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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5] 정호승作, 부평역 지면기사
부평역봄비 내리는 부평역마을버스 정류장 앞허연 비닐을 뒤집어쓰고다리 저는 아주머니밤 깊도록 꽃을 판다사람들마다 봄이 되라고살아갈수록 꽃이 되라고팔다 남은 노란 프리지어 한 묶음젊은 역무원에게 슬며시수줍은 듯 건네주고승강장 노란 불빛 사이로허옇게 쏟아지는 봄비 속을절룩절룩 떠나간다동인천행 막차를 타고다운증후군 아들의어린 손을 꼭 잡고 -정호승(1950~)찡하다. 어려움은 왜 이리도 뭉쳐서 오나. 몸이 불편한데 가난하기까지 하다. 거기에 어린 아들마저 다운증후군이라니. 아주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주안역이나 제물포역에서 꽃을 팔 수가 없다. 저는 다리를 이끌고, 아픈 어린 아들을 데리고 부평역까지 나선 것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인천지하철 1호선과 경인전철이 교차하는 곳, 인천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 꽃을 하나라도 더 팔 수가 있는 곳이다. 아주머니에게는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지만 팔다 만 꽃을 누군가에게 선사할 여유는 충분하다. 아마도 꽃을 닮았나 보다. 그런데 왜, 정이란 놈은 없는 사람에게만 넘치게 되는 것일까.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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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300만 인천, 맛집에 사람 꾀듯이 지면기사
시, '브랜드 담당관실' 신설 상업 마인드 도입수준높은 도시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길 기대'인천'의 작은개념 탈피 개성미 물씬 풍겼으면…유명한 맛집치고 허름하지 않은 곳이 드물다. 찾기도 쉽지 않은 외진 곳에 있기가 십상이다. 예약도 받지 않고 줄을 서야 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미안해 허겁지겁 먹기가 일쑤다. 간판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많다. 맛집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먹을 것과는 다르게 차량이나 옷가지 등의 상품은 브랜드가 그 자체로 품질을 담보하는 경향이 강하다.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어떻게든 따르게 마련. 짝퉁이 판을 친다. 간판 없는 맛집에도 사람이 꾀고, 유명 브랜드에도 사람이 몰리지만 그 생리를 따지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인천시가 최근 '브랜드 담당관실' 조직을 신설하면서 행정에 상업 마인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브랜드(brand)'는 한마디로 말하면 '상표(商標)'다. 인천시가 이 조직을 만든 이유는 인천만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다. 인천의 인구는 올해 말이면 3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국내 도시 중에서 300만명을 넘은 곳은 서울과 부산뿐이다. 이 시점에서 인천의 새로운 브랜드 만들기는 적절해 보인다. 어떤 게 나올지 기대도 크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이 된다.얼마 전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서 '300만 대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커다란 광고판을 본 적이 있다. 순간, 그 경박함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서울에서 오는 길인데 300만명을 내세우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광고가 된다는 말인가 싶었다. 인천에 사는 사람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이게 인천의 수준이구나 싶었다. 상품마다 질의 차이가 있다면 도시에도 다 수준이 다르게 마련이다. 300만명의 외형을 갖추는 시점이, 새로운 브랜드를 입는 순간이 바로 인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수준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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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4] 조병화作, 소라 지면기사
소라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 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조병화(1921~2003)인천은 이렇게 뭔가가 꿈틀거리는 태동의 공간이다. 설사, 희망이 허무가 되더라도 쓸쓸함을 달래줄 그런 곳이다.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 뛸 수 있게 하는 쉼터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적 다작 시인 조병화의 첫 작품 '소라'는 해방 직후 인천 월미도에서 탄생했다. '물리학도'의 꿈을 접어야 하는 그 상실의 순간 조병화는 월미도에서 해변을 기어가던 새끼 소라를 만났다. '시인 조병화'가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뒤로 50년, 조병화는 50권 넘는 시집을 채울 만큼 엄청난 양의 시들을 쏟아냈다. 그에게 월미도 소라의 나선형 껍질은 마르지 않는 시의 샘이 되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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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3]고유섭作 ' 해변(海邊)에 살기' 지면기사
해변(海邊)에 살기 1. 소성(邵城)은 해변(海邊)이지요 그러나 그 성(城)터를 볼 수 없어요 차고 찬 하늘과 산이 입 맞출 때에 이는 불길이 녹혔나 보아요 2. 고인(古人)의 미추홀(彌鄒忽)은 해변이지요 그러나 그 성(城)터는 보지 못해요 넘집는 물결이 삼켜 있다가 배앗고 물러갈 젠 백사(白沙)만 남아요 3. 나의 옛집은 해변이지요 그러나 초석(礎石)조차 볼 수 없어요 사방으로 밀쳐 드난 물결이란 참으로 슬퍼요 해변에 살기 -고유섭(1905~1944)한국미술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이 고향 인천을 향한 정을 '미학의 개척자'답게 그려 냈다. 늘 거닐던 백사장, 파도가 이는 그 찰나의 순간에 2천 년의 세월을 담았다. 비류 백제의 전설 미추홀의 흔적은 찾을 길 없건만 그 세월, 파도는 해변의 모래를 삼키고 뱉기를 쉬지 않았다. 우현은 그의 호(號)가 말하듯 가물가물하게 먼 과거에 한참 뒤 미래의 모습까지도 투영시켰다. 지금 있는 것들도 먼 훗날에는 다 사라지고 파도와 모래, 그리고 슬픈 그리움만 남을 것이라고. 읽을수록, 알 듯 말 듯 현묘(玄妙)하다.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 통학하면서 문학을 익힌 우현의 젊을 적 초기 시 5편이 '우현 고유섭 전집'(열화당·2013)에 실렸는데, 여기 '해변에 살기'는 그중 하나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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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2] 이가림作 '밴댕이를 먹으며' 지면기사
밴댕이를 먹으며 무게 없는 사랑을 달아보고 또 달아보느라 늘 입속에 말을 우물거리고만 있는 나 같은 반벙어리 보라는 듯 영종도 막배로 온 중년의 사내 하나 깻잎 초고추장에 비릿한 한 움큼의 사랑을 싸서 애인의 입에 듬뿍 쑤셔 넣어준다 하인천역 앞 옛 청관으로 오르는 북성동 언덕길 수원집에서 밴댕이를 먹으며 나는 무심히 중얼거린다 그렇지 그래 사랑은 비릿한 한 움큼의 부끄러움을 남몰래 서로 입에 넣어주는 일이지… -이가림(1943~2015)지난 6월 21일, 장마전선이 북상 중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푹푹 찌던 한낮의 인천역 앞 북성동 언덕길 어귀. 신태희(74) 서점분(69) 부부가 이 자리에서만 수원집 간판을 내걸고 밴댕이를 판 게 30년이 넘었다. 조용하던 가게에 손님이 들었다. 10여 명이 겨우 앉을 좁은 공간에 노인 4명이 몰려드니 왁자하다. 30년 단골이라는 이들은 앉자마자 밴댕이와 소주를 시켰다. 수원집은 주인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아프기라도 하면 문을 못 연다. 남편은 새벽에 연안부두에서 물건을 떼고, 부인은 손질을 해서 내놓는 분업체계가 확실하다. 노부부의 건강에 수원집 밴댕이를 먹고 못 먹고 하는 문제가 달렸다. 밴댕이로 사랑을 전하려거든 노부부의 건강부터 기원할 일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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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자(富者)의 자격 지면기사
명망 높은 자선가 '유군성'… 졸렬한 치부 '반복창'아파트 분양·테마파크 건설하겠다는 '(주)부영'개발이익 인천에 어떻게 돌려줄지 '훗날 기억' 궁금강화도 월곶에 연미정이라는 유서 깊은 정자가 있다. 염하에서 한강 입구로 이어지는 지점에 있어서 오랜 옛날부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지금도 연미정 바깥에는 해병대 막사가 있다. 고려 때 지어진 연미정은 여러 차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고는 했다. 그중 1931년 있었던 중수(重修)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 월곶이 고향이면서 인천의 대표적 부호였던 유군성이 중수 경비를 댔다. 강화문화원이 1988년에 강화와 관련 있는 옛 시를 모아 펴낸 '강도고금시선(江都古今詩選)'에 유군성의 '연미정중수기'가 실렸다. 편저자는 따로 주석을 달아 유군성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있다. '연미정 중수 의연자 유군성은 월곶리에 살았는데 인천에서 재목상과 정미소를 경영하여 치부하였는데 자선심이 강하였으며 애향심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유군성(1880~1947)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강화에서 인천으로 이주했으며, 여러 장사를 하다가 제재소와 정미소를 운영했다. '유군성 정미소'는 당시 한국인이 운영하던 전국 27곳의 정미소 가운데 가장 많은 자본금을 보유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조선 최고 납세자'로까지 불린 유군성은 다른 부자들과는 달리 돈을 쓰는 쪽에서도 이름을 얻었다. 동산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인천상업전수학교'의 설립을 위해 많은 돈을 내놓는 등 수많은 자선으로 명망을 누렸다. 무너져 내린 연미정을 깔끔하게 다시 짓는 데에도 아낌이 없었다. 그리하여 유군성이란 이름 석 자는 연미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름답게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인천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남은 유군성과 달리 잠시 갑부의 반열에 올랐다가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반복창 같은 이도 있다. 반복창은 개항장 인천에서 투기의 상징인 미두(米豆)로 떼돈을 벌었다. 그는 돈을 좇을 줄만 알았지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했다. 인천의 대표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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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1] 정호승作 '정서진(正西津)' 지면기사
정서진(正西津) 벗이여 지지 않고 어찌 해가 떠오를 수 있겠는가 지지 않고 어찌 해가 눈부실 수 있겠는가 해가 지는 것은 해가 뜨는 것이다 낙엽이 지지 않으면 봄이 오지 않듯이 해는 지지 않으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벗이여 눈물을 그치고 정서진으로 오라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히 노을 지는 정서진의 붉은 수평선을 바라보라 해넘이가 없이 어찌 해돋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해가 지지 않고 어찌 별들이 빛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들 인생의 이 적멸의 순간 해는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찬란하다 해는 지기 때문에 영원하다 - 정호승(1950~)사람들은 동해로 가려는데 시인은 서해로 오라 한다. 사람들은 일출을 희망으로 여기는데 시인은 일몰이 희망이라 한다. 반전이다. 바다면 바다, 농사면 농사, 공장이면 공장, 수많은 일자리가 널려 있어 밑바닥 인생에게도 기회의 터전이 되는 인천은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는 그런 도시다. '정서진'이라는 말이 한양의 궁궐 안 임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서쪽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자면 서울 사람을 부르는 호루라기로 여길 수도 있겠다 싶다. 인천은 그렇게 내일의 희망을 잉태하는 반전의 땅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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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10] 박목월作 '松鶴(송학)' 지면기사
松鶴(송학) 한 그루 老松(노송)을. 굽히지 않는 뜻이 빛 속에 환하네. 새삼 높게 트이는 眼睛(안정) 세상일이 안까지 보이시리니 스스로 흥겨워 너울거리는 가지들 그윽한 솔바람 소리에 귀도 열리고 학이야 千年(천년)을 살기로니 辱(욕)되지 않음이어. 날갯짓 한 번이 無限(무한)을 출렁이네. -박목월(1915~1978)청록파의 시인 박목월이 인천 현대 초등교육의 주춧돌을 놓은 백파 조석기(1899~1976) 선생의 회갑 상에 시 '송학'을 올렸다. 1959년 조석기 선생의 회갑을 맞아 묶은 책 '노변야화'의 첫머리에 실렸다. 백파는 6·25 피란을 가면서도 가족보다는 제자들을 먼저 챙겼고, 경상도 고향 땅을 팔아서 교육 경비를 댔다. 그가 있었기에 전쟁 직후 그 배고픈 시절, 인천 창영초등학교 학생들은 어린이은행을 운영하고 어린이신문을 만들고 골프를 배웠다. 굽히지 않는 한 그루 소나무와 욕되지 않는 학의 날갯짓으로 남은 백파. 지금의 인천 교육은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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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9] 이가림作 '바지락 줍는 사람들' 지면기사
바지락 줍는 사람들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저녁 종소리가천도복숭아 빛깔로포구를 물들일 때하루치의 이삭을 주신모르는 분을 위해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간절함이여거룩하여라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이가림(1943~2015)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땀을 흘리지 않고 손쉽게 돈을 버는 쪽에 더 신경을 쓰고는 한다.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도 않게 되었다. 시인은 20여년 전 송도갯벌의 해질 녘 풍경을 성스러운 눈길로 포착했다. 노동이 종교만큼이나 신성하다는 메시지가 간절하다. 밀레(Millet)의 그 유명한 그림 '이삭 줍는 사람들'이나 '만종'을 떠올리게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천은 그런 땀내나는 삶의 터전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줄 약속의 공간이었다. 계속해서 그런 신성함이 물씬 풍겼으면 좋겠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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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詩, 인천을 짓다·8] 함민복作 '밴댕이' 지면기사
밴댕이팥알만 한 속으로도바다를 이해하고 사셨으니자, 인사드려야지이분이우리 선생님이셔 -함민복(1962~)강화도 사는 시인이 강화의 대표 수산물 밴댕이 속을 참 깊게도 들여다보았다. 밴댕이 속에서 바다를 건져내다니. 밴댕이 속보다도 더 작은 심보를 가진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 늘 안절부절못한다. 정작 남에게는 '밴댕이 소갈딱지네' 하면서 욕을 해댄다. 이 짧은 시 한 편이 우리의 좁디좁은 속과 바다만큼이나 너른 밴댕이 속에 관하여 오래도록 생각하게 한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위 시를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시면 선정과정을 거쳐 인천대학교 기념품, 또는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이 지은 책 '한국문학의 산실, 인천문학전람'을 드립니다. 감상문 작성은 경인일보 홈페이지(www.kyeongin.com) '인천의 시, 인천을 짓다' 배너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