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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지면기사
문화란? 예술문화, 전통문화, 10대 문화, 정치문화, 미국문화, 대중문화, 고급문화, 화장실문화 등등과 같이 간편하게 조어를 이룰 만큼 쉽게 쓰여지지만 결코 쉽지 않은 단어 중 하나다. 많은 거장들이 문화에 대해 정의하고 논의를 계속하고 있으나 귀결은 힘들 것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에 대한 보편적 의미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 상징, 의식'을 말한다. 문화는 구성원의 가치를 비롯한 행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문화의 특징은 학습되어진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대와 세대 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문화규범을 통해 개인의 행동을 이끈다. 그러나 문화는 지속적이지만 고정불변은 아니다. 변화한다. 대중문화의 바람처럼 짧은 시간 스치고 지나가는 문화가 있는 반면 5000년을 이어 내려오는 전통문화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다른 문화와의 차별적인 가치로 구성되어진다. 예를 들어 10대와 노인 문화, 삼성과 현대의 문화, Y대와 K대의 문화, 경기와 호남의 문화 등이 다른 것은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개 개인의 행동양식을 보면 출신(?)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작은 문화현상은 결국 한국문화라는 이름으로 발현된다. 결국 작은 문화를 소중히 가꾸는 것이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된다. 한 시대는 문화의 계승과 문화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마치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플랫폼처럼 말이다. 우리 시대, 대한민국에는 어떤 기차가 들어오고 떠나는가? 그 기차에 우리는 함께 타고 있는가? 기적 소리는 상쾌하게 들리는가? 여행은 즐거운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거장들의 어깨너머로 보아온 플랫폼의 여객(旅客)들을 통해 이 사회의 울고 웃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눈물과 시름은 기적소리에 실려 보내고 힘차게 출발하는 기차에 얼른 몸을 실어야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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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그리고 者 지면기사
개 같은 ×과 개만도 못한 ×, 그리고 개보다 더한 ×. 이 중 누가 제일 나쁜 ×일까. 며칠 전 교육방송에서 '인간과 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아직도 답이 헷갈린다. 그러나 왜 애꿎은 개를 끌고 들어가 비교의 기준을 잡는지 모르겠다. 오직 충직함 하나로 개만큼 인간과 함께한 짐승도 없는데…. 개만큼만 살아봐라….평소 '견공지오륜(犬公之五倫)'을 설파(?)하는 친구가 있다. 개에게도 오륜이 있고, 개는 이를 지키고 산다는 것이다. 듣고 보면 그럴 듯하다. 지난 한 주, 인간 같지 않은 끔찍함이 뉴스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걸 보면서 더욱 동감하게 된다. 견공지오륜의 첫째는 '지주불폐(知主不吠)'다. '개도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 않는다'는 뜻으로 군신유의(君臣有義)와 같은 맥락이다. 둘째 '소불적대(小不敵大)'다. '작은 개는 큰개를 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뜻으로 장유유서(長幼有序)와 같다. 셋째는 모색상사(毛色相似)다. '개도 새끼를 낳으면 서로 닮는다'는 뜻으로 부자유친(父子有親)과 같다. 넷째는 잉후원부(孕後遠夫)로 부부유별(夫婦有別)과 같다. '개도 새끼를 배면 자웅 간에 서로 조심한다'는 의미다. 다섯째 일폐중폐(一吠衆吠)다. '한 마리 개가 짖으면 뭇 개가 따라 짖는다'는 뜻이다. 붕우유신(朋友有信)에 해당한다. 개도 견륜(犬倫)을 지키며 살려한다. 하물며 사람으로서 인륜(人倫)을 저버린 패륜아(悖倫兒)에겐 개에게서 배워오라 하고 싶다. 법이나 질서는 아랑곳없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어지럽히고, 어른 공경과 예의를 망각하며, 발정을 아무데서나 과시(?)하는 미물을 감히 개에 비유할 순 없다. 아마 개들도 인간 아닌 인간이 자신들에게 비유되는 걸 싫어 할 것이다. 아니 이런 '사람 같은 ×'라는 말이 개들 세계에서 이미 떠도는지 모르겠다.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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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지면기사
꽃미남 고교생의 종합선물세트: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의 후계자, 전 대통령의 손자, 국보급 예술가의 차남, 신흥 부동산 재벌의 상속자. 헬기 타고 등교, 구내식당 한 끼 5만원, 뉴칼레도니아 여행, 전용 제트기, 외제 스포츠카, 보석 박힌 드레스, 특급호텔, 성폭행, 왕따….한국방송에서 절찬리(?)에 방영중인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의 설정이다. 일본만화가 원작이고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하니 다소의 과장이 있을 수 있다는 제작자의 변도 있긴 하지만, 비현실적 황당 상황이 현실적 다수의 우울함을 더한다.아마 여성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세탁소집 딸의 신데렐라적 성장을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할 것이다. 젊은 꽃미남의 달콤한 키스를 기대하기도 하고, 뉴칼레도니아의 파란 바다에 뛰어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면, 내가 누워있는 공간은 더 이상 남태평양의 바다가 아니다. 내 옆의 남자도 꽃미남이 아니다. 주인공과의 동일시 그리고 대리만족, 훔쳐보기로 고단한 생활을 잊고 싶지만 변하는 건 하나 없다. 호박으로 변해버린 마차, 다시 쥐가 된 백마, 누더기 옷…. 자정이후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의 모습은 더욱 서럽다. 차라리 성에 가지 않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철거민의 농성장에서 몇 명이 죽었단다. 회사에 감원바람이 불었단다. 공장이 멈췄단다.불황, 화재, 사망, 철거민, 망루, 재개발, 일당, 생계대책, 생존권, 구조조정, 백수, 노숙….드라마가 끝나고 같은 텔레비전의 뉴스에서는 일상의 모습을 전한다. 즐겁지 않은 뉴스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다. 텔레비전이 미쳤다. 오죽하면 '막장(광산 갱도의 맨 끝)드라마'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불륜과 복수, 낄낄거리기를 넘어 그 자극의 도가 심하다. 왕년의 스타 개그맨은 요즘의 방송풍토를 술만 없지 술자리와 같다고 했다.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고민도 없고, 동시대인의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하기 위한 고뇌도 없다는 얘기겠지./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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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토일렛 지면기사
대통령도, 선생님도, 스님도, 신부님도 하룻동안 평균 4~5회 들르는 곳. 일평생 동안 남자는 290일, 여자는 380일 정도 시간을 보내는 곳. 신문을 보거나 전화를 하거나 우편물을 확인하는 공간. 자주 가도 문제고 못가도 문제인 곳.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그만큼 우리 생활의 일부이다.화장실을 문화의 척도라 한다. 화장실을 보면 대강 그 가정의 청결과 예의를 가늠할 수 있고, 음식점의 맛과 위생을 짐작할 수 있으며, 관공서나 회사의 근무기강과 친절을 눈치 챌 수 있다. 나아가 공중 화장실에서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중 화장실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고 발전했다. 시가 있고, 음악이 흐르고, 심지어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문화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든다하지 않던가. 크고 고급스러우면 뭐하랴…. 복불복(?)의 줄서기, 휴지가 너저분하게 떨어진 바닥, 물기가 흥건한 세면대, 담배연기 자욱한 실내, 잡담과 휴대폰 통화,… 아직도 아름답지 못한 (일부) 공중 화장실의 풍경이다. 불결한 뒤처리는 결국 내 뒷모습과 같다. 우리 모습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생리현상을 즐겁고 상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가 아름답다." 그가 머문 자리, 역시 아름답다.낮은 음성으로 문화와 예술을 얘기하던 사람. 화성의 역사를 되살려 놓은 사람. 처음 듣는 사람은 실소(?)를 머금게 했던 '미스터 화장실'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 자택(해우재)을 변기로 지은 사람.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맡았던 사람. 아마 그가 있었기에 우리나라 화장실의 시설개선과 화장실 이용문화의 발전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자리 더욱 아름답게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그의 영면이 안타깝지만, 세상의 근심걱정을 풀고 편히 쉬소서.삼가 고(故) 심재덕님의 명복을 빕니다./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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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환의 문화 플랫폼]박물관 지면기사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몇 번의 프랑스 출장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루브르 박물관을 잠시 짬을 내어 돌아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식의 소치였다. 40만점이 넘는 소장품(대부분 침략에 의한 약탈의 유품이지만)과 그 규모에 기가 질렸다. 그래도 '모나리자'는 봐야 한다는 생각에, 피라미드형 입구에서 부지런히 출발하여 역사의 걸작들을 스치듯 지나, 모나리자 앞에서 인파(?)를 헤치고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역순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대영박물관에서도,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도, 인도 국립 델리박물관에서도, 타이 왕립박물관에서도 나의 박물관 답사는 '갔다 왔음'을 자랑하는 현학의 허세가 존재하였음을 창피하지만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서 그 박물관들에서 보았던 어린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 한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않는 노신사의 모습은 아직도 멋지게 기억되고 있다.한 때 박물관 관람은 재패니스(코리안) 스타일과 유로피언 스타일이 있다는 농이 있었다. 일본식은 30분 만이면 박물관 전체 관람이 모두 끝난다는 것이고, 유럽식은 사흘이 걸린다는 것이다.스타일의 차이지 정법이 따로 있으랴만 '가까이 있는 박물관'과 '즐겨 찾는 관람객'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박물관은 역사의 거울이라 한다. 박물관을 통해 지나온 과거를 비쳐보고 미래를 열어간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대형거울도 있고 작은 손거울도 있듯 대규모의 박물관 건립도 좋지만 작은 소규모 박물관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많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지하철역 한 모퉁이에 차표 박물관, 시장통 한 모서리에 가정용품 박물관 등과 같은 생활사(벼룩)박물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1909년 11월 1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창경궁 양화당과 명정전, 회랑 등을 전시실로 꾸민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을 대중에 개방했다. 이에 올해는 우리나라에 근대적 박물관이 들어선 지 100년째 되는 해라 한다. 박물관 100년의 역사답게 '갔다 왔음'을 자랑하는 관람객의 허세가 더욱 부풀어지고 이를 충족시키는 박물관의 참신한 노력이 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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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희망이다 지면기사
새해다. 희망과 사랑을 건네는 시간이다. 지나온 시간이 팍팍했다면 그만큼 더 목마른 것이 희망과 사랑이다. 서로 용기와 의지를 북돋우고 부르는 노래가 힘이 된다. 고단 하지 않은 시간이 있었던가. 기댈 어깨가 없어 힘들 뿐이지… 사람이 사람을 보듬어야 한다.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라는 헤드 카피와 함께,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과 뚜껑이 열린 도시락이 사진으로 나온 광고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1984년 5월 스승의 날에 실린 '쌍용'의 일명 '도시락 광고'다. 이 광고를 생각하면 세월이 오래 되었어도 흐뭇함과 함께 위안이 되고, 다시 뛸 수 있는 힘을 준다.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 그날도 선생님은 어김없이/ 두 개의 도시락을 가져 오셨습니다.여느 때는 그 중 한 개를 선생님이 드시고/ 나머지를 우리에게 내놓곤 하셨는데,그 날은 두 개의 도시락 모두를 우리에게 주시고는/'오늘은 속이 불편 하구나' 하시며/ 교실 밖으로 나가셨습니다.찬물 한 주발로 빈속을 채우시고는/ 어린 마음을 달래시려고그 후 그렇게나 자주 속이 안 좋으셨다는 걸/깨닫게 된 것은 긴 세월이 지난 뒤였습니다…(이하 생략)쌍용은 음식업을 하는 기업이 아니다. 도시락을 파는 기업도 아니다. 이 광고가 당시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고 아직도 공감되는 것은 결국 우리의 고단함을 풀어 주는 것은 '사람'이요 '우리'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지금 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시절, 그래도 지금보다 더 따듯하게 견딜 수 있었음은 부비며 살아가는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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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 우하하!' 지면기사
'사우나! / 우하하!'세밑 모임의 건배구호 중 귀가 솔깃해지는 구호다. 사랑과 우정을 나누자!(사/우/나) 하고 선창하면, 새해 소 해에 모두 웃자는 의미에서 우(牛)하하(웃음소리)! 로 화답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서로 의지하며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재밌다.모임의 건배구호는 그 모임의 성격과 시대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래서…'로 이어지는 지루한 건배사보다는 짧고 간단한 건배구호가 더 강렬하게 인상 지워지고 모임의 일체를 이룰 수 있다. 시대상을 서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인 '○○○를 위하여'도 각각이다. '위하여'는 여당이, 야당은 '위하야'로, 서울대는 '위해서', 연세대는 '위하세', 고려대는 '위하고' 등으로 변질(?) 된다. 화답형으로 '지화자'하고 제창하면 나머지 참석자들이 '좋다!'라고 답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한때 '우리가 남이가!' 같은 정치색 짙은 구호에서부터, '조평통!'(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나가자!'(나라와 가정과 자신을 위하여), '개나발'(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등이 대세였으나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듯 구호도 다양해졌다.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문학자들의 '인·사·불·성'(인문학을 사랑하면 불가능한 일도 성공한다) 구호도 위트가 있어 멋지다. 중장년 모임에서 인기를 끄는 구호는 '구구팔팔 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고 삼일째 죽자)나 '나이야 가라' 등이다. 건강을 기원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어 나이에 상관없이 자주 쓰이는 구호다.'당·신·멋·져'(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살고 가끔은 져주자),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해) 등도 듣기가 좋은 구호이고,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중한 만남을 위하여), '초가집'(초지일관 가자 집으로: 2차는 없다는 뜻)의 건배구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세밑 잦은 송년 모임에 건배(乾杯)의 횟수도 많아지겠지만, 건강을 기원하는 '건(健)'으로 바꿔 절주하고 건배(健杯)로 서로 격려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 사랑과 우정을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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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유감 지면기사
송년 모임이 잦다. 그런데 모임 장소 중 유독 불편한 곳이 있다. 낯설다고나 할까… 빠르게 번진 '와인바' 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세련된 서비스가 익숙지 않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떼루와르, 샤토, 빈티지, 디캔딩, 소믈리에, 셀러, 보르도, 포트…??????? 도통 모르는 말 뿐인데 마치 와인을 좀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실제 가장 큰 이유지만) 왜 그리 비싼지… 높은 가격도 편치는 않다. 심장에 좋다며 식탁에서 한잔씩 권하던 포도주가 붐이라 할 정도로 단시간에 '우아한(?) 와인문화'를 만들어 냈다. 고가의 와인뿐 아니라 와인용품, 만화, 드라마 등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우리나라에서 와인은 이제 '트렌드(경향)를 마시는 고급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보니 와인자리에는 가슴이 없고 머리만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화가 없고 지식만 있는 것 같다. 생산지역, 생산연도, 품종, 토양, 양조장 등은 기본이고 주변 이야기도 섭렵해야 와인이 맛나다고 생각한다. 지식에 의해 얼마나 고급 와인인지를 알아야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터무니없게 산지의 몇 배를 넘는 와인의 고가정책도 고객의 허세를 겨냥한다. 프랑스, 칠레, 포르투갈 등 와인의 주산지에서 와인은 대중의 친구일 뿐이다. 유리잔이 없으면 주발에 먹어도 되고 심지어 병나발을 불어도 된다. 잘 차려진 안주가 필요한 게 아니다. 값 비싼 와인만이 대접받지 않는다. 그게 참이슬이든, 처음처럼이든, 안동소주든 상관없듯 와인이면 된다. 비싼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내 입에 맞는 것이 좋은 것이다. 유식의 뽐냄이 아니라 유심(有心)한 배려가 필요하다. 어느 술자리든 머리에서 혀를 통제하면 지루하고 재미없다. 친구와 술 한 잔이 있으면 보르도 산이든, 보졸레 산이든, 빈티지도, 스토리도 중요치 않다. 스템(와인잔의 다리부분)을 잡지 않았다고 무안을 줄 필요도 없다. 혀(舌)를 풀어놓는다고 핀잔할 것도 없다. 그저 술향기와 사람향기에 취하면 그뿐이다./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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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望年): 다음 해를 기대하며… 지면기사
망년회(忘年會)의 어감은 그리 좋지 않다. 잊을 망(忘) 자를 쓰는 것도 그렇고, 술로 몸과 마음이 찌든 채 흥청망청 한해를 보내자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 요즘은 망년회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조용하고 건전하게 보내자는 의미에서 송년회(送年會)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본디 '망년'이란 말은 망년지교(忘年之交) 또는 망년지우(忘年之友)에서 비롯되었다. 나이를 따지지 않고 사귀는 벗을 망년지교(망년지우)라 한다.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 친구로 사귄다는 뜻이다. 흥청대는 분위기의 '망년'은 일본에서 들어왔다. 일본에는 섣달 그믐께 친지끼리 모여 흥청대는 세시민속이 있었는데 '망년지교'에서 글자를 따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 불렀다고 한다. '망년지교'의 '망년'과는 의미가 다르다. '망년회'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한 해(年)를 잊는(忘) 모임(會)'이란 뜻이다. '송년회(送年會)'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마음을 담는다. '송년회'는 차분히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자리라는 의미다. 먹고 마시며 한 해를 잊어버린다는 뜻의 '망년회'와 확연히 다르다. 요즘 송년 모임의 세태가 많이 바뀌었다 한다. 지난해에 비해 송년모임 자리도 줄었고, 과거보다는 차분한 분위기다. 질퍽한 술자리보다는 공연 관람이나 등산모임 등이 늘었다. 지출 비용도 줄이는 분위기다. 돈을 아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송년 모임도 있다. 따듯한 송년모임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겨울의 추위를 잊게 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파다하다. 어려운 경제상황이 세밑을 더욱 춥게 하지만 그럴수록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정겨운 사람의 얼굴이 그립다. 끈끈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는 세밑이 되었으면 한다.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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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해도 불효? 지면기사
공부 잘해도 불효?"공부 잘하는 것도 불효야!" 한 선배가 소주잔을 넘기며 말했다. 선배에게 공부 잘하는 딸은 늘 자랑거리였다. 이 딸이 올해 수능을 보았고, 명문대 의대를 지망하고 있다. 그러나 중견 회사의 간부인 선배에게도 대학 등록금 중 제일 비싸다는 의대 등록금은 버겁다. 그렇다고 내후년 대학에 진학하는 동생은 안 가르치나…. 요즘 슬쩍 딸에게 사범대나 교육대 진학을 권유한다며, "안되면 한 채 있는 아파트라도 파는 수 밖에… 그런데 아파트는 팔리지 않고…"라 말하며 쓴 소주만 들이켰다. 경제 위기로 인한 기업의 명예퇴직, 구조조정과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 부동산 가치 하락 등 불안한 시기에 40·50대 가장들은 우울하다. 대학들이 뒤늦게 내년 등록금 동결을 약속하지만 이미 매년 물가 상승률보다 더 치솟은 등록금은 1천만원 시대를 열었다. 의학계·예능계 등 일부 학과는 1천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게다가 등록금에 교재비·용돈, 웬만하면 다 간다는 해외연수, 취직공부를 위한 학원 수강 등 대학 학비는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 제1주범이다. 대학생 자녀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경제적 고통을 덜고자 편의점·커피숍·건설현장·공공기관보조 등 아르바이트에 나서도 등록금을 충당하기에는 턱없다. 그렇다고 대학을 졸업하면 밝은(?) 미래가 열리는가? 오히려 청년 실업의 암울한 현실만이 가로막혀 있다. 40·50대 가장들은 다시 이들을 돌보아야 한다. 오래전에 '우골탑(牛骨塔)'이란 말이 있었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 팔고, 땅 팔아 대학 학비를 대었다는 말이다. 현재도 그 때와 별반 다름 없다. 아니 더욱 심하다는 느낌이다. 그땐 소 팔고 땅 팔아도 사각모자 쓴 대학생 자녀는 희망이고 자랑이었다. 졸업하면 가세를 일으킬 것이란 희망과 비록 남의 밭뙈기 부쳐 먹지만 당당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이젠 '가진 것 없는 부모로서 해 줄 수 없다'는 자괴와 '제 한 입 먹고 살아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되었다. 적어도 돈이 없어 가르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겠다. 쳐진 어깨로 추운 겨울을 나는 부모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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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 지면기사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하려면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재능이 있다 해도 웬만해선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오죽해 음악을 하면 서서히 가세가 기운다는 말이 있을까? 시간당 수십만원에 이르는 레슨비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악기 구입비, 그리고 유학은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등, 서민에겐 엄두가 안 난다. 야구 배트나 축구공을 잡고 있는 모습은 흐뭇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은 아이를 보면 겁이 덜컥 난다는 젊은 아빠의 농(弄)이 농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만큼 피아노 교습소와 음악대학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 만큼 음악에 관심과 소질 그리고 열정이 많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많은 음악전공자들이 막상 무대에 설 수 있는 자리는 그리 많지도 않다. 오케스트라 연주자 1명을 뽑기 위한 오디션에 100여명씩 몰리는 현실을 보면 음악계의 비현실적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비록 허구의 드라마이긴 하나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시청자들은 먼지 쌓인 피아노 건반을 오랜만에 두드리며 자취를 감춰버린 음악적 재능을 되살려내기도 하였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하였는데 그 오디션 현장은 5대1의 경쟁률만큼이나 뜨거웠다.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하는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면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음악인의 열정이 멋지다.지난 16일 프랑스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순수 국내파로 1위에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의 성공담은 과히 입지전적이다. 형편이 어려워 단칸방에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고, 음악계에서는 한 번쯤 다녀오는 유학 한 번 못 가고, 악기를 빌려가며 대회에 참가하였던 어린 소녀의 성공은 우리 음악풍토로 보았을 때 이변임에 틀림없다. 음악이 있는 집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없는 집 아이들에게도 향유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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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지면기사
프로 골퍼 탱크 최경주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한국방송에 1억원을 쾌척했다. KBS는 그 1억원을 사랑실천의 특별한 생각을 가진 100인에게 100만원씩 나눠주어 그 사랑의 크기를 불렸다. 갑자기 나 자신과 가족이 아닌 다른 그 누군가를 위해 100만원을 쓸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00만원으로 과연 세상은 따듯해질 수 있을까? 100만원이 가져오는 사랑의 크기는 그리고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아마 그 어떤 계측기로도 재지 못할 것이다. 나눔은, 사랑은, 행복은 그 전도율이 높기 때문이다.대학교 디자인과 학생들은 100만원의 종자돈으로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보육원 어린이들에게 전달했다. 한 초등학생은 백혈병 어린이들을 위한 가발을 만들기 위해 같은 반 친구들에게 머리를 기르도록 설득하였다. 그 기른 머리를 잘라 가발업체에 100만원을 내밀며 가발제작비로 받아 달라 하였다. 물론 가발업체 사장님은 그 갸륵한 마음에 무료로 가발을 제작해 주었다. 사진과 학생들은 사진을 찍고, 조리과 학생들은 피로연 음식을 만드는 등 100만원으로 베트남 이주여성의 결혼식을 성대히 치러준 젊은 대학생들, 병마와 싸우는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서울시청 핸드볼팀과 일전을 펼쳤던 아마추어 핸드볼팀 등… 이들이 천사다. (22일 KBS 1TV 오후 5시10분부터 110분간 생방송 예정)나눔의 가수 김장훈, 상금 모두를 내어 놓은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전 재산을 내어 놓은 김밥 할머니, 국민 여동생 문근영 등등 이름 없는 천사들의 곱디고운 마음이 정말 아름답다.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런데 삐딱한 시선으로 이들의 착한 마음을 폄훼하는 악플러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때쯤 한번 되뇌는 시구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한 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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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지면기사
15주년 한중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짧은 일정에 논의할 것이 많았지만 중국 외교부와의 업무협의는 진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관계자들은 우리 일행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고 환대하였다. 대화도 일반적인 한중관계, 개인적 취미와 관련하여 유쾌하게 오갈 뿐 공식 업무에 관한 내용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의 주석(酒席)이 있은 후 논의는 급진전하여 원만하게 합의를 이루게 되었다.미국의 경우는 달랐다. 백악관 측과의 회의는 꽉 짜여 있었다. 도착 첫날 간단한 인사말부터 시작한 회의는 의제 순서에 맞춰 꼬박이 진행되었다. 민감한 사항에 대한 첨예한 설전이 이어지고 다음날에도 계속되었다. 물론 느긋한 만찬 초대는커녕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워야 했다.혹자는 동양을 '관계의 문화', 서양을 '행동의 문화'로 구분한다. 앞서 베이징에서의 만찬은 상대와의 교감을 형성하고 이해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친구가 되면 (관계가 형성되면) 협상은 급진전하고 일괄 해결될 수 있다. 반면 백악관과의 회의에서 보듯, 미국의 경우는 관계보다는 정보와 사실의 확인을 우선한다. 친분이 있어도 일과는 별개다. 동양에서는 '한 개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많은 사람을 사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개인의 큰 자산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 관계는 관계고 일은 일이다. 입사 이력서를 비교해도 미국이나 유럽의 이력서는 최근 직무를 중심으로 쓰여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이력서는 대부분 본적(지연), 학력(학연), 본관(혈연)… 등등 개인 중심이다.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해왔는지는 뒷면에 기록되어진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우리나라에서 '새 대통령 인맥 찾기' 소동(?)이 벌어진 듯하여 실소를 머금게 한다. 뭔가 엮어야 하는… 지극히 우리식이다. 과거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연(舊緣)이 없어도, 공통의 관심사가 존재하고 신뢰와 존중이 바탕이 된다면 새로운 관계가 더욱 공고하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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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킨테 그리고 오바마 지면기사
'쿤타킨테'가 기억난다.아프리카 감비아의 주푸레 마을에서 백인 노예상에게 붙잡혀 미국 땅에 도착한 그 흑인 노예. 벌거벗겨져 쇠사슬로 묶여진채 백인 노예상의 혹독한 매질과 굶주림으로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이방인. 짐승보다 못한 처지였지만 그가 놓지않은 것은 바로 고향 아프리카의 기억이었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어버리면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게 되어버린다'는 신념으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 그 아프리카의 기억은 후대로 이어졌다. 결국 그의 7대손인 '알렉스 헤일리'는 1976년 '뿌리(Roots)'라는 작품으로 자신들의 뿌리인 '쿤타킨테'를 잊지 않고 되살려 놓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아픈 200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이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50여년 전에는 백인과 흑인은 버스 자리가 달랐다. 앞자리 백인 자리가 비었어도 다리 아픈 흑인 아주머니는 앉을 수가 없었다.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도 군 장교시절 흑인용 화장실을 따로 이용해야 했다. 아직도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수많은 인종이 섞여있는 브라질은 무지개 인종이라 한다. 자연스럽게 화학적으로 스며있다는 것이다. 반면 얼마 전까지 미국의 순혈주의는 유별났다. 피부색에 따른 구분이 확연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확연한 피부색의 구분을 이용하여 국가 역량을 모으는 멋진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종의 종합전시장이라 할 수 있는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에서 미국의 위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아니 자신들의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기 위해 인종을 넘어 융합을 이루는 역사적인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어 냈다. 아프리카 감비아의 주푸레 마을로 돌아가고자 했던 쿤타킨테는 그 후예들이 이 땅에서 허물어 버린 편견과 차별에 미소 지을 것이다. 적어도 피부색 때문에 미국에서 더이상 이루지 못할 꿈은 없어졌다. 열린사회의 마지막 문이 열렸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당선이 연일 화제다. 그 파장은 세계인의 뇌리에 만만치않은 영향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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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방지 지면기사
2+3=?, 6×5=?, 10÷2=? … 메일을 보내기 위해선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이 후회할만한 이메일 전송을 방지하기 위해 낸 묘안이다. 내년 봄부터 실시 예정이라 하는데 늦은 밤과 주말에 메일을 전송할 때에는 간단한 수학문제를 풀어야 이메일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발상이 재밌다. 역시 구글이다. 메일을 보내놓고 후회해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동감한다.저녁내내 술잔을 들이켜며 괴롭히던 상사에게 온갖 저주의 발언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 도착하여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메일쓰기를 열어 부장의 온갖 악행을 비난하고, 보내기를 클릭한 후… 괜히 보냈다는 생각이 들면서, 밀려드는 후회에 취기는 사라져버리고, 어찌 부장님의 얼굴을 뵈어야 하는지….헤어진 옛 연인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내놓고, 부질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잠 못 이루던…. 잘난 체하는 동료에게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비아냥과 함께 보낸 메일….구글은 너무 피곤하거나 감정적이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할지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이 프로그램을 개발했단다. 어찌 메일 보내기에만 해당할까. 후회할 짓 하지 말자면서도 순간적 행동으로 쌓이는 것이 후회아닌가? 자신을 비하했다하여 욱하는 성질에 욕설을 내뱉은 그 장관도 그 순간 2+3=?, 6×5=?, 10÷2=?…를 한번 풀어 보았으면…. '악플' 이라는 메스로 타인과 자신의 가슴을 베어버린 그 여직원도 그 순간 2+3=?, 6×5=?, 10÷2=?…를 한번 풀어 보았으면….시험 성적이 좋지않은 아이에게 핀잔주기 전에, 사장님 면전에 사표내기 전에, 끼어들기를 하는 운전자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기 전에 네댓개의 간단한 문제를 먼저 풀어보았으면 한다. 지친 마음에, 욱하는 성질에… 보내기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후회는 밀려온다.순간적 즉흥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잃지 않을 몇 개의 문제를 준비해야겠다./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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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T 지면기사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식민지로 가진 나라, 바로 인도다. 실리콘 밸리의 IT 전문가들은 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인도공과대학) 출신이 많다.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 거의 모두에 IIT동문들이 임원으로 포진해 있을 만큼, 화려한 네트워크와 실력을 갖춘 IIT 졸업생은 세계 유수기업의 '러브콜' 대상이다. IIT는 인도를 넘어, 세계 IT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IIT의 경쟁력은 '실용과 자율, 그리고 치열한 경쟁 시스템'으로 요약된다. 인도 전역의 인재를 선발하여 실용적인 교육을 더해 가장 우수한 인재를 길러낸다. 3과목 시험만으로 학생을 뽑는 절차와 자율적인 커리큘럼 구성도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에 충실하게 부합한다. 인도 전역에 7개의 캠퍼스를 운영하며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엄격한 학력 관리를 통한 치열한 경쟁도 IIT의 경쟁력을 만들고 있다. 11억 인구의 인도에서 20만명의 수재들이 입학시험에 응시하지만 단 2천100명만을 선발한다. 입학 후 각종 평가에 의해 중간 탈락자가 발생하는 등 IIT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에 항상 노출돼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오늘날 IIT의 명성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졸업생 때문이다. 사실 IIT는 MIT, 스탠퍼드, 칼텍과 비교할 때 시설 면이나 연구실적 등에서 미흡하다. IIT의 핵심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다. 탁월한 수리능력과 영어 구사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해 놓았으니 실리콘밸리든 어디든, 어디다 가져다 놓아도 100%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저렴한(?) 임금만을 지불하여도 되니 세계기업이 이들을 찾을 만하다.22일 인도가 달탐사선 찬드라얀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자체개발한 무인 달탐사선이다. 아시아에서 일본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성공한 것이다. 세계 우주 산업 분야에서 인도는 그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러한 인도의 성공은 IIT와 같이 과학분야의 인재를 끊임없이 양성하는 교육의 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026년경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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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菊花) 지면기사
오랜만에 국화를 샀다. 꽃잎이 작은 노란 소국이다. 받아 든 내자는 꽃만큼 환하게 웃었다. 집안 가득 국향이 배었다. 아! 작은 국화 한 다발이 가을을 불러오는구나. 옛 어른들은 모양새나 빛깔, 향기 등 외부적 기준으로 꽃을 보지 않고, 꽃이 지닌 정신적 기준에 따라 꽃을 가까이 했다. 꽃에게도 품격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평생 꽃을 좋아한 조선 세조 때 문신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이라는 책에서 꽃과 나무를 9등급으로 구분하였다. 치자꽃, 동백꽃, 사계화 등은 깐깐한 기골, 모란과 작약은 부귀, 해바라기·두충은 충(忠)과 열(烈), 박꽃·맨드라미·봉선화는 성실함, 진달래·개나리는 분명한 거취가 그 화품이다. 그중에서도 서리 맞고도 피어나는 국화,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으뜸으로 쳤다. 지조와 절개의 화품을 지닌 꽃을 좋아한 것이다.술과 국화를 매우 사랑했던 조선 중종 때 정승 신용개는 달빛이 국화분에 비치면 친구가 왔다하여 술상을 차리고 국화꽃과 대작하며 늦도록 술에 취했다 한다. 또한 옛 선비들이 서로 결의를 맺을 때는 서로의 황국(黃菊)과 백국(白菊)을 가져와 접을 붙였다. 이후 이 꽃의 절반은 노란 꽃을, 절반은 하얀 꽃을 피어내어, 서로의 뜻을 확인하였다. 이 꽃을 결심국(決心菊)이라 불렀다.이 계절, 가을의 꽃은 역시 국화다. 찬 서리 맞고 피어나는 꽃, 오상고절(傲霜孤節) 국화는 서리를 업신여겨 빛을 내고, 늦으면 늦을수록 오히려 그 기품과 결기가 고고하다. 가을이 깊어 가면 갈수록 국화의 향이 더욱 진하게 퍼질 것이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우리의 살림살이에 꽃 타령, 국화타령이 어울리기야 하겠냐만, 이럴 때 일수록 한 움큼 거머쥔 국화 한 다발을 가족에게, 친구에게 건네보자. 어려운 시절, 버틸 수 있는 지조와 결의 그리고 향기로운 친구를 얻을 것이다./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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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지면기사
'현대사회에서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유일하게 성공하는 길은 '연예스타' 혹은 '스포츠스타'가 되는 것뿐이다'. 트럭 운전사에서 전설적인 로큰롤의 스타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의 말이다. 부와 명예가 세습되어지는 세태에서 단지 자신의 타고난 재능하나로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빠르고 유일한 길은 아마 연예계와 스포츠계뿐일 것이다. 요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들의 면면을 보라. 세간의 잣대로 보면, 그들이 학벌 좋은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세도 있는 명망가 집안도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성실함만으로 지금 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돈과 인기를 기준으로 연예인들을 분류했을 때 피라미드의 정점이 스타다. 그러나 실제 스타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몇 명 되지 않는다. 생계를 걱정하는 연예인들이 훨씬 많지만, 소수의 스타는 부와 명성을 거머쥐며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고 정치·사회 각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스타의 영향력은 대중이 부여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다. 우상숭배의 변종이라 할 수 있다. 우상으로부터 얻고자 했던 위안과 평안을 그리고 삶의 양식을 스타에게서 찾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는 대중이 부여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려 끝없이 노력한다. 순간의 이미지에만 갇혀 있다면 그 생명력은 보장받을 수 없다. 지금은 잊혀진 스타가 얼마나 많은가.KBS에 대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개그맨 유재석의 MC 1회 출연료는 900만원, 강호동 850만원, 신동엽·탁재훈·신정환은 800만원이었다. 스타의 몸값으로 봐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으나 적어도 공영방송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과도한 지출을 하며 스타를 캐스팅하는 이면에는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것이고, 시청률 지상주의는 결국 광고수입 등을 극대화하려는 저의(?)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지상파 상업방송이나 케이블 방송과는 달라야 한다. 제작비 증가와 광고비 부담에 따른 상품가격의 상승 등을 부추기는 것은 물론, 소수 스타에 의존한 안이한 프로그램 제작은 시청자에게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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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러시아 지면기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푸슈킨의 유명한 시 구절이다. 삶이 우리를 속이는데, 어찌 슬프거나 화가 나지 않는단 말인가?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낭만적이다. 그 고단하고 슬픈 삶을 종교와 예술로서 이겨낸다.러시아 국기의 위쪽 흰색은 성스러움을 의미한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를 신성한 나라라 생각한다. 1천년이 넘는 그리스 정교의 영향 때문이다. 어려운 생활일지라도 교회에 성금을 내기위해 가벼운 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털어낸다. 이들의 신앙심에는 배고픈 주머니들도 소용이 없다. 러시아인들의 종교에 대한 신념은 투철하다. 계속되는 외침, 정부의 가혹한 수탈과 착취, 그리고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그리스 정교였다. 또한 러시아인들만큼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국민들도 드물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볼쇼이, 말린스키 극장 등에는 주말이면 여전히 5만에서 6만의 군중들이 모인다. 러시아 정부 역시 엄청난 국고를 투자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랑과 지원은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레닌 도서관으로 이어져 러시아의 문화예술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으며 러시아를 지탱해주는 정신적인 기반이 되고 있다.어떤 이는 러시아를 알록달록하다고 한다. 세계 영토의 8분의1의 크기, 한나라에서 11시간의 시차가 나는 나라. 소속되어 있는 공화국만 하여도 몇 십 개가 넘고, 수십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나라.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걸쳐 아시아인 듯 유럽인 듯, 러시아만의 독특함을 유지한다. 우리 눈에 비친 러시아도 주당에게는 '보드카의 나라', 남자들에겐 '미녀들의 나라', 예술애호가들에겐 '문학과 예술의 나라', 장년에겐 '소련', 노년에겐 '빨갱이의 나라' 등으로 다가오기에 러시아가 알록달록하다는 표현에 동의한다. 알록달록한 러시아의 근간에는 하나의 러시아로 묶어주는 그들의 종교와 예술이 있다. 러시아인들은 우리만큼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만큼 가족과 친구가 우선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국빈방문 했다. 그들과 진정한 '우리 친구'가 되기 위해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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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大使) 지면기사
외교관의 꽃은 대사다. 대사는 나라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에 파견되어 외교를 맡아보는 최고의 직급으로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다른 나라 원수에게 자신의 대리인으로 그 권위와 전권을 위임한 사람이다. 대사의 정식명칭은 특명전권대사(ambassador extraordinary and plenipotentiary)이다. 대사는 국기를 꽂은 커다란 차량으로 이동하며 행사에 참석하여 멋진 연설을 하고 연회에서 품격 있는 사교를 한다. 때론 본국 정부의 정책을 주재국에 이해시키고 외교적 협상을 주도한다. 대사는 주재국에서 국가를 대표한다. 대사의 모든 언행과 행동은 외교적 행위이며 한나라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그래서 대사는 '폼생폼사(?)' 한다. 대사의 폼(form)이 그 국가의 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대사의 폼을 어느 정도 결정짓기도 한다. 즉 대사도 대사 나름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에는 장·차관을 역임하는 등 중량감 있는 대사들이지만,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그리 크지 않은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부임하는 대사들도 우리와의 관계에 따라 다르지 않다. 외교부에 입부한 직업 외교관들은 대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꼭 직업외교관이 대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미국의 경우 직업 외교관 보다는 정치인이나 학자 등 외부전문가가 더 많다. 미국 대통령을 대리하여 국가이익을 실현할 적임자이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역대 주한 미국대사는 직업 외교관 출신이 더 많았다. 중앙정보국 출신인 제임스 릴리(13대)와 도널드 그레그(14대), 대학총장을 지낸 제임스 레이니(15대) 대사는 예외다. 한반도 문제를 풀어 가는데 외교적 경험이 풍부한 직업 외교관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 미국대사의 부임소식이 흥미를 끈다.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고,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30여 년 전 시골중학교 영어선생님을 했었고, (이혼 했지만) 한국인 남편과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