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홈’ 바라는 구리시 공예가들
무형문화재부터 경기으뜸이까지 기술인들 모임
“현장 기술자 인정받는 사회 되길”
올해 가구수리 봉사 횟수 늘릴 것
![구리시공예가협회를 만들고 지금까지 협회를 이끌고 있는 서인석 구리시공예가협회장이 지난 14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목재를 자르고 있다. 2025.02.14/권순정기자 sj@kyeongin.com](https://wimg.kyeongin.com/news/cms/2025/02/15/news-p.v1.20250215.05e8977be9ab4cb0a8c8e203d531cd92_P4.webp)
“구리시 공예가들이 작품작업 공간이 구리시에 마련되길, 손꼽아 기다립니다.”
서인석(68) 구리시공예가협회장을 만난 곳은 구리시가 아닌 남양주시 금곡동이다.
1972년 목공예에 뛰어들어, 75년 인수받은 사업체는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다. 92년 옥수동의 재개발로 구리시 수택동으로 넘어온 이래 3~4년 전 재개발로 다시 남양주시로 떠밀려 나온 상태다.
서 회장과 일부 회원들은 구리로 돌아갈 날을 손꼽으며 무단 용도변경에 따른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서 회장만 해도 이미 불법용도변경으로 강제집행이행금이 1천800만원 가량 부과된 상태다. 본래 축사인 이 건물의 소유주도 ‘방을 빼주길’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갈 데가 없다. 구리시는 오는 27년 완공이 예상되는 인창동 복합커뮤니티센터에 구리시공예가들의 판매장과 공예교육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서 회장과 협회 회원들에게 감사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제작공간 마련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서인석 구리시공예가협회장이 지난 14일 자신의 작업실에 모아둔 목재화병을 가리키고 있다. 손가락이 가리킨 화병은 24년 전시됐던 작품이고, 그 화병의 오른쪽에 있는 긴 화병은 아직 마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올해 전시회에 내놓을 예정이다. 2025.02.14/권순정기자 sj@kyeongin.com](https://wimg.kyeongin.com/news/cms/2025/02/15/news-p.v1.20250215.e1947508951d4786897209a4218d2b55_P4.webp)
서 회장은 “구리시에는 공장부지가 없다. 제조업이 가능하지 않다. 구리시가 공예가들을 위한 창작 센터 등의 형태로 조성해줘야 구리시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이걸 해보려고 협회장을 하는 18년간 발버둥쳤지만, 시장이 바뀌면 또 말이 바뀐다. 인창동 복합커뮤니티센터도 입주가 되야 일이 된 것이지, 그 전까지는 미래를 알수가 없다”고 했다. 서 회장은 사실상 구리시에 작업공간을 갖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어쩌면 조만간 사업자등록을 타 시군으로 옮기는 것을 결단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구리시 공예가들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공예품의 두 요소로 ‘쓰임(用)’과 ‘아름다움(美)’을 꼽는다. 생활에서 쓰임과 그에 부여된 아름다움이 공예품의 구성요소인 셈이다. 서 회장은 주로 用에 주력해 생계를 잇고, 때때로 美를 위해 수개월을 투자한다. 최근에는 이달 말에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 전시회에 부스를 마련했는데 거기서 자개보석함, 옷칠 수저세트 등을 팔 상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구리아트홀에서 ‘공예로 탐하다’ 전시회를 기념해 단체사진을 찍었다. /구리시공예가협회 제공](https://wimg.kyeongin.com/news/cms/2025/02/15/news-p.v1.20250215.159bb25323aa40b29bf41cd35f01a392_P4.webp)
이렇게 보여도 그는 ‘목재화병 제작방법’으로 2011년 특허를 받은 바 있고, 2015년 대한명인으로, 2018년에는 한국문화예술명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처음에는 나무 장식, 가구 등을 만들다 시대흐름에 따라 생활소품을 생산해 팔았다. 김영란법으로 고위공직자에게 고가의 선물이 금지되기 전에는 그가 만든 목재화병이 때때로 선물로 팔리기도 했다. 목재화병은 도자기의 곡선을 목재로 만드는 게 핵심인데 열로 합판을 휘고, 다각형 기둥의 형태로 각도를 맞춰 끼어 옷칠과 자개로 멋을 낸다. 제작에만 수개월이 걸리지만, 김영란법 이후에는 제 값에 살 사람이 없어 작품으로만 출품하고 있다. 공직자의 청렴을 정한 법이 한편에서 문화산업 생태계에 타격을 입힌 것도 사실이다.
서 회장은 공예인으로서 가장 아쉬운 것을 꼽으라면 현장에서 갈고 닦은 기술이 이론가들의 것보다 대우를 못받는 것이라고 했다.
서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능인들을 높이 평가했다. 대한민국명장은 장관이 표창했는데, 이를 대통령 훈급으로 승급한 것도 박 전 대통령이었다. 하계·동계올림픽에서 메달 받은 선수들에게 연금을 주는 것처럼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메달을 받으면 연금을 주는 정책도 이때 시행됐다. 현장에서 갈고 닦아 최고 기술자에게 이론이 뒷받침되면 박사 학위를 따로 주는 제도도 추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탄핵이 되면서 좋은 정책이 사장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구리시공예가협회는 지난해 가구수리 봉사를 시작했다. 수거 수리 배달까지 하면서 회원들은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는 반응이다. 협회는 올해 가구수리 횟수를 늘릴 예정이다. /구리시공예가협회 제공](https://wimg.kyeongin.com/news/cms/2025/02/15/news-p.v1.20250215.030325ab593f4f4888e9bb502b0e85e4_P4.webp)
구리시공예가협회 회원 38명에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조교, 대한민국명장 등 정부에서 공인한 기술자들도 있다. 대한민국명인, 한국문화예술명인, 경기으뜸이 등 구리시에는 사장되기에는 아까운 현장 기술자들이 묵묵히 자기 몫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구리시공예가협회 회장으로서 서 회장이 이들의 기술을 알리고 작업공간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유다.
서 회장은 “1년에 한번 구리시아트홀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지역주민 가구 수리 봉사를 시작했다. 올해도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기회를 만들려 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며 웃었다.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