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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월북 작가 황영준 지면기사
조선 마지막 어진화가 이당 김은호 제자인천 매개 사제의 연… 월북 후 종군화가이념·친일 잣대로 회합까지 막아선 안돼남북 문화예술 교류로 '상봉展' 이어지길며칠 전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갔다가 어떤 미술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북한 미술작품 전문 전시관이었다. 그 중국인 미술관 대표는 오랫동안 북한의 미술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고 했다. 북한의 유명 작가들이 그린 작품 수천 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가 전시되어 있지 않은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그중에 화봉(華峰) 황영준(1919~2002)의 그림은 풀세트로 있었다. 충남 태생인 황영준은 월북 작가다. 1950년 6·25 전쟁이 나자 북으로 갔다.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가로 불리는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제자다.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등이 동학이다. 황영준은 북에서 공훈 예술가 칭호를 받을 정도로 작품 세계가 우뚝하다. 황영준이 김은호의 제자라는 얘기를 듣고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인천이었다. 이당이 인천 관교동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2명의 임금 어진을 제작한 이당 김은호와 북한의 최고 미술 작가 황영준은 인천을 매개로 하여 사제간의 연을 이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황영준의 작품은 북에서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보여줄 만큼 다양했다. 그 중국인 미술관 대표는 황영준의 수많은 연습 작품도 많이 갖고 있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특히 황영준이 월북 하자마자 종군화가로 참여했음을 증명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전투 현장의 최전선까지 들어가 화폭에 담았다. 길가에 길게 늘어선 부서진 차량 행렬 작품과 두 동강이 난 채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 작품은 묘하게 대비되었다. 비행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을 차량과 육상에서의 총탄 세례를 받고 추락했을 비행기의 모습이 서로 포개졌다. 못쓰게 된 3대의 탱크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모두 미군 탱크로 보였다. 포신을 땅에 처박고 있는 것, 양쪽의 궤도가 벗겨진 채로 있는 것, '824'라는 탱크의 고유번호까지 선명한 것도 있었다.전쟁이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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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한 줌밖에 안 남은 햇살의 가난함에 마음을 비운다 지면기사
#2018년을 보내며해가 집니다.한 해가 저렇게 저물어 갑니다.석모도 상주산 꼭대기에 아스라이 걸린 저 해는우리의 일 년을 몽땅 쓸어 담고 갑니다.희망도,아쉬움도,모두 다 빨아들여 갑니다.강화도에서 하늘만 치어다보면가난한 시인 천상병의 '귀천'이 떠오릅니다.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천상병 시인이 강화에서 그랬던 것처럼우리는,한 줌밖에 안 남은 저 햇살의 가난함에서아름다운 소풍을 노래해야 합니다.-강화 고려산 낙조봉에서 글/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schild@kyeongin.com사진/김용국 인천본사 사진부장 y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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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작약도의 운명 지면기사
한때 전국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았지만어느 개인에게도 소유 허락하지 않은 섬인천시, 해양 친수공원으로 조성 청사진'작지만 커다란 공공재'로 쓰일 운명인듯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이면서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가장 많이 간직한 섬을 꼽으라면 단연 인천의 작약도(芍藥島)가 아닐까. 해방 이후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이 섬을 소유하려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서 오히려 자신이 망하고 말았다. 서구세력의 한반도 침략 시기, 그 풍랑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섬이기도 하다. 사람으로 치면 기구하고도 사나운 팔자라고 할 수 있다. 작약꽃처럼 생겨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는데 실제로 보면 생김새가 꼭 작약 같지는 않다. 원래 이름은 물치도(勿淄島)였다고 한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1919~1975)도 작약도에서 시를 쓰고는 했던 모양인데 작약도에 작약꽃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작약꽃 한 송이 없는 작약도에/소녀들이 작약꽃처럼 피어.//갈매기 소리 없는 서해에/소녀들은 바다의 갈매기.' '한국문학' 1977년 6월호에 실린 한하운 시인의 '작약도-인천여고 문예반과'란 제목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개인 혼자서 소유하기엔 벅찬 물건이 있다. 그걸 흔히들 공기(公器)라 한다. 공공의 기관도 그렇고, 자연유산도 그렇다. 덩치의 크고 작음에 따라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 이해와 직결되거나 역사적으로 긴요한 역할을 해 왔을 때 그것을 누구 혼자서 독차지할 수는 없을 터이다. 작약도의 소유권 변동을 훑어보면 그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대개의 섬이 그렇듯 작약도 역시 국가 소유였다. 영종진(永宗鎭)에 땔나무를 공급하던 수목지였다고 한다. 일제시기에는 스스기라는 일본인의 소유가 되었다. 처음으로 개인에게 넘어간 거였다. 해방 후 이종문이라는 사람이 이 작은 섬에 살면서 고아원을 세워 운영하기도 했는데 6·25 전쟁으로 폐쇄됐다. 전쟁이 끝난 뒤 성창희라는 이가 불하받았다가 문제가 되었으며,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가졌다가 한보가 부도가 났다. 1996년 인천의 해운업체 원광이 소유해 해상 관광단지를 건설하려다가 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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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노무현의 인사법 지면기사
장관 퇴임후 시장 수행비서에 90도로 인사진정성 묻어나 상대방 마음 움직이게 해지난 지방선거때 허리 굽혔던 정치인들지금은 목이 '뻣뻣'… 그땐 정중한척 했을뿐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집 창문 밖에 한 달가량이나 조기(弔旗)를 내걸었던 인천시 공무원이 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이념 성향이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이른바 '노빠'도 아니었다. 그는 딱 한 차례 인간 노무현과 만났을 뿐이었다. 그 만남이 그렇게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천생 시골 사람 같은 소박함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날 때고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이른바 노무현의 인사법은 그렇게 퍼져나갔다. 조기를 내걸었던 그 인천시 공무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마치 부모라도 돌아가신 양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조기를 내거는 것 말고는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아직도 보수적 성향의 이 공무원은 잘 알지도 못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왜 그렇게 애통해 했을까. 아주 사소한 인연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타계하기 7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6대 해양수산부장관을 그만둔 이듬해, 제16대 대통령 취임 1년 전인 2002년이었다. 노무현 전 해수부장관이 인천시청을 찾았다. 최기선 인천시장 시절이었다. 노 전 장관이 시장실에 들어서면서 최 시장의 수행비서와 먼저 인사를 나눴다. 노 전 장관은 그 수행비서에게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으며 악수를 청했다. 7급이었던 그 수행비서는 장관을 지낸 분에게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받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깍듯이 인사하던 그는 이듬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 또한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그 7급 공무원의 마음속에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크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그는 어디를 가나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은 것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그랬고, 퇴임하고 나서도 그랬다. '꼴통'까지는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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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일반
인천환경공단, 국가생산성대회 '총리 표창' 지면기사
인천환경공단(이사장·이주호)은 16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42회 국가생산성대회'에서 서비스우수기업 부문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했다고 밝혔다.국가생산성대회는 매년 산업현장에서 생산성 향상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기업, 법인 및 단체와 유공자를 발굴해 포상하는 정부포상제도다. 인천환경공단은 환경기초시설 운영을 통한 환경보전은 물론 다양한 에너지원과 시민편의시설을 이용한 온실가스 감축과 사회적 비용 절감 노력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주호 공단 이사장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시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맞춤형 환경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면서 "앞으로도 '환경으로 행복한, 살고 싶은 도시 인천'을 만들도록 인천의 공기업으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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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눈물의 그림전, 상상이 현실로 승화하다 지면기사
서울 학고재 갤러리 이종구 화백 전시회세월호~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역사 그려임하도 폐교서 담은 단원고 학생 작품앞눈물짓던 젊은 여성 보니 미안한 마음…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종로 학고재 갤러리에 갔다. 인천에 사는 이종구 화백의 '광장-봄이 오다'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종구 화백은 4·16 세월호 사건의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그 사건으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 그로 인해 탄생한 새 정부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흐름을 그림에 담았다. 단원고 학생들의 1학년 때 단체 사진을 보고 그린 작품 10점도 걸렸다. 1반부터 10반까지 350명이다. 이들 중 325명이 수학여행에 참여해 세월호에 탔다. 75명이 살고 250명이 숨졌다. 그 250명의 넋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작가는 10점의 작품에만 특별히 액자를 했다. 세월호로 시작된 광장의 촛불이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고, 그것은 또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점을 이번 전시회는 또렷하게 보여준다.작품 속 학생들은 주로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반별로 나름의 신호처럼 서로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저쪽에서부터 보면서 오던 어느 젊은 여성이 한참을 서 있었다.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살피려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 여성은 울고 있었다. 눈 주위는 붉게 물들었고, 눈물이 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춰 서 있었던 거였다. 아, 나는 도대체 뭘 보고 있었단 말인가. 사진과 영락없이 정말 잘 그렸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기는 했지만 눈물까지는 나지 않았다. 눈물짓던 그 젊은 여성을 보노라니 갑자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화가들도 함께 관람했는데 그들은 저 작품은 무슨 재질의 도구를 썼고, 무슨 기법으로 그렸는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들 역시 아이들 단체 사진 작품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그 여성을 보았다면, 아마도 학생들에게 미안해했을 거다.이종구 화백은 단원고 학생들을 작품에 담기 위해 정말이지 눈물겨운 작업을 했다. 그는 작년 여름 3개월을 해남 임하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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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어느 노부부의 첫 백령도 여행 지면기사
방문객 맘에 들도록 혁신적 관광정책 필요이제는 서해 최북단 섬 이미지 벗어버리고남북 분단선 아닌 연결지점으로 돼야 한다 여유와 평화 즐길방안 없는지 고민해 보자우리 동네 세탁소 주인 부부가 며칠 전 백령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고 했다. 60년 넘게 평생을 인천에 살면서도 백령도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단다. 그래서인지 벼르고 별러서, 정말이지 큰맘을 먹고 부부 둘이서만 백령도 여행을 떠난 거였다. 차를 갖고 들어가기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 백령도 현지 민박집에서 하루 5만 원씩 주고 렌트를 했다고 한다. 2박3일을 있었다. 부부의 표정은 백령도에 가기 전과 갔다 온 뒤가 달랐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으냐고 물으니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도 가 보고 싶어 하던 백령도 여행에서 노부부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온 거였다.깨끗한 바닷물과 이색적인 해변처럼 눈길을 끌게 한 것들도 있었지만 이들 부부에게 백령도 여행이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백령도만의 먹을거리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묻고 물어 찾아간 칼국숫집은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여행객의 마음까지 잡아주지는 못했다. 백령도 현지인들조차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폭염이 심했는데, 덥고 짜증 나는 도심을 피해 멀고 먼 섬으로 온 관광객에게 더위를 날리게 할 장치는 없었다. 가장 큰 구경거리라는 두무진 해상 관광도 하지 못했다. 안개가 끼었다는 이유였다. 먹을 게 없었고, 더위조차 도심과 다를 게 없었고, 꼭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이 정도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을 이유로는 충분해 보였다. 마치 신혼여행을 준비하듯 했는데 안타까웠다.반면에 이들 부부보다 조금 먼저 백령도 여행을 다녀온 또 한 부부의 경우는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둘의 차이는 개별적으로 갔느냐, 여행사를 끼고 단체로 갔느냐에 있다. 단체 여행 부부는 먹는 것도 좋았고, 백령도 이곳저곳을 설명해주는 안내원의 이야기도 맘에 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물론 백령도를 또 가고 싶은 여행지로 여긴다고 했다.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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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일반
신한은행, 하반기 경영전략회의 지면기사
신한은행은 지난 20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위성호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 본부장, 전국 부서장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8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개최했다고 22일 밝혔다.이 자리에서는 올 상반기부터 새롭게 추진한 ▲수퍼앱 신한 쏠(SOL) ▲KBO 타이틀스폰서를 활용한 MyCar 대출 마케팅 등의 성과를 공유하고 현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추진 중인 신용평가 자동화, 여신관리체계 개선 방안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위성호 행장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도전적 목표를 달성해 가자"고 당부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위성호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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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이프
시티투어 단체관광객 해설 서비스 지면기사
인천관광공사는 인천시티투어 단체이용객을 대상으로 문화관광해설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16일 밝혔다.20~30명 규모의 단체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서비스는 시티투어를 이용해 인천 곳곳을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천국제공항 홍보관과 G타워, 인천도시역사관, 소래역사관 견학 등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인천관광공사는 설명했다.단체관광객의 경우 단체할인 적용으로 20% 할인된 금액인 통합권(모든 노선 탑승) 8천원, 단일권(하버라인, 시티라인 탑승) 4천원으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결제와 티켓 수령은 인천역관광안내소, 인천종합관광안내소, 탑승 버스에서 가능하다.인천시티투어를 통한 인천 여행을 계획하는 단체 관광객들은 인천관광공사 홈페이지(www.travelicn.or.kr)를 통해 인천시티투어 사이트로 접속한 후, 노선·예약 메뉴 내 단체관광 별도 신청을 통해 해설과 함께하는 인천시티투어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인천관광공사는 덧붙였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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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제386회 새얼아침대화, 위성호 신한은행장 강연]"미래로 향하는 통로, 인천 상생공헌 함께 이바지할것" 지면기사
공항·여객 등 검색 이미지 연상은행, 사회적 역할 재정의 강조제386회 새얼아침대화가 11일 오전 7시 위성호 신한은행장을 강사로 초청해 쉐라톤 그랜드인천호텔에서 열렸다.위성호 신한은행장은 이날 은행의 역사에서부터 변화 과정,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은행을 재정의하다'란 주제로 설명했다. 강연은 ▲인천과 신한 ▲은행 생태계의 변화 ▲은행업의 재정의 ▲사회적 역할의 재정의 등 4가지로 구분해 이어졌다.위 은행장은 먼저, 인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미래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각종 검색창에서 인천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게 인천국제공항과 인천여객터미널, 그리고 남북평화교류의 전진기지 등의 단어라면서 이는 바로 인천을 '미래로 향하는 통로'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린다는 걸 의미한다고 풀이했다.그는 신한은행은 출범과 함께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은행이라면서 국내 은행들이 전세계 38개국에 667개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글로벌시장을 노크하고 있는데 신한은행이 그중 선두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또한 25년 전부터 베트남에 진출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현재는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 중 1위 자리에 올랐다고 했다.위성호 행장은 금융시스템이 급격하게 인터넷·모바일화 하는 점을 설명하면서 구체적으로 신한은행의 데이터를 소개했다. 신한은행 입금·지급·이체 고객 중 97%가 온라인·모바일 이용객이라고 했다. 겨우 3%만이 창구를 이용한다는 거였다. 또 예·적금과 펀드 이용자의 51%, 대출자의 38%가 온라인·모바일 고객일 정도로 은행의 디지털화가 폭넓게 진행됐다고 했다.위 행장은 또 은행은 앞으로 계단을 오르는 바퀴나 날개 없는 선풍기 같이 전혀 다른 차원의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3·3·3 룰'을 소개했다. 이는 3일간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3주간 계획하고, 3개월간 집중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또한 그는 앞으로 신한은행은 인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미래 공헌에 이바지할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위성호 신한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