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9]선박건조 기술자 (下)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9]선박건조 기술자 (下) 지면기사

    조수간만 차 크고 수심 얕아 큰 배 건조 어려워…100여년 전에도 지원 목소리러일전쟁 직후 지역 최초 업체 등장… 중일전쟁 영향 선박 부품 제작 본격화1970년대 국제실업·한라중공업 같은 대규모 업체 영종도 둥지 '전성기' 맞아영종하늘도시등 개발사업 탓 자리 잃은 기술자, 조선소 따라 타 도시로 떠나인천 앞바다를 떠다니는 수많은 선박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수리할까? (주)디에이치조선 전성선(58) 대표는 "어선 정기검사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수리는 이곳에서 하지만 대부분 전남 목포 등 다른 지역에서 하고 있다"며 "중형 이상의 선박은 중국이나 부산에서 수리한다"고 했다.인천에 규모가 큰 조선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 배를 옮기는 것이다.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데다 수심도 깊지 않아 대규모 조선소가 있기 어려웠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990년 11월 인천 영종도 인천조선소(한라중공업, 현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열린 컨테이너선 명명식에서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은 "현재 인천조선소의 여건이 간만의 차이가 10m 이상 나고 조선소 부지가 협소해 일정 규모 이상의 선박 건조는 물론 수리를 원만히 할 수 없다"며 "불리한 여건을 타파하고 대(對) 해외 전수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조선소를 남해안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라중공업은 이듬해 전남 영암 조선소 부지를 사들여 1996년 이전했다.이 같은 상황은 1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1932년 인천상공회의소는 조선총독부에 '인천에서도 대형 선박이 건조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냈다. 인천상의는 청원서에서 '인천지역 조선소는 소형선 수리도 어렵다 보니 인천의 배들이 부산이나 중국 다롄(大連), 일본에 가서 수리하거나 건조하고 있다. 이는 인천뿐만 아니라 조선에도 막심한 손해이니 인천에서도 배를 건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인천지역 조선업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1900년대 초반 인천에 조선소가 처음 설립된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1933년 발간된 '인천부사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8]선박건조 기술자(上)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8]선박건조 기술자(上) 지면기사

    설계에 따라 절단된 철판조각 정밀하게 용접… 따로 조립한 선수와 합쳐 제작1990년대 초반까지 인근 마을 먹여살린 조선소, 중국시장 성장 탓 상황 기울어후임 기술자 구하기 힘들어져 "인천에서도 배 만들었다는 사실 기억해 줬으면"'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 저음의 기적,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 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폴리탄' -박팔양 '인천항' 中에서'배'라는 단어는 '사람이나 짐 따위를 싣고 물 위로 떠다니도록 나무나 쇠로 만든 물건'이라는 사전적인 뜻이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이러한 자연환경 때문에 예로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지금은 대형 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시나 울산 등이 '조선업 도시'로 유명하지만, 인천도 1908년 지역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가 설립된 이후 많게는 20여 개의 조선소가 배를 만들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는 인천에서 소형 잠수함까지 건조된 적이 있다.지난달 26일 인천 동구 화수부두에 있는 (주)디에이치조선을 찾았다. 인천 지역에는 현재 6개의 조선소가 있는데 모두 만석부두와 화수부두에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광국(51)씨는 20여 년 전 고향인 강원도 정선에서 인천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김씨는 "삼촌이 인천에 가면 배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올라왔다"며 "지금은 '인천에 무슨 조선소가 있나'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예전에는 인천에도 유명한 조선소가 꽤 많았다"고 말했다.이날 현장에서는 160t급 예인선의 바닥 부분을 조립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천 지역 한 예선업체에서 주문한 것이다. 디에이치조선 전성선(58) 대표는 "수십억 원이 넘는 선박을 미리 만들어 놓고 팔리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주문이 들어오면, 본격적인 설계 작업을 시작한다"고 했다.설계 이후에는 도면에 따라 강판을 절단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과거에는 조선소 한쪽에서 산소절단기를 이용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7]인천항 택시 '통선' 드라이버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7]인천항 택시 '통선' 드라이버 지면기사

    항구 자유롭게 이동하며 식료품 이송·돌핀부두 줄 작업 등 임무 수행주택사업 영향으로 수십시간씩 대기하던 1990년대 인천항 '전성기'부두시설 확충 탓 체선 현상 사라져… "점점 역할 줄어들어" 아쉬움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기차·지하철 등과 달리 택시는 출발 지점과 목적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택시는 이러한 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육상 교통수단이다. 바다에서 택시 기능을 하는 것은 '통선'(通船)이라고 불리는 작은 배다. 통선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에 식료품 등 물건을 운송하거나, 선박이 육상에 접안하지 못할 경우 선원들을 육상에 데려다 준다. 육상에 있는 선원이 바다에 있는 선박으로 이동할 때도 통선을 이용한다.통선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응급환자 이송, 줄 작업 등 여러 가지다. 통선은 급하고 필요한 일을 대신해 준다는 의미에서 '바다의 퀵서비스'라고도 불린다.지난 20일 오후 3시 인천 중구 관공선부두에서 통선 '해주5호'가 출항했다. 이날 해주5호가 맡은 역할은 인천항 북항 SK부두에 접안하는 유조선 'ST.KATHARINEN호'의 접안을 돕는 것. 컨테이너선 등 다른 선박과 달리 유조선은 원유 등을 하역하기 때문에 돌핀부두라고 불리는 말뚝형 구조물에 접안한다. 돌핀부두는 구조상 안벽으로 돼 있는 부두보다 충격에 약하다. 이 때문에 통선이 본선에서 줄을 넘겨받아 부두에 전해주는 과정을 거친다. 인천은 남항, 북항, 한국가스공사 인천 LNG기지 부두 등에서 돌핀부두가 운영되고 있다.이날 해주5호에 탑승해 줄 작업을 한 김영철(68) 부장은 1970년부터 인천항에서 통선 일을 했다. 통선 선장으로서 배를 운항하고, 갑판원 역할도 하는 등 통선과 관련해서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이날은 '줄 작업'을 맡았다. 해주5호가 인천항 북항에 다다르자 ST.KATHARINEN호가 예선의 도움을 받으면서 부두에 접근하다가 30m 정도 앞에 멈춰 섰다. 김영철 부장의 손짓에 해주5호 김순석(73) 선장이 선박을 본선 쪽으로 이동시켰다.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6]건강안보 최전선 지키는 검역관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6]건강안보 최전선 지키는 검역관 지면기사

    국립인천검역소, 메르스·에볼라·사스 같은 '해외 감염병 국내 유입 차단' 하루 10여척 달하는 여객선 위생·진료 내역·승객 체온 체크 등 시간 빠듯해방후 전재동포·北 피랍민은 물론 외국서 보낸 수재물자도 꼼꼼히 점검치사율은 높지만 치료법은 알려지지 않아 사회적인 공포감을 확산시켰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가 인천항을 통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립인천검역소 검역관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2014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도, 앞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인플루엔자A(H1N1) 등 감염병이 해외에서 유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감염병 국내 유입 차단의 최전선엔 항상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국립인천검역소가 있었다.지난달 22일 오후 2시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 보안구역 내 검역대. 마스크를 착용한 국립인천검역소 검역관들의 시선은 중국 산둥성 시다오(西島)에서 온 '화둥 펄 8호' 승객들의 열 상태를 체크하는 모니터에 고정돼 있었다. 이 모니터는 열 감지 카메라와 연결돼 있는데, 체온이 37.5℃ 이상인 승객이 지나가면 경고음을 내도록 설계돼 있다. 경고음이 울린 승객은 체온계로 다시 한 번 몸의 열 상태를 확인하고,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면 격리 조치 후 역학 검사 등을 진행하게 된다. 이 배의 검역을 맡은 신동혁 검역관은 "감염병에 걸리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발열"이라며 "입국자들의 열 상태를 확인하는 일은 검역의 가장 기본적인 일 중 하나"라고 했다.이 배가 출발한 중국은 검역감염병 오염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AI(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이 가능한 만큼, 철저한 검역이 필요하다. 올 1월1일 기준으로 가나 등 아프리카 34개국, 중국 등 아시아·중동 11개국, 가이아나 등 아메리카 14개국이 검역감염병 오염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콜레라와 페스트, 황열, 메르스 등 감염병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는 게 검역소의 주된 역할이다.검역관들은 승객들이 내리기 전 직접 배에 올라 여객선의 위생 상태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5]관세국경 수호자 세관 검색팀장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5]관세국경 수호자 세관 검색팀장 지면기사

    인천항 입·출항 50척중 2~3대 선별 불시점검선실·엔진실 등 벽틈·환풍구 빠짐없이 살펴수상한 움직임 선박, 직접 배 운전하며 순찰선원 강한 반발에도 '경고 메시지' 예방 효과경제성장기 외국물품 수십배 가격에도 불티사치품·건강식품·마약·농산물 밀수로 몸살미·영·호주 등 '안보 업무 강화' 세계적 추세바다 넘어 하늘길까지 '경제·안전' 보호 한몫국경을 오가는 물품에 관세를 매기는 곳, 바로 세관(稅關)이다. 명칭에 있는 '세(稅)'자 때문에 세금을 걷는 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무역 규모가 커지고 관세의 비중은 낮아지면서 각 나라의 세관은 마약, 무기, 밀수로부터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경인항부터 영흥항까지 바다의 관문을 지키는 인천본부세관(이하 인천세관)은 인천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지난달 31일 오전 9시께 인천항 제1국제여객부두. 중국에서 온 카페리(화객선)가 인천항에 들어오자 인천세관 인천항감시과 강정수(49) 계장(검색팀장)과 직원 8명은 선박 불시점검을 위한 출동 채비에 나섰다. 이 카페리는 2016년 12월 세관이 적발한 '개항 이래 최대 국제 금괴밀수(423㎏, 200억 원 규모) 사건'과 관련된 선박이다. 중국 단둥을 오가는 이 선박에서 일하던 조리사는 개인 선실에 금괴를 숨겨 수차례 빼돌렸다가 끝내 붙잡혔다. '우범선'으로 분류된 이 선박은 이날 인천세관의 불시점검 대상이 됐다."여기가 선실입니까?" 선박에 들어서자 강 계장은 선원이 머무는 선실을 찾아 문을 열었다. "쏘리(Sorry)." 긴 항해를 마치고 잠을 청하는 선원이 많다 보니 양해를 구하고 점검을 시작했다. 심하게 벌어진 벽 사이 틈, 열리지 않는 서랍, 유난히 깨끗한 환풍기, 풀려 있는 볼트. 조금이라도 수상한 것엔 강 계장의 손이 닿았다. 그렇게 5~6개 선실을 확인한 강 계장은 식당, 창고, 여객실을 차례로 살폈다. 강 계장은 천장과 벽을 손으로 계속 두드렸다. 소리가 다르면 무언가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기관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4]인천 신항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4]인천 신항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 지면기사

    45m 상공 한 평 남짓 조종실, 선박-야드 트랙터 쉴새 없이 컨 날라300만TEU시대 연 김세중 기사 "쉬워보이지만 섬세한 작업 고된 일"'국내 1호 컨 전용부두 인천항' 신항 STS 크레인 등 보면 격세지감세계 항만들과 컨 처리·속도 경쟁, 올해 '330만TEU 달성' 큰 그림무역과 수출입 동향 등의 소식을 전하는 TV 경제 뉴스를 볼 때마다 화면을 통해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영상이 있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컨테이너가 빼곡히 쌓여있는 컨테이너 터미널의 모습과 거대한 크레인이 긴 팔을 바다로 뻗어 배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모습이다.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이러한 이미지가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수출과 수입이 이뤄지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컨테이너 터미널이 그만큼 중요하고 우리 경제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1월 12일 오후 찾아간 인천 신항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은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럭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등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수출입 전초기지인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계는 우리가 흔히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 또는 컨테이너 크레인(Container Crane)으로 부르는 STS(Ship To Shore) 크레인이다.컨테이너 터미널은 크레인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설계·배치되어 있다.컨테이너 크레인을 조종하는 기사야말로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인력이다. 수출입 항만 물류의 시작과 끝이 바로 이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SNCT 김세중(42) STS 반장을 이날 만났다. 김 기사는 지난해 인천항의 300만 번째 컨테이너를 하역한 사람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지난해 인천항의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은 처음으로 300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를 넘었다.김 기사는 1천700TEU급 컨테이너 화물선 'NordClaire'호에서 컨테이너를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자 부품 등 원·부자재를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바닷길로 세계를 잇는 외항선 선장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바닷길로 세계를 잇는 외항선 선장 지면기사

    복잡한 항만 인근 벗어나면 항로 자유30년경력 박성택 선장 "정해진 길 없어"날씨·안전·연료 효율 등 고려해 선택1883년 개항 이후 급격히 성장한 인천항청도항로 폐지로 지역경제 큰 타격 받아산업화 시대부터 '수출입 항만' 자리매김국제화물 운송의 99.7% 바다 통해 교역車·식료품은 물론 스포츠·문화도 '전파'세계화 시대, 북극 루트 등 주도권 전쟁육지에는 차량이 다니는 도로와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있다. 하늘은 각 나라의 상공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기가 이용할 수 있는 '하늘길'이 정해져 있다. 바다는 어떨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가 정답이다. 인천항과 같은 항만 인근에는 배들이 이용해야 하는 '바닷길'인 항로가 있다. 항만마다 많은 선박이 다니고 있어 충돌·좌초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천 내항에서 출발한 배는 문갑도 인근 해역까지 정해져 있는 '서수도'라는 출항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서수도 항로는 출항하는 선박만 이용할 수 있는 '일방통행 길'이다. 마찬가지로 입항하는 선박만 이용할 수 있는 항로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각국에서 정한 '항만 인근 항로'를 벗어나면 정해져 있는 길은 없다. 이곳에선 선박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없기도 한' 이유다. 국가와 국가를 오가는 선박들은 자신만의 '항로'를 선택해 바다를 항해한다. 초대형 유조선(VLCC, Very Large Crude oil Carrier) C.VISION호는 이란과 쿠웨이트에서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 인도 남쪽 연안, 말라카해협, 싱가포르 해협 등을 지나 지난 13일 오후 인천 북항 SK인천석유화학 부두에 도착했다. 항해 기간은 20여 일. 하지만 정해져 있는 항로를 지난 기간은 하루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기간은 선사와 선장이 배가 가는 길을 '선택'한다.이날 C.VISION호에서 만난 박성택(56) 선장은 "그 넓은 바다에 정해진 길이 있을 수 없다"며 "목적지와 출발지가 같더라도 매번 가는 길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2]'바다의 길잡이' 해상교통관제사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2]'바다의 길잡이' 해상교통관제사 지면기사

    대이작도 인근~영종대교 남단 598㎢ 3교대 근무하는 18명, 밤낮없이 살펴하루 수백척에 달하는 선박들과 교신위치·움직임 파악… 정박·운항 지시바람·조류 등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첨단장비 발달에도 '사람' 역할 중요"인천항 VTS. 여기는 시노코인천호입니다. 콜사인(선박 호출부호) DSFR9. 현 시각 장안서 2마일 지점 통과 중 인천 관제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팔미도 도선점 통과예정시간은 9시 50분, 목적지는 송도 한진컨테이너터미널입니다."지난 9일 오전 9시 인천 연안부두 인근에 있는 인천항 해상교통관제센터(VTS, Vessel Traffic Service)에서 인천항에 들어오는 선박의 '입항 보고' 무전이 울렸다. 이 배는 중국 옌타이(煙臺)에서 인천항에 들어오는 컨테이너 선박이다. 인천항에 입항하는 화물선과 특수목적선, 대형 어선은 대이작도 인근 해상 3㎞(장안서 2마일) 전에 반드시 인천항 VTS에 입항 보고를 하게 돼 있다. 자유롭게 운항하다가 인천항 VTS 관제 구역에 진입하면 해경의 통제를 받는다.VTS는 인천 앞바다의 안전 길잡이다. 연안에 들어온 배가 안전하게 항만에 정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곳에서 일하는 해상교통관제사의 역할이다. 인천항 VTS에서 근무하는 방호철(31) 해상교통관제사는 "관제사의 임무는 인천항에 드나드는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사고 예방을 위해 조언하고 지시하며,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 사실을 재빨리 전파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업무를 설명했다.방 관제사가 근무하던 지난 9일 인천항에 입항하는 도선(導船) 대상 선박은 46척이다. 이날은 전날 밤 10시부터 풍랑주의보가 내려졌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입항 선박이 적은 것이라고 한다. 평상시 인천항 도선 대상 선박은 60여 척 수준이다. 외국적 선박과 2천t 이상의 대형 선박에만 도선사가 탑승하기 때문에 일반 선박까지 합치면 하루 수백 척의 선박이 인천항 VTS와 교신하고 있다.방 관제사가 일하는 관제실은 6층 규모의 인천항 VTS 제일 꼭대기에 있다. 삼면이 바다가 보이도록 탁 트여 있는 관제실이지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작은 어촌마을서 물건너온 수많은 사연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작은 어촌마을서 물건너온 수많은 사연 지면기사

    식민지·전쟁·산업화등 역사 순간도시를 움직인 인물·사건 재조명인천은 바다의 도시다. 바다는 인천이 성장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바닷길은 사람과 물품이 오가는 통로가 됐고, 인천 앞바다 섬들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소중한 자원이 됐다. 135년 전, 작은 어촌마을 '제물포'가 개항하면서 인천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전에도 인천은 서해안 주요 도시와 서울, 그리고 중국과 일본까지 뱃길이 이어지는 등 해상 교역의 중심지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1883년 개항은 닫혀 있던 도시를 연 것이 아닌, 기존 국제무역항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봐야 할 것이다.일제 강압의 개항이라는 점에서 많은 아픔도 겪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경제 수탈의 창구가 됐고, 조선의 항만노동자들은 일제의 압박과 착취에 맞서 싸워야 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항만시설 대부분이 파괴돼 항만기능을 상실했다.그 어려웠던 개항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인천항은 역사를 써 나갔다. 1918년 갑문식(閘門式) 제1선거가 건설되면서 10m가 넘는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했으며, 1974년 제2선거 건설로 최대 5만t급 대형 선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해 내항 4부두에는 대한민국 제1호 컨테이너터미널이 건설됐다. 이후 인천항은 남항·북항·신항 개발로 외항시대를 열었으며, 지난해 드디어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300만TEU'를 달성했다. 이제 인천항은 세계 30위권 컨테이너항만 진입을 목표로 뛰고 있다.인천항 발전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기술자를 비롯해 선장, 등대지기, 어민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인천항을 움직이고,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다.인천에 올해는 큰 의미가 있다. 15년 만에 '바다의 날' 기념식이 개최되며 등대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국제항로표지협회(IALA) 콘퍼런스'도 열린다. 인천항 갑문이 축조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경인일보는 이같이 의미 있는 해에 연중기획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

  •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프롤로그]2018년 바다의 날 기념식 개최지 '인천'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프롤로그]2018년 바다의 날 기념식 개최지 '인천' 지면기사

    고대부터 대중교역 중심지였던 인천근대개항기 선진문물 유입 통로 역할현대엔 농어촌·물류·관광 복합도시로시민들 항만시설·섬등 소중함 잘몰라지역경제 대들보 '혐오 낙인' 안타까움2018년 대규모 관련 행사 연이어 열려'해양도시'로서 정체성 되돌아볼 적기①프롤로그인천은 다양한 빛깔을 가진 복합도시다. 농촌과 어촌, 공장지대와 주거단지, 70·80년대 모습을 재현해 놓은 듯한 구도심과 마천루가 즐비한 신도시를 갖추고 있다. 해방 이후 또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부터, 일자리를 찾아 삼남 지방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사는 곳이 '인천'이다.인천의 다양한 색깔 중 하나는 '해양도시'다. 태생부터 그렇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인천은 삼국시대부터 국제무역항 구실을 했다. 중국과 가까운 데다 서울 접근성도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인천은 해상 교역이 발달할 수 있었다.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부산과 원산에 이어 1883년 인천이 개항된다. 조선 장악과 대륙 진출을 노린 일제의 강제적 개항이었다. 이로 인해 인천항은 쌀과 소금 등 자원 수탈의 창구이자 군사 기지가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개항은 인천이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고 인천항의 국제무역항 기능을 강화하는 계기도 됐다. 인천항은 1918년 10월 갑문식(閘門式) 제1선거가 건설되면서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했다. 이전에는 10m가 넘는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해 썰물 때 대형 선박의 접안이 불가능했었다. 1974년 5월에는 제2선거가 완공됐고, 선거 남측에 소형 선박을 수용하기 위한 연안부두를 건설하게 됐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부두 조성, 하역장비 기계화 등 인천항은 근대적 항만시설을 하나둘씩 구축해 나갔고,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다. 1992년 한중수교는 인천항 발전의 중요 계기가 됐다. 인천항을 통한 대(對)중국 수출은 매년 두 자릿수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2004년 남항을 시작으로 북항과 신항이 개발되면서 물동량이 많이 증가했다. 인천항은 2015년 광양항을 제치고 전국 2위의 컨테이너항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