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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잊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지면기사
참사 당시 너무 어려 "그런 일이 생겼구나…"중학생 돼서야 '비극' 인식… 당시 대응 분노'희생된 형·누나들에 부끄럽지 말아야' 다짐"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형·누나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죠."지난 22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수원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익주(18)군이 기억교실 2학년 1반을 찾았다. 기억교실에 처음 와 본다는 조군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한 학생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달력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2014년 4월 15일부터 18일까지 수학여행 일정을 표시해 놓은 달력이었다.'세월호 장학생'인 조군은 그렇게 책상마다 놓인 유품들을 살폈다. 지난해 수원고 2학년 1반 반장이었던 그는 '416단원장학재단'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조군이 이날 단원고 기억교실 '2학년 1반'부터 찾은 이유다.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2015년 4월 설립된 단원장학재단은 해마다 경기도 학생과 교사들을 선발해 각각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학생 903명과 교사 44명이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받았다.조군은 한때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인 '영원한 캡틴' 박지성의 모교인 세류초등학교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축구 명문인 매탄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아픈 무릎 때문에 결국 오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조군은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모범 학생이다.조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형·누나들에게 썼던 편지, '얼마나 두려우셨을까요'라는 첫 구절을 또렷이 기억했다."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형·누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어요. 세월호 참사 당시엔 제가 너무 어렸어요. 그냥 '그런 일이 생겼구나.' 했거든요. 중학생이 돼서야 엄청난 비극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정부가 조금만 더 대응을 잘했더라면 형·누나들이 모두 살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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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친구 잃은 또래들의 아픔 지면기사
"함께 웃었는데… 한순간 사라져"억누른 감정 표출 기회 거의없어"얘기하고 공감하는 자리 마련되길"친구를 잃은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내색할 수 없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부짖는 친구의 부모님 앞에서 내가 가진 슬픔은 왠지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차디찬 바다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친구들의 장례식이 하루가 멀다 하게 안산에서 치러졌다.'난 어디까지 친구였지?', '걔도 날 친구로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슬픔의 무게가 가늠조차 되지 않던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함께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단원고 희생자들의 한 친구 이야기다.지난 2017년 봄 세월호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친구들이 처음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들의 아픔을 털어놓는 자리가 안산시 단원구 와동의 '치유공간 이웃'에 마련됐다. 치유공간 이웃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보듬는 시민사회단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 26명이 단원고 희생자 친구들의 아픔을 듣고 기록하는 자리였다.'공감기록단'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활동에 참여했던 전종현(23·대학생)씨는 "억누르던 감정을 트이게 해준 고마운 기회"였다고 떠올렸다. 단원중 출신인 전씨는 동네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에서 끓는 슬픔을 충분히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던 그였다. 남은 친구들에게 세월호 참사가 일종의 금기어로 여겨진 까닭이다.세월호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해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도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렵게 발걸음을 뗀 장례식장에선 친구 부모님은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전씨는 "'내 슬픔을 부모님의 슬픔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 울지도 못하고, 슬퍼하는 걸 내색해도 되는 건지도 고민했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전씨는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6주기를 기해 마련된 제주도 기행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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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단원고 학생 생존자 3명의 고민과 다짐 지면기사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6년이란 시간이 지나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참혹했던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극적으로 구조된 한 학생은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로 옮겨진 자신에게 따뜻한 담요와 위로의 말을 건넸던 119구조대 응급구조사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군 복무까지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떼려 하는 다른 한 학생은 후회 없는 삶을 다짐하며 미디어 콘텐츠 에디터를 꿈꾼다. 잠시 휴학을 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도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사로 경력을 쌓고 있는 장애진(23)씨, 그리고 이지훈(가명·23·대학생), 김소연(가명·23·휴학생)씨 등 세월호 참사를 겪은 청년 3명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월호'라는 낙인이 따라 붙다이들은 6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단원고 출신임을 주변에 드러내는 게 껄끄럽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원한 이씨와 김씨도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는 걸 걱정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는 장씨는 그런 면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익명성 뒤에 숨어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조롱하는 막말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장=사실 가장 부담되는 건 '아~그러냐'며 뭔가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지만, 저희들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김=물론 신경이 많이 쓰여요. 다른 사람들이 제가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상대 반응부터 살피게 돼요.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혼자서 계속 세월호라는 낙인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게 되죠.이=뒤에서 무슨 말을 하든, 앞에서만 안 하면 다행이라 생각해요. 제 과거에 대해 남들이 폄하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로 평가하도록 치열하게 스스로를 개발하고 증명하는 방법이에요. 이렇게 하지도 않고 낙인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건 간절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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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주민과 유가족 연결하는 '4·16 안산시민연대' 지면기사
추모시설 놓고 일부서 갈등 빚기도 6년 흘러가며 생긴 '벽' 허무는 역할"안전한 사회, 새로운 비전 세울 시점"안산지역 시민들은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혹은 그들의 부모, 형제·자매 등과 '아는 사이'였다. 안산 시민들의 아픔과 책임감이 유독 남달랐던 이유다. 참사 초기에 안산시 지역사회는 남은 가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6년이란 세월은 한결같던 그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기엔 긴 시간이었다. 기억교실 이전, 합동 분향소 폐쇄, 생명안전공원 건립 등 추모시설을 놓고 일부 주민들과 유가족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아지기도 했다.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서는 화랑유원지에서 지난 16일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 때 '화랑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유가족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던 몇몇 주민들의 모습은 이런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4·16 안산시민연대는 유가족과 일부 주민들 사이에 생긴 벽을 허무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향한 유가족들의 고독한 싸움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위성태 안산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유가족과 안산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며 "유가족들은 동네에 들어가서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반대로 유가족들을 만나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고 싶어 하는 시민들도 많다"고 설명했다.위 사무국장은 안산지역에서 빚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봤다. 하나의 사업을 추진할 때 찬성과 반대 입장은 언제든 나뉘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 추모와 관련한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는 행동과 발언은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사무국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신과 입장을 가지고 누구나 자기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세월호와 관련한 갈등이 꼭 안산지역이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소통을 통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아가는 게 중요한데, 대화는 하지 않고 소란을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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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전세계에 각인된 이름… 6주기 추모 '메시지' 지면기사
# 세계 각지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있다. 재외 교포, 유학생, 자국 현지인, 시민단체 인권 활동가 등은 최근 세월호 6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전 세계로 확산한 코로나19 사태로 모임이 어렵게 되자 이들은 화상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추모 집회를 여는가 하면, 온라인 공간에 추모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독일·프랑스·핀란드 등 유럽 각국의 도시들을 비롯해 미국, 브라질, 호주, 일본, 태국 등지에서도 416연대(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에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이에 동참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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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4·16의 기억' 남기는 화가 지면기사
이종구 화백, 단원고 학생 화폭 담아작가로서 '마음의 힘' 소진되는 느낌'다시 4월, 봄이 오다' 10월까지 전시"우리나라의 축적된 모순으로 소중한 아이들이 희생됐어요. 기성세대가 반성하고 앞장서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함께 그 길을 가자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인천에 작업실을 둔 이종구 화백(중앙대 미술학부 교수)을 만났다. 그는 안산시 단원고 근처에 있는 한 전시실에서 보자고 했다. 학교 근처 주택가의 작은 상가 건물 3층에 자리한 '4·16 기억전시관'이었다. 지난 9일 오후 2시께 찾아간 이곳에는 그와 정평한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 화백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전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다. 아이들이 1학년 때 반별로 찍은 단체 사진을 구해 그렸다. 그림 속 아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한가운데 담임 선생님을 향해 자기 반 숫자를 가리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 중 325명이 이듬해 인천에서 수학여행지인 제주도로 향하는 세월호에 몸을 실었고 그날 사고로 250명이 숨졌다.이 화백은 2017년 여름 해남 임하도의 한 폐교에서 먹고 자면서 꼬박 3개월을 작업했다. 세월호가 다니던 뱃길이 보이는 곳이다. 그는 "이 시대의 작가라면 누구나 세월호를 그대로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라며 "화가로서 아이들의 영혼이라도 되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림으로 기록해서 역사적 증언을 해야겠다는 각오였다"고 말했다.이 화백은 이 그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이어 탄생한 새 정부, 그리고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들을 화폭에 담아 2018년 서울 종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광장-봄이 오다' 개인전을 열었다.작업을 모두 마치고 '4·16 기억교실(현재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위치)'을 다시 찾았다는 이 화백은 "초상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책상 위에 놓인, 이제는 영정이 된 사진 속에서 만났을 때의 그 충격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가로서 마음의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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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어디까지 왔나 지면기사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구성됐다. 사참위는 박근혜 정부 때 출범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 활동을 당시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조직적으로 방해한 증거를 발견하고 최근 수사를 요청했다.2기 특조위로 불리기도 하는 사참위는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18층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및 개인정보 수집 등과 관련해 조사한 결과 국정원 법상 직권 남용의 금지 및 직권남용죄 등 범죄 혐의에 대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며 "국정원 전·현직 직원 5명과 불상의 직원 수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사참위 조사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최소 2명은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최소 3건 이상의 보고서를 작성해 국정원 내부망에 보고했다. 또 국정원으로부터 입수한 세월호 참사 관련 동향 보고서 215건 중 48건의 보고서가 유가족 사찰과 관련된 것으로 사참위는 파악했다.여론조작 관련 보고서도 9건이 있었다는 게 사참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보수(건전) 세력(언론)을 통한 맞대응'과 '침체된 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한 일상복귀 분위기 조성' 등 제목의 보고서에는 세월호 추모 분위기를 공익광고 등의 캠페인으로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게다가 국정원 자체 예산으로 '세월호 참사를 이제 잊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 나아가자'란 내용의 동영상을 외주로 제작해 게시하기도 했다.앞선 지난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참위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전·현직 공무원 19명과 국무조정실 등 10개 정부 부처를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수사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사참위는 지난 2015년 특조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을 조사하려 하자 청와대와 여러 정부 부처가 조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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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어느 수학여행 안전요원의 고백 지면기사
4대 보험 6개월치 내고 여행사 직원으로수료증 대여가능 허점… 잔심부름 도맡아사전답사 제외 현장 대응력 부족도 문제'수학여행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내놓았습니다. 안전요원도 그렇게 생겨난 겁니다. 작은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는 저도 봄·가을에는 안전요원으로 일합니다.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다면, 지금 한창 바쁠 때죠.부끄러운 고백을 하겠습니다. 3년 전이에요. 한 여행사 대표가 안전요원으로 일할 사람들을 급히 구한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학교와 수학여행 계약을 하려면 안전요원이 필요했던 거죠.안전요원이 되려면 일정한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국내여행안내사, 국외여행인솔자, 소방안전교육사, 응급구조사, 청소년지도사, 숲길체험지도사 등에게만 교육받을 자격을 줍니다.여행사 대표는 어느 민간단체가 발급하는 국외여행인솔자 자격증을 추천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따기가 쉽거든요. 해외를 나가본 적 없는 제게 여권에 도장 하나는 찍혀 있어야 한다더군요. 부랴부랴 여권을 만들고 당일치기로 일본을 다녀왔죠. 이 자격증을 따려면 여행사에 최소 6개월 이상 근무해야 합니다. 여행사 직원인 것처럼 꾸미려고 최저임금 수준으로 4대 보험 6개월 치를 냈어요. 당국에는 신고가 늦었다고 거짓말을 했죠. 자격증 시험이요? 수업도 안 받고 자격증을 손에 쥔 사람도 봤습니다.이렇게 꼼수로 자격증을 따서 교육부가 대한적십자사에 위탁한 안전요원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정작 학생 인솔에 필요한 전문 교육은 빠져 있더군요. 응급처치 위주였습니다. 적십자가 발급하는 안전요원 수료증은 사진이 안 들어가 대여도 가능하다는 허점이 있어요.안전요원은 학생들을 안전하게 인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표소 발권 등 잔심부름까지 안전요원 몫이에요. 교사, 학부모 등이 따라가는 수학여행 사전 답사에 안전요원이 빠진다는 점도 문제예요. 안전요원들이 현장을 몰라 허둥지둥합니다.매뉴얼에 따라 학생 50명당 1명씩은 안전요원을 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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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유가족 '정부 배려 당부' 지면기사
6살 아들과 아빠 등 43명 가족품 못돌아와인천 추모관 '운영비 문제' 한때 문닫기도세월호 참사 당시 고(故) 권모(당시 50세)씨 가족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권씨와 아내 그리고 6살 아들은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 살 터울 오빠가 벗어 입혀준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어린 딸만 가까스로 구조돼 홀로 남게 됐다. 딸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됐고, 권씨와 그의 아들은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 채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수습자'로 남아 있다.우리는 이들을 일반인 희생자라고 부른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출항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에는 모두 476명이 탑승했다.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그리고 일반인 승객 104명, 여기에 선원 23명과 승무원 10명이 함께 있었다. 그날의 참사로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희생됐다. 일반승객 33명, 선원 5명, 승무원 5명도 끝내 구조되지 못한 채 가족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참사 이후 희생자들은 크게 '단원고 희생자'와 '일반인 희생자'로 나뉘었다. 이들 유가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한목소리를 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안전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도 같았다.하지만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세월호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일반인 희생자가 지워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지난 6년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해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에 아쉬움이 짙어지는 시간이었다.지난 20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인천가족공원 내 세월호일반인희생자추모관에서 만난 전태호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 위원장도 이 같은 설움을 토로했다.전태호 위원장은 "대부분 세월호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단원고를 먼저 떠올린다"며 "상대적으로 일반인 희생자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일반인 희생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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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진실규명 향한 '5대 정책과제' 지면기사
416연대, 총선 전 '정책과제 약속운동'참사 진상 캐기·안전사회 '방향' 제시참여자 144명 '금배지'… 2명 추가동참국회가 유가족의 요구 응답해야 할 때드넓은 바다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노란 빛깔 부표가 갑판에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부표에 적힌 '세월호'라는 글자가 선명해지면서 그날을 떠올리는 유가족들의 아픔도 또렷해졌다.세월호 참사 6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2일 새벽 2시께 유가족들은 참사 해역으로 향했다. 안산에서 전남 목포까지 버스를 타고 340㎞, 오전 8시께 목포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서 경비함(3015)으로 갈아타 진도 맹골수도까지 다시 110㎞. 사고 해역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9시간이 걸렸다.목적지에 다다르자 기나긴 시간 동안 담담함을 유지하던 유가족들의 감정이 파도에 흔들리는 부표처럼 요동쳤다. 미리 준비한 국화를 바다에 헌화하면서는 갑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가족들은 참사 당일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떠올린 듯했다. 먼저 자식을 떠나 보낸 한 어머니는 아이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먼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40분간 이어진 추모식이 끝날 때까지 유가족들은 갑판 위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슬픔을 달랬다.당일 전국에 많은 비가 예고됐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선상 추모식을 하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목포신항의 세월호 선체를 둘러볼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고(故) 장준형군의 아버지 장훈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모든 일정이 끝나려고 하니 비가 내리려 한다. 고생할 부모들을 생각해 아이들이 함께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이날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꼭 밝혀내겠다는 약속이었다.다음날인 13일 유가족들의 이런 다짐에 함께하겠다는 이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4·15 총선을 앞두고 진행한 '21대 총선 5대 정책과제 약속운동'에 총 932명 후보자 중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