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20·끝] 인천 바다의 전쟁과 평화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20·끝] 인천 바다의 전쟁과 평화

    인천 바다에선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과 북이 맞닿아 있는 바다의 경계선인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선 남북의 무력 충돌이 빚어졌고,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제국주의 세력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인천 바다가 해양, 국가안보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절한 인천 알리미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 주제는 인천 바다를 둘러싼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소 무거운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바로 출발해 보겠습니다.전쟁의 역사 담긴 '인천 바다' 삼국시대, 여몽전쟁 등 국란 때 최전선에 있었던 인천한국전쟁 전세 뒤바꾼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도 인천의 바다는 전쟁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대군을 이끌고 인천 바다를 통해 백제를 침공했습니다. 인천 덕적군도의 하나인 소야도의 이름은 소정방이 대군을 이끌고 정박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소야도 북악산 기슭에는 소정방이 진을 쳤다는 '담안'이라는 유적이 있습니다.여몽전쟁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국란 때에도 인천은 항상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인천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 프랑스 함대가 조선을 침략해 강화도를 점령·약탈한 병인양요(1866년)와 조선과 미군 간 강화도 손돌목 전투로 시작된 신미양요(1871년)가 치러졌던 공간입니다. 청일전쟁(1894년), 러일전쟁(1904년) 또한 인천이 핵심 지역이었습니다.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1950년)은 인천의 팔미도 등대와 주변 섬을 장악하며 시작됐습니다.정전협정(1953년) 이후 발생한 남북의 첫 해상 교전인 연평해전(1999년)과 제2연평해전(2002년)이 있었고, 2010년엔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가슴이 무거워지는 일들입니다.해군의 첫 기지 인천우리나라 해군은 손원일 제독이 창설한 '해방병단'이 시작해군의 첫 기지 설치된 인천… 미군 선발대에 의해 구성돼 인천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9] 들어본 적 있니 '인천의 조선소'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9] 들어본 적 있니 '인천의 조선소'

    '배를 만드는 곳' 하면 대형 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나 울산 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도시에만 배를 만드는 곳이 있는 건 아닙니다. 바다의 도시 인천에도 조선소가 있습니다. 1900년대 초반부터 조선소가 설립돼 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일제강점기 때는 소형 잠수함이 인천에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예전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조선소가 인천에 꽤 많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인천항이야기 스무 번째 주제는 바로 '조선소'입니다. 바로 출발해 보겠습니다. 개항 이후 설립된 인천의 조선소 인천 최초의 조선소는 러일전쟁 직후 건설된 '마쓰다 조선소'그 이후 1910년대에 조선 자본으로 '인천철공소'가 문 열어해방 이후 침체기를 겪었지만 1970년대를 지나면서 활성화 1933년 발간된 '인천부사'를 보면 인천 지역 최초의 조선소는 러일전쟁(1904~1905년) 직후 건립된 '마쓰다 조선소(光田造船所)'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곳에선 소형 기선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1910년대엔 조선 자본으로 만들어진 '인천철공소(仁川鐵工所)'가 문을 엽니다. 인천철공소는 인천 내항 1부두와 갑문 사이에 있던 '사도'라는 섬 주변을 매립해 운영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200t 미만의 배를 만들고, 500t 미만의 배를 수리했다고 합니다.일제강점기 일본은 인천에 조선과 선박 부품 제작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1937년 설립된 '조선기계제작소'입니다. 이곳에선 소형선 엔진으로 사용하던 200마력과 380마력 야끼다마(燒球) 엔진을 생산했다고 합니다.해방 이후 침체기를 겪었던 인천 조선업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활성화됐습니다. 이 시기 인천에는 '국제실업'과 '인천조선공업' 등 대규모 조선업체가 있었는데, 국제실업은 4천500t급, 인천조선공업은 2천400t급 선박을 건조할 수 있었습니다. 1977년엔 한라중공업이 인천 영종도에 '인천조선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8] 바다 안전 지킴이 '해양경찰'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8] 바다 안전 지킴이 '해양경찰'

    우리나라 바다의 넓이는 44만3천㎦입니다. 우리나라 육지 면적의 4.5배 정도로, 매우 넓습니다. 어족 자원의 보고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경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입니다. 사고가 나면 수많은 생명을 한순간에 잃기도 하는 위험도 도사립니다. 해양경찰은 이런 바다를 지키고, 바다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창설됐습니다.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가면 'SAVE LIFE'라는 문구와 함께 파도를 가르는 배가 외부에 설치된 건물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해양경찰청입니다. 전국의 해양경찰을 인천에서 총지휘하는 것인데요, 이번 주 주제 '해양경찰'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해경의 출발경비함정 6척 658명 작은 조직으로 시작일본 어선의 해역침범 단속이 주된 임무해양경찰청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우리나라 해양경찰의 역사는 1953년 시작됐습니다. 내무부 치안국 소속으로, 부산에 청사를 뒀다고 합니다. 경비함정 6척에 정원이 658명인 작은 조직이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는 일본 어선이 우리 해역에 침범하는 것을 단속하는 게 주된 임무였습니다. 1964년의 경우를 보면, 월평균 300척의 일본 어선이 우리나라 해역을 침범해 연간 22만t의 수산물을 잡았다고 합니다. 일본 어선의 불법 조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컸고, 해양경찰 경비함정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 활동까지 벌어졌다고 하네요.일본의 불법 조업이 점차 줄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도권이면서도 북한과의 접경 해역이 있는 인천의 중요성이 부각됐습니다. 해양경찰 조직이 확대되면서 1979년 인천 중구에 해양경찰대 본부가 들어서게 됩니다.1980년대만 해도 경비함정 내에 화장실이 없어 갑판 위 깃대를 잡고 용변을 봐야 할 정도로 시설이 열악했습니다. 쥐가 신발과 양말을 갉아 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하네요.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함정 생활이 예정보다 길어지면 식량이 떨어져 섬 주민들에게 식량을 얻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해경의 성장과 위기 세월호 참사 이후 18년 만에 독립기관 기능 잃었지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6] 남북극 연구 전초기지 '국내 유일 쇄빙선' 아라온호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6] 남북극 연구 전초기지 '국내 유일 쇄빙선' 아라온호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절한 인천 알리미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 주제는 '아라온호'입니다. 남극과 북극의 연구기지 등에 물자를 보급하고 해상 연구 등을 수행하는 걸 주요 임무로 하는 아라온호와 인천항이 무슨 관계냐고 궁금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박마다 '집'과 같은 개념의 '모항'이 있는데, 아라온호의 모항이 바로 인천항입니다. 극지 해역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곳이 바로 인천항인 거죠.인천항으로 돌아온 아라온호는 연구 장비와 각종 물자 등을 싣고, 새로운 연구진을 맞이합니다. 이후 광양항으로 이동해 정비를 마친 뒤 극지 해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요즘엔 코로나19 영향으로 광양항에 입항해 정비와 물자 보급 등을 마친 뒤 바로 출항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인천항은 아라온호의 모항입니다. 그러면, 아라온호와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할까요?국내 첫 쇄빙선 아라온호 아라온호는 순우리말 '바다'(아라)와 '모두'(온)를 합성해 만들어졌습니다. 아라온호는 쇄빙선입니다. 얼음을 깨는 배로, 남극해와 북극해 같은 얼어있는 바다에서도 독자적으로 항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국내 유일의 쇄빙선입니다. 쇄빙선은 극지 등 결빙 해역 자력 항해 및 항로 개척, 얼음에 갇힌 선박 구조 등의 역할을 합니다.아라온호는 7천487t 규모로 영하 30℃의 온도에서 두께 1m의 얼음을 깨면서 3노트(시속 5.5㎞)로 운항할 수 있습니다. 6천800마력짜리 엔진 2기가 장착돼 있어 일반 선박의 3~4배의 힘을 내고, 좌우 수평 이동도 가능합니다.얼음에 부딪혀도 안전하도록 선체 외벽이 매우 두껍습니다. 또 외벽 보호 성능이 향상될 수 있도록 특별한 내빙 도료가 시공됐다고 하네요.세계적 수준의 연구 장비 장착아라온호는 해수를 정밀 분석·보관하는 발틱룸(Baltic Room)을 비롯해 수족관과 생물연구실, 건식연구실, 지구물리실, 해수분석실, 화학분석실 등 다양한 연구 공간을 갖고 있습니다. 또 극지 환경 변화 모니터링, 대기환경·오존층 연구, 고해양·고기후 연구, 해양생물자원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5] 밥상 위의 슈퍼스타 '연평도 꽃게'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5] 밥상 위의 슈퍼스타 '연평도 꽃게'

    간장게장은 흔히 '밥도둑'으로 불립니다. 간장게장 맛에 빠져들면 밥 한 공기가 쉽게 자취를 감추게 되죠. 인천의 연평도 꽃게는 이런 간장게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중요한 식재료가 됩니다. 특히 봄철 연평도에서 잡히는 알을 가득 밴 암꽃게로 만든 간장게장은 일품으로 평가받습니다.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얼마 전 처서가 지나면서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을은 꽃게 조업이 가능한 시기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인천 연평도 꽃게에 대한 얘기를 들려드려 볼까 합니다.50여 년 전 시작된 연평도 꽃게잡이 조기로 유명했던 연평도, 잡기 힘들어지자 꽃게로 눈돌려 당시엔 인천에 어시장 활성화되지 않아 노량진에서 판매 꽃게는 '연평도' 하면 떠오르는 대표 수산물입니다. 하지만 연평도에서 꽃게를 잡기 시작한 건 50여 년 전 정도로,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이전까지 연평도 대표 어종은 조기였죠. '조기 파시'라고 불릴 정도로, 봄철이면 전국의 어선들이 연평도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땐 꽃게가 그물에 걸려 올라와도 모두 버렸다고 합니다. 어민들은 조기로 큰돈을 벌었고, 이 때문에 연평도에는 술집과 기생집도 많았다고 합니다.꽃게는 잡기가 힘들어진 조기를 대신하게 됐습니다. 1960년대 중반 정도라는 게 연평도 어민들 설명입니다. 당시 연평도 어민들은 자망 방식으로 꽃게를 잡았다고 합니다. 방식은 지금과 비슷하지만, 장비가 열악해 그물을 끌어올리는 건 모두 선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물 길이도 100m 정도로 짧았고, 걷어 올릴 수 있는 그물의 수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꽃게는 그물에 한가득 걸리는 날이 많았습니다.꽃게를 팔기 위해선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여정은 '험난'(?)했습니다. 10시간 정도 배를 타고 인천항까지 간 뒤 경인철도를 타고 노량진역으로 가야 했습니다. 당시 인천에 어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어민들 설명입니다. 가는 도중 꽃게가 상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4] 보관하며 보물을 만드는 '인천항 창고'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4] 보관하며 보물을 만드는 '인천항 창고'

    인천항은 개항 이후 국내 대표 무역항 역할을 했습니다. 배에서 내려진 각종 화물이 바로 어디론가 옮겨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출 화물 등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이때 화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공간이 필요한데, '창고'가 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창고는 바늘과 실처럼 항만에 필수적인 시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단순히 화물을 보관하던 창고는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보관은 물론 통관과 검역, 포장, 라벨링 등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첨단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과거 창고로 쓰이던 건물은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경인이가 알려주는 열네 번째 인천항 이야기 주제는 바로 '창고'입니다.화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공간, 항만에 필수적인 시설단순한 보관하던 곳이었지만 '첨단 공간'으로 변모개항과 함께 자리잡은 인천항 창고인천엔 1883년 개항 이후부터 창고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인천항으로 수출입하는 화물을 보관하기 위해서였죠.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쌀을 자국으로 반출하기 위해 창고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1960·1970년대 인천항 인근에는 10여 개의 창고가 밀집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창고에선 원당(原糖), 밀가루, 식료품, 원사(原絲), 고철 등을 보관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인 만큼 화물이 모여있는 창고 주변엔 도둑도 많았다고 합니다.대형 화재 사고가 있기도 했는데, 1979년 8월엔 인천항 주변의 한 화공약품 보관 창고에서 큰불이 나 수십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를 기억하는 한 창고업체 대표는 "화재 연기 때문에 인천 전체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화재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 볼 수 있겠네요.1980년대엔 창고에 원자재를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화물 다양화·첨단 기술 도입..창고의 변신 점점 첨단화 되는 창고, 검역·포장·라벨링 등 소비자 손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체의 역할 맡아 '원스톱 처리' 통해 물류비 절감하고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3] 인천 향토하역사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3] 인천 향토하역사

    인천항이 개항 100여 년 만에 세계적 수준의 항만으로 성장한 데에는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한 향토하역사들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선광, 영진공사, 우련통운이 대표적인데요 이번 주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는 이들 3개 향토하역사와 관련한 내용으로 준비했습니다. 글로벌 인천항 70년 파트너 '선광'선광은 인천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천 신항에서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을 운영하며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3분의 1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인천항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선광은 인천 신항을 중심으로 한 컨테이너 하역사업과 평택·군산 지역에서의 항만 하역사업, 중량물 운송사업, 보관물류사업, 사일로사업 등을 하고 있는 규모 있는 향토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작은창고로 시작한 '선광' 1980년대 리비아 진출 계기로 도약IMF에도 사업확장 적극… SICT 개장 이어 신항 운영사 선정도이런 선광도 1948년 창업 당시에는 작은 창고에 불과했습니다. 선광은 해방 이후 인천항의 세관으로부터 임차한 창고를 기반으로 보관과 운송사업을 시작하면서 태동했습니다. 고(故) 심명구 전 회장이 창업주입니다. 선광이라는 의미는 조선과 광복이라는 두 단어에서 선(鮮)과 광(光)을 가져와 정했다고 합니다. 선광은 이후 사업 영역을 통관사업까지 넓히고 1961년 법인 사업자로 전환했습니다.선광은 1980년대 초반 리비아 진출을 계기로 도약기를 맞았습니다. 리비아 브레가항, 미스라타항, 벵가지항 등에 하역 노무자와 관리직 등 450여 명 규모의 우리나라 직원을 보내 해외 항만 하역작업에 나선 것이죠. 이후 10여 년 동안 건설 기자재 등 하역작업으로 연간 2천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는 등 빠르게 성장했습니다.중량물 운송사업에도 진출했습니다. 현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발전소, 교량 건설 자재 등 대형 설비를 수입해 설치하려는 수요가 많았는데, 선광은 이런 수요를 흡수했습니다. 한강철교 자재와 인천 화력발전소 시설 등도 선광이 운송했다고 합니다.양곡 수입이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2]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 품은 연안여객선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2]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 품은 연안여객선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가요 연안부두의 한 대목입니다. 이 노래는 인천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 SSG랜더스의 홈 경기 때에도 들을 수 있는데, 그만큼 '인천'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연안부두입니다.노래 제목 속 연안부두의 정식 명칭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입니다. 이곳에선 백령도와 대청도, 연평도와 이작도, 육도·풍도 등을 오가는 연안여객선을 탈 수 있습니다. 터미널을 찾은 사람들의 일상과 설렘을 실어나르는 연안여객선은 그들이 가진 수많은 이야기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의 주제 연안여객선에 대한 이야기,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개항 이후 연안해운으로 시작 인천 섬 주민들에게 없어선 안 될 교통수단인 연안여객선의 출발점엔 '연안해운'이 있습니다. 연안해운은 사람보다는 물건을 나르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연안여객선의 출발점에 연안해운이 있었던 건, 사람보다는 물건을 나를 일이 더 많았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정부가 운영한 연안해운은 1886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부터 해운 업무를 인수한 전운국(轉運局)이 해룡호, 광제호, 조양호 등 3척의 기선으로 지방의 조곡을 인천으로 운반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관영기업인 이운사(利運社)가 1893년 창설돼 인천에서 마포 간 강운(江運)과 인천에서 군산 간 조곡 해운을 주요 업무로 삼았고, 갑오개혁 이후 일본우선회사가 인천을 기점으로 전라도 군산, 목포, 여수, 경상도 삼천포, 마산, 부산, 염포, 함경도 원산, 서포, 신포 등 지역까지 배를 정기적으로 운항했습니다. 이 시기 쌀과 하포(夏布), 면반물(綿反物), 동물 가죽, 대두 등의 인천항 반입이 활발했다고 합니다. 군산과 목포에선 쌀이, 부산에선 생선, 해초, 솜, 직물 등이 반입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산에선 명태 등이 인천항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섬뿐만 아니라 지역을 이어준 연안여객선 인천의 연안여객선 운항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뒤 활성화하게 됩니다.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1] 인천항 역사 함께한 동반자 '인천항운노조'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1] 인천항 역사 함께한 동반자 '인천항운노조'

    인천항 하역 작업 등엔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계화가 많이 이뤄지긴 했지만,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있습니다.큰 선박을 부두에 고정하기 위해 굵은 밧줄을 부두에 걸거나 선박 출항을 위해 걸었던 밧줄을 푸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없습니다. 화물을 선박에 싣거나 내리는 일은 크레인이 하지만, 그 크레인은 결국 사람이 조종합니다. 컨테이너에 실리지 않는 자동차 같은 화물은 어떻게 할까요? 사람이 일일이 손수 운전해 선박에 싣거나 부두로 내려야 합니다. 사람은 항만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 바로 인천항운노동조합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인천항운노조입니다. 인천항운노조는 인천항에서 이뤄지는 수출입 화물의 하역 작업을 전담하고 있는데요, 개항 이래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천항과 역사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천항운노조에 대한 이야기,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지금의 인천항을 있게 한 역군 인천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130여 년 인천항의 역사를 함께한 주역이자, 지금의 인천항을 있게 한 역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 부두 노동자가 처음 나타난 건 개항기라고 합니다. 농촌에서 땅 한 평 없어 빌어먹기도 어려웠던 사람들이 '인천 드림'을 위해 제물포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어부, 소농 등 일시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항으로 항만에 물동량이 많아지면서 상시적 노동이 필요하게 되자 부두로 눈을 돌리는 노동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화주가 짐을 나를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 많았다고 합니다. 변변한 장비 하나 없던 시절 부두 노동자들은 맨몸으로 짐을 날랐습니다. 부두 노동자 특성상 일정하지 않은 작업 시간과 작업량으로 안정적인 노동 공급이 어려워지자 한국인 하역원들은 중구 내동에 '모군청'(募軍廳)이라는 하역 조합을 꾸려 노동자의 취업을 주선했습니다.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0] 한국과 중국을 잇는 황금가교 '한중카페리'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0] 한국과 중국을 잇는 황금가교 '한중카페리'

    "웨이하이에서 인천으로 오는 '황금가교호'의 기적 소리를 시작으로 한중 간 새로운 우정의 항해가 시작됐다."2015년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가 연설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황금가교호'는 인천과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를 잇는 한중카페리, 골든브릿지호를 의미합니다. 골든브릿지호는 한중 간 첫 카페리였는데요, 리커창 총리가 한중 관계에 대해 얘기하면서 언급할 정도로 한중카페리는 한국과 중국 간 인적·물적 왕래의 물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한중카페리입니다. 한중카페리는 관광객과 보따리상들이 자주 이용하는 배로 유명한데요, 한중 수교(1992년) 2년 전인 1990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걸 감안하면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여객 운항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한중카페리와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4시간 뱃길… 연간 10만명 규모 이용 한중카페리는 1990년 9월 15일 처음으로 운항을 시작했습니다. 한중 뱃길은 중국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1949년 이후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는데, 1992년 한중 수교가 맺어지기 2년 전 최초의 여객 직항로인 인천~웨이하이 간 카페리 항로가 개설된 겁니다. 당시 비용도 저렴하고 한국인 승객의 경우 중국 현지에서 비자 발급이 가능해 한국 관광객이 많이 몰렸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배표를 구하기 어려워 한 달씩 대기해야 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중국과의 하늘길이 열리면서 관광객이 줄어들고, 그 빈자리는 보따리상이 채웠습니다. 카페리는 한국에서 산 물건을 재포장할 공간이 넓고, 휴대할 수 있는 수하물의 무게가 커 보따리상들은 비행기보다는 카페리를 이용했다고 하네요. 14시간이 넘는 뱃길이었지만, 2017년만 해도 연간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카페리를 타고 인천과 웨이하이를 오갔다고 합니다.2018년 인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9] 도심 속 포구 '소래포구'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9] 도심 속 포구 '소래포구'

    고층 아파트 단지와 철도역이 있는 평범한 도시의 주거 지역이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와 어선, 어구 등 어촌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각종 수산물과 이를 팔려는 상인, 사려는 손님들의 흥정 소리가 이어지는 정겹고,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도심 속 포구'라고 불리는 수도권 대표 어시장, 소래포구입니다.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소래포구입니다. 소래포구는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수도권 명소로 손꼽힙니다. 특히 꽃게가 잡히는 5~6월과 김장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죠.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상황이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소래어촌계에 등록된 어선들도 주변 개발 등 여파로 3년 전에 비해 100여 척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예전보다 위축되는 모습인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데요, 소래포구와 관련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현대사 아픔 녹아있는 소래포구소래포구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 켜켜이 배어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제의 수탈, 한국전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소래포구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로 전해집니다. 일제는 이 일대에서 생산된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1930년대 수원에서 소래를 거쳐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수인선 철도를 건설했습니다. 건설 현장과 염전에서 일할 일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띄운 나룻배가 정박한 곳이 지금의 소래포구로 전해집니다. 이때만 해도 어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어업이 시작된 건 한국전쟁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실향민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실향민들이 작은 목선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기 시작한 겁니다.1963년 실향민 등으로 구성된 어민들은 소래어촌계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등록 어선은 28척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작은 어촌에 불과해 잡아온 생선은 포구 주변에서 바로 팔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수인선 등 철도를 이용해 인천항과 서울 등지로 가져가 팔았다고 하네요.어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8] 바다의 조연 '바지선'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8] 바다의 조연 '바지선'

    "배는 배인데 배 취급도 제대로 못 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몇 년 전 이야기를 나눈 한 바지선 선주는 인천대교 쪽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2009년 인천대교 개통식에서 공사 관계자들에게 많은 표창을 줬는데, 바지선 선주는 단 한 명도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바지선 없는 해상·해변 공사 현장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만큼의 가치나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했던 기억을 되새겼습니다.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바지(Barge)선'입니다. 타이어를 두른 넓은 직사각형 형태의 평평하게 생긴 배를 보신 적이 다들 있으실 텐데요, 이런 배를 바지선이라고 합니다. 주로 근해나 호수, 하천, 운하 등에서 공사 자재 등 화물을 운반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엔진이 없어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요? 바지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혼자선 움직일 수 없는 '바지선'바지선은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엔진이 없어 혼자 힘으로 항행할 수 없습니다. 선박 등록에 관한 법률인 선박법에서는 부선(艀船)이라고 정의합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이동을 위해선 예인선(曳引船)의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바지선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는 예인선이 줄로 끌어 움직이고, 부두나 작업 현장에 붙여야 할 때는 예인선과 홑줄로 묶어서 단단히 고정해 움직입니다. 바지선과 예인선은 한몸이나 마찬가지라 서로의 호흡이 맞아야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배를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작업 현장에 바지선을 가까이 붙이기 위해 예인선에 단단히 고정해 움직이는 것을 업계에선 '차고 다닌다'고 표현하는데, 예인선의 예(曳)자와 인(引)자 모두 '끈다'는 의미이지만, 끌지 않고 차고 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바지선의 몸집이 예인선에 비해 보통 크기 때문에 바지선이 예인선을 차고 다니는 형상인데, 예인선이 바지선을 차고 다닌다는 표현도 흥미롭네요.예인선이 바지선을 차면 예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7] 365일 가동준비 완료… 바다의 퀵서비스 '통선'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7] 365일 가동준비 완료… 바다의 퀵서비스 '통선'

    선박들은 항해 기간 중 필요한 식료품 등 각종 물자와 선원들을 부두에서 싣거나 태우게 됩니다. 간단한 선박 수리와 인원 교대도 이때 이뤄지죠. 입항을 아직 못했는데, 물자를 긴급하게 채우거나 선원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요. 간단한 고장이 났는데, 부품을 챙기지 못했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요긴한 역할을 하는 배가 바로 '통선(通船)'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일곱 번째로 들려드릴 인천항이야기의 주제는 통선입니다. 통선은 마치 땅 위의 택시 같은 역할을 합니다. 목적지를 마음대로 정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통선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에 식료품 등 물건을 운송하거나 선박이 육상에 접안하지 못할 경우 배 안의 선원들을 육상에 데려다 줍니다. 육상에 있는 선원이 바다에 있는 선박으로 이동할 때도 통선을 이용합니다. 통선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응급환자 이송, 줄 작업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통선은 급하고 필요한 일을 대신해 준다는 의미에서 '바다의 퀵서비스'라고도 불린답니다.■ 역사·문학 속 통선통선은 시대에 따라 이름과 역할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오래전부터 육지와 육지에서 멀지 않은 바다 위 선박을 이어주는 구실을 해왔습니다.개항기 선교사이자 배재학당 설립자인 헤니 거하드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1858~1902)도 인천에 발을 내딛기 위해서 통선을 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출판부가 아펜젤러의 일기와 보고서 등을 토대로 펴낸 '아펜젤러-한국에 온 첫 선교사'는 개항 당시 인천항의 모습을 상세히 담고 있습니다. 아펜젤러는 1885년 4월 5일 'S.Maru호는 제물포항에 닻을 내렸다. 거룻배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중략) 아내와 나는 거룻배를 탔다. 상륙하는 데 약 1시간이 걸렸다. 썰물로 물이 빠져서 제물포항으로부터 기선은 1.5마일쯤 뒤에 정박해 있기 때문이다"라고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펜젤러는 당시 통선 역할을 한 '거룻배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6]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팔미도 등대'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6]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팔미도 등대'

    길고 긴 항해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어둠 속 반짝이는 불빛, 등대. 인천항 인근 팔미도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습니다. 1903년 생겼다고 하니, 2년 뒤면 벌써 120년이 되네요. 구한말 서구열강들을 태운 배도, 인천상륙작전 당시 유엔군을 실은 배도 팔미도 등대가 밝힌 불을 보고 인천항으로 들어왔을 겁니다. 인천항을 드나드는 수많은 배들의 안전한 운항에 필수적인 요소였던 팔미도 등대. 오늘도 팔미도 등대는 불빛을 밝힙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여섯 번째로 들려드릴 인천항이야기 주제는 '팔미도 등대'입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팔미도 항로표지관리소'. 이것이 팔미도 등대의 정식 명칭입니다. 등대는 해가진 3분 후 점등해 해뜨기 3분 전 소등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매번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야 해 번거로웠는데, 지금은 자동화 시스템으로 작동된다고 합니다. 팔미도 등대에도 20년치 일출 일몰 시각이 입력돼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엔 불을 켜야 하거나 꺼야 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한 적이 있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그곳에서 일하는 분은 아마도 정확한 답을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팔미도 정상 위치.. 50㎞까지 비춘다. 팔미도 등대는 인천 중구 무의동 산 375에 있습니다. 팔미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합니다.지금 운용되는 팔미도 등대는 2003년부터 가동됐습니다. 팔미도 등대 점등 100주년을 맞아 '팔미도 등대 종합정비사업'이라는 게 추진됐는데, 그 결과물입니다. 대형 회전식 등명기와 전망대, 100주년 상징 조형물, 위성항법보정시스템 등이 설치돼 있습니다. 등대에 불을 밝히는 등명기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프리즘 렌즈가 장착됐습니다. 최대 50㎞까지 비추고, 10초에 한 번씩 번쩍입니다.팔미도 등대엔 3명이 근무를 합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전문 자격을 갖춘 '항로표지관리원' 입니다. 이분들은 20일을 근무하면 9일을 쉽니다. 1명이 쉬는 동안 2명이 섬에 남아 12시간씩 교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5] 세계 경제를 바꾼 발명품 '컨테이너'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5] 세계 경제를 바꾼 발명품 '컨테이너'

    '세계 경제사를 바꾼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을 꼽으라면 어떤 걸 뽑을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세계적 석학인 미국의 고(故) 피터 드러커는 '컨테이너'를 꼽았습니다. 투박해 보이는 단순한 강철 상자 정도로 생각될 수 있는 컨테이너가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세계 물류업계의 혁신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쉽게 지나쳐왔던 컨테이너가 가진 이야기,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다섯 번째로 들려드릴 인천항이야기 주제는 '컨테이너'입니다. 많은 양의 화물을 먼 거리까지 효율적으로 운송할 수단 중 대표적인 건 아마도 대형 선박일 겁니다. 기차는 다른 대륙을 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비행기는 빠르긴 하지만 많은 양을 한꺼번에 운송하는 건 어렵습니다. 비용도 더 많이 들죠.대형 선박에 화물을 싣고 내리기 위해선 많은 인력과 장비가 필요합니다. 화물마다 크기와 무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운송 과정에서 화물이 망가지지 않도록 포장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규격화된 철제 상자에 이런 화물을 담아서 기계로 배에 싣거나 내릴 수 있도록 한다면, 화물 운송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화물의 안전한 운송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컨테이너는 바로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류 혁신 가져온 '컨테이너' 현대적 개념의 컨테이너가 상용화된 건 60여 년 전입니다.마크 레빈슨의 'THE BOX'를 보면 1956년 4월 유조선을 개조한 '아이디얼 X호'라는 배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35피트(약 10m) 길이의 상자 58개를 미국 뉴저지에서 휴스턴으로 5일 만에 운반한 것이 컨테이너 운송의 시작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후 표준화 등의 과정을 거쳐 컨테이너는 지금과 같은 모습에 이르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길이 20피트(6.1m), 높이 8.5피트(2.6m), 폭 8피트(2.44m) 크기의 컨테이너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됩니다. 컨테이너 개수를 세는 단위는 TEU(Twenty foot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4] 바다에도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4] 바다에도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인천 앞바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겠지만, 9~10m 정도나 하는 조수 간만의 차가 있다는 부분을 빼놓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큰 조수 간만의 차는 작은 어선 하나도 배를 대기 어려운 상황을 만듭니다.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 때문이죠. 하지만 인천항에선 100년 넘게 대형 화물선을 비롯한 다양한 선박이 특별한 문제 없이 여객이나 화물을 싣거나 내리고 있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하는 특별한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갑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네 번째로 들려드릴 인천항이야기 주제는 '인천항 갑문'입니다.갑문은 다른 두 개의 수면 사이를 선박이 안전하게 통행하도록 만든 시설입니다. 갑문은 바다와 내항 사이에 설치돼 바다의 물때와 관계없이 배가 내항을 오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바다 수위가 낮은 썰물일 때 선박이 내항으로 진입하려고 하면, 갑문에 물을 채워 내항과 수위를 맞춰 배가 내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반대로 배가 내항에서 바다로 나갈 땐 바다의 수위에 맞춰 배가 목적지로 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겁니다. 선박의 엘리베이터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죠. ■30분~1시간이면 'OK'인천항에 설치된 갑문의 무게는 1천t이 넘는다고 합니다. 미닫이 방식인데, 이 문을 열고 닫을 때에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배가 갑문으로 진입할 때 주변에 경고음이 울리는 이유기도 하죠.배가 갑문에 진입하면 열렸던 갑문이 닫히고, 배를 밧줄로 고정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내항과 바다의 수면을 맞추기 위해 물을 채우는 과정에서 배가 흔들려 갑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인천항 갑문은 최대 길이 306m, 너비 32m를 가진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5만t급과 길이 215m, 너비 19m 선박이 이동하는 1만t급 등 총 2개의 갑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5만t급 갑실은 물을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3] 작지만 강한 바다 위 재간둥이 '예선'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3] 작지만 강한 바다 위 재간둥이 '예선'

    몸집이 큰 대형 선박은 많은 화물이나 여객을 운송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먼 거리를 오갈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대형 선박들은 오늘도 5대양 6대주를 오가며 화물과 여객을 나릅니다. 하지만 항만에 들어서게 되면 조심해야 합니다. 넓은 바다에선 거칠 것이 없지만, 항만에선 자칫 잘못하면 부두 시설 등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세밀하고 정교하게 움직여야 부두에 배를 댈 수 있는데, 아무래도 큰 몸집이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죠. 바로 '예선'(曳船)입니다.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세 번째로 들려드릴 인천항이야기의 주제는 예선입니다.부둣가를 지날 일이 있으시면 검은색 대형 타이어를 선체에 빼곡히 두른, 조금은 투박하게 생긴 배를 만나실 수 있을 텐데 예선이 이런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선은 30만t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대형 선박도 밀고 당길 수 있는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배가 부두에 최대한 가까이 붙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배가 부두를 안전하게 벗어나는 데에도 예선의 역할은 큽니다. 그리 크지 않은 몸집에 비해 힘이 센 예선은 세밀하고도 정교하게 움직입니다. 그럼 예선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대형 선박 접·이안 돕는 '예선'예선은 선박의 접안과 이안을 돕습니다. 컨테이너선, 크루즈, 카페리 등 몸집이 큰 선박일수록 예선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죠. 예선은 접안이나 이안을 준비하는 선박과 밧줄로 연결한 뒤 끌거나 밀어 해당 선박을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킵니다. 선박 규모에 따라 많게는 5척의 예선이 달라붙기도 한답니다.인천 내항으로 입항하는 선박의 경우 인천대교(송도~영종)에서 갑문까지 들어가는 과정, 또 갑문으로 들어간 뒤 부두에 접안하는 과정에 예선이 필요합니다. 선박이 부두를 벗어날 때도 예선의 역할이 큽니다.갑문은 34m 너비의 긴 직사각형 수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과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박의 너비는 32m로 제한됩니다. 갑문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2] 하늘 아닌 바다를 가르는 '파일럿' 도선사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2] 하늘 아닌 바다를 가르는 '파일럿' 도선사

    인천 대표 공원 중 하나인 자유공원으로 가는 중구 내동의 한 오르막. 고풍(古風)이 배어있는 붉은 벽돌의 저택을 볼 수 있습니다.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조금 특이한 점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배란다가 '서남향'으로 돼 있는 겁니다. 예전엔 이 집에서 서남향으로 10여㎞ 거리에 있는 팔미도까지 한눈에 보였다고 하는데, 이 집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요?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두 번째로 들려드릴 인천항이야기는 '도선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뜬금없이 집 얘기를 해서 조금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집은 바로 한국인 첫 도선사 유항렬(1900~1971)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그는 이 집에서 망원경으로 인천항에 입항할 선박이 오는지를 지켜봤다고 하네요.한국 최초의 도선사 유항렬과 관련한 얘기는 잠시 뒤로 접어두고, 본론인 '도선사'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도선사가 뭔가요?도선사는 선박이 항구를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입항과 출항을 도와주는 선박의 안전길잡이 입니다.영어로는 '파이럿(Pilot)'이라고 하는데, 흔히 비행기 조종사를 파일럿으로 알고 있지만 선박에서 먼저 쓰였다고 하네요. 웹스터 사전에서 파일럿을 찾아보면 ①배를 조종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 ②항구 안팎 또는 지정된 해역에서 선박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 ③항공기 또는 우주선을 비행할 자격이 있거나 비행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나와 있습니다.우리나라 항구에 입항하는 500t 이상의 외항선은 반드시 도선사가 탑승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주요 항구도 도선법에 따라 외항선에는 반드시 도선사가 탑승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로의 폭, 수심 등이 항만마다 다른 만큼, 선박의 안전한 입출항을 위해선 해당 항만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역할을 도선사가 하는 겁니다.도선사가 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우선 6천t 이상 선박에서 일정 기간 선장으로 일한 경력이 필요합니다. 또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도선사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 'BTS' 아니죠, 'VTS(해상교통관제센터)' 맞습니다!

    [경인이가 알려주는 인천항이야기 #1] 'BTS' 아니죠, 'VTS(해상교통관제센터)'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시즌 1은 인천항입니다. 인천항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인데요,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첫번째 주제는 'VTS'입니다. 인천항 주변으로는 이역만리 바닷길을 건너 항만으로 진입하려는 수많은 배가 있는데요. 이런 배들은 어떻게 부딪치지 않고, 안전하게 오갈 수 있을까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으셨나요?물론 배들에 설치된 레이더나 각종 통신장비가 충돌사고 방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해상교통관제센터, VTS(Vessel Traffic Service) 입니다.■VTS는 해상교통관제센터를 의미해요.해상교통관제센터 VTS에선 항만에 진입하려는 화물선과 특수목적선, 대형 어선 등 배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충돌이 예상될 경우 해당 배들에게 위험을 예고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배는 자동차와 달리 급브레이크가 없어서 위험성을 일찌감치 선박에 알려줘야 하죠. 배의 속도와 중량은 물론, 바다 조류와 풍속 등도 고려해야 합니다. 바다안전 길잡이라고도 할 수 있는 VTS에선 배들의 위치가 표시된 해도를 볼 수 있는 모니터 등을 통해 배들의 위치를 실시간 확인하게 됩니다.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을 '해상교통관제사'라고 하는데, 5급 항해사 면허와 1년 이상의 승선경력을 가진 바다 전문가들입니다.인천항 VTS의 경우, 하루 수백척의 선박과 교신하는데, 대이작도 남방 10㎞ 해상부터 영종대교 남단 54㎞ 해상까지 무려 598㎢ 면적을 관제하게 됩니다. 인천 강화군 전체 면적이 411㎢ 정도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이나 넓은 면적이네요.인천항 VTS 관제 범위에 진입한 선박들은 진입 사실을 VTS에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이때부터 VTS의 관제사들의 지시에 따르게 됩니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가 계기가 됐어요.해상교통관제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게 된 건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가 계기가 됐다고 하네요.당시 침몰하던 타이타닉호는 주변을 항해하던 선박에 구조요청 신호를 보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