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세운 도시, 송도의 속내를 들추다… 혼불문학상 수상 우신영 장편 '시티-뷰'

욕망이 세운 도시, 송도의 속내를 들추다… 혼불문학상 수상 우신영 장편 '시티-뷰'

"삶에 내재된 속물·순정·허위 등 조망" ■ 시티-뷰┃우신영 지음. 다산책방 펴냄. 276쪽. 1만7천원최근 제14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우신영의 장편 소설 '시티-뷰'는 인천 송도신도시(송도국제도시)를 배경으로 펼치는 몸과 돈에 얽힌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송도라는 장소는 배경을 넘어 그 자체로 소설의 상징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송도에 사는 40대 상류층 부부인 필라테스 센터 원장 수미와 내과 의사 석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수미는 발레리나 출신으로 육체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고, 남들에게 완벽해 보이길 원한다.반면 대형 병원 내시경 전문 의사로 근무하다 처가의 도움으로 송도에 병원을 차린 석진은 무던하고 무료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덕적도 식당 아들인 석진은 고향에서 벗어나고자 수미와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완벽을 유지하고자 분주한 수미는 적당히 눈치만 보며 무료하게 사는 석진이 못마땅하다.이들 부부의 일상에 수미의 퍼스널 트레이너이자 어린 내연남 주니, 스스로 면도날을 삼키고 석진의 병원을 찾은 조선족 여성 유화가 들어와 얽히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갯벌을 메워 마천루를 세운 도시 송도가 곧 이 소설의 주제다. "송도 신도시에 편의점보다 많이 개업하고, 카페보다 많이 폐업한다는"(14쪽) 필라테스 센터, 초고층 오크우드호텔에 들어선 병원들, 펫샵, 국제학교, 입주형 가사도우미 등 '서울 강남과는 결이 다르다'는 송도의 상류층과 상류층 학부모들의 일상이 도시를 메운 욕망을 드러낸다.소설에서 등장하는 송도 이외의 장소는 송도의 주변부로, 계층을 상징하는 장소다. 송도의 트레이닝센터에서 VIP 고객의 트레이닝을 담당하면서 정작 자신은 '선학동 원룸'에서 지내는 주니, '남동공단 요거트 공장' 기숙사에서 사는 유화는 송도신도시 사람들의 욕망을 채우는 과정에서 '활용'되는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송도 갯벌을 메꾼 모래의 일부는 석진의 고향 덕적도 앞바다에서 채취된 것이기도 하다.제14회 혼불문학상 심사위원을 맡은 소설가 편혜영은 "우리 삶에 내재된 속물과 순정, 허위와 진심을 조망해내는 '송도'는 어떤 인물보다 입체적이고 유기적"이라며 "이 소설을 통해 '송도'라는 공간은 한국 소설의 새로운 장소로 명명될 것"이라고 추천평을 썼다.우신영 작가는 송도에 캠퍼스가 있는 인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월 사표를 내고 '시티-뷰'를 썼다. 작가는 어느 날 출근하다 번쩍이는 송도의 고층 유리빌딩에 위태롭게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와 그 옆 건물에 새로 생긴 실내 클라이밍장 홍보 현수막을 보고 든 생각으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024-10-17 19:00:00
[경인 Pick] '한강 특수' 노 젓는 대형서점, 노 없는 지역서점

[경인 Pick] '한강 특수' 노 젓는 대형서점, 노 없는 지역서점

재고확보 '부익부 빈익빈' 한강 책 구매 발걸음·문의 폭주소규모 서점 유통 2순위로 밀려"손님 돌려보내야해 씁쓸한 마음"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관련 도서 판매량이 급증(10월14일자 2면 보도=[경인 Pick] '한강 신드롬' 하루만에 15만부 중쇄 돌입)한 가운데, 대형서점은 발빠른 재고 확보를 통해 '한강 특수'를 이어가려는 분위기지만 지역서점은 재고 확보조차 어려움을 겪으며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14일 찾은 경기도 내 대형서점 곳곳에서는 '한강 신드롬'을 체감할 수 있었다.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한강의 저서는 품절됐고, 그럼에도 책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의 발걸음과 전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성남시 분당구의 영풍문고는 지난 12일 서점 내 한강 코너를 마련했으나, 설치 1~2시간만에 모든 책이 팔려 바로 철수했다. 영풍문고 분당서현점 관계자는 "한강 도서가 언제 입고될지 몰라 예약도 못 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다른 지역 대형서점도 마찬가지다. 수원시 영통구의 교보문고 입구엔 '한강 작가의 도서가 일시 품절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교보문고 광교점 관계자는 "한강 작품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예약 물량만 100여 권"이라고 전했다.도서 구매 예약을 위해 방문한 고객들도 눈에 띄었다. 한강의 두 작품을 예약한 김미자(79)씨는 "원래 한강 작가를 몰랐는데 노벨문학상 수상 뉴스를 본 뒤 책을 읽고 싶어져 왔다.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반면 지역의 소규모 서점의 경우 마찬가지로 한강 작품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언제 입고될지 모르는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지역서점의 경우 온라인 유통시장이나 대형서점을 먼저 거친 다음 물량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 자칫 '한강 특수'를 놓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성남시 중원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김모(62)씨는 "한강 작품 예약만 30명이 했고 오랜만에 서점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늘긴 했지만, 지역서점에는 물량이 언제 얼마나 들어올지 기약이 없다"며 "예약한 고객들 대부분 기다리다가 온라인이나 대형서점에서 책을 사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밝혔다.수원시 영통구의 한 서점 직원 정모(51)씨는 "한강 작가 덕분에 지역서점도 활기가 도는 것 같다"면서도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물량이 없어 아쉽다. 이 분위기가 가라앉기 전에 지역서점에도 빨리 책이 입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지역서점의 경우 물량 확보를 위해 총판이나 도매 쪽으로 연락을 해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노벨문학상 수상은 기쁜 소식이지만, 정작 지역서점들은 손님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라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고 했다. → 관련기사 (종이책 '껍데기'만 오라… '모형책' 전성시대)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을 구매하고 있다. 2024.10.11 /연합뉴스10일 수원시 영통구내 한적한 지역 서점 내부. 2024.10.14 /김태강 수습기자 think@kyeongin.com

2024-10-14 20:52:54
종이책 '껍데기'만 오라… '모형책' 전성시대

종이책 '껍데기'만 오라… '모형책' 전성시대

독서인구 주는데 모형업체 호황'스타필드 별마당' 등 소품 인기서점은 "책 안 팔려 문구류 채워" 14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의 한 공공도서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부터 권정생의 '몽실언니'까지 다양한 책이 로비 벽면에 놓여져 책장을 수놓았다. 하지만 이 책들은 빌릴 수 없다. '모형책'이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방문객이 몰려드는 수원 스타필드 내 별마당도서관에서도 모형책들이 책장을 가득 메운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이곳 도서관에 모형책을 납품한 황선영 우진메이킹 대표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주 고객이 아파트 모델하우스였다면, 최근엔 도서관 같은 공간을 꾸미는 고객들로 대상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단순 인테리어 분야를 넘어 이제는 종이책을 펴내는 출판업체들마저 모형책 제조업체 고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황 대표는 "출판사에서 자신들의 책을 모형책 표지에 사용해달라고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들며 관련 업계 전반이 불황을 겪고 있는 반면, 모형책 업계는 오히려 호황을 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책의 목적이 점차 소품화되고 있는 셈이다.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종이책을 1권 이상 읽은 성인 비율은 지난 2013년 71.4%에서 지난해 32.3%로 10년 새 39.1%p 감소했다. 전자책, 오디오북 등을 포함한 종합독서율도 같은 기간 72.2%에서 43%로 줄었다.이 같은 독서 인구 감소는 서점 업계의 침체로 이어졌다. 성남에서 25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손억헌씨는 "책이 안 팔려 책장에 문구류를 대신 채워넣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원에서 24년간 서점을 운영해 온 조승기 경기남부서점협동조합장도 "매년 매출이 10%씩 감소하는데 올해는 어떻게 버텼지만 내년에는 정말 모르겠다"며 "업계에선 책이 점점 소품화되는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책 읽는 문화 정착을 위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준석기자·김태강수습기자 joonsk@kyeongin.com수원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 책장에 설치된 모형책. 2024.10.14 /김태강수습기자 think@kyeongin.com14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의 한 공공도서관 로비 벽면에 실제 책의 표지를 그대로 본뜬 모형책이 전시돼 있다. 2024.10.14 /김태강 수습기자 think@kyeongin.com

2024-10-14 20:30:02
소설 '채식주의자' 폐기 논란… 경기도교육청 '진땀'

소설 '채식주의자' 폐기 논란… 경기도교육청 '진땀'

도내 학교도서관 유해도서 처리 목록 포함"한 학부모단체 기사 참고하라 했을뿐" 해명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과거 경기도 내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된 성교육 도서 2천528권 내에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13일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전 의원이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학교 도서관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경기도 내 초·중·고교 도서관에서 성교육 도서 총 2천528권이 폐기됐다. 이 중 성남의 한 고교는 '채식주의자' 두 권을 폐기한 것으로 확인됐다.앞서 도교육청은 올해 2월까지 '유해한 성교육 도서 선정 유의 안내',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 도서목록' 등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4차례에 걸쳐 각 학교에 발송했다. 그러나 도교육청은 공문에 '한 학부모단체가 학교 도서관에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라면서 열었던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를 참고하라'고 했을 뿐, 명확한 유해도서 목록을 보내진 않았다고 해명했다.반면 학교 현장에서는 해당 학부모단체가 임의로 정한 청소년 유해도서 목록을 참고해 성교육 도서를 폐기했다는 입장이어서, 도교육청이 유해도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그럼에도 도교육청은 책의 선정과 관리는 개별 학교의 자율적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이 달라 참고자료 이상으로 특정 책이 유해하다는 식의 기준을 교육청 차원에서 마련하긴 어렵다"며 "도서관 내 도서의 선정·폐기는 각 학교의 자료선정위원회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2024.10.10 /연합뉴스

2024-10-13 20:15:41
[경인 Pick] '한강 신드롬' 하루만에 15만부 중쇄 돌입

[경인 Pick] '한강 신드롬' 하루만에 15만부 중쇄 돌입

'노벨 특수' 누리는 서점가 '소년이 온다' 521배 '흰' 2072배 등주요 온라인 서점 판매량 폭증해한국 문학계서 독서 시너지 기대한강의 대표 장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2024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하루 만에 15만부 중쇄에 들어갔다. 그동안 해외 작품이 독점해오던 '노벨 특수'를 한국 문학이 가져오면서 '한국 문학 붐'이 일 거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최근 출판사 문학동네 관계자는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강의 대표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원래도 판매가 잘 되는 작품이기는 하나, (노벨문학상인 만큼) 수상 발표 후 다음 날 15만부 중쇄에 들어갔다. 다만, '노벨상 에디션'은 아직은 계획에 없다"고 전했다. 문학동네는 국내에서 한강의 소설 작품을 가장 많이 출간한 곳이다.통상 책을 출판할 때 많게는 1쇄에 3천부 가량을 찍는다. 15만부를 중쇄하는 건 단번에 50쇄를 돌파하게 된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수치다.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창비와 한강의 시집 등을 선보였던 문학과지성사 역시 바쁘게 추가 물량 공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이미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는 판매량이 폭증했다. 알라딘에 따르면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이후와 전일 판매량을 비교한 결과 '소년이 온다' 521배, '채식주의자' 901배, '작별하지 않는다' 1천719배, '흰' 2천72배, '희랍어 시간' 1천235배 증가했다. 예스24와 교보문고 역시 비슷한 수치를 발표했다.출판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이른바 '노벨 특수'라고 부른다. 앞서 지난해 2023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작품이 수상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과 맞물린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사상 최초로 한국 작가인 한강이 수상한 덕에, 매해 해외 작가의 저서가 반짝인기를 얻던 '노벨 특수'를 한국 문학이 누리게 된 셈이다. 출판계와 서점가가 분주해지면서 한국 문학계 전반으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도 기대된다. 현재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들이 하나둘 신작을 발표하는 중이다.한국 문학의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김애란은 지난달 13년 만의 장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발표하는가 하면, 섬세한 문체로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김금희는 지난 4일 장편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들고 독자를 찾았다. 간만에 서점에 방문한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대작들이다.한편, 이는 한국 문학의 소비층을 다양화하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글로벌화 할 기회로도 평가받는다. 그간 한국 문학은 3040세대 여성이 핵심 독자층으로서 소비를 견인해왔다. 하지만 이번 한강의 수상 이후 그의 저서 판매량은 전 연령층에 고르게 분포하는 등 일부 고무적인 모습을 보였다.아울러 노벨문학상이 세계 3대 문학상(노벨문학상·부커상·공쿠르상)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데다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 문학이 국내 시장을 넘어 'K-문학'으로 발판을 넓힐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김태선 문학평론가는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라 감동이 더 컸다. 독서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다른 한국 작가에게 관심을 갖는 등 파급 효과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며 "이런 상황에서 번역가들의 처우가 개선된다면, 번역 분야도 더욱 활성화돼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주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역사적 트라우마 맞선 강렬한 '한강 문학'… 은폐된 고통 짓눌린 목소리 형상화)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에 한강의 국내 도서가 소진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10.13 /연합뉴스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을 줄서서 구매하고 있다. 2024.10.11 /연합뉴스

2024-10-13 20:15:30
역사적 트라우마 맞선 강렬한 '한강 문학'… 은폐된 고통 짓눌린 목소리 형상화

역사적 트라우마 맞선 강렬한 '한강 문학'… 은폐된 고통 짓눌린 목소리 형상화

'노벨문학상' 한강의 작품세계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지옥같은 참상 전한 '소년이 온다'제주 4·3 조명 '작별하지 않는다'치유되지 못한 아픔 오롯이 담겨너무도 쉽게 망각해버리는 누군가의 아픔, 현대사에 생채기를 남긴 참사, 그리고 여전히 그런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의 우울. 지난 1993년 시인으로 데뷔한 이래 한강(53)이 부단히 좇아온 실존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강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조리는 무엇이었을까. 2024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얻으며 덩달아 그의 작품이 조명받는 지금, '한강 문학'의 정수라 불릴만한 대표작과 작가로서 그의 일생을 톺으며 그 의미를 되짚어봤다.■ 혼의 등장… 너무 아파서 죽지 못한다 | 작품세계작품마다 소재는 제각각이지만, 문장 곳곳을 지탱하는 심지는 동일하다. 한강의 작품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의식은 '인간의 고통'이다. 특히 몇몇 작품에서는 이런 고통을 한으로 체화한 '망자의 혼'이 화자로 나타나기도 한다.이는 결코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앞서 한강은 아버지 한승원이 보여준 한 사진첩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사진첩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시민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이런 한강의 작품에 대해 김태선 문학평론가는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강의 작품은 우리에게 은폐되고 그동안 고통에 짓눌렸던 목소리를 들리도록 하게 한다"며 "그러면서 억압된 존재, 타자를 향한 관심을 모색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지난 10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한강을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꼽은 스웨덴 한림원의 심사평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 흔적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다. 각각 5·18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과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제주 4·3 사건을 그리며,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은폐되고 고통에 짓눌렸던 목소리"를 우리의 눈앞에 형상화한 한강의 소설을 읽다 보면, 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무심코 잊어버렸던 타인의 고통이 우리의 감각으로 생생하게 전이된다.[대표작1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2014)┃한강 지음. 창비 펴냄. 284쪽. 1만5천원"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2부 '검은 숨' 중에서)16살, 중학교 3학년이던 '정대'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총살당한다. 그를 조준한 두 눈은 한국 군인, 그를 쏘라고 명한 사람은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였다. 망령이 된 화자는 이승을 떠돌며 썩어 문드러져 가는 자신의 시신을 가만히 쳐다보기도 하고, 둘도 없는 친구 '동호'마저 전남도청 앞에서 살해당하는 상황을 마주한다.앞서 총에 맞아 쓰러진 정대를 두고서 홀로 도망쳤던 동호는 일말의 죄책감을 안고 전남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는다. 그는 불편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신 옆마다 겸허하게 촛불을 밝힌다. 얼마 뒤 자신마저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미래를 모르는 그는 "용서하지 않을 거다. …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라며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치열하게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분명 따로 있는데도.살아남은 생존자에게도 그날의 참상은 여전히 생생한 지옥과 같다. 한강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망자와 생존자 등 총 7명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 고통이 7명의 인물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며 우리의 뇌리에 광주의 5월을 강하게 아로새긴다.[대표작2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2021)┃한강 지음. 문학동네 펴냄. 332쪽. 1만4천원"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1부 '새' 중에서)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을 썼던 소설가 '경하'는 새하얀 눈이 내리는 꿈을 꾼다.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오는 눈 아래로는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심겨 있다. 마치 묘비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찰나, 바닥으로 물이 차오른다. 누군가의 묘가 순식간에 바다에 휩쓸리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몸부림치지만 경하는 어쩌지 못한다. 그러고서 꿈은 끝난다.꿈은 마치 경하에게 닥칠 미래를 예견하는 듯했다. 제주도에 살던 경하의 친구 '인선'이 서울의 어느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경하는 인선이 기르는 새 '아마'를 돌보러 제주도에 간다. 그곳에서 경하는 분명 서울에 있어야 할 인선과 조우하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한다. 인선이 들려준 이야기는 1980년 5월의 광주보다 한참 전, 제주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런 제주 4·3에는 인선의 아픈 가족사가 서려 있었다.제주도 땅을 덮어가는 눈 아래서, 경하는 죽어서 혼령이 된 듯한 인선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 4·3의 처참한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 체감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전해지는 그때의 고통은 치유되지 못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수한 시간이 흘렀지만 제주 4·3과 결단코 작별할 수 없는 이유이자, 작별하지 않겠다는 한강의 결연한 외침이 행간 곳곳에 담겼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024-10-13 18:48:43
'노벨문학상' 한강은 누구인가… 부녀 2대 이상문학상 배출한 '문인 집안'

'노벨문학상' 한강은 누구인가… 부녀 2대 이상문학상 배출한 '문인 집안'

2016년 '채식주의자' 부커상 명성 아버지 '아제아제…' 집필 한승원한국인으로서, 또 아시아 여성으로서 노벨문학상에 호명된 최초의 이름, '한강'. 소설가로서의 첫 시작은 필명 '한강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잡지사 기자, 시인으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 1994년 한 언론사의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이름을 알린다.이듬해 발표한 '여수의 사랑'부터는 본명을 사용한다. 이후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이상문학상·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 한국 문단의 젊은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전 세계에 그의 이름이 더욱 진하게 각인된 건 2016년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받으면서다. 당시 심사위원으로부터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소설이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부커상을 받으면서 한강은 노벨문학상 문턱에 더욱 가까워진다. 그간 수상자에 아시아 여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세계 유수의 문학상 트로피를 하나둘 세워가고 있던 한강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의 영예를 얻었다.소설가로서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낳은 한강. 그의 문학적 재능은 '문인 집안'으로 불리는 가족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강의 아버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달개비꽃 엄마' 등을 집필한 유명 원로 소설가 한승원(85)이다. 한승원은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국내 문학상 중 권위 있는 상으로 손꼽히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 역시 2005년 '몽고반점'으로 해당 상을 받으며, '이상문학상 부녀 2대 수상'이라는 타이틀을 세웠다.소설가 아버지와 소설가 딸은 문학적으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듯하다. 한승원은 딸의 작품에 대해 "어떤 때 한강이 쓴 문장을 보며 깜짝 놀라서 질투심이 동하기도 한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한강은 아버지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죽음이 실려 나가고 그러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무슨 잔치를 하고 즐거울까"라며 수상 소감을 묵직하게 전하기도 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11일 한강(왼쪽 두 번째)의 성장기 시절이 담긴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1995년 4월 15일 전남 목포문학관 뜰의 김현 기념비를 찾은 한승원(왼쪽)과 한강(가운데) 부녀의 모습. /연합뉴스

2024-10-13 18:48:17
종은 중요치 않아, 마음을 나눴으니까

종은 중요치 않아, 마음을 나눴으니까

사람과 동물의 여정을 담은 책 2권 ■ 기린과 함께 서쪽으로┃린다 러틀리지 지음. 김마림 옮김. 열린책들 펴냄. 536쪽. 1만9천800원대공황의 여파로 시름 하던 1938년 미국, 가족을 잃고 뉴욕항을 배회하던 혈혈단신의 고아 소년 우디 앞에 허리케인을 뚫고 기린이 도착한다. 이 기린들을 실은 트럭이 가난한 실향민들의 꿈인 캘리포니아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디는 무작정 트럭을 쫓아 나선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기린과 함께 서쪽으로'는 105세의 나이로 죽음을 앞둔 우디 니켈이 기린과 함께했던 여정을 돌아보며 남긴 기록을 따라간다. 그는 최초로 미국을 횡단한 기린의 이송 과정에 참여했었다. 캘리포니아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기린 이송 책임을 맡은 라일리 존스 영감을 설득해 따낸 트럭 운전사 자리. 그러나 2미터가 넘는 기린 두 마리를 실은 트럭을 싣고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기린을 그저 '돈'으로 여기는 무자비한 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타인을 믿을 수 없게 된 우디.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것은 기린과 기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이었다. 기린들의 갈색 사과 같은 눈에서 조건 없는 온화함을 본 우디는 그것이 자신의 '집'이자 '가족'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작가는 당시 기사 일부를 작품 속에도 그대로 담아냈으며, 주인공들의 여정 속에 등장하는 장소와 지형 등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해 이야기의 생생함을 더했다. 책은 아픔을 간직한 시대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줬던 동물, 그리고 아픔과 고난 속에서 성장하는 소년과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려내며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얼룩덜룩해도 아름다워┃릭 브래그 지음. 황유원 옮김. 아카넷 펴냄. 304쪽. 1만7천800원주근깨 낀 얼굴, 반쯤 눈이 멀어 해적처럼 보이는 인상, 빽빽한 긴 털과 얼룩덜룩한 몸을 가진 떠돌이 개. 도로 한복판에서 쓰레기를 핥거나 로드킬에 맞서 위험천만하게 살아가는 개가 한 남자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퓰리처상까지 받은 기자였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심신이 무너졌다. 삶의 끄트머리를 향해 가는 그는 젊은 시절을 풍요롭고 맹렬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따분함 속에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남자는 자신 안의 공허한 마음을 물어뜯고 할퀴고 찢어 버리려면 야비하고 비열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나쁜 개'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시간이 흐른 뒤 가족은 집으로 들인 이 개에게 '스펙'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스펙과 함께 지낼수록 남자는 비참하고 괴팍하고 시무룩한 노인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스펙도 변화하며 화답했고, 남자에게 최고의 동반자가 돼 주었다.'얼룩덜룩해도 아름다워'는 미국 남부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심신이 피폐해진 채 어느덧 황혼기로 접어든 한 사람과, 길 위를 비참하게 헤매던 개의 만남과 동행과 치유의 여정을 담았다. 뉴욕타임즈 기자로 일하며 뛰어난 글쓰기로 퓰리처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던 저자는 그만이 가진 문장과 서사력, 그 속의 위트로 아주 특별한 개 스펙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저자는 삶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삶의 기쁨과 활기 넘치는 생명력 또한 놓치지 않는다. 비틀거리고 불완전한 두 존재의 좌충우돌 여정은 한편으로는 웃음을, 다른 한편으로는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2024-10-10 19:08:18
[북리뷰] 창경궁 대온실에 숨겨진 '역사의 생채기'… 신간 '대온실 수리 보고서'

[북리뷰] 창경궁 대온실에 숨겨진 '역사의 생채기'… 신간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의 섬세한 필체로 쓰인 장편소설 ■ 대온실 수리 보고서┃김금희 지음. 창비 펴냄. 420쪽. 1만8천원"어차피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면이 유리로 된 온실의 아름다움이지 그 아래 무엇이 있었는가가 아닐 테니까. … 하지만 질서에는 어긋날 것이다.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 개인적 상처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한쪽을 묻어버린다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김금희의 신작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 30대 여성 '영두'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나가는 장편 역사소설이다.일제강점기 대온실을 만들었던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회고록, 대온실이 만들어졌던 당시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당사자 마리코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모든 역사를 톺아가는 영두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된다.인천 석모도 출신인 영두는 중학생 때 서울 원서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그런 영두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창경궁'이라는 단어를 듣자 멈칫하게 된다. 어린 시절 창경궁 인근 원서동의 '낙원하숙'이란 곳에서 하숙하며 겪었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낙원하숙의 주인 할머니 '안문자'는 해방 이후 남한에 남은 잔류 일본인이었다. 고국인 일본에서도, 이주한 한국에서도 외면받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문자의 손녀 '리사'까지 셋이 함께 생활했던 일은 창경궁 대온실 수리 과정과 맞물리며 되살아나고, 영두의 마음을 어지럽힌다.온실 보수공사 중 비밀을 간직한 어느 흔적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반전을 맞는다. 영두는 이 흔적이 문자와 연관됐음을 직감하고, 온실 보수공사와 이곳에 얽힌 일들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한다. 문자가 간직한 오랜 비밀을 하나둘 알게 된 영두는 비로소 자신의 아픔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에 얽힌 우여곡절은 한국 근현대사 생존자들의 숭고한 삶과도 연결된다. 소설은 '수리 보고서'를 써내려가는 과정이 곧 아픈 역사에서 기인한 누군가의 마음 속 생채기를 들여다보고 '수리'해가는 행위임을 은유한다.짧은 호흡의 소설들이 서점 매대를 휩쓴 상황에서 간만에 만난 반가운 대작이다. 김금희 특유의 섬세한 필체도 빛을 발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024-10-10 1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