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사람 나가자 자리 채운 할아버지
책 들여다보는 시늉 않고 잠 청해
책이 없다고 미워할 일인가 생각
책 대신 할아버지 읽기 ‘상상’ 시작
‘사물·사람’ 어항 속 열대어처럼 놓여
![](https://wimg.kyeongin.com/news/cms/2025/02/13/news-p.v1.20250213.b6eba3af71c04527b882b5e84ea5ea2e_P1.webp)
![김성중 소설가](https://wimg.kyeongin.com/news/cms/2025/02/13/news-p.v1.20250213.880b8982710049098a265fe69e2ede13_P3.webp)
갈수록 집중력이 약해져서 큰일이다. 하나에 몰두해 옆길로 새지 않는 시간을 일종의 모래시계로 친다면, 나는 예전의 절반만한 크기의 모래시계밖에 없다. 그나마 집중력을 길게 유지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인데, 책 기둥을 토템 삼아 디지털 도파민에서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창가쪽 자리에 앉아 겨울나무와 나란히 마주 보고 책장을 펼쳤다. 내 옆 자리의 사람이 나가자 한 할아버지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작은 가방을 올려놓은 후 스마트폰을 꺼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그를 미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가 단 한 권의 책을 꺼내 펼쳐볼 기색도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온갖 인기척을 내다가 눈을 감고 본격적으로 잠을 청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도서관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는 최소한의 시늉’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건강서적 하나라도 펼쳐놓을 법한데, 그는 책들에 둘러싸여 다른 사람들이 앉지 못해 안달인 창가 좌석 하나를 확보하고는 잠만 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왜 나에게 화를 불러일으키는 걸까? 참고서나 자격증시험대비용 문제집만 줄창 푸는 인간들도 있는데, 스마트폰에 주식채널을 띄워놓고 뭔가를 적고 있는 인간들도 있는데, 한마디로 도서관에 와서 책만 읽는 사람이 외려 드문 형편인데 말이다.
물론 그들도 밉다. 옆자리 노인이 더 미운 이유는 책도 읽지 않고 공부를 하지도 않고 멀뚱멀뚱 잠만 청하면서 유난히 기척을 많이 냈기 때문이었다. 집중과 몰두가 없기에 이 양반은 작은 가방을 열고 닫으며 달그닥거리고, 자세를 바꾸느라 부스럭거리고, 좌우를 흘깃대고, 마침내 삼십분이 지나 잠이 드는데 성공했다. 노인을 관찰하는 동안 나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노인을 읽고 있었고, 도서관에 대한 내 사랑이 그 공간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열렬히 미워하는 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협소한 나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늘 도서관이 등대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이 아닌 가장 편한 공공장소,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대피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정수기가 있고 층층이 쌓여있는 책 때문에 무의미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분 앞에 펼쳐진 책이 없다고 미워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생각들을 노트에 메모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 시간 동안 내가 읽은 것은 책이 아니라 옆자리의 할아버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 뒤 다시 그와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창가에 앉아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두 손을 배에 올리고 모아쥔 채, 한참 부스럭대다 어찌 보면 공손한 자세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책 대신 할아버지를 읽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온 할아버지들은 주로 정기간행물실을 이용한다. 신문이 있고 좌석이 넓어서인지 몰라도 대부분이 도서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분이 창가쪽 자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넓은 창문에서 쏟아지는 개방감과 햇빛 때문일 것이다. 광합성을 하는 화초처럼 오후의 낮잠에 햇빛이 필요한 것 아닐까? 차곡차곡 접힌 얼굴 주름을 다 펴면 그 안에서 소년이 걸어 나올까? 책들에 둘러싸여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나는 그의 잠이 깨지 않도록 짐을 챙겨 살금살금 도서관을 나왔다. 내 책상에는 오늘 빌려온 새로운 책 일곱 권이 놓여있다. 항상 최대치로 빌려오는데 반납할 때 보면 두 세권만 완독했을 뿐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들은 어항 속의 관상어처럼, 임시로 우리 집에 머물면서 ‘읽을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주로 두껍고 비싼 책들이, 서문과 역자의 말만 겨우 훑어보고 반납하는 책들이 임시정거장처럼 내 책상 위에 머물다 떠나가곤 한다. 프레데릭 제임스의 책 표지를 보자 잠든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 번이나 빌려왔지만 이십쪽 남짓 읽은 두꺼운 책, 그래서 서먹한 책과 전혀 모르는 노인, 내가 상상하기만 하는 사물과 사람이 책상 위에 오롯이 놓여있다. 보이지 않는 어항에서 느긋하게 헤엄치는 열대어처럼.
/김성중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