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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윤석열의 정치와 권력'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지면기사
'정치개혁은 사라졌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언급으로 선거제도 개편이 잠깐 주목받긴 했지만 지금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나경원과 유승민은 출마하느냐? 김기현은 결선 없이 당선되느냐?' 그리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구속되느냐? 그 이후 민주당은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하다.엊그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출범했다. 정치개혁을 주제로 한 의원모임은 '화해와 전진포럼' 이후 21년만이고 100명이 넘는 여야 의원이 참여한다. 국회의장은 "2월 말까지 정개특위가 복수안을 만들고 3월에는 전원위원회를 주 2회 이상 열겠다"는 계획이다. 총선 1년 전인 4월10일이 시한이다. 작년 7월 여야합의로 구성된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을 목표로 한다. 현재 20여 개에 가까운 관련 법안이 제출되어있다.국민의힘 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에 강조점을 둔 반면 야당 의원들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추가하며 적게는 3인에서 10인까지의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다. 유권자가 정당추천 후보를 직접 선정하는 개방형 비례대표제와 지역구와 비례제의 비중을 1대 1로 한 법안도 있다.대안은 다양하고 상상력의 영역이다. 소선거구제를 하면서 권역별 비례제를 할 수도 있고 중대선거구제를 하면서 전국 단일 비례제를 할 수도 있다. 권역별 비례제를 연동형으로 하면서 소선거구제나 중대선거구제와도 결합시킬 수도 있다. '승자독식·양당중심 대립 마감' 과제 알고선거구제 바꾸고 개헌 완결땐 정치사 족적 이 대목에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왜 선거제도를 개선하느냐인데, 인구와 지역대표성을 가능한 높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는 '제도적 친화력'인데 선거제도가 다른 정치제도(정부 형태나 대통령 선출방식 등)는 물론 정치문화나 관행 등과 서로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아 시너지를 내야 한다.후자가 중요하다. 중대선거구제는 '승자독식의 양당 혐오정치'에서 '공유와 타협의 다당제 정치'를 향한 대안의 하나로 볼 수는 있다. 어떤 식으로든 비례성과 대표성이 강화된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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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인생의 맛 지면기사
코로나에 걸려 미각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무지 살맛이 안 났다고 한다. 냄새도 못 맡고, 맛도 모르니 사는 맛이 안 났었다는 것이다. 음식의 맛을 못 느끼는 병을 미각장애 또는 미맹(味盲)이라고 한다. 맛에 깜깜(盲)하다는 것이다. 맛을 못 느끼는 병을 미맹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맛을 못 느끼는 병을 생맹(生盲)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삶(生)의 맛에 깜깜하다는 의미다. 어느 날 갑자기 살맛이 안 나고, 재미있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생맹 증상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삶의 맛을 느끼는 센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신적 우울증이나 소진증후군 같은 이름도 생소한 병리현상은 사는 맛에 이상이 생겨서 나타난 것이다. 건강한 자아에 균형이 깨지고, 재미와 의미의 맛을 느끼는 센서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인생 사는 재미와 의미를 모르겠다고 자주 말하고 있는 나를 만난다면 심각하게 치료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갑자기 재미없고 의미없는 삶 '생맹' 의심다양한 문제들 원인… 돈·지위와 상관없어 '중용(中庸)'은 균형 잡힌 인생을 사는 법을 설명하고 있는 고전이다. 균형 잡힌 인생의 극치는 인생의 맛(味)을 알고(知) 사는 것이다. 사는 재미(在味)와 의미(意味)를 음미(吟味)하며 사는 인생이 맛있는 인생이다. 중용에서는 맛을 잃어버린 사람의 병리상태를 '지미(知味)'의 센서에 이상이 생겼다고 정의한다. '사람들은 모두 음식을 먹지만(人莫不飮食也), 제대로 맛을 알고(知味) 먹는 사람이 드물다(鮮能知味也)'. 사람들이 자기중심을 잃고 불균형과 편향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태에 대하여 공자는 맛을 모르는 병에 걸렸다고 정의하고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모르고 먹는 것이나, 인생을 살면서 삶의 맛을 음미하지 못하며 사는 것이나, 같은 병이라는 것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은 항상 넘쳐서 맛을 모르고,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모자라서 맛을 모른다. 성공한 사람은 교만해서 맛을 모르고, 실패한 사람은 우울해서 모른다. 인생의 맛을 알고 산다는 것은 학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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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내 인생사용법 지면기사
가끔 인생 뭐 별거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런 생각은 주로 잠 안 오는 밤에 찾아온다. 물거품처럼 사라진 소규모 인생 계획들, 커피 삼천사백스물 세 잔, 후추와 소금 약간, 대통령 여럿, 쓰라렸던 백수 시절, 21그램도 채 안 되는 키스와 연애, 그리고 무수한 실패. 그게 특별할 것 없던 내 인생사용법이었다. 아들이 생기면 아이에게 야구 글로브를 사주고 둘이 캐치볼을 해야지, 했지만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사느라 바빴던 탓이라는 변명은 비겁하다. 거위처럼 어기적거리며 변명이나 늘어놓는 인생은 비루하다.나이 드니, 그토록 혼란에 감싸였던 인생의 전모가 또렷하게 보인다. 시간이 완전함을 가늠하는 인생의 시험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인생 처음의 시련은 벌에 쏘인 것이다. 설마 여섯 살에 통렬한 아픔 속에서 인생이 녹록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아니다. 벌 쏘인 턱이 금세 부풀고, 마치 불에 덴 듯 따끔거렸다. 외손자를 들쳐 업은 외할머니는 찐 옥수수를 물려주며 달랬다. 벌에 쏘인 그 선연한 통증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요즘 들어 내가 여섯 살이었을 때 엄마라고 알았던 외할머니 얼굴을 자주 떠올린다. 열다섯해 동안 출판편집자 세월 후회 없어돌아보니 인생이란 미친엄마가 품은 태아같아 평생 시 쓰기에 매달렸다. 열다섯 살 때 김소월 시집을 읽고 그 운율을 흉내내어 시를 적었다. 학생잡지 '학원'에 뽑혀서 활자화된 시를 길거리에서 여러 번 읽었다. 그 어린 시절 내가 쉰 해 동안이나 시를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으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시를 환대하고 정중하게 대했다. 시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라 여기고, 급류 같은 사나운 세월을 시라는 난간을 붙잡은 채 건너왔다. 시가 아니라 다른 일을 그토록 열심히 팠더라면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스물일곱 살에 출판사에 사표를 내고 창업을 했다. 1인 출판사였다. 혼자 책상에 엎드려 코를 박고 기획과 원고 교정, 표지 디자인을 다 처리하고 인쇄소며 제본소를 쫓아다니며 제작 감리를 봤다. 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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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토끼처럼 다정하게 지면기사
새해를 알리는 신문에는 맨몸 마라톤이나 바다수영 같은 힘찬 사진이 오르곤한다.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딘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만날 수는 없는, 청룡 주작 봉황 현무 같은 상상속 동물들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가까운 친구가 새해 첫날 아침 제주도 바다에 뛰어든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믿을 수 없는 친구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양력으로는 새해를 맞이했지만 아직 설날이 오지 않아 임인년이다. 호랑이와 토끼 사이의 이 날들은 한해를 돌아보고 맞이하기 적합한 때다. 나의 2022년은 거창하지 않으나 오목조목 잘 놀았던 좋은 한 해였다. 건강·직업·재산·가족, 행복 결정적 요인 아냐가장 연관은 친밀한 인간관계 즉 '친구의 힘' 봄에는 친구들과 ktx를 타고 청주, 공주, 대전 등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녔다. 숲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나누는 이야기는 카페에서 나누는 대화보다 훨씬 밀도가 촘촘하다. 밀린 근황을 나누며 숲길을 한시간쯤 걷고 나서 도토리묵과 청국장 같은 옛날 음식을 먹었다. 누가 충청도 음식이 맛없다고 했는가! 가까운 곳에 아름답고 좋은 곳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그동안 멀고 화려한 것들에 눈이 멀어 누리지 않았을 뿐임을 깨달았다.여름에는 대학 동창들과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입학 30주년이라고 거창한 계획들을 세우다가 코로나 때문에 대폭 축소해서 가까운 속초에 펜션을 잡아 1박으로 놀고 오기로 했다. 여섯 친구들이 SUV의 맨 뒷자리까지 채우고 떠나며 우리에게 MT라는 배타적인 추억의 영역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1990년대 히트곡들을 틀어놓고 우리가 젊었던 날, 휴대폰도 없던 선사시대에 기타를 메고 떠나 종일 노래를 부르고 허름한 숙소에서 코펠에 밥을 지었던 오래된 기억들을 소환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철부지이기도 했다.연말에는 깜짝 선물처럼 중학교 동창들과 35년만에 재회하며 우리를 다시 이어준 SNS의 위력에 감사했다. 단발머리 소녀들이었던 우리는 직업도 사는 곳도 모두 달라진, 그러나 웃는 얼굴은 옛날과 똑같은 중년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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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정치하는 대통령' 지면기사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회복세다. 작년 11월 넷째 주부터 주별 평균 지지율 흐름을 보면 33%, 37%, 37%, 39% 그리고 41%의 오름세가 12월 마지막 주까지 이어진다. 새해 초 조사들도 대부분 40% 초반의 대통령 지지율이다. 반대로 대통령 국정운영의 부정평가는 63%, 60%, 59%, 57%, 57%로 낮아지는 추세다.반전이다. 작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이후 12월27일까지 조사일 기준으로 실시된 여론조사는 모두 222개(면접조사 63개 ARS 159)다. 대통령 지지율이 주별 평균으로 50%를 넘은 것은 취임 이후 딱 5주차까지였다. 이후 대통령 지지율은 주별 평균으로 40%대를 3주 동안 기록한 다음 11월 넷째 주까지 주별 평균으로 30% 초반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8월 첫 주와 둘째 주는 2주 연속으로 주별 평균이 30% 아래로 떨어지기까지 한다.문제는 반전 회복세의 대통령 지지율이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지느냐다. 대통령 임기 중의 총선은 대통령의 중간평가로 대통령 지지율이 여당의 총선승부를 결정한다. 대통령 취임일로부터 멀어지는 선거일수록 대통령과 여당에는 불리하다.내년 총선은 대통령 당선(3월9일)과 취임(5월10일)의 중간인 4월10일로 만 2년의 윤석열 권력심판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정 안정론(44%)'과 '국정 견제론(46%)'이 팽팽하다. 중도층은 '야당후보 지지(48%)'가 '여당후보 지지(37%)'에 앞선다. 올 임기 중간평가 총선 향한 '대통령의 시간'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성과 내는게 핵심 경제상황은 대통령 지지율의 기초인데 무척 나쁘다. 작년 한국경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수출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무역적자 또한 역대 최대치였다. 최근 3개월 연속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희망' 수출도 하락세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현상'은 올해도 이어지고 성장률은 1%대라고 한다. 소상공인의 56%는 경영환경이 작년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현재로서는 올 하반기 세계경제 개선에 따른 회복세를 기대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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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측은지심(惻隱之心) 지면기사
이 엄동설한에 그 고양이는 어디에서 긴 밤을 떨며 견디고 있을까? 문득 아침마다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걱정이 든다. 어느 날 학당 앞에서 배고픈 표정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어, 먹이를 사서 몇 번 주었을 뿐인데, 이 추위에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괜한 걱정이 드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 고양이가 오늘 밤을 무사히 견뎌내고 아침에 먹이를 먹으러 와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무엇일까? 공자는 그것을 사랑(愛)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란다(愛之欲其生, 애지욕기생)'. 논어의 짤막한 이 구절은 인생을 살면서 자주 가슴 떨리게 하는 구절이다. 사랑은 아끼는 마음이다. 아끼는 대상은 잘 살아 있기를 바란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상처 없이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그 차를 아끼기 때문이다. 내 자식, 부모형제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어 대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그 고양이가 이 추운 겨울을 잘 보내고 살아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와 인과 관계가 있듯 없든, 인간이라면 타자의 불행에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고, 타자의 불행에 대하여 차마 참지 못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유교의 마음 이론이다. 안 보이는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고, 보이는 타자의 불행에 대한 슬픔이 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나와 아무 관련없는 존재의 아픔 공감하고불행 두고보지 못하는 인간 '아름다운 존재'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박노해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측은지심과 불인지심이 느껴진다. 측은(惻隱)은 내가 모르는 이(隱)에 대한 슬픔(惻)이다. 불인(不忍)은 내 눈앞에 벌어지는 불행을 참지(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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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늦게 찾아온 그리움 지면기사
자고 일어나니, 간밤에 폭설이 내렸는지 천지간이 하얗다. 키가 큰 전나무 가지마다 쌓인 눈이 소담하다. 전나무 너머 너른 회색빛 하늘 아래 먼 산도 순백이다. 고요가 켜켜이 쌓인 날에는 턴테이블에 즐겨듣는 음반을 찾아 올리자. 오늘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자. 음악이 주는 환희와 위안에 기대어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자. 음악의 무아지경 속에서 마음의 격랑은 잦아들고 가슴은 기쁨으로 벅차오른다. 폭설이 내린 날에도 생명 가진 것들은 몸을 움직여 먹이를 찾느라 바쁘다. 먹고 사는 일은 사람이나 담비와 족제비들, 말과 황소들, 뭇 조류에게도 생명의 숭고한 업이다. 산수유나무 가지에 달린 빨간 열매를 쪼으러 곤줄박이 몇 마리가 날아든다. 곤줄박이가 산수유 열매를 쪼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일하러 나간 어머니를 종일 기다리던 어린 날의 저녁들, 붉은 피에 잠긴 황혼이 사라지고 어둠 내린 마당을 가로질러 오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서둘러 쌀보다 보리가 많은 밥을 안치던 섣달그믐을 떠올린다. 마당엔 차가운 어둠이 차오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하늘엔 별 한 점도 안 보였다. 저녁밥을 기다리다 지친 소년이 깜빡 잠이 들면 어머니는 기어코 흔들어 깨운다. 소년은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 중이다. 그런 소년이 한밤중 밥상 앞에서 목구멍으로 넘기던 밥은 꺼끌꺼끌 했다. 그 시절 남루함 견디고 살 용기 준 어머니그 태양이 사라진후 세상 텅 비고 어두워 가난은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남루와 모욕을 견디고 살 만큼 용기를 준 것은 어머니다. 오, 열이 펄펄 끓던 소년의 이마에 차가운 손을 얹던 어머니,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세요! 계절은 삐걱거리는 거룻배처럼 흘러가고, 당신 가슴 속 숨은 비탄과 환희는 감히 짐작조차 못하던 소년은 늙어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졌어요. 자식을 위해 늦은 저녁밥을 짓고, 구호물자로 받아온 우유를 데우던 어머니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겐 날마다 뜨는 태양이다. 그 태양이 사라진 세상은 텅 비고 어둠은 고집 센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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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김장을 담그며 지면기사
어릴 때 나는 왠지 김장 담그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들은 진정한 어른이다'라고 혼자 속으로 존경심을 가지곤 했다. 초겨울이면 리어카에 실린 배추 더미가 이집 저집 마당으로 들어가고 동네 여기저기서 김장을 담갔다. 산더미 같은 배추와 커다란 함지박에 담긴 고춧가루 양념, 고무장갑을 끼고 목에 수건을 둘렀지만 추위로 코가 빨개진 여자 어른들. 고른 두께로 곱게 썰린 무채와 비린내가 나는 젓갈, 알싸한 마늘과 생강. 노란 배춧속과 붉은 고춧가루와 푸른 쪽파가 이루는 선명한 색채의 대비. 그것은 정말이지 오감을 자극하는 현장이었다. 부드럽게 절여진 배추 사이사이 김장소를 채워서 장독에 차곡차곡 쌓으면 1년치 식탁을 책임질 김장이 되었다. 나는 가끔 절인 배추에 빨간 양념을 바르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어린아이의 부드러운 피부에 매운 양념이 닿으면 안 된다고, 어른들은 재미삼아 한 두 번 발라보게 한 후 서둘러 나를 부엌에서 쫓아냈다. 어린 내가 보기에 김장은 고된 노동과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삶의 현장이었고 사람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성대한 기준 중 하나는 김장을 담그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김장을 담근 이웃들이 한번 맛이나 보라며 접시에 담은 김치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김장철이면 삶은 돼지고기와 생굴과 갓 담근 김치가 저녁상에 자주 올랐다. 나는 삶은 돼지고기를 조금 먹었을 뿐 굴도 날김치도 먹지 않았으므로 내 입장에서는 김장철이면 오히려 먹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만은 즐겼다. 김치와 함께 부침개나 내가 먹을만한 것들이 따라오는 일도 있었고, 집집마다 김치의 맛과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도 흥미로웠다. 옆집에서 온 김치 갈피에서 조그만 새끼 조기가 통째로 발견된 날 우리 가족들은 한참 웃었다. 우리는 김장김치에 해물을 많이 넣지 않았으므로 그 작은 생선을 김치와 함께 으적으적 씹어 먹어치울 자신은 아무도 없었고 양념을 씻어내고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 어떻겠냐는 우스개가 저녁 식탁을 오갔다. 김치 갈피를 헤치며 '여기도! 여기도!'하고 작은 생선들을 찾아냈던 그 저녁은 어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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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여야의 리더십을 주목한다 지면기사
최근 여야 리더십이 주목받는다. 여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인식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며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자격기준과 선출방식 등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번 주 취임 100일을 넘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파장이 이어지는 양상이다.국민의힘 전당대회는 3월 초순이 유력해 보인다. 정진석 비대위 임기가 3월13일까지라는 게 일단 기준 시점이다. 그 전이냐 그 후냐 정도가 쟁점인데 비대위 체제를 가능한 빨리 정상화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문제는 누가 차기 당 대표로 적합하느냐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대처가 가능하며 (상식·공정·정의의 미래) MZ세대에 인기가 있어야 하고 안정적으로 공천을 할 수 있는 대표"여야 한다고 하자, 한 쪽에서는 "수도권 출신 당 대표론은 지역감정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거론되는 당권주자 중에서 당 대표를 뽑느냐, 좀 늦더라도 새로 사람을 찾아서 하느냐 이런 문제도 정리가 안 됐다"는 언급은 '한동훈 차출설'에 다시 불을 붙였다.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 리 없다"고 반박하고, 한 장관 본인이 직접 "중요한 일 많아 장관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국힘 '한동훈 차출설' 결국 대통령에 부담지지율 하락 민주, 이재명 대표 위상 위협 '한동훈 차출설'은 결국 대통령에게 부담이다. 물론 대통령은 한동훈 논란에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윤심이 한동훈에게 있다는 것을 띄워서 국민과 당원의 반응을 보려했다"는 해석은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지만, "관저 갔다 와야지 (당 대표에) 낙점이 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를 남겼다.많은 사람들이 7대 3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비율을 9대 1로 바꾸자는 주장은 "수양버들 당 대표"를 향한 구체적 실행수단이라고 해석한다. "당 대표는 우리 당원들이 뽑는 것"이라고 하자 "특정후보를 배제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룰 변경 오해"를 받는다고 한다. 정당들이 국민세금 받는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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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한파(寒波)를 마주하는 방법 지면기사
한파(寒波)는 글자 그대로 차가운(寒, cold) 파도(波, wave)다.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져 갑작스러운 매서운 겨울 추위가 파도처럼 몰려올 때 한파 주의보나 한파 경보를 발령한다. 시골에서 한파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 수도관이 얼지 않게 하는 일이다. 계량기가 동파되지 않도록 이불로 싸고, 여기저기 바람 들어오는 구멍도 막아야 한다. 그런데 막상 영하 10도의 한파를 맞이해 보면 그냥저냥 견딜 만하다.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해서인지, 아니면 매서운 추위가 올 것이라 마음의 채비를 단단히 해서인지 생각했던 만큼 차가운 파도가 아니다. 위기는 미리 알고 맞이하면 위기가 아니다. 아무런 준비와 예측 없이 맞이한 위기가 진짜 위기다. 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고, 예상하지 못했을 때 그 피해가 커진다. 아열대 지역인 대만에서 영상 4도에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90명이 숨졌다는 소식도 있고, 인도나 홍콩에서 영상 기온의 추위에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는 뉴스도 들린다. 경험도 없고, 준비도 하지 않으면 작은 파도에도 쉽게 무너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경험·준비하지 않으면 작은파도에도 붕괴안정된 조직 순식간 몰락은 '호언장담' 때문 인생의 여정에도 한파가 있다. 그러나 예측한 대부분의 한파는 잘 견뎌낸다. 건강이나 재정적 어려움이 예측이 되었다면 이미 대비도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부지런히 건강을 체크하고 조심하면 그만큼 다가올 위기의 강도는 낮아진다. 불확실한 경제상황에 대비하여 비용을 줄이고 대비하면 경제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련의 파도를 아무런 대비 없이 마주하면 쉽게 넘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마 이 정도에 내가 무너지겠어?'라는 자만과 안도가 파도의 크기를 더욱 키운다. 아무런 준비 없이 호언장담하며 맞이한 시련이기에 순식간에 붕괴를 만나게 된다. '조직이 혼란(亂)에 빠지는 것은 안정(治)되었다고 안심할 때 시작된다(亂生於治, 난생어치). 용기(勇)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