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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지 않은 길, 포스트 코로나를 말한다·(6)]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 지면기사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진 못해인천시 '도시자족성 강화' 필요지역소통 미디어플랫폼 구축도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우리는 이전 사회로 똑같이 되돌아갈 수 있을까. 인천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김창수(사진) 인하대 겸임교수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지난해 12월 인천연구원을 정년 퇴임한 김창수 교수는 퇴직 후 터져 나온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그 이후의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스스로 주요 연구과제로 삼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의 큰 변화 흐름을 4가지 측면에서 예측했다. 탈 세계화, 탈 도시화, 탈 인프라, 탈대면(비대면) 사회 등이다.김 교수는 또 인천광역시가 지방정부 차원에서 당장 준비해야 할 사안으로 2가지를 꼽았다. 도시의 자족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비대면 사회를 대비한 지역 소통형 미디어플랫폼 구축을 들었다."집 주변, 즉 시민들의 도보권역 안에 방역 체계를 제대로 갖춘 문화 활동 공간을 대대적으로 확충해야 합니다. 인천은 도시를 관통하는 한남정맥이 길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한남정맥을 센트럴 파크로 조성하면 시민들이 멀리 가지 않고도 충분히 녹색 공원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영상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미디어 지방 정부를 구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봅니다."코로나19 이후를 내다보는 비관론과 낙관론이 혼재하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코로나19 이전으로 온전히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얘기다. 그는 그러면서 앞에서 제시한 4가지 큰 변화흐름에 맞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김 교수는 이제 인류는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사회, 즉 생활방역이 일상화하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대면 방식의 방역 지침이 내려지고, 그것을 따르다 보면 도시가 마비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앞으로는 언제든지 무슨 바이러스 상황이 터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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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그 섬, 물치도 지면기사
영종도 오른쪽 끄트머리 앞 '작은 섬' 하나매입한 일본 사람 '작약도'로 지었다 전해져인천 동구, 작년부터 '지명 환원' 정당성 확보온전히 시민 품으로 돌려주기 머리 맞댈 때섬은 섬에서보다 섬 밖에서 보아야 제격이다. 인천 자유공원 정상에 있는 인천기상대 역사관 언덕에서 강화도 쪽을 바라보노라면 만석고가 넘어 영종도 오른쪽 끄트머리 앞에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작약도(芍藥島)다. 원래 이름은 물치도(勿淄島) 또는 무치도(舞雉島)였다고 한다. 자유공원 아래로 보이는 바다까지는 온통 공장의 플랜트 시설이 그득하고, 저 건너 영종도는 아파트 단지가 도배하듯이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작약도는 사람 손이 안 타 보이는데 그게 오히려 위태롭기 그지없다.지난 21일 인천광역시지명위원회는 작약도란 이름을 물치도로 바꾸기로 하는 대단히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올 하반기에 열릴 국가지명위원회를 거쳐야 최종 확정될 사안이지만 큰 문제 없이 통과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미 작약도가 속한 동구는 작년부터 '물치도 지명 환원 자문위원회'를 꾸려 작약도란 이름이 왜 물치도로 바뀌어야 하는지 그 정당성을 확보해 왔던 터다. 이를 토대로 동구지명위원회는 작약도를 물치도로 고칠 것을 의결하고, 이를 시 지명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 잔재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지역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자는 차원이었다.작약도란 이름은 그 섬의 모양이 작약꽃 봉오리처럼 생겨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드론 촬영한 작약도의 모양은 남북으로 길쭉하다. 위에서 보면 전혀 작약꽃 같지가 않다. 자유공원이나 월미도 같은 데서 보면 둥그런 것이 조금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다. 그런데 왜 작약도란 이름이 일제 잔재일까. 물치도란 이름이 작약도로 바뀐 것은 일본 관련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 섬을 처음으로 매입한 일본 사람이 작약도라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인천항 개항 당시 일본인들은 인천을 작은 일본으로 개발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청일전쟁(1894~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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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역정가
[가지 않은 길, 포스트 코로나를 말한다·(4)]이왕기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면기사
비대면 시대 등 '트렌드' 대비선진사회로 가는 중요포인트우리 사회는 여전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연구자들은 그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요즘 전 지구적 화두처럼 떠오른 포스트 코로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인천시도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우선 인천연구원 기존 연구 분야에 포스트 코로나 대응을 포함시켰다. 인천연구원을 포스트 코로나의 싱크탱크로 활용하겠다는 게 인천시 구상이다. 인천연구원 이왕기(사진) 선임연구위원이 그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이왕기 박사는 "코로나19가 우리 생활 영역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 예측도 거의 전 분야를 대상으로 놓고 고민하고 있다"면서 "그 고민의 초점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단기적 회복 분야와 코로나19 이후 달라질 사회 변화를 보는 중·장기적 관점이라는 두 가지"라고 했다. 인천에서 중요한 경제적 축인 인천공항과 같은 큰 분야를 어떻게 하면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사람 사이에 만나지 않고서도 사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비대면 시대에도 대비하고 있다는 얘기다.코로나19가 이미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깊게 끼쳤다는 게 이왕기 박사의 분석이다.그는 "우선은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사회 양태가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미래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대비하는 게 선진사회로 가는 중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이왕기 박사는 내다봤다. 이왕기 박사가 중요하게 보는 바는 코로나19가 사회 발전의 진행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어떤 분야는 코로나19가 진행 속도를 무척 빠르게 가속화 했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그 방향을 반대로 틀었다고 분석했다. 빠르게 나아가던 것을 되돌린 쪽을 예로 든다면, 대표적인 게 공유경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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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역정가
[가지 않은 길, 포스트 코로나를 말한다·(1)프롤로그]정부 혼자서 예측할 수 없는 BC와 AC 지면기사
선거·무관중 경기·온라인 개학 등모두 처음 겪는 일… 향후 더 걱정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혜' 짜내야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휘청이며 좀처럼 그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사회 활동의 기본이 되는 사람 간 접촉 방식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얼굴을 보면서 밥을 먹고 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인기피증 환자 취급을 받고는 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을 피하는 게 예사인 세상에 와 있다. 아니, 사람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수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정치적 이슈 몰이를 하는 '광장 정치'에 익숙한 우리는 이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후보자와 유권자가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선거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현장 관객이 없이도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개막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의 대한민국 선거와 프로 스포츠는 전 세계적 뉴스로 떠올랐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서도 수업을 듣고 있다. 이 모두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누구는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로 세상을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신중론을 펼치는 전문가들도 있는데, 세계가 매달리고 있는 백신 개발이 빨리 이루어지면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누구 말이 맞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19 상황은 이미 우리에게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도록 강요하고 있다.코로나19 이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 모습은 어떨까. 가정 배달이 일상화 하고, 밀집 형태의 도시 주거 공간은 교외로 흩어지게 될 것인가. 사무실이나 학교, 교회의 기능은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인가. 경인일보가 인천 지역 각계 인사들을 찾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측하는 연속 기획을 시작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청사진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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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나는 어떤 코로나 일기를 쓸것인가 지면기사
고산 윤선도 손자 '지암일기' 펴낸 윤이후전염병 등 재난속 굶주린이웃 함께한 용기우리사회 팬데믹 극복 국민적 몸부림 치열자신만의 재능·지혜 공유로 나눔 실천할때그 할아버지는 누구일까. 지난 2월28일, 코로나19로 대구지역이 마비 상황에 빠지고 전 국민이 마스크를 구하려고 야단법석을 떨 때 7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인천시청을 찾아왔다. 그는 코로나19 담당 부서를 안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반인 출입이 안 된다고 하자, 박남춘 시장에게 전달해 달라면서 봉투를 건네고 사라졌다. 봉투 안에는 '힘내세요 대구.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마스크 구입에 보탰으면 합니다. 인천 시민 드림'이라고 적힌 편지와 현금 24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분일까. 문득문득 떠오른다. 지금은 좀 안정을 찾았지만 지난 2월 말이면, 처음 겪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 모두가 안절부절 하지 못할 때다. 마스크 구입 문제로 사건·사고도 많았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약국에는 이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고, 마스크를 팔지 않는다면서 약사를 폭행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어떤 할머니는 길바닥에 나앉아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정말 난리 통이었다. 그럴 때, 나는 괜찮다면서 남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 그 할아버지의 용기와 이타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감염병이나 굶주림으로 인한 재난 상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럴 때의 행동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판가름이 난다. 나만을 위하느냐, 남을 돌아보느냐. 올해 초에 번역되어 나온 윤이후(1636~1699)의 '지암일기'는 300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암 윤이후는 '어부사시사'로 잘 알려진 고산 윤선도의 손자이자 조선 후기 선비 그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공재 윤두서의 생부다. 54세에 과거(증광시)에 급제해 때늦은 벼슬길에 나섰으나 함평 현감에 재직 중 돌연 그만두고 낙향했다. '지암일기'는 그가 함평 현감으로 있던 1692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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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1)프롤로그]'내년 개항20년' 한국의 관문, 과거·현재·미래 들여다본다 지면기사
인천 영종도가 공항 부지로 결정된 지 30년이 지났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 지는 내년이면 꼭 20년이 된다. 그 사이 인천공항은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비상했다. 지난해 인천공항은 연간 40만 회의 운항기록을 세웠다. 오고 간 여객은 7천만 명을 넘어섰다. 개항 이후 최대 실적이었다. 국제여객 7천만 명 기록은 세계 5위 규모에 해당한다. 국제화물 운송 규모는 276만t이다. 이는 세계 3위 수준이다. 인천공항에서는 하루 평균 1천100편가량의 국제선이 뜨고 내린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나들목이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상주 직원만 7만8천여 명이다. 경제효과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지난 2018년 제2터미널을 개장한 인천공항의 생산유발 효과는 10년 뒤면 13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경인일보는 올해 창간 75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천공항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올 1년 동안, 인천공항이 들어서기 전 섬마을 풍경에서부터 공항 조성 과정, 그리고 공항 운영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 연중기획으로 싣는다. 국내외 공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인문학적으로 담아낸다는 각오다. 매주 1회씩 찾아갈 이번 시리즈에 독자들의 응원을 당부한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대한민국 대표 공항인 인천국제공항 제 2여객터미널을 배경으로 대형 항공기들이 착륙을 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우뚝 선 인천국제공항은 내년이면 개항 20년을 맞는다. 경인일보는 올해 창간 75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나들목인 인천공항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사진은 영종도 북측방조제 인근에서 3분 간격으로 연달아 착륙하는 항공기를 다중노출로 촬영).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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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1)프롤로그]제비 대신 비행기 드나드는 '영종'… 세계를 잇는 공항은 운명이었다 지면기사
고려시대 기록부터 '자연도'로 불려와제비 많고 해질녘 자줏빛 하늘서 유래이규보의 '계양망해지' 한대목 등장도대한민국 대표 공항, 인천국제공항은 태초부터 비행장의 기운을 타고난 자리에 터를 잡았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예로부터 자연도(紫燕島)라 불렸다. 자줏빛 제비의 섬이란 의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의 소식을 물고 오는 제비는 늘 반가움의 대상이다. 자연도란 이름은 고려시기에 비로소 등장한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는 주로 유배의 섬으로, 또한 왜적들이 약탈 대상으로 삼은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를 찾았던 중국 사신의 눈에 자연도는 그냥 지나칠 곳이 아니었다. 중국 송나라 때 문신 서긍(徐兢)은 1123년 바닷길 서해안 루트를 따라 개성을 방문한 뒤 중국으로 돌아가 '고려도경'이란 방대한 분량의 견문 보고서를 왕에게 올렸다. 여기에 자연도 이야기가 자세하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도 많다. 고려시대부터 자연도는 외교적으로 무척 중요한 공간이었다. 고려 제일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가 계양산에서 조망한 자연도 이야기는 그의 문집에 남아 아직도 전한다. 1219년 여름부터 1220년 여름까지 1년여 동안 계양부사로 있었던 이규보의 그때 시선은 꼭 800년이 흐른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 5일 오후 3시 계양산에 올랐다. 인천국제공항을 품고 있는 영종도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겨울은 강추위 없이 지나간다는 얘기를 했는데 입춘이 지나자마자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한반도를 덮쳤다. 인천지역도 모처럼 영하 10℃ 아래로 떨어졌다. 시야를 가리는 중국발 미세먼지를 날려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춥지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던 차였다. 그렇게 오른 계양산. 영종도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마침 비행기 한 대가 영종도 북쪽 하늘로 날아올랐다. 영흥도 쪽 하늘에서는 비행기 두 대가 잇따라 고도를 낮추며 영종도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인천공항이 어디인지를 비행기들은 그렇게 알려주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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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이프
죽산 선생 평등·진보정신 '한권에'… 기념사업회 '조봉암 어록' 출판회 지면기사
"태어나서 특권을 보유한 사람도 없어야 되고 더 많은 국가적 혜택을 입어야 할 사람도 없는 것이고, 따라서 더 소홀하게 취급될 사람도 없고, 하물며 주권자인 국민 대중을 업수이 보고 억누르고 할 수 있는 권리 있는 사람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이 1953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한 이야기이다. 국민 평등의 개념을 명쾌하면서도 쉽게 풀어냈다. 6·25 전쟁이 막 끝난 뒤인 67년 전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대단히 진보적인 내용이다.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당은 이런 사상을 가진 죽산에 의해 창당되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의 주옥같은 어록을 모아 펴낸 책이 출간되었다. (사)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는 7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베이징코야에서 '죽산 조봉암 어록(1948~1954)'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인천시의회 조성혜 의원, 박흥열 강화언론문화협동조합 이사장, 오경종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센터장, 인천시 문화재과 관계자 등 인천의 몇몇 인사들도 참석했다. 죽산의 어록은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민주주의가 꽃 피며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꿈꾸었던 선생의 진보 정신이 잘 녹아 있다."소작제도라는 이 수천 년 내려오는 제도를 고치자는 것이에요. 없애버리자는 것이에요. 이것이 개혁이에요. 개혁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1949년 4월 1일 국회에서 한 이 발언 역시 지금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을 외치는 요즘과 죽산이 개혁을 부르짖던 70년 전이 다르지 않다.'죽산 조봉암 어록'은 경향신문 기자와 논설위원 등을 지낸 신동호씨가 펴냈다. 편저자인 신동호 씨는 방대한 죽산의 어록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해제를 달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했다. 어록 발간 작업은 인천시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식당 베이징코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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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무리 지어 가는 우리를 위해 저 해는 내일도 떠오른다 지면기사
-영종도 노을 속 새들을 보며올해처럼 하늘을 나는 저 새들이 그렇게도 부러운 적은 없었습니다.우두머리를 따라 한 방향으로 가는 저 새들이 이다지도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새들은 여럿이 앞에 나서는 경우가 없습니다.맨 앞에 선 한 마리만이 무리를 이끕니다.그 우두머리는 절대로 길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모두의 안위가 자신에게 달렸기 때문입니다.저 새들을 보면서, 2019년 올 한 해 우리에게는 어떤 지도자가 있었는지 되묻습니다.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 되돌아봅니다.우리는 너무나 한쪽 끝으로 치우쳐 있지나 않았는지 따져봅니다.저 하늘은 대한민국의 대표 나들목 영종도의 석양입니다.영종도는 예부터 자연도(紫燕島)라 불렸습니다.저기 저 자줏빛 하늘을 나는 제비가 바로 자연(紫燕)입니다.꼭 800년 전 동방의 시성 이규보는 계양산에 올라 자연도를 읊었습니다.이제 자연도의 하늘은 그 옛날 제비가 날았듯이 비행기들이 차지했습니다.하루 남은 2020년,제비가 좋은 소식 물어오듯 저 하늘길이 기쁜 인연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글/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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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이프
[뉴스분석]백범 뮤지컬 왜 인천 무대 오르나 지면기사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인연당시 기사·조문객 행렬이 '증명'오늘부터 5일간 인천대서 공연17일부터 백범 김구의 항일독립운동을 다룬 뮤지컬 '김구 가다보면'이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21일까지 5일간 펼쳐진다. 인천의 대표 극단 '십년후' 작품이다. 백범 뮤지컬이 왜 인천 극단에 의해 인천 무대에 오르는 것일까. 백범 스스로 말했듯이 그에게 있어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이다. 백범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해방 후 귀국했을 때 동아일보(1945년 12월 4일자)는 '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인연이 깊은 인천에서는 금번 김구 주석의 환국을 환영'하려고 봉영회를 거행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에는 누구든지 김구와 인천의 인연이 각별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인천 사람들은 백범과 인천의 특별한 관계를 그리 많이는 알지 못하고 있다.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에서는 올해 1945년부터 1949년까지 김구와 관련한 신문기사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비운의 역사 현장 - 아! 경교장'이다. 이 책에 실린 백범 서거 이후의 인천 관련 기사를 통해 인천 사람들이 김구를 얼마나 특별하게 대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백범 서거 하루 뒤인 1949년 6월 27일 인천 삼균주의 학생동맹과 청년동맹은 추도대회를 마치고 시위를 하려다가 경찰에 제지를 당했다. 어쩔 수 없이 해산한 이들은 추도사와 추도시를 경교장에 마련된 영전에 보내 애도를 표했다. 한독당 인천시당이 마련한 인천 분향소에는 장영복 경기도경찰국장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물론이고 농촌의 노파, 길가는 지게꾼, 눈물을 머금은 중국인들이 찾아들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도 분향소를 찾아 장시간 울면서 떠날 줄을 몰랐다.사흘 후인 29일에는 제일방적공사 인천공장 남녀 종업원 대표 100여 명이 부의금과 광목 등 시가 30여만 원에 달하는 금품을 전달했다. 당시 30만 원이면 웬만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또 부평에 사는 김윤옥(40)이란 이는 백범이 타계한 26일부터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인천 분향소는 9일 동안 운영되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