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송도국제도시나 청라국제도시처럼 도심 외곽을 확장하는 신도시가 생기면서 구도심 공동화가 가속됐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구도심의 역세권이 침체하는 건 예고된 수순이었다.신도시와 구도심 간 균형을 이룬 발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20여 년 전부터 구도심 곳곳에서 개발 움직임이 일었다. 경인전철 인천 구간 역세권도 이때부터 개발 바람이 불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사업이 좌초되거나 장기간 지연되는 상황이다. 경인전철이 '지상 철도'라는 한계가 명확해 근본적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인천 구도심 역세권 개발 20년 잔혹사경인전철 주요 역세권 개발 움직임은 2000년대 초반 인천시가 구상한 '1거점 2축' 도시재생사업으로 시작됐다. 인천 내항을 거점으로 경인고속도로와 경인전철을 두 축으로 하는 대규모 개발 구상이다. '인천역 복합 역사개발' '동인천역 역세권 개발' '인천대 이전 부지 개발' '숭의운동장 재개발' '경인고속도로 간선화(일반화)' '가정오거리 도시재생사업(루원시티 도시개발사업)' 등이 이때 제시된 도시재생사업이다.당시 인천시는 '바이 인천(BUY INCHEON)'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대대적인 투자 유치 프로젝트를 도시재생사업에 연계하려 했다. 그러나 공공 주도 개발에 대한 주민 반발이 컸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민간 투자 유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공공주도 개발 시장 침체로 좌초주민갈등 키우고 쇠퇴 속도 높여동인천 민자역사 14년째 흉물로인구 감소속 오피스텔 난개발만 인천시가 내놓은 구도심 활성화 대책이 오히려 지역 주민 간 갈등을 키우고 도심 쇠퇴 속도를 높였다. 2007~2008년 지정된 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지구와 제물포역세권 재정비촉진지구는 2010년 지구에서 해제돼 사업이 무산됐다. 2009년 송도국제도시로 떠난 인천대학교 제물포캠퍼스 개발·활용 방안은 10년 넘게 답보 상태다. 2007년 지정된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지구는 '동인천 르네상스 프로젝트' '동인천역 2030 역전 프로젝트' 등 인천시·민간사업자 또는 인천시·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재생사업 추진을 시도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동인천 민자역사는 2009년 쇼핑몰 폐업 후 유치권 행사, 전세권·근저당권 설정 등 각종 송사로 14년째 흉물로 방치돼 있는데, 최근 국토교통부가 철거 후 복합개발 방침을 세웠다.그 결과가 어떤지는 인천연구원이 2021년 11월 낸 이슈브리프 '인천시 원도심 역세권 활성화 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엿볼 수 있다. 보고서를 보면 인천 전체 인구는 점점 늘어나지만, 구도심 역세권 인구는 2010년 96만4천949명에서 2019년 91만7천622명으로 줄었다.역세권 일대 건물 노후화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새로 짓는 건물은 대부분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로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근본적 구조 개선 필요한가인천시는 경인전철 역세권을 마냥 내버려두진 않았다. 인천역사 복합개발을 위해 용도지역과 용적률 등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입지규제최소구역' 사업을 추진했고, 제물포역 남측에도 스타트업 육성 시설 등을 조성하는 'Station-J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인천역세권 재생사업도 계속해서 추진해왔다. 제물포역 북측, 동암역 일대는 공공 주도 재개발인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도화역 북측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주민 동의율이 낮아 철회됐다. 새로운 처방전이 나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전면적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을 재구성해 인천역과 동인천역을 포함한 중구·동구 일대 개발로 확장하는 인천시의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역세권 개발사업에 어떻게 연계될지 주목된다. 인천시는 올 연말까지 진행하는 '제물포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 등을 통해 인천역과 동인천역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지하화 문제 중앙·지방정부 '공약'국토부 특별법·종합계획 가속도 궁극적으로 지상 철도인 경인전철을 지하화하는 '공간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많다. 노후 역세권 중심 고밀도 압축 개발이 택지 조성으로 인한 도시 외곽 미개발지 훼손을 줄이고, 구도심 공동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경인전철 철로가 지역을 단절하고 있는 이상 어떠한 개발 구상도 사업성 확보가 어렵다.경인전철 지하화는 윤석열 대통령과 유정복 인천시장 공약이다. 그 이전에도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단골 공약이었다.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고, 철도 상부 부지를 개발하기 위해선 관련 법률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이 필수다. 수조원이 드는 천문학적 사업비 대비 효용성과 사업성 확보 방안, 민간이 사업에 참여할 경우 개발이익 일부 환수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국토부는 올 상반기 중 경인철도 지하화 추진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하고, 하반기 법정 종합계획 수립에 나설 계획이다. 조상운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인전철 역세권은 철도 주변을 따라 폭이 좁은 도로가 길게 나 있고, 상업지역이라 땅값이 비싸 개발에 한계가 있다"며 "지하화를 연계해 공간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인천 중구 경인전철 인천역 일대 모습. 이 지역은 과거 '인천의 명동'이라 불리며 정치·경제 중심지로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는 낙후한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2023.3.12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 중구 경인전철 인천역 일대 모습. 이 지역은 과거 '인천의 명동'이라 불리며 정치·경제 중심지로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는 낙후한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2023.3.12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 중구 경인전철 인천역 일대 모습. 이 지역은 과거 '인천의 명동'이라 불리며 정치·경제 중심지로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는 낙후한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2023.3.12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민원실 공무원 점심시간 보장해야vs'반차'내고 민원 업무 보러가야 하나 전국적으로 확산 중인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전국 지자체가 각자 운영하는 민원실에 점심시간을 두는 것을 말하는데, 점심시간을 온전히 보장해 달라는 공무원들의 주장과 민원 업무를 보려면 앞으로 반차라도 써야 하느냐는 시민들의 불만이 충돌하고 있다.두 의견의 대립이 이어지자, 점심시간 휴무제 확대 시행을 중단하거나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권고의 목소리를 내는 지자체도 나왔다. 이 가운데 민원실 운영 시간·방법을 자치단체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한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4월 시행을 앞둔 상황이다. 내달부터 조례로 휴무 지정 가능양평·수원 등 도내 5곳 부분 운영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는 낮 12시부터 오후 1시 또는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민원인을 상대하는 민원실 공무원들이 업무를 일시 중단하고 점심시간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제도의 근거는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른 것으로, 공무원의 점심시간을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규정하며 지자체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1시간 범위에서 달리 정해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2017년 경상남도 고성군이 전국에서 최초로 도입했으며 이후 전국 곳곳에서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양평군을 시작으로 해당 제도를 시행하거나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도내 5개 시·군에서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수원시, 오산시, 양주시, 양평군, 여주시다. 양평군이 2017년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운영을 시작했고 2018년 양평군청까지 확대했다. 이중 오산시는 시청을 시작으로 6개동 주민센터까지 늘렸고 양주시와 여주시는 지난 2021년에 각각 시행했다. 수원시의 경우 권선구 권선1동 행정복지센터와 입북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범 시행 후, 지난달부터 오는 6월까지 영통구, 장안구, 팔달구까지 시범 실시기간을 늘렸다."서류 떼려 연차 써야" 시민 불만공노 "제대로 못 쉬고 근무해야"'무인발급' 서툰 노인층 불편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해당 제도를 주장하는 이유는 1시간 점심시간의 '온전한' 보장 즉, 노동권 보장과 맞닿아 있다. 기존 교대 근무로도 일해봤지만, 민원실에 온 민원인들이 쉬고 있는 공무원들을 보고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일하고 있어 1시간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밥만 먹고 바로 업무를 해야 하는 일도 잦았다는 것이다.반면 시민들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정부 24시 등을 이용해 받을 수 없는 민원서류의 경우 직장인의 경우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와야 하는데, 민원실이 점심시간에 문을 닫으면 연차를 쓰지 않고서는 서류를 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무인민원발급기 사용이 서툰 어르신과 같은 취약계층의 불편은 가중된다는 목소리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공직사회 '和色' 시민들 '火色'… "지자체 현장 고려해야")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공무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공공기관 점심휴무제'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3일 오후 점심휴무제가 시범 도입된 수원시 영통구 매탄2동행정복지센터 민원실의 불이 꺼져 있다. 2023.3.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공무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공공기관 점심휴무제'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3일 오후 점심휴무제가 시범 도입된 수원시 영통구 매탄2동행정복지센터 민원실의 불이 꺼져 있다. 2023.3.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 왜 충돌하나공직사회는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를 당연한 권리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점심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데다, 교대 근무로 담당 공무원 부재시 업무 처리가 늦어지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전공노 경기도청지부는 "현재 교대 근무로 하는 지자체 민원실이 많은데, 밥을 일찍 먹고 들어와서 쉬고 있으면 민원인이 저 사람은 왜 쉬느냐고 말한다. 또 자신의 점심시간이어서 쉬고 있는데 옆 동료가 민원이 너무 많으면 어쩔 수 없이 민원 처리를 도울 수밖에 없다"며 "민원인들은 민원이 있을 때만 민원실을 찾지만, 공무원들은 매일 점심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은행만 봐도 은행원은 오후 6시까지 일하지만, 은행 업무는 오후 4시30분에 끝난다는 것을 국민 모두 인식하고 그 전에 은행을 가려고 한다.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가 지금은 불편하겠지만, 이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공노 "교대근무하면 처리지연 일쑤"민원인 "평일 이용시간 없어질 판"반면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무인발급기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어르신 등 무인발급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많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지 않으면 평일에 민원 서류를 뗄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경우도 많다. 공공 서비스인 만큼, 현재처럼 교대 근무로 해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30대 직장인 A씨는 "인감증명서처럼 직접 와야 하는 서류들이 있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야만 올 수 있는데, 민원실이 점심시간이라고 문을 닫으면 앞으로 연차를 쓰고 와야 하는 것인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지역 곳곳에서 논란. 점심시간 휴무제 하려면 조례 바꿔야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 논란은 지난해 홍준표 대구시장 SNS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구 구청장·군수 협의회가 지난해 11월 해당 제도 도입을 예고하면서 오는 4월부터 시범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홍준표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교대 근무'를 해서라도 민원의 공백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 대구지역본부는 '국민과 공무원을 갈라치는 망언'이라고 반발했다. 이후 논란은 격화됐고 결국, 대구시 내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는 잠정 보류됐다. 지난 1월 경상남도에서도 최근 창원시 등에서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 도입을 추진·확대하는 것을 두고 "신중하게 검토하라"고 권고했다.게다가 다음 달부터 행정안전부가 개정한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민원처리법)' 시행령이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되는 내용은 민원처리법 시행령에 '민원실 운영' 조항을 신설한 것으로, 민원실 운영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규정했다. 다만 민원실 운영 시간과 방법을 해당 자치단체 '조례'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앞으로 지자체가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를 운영하려면, 조례를 제정해 규정하도록 한 것이다.내달 법 개정, 지역 곳곳 잇단 논란도입 안하는 道 "여건달라 신중해야" 조례 제정을 두고 앞으로 논란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경기도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해 대구시에서 해당 제도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경기도에서도 내부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경기도청 민원실의 경우 점심시간 대 어르신들의 방문 비율이 높은 점 등을 고려해 해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경기도 관계자는 "경기도 시·군에서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경기도가 일방적으로 여론을 만들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할 수 없다. 각 지자체마다 민원의 수, 지역적 여건 등이 다 다르기 때문"이라며 "각 지자체가 현장 사정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해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공무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공공기관 점심휴무제'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점심휴무제가 시범 도입된 수원시 영통구 매탄2동행정복지센터 민원실의 불이 꺼져 있다. 2023.3.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지난 24일 찾은 시화국가산업단지. 1990년대부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이곳엔 1만개 이상의 업체가 입주해있다. 기계, 전기, 철강, 섬유 등 다양한 업종의 공장들이 길게는 20년 이상 가동돼왔다. 여러 공장들이 단층에 경량 철근 골조를 올리고 조립식 패널을 조립한 형태였다. 현재 비어있는 한 공장의 건축물 구조를 살펴보니 철골 구조에 외벽과 내벽이 모두 샌드위치 패널로 마감됐는데, 인근 공장들도 비슷한 모습이었다.만약 지금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난다면 이곳은 어떨까. 노후 산업단지로 분류되는 이곳은 내진 설계가 대체로 돼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부동산포털을 통해 공장 건축물 다수를 살펴보니 내진설계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철골구조에 패널로 마감한 건축물이 콘크리트나 벽돌로 지은 건축물보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지진 시 공장 등의 붕괴위험에 더해 각종 장비와 화학물질 등이 다수 공장 내에 있어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튀르키예·시리아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전세계적으로 커진 가운데, 경기도·인천시 대부분의 건축물이 지진에 무방비 상태다(2월17일자 1면 보도='튀르키예급 강진' 경기도내 건물 5곳중 4곳 무방비).2017년에야 '내진 의무 대상' 포함대부분 경량 철근에 조립식 패널가동 중단 필요 탓 보강도 어려워 지난해 6월 기준 경기도 건축물의 내진 설계율은 23.7%, 인천시는 19.4%에 불과하다. 해당 통계엔 건축물별 세부 분류가 돼 있지 않아 공장 건축물 등의 내진 설계율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5곳 중 4곳꼴로 내진 설계가 돼 있지 않은 실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전국에서 중소기업이 가장 많이 소재한 경기도는 공장들이 다수 조성돼 있다. 이런 공장 등이 밀집한 산업단지 수 역시 지난해 1분기 기준 192개로 전국에서 경상남도(207개)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다. 문제는 '2층 이상, 연면적 200㎡ 이상 건축물'로 내진 설계 의무 대상이 대폭 확대된 2017년 이전에 완공된 공장이 다수라는 것이다. 해당 규정은 그 이전에 완공한 공장들에 대해선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지진에 노출될 경우 도내 산업계 피해가 비교적 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복수의 공장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공장을 지을 때는 단층으로 경량 철근 골조를 올리고 조립식 패널을 조립해 지었다. 공장 특성상 지진이나 화재 등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단, 내부 공장 설치를 보호하기 위해 패널을 덮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내에 반월국가산단이 있는 안산시 관계자도 "공장 단지에 대한 내진설계 정보를 별도로 집계하진 않고 있지만, 대부분의 공장들이 지어진 지 10년도 더 됐다. 내진 설계가 대부분 돼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각 공장에 내진 설계 보강을 강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주택 등 다른 건축물과 달리 공장은 보강에 따른 기간이나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사유 재산인 공장에 이를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장 관계자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공장 대표는 "인근에 있는 공장 대부분이 1990년대에 지어졌다. 당시에는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거의 없어 공장은 철골에 패널을 올리는 저렴한 구조가 인기를 끌었다. 내진 보강을 한다고 해도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공장도 일정기간 멈춰야 할 텐데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정부 "공공건축 우선… 지원 확대"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각 공장은 사유 재산인데다 다른 보강 사업에 비해 기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어, 내진 보강 의무를 부여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정부에선 우선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내진 보강 작업을 진행한 뒤, 시간을 두고 차차 민간까지 그 지원을 넓혀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2016년 경주·울산 2017년 포항 '흔들'… "노후·위험 공공관리를") /서승택기자 taxi226@kyeongin.com시화국가산업단지 내 공장 대다수는 내진 설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지진 발생 시 붕괴 위험은 물론, 각종 장비와 화학물질 등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시흥시 정왕동 시화국가산업단지 전경. 2023.2.26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시화국가산업단지 내 공장 대다수는 내진 설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지진 발생 시 붕괴 위험은 물론, 각종 장비와 화학물질 등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시흥시 정왕동 시화국가산업단지 전경. 2023.2.26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여파로 국내에서도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내진 설계에 대한 정책적 관심 역시 높아졌다. 정부·지자체가 공공건축물에 대해 내진 성능을 확보해 나가고 있지만, 아직 경기도·인천시 건축물의 내진 설계율은 20%가량에 머무는 등 갈 길은 멀다. 지진 발생 시 그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산업계는 지진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시피 하다. 현황조사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황 속, 정부·지자체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국내 내진 설계 역사는 우리나라의 내진 설계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는데, 1978년 10월 충청남도 홍성 일대에서 진도 5.0 규모의 큰 지진이 발생해 사적 231호인 홍주성곽 일부가 무너졌다. 상당수의 건물도 부서지고 균열이 발생해, 건축물 내진 설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겨났다. 이후 10년여동안 관련 논의가 이어지다, 1988년 '6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 건축물에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최초로 도입됐다.이후 1996년, 2005년, 2009년, 2015년 4차례에 걸쳐 내진 설계 규정이 강화됐다. 그러다 2016년 진도 5.8의 경주 지진과 진도 5.0의 울산 지진, 2017년 진도 5.4의 포항 지진 이후 '2층 이상 또는 연면적 200㎡ 이상 건축물'과 모든 주택에 내진 설계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2017년 제도가 개정됐다. 규정강화 전 건물엔 소급적용 안돼경기·인천 내진설계율 20% 머물러 2017년 이후 설립된 공장은 해당 제도에 따라 내진 설계를 하고, 내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에 지어진 공장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현재 도내 공장 대다수의 내진 설계 여부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내진 보강 시설물 관리는 공공시설물에 한해 관리되고 있다. 공장 단지에 대한 내진 설계 정보는 집계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자율적 내진 보강은 어려워…"노후화, 위험 등급 정해 공공 관리 필요"산업시설의 경우 지진 발생 시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지만, 공장 등 기존에 지어진 건축물에 대한 내진 설계 보강을 기업 자율에 맡기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데다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데 따른 손실도 크기 때문이다.기업 자율적 설계 보강엔 한계 중론현황조사 등 정부·지자체 대응 필요 이에 정부·지자체 등 공공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일본의 경우 지난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내진 설계 기준이 강화된 시점 이전의 건축물이 다수 피해를 입자, 관련 제도를 개정해 내진 설계와 관련한 대대적 개·보수 작업에 돌입했다. 2025년까지 기존에 조성된 건축물 대다수에 대한 내진 설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장은 "대부분의 공장들이 철근 골조에 패널이 올라간 구조로 지어져, 콘크리트나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보단 지진에 대한 위험성이 적은 편"이라면서도 "모든 자재엔 수명 연한이 있다.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경량 철골 모체가 녹슬고 헐거워지면, 약한 강도의 지진이 와도 쉽게 붕괴될 수 있다. 공장의 노후화나 위험 등급을 정해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서승택기자 taxi226@kyeongin.com시화국가산업단지 내 공장 대다수가 내진 설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지진 시 붕괴 위험은 물론, 각종 장비와 화학물질 등으로 인해 2차 피해까지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시흥시 정왕동 시화국가산업단지 전경 2023.2.26.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
경기도 '리본택시'를 아시나요?2년 전 도내 무료 택시 호출앱 서비스 '리본택시'가 출시됐다. 리본택시는 민간 호출앱이지만 지역 상생을 목표로 지역 콜센터, 택시업계 등과 연계해 운영하는 서비스다. 지난 2021년 7월 경기도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과 협약을 맺어 도내에 출범했고, 도는 이듬해 운영 지원 예산을 편성해 힘을 싣고 홍보에 나섰다. 택시 호출업계를 장악한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T)가 '블루' 등 유료 가맹 서비스를 확대하고 호출료를 인상하면서 독과점 논란이 일던 시점에 이를 견제하기 위한 공공 호출앱을 마련하려던 시도였다. '독과점 견제' 대안 서비스로 시작하루 0.29건 배차… 이용저조 여전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도 거리의 도민들은 여전히 "모른다"는 반응이 다수다. 17일 오후 퇴근 시간대 수원역 앞 택시 승강장에서 만난 시민 10명 중 리본택시를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같은 날 성남시 판교역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23)씨는 "택시가 한창 안 잡힐 때 홍보물을 보고 깔아봤는데, 똑같이 (호출이) 잡히지 않아서 이용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실제로 도민들의 리본택시 이용률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도내 전체 택시기사 3만7천여명 가운데 2만5천여명(67%)이 리본택시에 가입했지만, 일 평균 배차 건수는 7천300여건으로 기사 한 명당 하루 한 건도 못 받는 수준(0.29건)이다. 도민 가입자 수도 22만5천명에 불과해 전체 도민 수의 2%가량에 불과하다.카카오T는 최근 가맹택시에 호출을 몰아주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과징금 257억원을 부과받는 등 여전히 같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도내 공공 호출앱은 승객들의 대안이 될 정도로 자리 잡지 못한 실정이다.시군앱도 비슷… 승객 가입률 낮아경기도, 통합교통앱 '똑타'에 편입 논의 도내 시군 단위에서 운영하는 공공 호출앱의 현황도 유사하다. 도내 자체 공공 호출앱을 운영하는 기초자치단체는 4곳(수원·용인·김포·구리)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공공 호출앱은 대체로 지역 택시업계와 협의를 거쳐 출시해 기사 가입률은 95% 이상으로 높지만, 승객 가입률은 전체 인구수 대비 최대 30%를 못 넘겼다. 고양시는 2015년 지자체 최초로 공공 호출앱을 출시했지만 이용량이 저조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3년 전 서비스를 폐지했다.도는 최근 출시한 통합교통플랫폼 '똑타'에 택시 호출 기능을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리본택시는 민간 호출앱과 연계한 서비스로 도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 호출앱은 아니며 운영지원 예산도 (논의 과정에서) 지급이 무산됐다"며 "(택시 호출기능 편입 여부는)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지만 택시업계와의 상생을 목표로 논의를 시작한 단계"라고 밝혔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카카오T 배차율, 공공앱 2배… '황새' 플랫폼 좇는 '뱁새' 지자체)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독과점 논란이 일던 카카오T를 견제하기 위해 경기도와 도내 시군 단위에서 만든 공공 호출앱이 저조한 이용률로 힘을 못쓰고 있다. 사진은 19일 오후 수원역 택시승강장에서 리본택시 어플 화면 뒤로 시민들이 택시에 탑승하고 있다. 2023.2.19.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독과점 논란이 일던 카카오T를 견제하기 위해 경기도와 도내 시군 단위에서 만든 공공 호출앱이 저조한 이용률로 힘을 못쓰고 있다. 사진은 19일 오후 수원역 택시승강장에서 한 시민이 수원시 공공 호출앱인 '수원e택시' 광고가 부착된 택시에 탑승하고 있다. 2023.2.19.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독과점 논란이 일던 카카오T를 견제하기 위해 경기도와 도내 시군 단위에서 만든 공공 호출앱이 저조한 이용률로 힘을 못쓰고 있다. 사진은 19일 오후 수원역 택시승강장에서 한 시민이 수원시 공공 호출앱인 '수원e택시' 광고가 부착된 택시에 탑승하고 있다. 2023.2.19.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
2015년 무료 택시 호출앱이 출시된 이래로 승객들은 더는 전화 콜이나 길거리 배차를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앱 하나로 어디든 택시를 부를 수 있는 편리함에 힘입어 승객들의 택시 이용 양식은 빠르게 바뀌어 갔다. 특히 선두주자 카카오T는 현재 업계 추산 전체 호출량의 90%가량, 하루 평균 300만여건의 호출을 받는 '공룡' 플랫폼으로 성장해 시장을 장악했다.무료로 시작한 서비스에 점차 다양한 유료 옵션이 생기면서 이용 여건 차이가 발생하자 불공정 논란이 제기됐다. 영향력을 경계한 지자체들은 일찌감치 같은 기능의 '공공' 서비스를 내놓으며 견제하기 시작했다.도내에는 고양(2015년)을 시작으로 용인(2016년), 김포(2019년), 구리(2019년), 수원(2021년) 등 5곳이 자체 택시 호출앱을 출시했다. 경기도도 자체 운영 앱은 아니지만 2021년부터 도내 택시조합과 협력해 '리본택시'를 대체 서비스로 관리해 왔다.60~70% 대비 30~40% 경쟁력 뒤져가입률 64%比 수원 14% 등 차이 커 출시한 지 수년씩 흘렀지만 승객들의 가입률은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 지자체의 인구수 대비 가입자 비율을 따졌을 때 도는 2%(22만5천여명), 수원 14.2%(16만9천143명), 용인 27%(29만514명), 김포 13.5%(6만5천530명), 구리 3.6%(6천800명)로 나타났다. 고양시는 이용률 저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2018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카카오T의 누적 가입자수가 전국 인구수 대비 64%(3천300만여명)수준인데다 수도권 이용객이 다수인 점을 감안하면 도내 공공 호출앱의 가입률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공공 호출앱은 기능적으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는 카카오T의 배차 성공률(승객이 호출했을 때 배차가 성사되는 확률)을 60~70% 수준으로 보는데, 도내 공공 호출앱들은 대부분 30~40%(수원 41.9%·김포 41%·구리 39%·용인 30%)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경기도 리본택시의 배차 성공률은 비공개였다. 존재 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정작 이용한들 택시가 잘 잡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 표 참조이렇듯 승객에게 외면받게 된 공공 호출앱은 최근 들어 기사들도 마냥 반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카카오T 가맹에 비해 인센티브 등 혜택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는 심야 호출료 인상 방침으로 가입자가 가장 많은 카카오T에 최대 5천원의 호출료를 붙이고 이중 80~90%는 기사 수익으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같은 콜이 들어와도 카카오T를 선호하게 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지자체 역시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싶어도 함부로 세금을 들여 경쟁하기 껄끄러운 입장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기사분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혜택을 확대하고 싶지만 세금을 들여 과도하게 개입했다가 부작용이 일어날 걱정을 안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심야 호출료 80~90% 기사 수익 등혜택 밀려도 세금 쓰다 부작용 걱정 결국 민간 부문에 세금을 들여 후발 주자로 참여했지만 저조한 실적이 반복되면서 예산을 섣불리 확대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도는 앞서 리본택시가 아닌 자체 공공 호출앱 개발에 착수했지만 자체 추산 구축비용이 200억원에 달하는 등 예산 제약으로 무산됐다. 관계자는 "민간 호출앱은 기업의 논리에 따라 자체적으로 기사들을 관리하면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지만 공공부문에서 자영업자들인 택시업계와 함께 그런 체계를 만들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에 일부 지자체는 택시 호출을 포함한 공공 서비스를 하나의 앱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등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대구시는 공공 배달앱 '대구로'에 택시 호출과 지역화폐 결제 기능을 추가해 올 초부터 통합 운영했는데, 두 달 동안 택시차량 8천여대가 가입해 올해 목표치의 2배를 달성하고 누적 호출은 16만여건 이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도가 출시한 '똑타'도 이러한 통합플랫폼을 지향하지만 교통서비스만을 통합하는데 그쳐 확장성이 우려되며 각 시에서 운영 중인 앱과 중복되는 점도 여전한 과제다. 공공 호출앱을 운영하는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각 시군이 택시업계와 협력하는 형태도 다르고, 지역에 따라 운행 유형도 다른데 제대로 통합 운영이 될지 아직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사진/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독과점 논란이 일던 카카오T를 견제하기 위해 경기도와 도내 시군 단위에서 만든 공공 호출앱이 저조한 이용률로 힘을 못쓰고 있다. 사진은 19일 오후 수원역 택시승강장에서 리본택시 어플 화면 뒤로 시민들이 택시에 탑승하고 있다. 2023.2.19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독과점 논란이 일던 카카오T를 견제하기 위해 경기도와 도내 시군 단위에서 만든 공공 호출앱이 저조한 이용률로 힘을 못쓰고 있다. 사진은 19일 오후 수원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에 탑승하고 있다. 2023.2.19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세계 경제를 크게 뒤흔들었다.각종 원자재 가격이 치솟아 인플레이션이 세계 각국을 덮쳤고, 이로인한 금리 인상은 부동산 등의 경기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초부터 화두가 된 난방비 폭탄 논란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에 따른 LNG 가격 급등이 배경에 있을 정도다. 전쟁의 공포를 직접 느끼진 못하더라도, 경기도·인천시 서민들의 일상에 전쟁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이런 와중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길이 막힌 기업들에겐 전쟁 여파가 좀더 피부에 와닿을 수밖에 없다. 다수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틈새시장을 공략해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경기도내 기업들도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EU(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해 지원을 요청했고, 같은 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 공세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다른 나라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의존도가 높았던 각종 원자재, 식자재 등에 공급난이 발생하면서 가격이 올랐고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각국 경제를 흔들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에 나선 점도 변수가 됐다. 전쟁 장기화에 시장도 충격서 회복세루블화 강세 일부 진출社 매출 상승 다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시장도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 조금씩 흐름을 회복하는 추세다. 러시아 루블화가 오히려 지난해 하반기엔 전쟁 전보다 더 환율이 오르는 등 강세를 보이면서 러시아 현지에 진출해있던 한국기업들 중 일부는 오히려 매출이 전보다 상승하기도 했다.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던 국내 주요 기업들도 하나둘 시장 재진입 기회를 엿보는 추세다. → 그래프 참조■ 위기가 기회될까… 어려움 속 틈새 수요 노리는 경기도 수출기업들전쟁으로 어려움이 커진 수출기업들은 마냥 좌절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여러 고충에도 불구하고 수출을 계속 이어가는가 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화장품 업계가 대표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유럽 화장품 기업들이 러시아 현지에서 대거 철수하자, 그 수요가 경기도를 비롯한 한국 화장품 기업들에 향한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GBC(경기비즈니스센터)를 운영하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하 경과원) 측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유럽 화장품 기업들이 빠져나가면서 러시아 바이어들에게서 화장품 수출 문의가 늘어났다.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K뷰티의 명성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진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에 루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이런 움직임이 더 공고해졌다. 올해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다. 유럽 화장품 철수… 러, 韓수출 문의대금문제 제재 우회 등 다방면 대응 경기도 등도 현지에 진출해있는 기업들이나 수출해온 기업들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점을 두고 있다. 경과원 관계자는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현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기업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점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전쟁 이후 기업들의 최대 난제가 대금 문제였는데, 제재 대상인 러시아은행 대신 다른 은행으로 연계해 송금이 차질을 빚는 일을 막는 등 GBC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다방면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화성시에 소재한 제조업체 A사에 2022년 2월 24일은 악몽의 시작점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일대를 침공한 이날, 러시아 각지로 제품을 수출해오던 A사에도 먹구름이 꼈다. 그리고 1년. A사의 막막함은 여전하다.물량이 줄어들긴 했지만 A사는 어렵사리 러시아 현지로의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제품을 러시아에 보내는 일도, 대금을 받는 일도 매번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로 향하는 배를 구하기가 어려워진 점이 변수다. 선박 수가 감소한 영향이다. 수출 물량이 줄었지만, 그마저도 배에 물건을 채 싣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제품 구매를 위해 샘플을 보내달라는 비교적 가벼운 요청에 응하는 일도 험난해졌다. 이전에는 샘플을 미국계 운송업체를 통해 발송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주도로 러시아 제재가 이뤄지고 있는 점이 변수가 됐다.샘플을 직접 발송하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우즈베키스탄 등을 거쳐서 우회해 보낼 수밖에 없다. 샘플을 보내는 일조차 이중·삼중의 과정을 거쳐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화성시 소재 A사, 막막함 여전운행선박 줄고 달러 결제 제약대금을 받는 문제가 가장 어렵다는 게 A사의 하소연이다.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어려움이 현재진행형이다. A사는 당초 러시아 현지 기업들에게 미국 달러로 수출 제품에 대한 대금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우리나라와 미국 등 48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고, 미국 역시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미국 달러 사용에 제약이 생겼다.이에 중국 위안화를 대안으로 선택했지만, 국내에서 달러만큼 활성화돼 있지는 않은 통화이다 보니 대금 인출이 안 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발생하는 등 불편함이 적지 않다. 바이어에 따라 송금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도 종종 생긴다.제품을 보내놓고 잔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잠못 이루던 날들도 셀 수 없다. 잔금까지 들어와야 제품을 보내는 방식으로 바꾼 이후에도, 대금을 받지 못해 물건을 보내지 못하는 등 문제가 깨끗이 해소되진 못했다.그렇다고 판로를 다른 국가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A사 관계자는 "시간이 지나서 전쟁 직후보다야 여러 문제가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아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불안감과 불편함 속에 수출을 겨우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비단 A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에 대한 경기도내 기업들의 수출액은 반토막이 났다.위안화 거래 활성화 안돼 불편샘플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아세계적 불황에 판로 개척 애로한국무역협회 경기남부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 대한 수출액은 9억2천6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9.5%가 줄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출액은 4천800만 달러, 마찬가지로 49.8% 감소했다. 정확히 집계되진 않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로 수출해 왔던 도내 기업 다수가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도내 또다른 제조업체 B사 관계자는 "지금이야 사정이 나아졌지만 전쟁 발발 후 한동안 정말 힘들었다. 서류도 제대로 오지 않았고 대금도 못 받았었다. 지금은 송금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고, 현지에도 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 표 참조·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원자재·식자재 공급난에 인플레이션… "위기를 기회로" 잰걸음)/강기정·윤혜경기자 hyegyung@kyeongin.com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각지로 제품을 수출해 오던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내 한 수출 기업 창고에서 관계자가 가득 찬 재고를 확인하고 있다. 2023.2.10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이곳(북한산성)은 도성과 가까워서먼 곳의 땅과는 다름이 있다지금 축성의 의논이백성과 함께 들어가겠다는 뜻에서 나왔는데이미 쌓은 후에 어찌 비운 채버려둘 염려가 있겠는가?(숙종실록 中)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하나로 연결한 '조선의 수도성곽과 방어산성'이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되면서 세계유산 등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우리나라의 심의과정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등재목록은 잠정목록 가운데 등재 준비가 잘 된 유산을 선정하는 단계로, 등재신청 추진체계와 연구진의 구성, 등재기준을 충족하는 연구 결과, 보존관리계획 등이 갖춰져 있음을 뜻한다. 3개 성곽 합쳐진 창의적 방어시설백성과 피난할 수 있는 길 '차별성'여민동입 물리적 구현 독보적 증거 그렇다면 조선의 수도성곽과 방어산성은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닐까. 신청유산은 수도를 둘러싼 한양도성과 그 배후의 방어산성인 북한산성, 차단성인 탕춘대성으로 이뤄져 있으며, 평지와 구릉지, 산지의 능선을 이용해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35.3㎞의 대규모 수도 방어성곽이다. 평지에 성곽을 짓고 인근에 산성을 쌓는 이원적 구조와 자연지형을 활용한 성곽 축성기술 등 한반도 수도성곽의 전통을 계승한 이 유산은 통치소를 보호하는 수도성곽과 보장처로서의 방어산성, 피난로 확보를 위한 차단성 등 세 개의 성곽이 연속적이고 유기적으로 합쳐진 창의적인 방어시설이라 할 수 있다.이와 함께 신청유산은 당시 축성기술의 발전과 고도화된 관리체계도 보여준다. 18세기 이후 표준화된 모양의 가공석을 활용한 축성기술이 반영됐으며, 이는 이후에 건설된 각 지역의 성곽 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 축성의 주체로 군영과 장인이 참여하며 관리조직이 전문화·체계화됐고, 이와 관련한 고문헌과 유산 내부의 건물지, 금석문 등의 기록물이 이러한 가치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9월에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 '수도성곽 방어체계와 군사유산'에서 김영수 서울시립대 연구교수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은 식민지 시기, 냉전시대 전쟁, 근대화와 도시화의 격변 속에서도 현재까지 진정성과 완전성을 잘 유지하고 있어 한반도 성곽축성 역사와 유형적 특징,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무엇보다 이곳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여민동입(與民同入)'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독보적인 증거라는 데 있다. 즉, 이전과 달리 전쟁 등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20만명의 백성들과 함께 도성에서 북한산성까지 계획적으로 피난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곳으로 여느 성곽들과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조선의 수도성곽과 방어산성' 세계유산 등재 과제는)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하나로 연결한 '조선의 수도성곽과 방어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돼 세계유산 등재에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 사진은 5일 오후 북한산 용암봉 인근에서 바라본 북한산성의 모습. 2023.2.5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하나로 연결한 '조선의 수도성곽과 방어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돼 세계유산 등재에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 사진은 5일 오후 북한산 용암봉 인근에서 바라본 북한산성의 모습. 2023.2.5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