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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복지
[새얼아침대화, 장덕진 서울대 교수 '새 사회모델' 강연]"아이 낳으면 5천만원 지급… 획기적 출산 장려책 펼쳐야" 지면기사
한국 고령화 속도 세계에서 최고노인 부양률 낮추기 위해서 필요가족·노동문제에 복지재원 투입을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할 최대 이슈로 떠오른 '고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아이 1명을 낳을 때마다 5천만 원을 지원하는 획기적인 출산 장려정책을 펴야 한다는 전문가 주장이 나왔다.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4일 오전 7시 쉐라톤그랜드인천호텔에서 열린 제381회 새얼아침대화에 강사로 나와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모델을 향하여'란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장덕진 교수는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소멸하고 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면서 아이 1명을 낳으면 5천만 원이라도 지원해서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 1명에 5천만 원씩 지원한다고 하면, 당장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왜 내 세금을 거기에 쓰느냐'고 반대하겠지만, 그 아이가 평생 낼 세금과 연금 등을 합치면 5천만 원을 훨씬 초과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의 40대 계층이 80대가 되는 40년 뒤에는 지금 낳은 아이들이 40대가 되어 그 80대들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아이를 많이 낳는 게 40년 뒤 80대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방도가 된다는 얘기다.장덕진 교수는 앞으로 5년 정도만 더 지나도 일반인들이 길거리에서 노령화의 문제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바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노인과 청년의 비율이 엇비슷해질 것이란 얘기다. 이는 곧 1명이 몇 명을 부양하는지를 따지는 부양률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런 추세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세대 갈등을 넘어 세대 간 전쟁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도 했다.장 교수는 '양극화'와 비슷한 개념의 '이중화' 문제를 정점에 놓고, '고령화'와 '현행 민주주의' 문제 3가지가 서로 얽혀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가 먼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출발하는 사회모델의 전환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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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 오르는 '인천 교육 성적표' 격려의 자리 지면기사
지난 14일 쉐라톤그랜드인천호텔에서 열린 제381회 새얼아침대화에서는 인천지역 각 고등학교 교장과 인천시교육청 간부들을 초청해 격려하는 시간이 마련됐다.행사를 주최한 새얼문화재단 측은 장덕진 서울대 교수의 강연이 시작되기 전 참석한 300여 명의 청중 앞에 19명의 인천지역 고등학교 교장 선생과 함께 박융수 인천시교육청 교육감 권한대행을 비롯한 11명의 간부진을 일일이 소개하고 격려했다. 새얼문화재단은 매년 2월 새얼아침대화 시간에 인천지역 교육을 위해 애쓰는 교육가족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마련해 왔다.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요즘 인천의 교육수준을 말할 때 예전과는 달리 타 지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지 않는다"면서 "인천 교육수준이 높아진 것은 여기 나와 계신 교장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노력하신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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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뉴스분석-6·13 키워드]지방선거 이슈 블랙홀 '남북 화해 무드' 지면기사
이산가족 상봉·정상회담 與 유리보수성향 강화·옹진도 영향 클 듯북미 갈등 등 돌발 상황 땐 '반전''남북 화해 무드'가 6·13 지방선거의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일행이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했다. 김여정 특사는 또 11일에는 문 대통령과 서울에서 북측의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했다. 김여정 특사와 문재인 대통령은 김 특사의 방한 일정 사흘 내내 만났다. 이번 김여정 특사의 방한으로 조성된 남북 화해 무드는 지방선거를 관통하면서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전후에는 이산가족 상봉 등의 행사가 열릴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 방북도 점칠 수가 있다.지방선거를 앞두고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선거판을 뒤흔드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산가족 상봉은 보수성향이 강한 노년층의 정서를 자극해 선거에서 진보 정당에 표를 던지게 할 수도 있는 최루성 강한 드라마다. 남북 정상회담 역시 마찬가지로 여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가 있다.문제는 그 성사 가능성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여동생을 특사로 보냈다는 점에서 남북 화해 무드의 지속성을 긍정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역사적인 '백두혈통'의 청와대 방문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북측이 여건을 만들어 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조만간 북미대화의 장도 마련될 수 있다.남북의 화해 분위기는 보수 성향의 표가 많은 강화도와 옹진군 지역 등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던 여권 후보에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이는 인천시장 선거나 인천시교육감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수 성향 지역과 노령층의 지지에 기대를 걸고 있는 자유한국당 소속 후보들에게 남북 화해 무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슈임에 틀림없다.그러나 남북 관계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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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면기사
지방선거 앞두고 후보자 서로 잘났다고 야단국민위해 결정적 순간 희생할 각오 돼 있는지"정치판에 방해"… 떠나려는자 오히려 잡아야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영국인들의 가슴을 적셔 온 희생정신의 상징 언어다. 주인공은 로렌스 티투스 오츠(1880~1912). 오츠는 영국인들의 우상이 된 로버트 스콧(1868~1912)의 남극 탐험대원이었다. 로버트 스콧 탐험대는 비록 노르웨이 출신의 로알드 아문센보다 1개월 정도 늦게 남극 극점에 도달하는 바람에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영국인들에게는 이미 국가적 영웅이었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는 아문센이 가져갔지만 국민적 위상에서는 스콧이 뒤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귀환하지 못하고 최후를 맞은 스콧 탐험대의 '영국 신사도적 마지막 모습'에 있었다. 미국도 1950년대 이후 남극 극점에 기지를 구축해 놓고 있는데, 그 이름이 아문센-스콧 기지다.스콧 탐험대에서 말 관리를 맡았던 오츠는 남극점 도달 이후 귀환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동료들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강력한 폭풍설에 휘말려 대원 모두가 위태로웠다. 오츠는 스콧 탐험대의 귀환에 자신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희생해야 한다고 작정했다. 탐험 대장인 스콧에게 말했다. "잠시 바깥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츠의 이 마지막 말은 스콧의 일기에 적혀 있었기에 세상에 알려졌다. 스콧 일행도 끝내 귀환하지 못하고 남극에서 생을 마쳤다. 안전장소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였다.영국 국민들은 오츠가 스스로 탐험대에서 벗어나 목숨을 버림으로써 탐험대를 살리려 한 그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동했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 말에 담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조심스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틀렸으니 먼저들 가세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잠시 바깥에 나갔다 올 터인데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 기다리지 말고 떠나라는 말이었다. 코끝이 찡하다. 우리는 어느 조직에 있든지 간에,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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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국가가 인천에 진 빚 지면기사
'만들어진 간첩' 최종길 교수 투신자살 사건'동일방직 똥물 투척사건' 중정의 조작 탄압이제는 '평화도시'로 지정 지원하면 어떨까6년제 인천중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제물포고등학교는 간첩 양성소로 취급받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 초반이 그랬다. 당시엔 유신체제를 떠받치기 위한 간첩 조작 사건이 횡행했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던 중앙정보부가 주도했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사건이다. 최종길 교수는 독일에 유학한 민법 전공자였는데, 1973년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의문사 1호로 불렸다. 중정은 조사받던 중 간첩죄를 실토하고 7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동생이 당시 중정 요원이었다.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중정 요원의 가족이 간첩이라니. 인천중학교를 나왔다는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인천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최종길 교수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독일 유학을 갔다. 최 교수의 인천중학 동기동창 중에 이재원이란 인물이 있었다. 유럽 거점 간첩 총책으로 중정이 몰던 사람이었다. 덕적도 출신인 그의 동생 이재문도 제물포고를 나왔는데 형제 간첩으로 중정은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파리 유학생 출신의 노봉유란 인물도 중정은 유럽 간첩단의 주요 조직책으로 그려넣고 있었다. 그 노봉유 역시 인천중학을 나왔다. 중정은 친동생이 중정 요원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종길 교수가 인천중 출신이란 이유로 간첩으로 둔갑시켰다. 같은 학교 동창생들이어서 그럴듯한 그림이 나온다고 중정은 생각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중정의 간첩 조작 사건이었고, 그 과정에서 고문에 의해 최 교수는 사망한 거였다.작년에 나온 책 '만들어진 간첩'은 최종길 교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최종길 교수의 동생이자 중정 요원이기도 했던 최종선은 사건 직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동료 요원들의 감시를 피해 당시 상황을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정신병원이라고 판단해서였다. 이 기록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만들어진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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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아폴로 하이웨이의 귀환 지면기사
경인고속도로, 아폴로 11호 달 착륙한 날 '개통'50년 달려온 도로 일반도로로 전환 인천시 관리엄마품 같은 仁川에 돌아왔으니 탈바꿈 시켜야경인고속도로가 일반도로로 전환하는 12월 1일부터 자동차 제한 속도가 100㎞에서 80~60㎞로 낮아진다는 걸 알리는 현수막이 얼마 전부터 인천 시내 곳곳에 나붙었다. 출퇴근 시간마다 교통체증에 시달리면서도 통행료를 꼬박꼬박 물어야 했던 경인고속도로가 이제 인천 시내 도로가 된다는 거다. 개통한 지 벌써 50년이 다 되었다. 1973년에 나온 '인천시사'를 펼쳤다. 1969년 7월 21일(시사에는 20일로 돼 있음) 개통했는데 이날은 마침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이 달에 착륙한 날이었다. 그리하여 경인고속도로는 미국인들의 달 착륙을 기념하여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아폴로 하이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해 8월에는 인천항으로 들어온 아폴로 11호 모형이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아폴로 하이웨이'를 거쳐 서울로 가서 퍼레이드를 벌였다는 신문기사도 있다. 대한민국의 경인고속도로가 미국의 도로가 된 듯한 느낌이다.세계 최강을 지향하던 미국은 우주 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선두를 빼앗긴 뒤 10년여 만에야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으로 만회할 수가 있었다. 미국인들이 기뻐해야 할 사건을, 마치 우리가 미국인이라도 되는 양 최초의 고속도로 이름에 '아폴로'를 붙였다. 건설부가 명명한 그 이름은 '하이웨이 아폴로'라고 쓰기도 했다. 아무튼 '아폴로 하이웨이'가 우리의 자존심을 많이 상하게 했는지, 인천시가 그동안 발간해 온 시사(市史)에서는 어느 순간 그 이름이 사라졌다. 1973년에 나온 시사에 처음 등장한 '아폴로 하이웨이'라는 경인고속도로의 새로운 이름은 1982년과 1993년 발간된 시사에는 등장하는데 그 이후 나온 시사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빠져버렸다. 경인고속도의 수명이 50여 년 만에 다하는 마당에 이와 관련하여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우리나라 고속도로 사업의 시작을 알린 경인고속도로 이전에는 도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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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원천 '상상력' 키우자 지면기사
제 378회 새얼아침대화가 8일 오전 7시 쉐라톤그랜드인천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새얼대화에는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이 나와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 소프트파워가 강한 대한민국'을 주제로 강연했다.미래창조과학부 2차관 등을 역임한 윤종록 원장은 국내 최고의 ICT 전문가답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정보통신기술과 관련한 얘기를 세계 각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참석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윤 원장은 "태평양 맨 동쪽 끝에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태평양 서쪽 맨 끝에는 인천 송도 밸리가 있다고 선언해야 할 때"라고 하면서 ICT 관련 인천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윤종록 원장은 "대한민국은 IT 인프라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그 IT 역량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IT 역량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사람 2명이 사과 1개씩을 서로 교환한다면 각자에게 사과는 1개씩이 돌아가지만, 2명이 아이디어를 1개씩 서로 교환하게 되면 각자는 아이디어를 2개씩 갖게 되는 것처럼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 아이디어 양산의 토대는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토론과 질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원장은 또 "4차 산업혁명은 상상을 먹고 산다"면서 상상력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원천이라고 덧붙였다.윤 원장은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시절 우리 정부기관의 경직성이 ICT 수준을 오히려 저해하는 아픈 경험도 털어놨다. 자신이 학생들에게 ICT 기술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교육부 단계에서 묵살됐다는 거였다. 그 아이디어가 그렇게 한국에서는 학교교육 현장에 뿌리를 내릴 수 없었는데 몇 년 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ICT 학교 교육을 역설했다고 했다.윤종록 원장은 "자원이 없는 이스라엘의 경우 브레인의 창의력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있는데 우리는 바로 그 창조 정신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면서 "창조정신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조직에서 나온다"고 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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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부평미군기지 환경오염 발표를 듣고 지면기사
미군이 오염 그들 돈으로 정화시키는게 당연한국보호 위해 주둔 했다면 환경도 보전해야'세계의 경찰' 자칭… 어처구니없는 일 없어야 부평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환경부가 발표했다. 복합적 토양오염이라고 한다. 정부는 반환 절차가 진행 중인 미군기지 내부 환경조사 결과를 반환에 앞서 한·미 간 합의로 미리 공개한 것은 처음이란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군이 자신들이 기지 내에서 행한 온갖 오염 행위를 얼마나 인정하고 그 피해를 온전히 복구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동안의 미군 태도로 볼 때는 영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미군이 순순히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정화 작업 등 그 대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가 없다. 해외 파견 미군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행세해 왔다.부평 땅은 예전부터 참으로 많은 군사적인 아픔을 안고 있다. 미군은 해방 직후, 그러니까 1945년 9월 8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인천에 진주하면서 그 질긴 인연을 아직까지도 이어오고 있는데, 인천항에 입항한 미군이 우선 신경을 쓴 곳이 부평이었다. 일본군의 핵심 군수기지가 부평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군수기지를 부평에 건설했다. 병장기를 만든다고 하여 조병창이라고 불렀다. 미군이 인천에 진주하면서 부평의 일본군 군사시설은 곧바로 미군기지로 전환되었다. 해방과 함께 등장한 미군은 1949년 한반도 미군철수 때부터 1950년 9·15 인천상륙작전 때까지 1년여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부평을 떠난 적이 없다.70년이 넘게 인천에 주둔해 온 미군과 관련해 아직도 그 진상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그중에서도 부평에서 벌어진 반공 포로 탈출과 학살 사건이 주목할 만하다. 1953년 6월 18일 전국에서 반공 포로들이 석방된 날 부평의 반공 포로들만 석방되지 못했다. 포로들은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탈출을 감행했다. 이미 감시병력은 한국군 헌병에서 미군 헌병으로 바뀐 뒤였다. 포로석방 조치 하루가 지난 6월 19일 반공 포로들이 철조망을 넘자 미군들은 기관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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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영화 '대장 김창수'와 인천시의 아쉬운 문화정책]인천시민도 잘 모르는 '인천과 김구' 지면기사
옥살이 감옥 터 찾기 어렵고동상은 '산비탈 외진 응달'에탈출로 복원, 극소수만 관심市 '백범일지'부터 살펴봐야백범 김구(1876~1949)의 인천에서의 감옥살이를 다룬 영화 '대장 김창수'가 지난 19일 개봉했다. 백범의 옥살이, 외국인 전담 재판소, 축항(築港)과 경인선 철로 부설, 인천 우편국의 전보 취급, 모친의 옥바라지, 인천 사람들의 적극적인 후원 등등. '대장 김창수'는 어느 모로 보나 '인천 영화'라고 하기에 충분하다.'대장 김창수'는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인천의 문화 정책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천은 국민적 인물인 백범 김구와 관련한 중요 장소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백범이 옥살이한 감옥 터는 일반인이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고, 백범과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이 인천대공원에 나란히 서 있기는 하지만 산비탈 외진 응달에서 제대로 아침 햇살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다. 축항 노역장이나 감옥에 갇힌 백범을 후원한 인천 사람들의 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 백범의 탈옥 직후 인천에서의 탈출로 복원 문제는 극소수의 민간 연구자만이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인천은 백범 김구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인천에서 감옥살이를 하면서 독서를 통해 신문물에 눈을 떴고, 강화도를 비롯한 인천의 여러 인물들이 가산을 탕진해가면서 백범의 옥바라지와 석방을 위해 애를 썼다. 그 뒤로 이름마저 '김창수'에서 '김구'로 바꾸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 백범은 인천에서 새롭게 탄생했다고 할 수가 있다. 인천은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숨진 서울 경교장만큼이나 중요한 장소다.백범과 인천의 연관성은 다양하고도 특색 넘치지만 인천시에서는 그동안 이와 관련한 체계적인 연구를 지원하거나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거의 펼치지 않았다.영화 '대장 김창수' 개봉을 계기로, 인천시는 '백범일지'의 인천 관련 대목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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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인천 영화 '대장 김창수' 관람기 지면기사
'김창수에서 김구로, 백범의 탄생.'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2015년에 펴낸 책 '인천문학전람'의 '백범일지' 편 제목이다. 경인일보 취재팀은 2014년 연중기획 '문학 속 인천을 찾다'란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백범일지'를 인천의 문학에 편입시키면서 '백범일지' 속 인천 관련 장소와 인물을 찾아 나선 바 있다. 당시 취재 결과가 '백범 김구의 탄생 지역은 인천이다'였다. 신생아 '김창수'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을지언정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 '백범 김구'는 인천에서 탄생했다는 결론을 얻었다.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는 바로 그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개봉 하루 뒤인 20일 관람한 '대장 김창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영화 속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 사이를 빠르게 오가야 했고, 인천 관련한 부분이 얼마만큼이나 반영되었는지를 따지느라 영화에 깊숙이 몰입하지는 못한 듯하다. 그래도 백범이 사형대에 서기 직전 모친이 '이 옷 입고 당당히 가라'면서 새하얀 바지저고리와 신발을 고이 싼 꾸러미를 전하는 장면에서는 목울대가 뜨거워지기도 했다.영화에서처럼 백범은 인천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동료 수감자들에게 글을 가르쳐 문맹을 떨치게 했으며, 수감자나 교도관을 가리지 않고 소송 관련 문건을 대신 작성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옥살이 과정에서 따로따로 일어난 일이 하나로 합해진 것이나 축항의 노역이 철로 부설 노역으로 대체된 부분 등은 '백범일지'의 내용과 차이가 나는 점이었다.'대장 김창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모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 영화의 개봉은 인천의 문화 정책을 총괄하는 인천시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할 수가 있다. 인천의 문학을 얘기하면서 '백범일지'를 빼놓을 수가 없겠고, 백범의 인천에서의 두 차례에 걸친 옥살이 과정 또한 제대로 규명해야 할 터이다. 특히나 인천 감옥을 탈출한 뒤 서울로 가기까지의 인천지역 탈출 경로를 되살리는 문제도 중요하다. 게다가 강화도의 김주경이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