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보듬은 건 내 동심이었어"

평균 75세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박사들"치료 넘어 친구 되찾아주는 일" 의미 짚어■ 할아버지의 장난감 선물가게┃장난감 박사 지음. 달 펴냄. 208쪽. 1만5천원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지하시민상가. 이곳에는 '입원 치료' 의뢰를 받아 아이들의 장난감을 되살려주는 '키니스 장난감 병원'이 있다. 평균 나이 75세. 대학교수, 고등학교 선생님, 연구원, 회사원 등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다 생업을 은퇴한 할아버지들이 '장난감 박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동심을 선물하고 있다.36년간 공학교수로 살아온 김종일 이사장이 은퇴 후 몇몇 동료들과 함께 장난감을 고쳐주는 장난감 병원을 설립했다. '봉사하는 여생'을 위해 멋모르고 시작한 병원 일. 전기로 움직이는 요즘 장난감들은 할아버지들에게 '신세계'였고,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장난감 투성이 공간에서 하루에 일곱 시간씩 보내다 보니 어느새 봉사보다 '노동'에 가까워질 정도로 많은 의뢰가 들어오지만 "감사합니다"라는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피로가 사라진다는 박사님들이다. 신간 '할아버지의 장난감 선물가게'는 이렇듯 장난감의 세계에 '정'들어 버린 장난감 박사님들의 속 깊은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다.장난감은 저마다 주인인 아이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인형 코가 떨어져 이불까지 덮어주며 재웠지만 고쳐지지 않았다"는 아이부터 "공연장에서 신나게 응원봉을 흔들다 전선이 끊어졌다"는 다 큰 '어린 이'까지. 고장이 났거나 주인을 잃어 홀로 남겨질 뻔한 수백 가지의 이야기들은 저자들을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저자들은 "장난감은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갖는 자기 소유의 애착물"이라며 "장난감 수리는 아이들에게 단순 수리를 넘어 소중한 친구를 되찾는 일"이라고 의미를 되짚어 준다.저자들은 장난감을 고쳐냈을 때의 성취감을 넘어 사람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마주했을 때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종 이러한 선의에 날선 말들을 뱉는 이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저자들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았고, 그 일이 노년의 인생에 생동감을 주었기에.책은 평생 일했던 책상을 떠나 누군가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 다시 책상에 앉은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뭉클하게 전한다. 이들은 어른으로서 아이를 대하는 자세,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 일하는 성실한 열정 등을 글 속에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진짜 멋진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여러분, 그저 용기를 내주세요. 인생은 참 깁니다. 무엇이든 해봅시다. 무엇이든 만나봅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5-09 19:03:10
한국 극장 시초… 인천엔 '애관극장' 있었다

한국 극장 시초… 인천엔 '애관극장' 있었다

명성에 걸맞는 극장 60여곳 흔적 쫓아 ■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윤기형 지음. 동연 펴냄. 383쪽. 3만원인천 영화 역사 아카이빙이란 점에서 의미가 큰 책이다.조선에는 개항 전까지 실내 극장이 없었다. 줄타기나 남사당패 같은 마당놀이가 저잣거리에서 공연됐다. 반면 일본은 분라쿠, 가부키 같은 연희가 실내 극장에서 발달했다. 개항과 함께 조선에 일본인들을 위한 실내 극장이 처음 들어섰고, 부와 권력을 가진 조선인은 조선인 극장을 세울 수 있었다.부산, 서울, 대구, 광주 그리고 인천에 실내 극장이 설립됐다. 지금까지 당시 최초의 극장 계보를 이으며 남아있는 곳이 1895년 인천에서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 '협률사'로 시작한 '애관극장'이다. 애관극장은 인천 중구 경동 싸리재에서 여전히 영화를 틀고 있다.저자는 한국 극장 역사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출발점이 곧 인천의 영화 역사이기도 하다. 개항 초기에서 해방 전까지 인천에 있던 인부좌, 인천좌, 가부키좌, 죽원관, 낙우관, 표관, 인천영화극장(인영극장), 부평영화극장(부평극장)의 기록을 찾고, 이후 '영화도시 인천'이라 불릴 만큼 많았던 60여 곳에 달했던 극장의 연혁과 흔적을 기록했다.저자는 기록의 과정에서 인천의 영화와 관련된 인물들을 거의 다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 인천 옛 극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미림극장에서 과거 간판을 그렸던 김기봉 화백의 이야기가 흥미롭다."1950년대 말쯤 홀쭉이와 뚱뚱이로 유명한 양석천과 양훈이 쇼를 위해 애관에 왔는데, 배우들이 애관에 오면 애관 뒤에 있는 여관에 머물렀다. 그 당시 빈대가 많아 여관에서 잠을 자기 힘들면 극장 무대 밑에 사과 상자를 이어 그 위에 이불을 깔면 시원하고 빈대 걱정 없이 잘 수 있었다."저자인 윤기형 영화감독은 202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를 연출했다. 애관극장과 미림극장에 대한 다큐인데,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인천의 영화사를 이번 책에서 다 다뤘다. 애관극장이 보전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024-05-09 19:02:50
'함께'를 알게 해준 동물 친구들의 포근한 위로

'함께'를 알게 해준 동물 친구들의 포근한 위로

사람과 강아지의 따뜻한 우정 담은 그림책 ■ 우리, 함께 걸을까?┃엘렌느 에리 지음. 유키코 노리다케 그림. 이경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32쪽. 1만6천원그림책 '우리, 함께 걸을까'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던 꽃집 주인이 새로운 동물 친구를 만나며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한결같이 같은 길을 거닐며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좋아하는 오르탕스 부인에게 어느날 튤립보다 키가 작은 개 한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걸음을 멈춘 부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꽃다발과 파 한 다발이 어울리게 담긴 노부인의 바구니. 오르탕스 부인의 머릿속에서는 독특하고 새로운 꽃다발의 모습들이 만들어졌다.전날 만난 귀여운 개는 매일 오르탕스 부인을 따르며 길동무가 되어주고, 더 나아가 온 동네의 개들을 한데 모이게 한다. 부추처럼 길고 가느다란 몸매의 '필레몽', 털북숭이 작은 치와와 '시시', 짤막한 다리의 '쥐스탱'과 이웃에 사는 복슬개들, 불도그 '가스통' 등.평범한 하루에 스미듯 찾아온 작은 행복 앞에서 용기를 낸 '수국 화원'의 오르탕스 부인이 강아지들을 통해 세상을 마주보고 소통하게 되는 과정은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고 다정하다. '혼자'에서 '함께' 걸을 수 있게 친구가 되어준 강아지와 꽃집 주인의 우정은 포근하고 따듯한 기운으로 책을 가득 채운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5-09 19:02:38
주말 문닫는 송도국제기구도서관… 주민들

주말 문닫는 송도국제기구도서관… 주민들 "책 읽고픈 마음도 쉬어야 하나"

토·일요일 미운영 '불편' 겪어인력 부족·공간 특수성 등 원인주말 휴관, 섬지역 포함 단 2곳뿐인천 연수구 송도동 한 공공도서관이 여느 공공도서관과 달리 주말인 토·일요일 모두 휴관해 인근 주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최근 국민신문고에 "송도국제기구도서관이 토요일과 일요일에 운영되지 않아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며 주말에도 도서관을 열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공공도서관은 시민의 독서·문화 활동을 돕기 위해 설립된 시설로, 주중 하루 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인천시내 63개 공공도서관 중 주말에 휴관하는 도서관은 섬 지역에 있는 옹진군 대청도서관과 송도국제기구도서관 2개뿐이다.대청도서관은 주말에도 운영하다가 근무 인력 부족으로 지난해 3월부터 주중에만 문을 열고 있다. 대청도서관 관계자는 "부득이하게 운영 시간을 변경했지만 주민들이 주말 이용을 희망하면 문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송도국제기구도서관은 2013년 개관 이래 평일 운영·주말 휴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2만4천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이 도서관은 주중에도 오후 6시가 되면 문을 닫아 대개 오후 8시까지 개방하는 다른 공공도서관에 비해 평일 운영 시간도 짧다.송도국제기구도서관 측은 인력 부족, 공간 특수성 등의 이유로 주말 운영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송도국제기구도서관 인력은 관리 주체인 미추홀도서관 측이 파견한 사서 직원 2명과 사회복무요원 1명 등 3명이 전부인 데다, 사회복무요원은 복무 규정상 주중에만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다.8일 송도국제기구도서관 관계자는 "매년 인천시와 미추홀도서관에 인력 충원을 요청했지만 도서관 규모가 다른 공공도서관에 비해 작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다"며 "G타워 2층 일부 공간을 임차해 운영하는 도서관이어서 주말에도 문을 열려면 G타워를 관리하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건물 보안 문제 등도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미추홀도서관 관계자는 "사서 공무원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인천시가 추가로 사서공무원을 뽑지 않는 한 송도국제기구도서관 인력 확충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상우기자 beewoo@kyeongin.com7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G타워에 위치한 송도국제기구도서관 입구에 주말 휴관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5.7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2024-05-08 19:27:55
김포 고촌읍에 '만화도서관' 짓는다

김포 고촌읍에 '만화도서관' 짓는다

KB국민銀 협약 1억5천만원 지원서가 전체 원목으로 10월 문열어김포에 KB국민은행이 후원하는 만화도서관이 조성된다. 가독성이 뛰어난 만화책을 수천 권 비치할 것으로 알려져 지역 독서저변 확대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김병수 김포시장은 지난 7일 김은덕 KB국민은행 강서지역그룹대표, 김수연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와 'KB 작은도서관 조성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이 사업은 KB국민은행이 독서문화 진흥을 목적으로 지난 2008년부터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함께 작은도서관을 조성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협약에 따라 KB는 김포만화도서관 조성사업비 1억5천만원을 지원한다. 또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서가 구입 및 조성공사, 김포시는 도서관 운영을 맡는다.김포만화도서관은 아동·청소년·성인 등 세대를 망라한 만화도서 5천여권과 일반도서 2천여권을 갖추게 된다.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소재 민원콜센터 1층 공간을 리모델링해 오는 10월 개관할 예정이다. 시는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측에서 서가 전체를 원목 소재로 제작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김포는 시민 특성에 맞춘 다양한 책읽기 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플랫폼을 종이책에 한정 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사람·도서관·지역사회 등 독서공동체가 깊이 있는 문화콘텐츠를 실시간 공유하는 정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이날 협약식에서 김병수 시장은 "독서법 중 하나인 슬로우리딩을 하려면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며 "시민들이 책에 따라, 상황에 따라, 취향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특화도서관을 계속해서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김병수(가운데) 김포시장이 김은덕(왼쪽) KB국민은행 강서지역그룹대표·김수연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와 'KB 작은도서관 조성사업' 협약 체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5.7 /김포시 제공

2024-05-08 19:22:54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카페, 마담은 '독립운동가'였다… 박서련 소설 '카카듀'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카페, 마담은 '독립운동가'였다… 박서련 소설 '카카듀'

2018년 '체공녀 강주룡' 이은 역사물일제강점기 인물 이경손·현앨리스 중심식민지와 청춘 등 무겁지 않게 풀어내박 작가 "허구인 동시에 진실 가능성도" ■ 카카듀┃박서련 지음. 안온북스 펴냄. 360쪽. 1만6800원소설가 박서련이 '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2018)에 이어 두 번째로 쓴 역사소설이다. 1928년 경성 관훈동에 조선인이 차린 첫 서양식 카페 '카카듀'의 주인 이경손(1905∼1978)과 현앨리스(현미옥·1903~1956?)의 이야기를 다뤘다.소설 속 화자 이경손은 의관 집안 출신이지만 신학, 예술 등을 공부하고 영화감독과 배우로 활동하며 '보헤미안'을 꿈꾼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다. 사촌누나의 딸이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오촌 조카 앨리스가 찾아와 당시 '끽다점'이라 불린 카페 창업과 동업을 제안한다. 이경손이 성인이 돼 다시 마주쳤을 때 "신파, 신파다. 새 시대의 얼굴이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신여성이 바로 앨리스였다.3·1운동이 일어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예술인들이 끽다점이자 문화예술 공간인 카카듀로 모인다. 그중엔 보헤미안도 있고, 코뮤니스트(사회주의자)도 있다. 나운규, 김명순, 이음전(이애리수) 등 당대의 예술인은 물론 심훈, 박헌영 등 역사적 인물이 소설 속을 거닌다. 경성과 부산을 오가는 영화계 풍경도 흥미롭게 쓰였다.박서련은 카카듀를 운영하던 시절 이경손과 앨리스의 흐릿한 행적에서 그 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고민을 읽어 냈다. 카카듀에서 열린 성탄 파티에 참석한 예술가들이 왁자지껄하게 '아리랑'을 부르다 바깥에서 일본 경찰이 들으면 어쩌나 걱정하다가도, 술과 흥에 취해 다시 목소리를 높이는 '식민지와 청춘'을 무겁지 않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풀었다."옛말에 초상난 절에 중은 많다고 하였던가.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은 후일 이 망국의 수도에 이렇게도 많은 예술가가 날 줄 미리 내다보았을까. (중략) 때로 내게는 경성 전체가, 나아가 조선 전체가 거짓의 전당처럼 느껴졌다." (102쪽)이처럼 방황하는 이경손에게 변화를 가져다 주는 이는 비밀을 감춘 앨리스다. 현앨리스는 특히 인천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현순(1879~1968)은 인천 내리교회와의 인연으로 하와이 이민 초창기인 1903년 통역관을 맡아 제물포에서 하와이로 이민단을 인솔했다. 이후 하와이 한인교회 담임목사,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차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첫 조선인 2세가 현앨리스다. 카카듀가 실은 독립운동 거점을 꿈꿨다는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비롯됐다. '거짓의 전당'이라는 의미를 품은 카카듀라는 끽다점 이름이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의미심장해진다.소설에선 다루지 않지만 앨리스는 해방 이후 미군정 군속으로 일했고,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행적이 확인된다. 소설 '카카듀'는 현앨리스의 행적 중 가장 흐릿한 1928~1929년을 포착했다. 박서련은 '작가의 말'에서 "허구적 재현이 역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진실에 스칠 때가 있다고 믿는다"며 "역사-소설이라는, 허구인 동시에 진실의 가능성을 내표하는 양가적 상태는 이러한 믿음 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024-05-02 19:11:37
상처와 상처가 스치고… 사랑이 사랑과 스칠 때를 기억하라

상처와 상처가 스치고… 사랑이 사랑과 스칠 때를 기억하라

국적·인종 뛰어넘는 '상처 치유' 이야기개인적 아픔겪은 작가…7년간 책에 심혈 "그럼에도 한번 살아보자" 위로 녹여내 ■ 아일랜드 쌍둥이┃홍숙영 지음. 클레이하우스 펴냄. 256쪽. 1만6700원'아일랜드 쌍둥이'. 같은 해 다른 날에 태어난 형제를 부르는 말이다. 피임을 하지 않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이민자 가정을 조롱한 데서 출발한 용어로, 신간 '아일랜드 쌍둥이'에는 1월과 12월에 태어난 두 형제 재이와 존(종현)이 있다.재이와 존은 한국 이민자 아버지와 미국 선주민의 혈통을 이어받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존은 형 재이가 병을 앓다가 죽은 후 마치 형을 대신하는 삶을 살아간다. 미군으로 일본에 파견돼 쓰나미 현장에서 방사능에 피폭된 후 장애가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밖에도 다양한 정체성과 사연을 지닌 주인공들이 미국 남부 가상의 주에 모여 살고 있다. 수희는 한국 여성으로 군인이었던 동생을 잃고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왔고, 존의 초등학교 동창 에바는 태어나자마자 여섯 번째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이들이 모인 곳은 미술치료 워크숍. 묻어둔 상처를 끄집어내 흉터를 바라보고 치유할 용기를 내기 위해서다.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다. 기자와 PD,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며 이야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믿어온 홍숙영 작가가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미국으로 간뒤, 대학생과 함께 생활하며 젊은이들의 슬픔과 고민을 마주했다.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손잡아주며 내일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하게 됐다.책에서 다루는 동일본대지진의 후유증, 방사선 피폭의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와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 등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물들의 크고 작은 굴곡을 섬세하게 다루면서도 그들의 감정과 사고를 날카롭고 힘 있게 담아낸다. '그럼에도 한번 살아보자', '내일로 나아가도 된다'라고 위로하면서 말이다.개인적 아픔과 사회적 슬픔이 녹아든 책을 통해 저자는 상처가 상처와 스치고, 사랑이 사랑과 스쳐 이 세상이 조금은 따스해지기를 소망했다.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 상처를 갖게 된다. 이를 그저 깊숙하게 묻어둔 채 외면하려 하지 않고, 충분히 들여다보며 치유해 나간다면 새살은 돋아난다. "맨 밑바닥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가 디디고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버팀대가 될 수 있으므로."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5-02 19: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