고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하루이틀사흘여름 가고가을 가고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잊어버리자고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하루이틀사흘 -조병화(1921~2003)시는 이렇게 역사가 되어 남는다.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서도 해녀들이 물질하고 조개 줍던 때가 있었다. 이제 인천의 도심에서는 바다 기슭이라고 말할 만한 데도, 해녀라는 말도 사라져 버렸다. 해방 후 인천, 그 추운 겨울. 시인은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강술을 마시면서 한 구절씩 토해냈다.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은 중학생 때 시인을 따라 인천 바닷가를 걷다가 이 시를 받아 적었다고 기억한다. 70여 년 전 인천의 살아 있는 바다 풍경이 자꾸만 아릿거린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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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6] 이생진作 '식후경-호룡곡산' 지면기사
식후경-호룡곡산 아, 올라오길 잘했다 눈을 속여서는 안 되지만 눈을 굶겨서도 안 된다 식후경食後景이란 눈을 굶기고 입만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시가 배부르려면 눈이 잘 먹어야 한다 요즘 나는 밥보다 시를 먹는 기분이다 이렇게 쓰며 호룡곡산 정상에 올라 눈에게 식사 대접한다 -이생진(1929~)우리의 대표적 섬 시인이 인천의 작은 섬 무의도 호룡곡산에 올라 얼마나 눈 호강을 했으면 눈에게 잘 먹였다고 했겠나 싶다. 늘 가시권에 놓인 인천국제공항 영종도에 잇닿아 있는 섬 무의도에만 가도 시인처럼 특별한 눈맛을 경험할 수 있다. 도심에 찌든 눈을 잠깐이나마 쉬게 하려거든, 근시안적 생활에 지쳐 가까운 곳이 안 보이기 시작한 늙어가는 눈에게 새참한 먹거리를 선물하고 싶다면, 일단 한 번 올라 볼 일이다. 눈이 불러 내려오기 싫을지도 모른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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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5] 이색作 '교동' 지면기사
교동바닷물은 끝이 없고 푸른 하늘은 나직한데돛단배 나는 듯이 오고 해는 서산에 걸렸네산 아래 집집마다 막걸리를 걸러 내어파 뜯고 회를 칠 제 닭은 홰에 오르려 하네 -이색(1328~1396)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교동(喬桐)'이란 제목의 시 세 수 중 하나다. 셋 중 이 작품만이 역대 최고의 문장들만 모았다는 '동문선'에 실렸다. 번화한 해상 물류 중심지 강화 교동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와 나가 놀던 닭이 둥지를 찾아드는 저녁, 동네 사람들은 한바탕 잔치를 벌일 모양이다. '이색의 삶과 생각'이란 책을 쓴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에 따르면 이 시는 목은이 쉰 되던 해인 1377년에 지었다. '교동 3수' 외에도 '교동에서의 놀이를 기록하다(記遊喬桐)'란 시도 '목은집'에 보인다. 이색이 노닐던 그 600년 뒤 지금 교동은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해 질 녘 고깃배도 맘 놓고 오갈 수 없다. 이색이 노래한 풍요와 평화를 언제나 다시 누릴 수 있을까.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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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4] 함민복作 '섬' 지면기사
섬물울타리를 둘렀다울타리가 가장 낮다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함민복(1962~)우리는 내 것과 네 것을 경계 짓는 담벼락을 높게만 쌓으려 한다. 그 높디높은 담에 가시철조망까지 얹고서도 안절부절못한다. 감시 카메라마저 설치한다. 결국 자기가 울타리 안에 갇히고 만다. 섬은 그런 우리와는 반대로 한다. 자기보다도 더 낮은 바다로 울타리를 둘렀다. 누구나 어디로든 오갈 수 있는 툭 터진 공간인 바다를 담으로 삼는다. 섬은 더 이상 바다에 갇힌 게 아니다. 생각을 바꾸니, 섬에서 배울 게 참 많기도 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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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3] 김소월作 '밤' 지면기사
밤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맘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이리도 무던히아주 얼굴조차 잊힐 듯해요.벌써 해가 지고 어둡는대요이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바다 바람이 찹기만 합니다.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하이얗게 밀어드는 봄 밀물이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뿐이야요. -김소월(1902~1934)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시 '진달래꽃'은 이렇게 인천에서 피었나 보다. 정녕코 떠나겠다면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다던, 그래도 굳이 가겠다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던, '진달래꽃'에서의 그 임과는 벌써 제물포에서 이별했는지도 모른다. '진달래꽃'이 1922년 7월에 발표됐는데, 원래 제목이 '제물포에서 밤'이었다는 이 시는 꼭 그 5개월 전에 세상에 나왔다. 이별의 정표로 뿌리겠다던 진달래꽃은 영변의 약산에서 자랄지라도 시 '진달래꽃'은 인천이 고향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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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2] 김기림作 '대합실' 지면기사
대합실인천역 대합실의 조려운 '벤취'에서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저마다해오라비와 같이 깨끗하오.거리에 돌아가서 또다시 인간의 때가 묻을 때까지너는 물고기처럼 순결하게 이 밤을 자거라. -김기림(1908~?)인천을 이처럼 순수하고도 깨끗하게 표현한 시를 본 적이 있는가. 하루 들렀다 가는 것만으로도 서울의 도심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순결의 땅으로 인천을 그렸다. 이 시는 1930~40년대 한국 시단을 대표했던 김기림이 1934년 발표했다. 그 옛날 인천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서울 사람들은 인천에서 육신의 때와 함께 탐욕의 때까지 벗겨냈다. 인천은 지금으로 치면 힐링의 땅이었던 것이다. 인천의 그 무엇이 그리했을까. 오늘날 인천은 과연 80년 전과 같이 아등바등 인간계의 스트레스를 날려줄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가.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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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 최성연作 '들국화2' 지면기사
들국화 2하도 볶이다 못해산 마루도 깎였는데,어찌 들국화는철 따라 피어나노?옛 모습차마 잊지 못해그 골짝에 피었다네. -최성연(1914~2000)인천시민들은 너나없이 2015년 10월의 문학산 정상 개방을 환호하며 반기고 있다. 바로 이때 우리는 아무도 불러내지 않았던 문학산의 시를 한 편 읽을 필요가 있다. 시조시인 최성연이 1965년 사진작가 이종화의 작품집 '문학산' 발간에 맞춰 지은 '들국화 2'. 50년을 들꽃처럼 그렇게 냉대받아 온 시다. 하지만 '볶이다'와 '깎이다'에 주목하는 순간 전혀 다른 시가 되어 우리 가슴을 아리게 한다. 1959년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문학산을 내놓으라는 으름장에 얼마나 많이 시달렸는지를 '볶이다'가, 미군을 앉히기 위해 비류 백제의 전설이 깃든 산 정상부를 무자비하게도 싹둑 잘라버린 사실을 '깎이다'가 고발한다. '들국화 2'는 더 이상 꽃의 노래가 아니다. 탯줄을 빼앗기고 말았던 문학산의, 인천시민의 눈물의 노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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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프롤로그] 자연과 사람 품은 시어는 '벽돌 한조각' 지면기사
섬·바다·공단 도시의 다양한 얼굴하늘·물·땅길열린 '기회의땅'으로가장 진솔한 '인천의 자기소개서'사람들이 시(詩)를 찾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 나왔던 초판본 시집이 불황의 서점가를 이미 강타했고, 안볼 것 같던 시인의 영화 '동주'는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사람들은 왜 다시 시에 빠져들기 시작했을까. 시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시 한 구절이 백마디 말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시의 매력일 것이다. 시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문학 장르로 꼽힌다. 시는 삿되지 않은 단정한 생각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언어로 표현한 순수의 결정체라고 할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무관심하여 시 한 줄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상을 너무 건조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이들을 위해 경인일보와 국립 인천대학교가 공동으로 '인천의 시'를 찾아 떠난다.인천을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 인천의 시들은 인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가장 바르고도 단정한 예술 장르라 할 것이다.조선 후기의 문인 임천상은 '시는 정(情)에서 생겨나고 정은 또 시(詩)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를 '인천'에 적용하면, 인천의 시는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겨나고 그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은 또 인천의 시에서 나온다는 의미가 될 터이다. '인천의 시'는 곧 '인천 사랑'인 셈이다.인천은 다양함이 특성인 도시다. 섬과 바다의 도시이기도 하고, 공단의 도시이기도 하며, 또한 하늘길과 바닷길, 고속도로의 시작과 끝인 길의 도시이며, 전국 팔도의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몰려든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이런 인천의 얼굴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 인천을 그린 시 또한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시기적으로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인천을 기억하고 인천을 좀 더 풍성하게 하는 시가 있다면 '인천의 시'로 발굴해 실을 작정이다.'인천의 시'는 한마디로 인천의 산천과 인천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읊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 '인천의 시' 한 편은 곧 인천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벽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