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사람들]네팔 아이들 돕는 조덕연·배영애 부부

    [보통 사람들]네팔 아이들 돕는 조덕연·배영애 부부 지면기사

    매년 가을 디딸마을 보육센터 방문10년째 운영지원 자립용 양 전달도김포 ‘한네연’ 이끌며 교류활동 넓혀“지구 끝 오지 산꼭대기에서 만난 아이들은 저희 부부에게 행복을 안겨 줬어요!”이역만리 네팔에 사는 아이들을 향한 김포 부부의 남다른 10년 사랑이 지역사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김포 토박이로 42년간 한 몸으로 살아온 조덕연(68)·배영애(64) 부부가 주인공이다.이들은 매년 가을 네팔에 간다. 네팔 포카라시 카스키도지역 해발 1천450m ‘디딸 마을’에 위치한 꿈나무 어린이보육센터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안나푸르나 산맥이 파노라마로 펼쳐진 이 마을은 빙하가 녹아 흐르는 세티강과 전통 집들이 어우러진 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공동체다.부부는 지난 2008년 처음 만들어진 국제교류회 김포 한네연(한국네팔국제교류회)에서 각각 회장과 총무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조 회장은 “항상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바쁘게 살아왔는데, 주변에 먹고 살 만하니까 이웃을 피하는 분들을 보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고민한 것이 동기가 됐다”고 고백했다.우연한 기회에 네팔 봉사를 시작했다가 이제 삶의 일부가 됐다는 그는 “큰돈으로 돕기보다는, 작지만 큰마음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어느덧 50여명의 회원이 가족처럼 활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최근 한네연은 고양과 부천 등지에서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한네연은 그동안 국제환경친선연합회인 ‘그린네팔’과 연을 맺고 디딸마을에 어린이보육센터를 지어주고 컴퓨터, 의료품 등을 전달했다. 또 디딸마을 부녀회관 보수, 보건소 신설 등도 지원했다.부부는 디딸마을의 자립·자조를 위해 회원들과 함께 양 100쌍을 선물하고 보육센터 운영지원금을 보내준 적도 있다. 오는 11월 7차 방문에서 양 100쌍을 추가로 전해 줄 배 총무는 “하늘의 별이 쏟아질 것처럼 아름다운 마을에서 아이들과 따뜻한 하룻밤을 보낸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조 회장은 “이웃도 돕지 못하는데 먼 곳에 있는 사람을 먼저 돕는 것은 모순 아니냐는

  • [보통 사람들] 동두천시 명예기자 윤한옥씨

    [보통 사람들] 동두천시 명예기자 윤한옥씨 지면기사

    궂은일 하며 3남매 ‘뒷바라지’ 이제 어엿한 업체대표“소외이웃 목소리 전할것” 포부… 꾸준한 습작 등단도“지친 발걸음으로 달려왔던 얼룩진 지난 삶, 회상할 겨를도 없습니다.”10년 동안 대리운전직에 종사하며 엄마이자 가장으로 숨 가쁘게 살아온 윤한옥(50)씨는 펜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인생 후반부 설계의 담금질이 한창이다.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윤 씨의 어린 시절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화기애애한 다복 가정이 아닌, 가난의 끈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중학생 때 그녀는 여학생들이 꺼리는 신문 배달일을 자청하며 자신에게 향한 생계부담을 스스로 덜어내야 했다. 고교에 진학해서도 그늘은 마침표가 없었다. 집안 형편은 학업 중도 포기를 불러왔고, 어쩔 수 없이 산업체 노동자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그는 집을 떠날 당시 ‘반드시 고교 졸업장을 받아오겠다’는 엄마와의 약속이 항상 뇌리를 스쳤고, 이를 지키기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방송통신고 졸업장을 획득했다. 그의 젊은 시절 행복했다고 느낀 시간은 20대 초 신혼때 였을 것이라고 회상한 그녀는 행복을 잊고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다. 엄마로서 3남매를 뒷바라지 하느라 궂은 식당일도 마다치 않은 윤씨는 급기야 허리디스크 질환까지 앓았다.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던 그녀는 친구의 권유로 소일거리 삼아 대리운전을 시작했고, 이후 어엿한 사업장 대표로 당당하게 우뚝 섰다. 남다른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소중한 자산이었다.직업 특성상 낮과 밤이 바뀌어 살고 있으나 바쁜 일상 속 잠깐의 휴식은 오히려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다. 남들이 잠든 새벽 시간 윤씨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백지에 자주 옮겨 담았다. 꾸준한 습작은 지난 2000년 동두천시 주부백일장 입선의 영예를 안겼고, 마침내 2006년 문학세계에 수필로 등단하는 성과를 거뒀다.바빠야 입에 풀칠한다는 생각으로 거친 숨소리만 세상과 마주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여성단체협의회 총무와 시 명예 기자로도 활약하며 세상과 조화를 이뤄가고 있다.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 [보통 사람들]‘기부문화 정착 연구’ 박사학위 취득 신해진씨

    [보통 사람들]‘기부문화 정착 연구’ 박사학위 취득 신해진씨 지면기사

    세무법인 사무장 바쁜 일상 불구위기가정·아동돕기 선행 앞장서50대후반 세무학 논문 결실 맺어“사람이 희망” 기부단체 세제지원을“‘동행’은 함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25년전 처음 중3의 학생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함께 해온 아이가 지금은 대학 졸업 후 어엿한 사회인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 감사의 눈물과 행복한 미소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신해진(57)씨. 신씨는 세무법인 사무장 일을 하며 바쁜 와중에도 이천시 증포동 발전협의회 회장, 이천가정·성폭력 상담소 운영위원장, 이천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위원,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이천경찰서 전·의경 어머니회 회장과 동원대 자산관리과 교수로도 활동하며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시민들은 신씨를 항상 아름다운 봉사를 실천하는 여성으로 기억하고 있다.그는 한 부모 위기 아동 돕기를 시작으로 청소년, 의경, 위기 가정 돕기 등 항상 지역사회 봉사활동의 중심에 있다.신씨는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위기 가정과 노인들의 아름답고 행복한 생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운영’을 손꼽았다. 이를 완성 시키기 위해 그는 사랑하는 딸의 진로도 사회복지를 택하게 유도하고 본인도 만학의 꿈을 피우고 있다.신씨는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최근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과세제도연구’란 논문으로 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그는 논문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에 확산, ‘사람이 희망’인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사회, 나눔이 넘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본인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개인 및 기부단체의 세제지원정책과 기부단체의 투명 운용으로 건전한 기부문화 정착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를 과제로 삼았다.만학도로서 학업에 대한 열정을 쏟는 것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사회단체장 역임 및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에 많은 봉사와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지역사회발전에 일익을 담당해온 것이 그의 참모습이다 신씨는 “앞으로 전공을 살려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

  • [보통 사람들]쉼없는 ‘재능기부’ 이웅기 의왕초교 교감

    [보통 사람들]쉼없는 ‘재능기부’ 이웅기 의왕초교 교감 지면기사

    2011년부터 의제활동 참여 환경교육 학생들에 자연 소중함 일깨워배움뜰 문해학교 ‘깊은 애정’ 퇴직후엔 학력 인정학교 만드는게 꿈“사회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내가 가진 재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을 뿐입니다.”배움뜰 문해학교 교장, 의왕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왕의제 21) 자연환경분과위원장, 숲 해설가, 웃음치료사, 서예가 등 의왕초등학교 이웅기(59·사진) 교감의 또 다른 직함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20여 년을 넘게 의왕시에 거주해 온 그가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하게 된 것은 2011년 의왕초교로 발령이 나면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고 사회로부터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였다.이 교감은 “나도 사회에 뭔가를 내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르치는 재주를 나누기 위해 의제활동에 참여해 환경교육을 하게 됐다”며 “지구는 우리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어른부터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 숲속학교, 재활용 배움교실, 환경동아리 지도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오전동 주민자치센터를 찾는 그는 잠시나마 교장으로 승진(?)한다. 3년 전 문을 열었던 배움뜰 문해학교는 벌써 3회 졸업생을 배출했을 정도로 지역에서는 자리를 잡고 있다.그럴듯한 입학식부터 학사모까지 입고 참여하는 졸업식 그리고 기수별 동창회까지 결성돼 어르신들에게 어린 시절 가난으로 배우지 못했던 한을 풀어주고 뒤늦게나마 학창시절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그는 “글을 깨우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생활을 체험시켜 드리고 싶어 학사모까지 수소문해 입혀 드렸다”며 “처음엔 부끄러워 본인조차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졸업식엔 가족들이 함께 꽃다발을 선물하면서 축하할 정도로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다”고 전했다.사실 이 교감이 이처럼 배움뜰 문해학교에 애정을 쏟는 이유 중 하나는 30년 넘게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정작 자신의 어머니는 글을 알지 못하는 불편함을 안고 평생을 사셨던 미안함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내 어머니께 못 해드렸

  • [보통 사람들]모바일 앱서비스 ‘싱플’ 김현민 대표

    [보통 사람들]모바일 앱서비스 ‘싱플’ 김현민 대표 지면기사

    모임·캐스트·소개팅결합 혁신 어플하루접속자 2~3만명 훌쩍 폭풍 인기문화산업 후원서비스·사회공헌 ‘꿈’“싱플했어?”모바일 앱 서비스 ‘싱플’의 김현민(33) 대표가 꿈꾸는 궁극의 목표다.우리가 일상에서 ‘커피 마셨어?’하고 묻는 것이 자연스럽듯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신상 앱이 등장해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바일 시장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김 대표.그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용가를 꿈꾸던 청년이 최신 IT 분야에 뛰어들어 나름 선전하고 있다는데 있다.서비스 개시 1년도 채 안 돼 회원 수가 18만 명을 넘어선 것은 물론 하루 접속자만도 2만~3만명이 방문하는 등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사실 이쪽 일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그는 “대학시절 춤의 매력에 빠진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공연계에 발을 들이며 ‘내가 갈 길은 이 길(무용계)이구나’하고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털어놓았다.하지만 소속사에 들어가 직접 안무도 만들고 공연도 하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연습하다 허리를 다쳤는데 병원에서 춤은 무리라고 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다 마음을 다잡고 취업했지만 틀에 갇힌 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는 그는 “우연히 한 지인의 소개로 창업에 동참하게 되면서 IT업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한다.그것이 2012년, 그러나 이후 개인 사정으로 동업자가 떠나고 김 대표 홀로 회사를 맡게 되면서 부담감이 커졌다. 30살에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직원을 이끌고 회사를 경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의 목표와 회사를 이끌어가는 비전만큼은 확실했다. 이에 잘나가는 IT업체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던 프로그램 개발자며 디자이너 등이 그리 많지 않은 연봉임에도 그에게 힘을 실어주며 함께 했고, 이윽고 지난해 9월 각고의 시간 끝에 신개념의 모바일 앱 서비스 ‘싱플’을 시작하게 됐다.싱플은 일명 소셜엔터테인먼트 서비스다. 전 세계 최초로 모임과 캐스트, 소개팅 기능을 결

  • [보통 사람들] 안양서 미용 봉사하는 권나현씨

    [보통 사람들] 안양서 미용 봉사하는 권나현씨 지면기사

    50대후반 나이 아랑곳 주2회 재능기부2013년 미용사회 지부장되며 활동넓혀‘암바봉사단’ 창단 소외층 머리 새단장“한 명이 힘을 보태면 기쁨은 두 배가 되고, 두 명이 힘을 보태면 기쁨은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두 달에 한번 안양4동에 ‘가위를 든 천사’가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만난 권나현(59·여)씨. 최초 연락에서 그는 “봉사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일”이라며 취재를 완곡히 거부했다. 그러다 이정호 안양4동장까지 나서 끈질긴 설득 끝에 연락 3일 만에 만남이 성사됐다.당초 그를 만나기로 한 이유는 봉사에 대한 취재가 목적 이었지만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이내 그가 살아온 인생이 궁금했다.첫 인상이나 목소리는 분명 40대 후반의 중년 여성이었는데 알고 보니 50대 후반에 그것도 손주를 3명이나 둔 노년을 바라보는 여성이었고, 남자도 하기 힘들다는 봉사를 일주일에 두 번씩 하고 있었다.전라북도 순창 출신인 그는 지난 1981년 중매를 통해 남편과 결혼한 뒤 안양으로 이사왔다. 그러다 슬하에 아들 2명을 두고 안양을 제2의 고향이라 여기며 소방공무원이던 남편의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남편의 한 달 월급은 네 식구가 먹고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권 씨는 첫째 자녀가 3살이 채 되기 전에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결혼 10년 차 석수동에 조그맣게나마 개인 미용실을 차렸다. 그러면서 대한미용사회 만안구지부 소속 회원으로 등록돼 봉사의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봉사할 기회는 점차 사라졌다. 단체 특성상 회원 모두 개인사업을 하다 보니 봉사를 위해 모이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는 개인적으로 관내 요양원 및 장애인시설, 홀몸노인 등을 대상으로 미용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20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그러다 지난 2013년 4월 대한미용사회 만안구지부의 지부장에 취임하면서 그는 개인적으로 하던 미용봉사를 체계화해 여럿이 함께하는 봉사단체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결심을 굳힌 그는 지부장

  • [보통 사람들]하남 남한고 졸업생 합창단 ‘시나브로 OB’

    [보통 사람들]하남 남한고 졸업생 합창단 ‘시나브로 OB’ 지면기사

    1986년 재학생 12명 합창단 시작단원 선발못해 전통 끊어질 위기지난해 졸업생 40여명 모임 결성전국대회 은상·첫 정기공연 결실‘추억에서 기적으로…’.학창시절 추억을 다시금 현실로 옮긴 고교 동창생 모임이 있다. 하남시 남한고등학교 출신 동문으로 구성된 시나브로OB합창단이 그 주인공.남한고 합창단은 1986년 재학생 12명으로 시작해 2007년까지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교육시스템 변화 등으로 인해 재학생들의 활동이 수그러들면서 2013년 합창단 회원을 뽑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이 소식을 접한 일부 합창단 졸업생은 같은 해 9월 학교를 방문, 교장과 음악교사에게 합창단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졸업생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다행히 음악을 전공한 동문을 중심으로 학교를 방문, 재학생 합창단과 함께 식사를 하고 연습도 진행하며 과거의 추억과 함께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는 의기투합을 하게된다.결국 이듬해인 2014년 1월 합창단원 출신 졸업생 40여 명으로 구성된 ‘시나브로OB합창단’을 결성했다.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1998년, 2000년에도 OB모임을 꾸려보자며 수차례 만남을 가졌지만, 목표를 세우지 않았던 탓인지 단순 친목모임으로 몇 차례 모였다가 헤어졌다. 그러나 이번 모임은 달랐다. 전국 합창대회에 나가기로 결정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하남문화원 등을 빌려 2~3시간씩 꾸준한 연습을 해왔다.단원들은 하남시 거주자와 인근 서울 강북, 고양 일산, 부천, 평택은 물론 강원도 강릉까지 전국에 흩어져 있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에 참석할 정도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같은 해 9월 ‘제32회 태백전국합창경연대회’에 참가, 은상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지난 7일에는 하남문화예술회관 검단홀에서 OB합창단은 물론 재학생들과 함께하는 제1회 정기공연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정기공연에서는 전국합창경연대회 은상 수상곡인 ‘귀천’과 ‘뮤지컬 메들리’를 포함 남성·여성 중창 공연, 소프라노 독창 등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이연구(45)

  • [보통 사람들]의왕시 부곡동 부곡장학회

    [보통 사람들]의왕시 부곡동 부곡장학회 지면기사

    낙후된 교육환경 개선 주민한뜻모금활동·1인1계좌로 학생지원복지사각 해법 지역발전 디딤돌“의왕시에서 가장 낙후된 부곡의 아이들을 훌륭하게 잘 길러보자는 작은 뜻이 하나둘씩 모여 장학회를 출범하게 됐습니다.”대부분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부곡동은 의왕에서도 가장 오래된 마을 중의 한 곳으로 정(情)을 느낄 수 있는 자연부락의 특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러나 그만큼 지역 개발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그중에서도 진학을 위해 안양시 평촌은 물론, 인근 고천동이나 오전동으로 이주할 정도로 교육문제는 대표적인 고민거리였다.5년 전 ‘낙후된 교육환경을 바꿔 기피지역을 벗어나 보자’는 뜻이 모여 마을 장학회 설립이 추진됐고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1억원의 장학기금이 조성됐고 마을기금 2억원과 의왕신협 출연금 2억원이 더해져 2011년 12월 15일 부곡장학회가 출범하게 됐다.전세훈 부곡장학회 이사장은 “부곡은 도심 속의 오지나 마찬가지였다”며 “부곡지역 초·중학교로 전입해 온 교사들조차도 근무기간만 끝나면 바로 전출을 가버리곤 했다”고 회고했다.대부분 향토장학금이 지자체와 기업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순수한 마을장학회’인 부곡장학회는 출연금 이자와 1일 찻집 등 모금활동, 1인 1계좌 장학회원들의 후원금 등으로 장학금을 마련, 매년 7천만~8천만원 가량을 부곡지역 초·중·고교생들에게 지원하고 있다.순수한 마을장학회인 만큼 장학금은 단순히 성적으로만 지급하지 않는다. 우선 각 학교의 인재육성프로그램에 인재육성장학금을 지원하고 덕성초·부곡초, 부곡중, 의왕고 등 각 학교의 1반마다 1명씩 장학금을 지급하는 성적향상장학금, 문화·예술·체육 방면의 특기자에 주는 소질장학금 이외에도 내일로 여행장학금과 우수교사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추천장학금제도를 신설해 교육 사각지대를 없애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전 이사장은 “아이들이 꿈을 실현하는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데 부곡장학회가 작은 밑거름이 되는 등 지역 교육발전의 디딤돌 역할을 하겠다”고

  • [보통 사람들]'꿈나무 조련사' 유은욱 조양중 교사

    [보통 사람들]'꿈나무 조련사' 유은욱 조양중 교사 지면기사

    "꿈을 잃은 아이들에게 볼링으로 꿈을 되찾아 주고 싶습니다."양주시 광적면 조양중학교에서 13년째 체육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유은욱(44)교사. 유교사는 8년전부터는 정규수업 외에 학교에서 볼링부를 이끌고 있다. 그는 쑥스러운 듯 한사코 손사래를 치지만 의정부·양주지역 체육인들은 그를 가리켜 '볼링 꿈나무 조련사'라고 부른다. 그를 거쳐간 제자 중에는 전국소년체육대회 메달리스트들이 수두룩하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동안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메달리스트들이 쏟아졌다.하지만 유교사가 아이들에게 볼링을 가르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유교사는 "학교 부임후 말썽을 일으키는 소위 '문제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아이들에게 볼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실제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당하던 아이들이 유교사의 손에 이끌려 볼링을 배우다 뒤늦게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기도 했다.이처럼 길거리를 방황하던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온 것은 유교사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부모를 만나 설득하고 이들이 어울려 다니는 곳을 찾아 전국을 헤매기도 했다. 서로 속내를 털어놓다 부둥켜 안고 울기도 여러번이다. 결국 아이들은 볼링을 시작하면서 자신도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꿈을 갖게 됐다.문제아에서 당당히 볼링 선수로 변신한 아이들은 이후 고교, 대학에 진학하고서도 스승인 유교사를 찾아 감사를 표시하고 때로 조언을 구하고 있다. 이들은 유교사를 '아버지 같은 선생님'이라고 기억했다. 유교사의 이같은 노력이 알려지면서 그는 지난 2011년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오늘도 그는 도움을 청하는 한 학생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달려나갔다. 그의 전화는 아이들에게 24시간 열려 있었다. 유교사는 "방황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되도록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려 한다"며 "탈선으로 학교를 그만둘 뻔 했던 한 제자가 지금도 가끔 찾아와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볼링으로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할 때

  • [보통 사람들]'봉사 명예의 전당' 오른 오산 오영일씨

    [보통 사람들]'봉사 명예의 전당' 오른 오산 오영일씨 지면기사

    "특별할게 없는 것 같네요. 그저 자기 만족인것 같습니다. 봉사를 하면 마음이 더욱 기뻐지고 만족해 하는 것…. 그런게 아닐까 하네요."처음 대화를 나눠 본 오영일(47)씨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다. 튀지도 않고 나서지도 않는다. 그저 본인이 좋아서, 기쁜 마음에 봉사를 즐겼다고 한다. 이런 평범한 오씨의 겸손한 봉사활동을 들어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수원에서 보험회사를 다니고 있는 오씨는 봉사활동 시간이 따로 없다. 그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언제 어디든 달려 나간다. 오씨의 개인 차량에는 항상 무전기가 비치돼 있다. 오산시에서 재난통신지원단까지 맡고 있는 오씨는 항상 긴장한 상태로 재난 또는 사건·사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아닌 평범한 오씨의 일상이다.충북 단양이 고향인 그는 지난 1988년 오산시에 첫 뿌리를 내렸다. 오산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났고 성인이 된 딸 둘이나 키웠다. 그래서 그는 오산이 제2의 고향이 아닌 실질적인 고향이라고 스스로 말한다.그가 틈틈이 하는 봉사활동은 여러가지다. 오산 초평동 민간기동순찰대원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동네 야간순찰을 돈다. 바르게살기 초평동위원장을 맡고 있고, 대한적십자 봉사단 소속으로 수시로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아침 저녁에는 등하굣길 교통정리와 심야시간 부녀자들을 귀가시켜 주는 것, 그리고 위기청소년 발견시 수원청소년 쉼터로의 인계 등도 오씨의 활동중 하나다. 불우이웃을 위해 구호미도 나르고 도배까지 해준다. 최근에는 초평동에서 운영하고 있는 썰매장까지 관리하고 있다. 모두 무보수 봉사활동이다.오씨의 영향을 받았는지 부인과 아이들도 봉사에 솔선수범이다. 그는 "얼마전 오산시자원봉사센터에서 연락이 왔는데 난데 없이 미안하다고 하더라"며 "이유가 봉사시간이 5천시간이 넘으면 봉사관련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는데 벌써 7천시간이 지났다는 내용이었다. 굳이 시간을 재면서 봉사활동을 벌인 것도 아닌데 그런 사실을 알고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마지막으로 그는 "곽상욱 오산시장이 나 뿐만 아니라 오산시에서 봉

  • [보통 사람들]하남푸드뱅크 자원봉사 주효선 할머니

    [보통 사람들]하남푸드뱅크 자원봉사 주효선 할머니 지면기사

    어렸을 적 고아원을 운영하시던 작은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짐나르고 청소같은 허드렛일을 좋아했던 여고생.어느덧 60여년의 시간이 흘러 70대 할머니가 됐지만 그 따뜻했던 소녀 감성은 여전히 남아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되고 있다.주인공은 하남시푸드뱅크 자원봉사자 주효선(72) 할머니.서울에서 미용실·꽃가게 등을 운영했지만 가정사를 이유로 16년전 하남시로 이사를 오게 된 주 할머니.하남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예상했던 대로 '하남시자원봉사센터'였다. 미용자격증이 있는데 봉사를 하고 싶다는 주 할머니 요청에 센터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광주 '나눔의 집' 미용봉사를 주선했다. 3년여간 꾸준히 미용봉사를 해왔으나 뜻하지 않게 백내장이 발병, 미용봉사를 할 수 없게 됐다.때마침 이 시기 하남에서 처음으로 유통기업 및 개인 등으로부터 여유 식품을 기부받아 결식아동, 독거노인, 재가 장애인 등에게 지원하는 하남시푸드뱅크가 문을 열었다.주저할 것도 없이 푸드뱅크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푸드뱅크 설립초기 차량 등 지원이 부족해 월 1회 미사리 버섯마을과 풍산동 저소득층 17가구에 직접 자전거를 타고 음식 배달은 물론 청소에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말동무도 돼줬다.많게는 20㎏이 훌쩍 넘는 식품을 자전거를 이용해 5년 가까이 혼자 배달했지만 힘들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대한적십자사에서 진행하는 요양봉사수업에 참여,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다.올해부터는 몸이 예전같지 않아 직접 식품을 배달하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짬짬이 시간내서 자신이 식품배달을 했던 가정을 방문,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돌본다. 또 소싯적 미용실력을 뽐내기도 한다."내일 누구를 만날 생각을 하면 하루의 피로같은 건 없다"며 "시집간 딸들도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에 크게 뭐라하지는 않지만, 가끔 집에 와서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마라'는 핀잔아닌 핀잔을 하기도 한다"며 인자한 미소를 내비치는 주 할머니 덕에 하남의 사랑 온도는 오늘도 뜨겁다. 하남/최규원기

  • [보통 사람들]이정아 물푸레공동체 대표

    [보통 사람들]이정아 물푸레공동체 대표 지면기사

    "청소년 대안공간인 '청소년 드림충전소 Plug In'을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정신에 의지해 곧 오픈합니다."부천엔 요즘 부쩍 '청개구리'가 눈에 띈다. 늦은 밤 혼자서 혹은 떼를 지어 헤매고 다니는 아이들이 자주 찾는 명소(?)기 때문이다.부쩍 외투깃을 곧추세우게 만드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을미년 새해 벽두부터 '청개구리'는 쉴틈 없이 바쁘다. 지난 2010년 거리 청소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부천역에서 시작된 '청개구리'는 청소년과의 소통의 매개로 '밥'을 선택했다. 부천지역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고 있는 '청개구리'를 처음 제안한 이는 바로 '물푸레공동체' 이정아 대표.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선 정부와 공공예산에 의존하거나 제도의 틀안에 갇혀선 불가능하다"는 게 그녀의 소신이다. 때문에 청개구리는 사회복지시설도 법인형태의 단체도 아니다. 오직 시민들의 자발적인 지지와 참여로 운영되는 순수한 NGO다. 그 성과는 부천역에 이어 고강동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포차 '청개구리'가 뜨고, 도당동 주민들은 매주마다 '수요일 가든파티'로 현실화 했다. 올해초엔 약대동에서 '꼽이 청소년 심야식당'이 문을 연다. 이 대표는 "선한 의식을 갖고 있는 부천시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부천 전역에서 청개구리를 볼 날이 머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지난 2011년 '강희대부천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대표는 요즘 새로운 일을 벌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녀는 청소년 상설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공동체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청소년 대안공간인 '청소년 드림충전소 Plug In'을 순수하게 시민들의 힘만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자 이 대표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 주민이, 즉 지성을 갖춘 전문인들이 먼저 나서야만 사회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는 청소년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먼저 나선 것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겸손해 했다.그는 마지막으로 "공공기관의 사회복지만으로

  • [보통 사람들]파지팔아 봉사의 삶 원용욱씨

    [보통 사람들]파지팔아 봉사의 삶 원용욱씨 지면기사

    "내 몸 건강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을 갖고 생활하니 하루가 늘 즐겁습니다."초등학교 배움터지킴이로 활동하면서 어린이들의 안전을 돌보고 있는 공무원 출신의 70대 할아버지가 있다. 이 할아버지는 이 일이 끝나면 자신이 정년 퇴직한 광명시청 각 부서와 시청 주변 사무실 등을 돌면서 파지를 수거한다. 파지를 팔아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다. 봉사활동을 일과처럼 기쁜 마음으로 실천해 오고 있는 화제의 주인공은 원용욱(73·광명시 철산3동)씨다.지난 1983년에 광명시청에 청원경찰로 입사한 뒤 17년간을 근무했고 2000년 3월에 정년 퇴직했다. 이후 6년간 광명시 산불감시원으로도 근무하는 등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 오고 있다."정년 퇴직에 이어 70이 넘은 지금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고,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원 할아버지는 "내 몸이 허락할 때까지는 열심히 봉사활동을 펼쳐서 이웃과 함께 이 행복과 축복을 나누겠다"고 강조한다.2010년 9월에 광명시 철산3동 광성초등학교 배움터지킴이로 위촉된 이후 5년째 이 일을 계속 해오고 있다. 배움터지킴이 근무시간이 끝나면 광명시청 각 부서와 시청 주변 사무실을 들러 신문이나 책자 등 파지를 모은다. 원 할아버지가 하루에 모으는 파지는 대략 100㎏이다. 광명시청 3층 계단을 몇번씩 오르내리고,시청 주변 사무실을 오토바이로 몇번씩 오가는 수고를 거듭하고 손에 쥐는 돈은 고작 7천원 정도에 불과하다.원 할아버지는 이 돈을 차곡차곡 모아 지난 2011년에는 광명시인재육성재단에 100만원을, 2012년에는 광명희망나기운동본부에 100만원을 각각 기부했다."2~3년전에 1㎏당 180원 하던 파지 값이 지금은 70원 정도 밖에는 안돼서 지난해에는 성금 100만원을 기부치 못했고, 올해도 사정이 비슷해 안타깝다"는 원 할아버지는 "내년 2~3월쯤에는 100만원을 또 기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광명/이귀덕기자▲ 원용욱 할아버지가 광명시청 인근 한 사무실에서 파지를 모으며 미소짓고 있다.

  • [보통 사람들]기업 임원 출신 서대운 가평군 주무관

    [보통 사람들]기업 임원 출신 서대운 가평군 주무관 지면기사

    몇해 전 50대 중년이 가평군에 9급 공무원으로 임용돼 화제가 됐다.임용 당시 나이 53세, 통역장교 출신, 외국항공사 27년 근무, 상무이사 출신 등 특이한 경력의 이 새내기는 이내 주목을 끌었다.주목을 끈 주인공은 바로 가평군청 총무과 서대운(57) 주무관.당시 서 주무관을 보는 시각은 다양했다. 사기업 임원 출신, 50세가 넘은 나이 등 여느 신입 공무원의 이력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다소 경직됐다고 일컬어지는 공무원 조직문화에 잘 적응을 할 수 있을까? 동료들은 반신반의했다.하지만 4년여가 지난 지금 그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동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이우인 총무과장은 "서 주무관은 늦은 나이에 공직에 입문했지만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으로 매사에 열정을 보이며 공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면서 "그는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냄새 나는 동료"라며 칭찬에 침이 마른다.서 주무관은 "출근을 위해 처음 찾은 가평은 온통 안개에 뒤덮여 있어 마치 내가 겪게 될 미지의 공직생활을 연상케 했다"며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제2의 인생에 대한 도전 의지로 충만돼 있었다"며 첫 출근길을 회상했다.그는 첫 업무였던 가평·호주 스트라드필드시와의 자매결연 추진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면서 힘을 보태 동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그후로도 공직사회 적응은 물론 그가 담당하고 있는 국내외 교류 업무 등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그는 "100세 인생이란 말이 있지 않나. 이제는 3번의 직업은 바꾸며 살아야 한다"며 "제2의 직업으로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사기업은 경험했으니 이번에는 공익을 추구하는 직업을 가져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수개월을 시험공부에 매진해 마침내 9급 공무원 공채에 합격했다"며 공무원 지원 배경을 설명했다. 또 그는 공무원 퇴직후 제3의 직업으로 자메이카, 파나마 등 카리브해안에 가서 70세까지 수출입업을 할 계획이란다. 끝으로 그는 "70세 이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내가 경험한 세상을 책으로 쓸 예정"이라며 "건강이 허락한다면 80세 정도에 신

  • [보통 사람들]장애 딛고 판소리꾼 도전 손은성양

    [보통 사람들]장애 딛고 판소리꾼 도전 손은성양 지면기사

    "선생님들이 가르친 것에 보답하기 위해 꼭 명창이 될래요."신체적 장애를 딛고 일반인도 어렵다는 판소리에 도전하는 어린이 소리꾼이 평택에 있어 화제다.주인공은 평택 죽백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손은성(12·사진 왼쪽)양. 선천적으로 지체 장애를 안고 태어난 손양은 다리와 손이 불편해 타인의 도움 없이는 간단한 외출도 어렵다. 특히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뿐더러 발음도 부정확해 판소리는커녕 일반 노래도 부르기 어려운 악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하지만 손양은 판소리에 도전했다. 그리고 판소리계에 입문한 지 불과 1년반 만인 지난달 대전에서 열린 '제7회 전국 장애학생 음악콩쿠르'에서 '흥부전'의 한 구절인 '화초장 타령'을 선보인 결과, 초등부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얻었다. 개인과 단체를 합쳐 300여명의 참가자들과의 경쟁에서 발군의 기량으로 대상을 거머쥔 것이다.손양은 "처음 서는 무대인 데다가 항상 옆에서 도움을 주던 음악 선생님도 계시질 않아 많이 긴장되고 떨렸지만 평소 연습했던 대로만 하자는 어머니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판소리를 불렀더니 대상까지 받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손양이 판소리에 입문하게 된 건 손양의 음악적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죽백초 음악선생님인 이재명(48) 교사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은성이가 4학년 시절 제가 가르치는 음악시간에 민요에 많은 관심을 보여 처음엔 소금과 장구를 가르쳤는데 몸이 불편한지라 실력이 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우연히 은성이가 판소리를 따라 부르는데 '아 소리만큼은 되겠구나' 싶은 생각에 판소리를 배워보라고 권유하게 됐죠"라고 설명했다.이 때부터 손양은 죽백초 판소리 동아리인 '얼씨구 좋다'에 정식으로 가입하고, 이 교사의 지도하에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손양은 꾸준한 노력으로 태생적 한계였던 부정확한 발음과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기에 늘 부족했던 호흡량도 극복해냄은 물론 보행보조기를 짚고 일어서서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손양은 앞으로 명창이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

  • [보통 사람들]'안전 유모차'로 장관상 받은 가천대 학생들

    [보통 사람들]'안전 유모차'로 장관상 받은 가천대 학생들 지면기사

    "우리 사회에 던져진 '안전'이라는 이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던 올 한해, 대학생 5명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안전 유모차'를 개발해 관련 업계와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화제의 주인공은 가천대학교 박다윤(25·여)·박태봉(25)·정진호(26)·정재현(27)·강인(26)씨 등 5명으로 최근 열린 2014 창의적 종합설계 경진대회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평소 알고 지내던 이들은 안전 사고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하다가 '스마트 제어기를 탑재한 전동안전유모차'를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박다윤씨는 "안전사고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사고 사례를 찾다보니 유모차를 놓쳐서 발생한 사고를 접하게 됐다"며 "전공인 기계공학을 접목해 안전 유모차를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이들은 센서와 배터리, 제어 모터 등 학교 장비를 사용해 사람이 밀지 않으면 언덕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 유모차를 만들었다. 또 오르막길은 유모차가 인식해 동력을 전달하고 내리막에서는 추진력을 뒤로 줘 과도하게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막도록 설계했다. 이 과정에 발생한 어려움은 학교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들이 개발한 안전 유모차는 현재 특허를 기다리고 있으며 전동카트 업계에서 이들의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박씨는 "10개월 가까이 제품 개발에 노력을 하다보니 꿈을 찾게 됐다"며 "앞으로 연구개발직으로 진출해 더 나은 제품으로 사용자의 편의는 물론 안전까지 책임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성남/김규식·김성주기자▲ 언덕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 안전유모차를 개발해 '2014 창의적 종합설계 경진대회'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가천대 학생들.

  • [보통 사람들]'명예의 전당' 이름올린 시흥 이순자씨

    [보통 사람들]'명예의 전당' 이름올린 시흥 이순자씨 지면기사

    1만1천325시간.이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이 많은 시간을 헌신한 이순자(54·여)씨의 귀중한 시간이다.하루 24시간을 나눠 1년이 넘는 시간을 남들을 위해 썼다. 인생을 살면서 남을 위해 정기적으로 봉사하지 못하는 일반인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시간이다. 이씨의 처음 봉사활동 시작은 199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자농협고향주부모임에 가입한 이씨는 독거어르신 돌보미와 가사지원 활동을 해왔다. 여기에 농산물 직거래 판매 지원활동도 이씨의 몫이다. 또 자녀들의 학창시절 알게 된 학부모들과 우정회를 결성, 2000년 4월부터 현재까지 홀몸노인 급식 및 생필품 지원 활동까지 하고 있다. 시흥시 자율방범대 정죽지대에서는 봉사국장을 역임하며 10년 넘게 범죄예방과 선도활동을 하고 있다.또한 대한적십자사와는 2005년 연을 맺었다. 현재 시흥지구협의회 재난분과장이라는 직책으로 지역행사 도우미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주말이면 남편과 아들, 딸 가족 모두 시설 봉사를 다니기도 한다.이씨의 봉사활동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이뤄진다. 이 같은 많은 활동에 힘들지는 않냐는 질문에 이씨는 "즐겁다"고 말한다.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봉사 시작 1년 동안은 적응하기 쉽지 않으나 이 시기만 잘 극복하면 모든 사람이 봉사활동하는 데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사회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봉사활동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고 했다. 주위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려운 사람,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씨의 견해다. "경제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몸으로 실천하는 봉사도 봉사"라고 말하는 그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 분들을 돕고 싶어 지금까지 봉사를 하고 있다"며 "사회는 나만의 것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 하고 함께 누리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이 없는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이씨는 1만1천325시간 봉사활동의 공로로 2014년 11월 시흥시 명예의 전당에

  • [보통 사람들]'경찰관 마술사' 의왕署 김이문 경위

    [보통 사람들]'경찰관 마술사' 의왕署 김이문 경위 지면기사

    "어머니, 아버지 지금부터 재미있는 마술을 하니 잘 보세요!"처음 시큰둥한 표정을 짓던 20여명의 의왕시 왕곡동 '사랑의 양로원' 어르신들은 경찰 정복을 입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경찰관 마술사의 손에 쥐여 있던 마술지팡이가 꽃으로 변하자 다들 신기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빈 종이가방에서 작은 종이 박스가 하나씩 하나씩 나올 때마다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라이터 마술과 공책 마술, 꽃 색깔 마술 등 20여분의 마술이 끝나자 어르신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고 마지막으로 다함께 트로트를 부르며 "곧 다시 찾아와 마술공연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이날 마술쇼를 마무리했다.경찰관 마술사인 의왕경찰서 왕곡파출소 김이문(56·경위) 순찰팀장은 이미 의왕과 군포지역의 유명인사에 속한다. 그가 단순히 마술을 하는 경찰관이 아니라 학교폭력 예방강의 및 노인범죄 예방강의에 마술을 접목시키고 나아가 홀몸노인과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마술로 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기 때문이다.김 팀장은 "10여년 전 겨울 가난하고 고된 삶을 사셨던 부모님 생각이 나서 군포시 노인복지회관을 찾아 잠깐이나마 웃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 마술을 시작했다"며 "요즘은 의왕의 어절씨구민요봉사단과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보이스피싱 등 범죄예방 교육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사실 김 팀장의 마술은 어린 청소년들이 딱딱하게 생각하고 바로 싫증을 내는 학교폭력 예방 강의에 마술을 접목시키면서 효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하지만 노인범죄 예방강의와 홀몸노인 생신 파티, 소년소녀가장 초청 공연 등 작지만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웃음을 전하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낀 김 팀장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홀몸노인들과 장애인 지킴이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끝으로 그는 "건강보조식품을 고가로 판매하는 등 여전히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화려한 마술쇼는 아니지만 노인과 장애인들이 범죄 피해를 입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맞춤형 범죄예방 교실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의왕

  • [보통 사람들]이준경 남양주시 사회복지사

    [보통 사람들]이준경 남양주시 사회복지사 지면기사

    "어르신들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불도저처럼 일해야죠!"남양주시동부노인복지관에는 근무시간 내내 종횡무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회복지사 이준경(31·여) 팀장이 있어 늘 활기가 넘친다. 복지관 근무 7년차인 이 팀장은 현재 경로식당, 자원봉사 등 지역내 각종 노인 관련 복지사업들을 도맡고 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지만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복지 분야에 뛰어들었고, 현재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이 팀장은 "부모님이 바쁘셔서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다"며 "이런 부분이 계기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고 밝혔다.여성스러운 외모와 다르게 그의 별명은 '불도저'다. 일할 때만큼은 워낙 열정적으로 일하는 탓에 주위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만큼 열심히 뛰어다니기로 유명한 그를 향해 직장 동료들은 물론 복지관 어르신들도 '여장군'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이 팀장은 "사회복지사들은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부분이 일할 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때론 확실하게 밀어붙이는 사람도 있어야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지 않겠느냐"며 환하게 웃었다.그는 사회복지사의 열악한 근무 여건과 현재 복지 운영의 모순점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도 드러냈다. 이 팀장은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전문가가 아닌 자원봉사자 개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한데다, 노동량에 비해 처우는 턱없이 부족해 현실적 어려움이 너무나 크다"며 "이 부분이 개선돼야 더 좋은 사회복지사가 배출되고, 양질의 복지실현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또 "최근 복지마저 선거나 정치에 개입돼 우왕좌왕하는 경향이 있는데,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지 말고 장기적 관점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의 최종 목표는 복지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현재의 미진한 제도나 정책 등을 개선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이 팀장은 "지금까지 7년간의 현장 업무는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앞으로는 사회복지사들의 더 나은 근무

  • [보통 사람들]예정숙 수원 상광교 부녀회장

    [보통 사람들]예정숙 수원 상광교 부녀회장 지면기사

    "봉사하는 그 순간만큼은 짜릿합니다."고희를 넘은 나이에도 17살 기억의 편린을 떠올리며 소녀같은 미소를 띠던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상광교 부녀회장 예정숙(76·여)씨의 말이다.예 회장에게 봉사는 인생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예 회장은 꽃다운 나이인 10대부터 화성 향남읍 발안리에 있는 한 교회 학교 선생(반사)으로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여느 마을처럼 농사일에 바빴던 마을에서 그는 부모 역할을 자처해 왔다. 아이들을 삼삼오오 모아 공부를 가르치고, 산이며 계곡이며 자연을 벗삼으며 아이들의 친구가 됐다.그러던 어느 날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걸어가는 네살배기 아이를 향해 소가 돌진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예 회장은 놀란 나머지 버선발로 달려 나와 아이를 품에 앉고 논밭을 뒹굴었다.하마터면 아이도, 예 회장도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엔 온통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그맘때부터 교회 봉사단체인 '농촌 4H'를 시작으로 상광교 부녀회장에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까지 그의 봉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수원으로 시집 와 가사에 양계, 양돈 등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승용차나 버스가 귀했던 시절 장터까지 수십개에 달하는 계란을 직접 날라야 하는 노동의 고됨도 그의 열정을 식게 할 순 없었다.형편이 부족할 땐 부족한 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만큼 봉사에 대한 그의 손은 무한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독거노인 5세대에 전달해 온 밑반찬의 온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지난달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동안 진행된 마을 꾸미기 사업의 일환인 '상광교 아름다운 광교산 가을장날'에서도 예 회장을 비롯한 부녀회원들은 수익금인 사랑의 모금함을 동사무소에 전달했다.마지막으로 그는 "어르신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며 "거창한 의미에서 봉사라기 보단 무조건적으로 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 뿐이다"고 미소지었다. /조윤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