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공간인 화성 매향리 주민들의 삶 담은 책 나온다

역사적 공간인 화성 매향리 주민들의 삶 담은 책 나온다

화성시 매향리 주민들의 삶이 책이 돼 나올 예정이다. '매향리 주민생애사 아카이브 구축' 프로젝트가 최근 화성드림파크내 농가레스토랑에서 첫 발을 뗐다. 화성여성회가 주관하는 경기도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이다. 한미경 화성여성회 대표는 “미공군 폭격장이었다가 이제는 평화생태공원으로 변모한 매향리를 모르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며 “그 거대한 역사적 공간 속에서도 하루하루 삶을 꾸려간 것은 바로 평범한 매향리 주민들이어다. 그 이야기를 남겨보자는 것, 그것도 전문 작가들이 아니라 지역에 사는 우리 주민들이 직접 남겨보자는 것이 이번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화성시 전역에서 모두 9명의 주민들이 시민 작가로 자원했다. 지난 12일 첫 모임은 전만규 매향리평화마을건립추진위원장의 '매향리의 역사' 이야기, 권민진 전 꿈틀기업의책 편집장의 '생애사 아카이빙 어떻게 할까' 교육, 그리고 매향리 주민들과 시민 작가들간의 인사 자리로 진행됐다. 권민진 전 편집장은 “우리는 실제로 책을 만들고 전시회를 할거다. 이자리에 오신 분들은 이미 작가"라며 “자서전을 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이고 가장 중요한 도구는 '존중'이다. 지금 함께 느끼는 약간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끝까지 모두 함께 가보자"고 구체적인 자서전 쓰기에 대해 교육했다. 시민 작가로 참여한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은 “자서전의 주인공보다 사실 더 떨린다. 결과물인 책보다도 앞으로 이야기를 듣게 될 만남과 그 과정이 더 기대된다. 끝까지 함께 잘 갈 수 있을지도 살짝 걱정되지만 아름다운 동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매향리 주민생애사 아카이브는 앞으로 두 달 정도의 기간을 예정하고 있다. 매향리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총 9명의 삶이 각각 9권의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10월 말경에 출판기념회와 전시회도 예정돼 있다. 화성/김학석기자 marskim@kyeongin.com

2024-07-15 17:36:46
차마 말 못 할 인간 악행… 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실제

차마 말 못 할 인간 악행… 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실제

■ 말로 담아내기 어려운 이야기┃크리스토프 다비트 피오르코프스키 지음. 김희상 옮김. 청미출판사 펴냄. 236쪽. 1만8천원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끔찍한 죽음을 당해야 했던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악행을 보여준 최악의 사건이다. 포로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라는 곳이 실제 어떠했는지 그들의 증언을 남기는 일은 오늘날의 우리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시대의 상황과 그곳에서 살아간 이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신간 '말로 담아내기 어려운 이야기'는 도이칠란트라디오의 방송 원고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 작가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를 생각하는 기나긴 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저자는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를 오랫동안 성찰해왔다. 이번 책에서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끌어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인물, 레비와 아메리를 생생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낸다. 두 사람은 저항에서부터 수용소 경험을 거쳐 상흔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로부터 각자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 그 경험을 읽어내는 상대의 독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레비와 아메리는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살아남았지만, 한쪽은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선 반면 다른 쪽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자로 남았다. 이탈리아의 유대인 레비는 자신의 증언으로 그 끔찍했던 아픔을 덜어낼 수 있었던 반면, 유대인으로 만들어진 오스트리아 남자 아메리는 이 세상에서 더는 안식처를 찾을 수 없었다. 파시즘에 맞선 저항 이후 인간을 짓밟는 강제수용소의 경험과 이를 글로 이겨내고자 했던 대비적인 두 인물의 이야기가 담긴 책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교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7-11 19:12:06

"사고였다" 분노를 재우는 말… '참사 공화국'에 보내는 오답노트

화성 리튬공장 참사는 한국의 현실 '사회적 약자' 피해자 되는 시스템 계급별 사각지대로 위험은 흘러간다 미국 참사 역사 사례별 분석 사고가 가능한 구조 위 현실 주목 우연한 사고는 없다는 역설로 귀결 ■ 사고는 없다┃제시 싱어 지음. 김승진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456쪽. 2만3천원'나는 알 수 없었던 일,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탈출법, 그래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하루하루….' 수많은 참사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생존자의 증언은 어쩌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사망자의 유언일지도 모른다.최근 화성시 전곡산업단지에서 벌어진 아리셀 배터리 공장 참사는 변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처참하게 드러냈다. 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내국인에서 이주민으로…. 산업 현장에 도사리는 위험은 그대로이나, 이 위험을 도맡게 되는 당사자는 사회적 약자를 향해 더욱더 아래로 뻗어 가는 중이다. '위험의 이주화'라는 새로운 조어까지 등장한 배경이다.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비극은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 신간 '사고는 없다'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가 '참사 공화국' 대한민국에 보내는 오답 노트다. 책은 직접적으로 한국 사례를 다루지는 않지만, 한 세기 동안 미국에서 발생한 참사의 역사를 사례별로 하나하나 분석하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사고'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할 때는 누가 해를 입었는지,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 너무나 많은 경우에 '그것은 사고였다'는 말은 권력자들이 만든 위험한 조건에 대해 그들의 책임을 면제해 준다. 그리고 그들은 사고가 계속해서 나고 또 나게 만든다(175쪽)."저자는 '사고'라는 단어가 외면하고 마는 시스템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오히려 해당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충분히 막을 수 있던 누군가의 죽음을 분석하며, '사고'라는 표현이 어떻게 피해자를 손가락질하고 사회적인 분노를 잠재우는지 짚는다. 더 나아가 '사고'가 왜 불평등하게 일어나는지, 그 이면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지난 1911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 '트라이앵글 화재 사건'에 대해 저자는 "건물은 환기가 거의 되지 않았고 스프링클러 시스템도 없었다. 비상구는 너무 적었고 불이 잘 붙는 헝겊이 도처에 쌓여 있었다.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대부분 여성이었다. 일부는 잠긴 문 뒤에서 질식했고, 많은 이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숨졌으며, 또 다른 이들은 화상으로 사망했다"고 전하며 참사에 숨은 구조적 문제를 환기한다.특히 인종·민족·계층·성별 등에 따라 사고를 당할 확률 등이 달라지는 점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피 업종은 현재 이주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이 '3D'라는 멸칭을 얻게 된 것은 문자 그대로 '위험한 일'에 해당하는 탓이다. 이는 산업 현장에서 참사로 사망하는 시민 중 유독 이주 노동자가 두드러지는 이유이자 가장 의미심장한 단서다.책은 이렇게 참사를 낱낱이 해부한 뒤, '사고'를 예방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로 넘어간다. 안전한 사회로 나가게끔 변화를 촉구하는 등 고군분투하는 이들이다. 이를 통해 '사고'의 후폭풍을 사회가 도맡아 완화하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던 단어, 우연한 '사고'는 마침내 결코 '사고는 없다'는 역설로 귀결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지난달 25일 오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자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사수연구원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2024.6.25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2024-07-11 19:11:56
성차별의 역사 딛은 '여성문학 계보' 총망라

성차별의 역사 딛은 '여성문학 계보' 총망라

쉽게 읽고 이해하도록 백과사전식으로 편찬100여년 시간훑어 학술적·역사적 작품 발굴■ 한국 여성문학 선집┃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민음사 펴냄. 전 7권(총 3천256쪽). 10만4천원그간 문학사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여성 문학의 계보를 총망라해 선보이는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12년간의 연구 끝에 출간됐다. 한때 '여류문학', '규수문학' 등으로 부르며 낮춰 보던 차별의 역사를 딛고서 일군 기념비적인 성과다.이번 선집은 한국 문학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백과사전식으로 편찬한 게 특징이다. '여성문학의 진일보를 이룬 작품'이라는 원칙하에 장르 구분 없이 학술적·역사적 의미를 가진 작품을 발굴했다. 100여년 간의 시간을 톺으며, 1898년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까지의 시대를 7가지 전환점으로 나눠 다룬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 문학사에서 여성문학의 원류로 보았던 나혜석의 '경희(1918년 발표)'보다 20년 앞서 발표된 1898년 '여학교설시통문'을 원류로 바라봤다. 이는 익명의 여성 두 명이 당시 신문에 투고한 글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해당 연구는 지난 2012년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이 꾸려지면서 시작됐다. 이후 12년 동안 이뤄진 공동연구와 토론을 밑바탕으로, 남성 중심의 문학사에서 벗어나 여성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 실천을 최초로 아카이빙했다.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기획 의도에 대해 "여성문학은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으며 주류 문학사에서 주변화돼 왔다"며 "이번 선집이 한국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출발점인 이유"라고 전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024-07-11 19:11:31
'바다와 물길' 지역사 흐르네… '인천역사통신' 여름호

'바다와 물길' 지역사 흐르네… '인천역사통신' 여름호

문화재단, 고대해역·봉수와 요망 등 수록 인천문화재단이 '인천역사통신' 제41호(2024년 여름호)를 발행했다.이번 호 주제는 '인천과 해양, 물길'로 김주홍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문위원이 쓴 '인천의 봉수와 요망', 강봉룡 국립목포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쓴 '고대 인천 해역의 접경성' 등이 주제에 맞춰 실렸다.김주홍 전문위원 글에 따르면 인천·강화지역에는 봉수대 17곳과 바다에서 망을 보는 요망대 12곳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강화도에만 봉수 9곳, 요망대 6곳이 있었다. '기전영지'(1895년)의 '강화부지' 강역을 보면 "경사(京師·도성)의 목구멍이자, 이른바 경작하면서 싸울 수 있는 하늘이 준 고을"이라고 한 데서 강화가 군사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김 전문위원은 김현성(1542~1621)이 선조 32년(1599년) 인천도호부사로 부임했을 때 인천산성(문학산성)에서 매일 저녁 봉화를 올려 고을 백성들에게 평안을 알렸다며 인천의 봉수 거화 시간을 규명하기도 했다. 이번 호에서는 인천의 무형유산으로 황복순 초록세상 편집장이 자수장 전승교육사 김영순 장인으로 소개하며, 강화군 구혜영 학예연구사가 강화도 북부 청동기 시대 유적 발굴 과정과 결과를 설명한 글 '강화도에 자리 잡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을 썼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인천문화재단이 지난 3월 발간한 역사의길 제10집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저자·주희풍)의 서평을 기고했다.인천역사통신 제41호는 온·오프라인으로 발행되며, '인천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024-07-11 19:10:48
사적 영역 은폐됐던 폭력, 수화기 타고 세상 밖으로

사적 영역 은폐됐던 폭력, 수화기 타고 세상 밖으로

인천지역 여성인권운동 30년사 90년대초 들어 민주화운동서 분리2030 주축… 94년 '인천여성의전화' 창립 3년 후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씨앗 역할도 2022년 확장된 개념의 '여성인권플러스' 새이름■ 미래를 여는 기억┃한국여성인권플러스 기획, 박인혜 지음. 형성사 펴냄. 332쪽. 2만2천원 인천 지역 여성폭력 추방 운동 30년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권위주의 국가 체제가 종식돼 가던 1990년대 초 비로소 여성운동은 민주화운동의 한 부문이 아닌 고유의 과제를 가진 독자적 영역으로 분리됐다. 1980년대 신군부 정권이 조성한 폭압적 사회 환경 속에서도 "아내 폭력은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사적인 일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가정의 민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민족·민주운동 과제가 긴급한 것 못지않게 아내 구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여성폭력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 의제로 떠오른 건 민주화 이후라 할 수 있다.이러한 시대 변화 속에서 1994년 1월 여성폭력 근절 운동을 펼치는 여성단체 '인천여성의전화'가 창립했다. 1990년 인천민중연합이 개최한 여성교실 수강생들이 수료 후 만든 여성학 소모임 회원이던 20~30대 초반 여성들이 주축이었다.아내 폭력과 성폭력 같은 은폐된 폭력의 피해 사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절실한 수단이 '전화'였다. 인천여성의전화 창립 첫 해에만 776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후 여성폭력 상담의 제도화로 인해 성폭력상담소와 가정폭력상담소 간판도 달게 됐으며, 이들 상담소는 2000년대 들어 제도 변화에 따라 상담 활동은 유지한 채 '폐소'하기도 했다. 1996년 심각한 가정 내 폭력에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여성들에 대한 구명 운동을 시작하고 확산했으며, 이는 1997년 11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의 씨앗이 됐다.책은 인천여성의전화 창립과 가정폭력·성폭력 추방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1993~2002년'(1장), 그 활동을 성매매·이주여성 인권 운동으로 확장한 '2003~2017년'(2장), 반성착취 운동과 이주여성 인권·공동체 운동을 정착시킨 '2018~2023년'(3장)으로 나눠 구성했다.인천여성의전화는 인천의 대표적 성매매업소 집결지였던 일명 '옐로우 하우스'로 들어가 업주들의 위협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성매매·탈성매매 여성 지원 활동을 당사자와 함께 펼쳤으며, 이후 관련 활동은 인권단체 '인권희망 강강술래'로 독립·이관했다. 결혼 이주 여성과 연대해 이들의 공동체 형성을 도왔다.2010년대 후반부터 여성운동의 주체로 떠오른 2030세대 여성들, 이른바 '넷페미'와의 만남을 '신상과 고물상의 만남'으로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띈다. "오래된 부대에 새 술을 담은 것 같다"는 이들의 만남은 여성 혐오 근절, 반성착취 운동으로 기존 운동과는 다른 방식의 도전을 가져8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22년 성, 인종, 국가 등의 경계를 넘어 연대하고 성평등을 이룩한다는 취지로 '한국여성인권플러스'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그렇게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여성운동의 싹을 틔웠다.이 책은 한국여성인권플러스가 기획했고, 인천여성의전화 창립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박인혜 한국여성인권플러스 성평등정책연구소장이 글을 썼다. 전설적인 여성 가수 패티김이 인천여성의전화 초창기 후원 공연을 열어 운영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도왔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2024-07-04 19:00:16
그림은 묻지 않는다, 그저 환대할 뿐

그림은 묻지 않는다, 그저 환대할 뿐

작품이 주는 사유의 시간 아름답게 파헤쳐나혜석·천경자 등 여러 감정 담담히 수렴■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강태운 지음. 책고래 펴냄. 280쪽. 1만8천원 아주 가끔, 무심코 들른 미술관에서 우연히 마주한 그림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다. 때로는 작품이 내뿜는 에너지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이 감정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술칼럼니스트 강태운은 "그림이 나에게 보여 준 환대"라고 넌지시 정의내린다.신간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에서는 그림이 건네는 환대, 즉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사유의 시간을 아름답게 파헤친다. 저자 강태운은 나혜석, 천경자, 김환기, 장욱진을 비롯해 프리다 칼로, 폴 고갱, 마크 로스코 등 국내외 미술 작품을 대면하고서 찾아온 여러 감정을 담담히 써내려 간다.'화삼독(畵三讀)'은 저자가 역설하는 그만의 그림 독법이다. 그림을 읽고, 작가와 그 시대를 읽고, 마침내 나를 읽는 다층적인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그림이 보여주는 환대를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 그림은 내가 의심하고 적대할 때도 환대를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림은 당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전한다.거장들의 작품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작업은 이내 자기 자신으로 수렴한다. 나혜석의 '자화상(1928년 추정)'을 마주한 뒤 저자는 "나혜석과의 만남은 속내를 털어놓고 속 시원히 떠나려던 나를 돌아서게 한다… 미래를 아는 사람은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래는 지나온 길에서 찾을 수 있는 정직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어쩌면 그림을 본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024-07-04 18:5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