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 내수면 어업 위기 극복 '전문가 제언'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 내수면 어업 위기 극복 '전문가 제언' 지면기사

    내수면 어업의 위기는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이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전문가들도 내수면 어업이 고령화, 수산자원 감소 등으로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공감하면서도 내수면 어업은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내수면 어업을 살리기 위해 내수면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어민들과 함께 고군분투 중인 연구소를 찾았다.'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를 가다 내수면 어업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줄어들지만,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이하 연구소)는 내수면 연구에 손을 놓지 않고 있다. 경기도 내 해면과 내수면 수질·수산생물 관리, 수산자원 조성, 어업인 육성 등에 여전히 열정을 쏟고 있다. 1989년 8월 '내수면개발시험장'으로 시작한 연구소는 양평과 안산에 각각 있는데, 내수면 연구는 양평에서 이뤄지고 있다.연구소 내부에는 도내 서식하는 어류의 유전자원·정보를 분석한 유전자은행부터 2008년 도라산 육로를 통해 들여온 북한산 철갑상어 등 다양한 내수면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소가 세운 '전국 최초' 실적만 20건에 달한다.열정 쏟아 '전국 최초' 실적만 20건기후변화 대비 '아쿠아포닉스' 주목 특히 기후변화에 대비한 '아쿠아포닉스' 개발 사업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업. 양식장에서 나온 배출수가 여과장치를 거쳐 농수로 활용하는 것인데, 실제 지난 7일 찾은 연구소 안쪽에서는 이 같은 사업으로 자란 상추가 비닐하우스를 가득 채웠다.김봉현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은 "앞으로 기후위기 등 사회적 변화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친환경 양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연구소는 어로 어업 활성화를 위해 치어 방류 사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단순 치어 방류가 아니라, 연구소에서 개발한 토산 어종 종자 생산·복원기술로 다양한 치어 생산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매월 정기적으로 이동진료차량을 이용, '수산질병관리사(일명 물고기 의사)'가 양식장을 찾아 물고기 질병 검사도 진행하고 있다.내수면 어업이 나아갈 방향은전문가들은 내수면 어업의 발전 방향으로 친환경 양식과 함께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 청년 인재 '목마른 어민들' 스마트 양식장, 숙제로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 청년 인재 '목마른 어민들' 스마트 양식장, 숙제로 지면기사

    우여곡절 끝에 양식장을 3개까지 늘렸지만, 유재인(46)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갈수록 내수면 어업의 입지는 줄어들고 어렵게 구한 젊은 직원들도 금방 그만두기 일쑤다."오늘도 직원 하나가 그만둔다고 하더라고요. 힘이 빠지죠. 열심히 하려고 해도 좋은 인력들은 들어오지 않으니까, 경쟁력도 떨어져요. 현재 내수면 어업을 하시는 어르신들과 제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젊은 인재들이 안 들어오니까 안타깝죠."유씨의 양식장은 그나마 청년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직원이 그만두면 그 빈자리를 채우기는 쉽지 않다. 유씨가 10년 전부터 '스마트 양식장'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젊은 일꾼들 금방 그만두기 일쑤인력 못채워 양식장 현대화 도전정부 지원사업 현실적 반영 시급 2012년 유씨는 '선별 작업 자동화 기계'를 수입했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물고기는 자라면 중간에 비슷한 크기끼리 공간을 나눠주는데, 이를 선별 작업이라고 한다. 뱀장어의 경우 이 같은 작업을 3~4번 해야 한다. 뱀장어가 200t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그래서 그는 무게·크기 등을 측정해 자동으로 그에 맞는 수조에 넣는 것까지 자동 선별 작업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점점 정밀성이 떨어졌다. "기계만 5천만원을 들여 설치했는데, 지금은 애물단지죠. 이미 기반이 있으면 이렇게 도전도 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남는 게 없어요. 이제 막 양식장을 시작하는 사람들한테는 (스마트 양식장 같은 도전이) 쉽지 않죠."유씨는 최근에도 정부 지원을 받는 양식장의 협력업체로도 참여했다. 인공지능(AI)으로 데이터를 구축해 양식장 수질 관리 등과 연계하는 것인데, 유씨의 양식장에서 테스트 사업이 이뤄졌다."양식장 현대화 사업은 물론 양식장에서 나가는 배출수의 수질 문제에 있어 '친환경 양식장'도 해결해야 할 과제죠. 무엇보다 정부 지원 사업이 현실적으로 어가에 많이 반영돼서 나이 드신 분들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필요하고, 내수면 어업을 하는 분들도 정부 지원 사업이나 내수면 발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합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 근현대 내수면 양식어업 발달사 지면기사

    내수면 어업은 우리 근현대 역사와 함께 해왔다.중앙내수면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대 첫 양식 상업시설은 1912년 함경남도 고원지역에 설치됐던 '연어 인공부화장'이다. 본격적인 내수면 양식의 시작은 1929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경상남도 진해에 설치한 '국립 진해 양어장'이다. 이후 1942년 일제강점기 끝 무렵, 단백질 공급원 확대를 위해 경기도 청평에 '청평 양어장'이 들어섰다. 중앙내수면연구소는 1937년부터 1943년까지 매년 내수면 양식을 희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잉어와 가물치 등 내수면 주요 어종에 대한 '양식교육' 기록도 확인했다. 경상도가 29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에서도 9건의 교육이 이뤄졌다. 함남 고원 근대 첫 양식 상업시설일제때 '국립 진해 양어장' 본격화정부 수립 후 종묘공급·법 제정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내수면 주요 어종에 대한 종묘생산과 방류, 분양은 중요했다. 진해 양어장과 청평 양어장을 당시 수산청(現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산하 '진해 담수구지장'과 '청평 담수구지장'으로 개편, 중·남부지역 어민들에게 잉어 등 종묘를 공급했다. 1960년대에는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무지개송어(Rainbow trout)로 1965년 강원도에서 우리나라 최초 송어양식을 시작했다.정부는 1970년대 내수면 어업 발전을 위해 '내수면개발촉진법(現 내수면어업법)'을 제정하기도 했다.그러나 1989년 이후 '맑은 물' 공급정책을 펼치면서 기존 가두리양식어업의 면허기간 연장이 불허됐고 주요 호수·댐에 설치됐던 시설이 철거되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5·끝)] 내수면 어업 활성화 가능성은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5·끝)] 내수면 어업 활성화 가능성은 지면기사

    제가 아버지한테 양식장을 물려받았듯,제 아들도 물려받고 싶어하는 산업으로 키우고 싶어요지난 1일 오전 파주시 '갈릴리양어장'을 찾았다. 검정 차양막으로 덮인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금세 안경에 뿌옇게 습기가 찼다. 빛줄기 없이 깜깜한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지름 6~8m의 거대한 수조가 가득했다. 이 같은 수조는 비닐하우스 두 동에 총 110개가 놓였는데, 수조 안에는 임진강 명물인 황복과 뱀장어가 자라고 있었다.1998년 대학 접고 아버지와 운영'지수식'서 '순환 여과식' 전환 여기는 내수면 양식 후계자 유재인(46)씨의 일터다. 유씨가 내수면 양식 어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이다. 대학생이었던 유씨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뱀장어 양식장을 돕다, 아예 대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와 본격적으로 내수면 양식에 뛰어들었다."아버지가 농사를 짓다가 1980년대 뱀장어 양식장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그냥 어깨너머로 보다가 (물)고기 키우는 것에 재미가 생겨 대학도 수산대로 갔어요. 근데 98년도에 수해가 크게 두 번 나면서 양식장이 다 잠기고 직원들도 나가고, 손이 부족해져서 제가 돕다가 아예 같이 운영하게 됐죠."양식장 안에서 자라는 고기들을 보며 유씨는 '어떻게 하면 물고기가 병에 안 걸리고 더 잘 자랄 수 있을까', '물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특히 황복의 경우 부화는 쉬운데, 성어까지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보통 황복이 성어가 되기까지 3년 이상이 걸리는데, 폐사율이 50~60%에 달해 키우면 손해가 더 컸다. "황복은 폐사율도 높고 예민해서 성어까지 키우는 곳이 거의 없어요. 돈을 써서 열심히 키워도 폐사하면 남는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황복이 살기 좋은 환경이 무엇인지 고민해 '황복 전용'으로 수질과 온도 등을 달리해 폐사율을 크게 낮췄죠."폐사율 높은 황복, 성어로 키워"4번째 양식장 새로운 어종 고민" 양식장을 '지수식'에서 '순환 여과식'으로 전환한 것도 그의 노력 덕이다. 처음 유씨와 유씨의 아버지도 면적 200여㎡의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4)] 지원정책, 단어만 바뀌거나 10년째 제자리… 정부 관심 '절실'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4)] 지원정책, 단어만 바뀌거나 10년째 제자리… 정부 관심 '절실' 지면기사

    내수면 어업은 생태·환경적인 측면에 더불어 친수(親水)공간으로서 활용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강과 하천에서 어로행위로 먹고살았던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1차산업을 기반으로 산업 간 연계 가능성이 열려있다. 특히 내수면 수산물 공급으로 다양한 식생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이 같은 내수면 어업의 발전 가능성을 이끌어내려면 민물고기를 찾는 소비자도 늘어야하지만, 정부의 관심도 뒷받침돼야 한다. 적극적인 정책 지원으로 내수면 어업의 발전, 지속가능성을 꾀해야 한다는 의미다.명맥 잇는 수준에 머무른 정부의 내수면 어업 정책=지난 3월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제5차 내수면어업 진흥 기본계획(2022~2026)'을 발표했다. 해당 기본계획은 내수면 어업 발전을 위해 '내수면어업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한다. 2002년 제1차 기본계획을 시작으로 올해 5차 기본계획까지 나왔다. 내수면 어업이 나아갈 방향을 정기적으로 세운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앞선 기본계획과 큰 차이점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제4차 기본계획(2017~2021)의 비전은 '물고기 길 따라 관광연계 내수면 6차 산업화'였다. 실뱀장어 인공 대량생산기술 확보와 내수면어업 생산액 150%(6천113억원) 초과 달성이라는 정책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2020년 생산액은 4천441억원이었고 실뱀장어 관련 기술 확보도 초기 먹이 개발 한계 등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정부 '5차 진흥 기본계획' 3월 발표4대 전략 등 4차와 세부 내용 유사 더욱이 제4차 기본계획 당시 4대 전략은 ▲내수면 양식업 활성화 ▲지속가능한 내수면 자원 조성 및 보호 ▲내수면 수산식품 가공 및 수급관리체계 구축 ▲내수면어업 육성 거버넌스 구축이었는데, 제5차 기본계획 4대 전략도 ▲내수면 양식산업 활성화 ▲어로 어업 체질 개선 ▲수산물 소비 확산 ▲내수면 어업 고부가가치화로 단어만 바뀌었을 뿐, 상당 부분 유사했다.양식 어업은 양식시설 현대화 등 시설 개선에, 어로 어업 체질 개선은 사실상 내수면 자원 복원·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4)] 명맥만 잇는 내수면 어업정책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4)] 명맥만 잇는 내수면 어업정책 지면기사

    "옛날에는 (물)고기 너무 많이 잡혀서 강에 두 번씩 나갔는데, 지금은 반대로 (물)고기가 없어서 자주 나가지."오랜 시간 평택호에서 '민물 어부(漁夫)'로 살아온 이들은 내수면 어업에도 '호황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가 그때다. 실제 전국 내수면 어업 생산량(통계청)도 1987년 5만7천103t으로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이중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던 어로어업 생산량이 4만6천598t(81.6%)에 달했다.어로어업 생산량 호황기 4만6598t작년은 8670t 그쳐… 5분의 1 수준1990년대까지 육성정책속 큰 발전더욱이 이 당시에는 정책적으로도 내수면 어업을 활성화하던 시기였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내수면에 대해 연구해온 '중앙내수면연구소'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내륙어촌 활성화 차원에서 '내수면 어업 육성정책'이 추진됐고 큰 발전을 거뒀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관심 속에서 내수면 어업이 발전했던 셈이다.그러나 이후 내수면 어업은 산업화와 간척사업 등으로 수산자원 감소와 외래종 유입, 어촌사회 고령화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정부정책으로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해야 했지만, 관련 정책은 현 수준을 유지하는 데 머물러 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당연히 전국 내수면 어업 생산량(통계청, 2021년 추정치)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고 지난해 4만2천663t까지 떨어졌다. 이 가운데 어로 어업 생산량은 지난해 8천670t에 그쳐 1980년대 후반 호황기(1987년 4만6천598t)와 비교하면 5분의 1수준으로 감소했다. 내수면 양식어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1990년 이후 정부의 맑은 물 공급정책 등으로 대규모 댐에 설치됐던 '가두리 양식장'이 철거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게다가 싼 가격의 수입 수산물이 쏟아지면서 가격경쟁력 면에서도 뒤처졌다. 평택호 민물 어부 김영수씨도 어로 어업과 함께 양식장도 운영했지만, 수입 수산물에 밀려 양식장 문을 닫았다고 했다. 이후 간척·외래종 유입·고령화 악재정부, 상황 타개 못하고 현상유지양식업도 '맑은물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3)] 직접 발로 뛰어야 살아남는 어촌계 현실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3)] 직접 발로 뛰어야 살아남는 어촌계 현실 지면기사

    그래도 김남성(53)씨는 나름 성공한 '귀어인'이다. 2021년 기준 경기도 내 내수면 어촌계는 60개소인데, 그 중 '양평군 내수면 어촌계'를 꾸린 것도 김씨다. 내수면 어선 어업은 3D(힘들고·더럽고·위험한) 업종인데,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호기롭게 이 업에 뛰어들었던 이들 중 많은 사람이 '포기'를 선언하고 떠난다. 그렇게 남은 양평 남한강 어부는 87명이 전부다.어부도 줄지만, 수산자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고향이 이천시였는데, 그때만 해도 강가에 나가면 발이 아플 정도로 다슬기가 많았어요. 근데 지금은 치어 방류 같은 수산자원 조성 사업을 안 해주면 '전멸'이라고 봐야죠."다슬기는 10마리 중 3마리, 재첩은 10마리 중 7마리가 죽은 채로 잡힌다. 실제 지난달 30일 또 다른 남한강 어부 양홍만(53)씨의 다슬기 조업에 동행했는데, 살아 있는 다슬기는 몇 개 없었다. 상당수는 죽은 재첩 껍데기였다. 양씨는 "최근에 죽은 다슬기, 재첩이 많이 잡혀요. 팔 수 있는 다슬기는 몇 개 되지도 않습니다. 힘이 빠지죠."앞길은 막막한데,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김씨가 찾아갔다. 그는 해양수산부 '어업인 후계자'를 신청했다. "어업인 후계자로 뽑히면 3천만원을 저렴한 이자로 대출해줘요. 목돈이 생기니까 기반시설을 갖출 수 있었죠. 근데 어차피 '빚'이에요." 이후 그는 전업 경영인에 선도 우수 경영인까지 선정됐지만, 계속 빚이 쌓여 추가 대출은 안받겠다고 했다. 대신 자신처럼 귀어한 청년들이 오면 경험도 말해주고 필요한 기반시설은 무엇인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여기에 더해 김씨는 이 업의 명맥을 잇기 위해,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해 '판로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나이가 있는 분들은 정말 열심히 해요. 근데 소득은 그만큼 안 나오니까 너무 안타깝죠." OEM방식 제품화·국방부 시범사업… 배스·블루길 '판로찾기' 계속 요청치어방류·수매사업 외 무관심 지적 "젊은 어부들 나서야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3)] 20년차 귀어인, 양평 다슬기 어부의 삶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3)] 20년차 귀어인, 양평 다슬기 어부의 삶 지면기사

    "귀어(歸漁)하고 하루에 18시간 넘게 강 위에서 살았죠."김남성(53)씨는 '귀어(歸漁)인'이다. 서울에서 10여년을 살다가 IMF로 사업이 망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양평군'에 쫓기듯 정착했다."결혼하고 조금 지나서 30대 때 왔어요. 애가 한 살이었는데, 처음 딱 (양평에) 왔을 때는 뭘 해야 하나 막연하더라고요."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주변에서 '다슬기 잡으면 돈벌이가 된다'는 말에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귀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선 어업 경험이 전혀 없던 김씨의 그물은 반년 넘게 텅 비었다. "물이 다 똑같고 고기도 많은 것 같았지만, 전혀 아니더라고요. 물속은 전혀 달라요. 수초는 어디 있는지, 물은 어떻게 흐르는지 이걸 알아야 하더라고요."김씨가 물속을 깨우쳐 기술을 터득할 때까지 약 4년이 걸렸다. 하루 18~20시간을 배 위에서 보내며 삶은 계란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배운 노하우였다. 옆에서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냥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기술과 경험이 필요해요. 여기 남한강에는 댐이 있는데, 언제 방류하는지, 장마 시기는 언제인지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거죠."하루 18시간씩 고기잡는 기술 익혀직판장·매운탕집 운영 등 노력에도"안정적인 수입 유지하기 어려워" 매일같이 열심히 그물을 쳤지만, 수입은 여전히 불안했다. 김씨와 같이 남한강에서 다슬기를 잡는 어부(漁夫)들은 1년에 150~200일 정도 일할 수 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다슬기 금어(禁漁)기간이고 겨울에는 강물이 얼어서 조업할 수가 없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여도 바람이 불면 파도가 세 배를 띄울 수가 없다.다슬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야 했던 김씨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다. 첫 시도는 '직판매장'이었다. 이를 위해 김씨는 직접 어촌계를 꾸려 어부들을 모았고, 어부들이 잡은 쏘가리 등을 직접 팔기 시작했다.그다음 '매운탕 집'을 열었다. 두 가지를 병행하다 보니 김씨를 비롯해 어촌계가 모두 안정적인 수입을 찾은 듯했다. 그러나 안정성을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2)] 사라질 위기 처한 내수면 어업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2)] 사라질 위기 처한 내수면 어업 지면기사

    평택호 어부(漁夫) 김영수(67)씨는 1983년부터 배를 탔다. 가덕도 앞 바다에서 고깃배를 타며 유년시절을 보낸 김씨는 결혼 후 민물 어부가 됐다. 양식장까지 차려 생계를 꾸려 나갔다.또다른 민물(내수면) 어부 이정섭(78)씨처럼 평택호가 삶의 터전이었던 김씨였지만, 그는 이제 그물과 함께 화물차 운전대를 잡고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수산자원과 함께 소득도 줄어들었고 지난 2002년부터 '겸업'을 하기 시작했다.주 조업시기에는 새벽 3~4시에 평택호에 나와 5시간가량 그물을 거두고 그 외 시간에는 화물차 운전을 하고 있다."수산자원이 줄면서 전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쉽지 않아. 나 말고도 농사 짓거나 이런 어민들 많지. 옛날에는 고기 잡아 애들 대학, 유학 다 보냈는데 지금은 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 수준이야.""오전 그물 거두고 화물차 운전"40년 배 탄 김영수씨 어려움 호소 김씨의 말처럼, 실제 전국 내수면 어부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겸업 어부'다. 통계청 농림어업조사를 보면 2019년 전국 어가 인구 6천622명 중 전업은 2천180명(33%), 겸업은 4천442명(67%)이다. 10명 중 6명은 '제2의 직업'을 가진 어부인 셈이다. 이처럼 어부들은 하나 둘 떠나는데, 떠난 빈자리를 채워 내수면 명맥을 이어갈 청년들은 보이지 않는다.전국 내수면 어부 70%(2019년 기준, 6천622명 중 4천641명)는 50대 이상이며 20대는 7.9%(526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순히 사회 변화에 따라 하나의 직업이 사라진다고 보기에는 민물 어부들의 역할이 작지 않다. 내수면 어업은 경기도 어업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데다, 어선·양식장도 적지 않다.2020년 기준 도내 어업 허가 3천924건 중 내수면 비중은 1천186건이며 어선 수는 1천875척 중 870척, 양식장은 454건 중 234건을 차지하고 있다.전국 내수면 어부 67%가 겸업중그럼에도 도내 '어업 비중' 절반쓰레기 수거 환경지킴이 역할도 더욱이 어부들은 내수면 생태환경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2)] 내수면 어업은 왜 위기에 직면했나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2)] 내수면 어업은 왜 위기에 직면했나 지면기사

    내수면 어업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점차 늙어가는 어촌사회, 과거와 달리 민물고기를 찾지 않는 소비자들. 게다가 수입 수산물은 무섭게 치고 올라와 판로 개척조차 쉽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산자원 감소'다. 고기가 나오지 않으니, 소득은 감소한다. 잡았다 하면 외래종이 절반이다. 이제는 음식점이 아닌, 낚시터가 주 판매처가 된 게 내수면 어업의 현실이다. 더는 민물고기 찾지 않는 시민들…그 속을 파고든 '수입 수산물'"기자님은 철마다 민물고기 찾아서 먹어요?"기자가 '왜 어민들이 내수면을 떠날까요?'라고 묻자, 어부들이 반문했다. 과거와 달리 자신들이 잡은 고기가 대부분 낚시터로 가는 것도 더는 소비자들이 찾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어부들의 설명이다. 해양수산부의 내수면 실태조사에서도 수산물 소비 저해요인으로 판매처 접근성 부족 59%, 음식점 수 부족 44.4% 등 대부분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꼽고 있다.어부들은 판매처를 찾지 못해 아우성인데, 그 와중에 수입 수산물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수입액 4년새 2347억→2513억 증가수출액 16억→8억 '규모상 큰 차이'저가공세에 설자리 잃게 된 국내산 해양수산부 자료를 보면 2016년 내수면어업의 수산물 수입액은 2천347억원에서 2020년 2천513억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수출액은 같은 기간 16억원에서 8억원으로 감소한 데다, 규모도 수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 그래픽 참조더욱이 낮은 가격으로 쏟아지는 수입 수산물에 자연스레 '국내산'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이종상 평택호 내수면 어촌계장은 "자연산 뱀장어를 kg당 10만원에 중간 상인한테 팔면 소비자한테는 20만원 정도 떨어져. 근데 수입산은 kg당 5만원도 안 되게 소비자한테 팔리잖아. 누가 자연산 뱀장어를 먹겠어"라고 토로했다. 평택호 어부 김영수(67)씨도 가격 경쟁력에서 수입산에 밀려 양식장을 접게 됐다며 씁쓸해했다.이승우 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은 "내수면 어업의 경우 소비시장이 지역적이고 상대적으로 작아 내수면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1)] '마지막 세대'를 만나다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1)] '마지막 세대'를 만나다 지면기사

    민물에도 어부(漁夫)가 있다. 경기도에는 1천명이 넘는 '민물 어부'가 산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바다 어부들과 달리 이들은 하천과 댐, 호수, 저수지 등 내수면에서 주로 물고기를 잡거나 양식을 한다. 이 업에 일생을 바친 이들은 돛 하나 달린 작은 나룻배로 노를 저어가며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다. 지금도 작은 모터가 달린 배를 몰며 만선(滿船)을 꿈꾼다. 그러나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긴 쉽지 않다. 자연으로부터 재화를 생산하는 1차산업에 청년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민물고기를 선호하던 소비자들도 줄어간다.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며 댐 설치와 환경변화로 수산자원은 점점 줄어간다. 결국, 현재 내수면에 남은 민물 어부들조차 다른 일자리를 찾으며 사실상 '마지막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그럼에도 여전히 매일같이 강에 배를 띄우고 좀 더 발전된 양식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에 자신과 아버지의 인생이 담겼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내 아들이 물려받고 싶은 산업이 되길 바라며 내수면 현대화 사업에 뛰어든다. 경인일보는 이 같은 민물 어부들의 재기를 꿈꾸며 경기도 내수면 어업의 역사와 이 업이 왜 위기에 직면했는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 편집자주여전히 배 띄우는 70대 이정섭씨1982년부터 고향 평택호에서 조업"맨땅에 헤딩… 그래도 잘 잡혔어" "평생을 평택호와 살았어. 물고기 잡아 자식들도 다 키웠지."이정섭(78)씨는 평택호 '어부(漁夫)'다. 처음부터 어부가 꿈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목장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린 자녀가 둘이었던 이씨는 앞길이 막막했다. 그렇게 찾아온 게 고향 '평택호'였다.처음에는 낚시꾼을 태우는 '뱃사공'으로 평택호와 만났다. 1979년 노가 딸린 작은 나룻배를 띄우고 낚시꾼들을 태웠다. 한 사람당 5천원, 꽤 쏠쏠했다. "당시 하루에 10만원 벌 때도 있었으니까 노가다(일용직)보다 나았어, 그렇게 한 3년을 했지."뱃사공으로 평

  •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1)] 경기도내 어부 40년새 3363→1144명… "힘든일 대물림 안 하고파"

    [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1)] 경기도내 어부 40년새 3363→1144명… "힘든일 대물림 안 하고파" 지면기사

    "(고기가) 없어, 올해는 없어도 너무 없네."지난달 29일 오후, 이씨의 배를 타고 함께 평택호로 나갔다. '청용호'라고 적힌 작은 배가 평택호 물살을 가로 질렀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강물 위에 떠 있는 하얀색 플라스틱 통에 가까워졌다. 어망이 설치된 수역이다.이씨가 그물을 천천히 끌어올렸지만, 그물은 텅 비어 있었다. "고기가 안 나오는 날도 있을 수 있지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어."최근 평택호를 점령한 무용생물 '강준치'도 골치다. 배스와 블루길은 이미 토착화됐는데, 여기에 강준치까지 늘어나면서 고유 어종의 알을 다 잡아먹고 있다. "그물 꺼내면 강준치 같은 외래종이 절반이야, 얘네들이 붕어 새끼를 다 잡아먹으니까 고기들이 계속 줄어들지."한 번 강에 나가면 기본 3시간 조업을 하고 돌아오는데, 이날은 오전에 고기가 없어 오후에 또 한 번 나왔다. 또 다른 수역으로 이동하자, 수많은 작은 고기 속에서 값을 받을 만한 큰 고기가 나왔다. 이렇게 잡은 고기들은 이제 음식점이 아닌, 대부분 낚시터로 간다. "민물 고기 파는 가게들이 많이 사라져서 지금은 대부분 낚시터에서 가져가지."이씨는 평택호 어부 중 나이가 가장 많지만, 여전히 고기를 많이 잡는 어부 중 하나다. 40년간 쌓은 경험 덕이다. "평택호에서 평생이야. 아산만 전체를 다 알아.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고기의 흐름은 어떤지 손바닥 안이야." 그는 민물어업을 공부했으면 박사까지 땄다며 자부심도 드러냈다.외래종 '강준치' 점령 토종 씨 말려평택호, 한때 100여명서 현재 41명 비록 이날은 만선(滿船)을 이루지 못해 한숨을 쉬면서도 이씨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고기가 안 나와도 그렇게 속상하지 않아. 날 따뜻해지면 나오겠지, 내일은 더 잡히겠지 하면서 일하는 거지." 무엇보다 이씨는 8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이 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데 감사해 했다. "딸들이 맨날 '아빠 그만해' 그러지. 근데 내가 할 수 있잖아. 젊었을 때도 그렇고 힘 닿는 데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