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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정학적 감옥'-'대륙·서양 가교' 갈림길" 지면기사
제372회 새얼아침대화가 17일 오전 7시 쉐라톤그랜드인천호텔에서 열렸다. 이날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나와 '북핵과 사드의 적대적 동반성장,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란 주제로 강연했다.정욱식 대표는 "남북관계, 한중관계 변화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도시가 인천"이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정 대표는 그러면서 지금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감옥'에 갇히느냐, 아니면 대륙세력과 서양세력의 가교로서의 발판이 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이런 가운데서 우리는 북핵과 사드라는 2가지 걸림돌이 작용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도 했다.정 대표는 북한 정부가 핵 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북한 정권의 생존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욱식 대표는 그동안 미국이 북핵 문제를 과장해서 다뤄왔다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에서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 구상은 북핵 위기를 부풀리면서 부상하게 됐다고도 했다.정욱식 대표는 북핵과 미사일은 공격무기이고 사드는 방어무기인데 어째서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느냐는 게 중요한 문제라고 진단한 뒤 중국이 걱정하는 것은 한반도 사드 배치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현재 미국·일본 동맹과 중국과의 대결 구도가 사드로 인해 한·미·일 3국과 중국과의 대결 구도로 바뀌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정 대표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서 북핵 문제는 최종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은 상태에서 협상의 목표치를 낮춰서 협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도 대한민국을 대신해 북한과 (진정성 있는) 협상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정부는 정말 비상한 각오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도 임기 내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과의 협상이 어렵다는 얘기였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17일 오전 쉐라톤그랜드인천호텔에서 열린 제372회 새얼아침대화에서 '북핵과 사드의 적대적 동반성장,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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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목숨을 건 토론과 소통 지면기사
대선후보들 토론, 목숨 담보 안할지라도국민마음 움직일 수 있는 순수한 열정과진정한 정책 제시한다면 한표 던질 수도미국의 백인 여의사 말로 모건(Marlo Morgan)이 호주 원주민 '참사람 부족'을 따라서 넉 달간 죽음의 사막 여행을 하고 난 뒤인 1994년 펴낸 책 '무탄트 메시지'는 여러모로 놀라운 광경을 전해준다. 모건은 처음 이 부족의 초청을 받아 호주 사막에 도착한 뒤 자신이 입은 것 가진 것, 모든 것을 불에 태워야 했다. 문명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모건에게는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펼쳐지는 것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것과는 전혀 다른 신세계였다. 그 원주민들은 문명인들을 '무탄트'라 불렀다. 돌연변이란 뜻이다. 문명인 스스로 그들이 사는 터전을 파괴하는 행위를 도저히 정상적으로 볼 수가 없었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그들이 보기에 돌연변이가 아니고서야 생명의 원천인 대지를 파헤치고, 강을 더럽히고, 나무를 마구잡이로 베어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모건과 함께 여행한 '참사람 부족'은 62명이었다. 이들이 돌연변이인 백인 여의사를 자신들의 내밀한 곳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속살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몇 차례의 고비가 있었다. 이 무탄트를 왜 부족 행사에 초대해야 하는지, 그를 왜 부족의 신성한 장소에 들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일원이 있었다. 답은 토론이었다. 어떨 때는 그 62명의 부족이 사흘에 걸쳐 토론한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결론을 이끌지 않았다. 토론 과정을 거쳐 전 부족이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것은 오로지 리더의 몫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 중의 하나가 '지구를 떠나자'는 거였다. 가히 충격적이다. 개그 프로에 나오는 '지구를 떠나거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들은 누구도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부족이 멸종을 맞도록 하는 데 의견일치를 봤다. 그 결론을 위해 얼마나 많은 토론이 있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역대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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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이겨내고 기본 지켜라"… 조직 살려낸 '극한의 리더십' 지면기사
윤호일 극지연구소장 연단 올라세종기지 조난당시 기억 떠올려정직·균형감각·희생 덕목 꼽아제371회 새얼아침대화가 12일 오전 7시 쉐라톤그랜드인천호텔에서 윤호일 극지연구소 소장을 강사로 초청한 가운데 열렸다.20여 년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생활한 윤호일 소장은 '극한의 리더십 : 남극세종기지를 지켜낸 위기관리 리더십'이란 주제를 들고 연단에 올랐다.윤 소장은 2003년 12월 남극 킹조지 섬 세종과학기지 최악의 조난사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강연을 시작했다. 당시 3명의 대원이 폭풍설에 실종됐고, 이들을 구조하러 5명의 대원이 나섰다가 이들마저 연락이 두절됐으며 끝내 1명이 숨지고 만 사고였다. 세종기지 총 대원이 15명이었는데 그 절반이 넘는 8명이 실종된 상황은 그 자체로 세종기지를 지키던 조직자체가 실패했던 찰나였다고 윤 소장은 말했다. 하지만 남극에서의 조난 한계시간인 48시간을 넘기면서 모두가 얼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3명의 대원들이 돌아왔다. 또 구조대원 5명 중 4명도 살아남았다. 조직 전체가 파괴됐다고 생각한 순간, 그 조직이 살아 있음을 대원들 스스로 증명했다. 그 중간 조직의 팀장들이 '극한의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윤호일 소장의 얘기다.폭풍설을 만났을 때 행동수칙의 기본은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이틀이고 사흘이고 폭풍이 완전히 가실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버티는 게 가장 중요했는데, 당시 세종기지의 폭풍설에 갇혔던 3명과 구조팀이 이 수칙을 잘 지켰기에 팀원들이 살 수 있었다고 했다. '움직여야 산다'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버틴 리더의, 그 리더십의 중요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라고 했다.윤호일 소장은 어떠한 조직이건 위기의 순간에 힘이 드러난다면서 최악의 순간에서 조직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했다. 윤 소장은 그러면서 리더의 정직성, 조직원을 대하는 균형감각, 희생정신 등 3가지를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았다.한편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강연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부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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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그야말로 고릿적 화재 지면기사
소래포구 불, 800여년전 '강화 화재' 닮아당국, 고려 정부때처럼 배운게 전혀 없어최첨단시대 더이상 화재없도록 대책 시급지난 주말 새벽 소래포구에 불이 나 300개 넘는 좌판 점포 중 3분의 2가 잿더미로 변했다. 평소 소래포구의 주말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인천 시민만이 아니라 인근 경기도나 서울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눈앞에서 배가 드나드는 광경이 펼쳐지는 포구에서의 신선한 횟감은 보는 것만으로도 회가 동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서울 사람에게 소래포구는 남다르다. 소래포구의 큰불은 2010년 이후에만 벌써 3번째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졌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어떻게 같은 자리에서 같은 유형의 화재가 몇 년마다 반복될 수가 있는가. 그 사이 관계 당국은 뭘 했다는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민다.소래포구 화재 사건으로 열을 받자니 800여 년 전 강화도에서의 잇단 대화재가 떠올랐다. '고려사절요'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이후 10여 년 사이에 3번의 큰 화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234년) 봄 정월에 큰바람이 불고, 대궐 남쪽 동네 수천 호의 집이 불에 탔다' '(1236년) 3월에 시가(市街)의 남쪽 동리 수백 가(家)에 불이 났다' '(1245년) 봄 3월에 강도 견자산 북쪽 마을 민가 800여 호에 불이 나서 죽은 자가 80여 명이었고, 연경궁까지 연소되었다' 이렇게 잇따라 큰불로 엄청난 피해를 본 고려 정부는 연경궁 소실 1개월 뒤에 가서야 대책을 내놓는다. 관청 건물에 맞닿아 있는 민가를 50척 거리까지 헐어서 공간을 확보해 불이 나더라도 관청까지는 번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어찌 되든지 관청만 안전하면 된다는 그런 식이었다. 이건 대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800여 년 전 강화의 화재와 지금 소래포구의 불은 여러모로 닮았다. 한적할 듯싶은 강화도에서 한 번 불이 나면 수천, 수백 호의 집이 불에 탔다. 그 피해 또한 막대했다. 화재 피해가 컸던 것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있던 사람 대다수가 엉겁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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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1만년 안에 지구 대멸종 인간 이기심 계속땐 더 빨라져" 지면기사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강연'공생 멸종 진화' 주제 특유 입담"주변 배려 같이사는 연습" 강조제370회 새얼아침대화가 8일 오전 7시 인천 송도 쉐라톤그랜드인천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에는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이 나서 '공생 멸종 진화-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살아남기'란 주제로 마이크를 잡았다.이날 아침대화의 주제 '공생 멸종 진화'는 탄핵과 사드, 조기 대선문제 등 정치적 혼란과 외교적 격랑 속에서 연일 가위눌리다시피 하는 참석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사 특유의 입담과 주제 깊이 박혀 있는 '공생 정신'이 청중을 웃게도 하고, 저만 살겠다고 아우성인 정치권과 내 주변을 뒤돌아 보게도 했다. 이정모 관장은 멸종이 임박한 인류가 더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웃과 함께 하는 법부터 연습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이정모 관장은 "멸종은 꼭 있어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지금 바다에서 우리가 보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 것은 5억4천만년 전 바다를 누볐던 오파비니아(Opabinia)가 멸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이 관장은 또 만약에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젖소도 없었을 것은 물론이고 지금의 인류 또한 없었을 것이라는 예도 들었다. 인간이 있었기에 예술도 등장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우스갯소리로 했다.'공생 멸종 진화 : 생명 탄생의 24가지 결정적 장면'이란 책의 저자이기도 한 이정모 관장은 그동안 지구 생명체의 역사를 1년 365일, 12개월, 24시간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지금 인류는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23시 50분을 넘어섰다고 했다. 인류의 멸종이 임박했다는 얘기다. 그것을 일러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고 했다. 이정모 관장은 인간을 향해 경고 한마디를 던졌다. 그동안 있었던 다섯 번의 대멸종 때마다 당대의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다고 했다. 현재 지구 생명체의 최고 포식자는 뭐니 뭐니 해도 인간이다. 그동안 지구 생명체의 역사를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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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료원-8개교회 공공의료서비스 협약 지면기사
인천의료원(원장·김철수)이 대한예수교침례회 인천교회(목사·서도석, 이하 인천교회) 등 8곳의 교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인천의료원은 지난달 의료원에서 시설 이용 및 환자 안정 등 상호 지원을 골자로 한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이번에 협약을 체결한 인천교회 등 8개 교회에 다니는 성도는 총 4천여 명에 달한다. 의료원은 건강검진 및 장례식장 시설이용 등 공공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이들 교회 측에서는 의료원 환자들에 대한 안정활동 및 봉사활동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김철수 원장은 "의료원은 지역 대표 공공의료기관으로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다"며 "상호 협력을 통해 건강한 지역을 만드는데 공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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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하필(何必) 왜 불필(不必)입니까" 지면기사
정치인들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눈치 못 채선거때마다 출마자들 특권 내려놓겠다고 아우성'진정 '쓸모있음'은 비움에서 출발' 성철은 가르쳐김정남은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독살을 당했을까. 김정남은 그렇게도 북한 측에 불필요한 존재였을까. 이 두 문장에서 쓰인 하필(何必)과 불필(不必)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요즘 정치판에는 참 많은 군상이 등장한다. 대통령을 필두로 정치인은 필수이고 관료와 법조계 인사, 그리고 대학교수 집단까지. 돈이면 물불 가리지 않고 좇아가는 저잣거리 간상배나 진배없는 이들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장면을 연속극 보듯 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들은 어김없이 우리의 눈과 귀를 괴롭혀 결국은 자괴감에 젖게 한다. 그러면서 드는 질문 하나, 저들은 꼭 필요한 존재일까. 그 질문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요새는 '나는 필요한가'로 옮아가고야 말았다. 답을 못 내놓는 불초한 입장에서 스스로 묻고 답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이 두 단어를 말하기 위해서는 성철 스님(1912~1993)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1957년 스님의 딸 수경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머리를 깎았다. 성철은 딸에게 법명을 내렸는데 바로 '불필(不必)'이었다. 딸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으니 그 맘이 오죽하였으랴. "하필 왜 불필입니까." 딸은 따지듯이 물었다. 이제 사바세계의 아버지가 아니라 산중의 스승이 된 성철은 답했다. "하필(何必)을 알면 불필을 알게 된다." '왜 꼭 필요한지'를 알면 '쓸모없음'을 알게 된다니, 세속에 찌든 우리야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다.성철은 산중으로 자신을 찾는 이들 누구에게나 삼천배를 시켰다. 노인이나 병자도 예외가 없었다. 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이다. 몸이든 마음가짐이든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절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삼천배를 하는 데 며칠이나 걸린 경우도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폐병 말기 비구니가 있었다. 죽기 전에 스님의 법문을 꼭 듣고 싶었다. 성철은 죽게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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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3]황해도 순위도 출신 임경애 할머니(2) 지면기사
임경애 할머니(84)가 들려주는 피란 이전의 어릴 적 삶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딴 세상 이야기이다. 할머니가 태어난 황해도 옹진군 흥미면 순위도는 북한의 행정구역으로는 황해남도 강령군 순위리에 속한다. 기다랗게 뻗어 내린 작은 섬인데 가운데 허리 부분이 잘리다시피 움푹 파인 모양새가 특이하다. 섬은 강령반도의 끝자락인 등산곶을 서쪽에서 방파제처럼 막아주고 있다. 창린도와 기린도 너머는 그 유명한 옹진반도의 장산곶이다. 등산곶에서 장산곶으로 이어지는 해안은 연평도와 백령도로 연결되는 물길과 맞닿아 있는데 작가 황석영은 소설 '장길산'의 첫 페이지를 바로 이곳에서 시작한다. '황해도는 동으로 함경도와 강원에 인접해서 마식령 산맥의 산세에 닿고… 팔대 명산의 하나이며 태곳적 단군의 도읍지인 구월산은 그 줄기가 남서쪽으로 우회하여 추산을 따라 불타산에 이르고, 막바지로 그친 곳에 장산곶이라는 험한 해안 마루턱이 있으니 … 조기 떼가 연평을 경유해서 대청 소청 앞바다를 지나가는 철이 돌아왔다.' 타고난 이야기꾼 황석영이 장산곶매에 얽힌 전설을 풀어내는 장면이다. '장길산'의 문을 여는 장치로 장산곶과 해동청 보라매를 설정했다는 것은 이곳이 아마도 남북분단의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소이자 통일 염원의 절절함이 넘쳐 흐르기 때문이었을 터이다.할머니는 열아홉 살 먹던 해인 1951년 첫 피란 때까지 순위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자동차라는 것도 피란길에 백령도에서 처음 봤다. 미군 차량이었다. 할머니의 집은 순위도에서도 섬의 가운데 허리 쪽인 널목이란 동네에 있었다. 할머니는 '널먹'이라고 불렀다.할머니는 계모 밑에서 컸다. 다섯 살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그 이듬해에 아버지(임응태)는 새엄마를 얻었다. 계모의 학대는 가혹했다. 응석받이로 유치원에나 다닐 예닐곱 어린 여자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심했다. 일곱 살부터 밥을 하라고 시켰다. 절구보다도 작은 애가 절구질까지 했다. 기막힌 노릇이다."일곱 살 애가 무슨 밥을 할 줄 알겠어. 솥에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 부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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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최순실과 그들이 찾아 준 수표 3장 지면기사
김기춘·조윤선 나란히 구속 법조인 생리 떠올라대학때 산 법률서적 뒤적이다 10만원권 수표 발견기한 지나 못 쓴다면 누구에게 조력 구하나 걱정이제는 많은 국민이 변호인의 조력 없이도 검찰 수사나 법원의 재판에 임할 수 있게 된 듯싶다. 정말이지 법률 선진국의 문턱까지 왔다는 느낌이 확 든다. 이게 다 '선생님'으로 불렸다는 최순실과 그들의 덕분이다. 보통 사람들은 으레 검찰의 소환 통보만 받아도 다리가 후들거리게 마련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최순실과 그들의 사건 응대는 너무나 많은 법률정보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앞으로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검·경의 수사나 법원의 재판이 호락호락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몸이 피곤하거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 수사에 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미 알게 되었고, 헌재가 부르는데도 나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팁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나는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이면 웬만한 조사는 통과 가능한 '전가의 보도'처럼 쓸 수 있다는 점도 각인시켰다. 앞으로는 '최순실은 되고 나는 왜 안 되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수사 대상자들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검·경만 골치 아프게 생겼다. '최 선생님과 그들의 법률 강의'가 생각보다 더 오래간다면 변호사들마저 그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20여 년 전 법조 출입 초창기에 '미란다 원칙'이라는 다소 낯선 법률 지식을 알게 되었다. 법원 관계자에게서 보기 드문 판결이 나왔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취재했던 바다. 경찰관이 범죄용의자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진술 거부권 등을 고지했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경우였다. 경찰 영화에 많이 나오는 그게 바로 미란다 원칙이란 거였다. 수사 과정에 흠결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판결이다. 명색이 법조 출입기자가 기본적인 것도 몰라서야 되겠냐는 생각에 법률 상식을 다룬 책부터 샀다. 요새 부쩍 그렇게 법률 지식에 다가갔던 기억이 새롭다.유명 법조인 출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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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2]해방 이전의 인천 어시장 지면기사
관련 기록 '중구난방' 역사 바로잡기 절실인천은 바다의 고장이다. 당연히 고기잡이도, 어시장도 발달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인천 어시장과 관련해 속 시원히 설명해 주는 자료가 많지 않다. 인천지역 어시장의 연원은 인천종합어시장의 시작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일본인들이 1933년에 펴낸 '인천부사'와 의사이자 향토사가였던 신태범(1912~2001)이 쓴 '인천 한 세기'에서 인천 어시장의 태동 당시를 짐작할 수 있다. '인천부사'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1887년 조선 정부의 허가를 받아 경기도 남양에서 강화에 이르는 인천 앞바다에서 어로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 어선 15척이 참여했다. 이들은 어선 1척당 은(銀) 10원(圓)씩을 1년 수수료(면허세)로 냈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잡은 물고기를 별도의 세금을 내지 않고 인천항에서 판매했다. 이게 인천 어시장의 시초라 할 수 있다.일본인들이 생선장사로 돈벌이를 시작하니 조선인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터이다. 조선인으로는 정흥택(鄭興澤)이라는 사람이 수산물 거래에 처음으로 뛰어들었다. '인천 한 세기'에서는 '1890년대 초에 한양 청파인 정흥택 형제가 인천으로 내려와 어물객주를 차렸다. 선창가였던 현 신포슈퍼마키트 자리에 한옥으로 어물시장을 짓고 도매시장을 개설했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생선은 행상인이 받아가고, 일인이 좋아하는 생선은 그 자리에서 소매를 했다. 이곳이 후일에 유명해진 인천의 생선전의 시초였던 것'이라고 썼다. 이 부분을 '인천부사'는 명치 28년인 1895년께로 밝혔다. '인천부사' 속 다른 부분에서는 명치 38년인 1905년께로 달리 적기도 했다.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전후해 이들 전쟁의 출발 지점이었던 인천지역에 생선이 없으면 밥상을 차리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수산물 수요도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흥택이 본격적으로 일본인들과의 수산물 판매 경쟁시대를 열었고, 일본인들 내부에서도 수산물 판매 다툼이 치열했다. 조그만 중구 개항장 일대에 어시장이 2곳으로 늘었다가 1907년 합쳐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