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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보수 재건이 절실한 이유 지면기사
한국보수는 현재 '죽은 나무' 재기 힘들듯합리적 세력 뭉쳐 과거와 완전 결별해야새 정강정책·인재로 재건위한 전략 필요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6% 이상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총리 시절을 포함하면 무려 24년을 집권하게 된다. 우리가 역사에 독재자로 새겨넣은 박정희도 20년 집권에 이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국민 저항이 미미한 러시아의 정치 풍경은 낯설다. 중국도 개헌을 통해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가도를 열어 놓았다. 재외 중국인과 지식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있지만 저항 대신 조롱 수준으로 울분을 푸는 정도다. 푸틴과 시진핑의 장기집권 추구는 높은 경제 성장률과 초강대국 재건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두 사람의 강력한 지도력이 상승작용을 한 덕분이다.다만 양국 지도자의 독재적 장기집권을 대중들이 무한정 인내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역사는 정답을 알고 있다. 문명국의 역사는 1인, 1당 독재정권이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순수한 권력의지가 시간에 의해 침식되면서 결국 자유의지로 무장한 대중에 의해 전복된 무수한 사례를 적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정신을 새 헌법 전문에 추가하자는 이유도 독재 필멸의 역사법칙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자는 의도일 것이다.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두 나라에 빗대는 것은 무리인 줄 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 1년이 안됐고, 진보진영의 독주도 진영 자체의 도덕적 장점, 정치적 업적, 경제적 성취 보다는 보수진영의 한 없는 추락 덕분이라서다. 문제는 진보의 독주와 보수의 재기불능이라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진보의 자만과 보수의 자포자기 심리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진보의 장기집권을 위한 플랜과 전략이 거론되고, 진보성향의 누리꾼들은 진보의 장기집권을 위해 보수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공세의 전위가 된지 오래다. 반면 보수진영은 대의정당의 무기력과 유력 대변자가 고갈된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침묵하거나 냉소하며 가치 상실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물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서 1당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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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패권주의에 갇힌 대한민국 지면기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지시간 18일 대선 개표 결과 재선을 확정지었다. 76% 이상의 압도적 득표율이니 무인지경의 독주였다. 6대에 이어 7대 대통령으로 2024년까지 집권이 보장됐다. 2000년부터 3, 4대 대통령으로 8년 연임한 이후 4년을 상왕 총리로 군림한 세월까지 총 24년을 집권하는 셈이다. 중국은 한술 더 떴다.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2천970표 만장일치로 시진핑(習近平)을 국가주석 및 중앙군사위원회주석으로 재선출했다. 이날 '국가의 조타수, 인민의 영도자' 시 주석을 위해 인공눈을 뿌렸다. 국가주석 연임제한 폐지 개헌으로 능력껏 장기집권이 가능해진 시 주석인데, 하늘이 할 일을 안하니 사람이 대신했다.중국 시(習)황제, 러시아 차르(황제) 푸틴의 등장이 대한민국에 미칠 영향은 간단치 않다. 패권 추구의 역사를 갖고 있는 두 나라의 집권자가 차례로 독재에 가까운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했으니, 그 여파를 따져보는 건 당연하다. 특이한 인격의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보다는 미국 우선이라는 패권적 행태를 보이고, 60년 가까이 장기집권 중인 일본 자민당이 제국의 영광을 추억하는 현실도 버겁다. 게다가 북한은 '조선 없는 지구는 없다'며 3대 세습을 완료하고 핵을 무기로 패권의 일각을 차지하는 형국이다.주변 4강의 패권주의는 이미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시진핑은 사드의 주인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향해 경제보복의 포승줄을 조였다 풀었다 희롱 중이다. 러시아와 영국의 외교 전면전은 제국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언제든 한반도 문제에 어깃장을 놓을 수 있는 푸틴의 면모를 보여주는 전조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는 통상문제 만큼은 변함없이 위압적이고, 미·중·러에 상냥한 일본은 유독 한국에만 독하다. 북한 김정은의 실체는 4, 5월을 지내봐야 결론이 날테고.한반도의 운명이 남북, 미북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간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 4강의 패권주의는 물이 오를대로 올랐다. 남북한과 미국의 합의에 한반도에서의 지정학적 이익을 포기할 시진핑, 푸틴, 자민당이 아니다. 4, 5월 연쇄 정상회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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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스티븐 호킹 지면기사
외국 유명인사나 위인들이 '한국에 태어났으면'이라는 가정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조롱하는 블랙유머는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가령 만유인력의 창안자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새로운 학설로 교수들의 학설을 부정하다가 눈 밖에 나서 연구실에서 쫓겨나 초등학교 교사가 돼 학부모 촌지나 챙겼을 것이라고 했다. 내신에서 수학과 과학 이외의 과목을 망친 아인슈타인은 중국집 배달원이, 어마어마한 발명들이 특허규제로 사장된 에디슨은 열 받아 특허법을 터득하기 위해 고시생이 됐단다. 하필 북한에서 태어나서 '그래도 주체사상은 틀렸다'고 웅얼대다 들킨 갈릴레오는 죽을 때까지 아오지 탄광에서 석탄을 캤고….스티븐 호킹 박사도 블랙유머의 주인공으로 회자됐는데 한국인 호킹의 말로는 끔찍했다. 어려서부터 천재였던 호킹은 일류대에 들어가 이론 물리학을 하며 빅뱅이론을 열심히 연구했으나, 20대에 루게릭병에 걸려 장애인이 됐다. 그러다 어느 날 몸에 열이 오르고 전신마비가 와서 택시에 실려 병원을 향했으나, 모든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로 받기를 거부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노상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 부재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만큼 장애인 과학자 호킹의 존재는 한국인에게도 강렬했다.지난 14일 작고한 호킹은 새로운 블랙홀 이론을 탐구한 과학자이자 장애를 극복한 영웅으로 동시대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 '호킹 복사' 이론으로 현대 물리학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했고, 역작 '시간의 역사'는 물리학도들의 희망봉으로 빛난다. 대중들은 신체를 구속하는 절대 장애를 이겨낸 불굴의 의지에 공감하고 환호했다.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합성기를 볼 근육만으로 작동하면서도 지적 탐구에 전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그에게서 '존엄한 인간'의 표본을 본 것이다.호킹은 말년에 외계생명체의 습격과 인공지능(AI)의 역습을 경계했다. 위대한 삶을 살았던 천재의 선지(先知)로 여긴다면 인류가 소홀히 여길 일이 아니다. "망가진 컴퓨터(두뇌)에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던 무신론자 호킹이 죽음의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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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지방선거와 미투(#Me too) 지면기사
정치는 생물이라더니 화석처럼 단단했던 더불어민주당의 6·13 지방선거 승리 구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추문과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이 피해 여성들의 '미투(#Me too)' 폭로로 세상에 드러나면서다. 문화계 진보 권력을 강타한 미투 운동의 폭심(爆心)이 여권으로 이동하면서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성에 대한 대중의 의심이 깊어지고 있다. 민심의 동요는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민주당은 또 다른 가해자가 나올까 전전긍긍이다. 자유한국당은 진보진영의 도덕적 타락을 비난한다. 촛불과 탄핵 이후 갇혔던 수세국면을 반전하려는 기색이다.미투 운동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방선거 현장을 자율규제하는 조짐도 뚜렷하다. 각종 전과 기록 보유자들도 서슴없이 공천경쟁에 뛰어드는 지방선거 풍토가 미투로 인해 싸늘해졌다. 기록은 변명할 수 있어도, 추악한 행적이 들통나는 일은 아무리 철면피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다. 후보들 사이에 성폭력과 관련한 자기 검증이 한창이란다. 출마를 공언했다 발을 빼는 후보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는 후문이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후보들은 여성 유권자와의 스킨십 수준을 고민하고, 여성을 앞세운 선거 캠페인을 포기하는 등 선거운동 행태의 변화도 감지된다.미투 운동이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운동의 본질이 훼손될까 걱정이다. 정치는 현안의 본질을 왜곡, 조작하기 일쑤다. 여야 정치권의 선거캠페인으로 전락하고 득표용 전술로 소비되는 야만적 상황에 휩쓸리는 순간, 미투 운동은 남성이 지배하는 정치권력에 이용당하는 역설에 직면한다. 공개적으로 수치를 무릅쓰고서 폭력의 기억을 소환한 미투 여성들에겐 잔인한 일이다. 정치인 안희정과 정봉주로 표적이 이동하는 동안 시인 고은은 외신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문제의 신부님은 고해성사 없이 잠적 중이다.미투 운동의 본질은 남성 권력의 여성 가해 역사를 종식시켜, 모든 권력의 어떠한 폭력도 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열자는 시대전환의 요구다. 여야 없이 미투 이후의 세상을 고민하고 설계해야 할 때다. 미투 운동의 지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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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북 특사 지면기사
적대적 남북관계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돌발적 해빙무드가 조성된 것은 특사외교의 성과였다. 1972년 5월 남한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특사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가슴에 청산가리를 품고 평양에 들어가 김일성 북한 주석을 면담했다. 동시에 북한에서는 부주석 박성철이 서울에서 박 대통령과 만났다. 극비리에 성사된 남북 특사 교환의 성과는 남북이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고 민족대단결을 도모한다는 공동성명 발표로 공개됐다. 서울과 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 이후 남북관계를 관리할 조치들도 뒤따랐다.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한 남북 독재 정상이 벌인 이벤트는 남북 독재체제 강화에 악용됐다는 혹평에도,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한 첫 남북합의라는 역사적 의미가 가볍지 않다. 또한 공동성명의 기본합의는 이후 남북합의의 기초로 활용될 만큼 남북문제 해결의 기본원칙을 담고 있다. 실제로 남북 특사외교를 통해 재개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성안된 남북합의서인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김정일)'과 '10·4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노무현-김정일)' 모두 기본합의는 7·4 공동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문재인 정부가 5일 대북특사를 파견한다. 이번 특사는 이전의 대북특사와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전혀 다르다. 이전 특사들은 남북 평화공존과 같은 관념적이고 기본적인 주제를 다루었고, 남북 통치 수반들의 소통과 만남을 성사시키는 임무에 그쳤다. 반면에 이번 특사단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대화, 미·북대화의 실마리를 잡아내야 한다.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다"는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핵무장을 완료한 북한이다. 우리 특사단에 쥐어보낼 메시지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특사단이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로 김정은을 면담할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 특사단과의 면담으로 국제외교 무대에 데뷔한다면 그 자체로 희망적인 메시지로 해석될 테고, 면담마저 불발되면 또 그 자체로 한반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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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한국인, 멸종위기보호종? 지면기사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4년 한국인이 700여년 후 멸종위기를 맞는다는 수학적 예측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담긴 한국인 멸종 시나리오는 이랬다. 당시의 합계출산율 1.19명을 유지할 경우 부산은 2413년, 서울은 2505년 마지막 아기의 탄생을 끝으로 신생아의 고고성이 사라지며, 2750년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앞서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대한민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로 지목한 때가 2006년이다. 모두 저출산의 저주에 걸린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경종이었다.현재의 위기엔 민감하지만 미래의 위기엔 둔감한 법. 한국인 멸종 경고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도 예외는 아니다. 7세기 후의 멸종을 체감하기 힘드니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비극을 농반진반 술자리 안줏거리 화제 정도로 소비했다. 그러는 사이 경종의 음량은 깊고 묵직해졌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17년 출생·사망통계가 심각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 2.1명의 딱 절반이자, 2016년 1.17명 보다 10.3% 급감한 수치다. 2750년 멸종의 전제였던 1.19명보다는 11.8%가 떨어진 셈이니, 한국인 멸종 시한도 훨씬 앞당겨 수정돼야 할 지경이다.따지고 보면 먼 장래의 위기도 아니다. 현재의 초저출산 현상이 이어지면 인구정점 시기도 2031년에서 2027년으로 당겨진다니 10년 안에 저출산의 저주가 현실로 닥쳐올 수 있다. 노령인구는 급증하고 일할 청년은 사라지면서 경제는 활력을 잃을 것이다. 좌·우파 정부가 경쟁적으로 약속했던 현재의 복지혜택은 한 세대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한민족 멸종이야 먼 미래의 비극일지라도, 비극의 정점을 향할 때까지 겪어야 할 고초와 불행은 우리 세대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몇백년 후 한민족이 멸종위기보호종으로 쇠락해 국제사회의 보호, 관찰 대상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만하면 전국 주요도시에 한국인 멸종시점을 자정으로 맞춘 운명의 시계탑을 세워, 초저출산 민족의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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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문화계 미투(Me too) 운동 지면기사
한국인에게 성(性)폭력 담론은 이중적이다. 피해의식과 가해의식 어디쯤이라서다. 역사적으로 반도 여성의 수난은 늘 성폭력을 수반했다. 병자호란 때는 수많은 조선여인이 청나라에 노리개로 끌려갔다. 곡절 끝에 환국한 여인들은 '환향녀(還鄕女)'로 낙인찍혀 멸시받았다. 일제 때는 식민지의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줄줄이 낯선 이국의 전선에서 희생됐다. 가난한 해방 한국의 소녀들은 미군 기지촌에서 국가의 방조 아래 성적 착취를 감수했다. 패전과 약소의 역사로 인한 여성의 수난사는 정조관념이 유난했던 한국인에게 남녀불문, 총체적 트라우마다. 한·일간의 위안부 문제 종식이 힘든 건 일본이 이를 간과해서다.한국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역사적 부채 때문이라도 근·현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성을 존중해야 당연했다. 하지만 남성이 권력을 장악한 모든 분야에서 여성성을 유린하는 가해는 멈출 줄 몰랐다. 산업화 시대의 정치권력과 신흥자본의 성 의식이 그 수준이었다. 여성의 성이 상품으로 소비되는 시대가 그 시절 열렸다. 정인숙 사건 같은 권력의 성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재벌들의 여성 편력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성 주체성에 대한 여성들의 각성이 이루어지고, 성폭력이 인권의 시각으로 다루어지면서 성폭력은 이제 근절해야 할 악으로 규정됐다. 이 과정에서 정계, 법조, 재계 등 지도층 인사가 성폭력 사범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다. 오랜 기간 권력의 상층부를 구성했던 보수 인사가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인권에 반하는 보수적폐로 은유됐다.최근 문화계의 성폭력 스캔들에 대중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문화영역은 산업화의 주역 보수진영에 대항하는 민주화 세력 진보진영의 보루였다. 문화영역은 권력의 압제에 저항하고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유효했다. 성폭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는 진보적 가치가 문화예술 영역에서 숙성되고 확산됐다. 그랬던 문화계의 진보권력이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 의해 전복되고 있다. 문화계의 '미투(Me too)운동'은 남성의 여성 가해 역사에 저항하는 한국 여성들의 전면전 선포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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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고은과 광교산 지면기사
"광교에 와서/…/광교의 나뭇가지가 되고 싶습니다/…/그 나뭇가지로 이듬해도/그 이듬해도 서리서리 살고 싶습니다//…/광교에 와서/…/이윽고 서해 낙조의 멍한 바다 그 어디로/다 스러져가는 긴 물이 되고 싶습니다//또한 광교에 와서/…/환한 달밤의 눈물 같은 하룻밤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 고은이 2015년 2월부터 경인일보 1면에 연재한 '고은의 광교산 연작' 10편 중 첫 편, '광교산에 와서'의 일부분이다.염태영 수원시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삼고초려로 모셔온 보물" 고은은 2013년 8월부터 수원 광교산에 새롭게 거처를 마련했다. 20여년 안성생활을 청산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테지만, 수원을 인문학 도시로 만들겠다는 염 시장의 간곡한 염원에 마음을 열었을 터이다. 시업(詩業) 말년의 결정인 만큼, 광교에서 여생을 마치는 것이 순명(順命)이라 여겼음직 하다. 시 '광교산에 와서'는 시인이 광교에 뼈를 묻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고…. 이후 고은 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시비와 광교산 주민의 퇴거 시위 등 민망하고 고약한 사단이 있었지만, 가타부타 반응 없이 광교살이의 뚝심을 보여준 시인이다.그랬던 시인 고은이 수원시가 마련해준 광교산 거처(문화향수의 집)를 떠날 의사를 밝혔고, 수원시는 18일 이를 수용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고은 재단 측은 "광교산 주민들의 반발로 수원시가 제공한 창작공간 거주를 부담스러워 했다"며 "시인이 더 이상 수원시에 누가 되길 원치 않는다"고 광교산 퇴거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이유 말고도 최근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속 'En선생'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는 난처한 사정도 광교산 시대를 정리하려는 결심을 부추기지 않았을까 싶다.광교산을 떠난 뒤 수원에 남을 것이다 아니다 예측이 분분하지만, 이제는 시인이 진정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노벨문학상의 부담으로부터, 그를 통한 도시 마케팅으로부터, 찬양과 비난으로 그의 문학적 성취에 기대려는 무리로부터 초탈하려는 첫 시도가 광교산 시대의 정리이기를 바란다. 애초에 시인으로 광교에 왔듯이, 광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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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문화권력의 수난 지면기사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권력유한의 법칙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문단의 두 원로가 참담하고 비루한 시비에 휘말려 대중의 서늘한 시선에 갇힌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최영미 시인이 두달전 발표한 시 '괴물'의 주인공 'En(은)선생'은 최근 한 여검사가 불지른 한국판 미투(me too)운동으로 다시 대중 앞에 소환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작가 이외수는 지난해 여름 화천군수를 욕보였던 일이 곪고 곪아 이제는 화천시와의 법적 분쟁, 세속의 뻘밭으로 하강할 모양이다.En선생의 처지는 매우 고약하다. 작품속 이니셜과 현실속 실명 사이에서 적절한 대응이 곤란해졌다. 최영미는 'En선생'이라 했지만 세상은 두 글자 실명 '○○'을 지명한지 오래다. 인터넷에서도 실명 '○○'으로 검색해 'En선생' 콘텐츠를 찾는 게 손쉽다. 진보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민중의 편에서 반독재투쟁을 벌였던 노벨상 후보, 시인 '○○'은 이제 상습 성추행의 혐의를 뒤집어썼다. 하지만 최영미는 작품속 'En선생'을 시인 '○○'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원로시인 '○○'은 이니셜에 갇혀버렸다. 최영미는 살아있는 문학권력을 영리하게 허물고 있는 중이다.화천군으로부터 이외수문학관이 있는 감성마을에서 퇴거 통보를 받은 이외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법적으로 맞설 뜻을 밝혔다. 그동안 화천군을 위한 자신의 행적을 열거하면서, 자신에 대한 퇴거 결정과 관련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화천군수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렸을 때, 그는 자신의 문화권력을 과신해 남용한 것 아닌가 싶다. 작가 이외수를 아끼는 독자라면, 문단의 원로가 최후의 작품에 매진하는 대신 세속의 이해를 따지는 일에 떨어진 사실 자체가 안타까울 것이다. 혹독한 대가다.오늘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하지만 축제의 설렘 보다는, 올림픽 이후의 한반도 명운이 더욱 마음에 걸리는 요즘이다. 분절된 역사인식과 갈라진 이념을 화해시킬 권위가 사라진 시대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En선생' 사태요 이외수 사건이다. 문화권력의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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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987', 그리고 '지금' 지면기사
영화 '1987' 뜨거운 열풍 민주주의 정착 '정주행'군부 독점 수직·비대칭 권력 수평적으로 환원해현 정당들 이념 대립 매몰 '민주적 대칭성' 망각지난해 말 30년 만에 소환된 역사, '1987'의 열풍이 지금까지 뜨겁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 1987년 대한민국. 굳이 영화로 되새김질 할 필요도 없이 가슴과 뇌리에 각인된 영상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때 그 광장의 뜨거운 감성이 솟구치는, 한국인만 공감할 수 있는 매우 각별한 시공간이다. 공권력이 시민 박종철을 타살한 이후 1987년 한해에 이어졌던 민주화 과정은 압축성장에 익숙했던 한국인에게도 현기증 날 정도로 전면적이었고 신속했다. 전두환의 4·13 대통령 간선제 호헌조치에 국민은 6월 민주항쟁으로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연세대생 이한열이 목숨을 잃었고, 이한열을 대신한 국민이 거리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그러나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으로 마침표를 찍은 '1987'의 종장은 얼마나 적막하고 고요했던가. 야당 후보들의 분열로 인해 즉각적인 민정시대를 열지 못한 채 반군반민의 과도기를 거쳐야 했으니,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국민의 헌신이 허탈해졌다.체제 전복은 한 순간에 가능하지만 신체제의 안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1987'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를 거쳐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7명의 대통령이 등장한 30년은 민주주의 체제 정착을 위한 국가제도의 정비, 사회구조의 조정, 국민인식의 전환기였다고 봐야 한다. 이제 시작인 문 대통령을 제외하면 6명의 대통령이 이끌었던 각각의 정부는 이런저런 공과에도 불구하고 거시적 관점에서는 1987년 시작된 신체제의 안정적 지속을 위한 역사적 소임을 나누어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개인의 능력은 늘 의심받았을지라도 정부 그 자체로는 1987년 6월 정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이라는 1987년 신체제의 정신 내에서 정주행을 멈춘 적이 없었다. 박근혜 탄핵은 1987 정신에서 벗어나 역주행한 통치자의 말로를 보여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