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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면기사
2011년 10월 27일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하트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공연 도중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 잠시 후 어둠을 뚫고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의 선율이 흘렀다. 19명의 시각장애 연주자는 서로의 호흡과 악기소리에 집중했고, 청중도 눈을 감고 음악과 온전히 일체됐다. 암전(暗轉)공연, 어쩌면 악보도 없고 지휘자도 없는 시각장애 오케스트라이기에 가능했던 실험이었는지 모른다. "브라비(Bravi)!" 객석은 환호와 네 번의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했고, 하트체임버는 3곡의 앙코르 연주로 화답했다.기적의 하모니는 2024 파리패럴림픽 '문화 올림피아드' 행사에서도 이어졌다. 이번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파리 샹젤리제 부근 살가보 극장 무대에 올랐다. 자폐·지적장애 등 발달장애 연주자 36명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 서곡'·카미유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등을 연주했다. 앙코르곡 프랑스 대표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과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는 청중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2006년 창단한 하트하트는 한국뿐 아니라 워싱턴DC의 케네디센터 등 해외 무대까지 장벽이 없다.경기도가 장애인 오케스트라 '꿈의 심포니아'를 창단한다는 뉴스가 반갑다. 전국 최초 '인재 양성형' 시스템으로 연습 수당은 물론 전문 연주자의 1대 1 집중 교육도 이뤄진다. 10월 10일까지 단원을 모집하고 오디션을 통해 11월 중 선발할 계획이다. 9일 창단 발표식에서 "장애인들에게 기회의 통로를 만들어 꿈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김동연 지사의 진정성에 기대를 건다.하트체임버의 한 단원은 "악기를 구입하기 위해 안마사 일을 했다"고 고백한다. 장애인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지 가늠조차 안 된다. 몇 주에 걸쳐 악보를 완벽하게 외우고, 한음 한음 맞춰가며 연습을 반복하는 '정공법'으로 연주를 완성한다. 조금 오래 걸리면 어떤가. 알레그로(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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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안전부스를 아시나요 지면기사
수원의 대표 상권인 일명 '인계박스' 골목에 연두색 안전(안심)부스가 서있다. 9월 4일 저녁, 문 열린 부스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누르니 수원시 도시안전통합센터에서 즉각 반응한다. "관제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관제요원의 음성이 들린다. CCTV로 부스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는 관제요원의 안내를 받아 경찰이나 119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1월 새벽 2시께 만남을 강요하는 남성에게 위협받던 여성이 무사히 구조되기도 했다. 부스 안에는 자동심장충격기(AED)와 소화기 두 대도 비치되어 있다. 수원시는 인계동을 포함해 곡반정동·지동·세류3동·매산동·매탄3동 각 1개, 영통3동 2개 등 총 8개의 안전부스를 운영 중이다.다른 지역의 안전부스는 어떨까. 성남 판교의 한 백화점 앞 보도에 설치된 안전부스는 한눈에 봐도 낡았다. 먼지가 수북하고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진 흡연박스 신세가 됐다. 녹슨 CCTV와 불 꺼진 비상벨은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다. 2017년 한 민간업체가 도로점용허가를 받아 설치했다는데 분당구청은 관리권한도 없단다.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카페거리의 안전부스 역시 이름값을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비상전화기는 먹통이고 내부는 담배냄새에 찌들어있다.스토킹 범죄와 묻지마 사건이 횡행한다. 2012년 여의도 흉기 난동,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2023년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사회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올 들어 7월 서울 은평구 아파트 단지에서 30대 남성이 일본도로 이웃 주민을 살해하고, 8월에는 안산에서 10대가 같은 학원을 다니는 또래 여학생을 흉기로 찌르고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에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하다.안전부스는 2015년 경기도 광주 경화여고 인근에 국내 최초로 설치돼 서울·부산·제주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쓸모가 약해진 공중전화 부스 활용과 강력범죄 예방이라는 '착한 컬래버'는 공감을 끌어냈다. 하지만 시행 9년 만에 대다수 안전부스는 홍보 부족과 관리 부실로 외면받는 모양새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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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브랜드가 된 올림픽 스타 지면기사
2024 파리올림픽이 낳은 스타 중의 스타는 수원 출신 탁구요정 신유빈이다. 15일 동안 14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바나나, 주먹밥, 납작복숭아, 에너지젤을 수시로 섭취했는데, 먹방 아닌 먹방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스타성에 민감한 CF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신유빈의 바나나맛 우유 광고는 공개되자마자 연일 화제다. 2004년생인 신유빈이 2004년 당시 광고를 패러디하며 추억을 소환했다. "훈련 중에 출출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엄마 나를 위해 채워 넣으셨나 보다." CM송도 직접 불렀다.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얹은 채 행복한 미소를 짓고, 메달 세리머니에 '바나나 플릭'까지 신유빈의 매력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최초의 한국 올림픽선수 모델이 1993년 화장품 CF에 발탁된 원조 요정 현정화였다. 한 세대를 격한 현정화-신유빈의 평행이론이 신유빈의 올림픽 금메달로 실현되면 금상첨화이겠다.스타 브랜드 평판도 올림픽 영웅들이 휩쓸었다. 8월 빅데이터 분석 결과, 역시 1위는 신유빈이다. 임영웅(2위)과 손흥민(10위)도 제쳤다. 3위 사격 김예지, 4위 양궁 김우진, 5위 펜싱 오상욱이 뒤를 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반한 김예지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 화보 모델로 나서 걸크러시의 면모를 과시했다. 3관왕 수면쿵야 김우진은 뉴스·예능 등 연일 방송계의 러브콜을 받았고, 그랜드슬램 검객 오상욱도 잡지 화보와 맥주 CF로 비주얼을 인증했다.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은 작심 발언으로 구태의연한 체육행정에 스매시를 날렸다. 배드민턴협회는 선수들의 연봉·용품·후원까지 제약했다.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족쇄가 채워진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안 선수가 CF를 고사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선수를 제도 안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행정은 고리타분하다. 세상은 변했다. 협회는 이제라도 관습을 타파하고 선수들에게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올림픽 스타들은 개인 자체가 브랜드이고 인플루언서다. 포상금·연금 이상의 경제적 보상은 물론 SNS를 타고 사회적 영향력은 더욱 확장됐다. 올림픽 스타들은 후배 양성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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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인천 보물섬 지면기사
동요 '섬집아기'는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드는 애잔한 풍경을 그렸다. 시인 한승원은 '바다에 떠 있는 섬만 섬이 아니고 혼자 있는 것은 다 섬입니다'라며 외로운 인간 군상을 섬에 은유했다. 심상 위에 떠있는 섬은 호젓하고 고독하기까지 하다.고요하던 인천의 섬마을은 육지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생기가 넘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서남쪽으로 44㎞, 쾌속선에 몸을 싣고 1시간 10분을 내달리면 손가락바위로 유명한 소이작도에 도착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난민들이 해적활동을 했다 하여 '해적이 은거한 섬' 이적(伊賊)도라고 불리다가 이작(伊作)도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5개 코스로 구성된 소이작도 갯티길은 산과 바다의 풍광을 모두 즐길 수 있다. 바다생태마을 포토존 조형물과 오브제 앞에서 추억을 기록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여행자센터에 들러 차 한 잔의 여유와 둥굴레·고사리·조릿대 등 특산물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순우리말 '큰물섬'에서 유래된 덕적도(德積島)는 이름처럼 서해 덕적군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1920년대 말 한때 '민어파시'가 흥했음을 상징하듯 진리도우선착장 앞 어부상이 맞이한다. 지금은 수산물보다 농산물 생산량이 많은데, 브랜드 '단호박은 진리다'가 이를 증명한다. 진리해변 근처 마을카페 '호박회관'은 핫플레이스다. 해풍이 키운 단호박 양갱·쿠키·컵케이크의 건강한 달달함에 입이 즐겁다.꽃게로 유명한 평화의 섬 연평도, 해바라기 정원이 바다처럼 일렁이는 교동도 난곳마을, 솔향기와 노을이 아름다운 대청도 모래울동, 하늬바람도 쉬어가는 자색 빛의 섬 자월도를 놓치면 서운하다. 또 스토리가 있는 문갑 도시락(島時樂), 살고 싶은 갯벌 주문도, 서해청정섬 소청마을, 덕적도 으름실 특화작물마을, 강화도 생설미마을, 동녘노을빛 사랑 석모도, 영흥도 섬나들이 진두마을·십리포랜드·행복공동체 소장골마을까지 총 15곳의 섬마을이 인천시와 행안부가 손잡은 '특성화 사업'이라는 이름아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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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집 밖은 키오스크 세상 지면기사
직장인 A씨는 카페인 충전이 필요한 출근길이면 카페를 들러 키오스크(Kiosk·무인단말기)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음식점 테이블마다 놓인 메뉴판 모니터 앞에서 손가락은 잠시 즐거운 방황을 한다. 퇴근 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티켓 확인부터 팝콘 등 주전부리 구입까지 터치 몇 번이면 해결이다. 쇼핑몰을 가도 주차위치 확인·요금 결제까지 빠른 출차를 위한 필수 코스다. 모처럼 해외여행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면 키오스크 앞으로 직행, 셀프 체크인·백드롭은 속전속결이다. 정보를 등록해 놓으면 안면 인식만으로 출국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시대라니 A씨의 키오스크 효능감은 날로 높아간다.집 밖으로 나가면 키오스크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키오스크의 영토 확장에는 무엇보다 언택트 문화를 확산시킨 코로나19가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모두가 키오스크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새벽시간 꽃집을 찾은 한 할아버지는 꽃다발 값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갔다. 키오스크 사용법을 몰라 3시간 뒤에 다시 방문해서 3만원을 냈다. 말이 안 통하는 기계 앞에서 진땀이 나고 머리가 하얘졌을 할아버지가 할머니 생일선물을 준비하면서 겪은 경험은 안타깝고 씁쓸하다.1990년대부터 관공서·은행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키오스크는 이제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납골당에서 고인의 봉안 위치정보를 안내해 주던 키오스크가 결혼식장에도 등장했다. 이름하여 '축의금 키오스크'다. 접수대 대신 세워진 기계에 축의금을 입금하면 식권과 주차권이 나온다. 마치 영수증을 발급해 주는 듯한 신풍속이다. "저출생 시대다 보니 접수대 지킬 친척이나 지인 한 명 구하기도 힘든데 다행이다", "도난·분실사고 걱정이 사라졌다"라는 긍정론과 "축의봉투 정성껏 준비했는데 예의가 아니다", "돈부터 챙기는 느낌이 든다"라는 회의론이 맞선다.똑똑하고 빠른 디지털 신문명의 그늘은 짙다. 세상의 속도를 그때그때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소외이고 상처가 된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겨우겨우 배웠더니, 키오스크라는 녀석이 나타나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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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현물 vs 현금, 무상교복 논란 지면기사
교복은 학생의 상징이다. 제복의 속성상 디자인에 한계가 있다. 재킷과 셔츠에 스커트나 바지 구성이 보편적이다. 패션계의 거장 고(故) 앙드레 김이 2005년 경기도의 한 고교를 위해 디자인한 리본타이 교복이 화제가 된 이유이다. 일본은 세일러복에 국민 책가방 란도셀을 멘다. 네덜란드 군용배낭 란셀(ransel)에서 유래한 란도셀의 평균 구입액이 50만원대에 달하니 부모들에게는 '등골 브레이커'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활동적인 체육복 교복이 급부상했다. 모든 학생이 체육활동에 참여하고 수업시간 중간에 체조를 한다. 여러 나라에서 야구점퍼·원피스·후드티 등 개성과 기능성을 더해 진화하고 있다.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떤 교복 스타일을 선호할까.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5월 중·고생(1천71명)과 만 19세 이상 도민(1천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결과가 흥미롭다. 학생은 정장형 교복보다 캐주얼한 옷(39%)을 첫손에 꼽았다. 이어 체육복(34%)·정장형 교복(11%)·생활복(11%) 순으로 답했다. 반면 도민은 정장형 교복(38%)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캐주얼한 옷(32%)·생활복(16%)·체육복(11%)이 뒤를 이었다. 학생들은 활동성이, 성인들은 단정함이 우선이었다.이와 함께 중·고생 65%와 도민 68%는 현행 교복 지원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무상교복은 2019년 중학교 신입생부터, 2020년엔 고등학교 신입생으로 대상을 확대해 시행됐다. 학교가 경쟁 입찰을 통해 교복업체를 선정하면, 교육청이 대신 교복비를 업체에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도교육청 50%·도 25%·시군 25%를 부담한다.최근 도의회에서 교복 현물 대신 현금 지급이 가능한 개정조례안이 추진돼 갑론을박이다. 그동안 교복업체의 담합 의혹과 중국산 소재를 속이는 택갈이 등 품질 논란이 이어졌다. 인천의 한 학부모는 국민신문고에 '저질 교복'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금 지급으로 전환되면 선택의 폭은 넓어지지만, 보편복지의 취지가 퇴색되고 학생 간 격차와 차별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무상교복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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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알랭 들롱' 지면기사
누벨바그(Nouvelle Vague·새로운 물결)는 1960년대 전후 프랑스에서 등장한 영화 사조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감독 등이 이끈 누벨바그는 혁신과 동의어였다. 스튜디오 조명보다 자연광, 즉흥적인 연출의 플래시백과 플래시 포워드, 비선형적인 스토리 전개는 당시 젊은 세대에게 자유와 반항으로 각인됐다. 누벨바그 황금기의 중심에는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이 존재했다. 들롱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를 연기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요즘 MZ스타일로 표현하자면 '세계 최고의 얼굴천재'다.영화 속 리플리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방탕한 부잣집 외아들 필립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사인·유서 위조에 목소리까지 흉내낸다. 우수에 찬 푸른 눈동자는 들롱의 실제 불우했던 시절과 교차되며 위험하고 불안한 캐릭터임에도 관객들을 동화시켰다. 동경과 경멸을 오가는 내면 연기에 리플리가 알랭 들롱이었고, 알랭 들롱이 리플리였다. 작열하는 태양과 요트 하면 연상되는 명장면, 키를 잡고 지중해 파도를 가르는 모습에 많은 청춘들이 빙의했다.알랭 들롱은 1957년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해 2019년 마지막 작품 '우리 모두 사랑한 여인'까지 60여 년간 90편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1995년 베를린 영화제 명예 황금곰상에 이어 2019년 칸 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알랭 들롱은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맡았는데 현실에서도 때때로 악역을 자처했다. 끊임없는 스캔들 메이커로, 경호원 살인사건 용의자로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진보 노선을 비판하고 사형제 폐지와 동성 결혼 허용을 반대했다. 2019년 뇌졸중으로 고통받으며 안락사를 희망하는 등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하지만 넌 결코 알랭 들롱이 될 수 없지(But you'll never be Alain Delon)." 마돈나는 노래 'Beautiful Killer'(2012)의 마지막 가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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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하이엔드 커피 지면기사
영화 '밀정(2016)'에는 '카카듀' 간판이 내걸린 경성 거리가 등장한다. 카카듀는 1928년 서울 종로 관훈동에 한국인이 처음 차린 서양식 다방이다. 나운규의 스승인 영화감독 이경손과 오촌 조카 현앨리스가 함께 운영했다. 카카듀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라밖 세상의 정보를 공유하고, 시대적 각성과 계몽을 논했던 당대 독립운동가·예술인·지식인들의 아지트였다.6·25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커피는 1955년 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1970년 당시 다방 커피 한잔 값은 노동자 일당과 맞먹는 50원이었지만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뜨거웠다. 동서식품은 1970년 인스턴트커피를 출시한데 이어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까지 개발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최적화된 커피 자판기도 일상을 파고들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오픈했고, 2000년대 들어 무수한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바야흐로 커피전문점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최근 원두 100g당 140만원짜리 커피가 한국에 상륙해 떠들썩하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싱가포르 '바샤 커피' 국내 1호점이 서울 청담동에 오픈했다. 2개 층 약 380㎡(115평) 규모의 매장은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오리지널 커피룸을 오마주해 화려한 궁전을 연상케 한다. 가장 비싼 메뉴는 커피의 본고장 브라질 '파라이소 골드 커피'라는데, 원두 100g당 140만원의 주인공이다.커피룸에서 마시면 한 잔에 48만원(350㎖ 기준), 테이크아웃하면 20만원이다. 슈퍼리치들이 사고파는 아파트 값이 100억원 천장을 뚫었다지만 커피값치곤 초현실적이다. 발빠른 한 유튜버가 솔직한 커피 시음기를 공개했다. "커피 원두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로 머릿속에서 표현할 수 없었다"며 "커피향은 아주 은~은한 페브리즈향(?), 맛은 메가커피 조금 옅은 맛이다"라고 직설해 웃음을 자아낸다.소비 트렌드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한 번뿐인 인생 폼나게 지르고 사는 욜로족과, 필요한 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요노족이 동거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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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밥심, 쌀심 지면기사
1960년대까지 보릿고개에 시달린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도 만성적인 쌀 부족국가였다. 1972년 생산량이 높은 '통일벼'가 수확되면서, 1980년에는 재고량이 100만t을 넘어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됐다. 설상가상 식생활의 변화로 쌀 소비량이 뚝 떨어졌으니, 농민들은 풍년에도 창고에 쌓이는 재고 쌀 걱정이 먼저다. 2023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4㎏으로 역대 최저치, 1993년 110.2㎏을 소비했던 것과 비교하면 30년 만에 반토막 났다. 산지 쌀값은 올해도 직격탄을 맞았다. 80㎏ 한 가마에 17만8천476원, 20㎏에 4만4천619원이다. 지난해 보다 6~7% 또 떨어졌다. 정부는 쌀을 일부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고 쌀 소비를 촉진해 쌀값을 방어하지만 역부족이다. 지난해 시장격리에 9천916억원을 쏟아붓고, 보관비용 1천억원과 폐기비용 수백억원까지 말 그대로 '밑빠진 독'이다.쌀은 식량의 의미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삼국시대에 금·은과 함께 쌀이 화폐를 대신했고, 조선시대에는 쌀로 녹봉을 받고 쌀로 세금을 납부했다. 쌀밥을 마음껏 먹는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였다. 1970~1980년대까지도 쌀을 사러 갈 때 "쌀 팔아오겠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다. '사다'와 '팔다'를 거꾸로 말한 이유는 쌀이 돈이고, 돈이 쌀이라는 인식, 그 때문일 것이다.선조들의 식생활 모습을 담은 사료를 보면 소반(小盤) 위에 소복이 눌러 담은 고봉밥이 놓여있다. 요즘 일반적인 공깃밥 210g의 2~3배는 족히 되는데, 대식가의 면모에 압도된다.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도 보통 사람들은 한 끼에 5홉(900㎖), 성인 남성은 7홉(1천260㎖), 아이는 3홉(540㎖)을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평민들은 대체로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고, 점심은 간식 정도로 해결했단다. 밥 외에 다른 먹거리가 부족했으니 밥이 주요 영양 공급원이었다. 흰쌀밥은 양반들 차지였을 테고, 백성들은 잡곡밥을 먹었다지만 양곡 의존도가 높았음은 분명하다.시대는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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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발달장애 부모 '화요집회' 지면기사
"아이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게 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원을 품고 사는 이들은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들이다. 자신의 삶은 뒤로한 채 언제나 강한 엄마, 강한 아빠가 되어야 한다. 평생 돌봄이라는 굴레에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기어이 살아내는 일이 그저 최선이다.2023년 말 기준 전국 등록 장애인은 264만1천896명으로 전체 인구의 5.1%다. 이 중에서 발달장애인은 27만2천524명으로, 지적장애 22만9천780명과 자폐성장애 4만2천744명 등 모두 심한 장애에 해당된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대인관계나 의사소통이 어렵고 자해 및 폭력적 행동으로 활동 지원 기관과 인력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일이 태반이다.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 된다.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비극이 끊이질 않는다. 발달장애인·가족 사망사고는 2022년 10건, 2023년 11건,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발생했다. 개인의 불행을 넘어서 명백한 사회적 참사다.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송파 세 모녀 사건'이 10년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가동했지만, 발달장애인은 여전히 소외됐다. 2022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진행된 8차례의 복지사각지대 발굴 조사 대상자만 봐도 포함된 발달장애인은 총 1만2천87명(4.4%)에 불과하다.발달장애인 부모들의 '화요집회'가 어느덧 2주년을 맞았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 2022년 8월부터 매주 화요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권리 확보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형식은 집회지만 내용은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 일상 속 사연을 털어놓으며 서로 위안받고 용기 주는 시간이다. 90세 노모와 함께 요양원에 입원한 환갑 맞은 발달장애 아들, 자녀의 자폐 행동문제를 케어하기 위해 심리행동치료학을 연구하는 엄마, IT기업 정규직으로 취업해 당당히 인정받고 싶다는 청년 발달장애인의 이야기는 간절하고 절절하다.때론 오체투지로, 때론 삭발투쟁으로 화요집회 86회차 동안 멈추지 않고 외쳐온 '발달장애인 국가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