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급제·막막한 빚… 조상님도 나와 같은 고민했다

자식의 급제·막막한 빚… 조상님도 나와 같은 고민했다

'조선시대 사생활' 엿볼수 있는 책 2권 유력가문 과외 혈안·입시비리 횡행나라 기틀 흔들어… 오늘날과 비슷가족에게 쓴 '조병덕 편지' 1700통 남아사고치는 아들 등 인간적인 개인사 민낯■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이한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328쪽. 1만8천원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흥미롭게 소개하는 '역사 커뮤니케이터' 이한 작가가 조선시대 과거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가 발간됐다. 수능부터 고시까지 전 국가적 관심사인 시험은 500년 전 조선에도 있었다. 모든 출세의 왕도인 과거는 인성과 학식, 국가 경영의 자질 등을 두루 깐깐하게 평가하며 조선의 버팀목이 됐다. 높은 수준을 요구한 대신 급제자에게 부와 명예, 권력이 보장됐으니 시험은 전쟁과도 같았다. 저자는 실록의 기록부터 이황의 편지나 정약용의 문집 같은 개인의 기록까지 과거와 관련된 여러 사료를 찾았다. 책에는 우리 시대에 앞서 시험지옥을 겪었던 선배들의 웃지 못할 일화가 녹아 있다. 1천권 이상의 유교 경전을 외우는 것도 모자라 필체까지 갈고 닦았고, 수많은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유력 가문들은 이름난 학자를 과외 선생으로 데려오기 위해 혈안이었다. 시험장에서는 온갖 부정행위가 시도됐다. 특히 권력형 입시 비리가 횡행하며 조선의 기틀을 흔들기도 했다.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벼슬길에 오른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과 동시에 권세를 누리기 위한 자격과도 같았다. 욕망과 좌절로 가득한 치열한 입시 전쟁은 묘한 동질감과 카타르시스를 전전한다. 하지만 그때도 이러한 입시가 가져온 부정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사리사욕과 각자도생의 현실 앞에 흩어지고 무너져버린 조선의 모습을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비교해볼 만한 일이다.■ 양반의 초상┃하영휘 지음. 궁리 펴냄. 344쪽. 2만5천원일기만큼이나 내밀한 글이 편지다. 체면과 명분을 빼면 시체였던 조선시대 양반의 편지는 민낯을 보여준다. 신간 '양반의 초상'은 조선 후기 유학자 조병덕이 가족에 남긴 편지 모음으로 '양반의 사생활'의 개정판이다. 시문집 '숙재집'으로 알려져 있는 조병덕은 권세를 누리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부 대부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몰락한 처지였다. 그의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조선시대 개인의 서간문으로는 최대 분량으로 1천700여통에 달한다. 주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둘째 아들 조장희에게 보내는 것이 많았는데 양으로 계산하면 6일에 한 번꼴이다. 편지에는 고매하고 점잖은 양반의 모습 대신 민초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한 인간이 담겨 있다. 막막한 생계와 빚 걱정, 속 썩이는 아들에 대한 꾸지람, 만성 신경성 설사로 고생하는 처지, 위계질서가 무너진 사회에 대한 한탄 등. 개인사와 시대를 허심탄회하게 쏟아낸 조병덕은 종종 편지 끝에 이를 남에게 보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고이 간직했다. 그리고 남겨진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양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고문서로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인문학자 하영휘는 한국 근현대서적과 고문서를 소장한 재단법인 아단문고에서 처음 이 편지들을 만났다. 박스 안에 잠들어 있던 편지의 주인이 조병덕이었으며, 그 편지가 가족 간에 주고받았던 것임을 알게 된 저자는 여느 문집과는 다른 '가서(家書)'의 개념을 발견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책은 편지 전문을 본문에 나눠 싣고 중요한 편지는 원본 사진과 석문(탈초), 번역 순으로 실었다. 특히 간찰 사진의 크기를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키워 서체 연구에도 도움이 되도록 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8-22 19:01:04
집중일까 아니면 중독일까… 현대인에게 전하는 진단 ‘집중력의 배신’

집중일까 아니면 중독일까… 현대인에게 전하는 진단 ‘집중력의 배신’

■집중력의 배신┃한덕현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240쪽. 1만7천 원 책상에 진득이 앉아 있는 걸 좀처럼 본 적이 없는 한 어린이. 하지만 퍼즐 맞추기를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밥도 먹지 않고 꼬박 7시간을 한 자리에서 머문다. 집중력이 상당한 듯 보이지만 성적은 좋지 못하다. 이 아이는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집중력의 배신'의 저자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말로 '집중력'이 높은 건지 따져봐야 한다고 냉정하게 되묻는다. 한 교수는 현재 중앙대병원 게임과몰입상담치료센터 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의학에서는 이런 학생을 두고 집중력이 높다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것은 집중력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싫어하는 것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 복잡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할 수 있는 능력이 의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집중력에 더 가깝다"고 진단한다. 이런 행동은 오히려 중독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집중력의 배신'에서는 이런 '집중력'이라는 단어의 오용을 짚어낸다. 1부 '선 넘는 중독, 선 긋는 몰입', 2부 '나를 물들게 하지 않는 뇌 사용법', 3부 '중독, 어디까지가 병인가', 4부 '몰입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등 총 4개의 챕터를 통해 '몰입 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중독과 몰입 사이에서 현대인들이 어떻게 능동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진단한다. 특히 '중독=부정, 몰입=긍정'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다양한 차원으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상황과 개념에 대한 설명 끝에 저자는 문화·기술적 환경에 따라 변하는 상황을 단지 중독이라 단정 짓고 과거의 기준에 따라 대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오히려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의 특징을 알아내고 이것의 장단점을 파악해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진단 기준과 의학적 정의를 내리려는 속도보다 몇십 배나 빠르게 흘러가는 문화적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역설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024-08-22 18:05:26
자아 찾아가는 어린이 위한 그림책이자 어른 위한 동화 ‘나는 공룡이다’ 출간

자아 찾아가는 어린이 위한 그림책이자 어른 위한 동화 ‘나는 공룡이다’ 출간

'자아를 찾아가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자 어른을 위한 동화'. 도서출판 '스토리북'의 그림동화책 '나는 공룡이다'는 다섯 살 늙은 수탉 '꼬꼬'와 다섯 살 어린이 '땡땡이'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 이야기다. 땡땡이는 꼬꼬와 같은 나이인 다섯 살 아이다. 닭의 다섯 살은 할아버지이고, 사람 다섯 살은 꼬맹이다. 꼬꼬는 다섯 살 된 늙은 수탉이다. 나이가 많아 모든 것이 귀찮다. 횟대 위에서 잠자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런 꼬꼬에게 땡땡이가 매일 찾아와 함께 놀자고 한다. 땡땡이는 꼬꼬에게 '익룡의 후예'라며 하늘을 날아보라고 보챈다. 어느 날 땡땡이는 아파서 입원을 했다. 매일 찾아와 귀찮게 굴던 땡땡이가 오지 않자 꼬꼬는 궁금해진다. 늙은 수탉 꼬꼬는 땡땡이의 병문안을 간다. 병원에서 꼬꼬는 무엇으로 땡땡이를 즐겁게 해줄까? ■동화가 된 논어 이야기 논어는 2천500년 전에 살았던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 그림책 속에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붕우신지' 라는 말은 '친구에게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나는 공룡이다' 는 바로 그 단어에서 이야기가 출발 하였다.땡땡이는 꼬꼬가 굥룡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주었다. 그 믿음 하나로 꼬꼬는 무서움을 이겨내고 하늘을 날게 된다. 믿음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구지원·원다정, 두 작가의 컬래버 글을 쓴 구지원 작가는 이야기 지도 만드는 것을 즐기고, 글 쓰는 소리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가다. 지은 책으로는 '리옹, 예술이 흐르는 도시', '글쓰기 수업비법'·'자연에서 노는 아이'(공저)가 있다. 아이들에게 고전의 거대한 문을 조금이라도 살짝 열어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책 속에 담았다. 이 책을 통해 논어의 세계가 아이들에게 친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픽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원다정 그림작가는 사람과 동물, 자연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고 싶어하는 작가다. 그림 한 장에 터치 하나 하나 올리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탁월한 감각을 유감없이 이번 그림책 속에 담아냈다. 아이들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땡땡이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논어의 매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

2024-08-22 17:06:37
요리에 인문학 향기를 입힌 정상원 셰프 '글자들의 수프'

요리에 인문학 향기를 입힌 정상원 셰프 '글자들의 수프'

작품속 음식 조리법·식재료 해설문학에 등장하는 무대·역사 소개■ 글자들의 수프┃정상원 지음. (주)사계절출판사 펴냄. 220쪽. 1만5천500원'음식의 맛은 몸을 자라게 하고 책 속의 문장은 생각을 잘하게 한다. 요리사에게 주방은 언어를 배우는 학교이자 맛과 향이 저장된 도서관이다.'15년간 프렌치 다이닝, 이탈리안 레스토랑, 스페인 식당, 라면 전문점 등을 거치고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기도 한 정상원 셰프는 요리에 인문학의 향기를 입힌다. 그는 늘 지적 설명을 곁들여 음식을 내어 주었고, 손님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 다른 영감을 남겼다. 정상원 셰프는 이렇듯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매일 문학과 역사, 철학에서 나타난 음식 이야기를 탐독하며 독서 일기를 썼다. 신간 '글자들의 수프'는 음식 이야기 속 인간의 희로애락을 저자만의 경험과 언어로 해석해 펼쳐낸 책이다.저자는 요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과 제철 식재료에 대해 해설해주며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 식재료는 물론 서양 식재료와 와인, 맥주까지 알기 쉽게 풀어낸다. 또 현기영의 제주, 조정래의 벌교, 정지아의 지리산, 헤겔의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마르셀 푸르스트의 콩브레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대를 현장 답사한 뒤 음식 문화와 역사까지 녹여냈다.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다는 것은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음식의 맛만 탐미하면 삶은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책은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단맛, 쓴맛, 매운맛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했을 때 행복한 순간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음을 전한다. 쏟아지는 음식 문화 콘텐츠의 시대. 음식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맛있는 한 끼를 먹고 싶다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어쩌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맛의 원천은 음식에 얽힌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8-15 19:09:29
4가지 주제로 들여다본 오늘날 우리 민속… 국립민속박물관 보고서 발간

4가지 주제로 들여다본 오늘날 우리 민속… 국립민속박물관 보고서 발간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해 공모를 통해 선정된 국내 연구자들의 현장 조사 결과물인 '2023 국립민속박물관 권역별 자유주제 민속조사 보고서' 4권(사진)을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된 민속조사 보고서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쉽지만 일상성으로 인해 주목하지 않았던 주제를 담고 있다. 특히 연구자들이 직접 현장에 머물며 민속문화의 본모습을 탐구하고 오늘날에 이르는 변화와 전승 과정까지 살펴봤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강정원, 남궁민의 '수도권 상장례의 현대화와 복식·음식 민속지'는 물질 민속문화로서 상장례의 복식과 음식에 초점을 맞췄다. 시대별 법령과 예서를 분석해 옛 장례 절차와 간소화된 현대의 상장례 절차를 비교했고, 가정의례준칙과 장례식장, 상조회사의 등장 이후 급격히 변화한 상장례 복식과 음식의 변화 양상을 수도권을 중심으로 살폈다.전미영의 '고치는 사람들의 기술과 근현대 소장품의 복원'은 오래 쓸 수 있지만 망가지기 쉬운 가구와 신발, 악기를 고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계, 전기·전자의 원리로 움직이는 사물이 고장 났을 때 이를 복원하는 사람들의 기술을 담고 있다. 또 사물의 수리와 복원이 현대적 기술과 결합해 하나의 문화가 되어 가고 있음을 조명한다.이와 함께 최원오, 이현정의 '월출산 주변 전통 제다민속의 역사성'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 상표로 알려진 '백운옥판차'에 주목해 특징과 전승 과정을 분석했고, 황경숙의 '부산 동남해역 미역마을의 미역 채취와 민속문화'에서는 기장미역을 채취하고 만드는 사람들의 삶과 어로문화를 밝혀본다.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는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내려받아 읽어볼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8-15 19:09:23
15년전 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서점가 역주행' 비결은

15년전 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서점가 역주행' 비결은

천천히, 조용히, 꾸준히… 하루키처럼 나만의 취향을 15년전 출간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무한 경쟁 현대인에 휴식같은 문장 선사올 상반기 판매량, 작년보다 47.6% 증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펴냄. 280쪽. 1만4천500원 "#추구미(따라 하고 싶은 이상향)=무라카미 하루키"유튜브 쇼츠, 틱톡 챌린지 등 즉각적으로 뇌에서 도파민을 내뿜게 하는 고자극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 하지만 한편에서는 오히려 트렌드에 역행하려는 움직임이 일렁이고 있다.이른바 '反도파민'. 이들은 천천히, 조용히, 꾸준히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 10㎞를 뛰고, 옛 LP 음반을 수집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은 이런 이상향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다. 15년 전 한국에 출간됐던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서점가에서 또다시 역주행하고 있는 배경이다.'소확행'이라는 조어(하루키 1986년 作 '랑겔한스섬의 오후')의 창시자로서 한때 동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렸던 하루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추구미'에 부합하는 일상 속 통찰로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를 포섭하고 있는 것이다. 예스24에 따르면 판매량은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상반기에만 47.6%가 훌쩍 뛰었다. 해당 에세이는 지난 2007년 일본에서 발표한 뒤 한국에는 2009년 소개된 구간(舊刊)이다.이런 '신(新) 하루키 열풍'은 경기도 내 주요 도서관에서도 나타났다. 도내 인구수 상위 3개 지자체인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 도서관에서 해당 에세이는 지난 14일 기준 평균 89%의 대출률(수원 93%·용인 73%·성남 100%)을 나타냈다. 책 대부분이 대출·예약 중이라 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개 서점에서 상위 5위권 내의 신간이 대출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구간임에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인기 요인은 책 바깥에서도, 책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선 현재 생활체육으로 러닝 종목이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 관심도를 높였다. 스마트폰의 친목 도모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삼삼오오 모여 하천이나 도심을 달리는 '러닝 크루'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해당 에세이에서는 꾸준히 달리면서 생기는 근육 덕에 건강해진 신체와 정신적인 안정 등 러너로서 마주한 일상의 변화를 담담히 서술한다.무엇보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글을 읽기 쉽게 대중적으로 써내려가면서도 동시에 감각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하루키는 미국 하와이·뉴욕·매사추세츠와 일본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여유롭게 달려나가며 자신만의 기준을 이야기하는데, 매사 사회의 기준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우리네에게 왠지 모를 위로를 건넨다."어제는 롤링 스톤즈의 '베거스 뱅큇'을 들으면서 달렸다. '심퍼시 포 더 데빌'의 예의 '후후'라고 하는 펑키풍의 백코러스는 달리는 데 실로 안성맞춤이다. …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2024년 다시금 소환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한 경쟁과 과도한 자극으로 만성 무기력증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하루키는 평온한 휴식 같은 문장을 선사한다. 어쩌면 숨 가쁜 한국 사회가 '하루키적인 삶'을 '추구미' 그 자체로 만든 까닭인지도 모른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경기도 내 주요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대출 경쟁이 치열하다. 각각 (왼쪽부터)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 통합도서관에서 해당 책을 검색했을 때 대부분의 보유 서적이 대출 중인 상태로 나타난다.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수집한 재즈와 클래식 LP 음반이 꽂힌 책장 앞에 앉아있다.

2024-08-15 19:04:31
쓰임 다한 것에 '더 큰 쓸모'… 김경란의 '반성의 디자인_재재'

쓰임 다한 것에 '더 큰 쓸모'… 김경란의 '반성의 디자인_재재'

과거 삶 반성·내 쓰임에 대한 고민도 담겨 ■ 반성의 디자인_재재┃김경란 지음. 책책 펴냄. 184쪽. 1만4천원업사이클 디자이너가 펼치는 '재재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반성의 디자인_재재'는 저자가 업사이클링하게 된 계기와 과정,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나날이 깊어지는 환경적 성찰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담아냈다.시작은 두 딸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들고 버린 것들이 다시 우리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상황을 목격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저자는 우연히 흑백필름사진을 찍는 남편의 사진관에서 발생한 인화지 봉투로 가방과 파우치를 만들게 됐다. '기왕 우리의 필요로 만들어진 소재라면 수명을 늘려 오래 쓰는 것이 대안이 되지 않을까?' 저자는 '더 큰 쓸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상세하게 들려주며 '버리면 쓰레기지만 버리지 않으면 아직은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엄마의 역할을 거치고 난 뒤 '나의 개인적 쓸모'를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엄마가 되며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저자는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담아 가방을 만들면서 '나의 쓰임'을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고 식물을 심고 주변을 정돈한다.책의 또 다른 매력은 '라이프 & 스타일' 화보 섹션이다. 섬세하게 표현된 글과 흑백사진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면, 책 속의 책 형태의 컬러 화보 'Cultivating: Life & Style'은 지구 환경과 좋은 관계를 일궈가는 저자의 일상 사진을 통해 보는 즐거움을 전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2024-08-08 18:58:35
'미스터리란 어떤 소설인가' 정교한 구현,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미스터리란 어떤 소설인가' 정교한 구현,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작가 101번째 신작소설 등장인물 '피 흐르는 인간'으로 묘사 온힘■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북다 펴냄. 432쪽. 1만9천800원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 장편소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가 출간됐다. 1986년 발표된 '졸업'을 시작으로 38년째 이어진 '가가 형사 시리즈' 열두 번째 작품이자 작가의 101번째 작품으로, 추리소설의 원점으로 돌아가 '황금시대 미스터리'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호평을 받았다.작품은 호화 별장지에 여름 휴가를 온 다섯 가족의 파티로 시작한다. 연례행사인 우아한 바비큐 파티를 즐긴 그날 밤 파티 참석자들 중 다섯 명이 살해당하고 한 명이 다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참극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검증회를 연다. 그 자리에 장기 휴가 중이던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참석하고, 그는 사람들이 저마다 감추고 있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작가는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집필할 때 가장 공들인 부분에 대해 "등장인물들을 장기말이 아닌,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묘사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했다. 작가는 작품에 등장하는 열다섯 명의 인물 각자가 특별한 개성으로 돋보이게 하고,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보는 듯한 현장감으로 소설을 채웠다. 이에 독자들은 입체적인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사연을 따라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다. 또 작품은 실제 있었던 존속살해사건을 일부 모티브로 삼았으며, 시대적 화두를 던지는 '사회파' 요소도 놓치지 않고 담았다.진상을 안 이후 다시 읽게 되는 교묘한 복선, 이제 알았다 싶으면 또 다른 답을 내놓는 연이은 반전,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결말까지 미스터리의 필수 요소가 정교하게 구현된 이번 책에 대해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란 어떤 소설인가?라는 질문에 이런 소설이다라고 답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8-08 18:58:20
도플갱어·드라큘라… 무더위 날릴 유럽 도시기담 13편

도플갱어·드라큘라… 무더위 날릴 유럽 도시기담 13편

■ 읽을수록 빠져드는 도시기담 세계사┃다나카 마사루, 스가이 노리코 지음. 서수지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펴냄. 316쪽. 1만9천원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무서운 노래 '글루미 선데이', 끊임없이 화재를 일으키는 위험한 그림 '우는 소년', 공포영화 컨저링의 모티프가 된 저주받은 인형 '애나벨', 목격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도플갱어' 이야기 등. 신간 '읽을수록 빠져드는 도시기담 세계사'는 무섭고도 흥미진진한 유럽의 도시기담 13편을 담고 있다.책의 두 저자는 각각 저널리스트와 여행 저널리스트이면서 부부이다. 이들은 1991년부터 30여 년간 유럽 33개국을 다니며 기이하고 묘한 이야기들을 취재하고 발굴했다. 이는 다양한 콘텐츠를 참고하고 활용해 재생산한 유사한 콘셉트의 책과는 차별성을 지닌다.두 저자는 '루트비히 2세의 죽음을 둘러싼 기묘한 미스터리'를 조사하다 유럽 근대정치와의 연관성을 밝혀냈고, '현대에 재탄생한 흡혈귀,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의 발상지가 루마니아가 아닌 세르비아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또 '괴승 라스푸틴의 암살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서 러시아 황실에 교묘하게 접근해 정치에 개입했다는 라스푸틴의 기존 이미지를 뒤집는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대단한 집념과 열정, 끈기로 수많은 도시를 다니며 알아낸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매력적인 역사가 되어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8-08 18:5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