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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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11년 만에 돌아온 '마지막 해고자' 김득중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장 지면기사
'10년내 해결' 공감대 일괄아닌 순차 복직 선택버텨온 46명에 10여일전 '무기 연기' 통보 상식밖일각 '추가 정부지원·복수노조 우려'탓 이해안돼구속된후 아내가 일해 가족들에게 가장 '빈자리'당시 勞 대화해결 노력… 정부 반노동정책 희생양기업 위기땐 노사 머리 맞대고 정부 역할 찾아야지난 7일 쌍용자동차 마지막 복직자들이 공장 정문으로 들어섰다. 돌아오기까지 10년7개월이 걸렸다. 46명의 해고 복직자는 사원증은 받지 못하고 사번만 부여받았다. 복직은 됐으나 생산라인에는 투입할 수 없다는 게 쌍용차의 입장이다. 복직 출근 5일째인 13일 평택에서 김득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을 만났다.- 세어보니 2014년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 당시, 2018년 이낙연 총리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지난해 한 번 이렇게 3차례 공장에 들어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방문이 아니라 복직자로 공장에 돌아가게 된 건 햇수로 11년 만입니다."예전엔 해결이 안 된 상태였잖아요. 한 발 건너서 바라봤죠. 반가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2014년에도 정문 앞에서 인사를 했는데(2009년 파업부터) 한참 지난 시간이었지만 낯설거나 다가가기 어렵지 않았어요. 그때와 차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복직자로, 쌍용차 직원으로 신분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동료들이 제가 쌍용차 직원이 됐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죠. 생산 라인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지나가다가 혹은 식당에서 동료들을 만나면 반갑게 맞아 주기도 하고, 이 상황을 잘 모르는 분들은 '저 사람이 왜 여기 들어왔지' 이러기도 합니다."- 복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나온 2018년 9월 21일부터 오늘(13일)이 꼬박 480일째 되는 날이더군요."당시 이 문제를 만 10년은 넘기지 말자는 공감대가 있어서 사측과 노조가 한 발씩 양보해서 합의했죠(노조는 전원 일괄 복직 대신 순차 복직을 택했고, 46명은 마지막 순서로 복직이 예정된 해고자들이다). 우선 71명이 복직을 해야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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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이달 정식 개장 인천 독서·문화·가구융합공간 '베리굿타임' 황찬희 대표 지면기사
베스트리빙과 민간서 드물게 염전로 인근에 조성공연·전시 개최… 공장지대 물류창고 화려한 변신수백명 모임가능 북콘서트·독서동아리 '특화장소'곳곳 책 놓인 '가구 판매장' 소파등 마음껏 이용을'꿈의 우체통' 사연 받아서 '실현' 1년간 지원 계획인천 미추홀구 염전로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인근엔 공장들이 줄지어 있다. 그중 형형색색으로 외관을 꾸민 건물이 있다. 복합문화 공간이자 가구 판매장인 '베리굿타임'이다. 가구를 보관했던 물류창고를 1년6개월 동안 새롭게 단장했다. 지난달 베리굿타임의 본격적인 개장을 앞두고 '베리 굿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었는데, 수천 명이 다녀가는 등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베리굿타임은 이달 중 정식 개장한다.베리굿타임은 주변에 있는 건물과 다를 바 없는 창고였다. 가구 판매·제조기업인 (주)베스트리빙이 가구를 보관하는 용도로 썼다. 베스트리빙과 디자인기업인 '시오데코' 황찬희 대표가 뜻을 모아 베리굿타임을 탄생시켰다. 베스트리빙은 공간을 제공하고, 시오데코 황찬희 대표가 공간 활용 등에 대한 기획을 총괄했다. 베리굿타임은 민간에서 만든 독서·문화공간이며 이처럼 대규모로 복합문화공간을 민간에서 조성한 사례는 흔치 않다. 특히 가구와 독서·문화를 융합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른 문화공간과 차별성을 지닌다. 베리굿타임 황찬희 대표는 "베리굿타임은 '시간을 파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그는 "베리굿타임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가구를 판매하기도 한다"며 "많은 분이 이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공간을 마련했고, 그러한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베리굿타임은 크게 1층 커피숍 '사랑해', 2층 'VGT존'과 '베북존'으로 구성됐다. VGT존은 가구 제품의 전시장 역할을 하면서 공간 곳곳에 '책'이 스며 있다. 벽면에 책이 꽂혀 있는가 하면, 전시된 가구에 책이 놓여 있기도 했다. 가구를 사지 않더라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건물 가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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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경기도 출신 첫 농협중앙회장 꿈꾸며… '두번째 도전' 나선 이성희 前낙생농협조합장 지면기사
#24대 선거 주요 공약·대표 계획은농가 안정적 소득제도 '월급제'등 주력유통 개선·4차 혁명맞춰 농업 디지털화#현재 농촌 상황·경제 진단개도국 지위 포기따른 경쟁력 강화책과잉생산 조절·예측시스템 구축 필요#앞으로 농협중앙회의 역할은인력·농경지 감소에 공동체 유지 '과제'농축협 이익 증진·발전 '기본'에 충실"현재 우리 농업·농촌이 처한 국내외 환경은 미·중 무역분쟁, 농업 개도국 지위 포기, 가축 질병, 고령화 등으로 어느 때보다 어렵습니다. 45년 넘게 농협에 몸담아 온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농협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제24대 농협중앙회장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이성희 전 낙생농협조합장이 제23대 농협중앙회장선거에 이어 두 번째 위대한 도전에 나섰다. 직전 선거에서는 아쉽게 떨어졌지만, 그는 농협과 농민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으기로 했다.■ 농협중앙회장 두 번째 위대한 도전인데지난 23일 성남에서 만난 이 후보자는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중앙회장 선거에 대해선 전문인답게 명확한 답변을 했다.그는 농협중앙회장에 다시 도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기존에 상상하지도,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변화가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며 "향후 10년의 농업환경도 과거 100년간의 변화보다 더 클 것으로 전망되는데, 준비가 없다면 도태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우리 농업 발전에 힘을 보태기로 다시 마음을 먹었다"고 출사표를 던졌다.이어 "그동안 농협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경기도 농민들은 상대적으로 타지방에 비해 비싼 땅값 등 환경적 요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며 "경기도 최초로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된다면 경기 농민은 물론 우리나라 농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밝혔다.그는 농촌농협에서 30년, 도시농협에서 8년, 중앙회에서 7년 등 총 45년간 농협에 몸담아 온 대표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농업과 농촌, 농협에 대해 풍부한 경험이 있다고 자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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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모범사례 꼽히는 '국내 최대 스포츠클럽' PEC스포츠아카데미 백성욱 대표 지면기사
정부 '생활체육 활성' 좋지만 日정책 유사 우리문화 융합돼야승패 없앤 화합방식에 지원 더하면 엘리트 스포츠 발전할 것아동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종목 투자·육성 '공로' 표창 다수'수평적 관계·동기 부여'로 직원들과 협업 매출 성장 일궈내"우리나라의 체육정책은 공급자·행정 중심이 아닌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수요자 중심으로 변해야 합니다."수원과 용인, 화성 동탄 등 경기 남부권을 중심으로 한 국내 최대의 스포츠클럽인 백성욱(45) PEC스포츠아카데미 대표가 화제다. 비록 개인이 설립해 운영하는 클럽이지만, 생활체육에서 엘리트(전문)체육 육성에 이르기까지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정부 주도의 공공 스포츠클럽과 경기도교육청의 G-스포츠클럽 등 관련 정책의 모범사례로 꼽힐 수 있기 때문이다. 1만명의 회원이 다니고 있는 PEC스포츠아카데미는 수원·용인 일대에 8개의 본점과 지점을, 5천명의 회원을 보유한 아이풀 역시 권선·동탄·죽전·수지·영통·일산에서 가동 중인 가운데 유소년 회원만 1만4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축구를 비롯해 야구·농구·인라인 등 다양한 종목의 클럽을 육성하고 있다.백 대표는 국내에서 추진 중인 스포츠클럽에 대해 "정부와 경기도교육청에서 관심을 갖고 생활체육 지원·육성에 힘을 싣는 것은 좋다"면서 "경우에 따라 운동선수 출신이 아니더라도 체육을 잘 이해할 줄 알고, 존중과 사랑이 있는 인물이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그러면서도 "현재 한국에 도입해 운영 중인 스포츠클럽은 일본의 정책과 매우 유사하다.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다른데, 별도의 연구나 한국화를 거치지 않은 체육정책을 거의 그대로 도입한 것과 같다. 또는 지역 스포츠 클럽의 연계를 통해 추진하는 등 시행착오를 거쳤어야 했다"며 "지난해 경기도체육회의 '생활체육 혁신모델'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클럽이 인성 교육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만족도를 보였다. 우리의 문화와 정책을 융합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급작스러운 변화는 결국 엘리트체육을 망가뜨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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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20여년간 향토역사 발굴 '외길' 강덕우 인천 개항장연구소 대표 지면기사
인천서 옥살이 청년 김창수에서 '김구' 변화 계기 의미심장한 곳싸리재길·우각로… 탈출로·모친 눈물 스민 옥바라지길등 남아문화관광자원 활용 '위대한 인물 잉태' 신포동일대 널리 알려야타 지역과 항구도시등 함께 연구 '내용·외형적 범위' 확장할 것백범 김구가 인천을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라고 부른 이유는 그가 청년 김창수에서 독립운동의 주역 김구로 다시 태어난 계기가 됐던 곳이기 때문이다. 백범은 인천에서 두 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인천에서의 담금질로 그의 삶은 더 단단해졌고,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인천의 역사학계도 백범 김구의 인천 행적과 발자국을 쫓아 의미를 알리는 일에 나섰다. 20년 가까이 인천시 역사자료관에서 인천 역사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헌신했던 강덕우(63) 개항장연구소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백범 김구는 독립운동가로서의 명성에 비해 청년 시절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구 선생 일생 전체를 살폈을 때 그가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바로 치하포 사건과 그로 인한 인천 옥살이입니다."강덕우 대표는 지난 8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천이 백범 김구를 기억하고 조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강덕우 대표는 올해 인천 중구와 함께 백범 김구를 중심으로 한 인천의 독립운동 역사 문화 콘텐츠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강 대표가 언급한 치하포사건은 1896년 3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반감으로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한 사건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해주부에 체포됐다가 외국인 사건을 담당하던 인천감리서로 이송돼 옥살이했다. 김구는 여기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강덕우 대표는 "해주에서 체포된 백범이 인천으로 온 것은 인천감리서 개항장재판소에서는 일본이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인천과 백범 김구의 역사적인 만남은 일본에 의해 이뤄진 셈"이라고 설명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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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정장선 평택시장 평택항 출입국 지연 발빠른 대처 '눈길' 지면기사
정원 1500명 페리 취항후 '최대 7시간' 정체 현상국회의원·CIQ등 관계기관 불러모아 해결책 모색자동심사대 설치 휴게공간 확대 인력 충원등 나서입국 수속에 최대 7시간이 걸리는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출입국 지연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정장선 평택시장은 관계 기관 회의 개최 등 발 빠른 대응에 들어갔다. 평택시는 법무부 인력 확충 요청을 비롯해 입국심사확인증 발급기 설치 운영, 자동출입국심사대 설치를 위한 본예산 편성 등 승객들의 터미널 이용 불편을 최소화 하기 위한 대책들을 발표했고 CIQ(세관, 출입국사무소, 검역본부) 등 관계 기관들의 협조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정 시장을 통해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시설 확충을 위한 평택시를 비롯한 관계 기관들의 노력과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이 앞으로 나가야 할 청사진을 들어봤다.3일 평택시청에서 만난 정 시장은 입국 심사에서 최대 7시간까지 지연되는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상황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고 되돌아봤다.정 시장은 "A선사가 지난 9월 신규 항로를 개설했고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여객터미널로 들어오면서 입출국 정체 현상이 벌어졌다"며 "승객들이 늘어나게 되면 반겨야 하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입국 지연 등 불편 사항으로 이어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실제 지난 10월 A선사가 정원 1천500명을 실을 수 있는 신규 페리를 취항하면서 휴게소 수용 인원 부족, 출입국 사무소 인력 부족 등으로 입국 심사 지연 사태가 반복되고 있었다.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의 10월 한 달 이용객은 전월에 비해 49% 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문제가 불거지자 평택시는 지난달 13일 조찬간담회를 개최하고 평택시, 바른미래당 유의동 국회의원, CIQ 등 관계 기관들과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의 애로사항을 논의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평택시는 자동출입국심사대 설치(4억5천만원), 출국장 시설 개선(1억원) 등을 위해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로 했으며, 여객터미널 이용객을 위한 휴게 공간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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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제1회 이용악 문학상' 수상한 인천 김영승 시인 지면기사
번민 많이해… 문인 이름 내건 상에 '권위'가 부여되길 바라북방정서 함축 평가 수상작 '저항', 나름의 '인간 선언' 담아20~70대 다양한 연령 꾸준한 발걸음에 25년째 문화원 강의주자의 시경 수업·발표작등 하나하나 정리해 책 내놓을 것인천의 김영승(61) 시인이 이달 초 '제1회 이용악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지난해 여름에 발표한 시 '저항'이었다.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은 계간 '문학청춘'은 통일시대를 염원하면서 민족시인 이용악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용악 문학상'을 제정했으며, 그 첫 수상자로 김영승 시인을 선정해 시상했다. 심사위원회는 '저항'에 대해 "세심한 언어 선택에 고심하면서 주제를 내면화하려는 응축의 미학을 겨냥한 흔적을 보여준다"며 "시인이 축적해온 시적 성취의 연장선에서 공동체적인 연민과 연대 의식을 함축하면서 북방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손색없다"고 평했다.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이용악(1914~1971)은 1930년대 서정주, 오장환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북방시인으로 불린 이용악의 시는 주로 강한 의지력, 침통한 정조, 예민한 감수성과 풍부한 사상성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용악 문학상' 수상 후 2주 정도 지난 22일 김영승 시인을 만났다. 인천 미추홀구 석암초교 인근의 카페 '안단테 에스프레시보'에서였다. 시 모임 카페로도 잘 알려진 이 곳은 지난달 김 시인의 '시경(詩經) 낭송회'가 펼쳐지기도 했다. 수상 소감을 묻자 김 시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이용악은 백석만큼 작품이 많진 않지만, 시의 톤이 굵고 북방적 정서가 짙죠. 많이 꾸미려 들지도 않았어요. 월북작가이다 보니 다소 희소성도 있기 때문에 문학상의 형태로 접근했다고 보고요. 시상의 주체를 떠나서 저 김영승이 제1회 수상자로서 이 상에 권위가 부여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수상 수락까지 번민을 하다가, 강하게 의미 부여하기로 하고 수락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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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책 브레인·30년 지기' 이한주 경기연구원 원장 지면기사
그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때로는 한 발짝 뒤에 서 있었고, 때로는 몇 발짝 앞에서 그를 이끌었다. 그럼에도 비교적 베일에 싸여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책 브레인'으로 불리는 이한주 경기연구원 원장 이야기다.이 원장과 이 지사는 30년 지기다. 실용주의·공정이 핵심인 이 지사의 정책 철학을 마련해준 멘토였고 성남시장일 때도, 도지사에 당선됐을 때도 시·도정의 큰 그림을 그리는 설계 총책임자였다. 곁에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치열하게 달렸다. 경제학자로서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는데 부단한 노력을 쏟았고,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번듯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각종 학내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상대적으로 이 지사의 멘토, 정책 브레인으로만 조명됐던 이 원장의 이야기를 19일 오전 그의 집무실에서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법정 다툼 속 기로에 서 있는 이 지사, 그리고 그가 총괄하는 경기연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李지사·성남과 인연은 어떻게배무기 은사 권유로 경원대서 교수직'철거민' 모습 경제학도에 자못 '충격'"실질적 도움주자" 시민운동서 알게돼# 호헌철폐 교수 성명 1호, 중심에 서 있던 젊은 교수6·10 민주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 조치에서부터 불붙었다. 직선제로의 개헌이 좌초될 위기 속 전국 대학교수들은 일제히 시국 성명을 발표했다. 첫 번째 성명은 설립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성남시의 작은 대학에서 나왔다. 중심에는 당시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던 젊은 교수가 있었다. 이 원장이었다.나무 냄새가 좋아 목수를 하고 싶던 소년은 서울대학교에 진학 후 경제학도가 됐다. 지금의 가천대와 연을 맺은 것도 당시 은사였던 배무기 전 울산대학교 총장 때문이었다. 이 원장은 "제게는 아버지 같은 분인데, 그분 밑에서 오래 있었다. 어느 날 그분이 경원대에 가서 강연을 하고 오라더라. 어딘지도 모르는데, 아버지 같은 분이 말씀하시니까 무턱대고 갔다"며 "당시는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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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인천 출신 첫 '전국항운노조연맹' 수장 선출된 최두영 인천항운노조 위원장 지면기사
#'부산' 제치고 당선 9월 취임했는데IMF때도 물동량 늘었는데 최근 '정체'영광스럽지만 어려운 상황 어깨 무거워#인천항 물동량 감소 심각… 대안은일자리 창출 효과 큰 벌크화물 유치 필요중고차 수출 '남항 클러스터' 조성 시급#'내항 재개발 사업' 속도 조절론'성공모델' 獨 하펜시티 항만 운영 '공존'1·8부두엔 주거시설 2~7부두 기능 유지를우리나라 노동운동은 항만에서 처음 시작됐다. 1898년 함흥 성진부두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항만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일제에 저항했다. 해방 이후인 1949년 3월 항운노동조합의 모태인 대한노총 전국항만자유노동조합연맹이 출범했다. 이후 7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명칭은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으로 바뀌었고, 항만뿐만 아니라 철도·연안·농수산시장·정기화물·창고 등 국내 물류산업 종사자 2만5천여 명이 참여하는 거대 노조가 됐다. 노조의 모습은 크게 변화했으나, 지난 70년 동안 전국항운노조연맹 위원장은 부산 지역에서 도맡아 왔다. 전체 연맹 조합원 중 부산항운노동조합 조합원이 3분의 1에 달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전국항운노조연맹 위원장에 도전하기도 어려웠다.올해 9월 열린 전국항운노조연맹 대의원대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인천 출신이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인천항운노동조합 최두영(55) 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최 위원장은 "인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전국연맹 위원장에 오른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물류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취임했기 때문에 어깨가 매우 무겁다"고 했다. 이어 "선발투수가 아닌 구원투수로 투입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조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최 위원장은 "우리나라 항만이 역사상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하며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전체 항만 물동량은 12억1천525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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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어우러짐&나눔 실천하는 남양주 천년고찰 '봉선사 새 주지' 초격 스님 지면기사
20대 사미승으로 머물러 추억서려… 30여년만에 고향온 듯 감회 새로워지난달 취임법회때 화환 대신 '지역 쌀' 받아 소외이웃에 전달 '상생'청소년쉼터등 운영 '함께 행복한 세상' 꿈꿔… 교회찾아 '화합' 행보도스님들 '청빈·봉사 삶' 펼칠 수 있게 노후대책등 수행환경 보장하고파가을이 깊어가는 봉선사에는 스님들의 빗자루에 모여진 낙엽들이 연신 바스락 소리를 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소실돼 여러 차례 중건되기는 했지만, 광릉숲에서 이어지는 고즈넉한 풍광과 잘 어우러진 절의 분위기는 천년고찰(969년 창건)의 면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남양주와 포천 등 경기북부 지역에 84개 말사를 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조선 시대 승과시가 치러졌던 곳. 전국의 승려와 신도들을 대상으로 교학 진흥의 중추기관 역할을 해온 교종본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돼 지난달 25일 취임법회를 연 초격스님은 1987년 바로 이 곳에서 사미계를 받을 만큼 봉선사와 인연이 깊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듯 부처님의 인연에 따라 되돌아 온 것일까, 파릇파릇하던 20대 사미승은 30여 년만에 명실상부 '큰스님'으로 돌아왔다. 휴대전화 컬러링에 가수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 흘러 나오는 사람, 천일기도에 묵언까지 병행하면서 성탄절에는 교회와 성당을 찾아 축하인사를 하는 승려, 삼성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을 이끌어내며 '문화재 제자리 찾기'운동의 첫 불을 지폈던 행동가 초격스님을 봉선사 경내에서 만났다. "봉선사는 젊은 나이에 뛰놀던 곳입니다. 청년의 나이로 큰스님을 시봉했죠. 연꽃이 피고 지는 연못과 그 곳의 자라 한 마리까지 곳곳에 추억이 서려 있습니다. 속세로 치자면, 서울로 공부하러 갔다가 나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온 셈인가요, 감회가 새롭습니다."30여년만에 돌아온 절은 놀랍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사찰 곳곳이 잘 정비되고 신도와 관광객도 크게 늘었지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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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대 이사장 지선 스님 지면기사
#한국 민주사 100년 소회는'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 섣부른 자부심 경계과거엔 이데올로기 미래엔 종교가 '방해 요소'#진보 서초동-보수 광화문 '대립 상황'헤게모니 쟁탈전 불과 둘다 민주화에 도움안돼욕망 버려야… 헌신하지 않는 사회 장래 어두워#교단 반대 무릅쓰고 헌신수행 목적은 나만 깨닫는 것이 아닌 세속 구제가르침은 '현실적인 모순' 극복하기 위해 필요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지선 스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사를 아우르는'민주·인권·평화 박람회'를 29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개최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이번 박람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전시, 포럼 등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사를 조망한다.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지난 2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6대 이사장 지선스님이 방장으로 있는 백양사를 찾았다.단풍을 기다려온 상추객들이 벌써부터 산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눈에 담고, 지선 스님에게 한국 민주사 100년을 맞이하는 감회를 들었다.지선 스님은 1980~9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종교계 인사다.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성공회 서울대성당 종탑에 올라 민주화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 같은 해 구속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초를 당했다. 30여년이 지난 지난해 비민주, 비인권의 상징물인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모했다. 2022년 정식 개관을 목표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선스님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이 돼 이런 변화를 지켜봤다. # "민주화 운동은 인류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입니다."10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아우르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때, 지선 스님은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섣부른 자부심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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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옛 추억 상기시킨 '신포동 포크음악축제' 주역 인천 출신 디스크자키 김유철씨 지면기사
일하다 건강 나빠져 요양 음악다방 매일 찾으니 DJ 제의받아 '유명세'1980년대 디스코텍에 밀리며 음반기획사行… 대박·손해 '우여곡절'인천 돌아와 '비틀즈' 운영 신청곡 들려주며 가슴 따뜻한 여행 이어가가을 저녁 인천 중구 신포동에 포크 음악 바람이 일었다. 1960~1980년대 젊은 세대에 큰 영향을 끼친 포크 음악을 주제로 한 '제1회 신포동 포크 음악축제'가 지난 12일과 13일 저녁 신포시장 인근 문화의 거리에서 펼쳐진 것이다. 인천 출신 가수 백영규씨가 기획과 연출을 맡은 이 축제는 거리를 가득 메워준 지역 주민과 음악팬들의 큰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성공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980년대 '음악다방'을 무대에 소환한 점이 성공의 요소 중 하나였다. '음악다방'이 관객들의 옛 추억을 상기시켰고, 그만큼 호응도 컸던 것이다.그 중심에는 1970~1980년대 인천을 주름잡던 디스크자키(DJ) 김유철(62)씨가 있었다. 축제의 오프닝을 맡은 김유철씨는 무대에 재현된 DJ 박스 속에서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멘트와 가수 소개로 관객들을 미소짓게 했다. 특히 옛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도끼빗 DJ(준이 오빠)로 출연했던 인천 출신 배우 윤철형씨가 김씨의 후배 DJ로 출연해 무대 위 DJ 박스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옛 DJ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어 팝페라그룹 엘루체의 리더가 김씨를 찾아와 새로 나온 음반을 건네며 꼭 좀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도 수십년 전 모습이었다. 이에 김씨는 축제 무대에서 엘루체가 부를 'Perhaps Love'를 멋들어지게 소개하면서 관객들을 음악의 세계로 안내했다.김씨에게 30여년 전 우리 대중 문화에 영향을 끼친 DJ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지난 21일 오후 김씨가 운영하는 인천문화예술회관 인근 뮤직카페 '비틀즈'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4년째 '비틀즈'를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벽을 가득 메운 9천여장의 LP판들 앞에서 옛 DJ 방식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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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1970년대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산실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최연봉씨 지면기사
국내 최초 女지부장 선출된 곳… 입사후 근기법 배우며 노조 알게돼출퇴근 시간 지키기·식사시간 30분 확보등 근로조건 개선위해 투쟁사측 똥물 투척등 탄압에 맞서 알몸시위·단식농성 항의 124명 쫓겨나40년이 지났어도 '노조활동 방해 책임' 국가배상소송 여전히 싸움중인천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 온 인천여성노동자회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인천여성노동자회는 1970~80년대 활발하게 펼쳐졌던 인천 여성노동운동을 주춧돌 삼아 창립했다. 인천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다룰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들이 있다.바로 1970년대 동일방직 인천공장의 여성노동자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사측의 노조 무력화 시도와 기관의 탄압에 맞섰다. 이들이 있어 동일방직 인천공장은 1970년대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산실이라고 불렸다.동일방직 해고노동자인 최연봉(64)씨가 인천여성노동자회 30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열린 여성노동자 토크콘서트에서 1970년대 대표로 나와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했다. 14일 부평아트센터에서 최연봉씨를 만나 동일방직 해고노동자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최연봉씨는 1970년대 동일방직 인천공장에서 일하며 사측의 노조 탄압에 맞서 싸우던 여성노동자 중 한 명이다. 당시 동일방직 노조에서 총무차장으로도 활동하며 여성노동자의 권익 증진을 위해 앞장섰다. 전북 김제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최연봉씨는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가정형편 등 문제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배움에 대한 미련이 있었던 그는 일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큰언니가 살고 있던 인천으로 올라왔다. 화수동의 솜공장에서 2년간 일하던 최연봉씨는 1975년 언니 지인의 소개로 동일방직에 입사했다. 당시 동일방직은 1972년 우리나라 최초로 노조 여성지부장이 선출된 이후 노조의 요구로 여성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 등이 이뤄지고 있었다. 최연봉씨는 입사 후 3개월이 지나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에서 근로기준법 공부를 하게 되면서 노조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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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경기실내악축제 예술감독 맡은 첼리스트 송영훈 지면기사
#제안을 승낙하게 된 배경은20대 중반부터 세계 각국 축제 많이 다녀직접 무대 꾸며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중점을 두고 준비한 것이 있다면낯선 장르인 만큼 쉬운 곡들로 프로 구성계속 접하다 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을것#지역 축제 아쉬움도 느꼈다는데너무 쉽게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최고의 연주로 오래도록 이어지게 할 것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인데 첼리스트 송영훈은 한 분야에서만 37년을 활동했다. 그가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음악이 주는 가르침과 새로운 매력 때문이다. 송영훈은 "첼로를 아무리 오래 했어도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를 선물하기 위해 지금도 학생의 자세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시간을 거슬러 보면 그의 길다면 긴 음악 사랑은 이미 어린 나이부터 예고됐다.그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를 통해 클래식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당시 그는 어린 연주자임에도 불구 당찬 연주를 선보이며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세계 최고의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음대, 영국 왕립 노던 음악원, 시벨리우스 아카데미까지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며 연주실력을 쌓아왔다.이런 음악 내공을 바탕으로 그는 세계 무대로 발을 넓혀 활약했다. 솔로이스트로서 잉글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 뉴욕 체임버 오케스트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세계적인 연주자로 거듭났다. 또 클래식의 매력을 대중에게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라디오 DJ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 라디오 진행을 다시 맡아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첼로를 연습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가고 있다. 첼로를 통해 보람, 뿌듯함, 곡에 대한 수 많은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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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중앙정치 핵심' 꼽히는 전해철 국회 예결위 간사 지면기사
#2020년도 513조 '슈퍼예산' 어떻게일본 수출규제 대응·경제 활력 되살리기 '집중 투자'GTX-A·미군공여지 지원등 합리적 요구 반영 노력정부가 총 513조5천억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의 심의를 받고 있다. 세계 경기 둔화와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내년도 우리 경제에 그늘이 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확장적 재정운용에 나선 것이다. 경기도에서도 국비 확보에 사활을 걸고 각종 현안 사업이 국가 예산안에 포함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지난달 국회 예결위 간사를 맡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해철(안산 상록갑) 의원은 "광역 예산뿐 아니라 각 기초단위에서 꼭 필요한 사업들도 의견을 들어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친문의 핵심인사이자, 이해찬 대표의 특보단장을 맡아 중앙 정치에서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히면서도 신안산선 개통과 같은 지역 현안을 꼼꼼히 살피기로 유명한 전해철 의원에게서 내년도 정부의 구상과 경기도의 현안, 그리고 내년도 제21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2020년도를 미리 본다.■ 예산으로 본 2020년 대한민국전해철 의원은 최근 수차례의 고사 끝에 국회 예결위 간사직을 수락했다. 민주당은 이번 예결위가 총선을 앞두고 특히 중요한 시점인 만큼 당내 사정을 잘 알고 추진력이 강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전 의원에 대한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꼭 총선이 아니더라도 이번 예결위는 정부의 '슈퍼예산'을 다룬다는 점에서 예년보다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 대비 9.3% 증가한 513조5천억원 규모의 2020년 예산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산업 육성 예산과 미래성장 동력 중심으로 국가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등 '혁신성장 속도 내기'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전 의원은 "일본의 수출 규제와 경제 보복 조치에 맞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하는데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2조1천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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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국내외 악재 속 '기업대변 발벗은' 추연옥 초대 경기중소기업회장 지면기사
적자 회사를 1년만에 '흑자로' 덜 자고 덜 먹고 고생해 기업 힘든 점 잘 알아전국 4곳중 1곳 경기도에 둥지 '中企특화지역'불구 정부·지자체 관심 부족노란우산공제 지원 강원도의 20% 불과등 '상대적 박탈감 문제' 해결 절실이미 완성된 대기업 주어진 일만 하고 정년 불안… 청년들 중소기업 도전을"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어려움을 해소해야 합니다. '안돼', '못해'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고 경기도 내 중소기업이 합심한다면 희망의 날은 꼭 올 겁니다."초대 경기중소기업회장으로 취임한 추연옥 회장은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 국내외적으로 산재해 있는 악재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내 중소기업들에 이같이 당부했다. 추 회장은 1981년 합성수지 제조사 영광산업을 인수한 이후 지난 10여 년간 지역상공회의소 운영위원, 중기협동조합 이사 등 지역 기반의 경영활동을 통해 2013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인천경기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경인지역 합성수지 관련 중소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중소기업중앙회는 2007년 도입해 운영해 온 지역 회장제를 지난 3월 지역중소기업회장제로 개편했다. 선출 과정이나 자격 등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지역 중소기업계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오피니언 리더로서 역할을 확대하기 위함이다.도내 중소기업 대표 역할을 맡고 있는 추 회장도 과거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1972년부터 건설사 등에서 일하던 추 회장은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로 해외파견을 나갔다 국내로 귀국한 이후 매형이 운영하던 영광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추 회장은 경찰로 근무하다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에 영광산업을 차린 매형이 사업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설득 끝에 영광산업을 본인이 운영하기 시작했다.회사를 살릴 방안을 고민하던 추 회장은 해외 에서는 쇼핑팩 사용이 보편화 됐는데, 국내에는 쇼핑팩을 사용하는 곳이 없다는 아이디어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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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첫 회부터 올해 19회까지 '인천바로알기종주단' 이끄는 이동열 단장 지면기사
동료들과 청량산~마니산 도보여행 계기 2000년 청소년 종주 본격화초기 예산난에 비 오면 물바다 '열악' 한때 중단… 시민 관심에 재개참여자들 성인돼 찾아오면 '멘토'로 활용 학생과 소통 '선순환' 이어져"청소년들이 인천 곳곳을 걸으며 인천이 고향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지난달, 60여명의 인천지역 중·고등학생들이 6박 7일간 서해5도인 백령도와 대청도를 두 발로 누볐다. 무더운 여름 이들이 걸은 거리는 100㎞가 넘는다. 이들은 인천바로알기종주단 단원들이다. 이름 그대로 '인천을 바로 알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은 매년 여름 100㎞가 넘는 인천지역 곳곳을 걷는다. 올해로 19회를 맞았다. 지금까지 종주단을 거쳐간 학생만 약 2천명. 이동열(64) 인천바로알기종주단장은 1회 때부터 이들과 모든 여정을 함께 하며 종주단을 직접 이끌고 있다.■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시작이동열 단장이 처음 종주단을 시작한 건 1999년이다. 21세기의 시작을 앞둔 이 단장은 2000년의 시작을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서 맞고자 했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이 단장은 차량이 아니라 도보를 택했다. 마니산을 목표로 14명의 동료들과 함께 연수구 청량산부터 걷기 시작했다. 청량산~남동구 만월산~부평구 원적산~계양구 계양산~강화대교를 거쳐 3박 4일의 종주 끝에 2000년 1월 1일 마니산 참성단에 올랐다. 이 여정이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시작이 됐다. 이동열 단장은 "처음부터 종주단을 만들 목적은 아니었지만, 계속 걸으면서 인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요즘 청소년들은 인천에 살더라도 주로 사는 지역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데, 이들에게 인천의 여러 길을 보여주고 인천에 대해 알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이 단장은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청소년들을 모집해 인천 종주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100명이 넘는 참여 인원이 몰리는 등 관심이 뜨거웠다.하지만 종주단을 매년 이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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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수원 '화성연구회' 김충영 이사장 지면기사
신분·성별 구분 통념깨고 궁중·민간연희 함께 진행 '이례적'정리의궤등 기록 철저 고증… 올해 재현행사 완성도 높여예산탓에 '실제 장소' 낙남헌 아닌 화서문서 공연 '아쉬움'"낙성연이 가진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원형 보존이 필요합니다"올해로 축조 223주년을 맞은 수원화성을 연구하기 위한 자발적 시민모임인 '화성연구회'김충영 이사장은 낙성연에 대해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잔치"라고 설명했다. 1796년(정조 20) 10월 16일 화성행궁 낙남헌에서는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가 열렸다.'낙성연'이다. 시연은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이뤄졌다. 정조대왕 탄신 258주기를 기념한 그해 11월 수원 화성행궁 내 낙남헌에서 시민과 외국인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성 축성 기념 낙성연(落成宴)'이 최초로 선보였다.낙성연은 정조대왕이 1796년 10월16일 당시 국왕을 중심으로 신분과 성별이 구분되는 잔치가 일반적이었던 사회적 통념을 깨고, 백성 모두가 함께 어울리도록 지시해 개최된 최초의 시민축제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시연된 낙성연은 구체적인 문헌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화성성역의궤'에 '낙성연도'라는 그림과 전문가들의 고증을 토대로 최대한 당시 상황과 가깝게 재현됐다.올해 열리는 제56회 수원화성문화제(10월3일부터 6일까지) 전야제 행사로 10월 2일에 화서문 일원에서 재현되는 낙성연은 지난 2016년 7월 한글본 정리의궤 권 39 성역도(화성성역의궤)가 발견되면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낙성연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화성연구회 김 이사장은 "낙성연은 정조대왕이 특별 지시해 마련한 잔치로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다"며 "정조대왕이 특별 지시해 궁중행사로는 이례적으로 축성에 참여한 감독관과 기술자 및 일용노동자와 일반 백성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낙성잔치를 즐겼다는데 의미가 있고 그 행사를 보게될 것"이라고 말했다.특히 그는 " 화성행궁 보계 위에서는 축성에 참여한 관료들과 경기도 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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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인천 노동자자주관리기업 키친아트 전신, 치열했던 투쟁의 역사 '경동산업' 노동자들 지면기사
열악한 근로조건 '악명' 사측 구사대로 노동자 습격구속된 동료 돕는다 '해고' 농성·분신으로 이어져고통스런 기억 안 떠나… 30년간 거르지 않고 추모부도후 재탄생 '키친아트' 개인 아닌 모두의 것돼야1980년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굵직굵직한 일이 많았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렸고, 전국을 휩쓴 민주화운동 영향으로 헌법이 개정돼 대통령선거는 직선제로 바뀌었다. 경동산업 노동자들에게 이 시기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1985년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투쟁이 있었고, 1987년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쟁의가 있었다. 이때 수십 명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30년 전 오늘인 1989년 9월4일엔 회사 측의 부당한 징계 방침에 항의하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故 강현중·김종하 열사다.경동산업은 1960년 서울 구로구에 설립된 국내 최초 양식기 제조기업이다. 냄비와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을 생산했다. 1983년 인천 서구 가좌동에 제2공장을 설립했다. 1980년대 경동산업은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직원들이 과로로 쓰러져 숨지기도 하고, 분신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까지 있었다. 30년이 지났지만, 당시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당시 목숨을 잃은 열사를 추모하고 있다. 최근 경동산업의 후신인 인천 서구 가좌동 (주)키친아트 정문에서는 3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앞서 1980년대 '경동산업 투쟁'의 치열한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을 만났다. 강현중·김종하 열사의 동지들이다.김학철(62)씨는 1987년 해고를 당했다. 당시 경동산업은 저임금과 추가 근로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자녀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 나온 여성 근로자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김학철씨는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4월21일 해고됐다. 이후 김학철씨는 출근 투쟁을 벌이며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을 독려했다.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노동쟁의 중인 다른 사업장과 연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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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취임 1년 '새로운 해법' 제시 나선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지면기사
'기술·보상·정보 미스매치'가 문제의 본질… 교육·청년사업등으로 풀어이론·실천 통합 '연구기능 강화' 효율성 향상·정책 사각지대 해소 '기대'유관기관 4곳 통합·출범 '노하우 발전·시너지 효과' 더 나은 서비스 제공정부와 자치단체의 부단한 노력에도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부터 경력단절여성 등의 재취업 문제, 최근에는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부각되기 시작한 '4060 신중년 문제'까지 되레 다양한 형태로 일자리 문제가 분화하는 양상이다. 날로 그 심각성을 더해가는 듯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최전선에 나선 경기도일자리재단 문진영 대표이사가 취임 1년을 맞았다. 도일자리재단 역시 3년 차로 아직 출범 초기 단계지만, 학자 출신인 문진영 대표는 숱한 연구를 통해 도출한 비전과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조직 안정화에서부터 여러 모습을 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문진영 대표는 '일자리가 단순히 생활의 방도가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이자, 자신의 발전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일자리 문제 해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나섰다.# 일자리문제, 이제는 다른 해법을 제시할 때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고, 경기도 역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자리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문진영 대표는 "일자리 문제는 정책적 의지나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사회 복지 문제의 경우에는 행정력을 동원하면 비교적 결과가 직선적으로 나오지만, 일자리 부분은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그는 "우리 사회의 경제 체질이 전반적으로 강화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게 일자리인데, 경제구조 자체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한계를 마주한 것"이라고 진단했다.문진영 대표는 일자리 문제의 본질은 3가지 미스매치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재단을 통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