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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 부자(富者)의 자격 지면기사
명망 높은 자선가 '유군성'… 졸렬한 치부 '반복창'아파트 분양·테마파크 건설하겠다는 '(주)부영'개발이익 인천에 어떻게 돌려줄지 '훗날 기억' 궁금강화도 월곶에 연미정이라는 유서 깊은 정자가 있다. 염하에서 한강 입구로 이어지는 지점에 있어서 오랜 옛날부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지금도 연미정 바깥에는 해병대 막사가 있다. 고려 때 지어진 연미정은 여러 차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고는 했다. 그중 1931년 있었던 중수(重修)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 월곶이 고향이면서 인천의 대표적 부호였던 유군성이 중수 경비를 댔다. 강화문화원이 1988년에 강화와 관련 있는 옛 시를 모아 펴낸 '강도고금시선(江都古今詩選)'에 유군성의 '연미정중수기'가 실렸다. 편저자는 따로 주석을 달아 유군성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있다. '연미정 중수 의연자 유군성은 월곶리에 살았는데 인천에서 재목상과 정미소를 경영하여 치부하였는데 자선심이 강하였으며 애향심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유군성(1880~1947)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강화에서 인천으로 이주했으며, 여러 장사를 하다가 제재소와 정미소를 운영했다. '유군성 정미소'는 당시 한국인이 운영하던 전국 27곳의 정미소 가운데 가장 많은 자본금을 보유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조선 최고 납세자'로까지 불린 유군성은 다른 부자들과는 달리 돈을 쓰는 쪽에서도 이름을 얻었다. 동산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인천상업전수학교'의 설립을 위해 많은 돈을 내놓는 등 수많은 자선으로 명망을 누렸다. 무너져 내린 연미정을 깔끔하게 다시 짓는 데에도 아낌이 없었다. 그리하여 유군성이란 이름 석 자는 연미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름답게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인천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남은 유군성과 달리 잠시 갑부의 반열에 올랐다가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반복창 같은 이도 있다. 반복창은 개항장 인천에서 투기의 상징인 미두(米豆)로 떼돈을 벌었다. 그는 돈을 좇을 줄만 알았지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했다. 인천의 대표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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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1] 정호승作 '정서진(正西津)' 지면기사
정서진(正西津) 벗이여 지지 않고 어찌 해가 떠오를 수 있겠는가 지지 않고 어찌 해가 눈부실 수 있겠는가 해가 지는 것은 해가 뜨는 것이다 낙엽이 지지 않으면 봄이 오지 않듯이 해는 지지 않으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벗이여 눈물을 그치고 정서진으로 오라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히 노을 지는 정서진의 붉은 수평선을 바라보라 해넘이가 없이 어찌 해돋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해가 지지 않고 어찌 별들이 빛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들 인생의 이 적멸의 순간 해는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찬란하다 해는 지기 때문에 영원하다 - 정호승(1950~)사람들은 동해로 가려는데 시인은 서해로 오라 한다. 사람들은 일출을 희망으로 여기는데 시인은 일몰이 희망이라 한다. 반전이다. 바다면 바다, 농사면 농사, 공장이면 공장, 수많은 일자리가 널려 있어 밑바닥 인생에게도 기회의 터전이 되는 인천은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는 그런 도시다. '정서진'이라는 말이 한양의 궁궐 안 임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서쪽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자면 서울 사람을 부르는 호루라기로 여길 수도 있겠다 싶다. 인천은 그렇게 내일의 희망을 잉태하는 반전의 땅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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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0] 박목월作 '松鶴(송학)' 지면기사
松鶴(송학) 한 그루 老松(노송)을. 굽히지 않는 뜻이 빛 속에 환하네. 새삼 높게 트이는 眼睛(안정) 세상일이 안까지 보이시리니 스스로 흥겨워 너울거리는 가지들 그윽한 솔바람 소리에 귀도 열리고 학이야 千年(천년)을 살기로니 辱(욕)되지 않음이어. 날갯짓 한 번이 無限(무한)을 출렁이네. -박목월(1915~1978)청록파의 시인 박목월이 인천 현대 초등교육의 주춧돌을 놓은 백파 조석기(1899~1976) 선생의 회갑 상에 시 '송학'을 올렸다. 1959년 조석기 선생의 회갑을 맞아 묶은 책 '노변야화'의 첫머리에 실렸다. 백파는 6·25 피란을 가면서도 가족보다는 제자들을 먼저 챙겼고, 경상도 고향 땅을 팔아서 교육 경비를 댔다. 그가 있었기에 전쟁 직후 그 배고픈 시절, 인천 창영초등학교 학생들은 어린이은행을 운영하고 어린이신문을 만들고 골프를 배웠다. 굽히지 않는 한 그루 소나무와 욕되지 않는 학의 날갯짓으로 남은 백파. 지금의 인천 교육은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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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9] 이가림作 '바지락 줍는 사람들' 지면기사
바지락 줍는 사람들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저녁 종소리가천도복숭아 빛깔로포구를 물들일 때하루치의 이삭을 주신모르는 분을 위해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간절함이여거룩하여라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이가림(1943~2015)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땀을 흘리지 않고 손쉽게 돈을 버는 쪽에 더 신경을 쓰고는 한다.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도 않게 되었다. 시인은 20여년 전 송도갯벌의 해질 녘 풍경을 성스러운 눈길로 포착했다. 노동이 종교만큼이나 신성하다는 메시지가 간절하다. 밀레(Millet)의 그 유명한 그림 '이삭 줍는 사람들'이나 '만종'을 떠올리게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천은 그런 땀내나는 삶의 터전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줄 약속의 공간이었다. 계속해서 그런 신성함이 물씬 풍겼으면 좋겠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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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8] 함민복作 '밴댕이' 지면기사
밴댕이팥알만 한 속으로도바다를 이해하고 사셨으니자, 인사드려야지이분이우리 선생님이셔 -함민복(1962~)강화도 사는 시인이 강화의 대표 수산물 밴댕이 속을 참 깊게도 들여다보았다. 밴댕이 속에서 바다를 건져내다니. 밴댕이 속보다도 더 작은 심보를 가진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 늘 안절부절못한다. 정작 남에게는 '밴댕이 소갈딱지네' 하면서 욕을 해댄다. 이 짧은 시 한 편이 우리의 좁디좁은 속과 바다만큼이나 너른 밴댕이 속에 관하여 오래도록 생각하게 한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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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7] 조병화作 '추억' 지면기사
추억잊어버리자고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하루이틀사흘여름 가고가을 가고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잊어버리자고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하루이틀사흘 -조병화(1921~2003)시는 이렇게 역사가 되어 남는다.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서도 해녀들이 물질하고 조개 줍던 때가 있었다. 이제 인천의 도심에서는 바다 기슭이라고 말할 만한 데도, 해녀라는 말도 사라져 버렸다. 해방 후 인천, 그 추운 겨울. 시인은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강술을 마시면서 한 구절씩 토해냈다.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은 중학생 때 시인을 따라 인천 바닷가를 걷다가 이 시를 받아 적었다고 기억한다. 70여 년 전 인천의 살아 있는 바다 풍경이 자꾸만 아릿거린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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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6] 이생진作 '식후경-호룡곡산' 지면기사
식후경-호룡곡산 아, 올라오길 잘했다 눈을 속여서는 안 되지만 눈을 굶겨서도 안 된다 식후경食後景이란 눈을 굶기고 입만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시가 배부르려면 눈이 잘 먹어야 한다 요즘 나는 밥보다 시를 먹는 기분이다 이렇게 쓰며 호룡곡산 정상에 올라 눈에게 식사 대접한다 -이생진(1929~)우리의 대표적 섬 시인이 인천의 작은 섬 무의도 호룡곡산에 올라 얼마나 눈 호강을 했으면 눈에게 잘 먹였다고 했겠나 싶다. 늘 가시권에 놓인 인천국제공항 영종도에 잇닿아 있는 섬 무의도에만 가도 시인처럼 특별한 눈맛을 경험할 수 있다. 도심에 찌든 눈을 잠깐이나마 쉬게 하려거든, 근시안적 생활에 지쳐 가까운 곳이 안 보이기 시작한 늙어가는 눈에게 새참한 먹거리를 선물하고 싶다면, 일단 한 번 올라 볼 일이다. 눈이 불러 내려오기 싫을지도 모른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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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 칼럼] 교동과 고려의 맛 지면기사
교동 옛사람들 즐겨먹던 요리 어땠는지 알길 없어남북 분단으로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 잊혀져꼭꼭 숨겨진 것들 찾아내는게 진정한 가치 재창조지난 17일 오후, 편집국의 한 선배가 물었다. "오늘 우리 신문 1면에 나간 시(詩) 말이야. 그 시 속에서 물고기 회를 치는 데 파는 왜 뜯는 거지. 닭은 왜 홰에 오른다고 한 것이고?" 그 선배는 '파 뜯고 회를 칠 제 닭은 홰에 오르려 하네'란 시구를 몇 번이나 읽었던 모양이다. 분명 음식과 연관이 있는데 파, 회, 닭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사실 그날 치 시를 준비하면서 그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교동(喬桐)'이란 제목의 시인데 뜻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아 이색에 대한 책을 쓴 대학교수한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고려 말 교동은 수도 개성과 가까운 해상 물류의 중심지였다. 수많은 배가 오가다 보니 사람도 들끓었다. 교동 특유의 먹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파전이나 생선회가 유명했을 것이고 닭요리가 일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북분단과 함께 위치를 잃은 교동은 음식 정체성마저 잃고 말았다. 교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려의 맛'을 상실한 것이다. 이제는, 고려시대 교동사람들이 무엇을 먹었을지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얼마 전 책꽂이에 장식처럼 꽂혀 있던 옛 서적 '동문선(東文選)'을 뒤적이다가 생각지 않게도 이색이 지은 '교동' 시를 찾는 행운을 얻었다. '동문선'에 실린 1편의 이 '교동' 시는 이색이 지은 '교동 3수'라는 3편의 연작 시 중 하나라는 점과 이색의 교동관련 시 1편이 더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며칠 사이에, 교동의 문학적 토양을 넓힐 수 있는 아주 귀한 소재를 확인한 셈이다. 다만 '동문선' 속의 '교동' 시와 '목은집'에 실린 그것의 해석이 다소 달랐는데, 그 점은 전문가들이 좀 더 연구해야 할 문제로 보였다.우리에게 과제를 던져주는 '교동의 문학'은 이색의 시뿐이 아니다.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도 작게는 교동, 크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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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5] 이색作 '교동' 지면기사
교동바닷물은 끝이 없고 푸른 하늘은 나직한데돛단배 나는 듯이 오고 해는 서산에 걸렸네산 아래 집집마다 막걸리를 걸러 내어파 뜯고 회를 칠 제 닭은 홰에 오르려 하네 -이색(1328~1396)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교동(喬桐)'이란 제목의 시 세 수 중 하나다. 셋 중 이 작품만이 역대 최고의 문장들만 모았다는 '동문선'에 실렸다. 번화한 해상 물류 중심지 강화 교동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와 나가 놀던 닭이 둥지를 찾아드는 저녁, 동네 사람들은 한바탕 잔치를 벌일 모양이다. '이색의 삶과 생각'이란 책을 쓴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에 따르면 이 시는 목은이 쉰 되던 해인 1377년에 지었다. '교동 3수' 외에도 '교동에서의 놀이를 기록하다(記遊喬桐)'란 시도 '목은집'에 보인다. 이색이 노닐던 그 600년 뒤 지금 교동은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해 질 녘 고깃배도 맘 놓고 오갈 수 없다. 이색이 노래한 풍요와 평화를 언제나 다시 누릴 수 있을까.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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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4] 함민복作 '섬' 지면기사
섬물울타리를 둘렀다울타리가 가장 낮다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함민복(1962~)우리는 내 것과 네 것을 경계 짓는 담벼락을 높게만 쌓으려 한다. 그 높디높은 담에 가시철조망까지 얹고서도 안절부절못한다. 감시 카메라마저 설치한다. 결국 자기가 울타리 안에 갇히고 만다. 섬은 그런 우리와는 반대로 한다. 자기보다도 더 낮은 바다로 울타리를 둘렀다. 누구나 어디로든 오갈 수 있는 툭 터진 공간인 바다를 담으로 삼는다. 섬은 더 이상 바다에 갇힌 게 아니다. 생각을 바꾸니, 섬에서 배울 게 참 많기도 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