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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신년특집]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말만 듣고 ‘뉴스를 편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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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K] 김포에서 태어난 검단면, 인천에서 검단동이 된 사연
국민의힘이 쏘아올린 '김포시 서울 편입' 논란이 난리다. 해묵은 논쟁인 줄 알았던 경기남·북도 분리 논의가 민선8기 들어 본격화됐고,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전보다 훨씬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와중이었다.예나 지금이나 행정구역 개편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산업화시대가 종식된 후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국토 개발에 대해선 '균형'에 방점 찍은 지 오래됐고, 최근엔 지방소멸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게다가 정책적 숙의 과정 없이 일단 '던지고 본' 측면이 강해 '서울시민'이란 타이틀을 미끼 삼아 수도권 민심을 잡으려는 총선카드로 오해받기 딱 좋다.일단 논란 자체는 파급력이 상당하다. 경기도 뿐 아니라 인천까지 들썩이며 수도권을 헤집고 있다. 모두 가능한 이야기일까, 과연 그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궁금이 커졌다.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열심히 옛 기사를 뒤져보았다. 그리고 김포군 검단면에서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동이 된 사연을 찾았다. 서울시 김포구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검단동의 과거와 현재는 엿 볼 수 있으니.(1994년 9월 8일 지면보기 클릭) 1994년 9월 8일자 경인일보 '인천광역화 경기·인천 입장' 기사에는 경기와 인천의 행정구역 개편 문제가 보도됐다. 이때의 시작은 인천 '광역화'를 통해 수도권 서부벨트를 개발하고 '21세기 환태평양 경제권 중핵도시'로 성장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됐다. 당시 내무부는 김포군, 옹진군, 강화군, 시흥시 전역을 포함하는 안과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양촌리 일부를 포함하는 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편입을 반대하는 경기도와 찬성하는 인천시를 사이에 두고 내무부의 고민이 깊다는 게 기사의 골자다. 여기서 눈 여겨볼 건 이 대목이다.'한편 경인지역 정치권에서는 양 지자체간의 영역분쟁에 일체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추이를 관망한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이 개입할 경우 국가경쟁력 강화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행정구역 개편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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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사람이 쓴다·(6)] 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에든버러에서 본 '도시의 미래' 지면기사
경기도 도시 재생에 빼놓을 수 없는 난제 중 하나는 '문화재'다. 예나 지금이나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한반도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개발을 위해 땅을 파면 유물이 발견되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큰 만큼, 종종 공사가 멈추기도 한다. 그러한 배경으로 인해 우리의 인식 속의 문화재는 위대한 유산이기보다 부담스러운 짐처럼 여겨지기 일쑤다. 지난 9월 초,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코틀랜드 대표도시 '에든버러'를 찾았다. 에든버러는 유럽의 중세 그 자체였다. 지은 지 몇백년도 더 돼 보이는 고전적인 건물들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루에 한번 대포를 쏘는 고성(故城)의 풍경도 이색적으로 다가왔다.고성은 1437년부터 스코틀랜드 옛 수도 에든버러를 상징하는 에든버러 캐슬이다. 그 배경을 뒤로 버스와 트램이 정신없이 오가고, 사람들이 바삐 오가며 일상을 보내는 거리의 풍경은 생경할 정도다. 가장 인상 깊은 거리의 모습은 마차 시절 조성됐을 법한 울퉁불퉁 돌길과 자동차가 다니는 매끄러운 아스팔트 길이 공존한 것이다.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지정 '에든버러'고전적 건물 가득찬 중세 유럽 모습 그대로울퉁불퉁 돌길-아스팔트 길 공존 '깊은 인상'이같은 공존은 에든버러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에든버러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올드타운은 타운 전체가 타임머신과 같았다. 타운의 전체적인 모습과 건물, 사방으로 이어진 길 모두 700여년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이는 건물이 지닌 오래된 역사에 가치를 더 매기는 사회적 인식 덕인데, 이 곳 사람들은 지금까지 개보수를 하며 옛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우리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을 보존하기 위한 중요한 개조 작업을 수행 중 - 기록보관소 보수작업 안내문 올드타운 중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로열마일은 특히 옛 건물에서 식당과 카페, 상점 등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풍경이 비단 에든버러 핵심 관광지에서만 볼수 있는 특이한 장면은 아니다. 길을 걷다보면 개보수 중인 건물과 안내문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꼭 관광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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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K] 인현동 화재참사 24주년… 증명이 필요한 슬픔은 없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던가/그럴리 없다고/그럴수 없다고/우리들은 모두 머리 저어 '말도 안돼'만 외쳤던 그날!…너희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무너지고 무너지는 세상에/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단다''이제 세상은 몇 번이나 더 무너져야만 할까/벌써 그리운 이름 된 너희들을 생각하며…용서하렴 무기력한 선생님을/진실로 너희를 사랑하지 못한 어른들을/너희에게 더 많은 사랑 주지 못했다고 우시는 부모님을/너희와 그 고통의 순간 함께 하지 못한 우리들을/너희를 보호하지 못한 현실을' - 희생학생들이 다녔던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국어교사의 추도시1999년 화재로 57명 숨진 사건대부분 인천지역 중·고등학생市 '술 마신 학생 잘못' 책임 돌려"폐쇄명령처분… 책임 없다" 주장 2022년 이태원 참사… 반복된 비극피해자 향한 시선은 비정하기만1999년 10월 30일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의 한 호프집에서 불이 났다. 유난히 날이 좋았던 10월의 마지막 주말, 인천지역 상당수 고등학교들의 가을축제가 끝나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 생각에 신나고 들뜬 마음으로 가득했을 주말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이 사고로 57명이 목숨을 잃었고 79명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대부분 인천지역의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이었다.11월 1일자 경인일보에는 참담했던 그날의 현장이 생생히 담겼다. "불길은 놀라운 속도로 혀를 낼름거리며 지하계단을 타고 호프집의 유일한 출입구 쪽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독한 유독성 가스를 내뿜으면서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죽음이 다가오는 줄 몰랐다. 그러다 누군가 "불이야, 대피, 대피"라고 외치면서 실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호프집 내부는 완전 전소되지 않고 출입구 쪽을 중심으로 불에 그을린 상태로 연기만 자욱해 사상자들은 대부분 유독가스에 질식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자들은 출입구 반대쪽 주방에서 50여명, 테이블 사이 3개 통로에서 20여명씩 무더기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바닥에는 운동화와 가방, 깨진 맥주잔, 휴대폰 등이 널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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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사람이 쓴다·(4)] 코인스트리트 성공 비결 지면기사
주민 커뮤니티가 원동력이 된 런던 도시재생을 이야기하면 '코인 스트리트'를 빼놓을 수 없다. 런던 중심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동쪽에 위치한 코인 스트리트는 원래 공업지대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공장과 창고가 많은 지역이라 산업화 시대가 저물며 함께 쇠락했다. 낡고 허름한 공업지대를 벗어나, 주민 친화적 도시가 된 지금에 이른 데는 주민들이 도시개발을 주도했고 나아가 주민의 삶도 도시와 함께 '재생'됐기 때문이다.또 30년 넘게 도시재생이 성공으로 이어진 데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그 수익을 주민들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주효했다.1970년 정부·민간의 상업지구 재개발반대 시민단체 결성… 7년간 캠페인 전개코인 스트리트는 지역의 이름이면서, 도시재생을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 출발은 주민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정부와 민간기업 주도로 코인스트리트를 상업지구로 재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을 무렵, 당시 주민들은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는 꽤 강력했다. 코인스트리트 대외관계 책임자 케이트 손더스씨는 "당시 노인·아이 할 것 없이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다 같이 참여해 상업지구로 재개발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77년 산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던 주민들은 코인스트리트 개발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결성했고 무려 7년간 캠페인을 벌였다고 했다. 이같은 움직임 속에 1984년 '코인스트리트'의 이름으로 주민들의 사회적 기업이 설립됐고 런던시가 당시 해당 지역의 시 소유 땅을 주민들이 직접 개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케이트씨는 코인 스트리트 도시재생의 성공에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그는 "1984년에 시가 주민에게 도시재생을 맡기는 결정을 하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땅(약 5만2천609㎡)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주민들이 원하는 용도대로 도시재생을 할 수 있었다"며 "보조금 등 당시의 정책은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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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사람이 쓴다·(3)] 도시재생의 핵심 '소셜기능 강화' 지면기사
페캄과 킹스크로스를 통해 본 런던의 도시재생에서 우리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특징이 있다. 이들 지역은 낙후돼 한물간 도심에 '랜드마크'를 만드는 데서 도시재생이 시작된다. 페캄은 이민자 등 비교적 소득수준이 낮은 이들이 자리 잡은 런던 외곽지역 중 하나였고, 킹스크로스는 물류 운송의 허브로 산업혁명시기 가장 잘 나가는 지역 중 하나였지만 변화에 뒤처져 런던의 대표적인 슬럼가로 악명이 높았던 지역이다.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 페캄은 페캄도서관과 레벨스가, 킹스크로스는 역세권 개발로 노후 도심의 상징이 생겨났다.하지만 랜드마크를 세워 도시를 되살리는 작업은 영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하는 방식이다. 랜드마크가 단순히 도시의 상징적 관광지 역할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공유공간으로 제 역할을 하는 데서 런던 도시재생의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도시재생 시민단체인 소셜라이프(Social Life)는 런던 도시재생이 주목하는 핵심을 '소셜(social)'기능, 즉 사회적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설명했다.소득수준 낮은 이들이 사는 런던 페캄독특한 도서관, 문화 커뮤니티로 활용변화에 뒤처져 슬럼화 된 킹스크로스역세권 개발로 주거공간 늘어나 활기니콜라 베이컨 공동대표는 "도시재생은 기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는 정주공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생각의 바탕에는 오랜 시간 숱한 부침을 겪어 온 런던 도시재생의 역사가 있다. 니콜라 대표는 "런던 도시재생도 정부 주도로 진행되며 주택 중심으로만 흐르다 실패를 겪었고, 정부가 각종 규제를 풀어 민간기업들의 상업 중심의 개발들이 도시재생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며 "몇십년 간 실수가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주민들이 모두 떠나며 지역사회가 해체되는 상황을 지켜보았고 이제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페캄의 경우 독특하게 지어진 도서관과 지역의 오래된 마트와 주차장을 리모델링한 영화관·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이 지역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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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K] 헤매는 '수도권 교통문제' 걸어온 길 돌아보니
경기도와 인천이 풀지 못하는 난제 중의 하나가 바로 '교통'이다. 애초에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와 인천의 교통망이 구성되는 측면이 강한데다, 날이 갈수록 경기도와 인천의 거주 인구가 늘어나면서 교통수요가 증가하는데 근본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땜질식 처방만 계속되면서 이제는 '총체적 난국'이 돼버렸다.문제는 총체적 난국이 길어지면서 수도권 지역 간 갈등만 커지고 있다는 점.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갈등요인은 '지하철'. 워낙 정책 수요가 크니, 정치권에선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지하철 공약을 내세우지만 선거가 끝나면 모르쇠로 일관하기 일쑤다. 기대로 잔뜩 부풀었던 지역민들의 허탈감만 커졌고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제는 그 화살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 지하철역을 내가 사는 동네로, 우리 집 앞에 끌어와야 한다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데, '동족상잔'같은 비극이 옆동네, 같은 동네에서도 왕왕 벌어지는 게 경기도·인천의 현실이다.[[관련기사_1]]경인지역의 열차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 서울 근처에 있는 덕(?)에 아주 일찍부터 열차가 도입됐다. 일제강점기에 경인선을 필두로 안양·수원·오산·평택 등을 오가는 경부선이 오갔다. 의정부와 동두천, 연천 등을 오가는 경원선도 경기북부를 지나갔고, 구리·양평 등 경기 동부에는 중앙선을 타면 오갈 수 있었다. 안성선도 있었는데, 충청남도 천안에서 안성까지 운행하는 열차였다.수인선과 수여선의 협궤열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열차의 목적은 오로지 '일제의 수탈'이었다. 쌀, 소금을 비롯해 각종 자원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대량 수송이 필요한 열차가 필요했기 때문에 열차들이 운행됐다.특히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수원과 여주를 오가는 수여선은 용인과 이천, 여주의 질 좋은 농산물을 수원으로 옮겨 일본으로 수송해갔고, 폐선된 후 다시 재개된 수인선의 경우 소래포구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려는 목적으로 부설돼 일제강점기의 아픔으로 기억된다.열차 이후 경기도와 인천에 들어온 것은 전동차다. 주로 서울 지하철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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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헬스
평택 젖소농장서 럼피스킨병 확진, 국내 두번째
충남 서산에 이어 평택의 젖소 농장에서 럼피스킨병(Lumpy Skin Disease) 확진됐다. 국내에서 두번째 사례다.21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평택 A농장에서 채취한 시료를 정밀 검사한 결과 럼피스킨병임을 확인했다고 평택시에 통보했다.20일 충남 서산의 한우농장에서 소 럼피스킨병 첫 확진 이후 두 번째 사례이며 경기도에서 첫 사례다. 해당 농장은 20일 식욕부진 증상을 보이는 젖소를 진료하던 수의사가 럼피스킨병이 의심된다며 방역 당국에 신고했다.이에 경기도가축위생시험소에서 이 농장 젖소의 시료를 채취해 1차 검사한 결과 같은 날 오후 11시 30분께 양성 판정이 나왔다.이후 평택시가 시료를 검역본부로 보내 정밀 검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 럼피스킨병으로 확진됐다.이에 따라 평택시 방역 당국은 해당 농장에서 사육 중인 젖소 92마리를 이날 중 살처분할 예정이다.또 해당 농장 반경 500m 이내를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방역을 강화하고, 지역 보건소에 모기와 진드기 등 흡혈 해충 구제 조치를 요청했다.아울러 10㎞ 이내 343개 농가에서 사육 중인 소 2만3천340마리의 이동을 22일 오후 2시까지 제한하고 이상 증상을 보이는 소가 없는지 예찰을 강화하고 있다.평택시 방역 당국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A농장 외 다른 농장에서 추가 의심 신고는 없는 상황"이라며 "방역을 철저히 해 추가 확진 사례가 없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한편 럼피스킨병은 모기 등 흡혈 곤충에 의해 소만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국내에서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확진된 소는 고열과 지름 2∼5㎝의 피부 결절(단단한 혹)이 나타나며 폐사율은 10%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럼피스킨병은 지난 1929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처음 발생했고 2013년부터는 동유럽, 러시아 등으로 확산했으며, 2019년부터는 아시아 국가로도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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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8주년] 도시는 사람이 쓴다·(1) | 1기 신도시로 돌아본 경기도 '도시 역사' 지면기사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으로 대표되는 경기도 1기 신도시는 1989년 4월 27일 정부가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91년 9월 분당 시범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1기 신도시들이 차츰 신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개발에 걸린 시간이 고작 2년5개월이다. 정부 1989년 분당·일산신도시 건설계획 발표… 개발에 걸린 시간 고작 2년 5개월토지수용방식 결정에 삶의 터전 빼앗긴 주민들… 서울 베드타운화 현실로 나타나'先개발·後계획' 주택건설 빠르게 진행됐지만 교육·의료·상업시설 제대로 못갖춰'사람' 생각하지 않고 졸속으로 짓는 방식, 2·3기도 이어져 각종 사회문제 '골머리' ■ 원주민이 사라진 1기 신도시의 마법개발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5개 지역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된 다음날인 1989년 4월28일자 경인일보에는 '기대 크지만 걱정도 태산'기사가 실렸다. 기사에는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대상지 주변 및 현지주민들은 대체로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표정이었으나 이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이주해 오거나 토지수용량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며 현지 농민들과 원주민들은 오히려 난감해 하는 실정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려는 금세 현실이 됐다. 정부가 신도시 건설을 '토지수용방식'으로 결정하자, 농사·축산업 등 땅을 근거로 생계를 이어온 원주민들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발표 이후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분당과 일산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농민 시위가 일어났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데 땅 주고 보상금을 받아든들, 농사를 천직으로 살아온 자신들(원주민)이 무엇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가냐며 항변했다. 1989년 5월 26일자 경인일보는 신도시 건설 무엇이 문제인가 기획 시리즈를 통해 '서울 사람 위해 왜 우리가 쫓겨나나'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일산지구 신도시는 30개 마을 4천52세대 1만7천800여주민이 살고 있는 전원적인 농촌지역에 세워지게 된다…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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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8주년] 수도권 역사의 증인… 사회에 경종 울린 경인일보의 기사들 지면기사
창간 78년을 맞은 경인일보는 그간 이달의 기자상을 64번 수상했다. 이달의 기자상은 한국기자협회가 1990년 9월부터 협회에 가입된 전국 언론사를 대상으로 보도 기사 중 가장 뛰어난 기사를 선정해 매달 1회 수여하는 상이다.이달의 기자상이 시작된 지 33년이 흘렀는데, 산술적으로만 따져봐도 매년 2개의 수상작을 배출한 셈이다. 단순히 수상 실적이 중요한 게 아니다.경인일보가 수상한 보도기사는 경기도와 인천의 살아있는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한 '史'이다. 또한 지역 사회를 관찰하고 고발하며 어젠다를 던지는 '시대정신'이다.'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 했다. 창간을 맞아 특별판으로 준비한 '레트로K'는 경인일보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을 통해 독자와 함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우리를 고찰한다.사회적 약자 인간사에 빈부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듯, 어느 시대에나 '사회적 약자'는 존재했다. 물자의 풍요를 누리는 현재에도 그건 유효한 진리다. 그래서 그 사회의 선진성을 보여주는 척도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대우다. 경기도·인천의 대표 지역지로서 경인일보가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싣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제 175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인 '어느 청각 장애인의 죽음'은 벌금 70만원을 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청각장애인 가장의 사연을 단독보도하며 시작됐다. 그의 아내가 화성시 궁평항 인근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던 중 화성시 궁평항 어항시설 주변정리사업에 의해 불법 노점행위로 단속돼 검찰에 고발됐다. 법원은 벌금 70만원을 납부하라고 통지했고, 벌금을 내지 못하자 "공판기일까지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때는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며 피고인 소환장을 발부했다. 아내가 구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딸들에게 지워질 멍에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었다. ■ 비장애인인 두 딸(13·10) 만큼은 자신들과 달리 키워보겠다는 일념으로 비좁은 트럭에 몸을 싣고 화성지역 구석구석을 돌며 호떡과 어묵,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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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된 추석] 달뜬 한가위… 올해도 설렘은 변함 없어라 지면기사
[그때 그 시절… 옛 신문속 명절]1983년 '1년의 無故함 조상께 감사' 전통음식·차례상 차리는 법 소개1993년 특집 '고향가는 길' 지도·정비소 수록… '내비' 없던 당시 유용1997년 IMF 사태에 불황 '내려온 김에 눌러 앉을까' 무거운 발걸음도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엔데믹 후 처음 맞는 추석인 데다, 공휴일이 겹친 황금연휴가 되면서 기대감도 크다. 코로나19의 전례 없는 팬데믹을 겪은 지난 3년간 우리네 추석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추석은 여전히 가족의 정을 만끽하는 소중한 명절이기 때문이다.특히 길어진 추석연휴 덕에 고향을 찾는 가족들이 많아지면서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려는 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역 앞에 길게 줄 서서 표를 사야했던 예전의 모습과 달리, 최근엔 100% 온라인 예매로 기차표를 살 수 있게 됐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이미 '클릭전쟁'이 벌어졌고 아쉽게 예매에 실패한 이들은 KTX 홈페이지에 들어가 취소표 구하기에 발을 동동 굴렀다. 심지어 중고거래 플랫폼엔 '웃돈'을 얹어 추석 기간 지방을 오가는 기차표를 판매한다는 글들이 올라오자 철도공사 등에서 단속 강화를 외치고 있다. 당연히 암표를 판매하거나 구입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가려는 분주한 움직임들은 다시 돌아온 우리의 명절을 실감케 한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상저온 탓으로 아직 추수를 마치지 못한 농가가 많은 우리 마을에서도 추석을 맞이하는 설렘은 예년이나 다름없다 ". 1993년 9월 28일자 경인일보는 시리즈물인 '낙향일기'를 통해 1990년대 추석을 맞은 수도권 농촌 지역의 풍경을 그렸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모두 서울로 보낸 윤씨네 집에서는 추석 때만 되면 큰 잔치를 치르는 집처럼 부산스러워진다. 며칠 일찍 내려온 큰 딸이 장만해온 찬거리들과 밭에서 거두어들인 채소와 나물, 생선과 고기 등을 10여명이 훨씬 넘는 대식구들의 식사와 차례준비로 떠들썩하다. 큰 아들과 둘째가 추석 전날 내려오고 손자손녀들과 어울리다보면 정말 사람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