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커피가 커피믹스로… 한국 소비사회 변천사

미군 커피가 커피믹스로… 한국 소비사회 변천사

소비라는 새 시각으로 역사와 소통 모색 ■ 소비의 한국사┃김동주·김재원·박우현·이휘현·주동빈 지음. 서해문집 펴냄. 320쪽. 2만1천원자본주의는 지구의 모든 인구와 지역, 국가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게 만들었다.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생존을 넘어 소비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소비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신간 '소비의 한국사'는 다섯명의 역사 연구자들이 한국의 소비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역사를 더듬어 본다. 이들은 쌀·물·라면·커피·부동산·가전제품과 같이 생활에 필요한 것들과 함께 사회 변화에 따라 일상적 소비재가 된 것들을 다루기도 하고, 음악·영화·관광·장난감·도박처럼 기호나 취향에 따라 소비문화가 바뀐 것들을 이야기한다.책에는 '밥 없이 살 수 없는' 한국인들의 쌀밥을 향한 유별난 애정과 가족과 함께 흰 쌀밥을 먹고 싶다는 열망이 이끌어낸 시대의 동력, 물장수에게 물을 사먹던 시절에서 생수를 집 앞까지 배송해 먹는 한국인의 물 이용 역사, 미군 부대에서 몰래 빼돌려 먹던 커피가 커피믹스로 재탄생하며 인기 먹거리가 되는 과정 등이 흥미롭게 전개된다.이와 함께 극장과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여가 시간을 즐기고 소비했는지와 산업화한 관광의 역사를 통해 즐거움을 얻으려는 대중과 수익을 내려 한 국가의 욕망까지 아우른다. 한국 장난감 산업이 보여 주는 경제 개발의 씁쓸한 이면과 같은 주제나 도박과 마약을 소비하다 중독돼 범죄가가 되는 사람들, 이를 처벌하는 국가의 관계로 더듬어 보는 어두운 현대사도 눈길을 끈다.각 장에서 풀어낸 이야기를 통해 책은 소비라는 키워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사적 맥락을 살펴보며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와 소통하게 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024-09-26 19:04:00
[책과 현장] 토론이란 싸움 아닌 '공통분모' 만들기... '최소한의 시민'

[책과 현장] 토론이란 싸움 아닌 '공통분모' 만들기... '최소한의 시민'

인문학시즌2 북토크 정주식·이재훈 등 토론서 공통 토대·핵심 찾는 과정 강조'정치적 올바름'의 논쟁 구도 꼬집기도 ■ 최소한의 시민┃강남규·박권일·신혜림·이재훈·장혜영·정주식 지음. 디플롯 펴냄. 312쪽. 1만8천800원'찬성과 반대, 승자와 패자, 그리고 합격과 불합격'.으레 '토론'하면 떠오르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키워드들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시민' 저자들의 생각은 다른 동시에 확고하다.지난 24일 수원시 행궁동 책고집에서 진행된 '정기강좌: 오늘을 이해하는 인문학 시즌2' 북토크에서 만난 저자 3명, 칼럼니스트 강남규·한겨레21 편집장 이재훈·칼럼니스트 정주식은 생각의 '공통분모'를 만드는 '과정'을 강조했다.한겨레21 편집장 이재훈은 "정치인이나 비평가들이 양쪽 편을 갈라서 대립하는 의견으로 벌이는 배틀 식의 방식으로 토론하는 게 우리 사회에 정착된 토론 문화"라며 "꼭 진보나 보수로 나누지 않아도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단순 타협과는 다르며, 공통의 토대를 만드는 작업이 토론에 있어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이날 북토크의 재료, '최소한의 시민'은 모 아니면 도밖에 없는 한국 사회 토론 문화를 답습하는 대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며 생각의 새로운 지대를 발견하고자 하는 여섯 명의 인물들이 저술한 책이다. 여섯 저자가 속한 생각 협업 공동체 '토론의 즐거움'은 지난 2022년부터 2년 동안 98회가량 모임을 진행했고, 여기서 나온 주요 내용들을 정리해 책에 담았다.이들은 토론을 누군가의 생각을 전환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게 아닌, "다른 의견을 발명하고 밝히는 일"이라고 서두에서 분명하게 밝힌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사적 복수·세대론·도파민 중독·장애 담론·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국가주의·혐오정치·소비주의 등을 기존의 뻔한 논거를 들어 설명하기보단, 주요 사안들과 엮어 풀어낸다.현재 각종 소모임 앱에서는 토론을 기반으로 한 책모임이 성황이다. 시민들의 질문도 대개 '모임에서 어떻게 하면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지'로 좁혀졌다. "의가 상하지 않으면서 토론 모임을 지속할 방법", "편을 나누지 않고도 토론을 즐길 방법"…. 저마다 토론하며 겪은 생생한 에피소드가 궁금증의 원천이었다.칼럼니스트 정주식은 누군가를 '이겨 먹는' 싸움이 아닌, 말 그대로 건전한 토론을 나누는 건 과정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대의 주장에 담긴 허점을 지적해내는 사람이 토론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며 "오히려 즉흥 토론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말의 오류가 아닌, 핵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책에서 다룬 주제 중 이날 현장에서 가장 열기가 뜨거웠던 건 '정치적 올바름'이었다. 정치적 올바름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용어 사용을 지양하는 동시에, 콘텐츠를 생산할 때도 이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자 사회 운동이다."정치적 올바름은 이 책에 등장하는 장애인 시위, 동성혼 문제를 포괄하는 문제"라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단순 찬반으로 의견을 나누는 기존의 토론 문화가 정치적 올바름 논의조차도 '정치적 올바름vs표현의 자유'의 대립처럼 좁힌다"는 지적도 이어졌다.칼럼니스트 강남규는 "우리가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왜 이 작품을 향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고민해가는 데 있다. 무 자르듯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과는 다르다"며 "어떤 콘텐츠에 정치적 올바름이 담겨 있는가 아닌가는 식의 진영으로 갈라 논쟁하는 구도는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어쩌면 책 제목 '최소한의 시민'은 사회의 최소 단위, 한 개인의 생각이 하나하나 모여 타인과 연결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사전적 의미의 '토론'을 새삼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이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왼쪽부터) 칼럼니스트 정주식, 한겨레21 편집장 이재훈, 칼럼니스트 강남규. 2024.9.24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024-09-26 19:03:46

오산시 '신장2동 도서관 건립' 첫단계부터 삐걱

시의회 민주, 용역예산 전액 삭감이권재 시장 "학습 강화 여건 꺾여""동네에 도서관이 생기나 기대했는데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정치적이 아닌 시민을 위한 판단을 해줬으면 합니다."오산시가 교육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신장2동 도서관 건립'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해당 사업관련 용역비 전액을 감액했기 때문이다.25일 시에 따르면 집행부는 제287회 임시회에 제출한 2차 추가경정예산에 내삼미1구역 지구단위계획 변경 연구용역비 1천320만원을 반영했으나 전액 감액 처리됐다.해당 용역비에는 내삼미동 소재 서울대병원 유휴부지를 활용해 건립하려던 미니어처 빌리지 인근 공공도서관 설립 내용도 포함돼 있다. 도서관 건립을 위해서는 공유부지 형질변경을 위한 지구단위계획 변경이 우선돼야 한다.시는 예산 196억여 원을 투입, 연면적 4천971㎡,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도서관 건립을 계획했다. 신축 예정이던 도서관은 주로 신장2동과 신장1동 주민 일부가 사용하게 될 예정이었다. 신장1·2동의 인구 수는 총 5만8천349명(2만5천319세대, 2024년6월30일 기준)으로 분동 직전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상위그룹에 속한 상황이다.  하지만 신장2동 주민들은 인근에 도서관이 없어 오산중앙도서관 또는 꿈두레도서관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던 터라, 이번 도서관 건립 관련 예산 삭감으로 주민들의 실망이 커진 상태다.더욱이 시 입장에서는 앞으로 외삼미동 및 내삼미동 일원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최대 1만 가구가 공급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선제적인 인프라 구축은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이권재 시장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신장동 지역에는 아이들이 학습할 수 있는 도서관이 전무한 상황이기에 아이들의 수학 여건 강화를 위해 공유지를 활용해 도서관을 설립하려고 하는 의지가 첫 단계에서 꺾였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A 시의원은 "의회가 민생을 살핀다면서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용역 예산마저 감액 처리한 것은 시 정책에 대한 발목잡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오산/조영상기자 donald@kyeongin.com

2024-09-26 06:47:58
[신간] 그 나무가 궁금해… 원종태 숲해설가의 나무 이야기

[신간] 그 나무가 궁금해… 원종태 숲해설가의 나무 이야기

■그 나무가 궁금해┃원종태 지음. 밥북 펴냄. 276쪽. 1만8천원 원종태 전 여주시산림조합장이 두 번째 신간 '그 나무가 궁금해'를 출간했다. 이 책은 36년간 나무와 함께한 그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나무들에 숨겨진 놀라운 이야기와 지혜를 담고 있다. 원종태 작가는 여주에서 태어나 여주시산림조합에서 임업기술지도원으로 시작해, 여주시산림조합장으로 36년간 봉사하며 나무와의 깊은 인연을 이어왔다. 또한, 그는 3대와 4대 여주군의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임업지식을 정책에 접목해 나무와 산림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올해 고희를 맞은 원 작가는 노년에도 원예복지사, 산림치유사, 산림아카데미를 이수하며 나무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숲과 복지를 연결하는 사회복지사이자 숲 해설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 나무가 궁금해'는 기존에 발표한 칼럼들을 정리하고 보완해 더욱 알찬 구성으로 선보인다. 책은 총 5장으로 나뉘어 나무와 인간의 관계, 나무의 생태, 전설 등을 다룬다. 특히, 작가는 나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후변화 시대에 나무가 인류의 희망이자 미래라고 전한다. 그는 나무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원종태 작가는 “나무는 지혜로운 스승이자 사랑, 기후변화 시대에 나무가 인류의 희망이자 미래"라며, 독자들에게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동참할 것을 권장한다. '그 나무가 궁금해'는 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미래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

2024-09-23 13:40:10
어린이도 이해하기 쉬운 항공안전 대처법… 에어로케이항공 '덜컹! 비행기가 왜 흔들려요?'

어린이도 이해하기 쉬운 항공안전 대처법… 에어로케이항공 '덜컹! 비행기가 왜 흔들려요?'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로케이항공은 어린이를 위한 항공 안전 도서 '덜컹! 비행기가 왜 흔들려요?(사진)'를 출간했다고 22일 밝혔다.이 책은 항공 안전 관련 내용을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공항 소방대 소방원, 간호사, 2급 응급구조사, 군 장교, 특전사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에어로케이 객실 승무원들이 어린이의 눈높이 맞춰 책을 제작했다.이 책은 모두 6가지의 테마로 구성됐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이유와 이착륙 과정에서 왜 등받이를 제자리로 해야 하는지 등 탑승 경험에서 생기는 궁금증과 쓰러진 승객을 발견하거나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 방법을 포함해 29개의 주제를 다룬다.에어로케이는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어린이를 위한 항공 안전 체험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에어로케이 관계자는 "항공 안전 관련 중요 정보는 쉽게 전하기 어려워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까지 이해하기 쉬운 항공 안전 정보를 담은 책을 만들게 됐다"며 "최근 난기류를 비롯한 항공기 안전 이슈가 계속 이어지는 만큼, 이 책을 통해 누구나 다양한 위기 상황을 안전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덜컹! 비행기가 왜 흔들려요?'는 이달 말부터 전국 주요 서점과 에어로케이 항공기에서 구매할 수 있다. 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에어로케이 공식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2024-09-22 20:38:15
'히브리 성서는 어떻게 보존돼왔나'… 김영호 교수의 편집 과정 톺아보기

'히브리 성서는 어떻게 보존돼왔나'… 김영호 교수의 편집 과정 톺아보기

■ 구약성서와 이데올로기┃김영호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344쪽. 2만2천원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신학과 석좌교수로 경인일보 오피니언 필진 등으로 활동하면서 구약성서를 연구하고 있는 김영호 (주)풍전에프앤비, (주)멀티퍼시픽 대표이사 회장이 새 책 '구약성서와 이데올로기'를 발간했다.책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히브리 성서를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집필·편집하고 보존했는가를 논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성서를 보다 풍부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저자는 최종 형태의 히브리 성서를 저술하고 편집한 주체를 '바벨론 포로 귀환 사제 집단'으로 여기고, 그들이 어떻게 정통성을 확보해갔는지 성서의 편집과정을 파헤친다. 또한 히브리 성서에서 성전과 성벽을 완공한 목적, 배경, 의미, 그것의 이데올로기 등을 살펴본다.저자는 오늘날 한국교회 또한 이 책에서 서술된 사제의 권력과 탐욕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목회자들이 권력 지향적 부패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성서가 이끄는 깊은 안내와 초대에 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또한 저자는 독자들이 단순히 성서를 해체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성서가 제시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보길 기대하고 있다. /양형종기자 yanghj@kyeongin.com

2024-09-20 07:22:16
[북리뷰&인터뷰] 대만 性소수자 소설가 천쓰홍

[북리뷰&인터뷰] 대만 性소수자 소설가 천쓰홍 "퀴어소설, 이성애자가 써도 될까?… 존중만 남겨주길"

‘귀신들의 땅’ 이어 ‘67번째 천산갑’ 출간 게이인 그·헤테로 그녀 우정 그려가부장제 아래 '이등 시민'들 위로누나 7명 경험 녹여… 부조리 묘사■ 67번째 천산갑┃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민음사 펴냄. 492쪽. 1만8천원"저는 남성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성소수자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이번에 출간한 '67번째 천산갑'을 통해 게이인 남자 주인공과 헤테로(이성애자)인 여자 주인공, 둘의 미묘한 관계를 말하고 싶었어요.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과 성소수자 남성은 둘 다 '이등 시민'으로 취급되니까요."커밍아웃한 대만의 유명 게이 소설가 천쓰홍(48). 전작 '귀신들의 땅'(2023)으로 대만 최고의 양대 문학상을 받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책이 1만5천부가 넘게 판매되는 등 깜짝 인기를 끌었던 그가 장편 신작 '67번째 천산갑'으로 한국 독자를 다시 찾았다. 지난 9일 서울시 중구 광화문 인근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그를 만났다. '67번째 천산갑'은 게이 남성인 '그'와 헤테로 여성인 '그녀'가 소수자로서 마주하는 아픔과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동성 연인 J를 먼저 떠나보낸 그는 공허하게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다. 그는 고향인 대만에서도 가족에게조차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내왔다. 그의 유일한 친구인 그녀는 거물 정치인의 아내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화려한 삶을 사는 듯 보이나 실상은 '트로피 와이프'다. 이런 두 주인공의 관계는 중화권 단어 '게이미(Gay蜜)'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서로 막역하게 지내는 여성과 게이 남성 사이를 뜻한다. 소설은 게이미로 엮인 두 사람이 프랑스 낭트를 향해 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들의 우정은 잠시 소원해졌다 중년이 된 현재 시점에서 함께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무르익는다. 장면 장면은 마치 버디무비나 로드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파리-대만-투르-낭트로 배경이 전환될 때마다 기억에 숨어 있던 과거 사건들이 두 주인공을 쫓아온다. 책을 읽다 보면 한국 퀴어 문학의 베스트셀러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2019)에 수록된 단편 '재희'가 연상되기도 한다.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의 우정, 그리고 임신중지라는 소설 속 사건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67번째 천산갑'은 가부장제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겪는 부조리를 더욱 세심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남성 작가가 표현했지만, 실제 여성들의 삶과 결코 괴리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대만 융징향의 한 농가에서 아홉째 '막둥이'로 태어난 천쓰홍의 경험이 녹아 있다. "저는 누나가 일곱 명 있어요. 대만 사회에서 누나 일곱이 연속으로 태어난 것은 남존여비가 워낙 강한 탓이죠. 딱히 낳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키운…. 그런 누나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성들이 어떤 슬픔을 가졌는지 알게 됐어요. 그래서 소설을 통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대만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이 법제화된 국가이나, 천쓰홍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는 나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대만의 대도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울지라도 농촌 지역은 성소수자들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이름 옆에 붙는 '게이 소설가'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천쓰홍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심한 한국 사회에 대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더욱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의 퀴어 예술가들이) 압박감을 많이 느끼고, 존재하고 있음에도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했다.이런 한국 사회의 한편에서는 헤테로 소설가가 퀴어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이에 대해 천쓰홍은 "작가와 문단에서도 아주 많이 고민하는 문제"라며 "마침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인데, 영국에서 자란 일본 작가의 소설이다. 이 사람은 일본인이지만 영국인의 시선으로 세계대전 이후의 이야기를 썼다"고 운을 뗐다. 이어 "만약 헤테로인 사람이 퀴어 서사를 쓴다 할지라도 그 속에 당사자를 향한 '존중'이 남아 있다면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여러 도덕적인 문제가 있을 수는 있겠다"며 "한국에서 수많은 헤테로 작가들이 퀴어 소설을 쓰게 된다면, 앞으로 퀴어들이 자유로울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면 존중을 '부러' 계산할 필요가 없는, 정체성이 게이인 천쓰홍에게 집필하는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는 퀴어 당사자임을 공표하고서 실제 자신의 삶을 토대로 대중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의할 순 없겠지만, 그의 글은 단순히 잘 쓴 '퀴어 장르물'이 아닌 삶의 진실을 좇는, 진심이 담긴 '문학'인 것만은 분명하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대만 소설가 천쓰홍이 지난 9일 서울 중구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돌담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9.9 /민음사 제공지난해 출간된 장편 ‘귀신들의 땅’에 이어 신간 ‘67번째 천산갑’을 들고 한국 독자를 찾은 대만 소설가 천쓰홍이 지난 9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국내 출간된 대만 소설가 천쓰홍의 작품. ‘67번째 천산갑’(2024), ‘귀신들의 땅’(2023). /민음사 제공지난해 출간된 장편 ‘귀신들의 땅’에 이어 신간 ‘67번째 천산갑’을 들고 한국 독자를 찾은 대만 소설가 천쓰홍이 지난 9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대만 소설가 천쓰홍이 지난 9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읽고 있는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예시로 들며 창작 윤리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4.9.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024-09-19 19:03:29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제노사이드 중단! 평화의 메아리 울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제노사이드 중단! 평화의 메아리 울린다

계간 황해문화 가을호 '팔레스타인' 특집 기획… 전문가 말 빌려 다방면 대안 제시 계간 황해문화 2024년 가을호(통권 124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자행되고 있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중단과 평화·공존을 모색하자는 목소리를 모아 더 큰 메아리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 특집을 기획해 상당 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특집 총론 격인 홍미정 단국대학교 아시아중동학부 교수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와 구조'는 현재 이스라엘 점령지인 가자와 서안, 동예루살렘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역사의 구조적 원인들은 무엇인지를 지정학적 변화를 담은 지도를 첨부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이어지는 ▲백범석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국제인권레짐에서 논의된 팔레스타인 문제'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사회융합학부 교수의 '제노사이드 이론으로 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옥창준 한국학대학원 교수의 '흔들리는 언덕 위의 도성' ▲성일광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중동·이슬람센터 연구위원의 '평화를 향한 이스라엘 내부의 목소리'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팀장의 '원인은 하마스가 아니야. 바로 이스라엘의 점령이야!' 등의 글들은 각각 국제 레짐, 역사적 맥락, 문학과 미디어, 이스라엘 지식인, 현장 활동가 등 다양한 관점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이번 호 '테마서평'에서도 조준일 한겨레신문 선임기자가 도브 왁스만의 '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 일란 파페의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정환빈의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등 이-팔 전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그 외 읽을거리가 풍족하다. 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와 백원담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대담 '아시아에서 근대 중국사상의 흥기와 사상 회통', 문화비평 특집 '온라인이라는 폭력과 섹슈얼리티, 가능성의 공간', 그리고 국민연금 개혁, 네이버 라인(LINE) 사태, 미국으로 돌아간 어재연 장군 수자기 등 다채로운 담론들이 사유의 숲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있는 김동우 작가의 '포토에세이'에서는 국외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초현실주의적 사진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024-09-19 19: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