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가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에 들어선다. 개찰구 오른쪽에 위치한 태그에 교통카드를 가까이 댄다. 직장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탄 후 오른쪽에 위치한 버튼을 누른다. A씨 책상에는 컴퓨터가 놓여있다. 마우스는 오른쪽에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해 사이트 오른쪽에 위치한 로그인 창을 바라본다.누군가에겐 지극히 익숙한 모습이지만, 왼손잡이라고 생각하면 끝없이 불편한 일상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것들이 오른손잡이의 편의에 맞춰져 있다. 대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역자 책상이 대표적이다. 왼손잡이가 필기를 하려면 몸을 90도로 틀어야 한다. 왼쪽과 오른쪽의 클릭 기능이 다른 컴퓨터 마우스 역시 오른손잡이용으로 맞춰져 있어 왼손잡이가 수월하게 사용하려면 별도의 설정을 통해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한다.지난 2014년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8월 13일 '국제 왼손잡이의 날'을 맞아 성인 남녀 1천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가 왼손잡이였다. 이들 가운데 37%는 "일상생활에서 왼손잡이라 불편하다"고 말했다. 편리함의 문제를 넘어 안전과 직결되기도 한다. 군대 내에서 왼손잡이 다수는 불편한 오른손을 사용해 사격을 한다. 수류탄을 던질 때도 왼손잡이는 수류탄을 거꾸로 들고 준비 자세를 취해 사고 위험이 가중된다. 한국전력공사가 2019년 상반기까지 안전 문제와 기존 매뉴얼 등을 이유로 전기·전자 기술직군 채용시 왼손잡이를 배제했던 것처럼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지하철역 개찰구 교통카드 태그 위치승강기 버튼·군대 사격 모두 오른쪽'우 편향 문화' 왼손잡이 실종 심화 오른손잡이 위주의 문화는 우리나라 왼손잡이의 '실종'을 더욱 부추기는 모양새다. 유럽의 왼손잡이 전문 사이트 'leftyfretz'가 전 세계 왼손잡이 비율을 조사했는데,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왼손잡이 비율은 2%로 나타났다. 2014년에 이뤄진 한국갤럽 조사보다도 비율이 낮아졌다. 조사 대상과 방식 등에 차이가 있음을 고려해도 해당 조사에서 전 세계 인구의 12%가 왼손잡이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왼손잡이 인구 비율은 상당히 낮은 수치다.설 자리가 좁은 국내 왼손잡이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나 단체도 전무한 상황이다. 1999년 왼손잡이의 인권 신장을 위해 한국왼손잡이협회가 출범했지만 2005년 협회장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는 왼손잡이 관련 두드러지는 활동을 하는 단체는 없는 실정이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국제왼손잡이협회가 1976년부터 매년 8월 13일을 '세계 왼손잡이의 날'로 정하고, 왼손잡이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과 대조된다. 정치권에서도 사정이 다르진 않다. 2003년 당시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이 왼손잡이를 위한 편의시설을 생산·설치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 유일했다. 하지만 입법에 이르진 못했다.왼손잡이, 세계 '12%' 한국 '2%'뿐국내 전문가·단체는 전무한 상황지난 2020년 총선에 왼손잡이 인권 신장 공약이 등장하면서 변화의 바람도 감지되고 있다. 당시 김재원 미래통합당 희망공약개발단장은 왼손잡이 기본법 제정을 약속했다. '왼손잡이 기본법'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서 왼손잡이 인식교육을 실시하고 실생활에서 왼손잡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각종 편의시설을 개선하는 게 골자다. 당시 공약을 발표했던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아버지가 왼손잡이고 주변에 왼손잡이가 많다. 어렸을 때 왼손잡이용 낫을 사러 30리를 걸어간 적이 있다. 당시 왜 '왼손잡이들은 불편하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은 지금도 만연해 있다. 인식이 바뀌어야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승택기자 taxi226@kyeongin.com생활 곳곳에서 왼손잡이들은 일상적인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른손잡이를 위한 대학 강의실 기역자 책상. 왼손잡이들은 불편을 극복하기 위해 양손잡이가 되거나 오른손잡이인 척 살아가고 있다. 2022.4.3 /김금보·김도우기자 artomate@kyeongin.com생활 곳곳에서 왼손잡이들은 일상적인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른손잡이를 위해 오른쪽에 위치한 지하철 개찰구. 왼손잡이들은 불편을 극복하기 위해 양손잡이가 되거나 오른손잡이인 척 살아가고 있다. 2022.4.3 /김금보·김도우기자 artomate@kyeongin.com
왼손잡이인 박영수(33·가명)씨는 지난 2017년 한국전력공사 전기·전자분야 기술직 채용에 지원했다. 박씨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도 있어 나름 합격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응시자격의 한가지 조건이 박씨를 짓눌렀다. 한국전력이 전기·전자분야 응시자격을 '오른손 사용자'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면접일 하루만 오른손잡이가 되려 노력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부터 수험표를 받는 것까지 모두 익숙지 않은 오른손을 사용했다. 심지어 '왼손잡이'인 것이 티가 날까 면접장 문조차 오른손으로 열었다. 실기과정에서 오른손잡이에 유리한 평가가 있었지만 무난하게 해냈다. 그럼에도 차별에 대한 설움을 지우기 어려웠다.한전 2019년까지 '왼손' 응시 제한합격자 박씨, 면접·회사생활 고충 며칠 후 박씨는 고대하던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면접일에 겪었던 서러움도 '합격'이라는 두 글자로 모두 잊었다. 그러나 몇 달 후 A본부에 배치돼 첫 근무에 나선 박씨에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들과 식사를 할 때 왼손으로 먹으면 "너 왼손잡이야?"라는 질문이 날아들곤 했다. 박씨는 "처음 같이 밥을 먹는 동료들에겐 '원래 왼손잡이냐'는 질문을 항상 들었다. 윗사람들과 식사를 할 땐 특히 눈치가 보였다"면서도 "왼손잡이인데 오른손 사용을 연습해 합격했다고 답했다. 굳이 왼손잡이임을 숨기지 않았다. 왼손잡이를 배제하는 것은 한국전력이 극복해야 하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윗사람과 식사땐 특히 눈치 보여"공공기관마저 최근까지 편견 잔존 한국전력은 2019년 상반기까지 전기를 다루는 직군에 한해 응시자격에 '오른손 사용자로 색맹이 아닌자'라는 제한 요건을 뒀었다. 이런 규정은 불과 3년 전인 2019년 하반기에서야 삭제됐다. 과거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강제 교정시키는 교육이 이뤄지곤 했지만 올해 취업준비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공공기관 1위로 꼽힌(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 '2022년 취업준비생 2천264명 대상' 조사 결과) 대한민국 대표 공공기관 중 한 곳인 한전에서도 비교적 최근까지 차별이 존재했던 것이다. 왼손잡이이지만 어색하게 오른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박영수'씨가 한전 내 다수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한국전력은 "전기를 다루는 일이 안전과 직결되고, 모든 매뉴얼이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표준화돼 있어 채용과정에서도 그런 부분을 감안했었다"며 "지금은 지원 요건이 바뀌었고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은 전혀 없다. 혹시 기술직군에 대해 왼손잡이를 차별하는 문화가 있는지도 확인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일상 많은 것들 오른손잡이 편의 맞춰져 '불편') /서승택기자 taxi226@kyeongin.com생활 곳곳에서 왼손잡이들은 일상적인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진은 오른손잡이를 위한 대학 강의실 기역자 책상. /김금보·김도우기자 artomate@kyeongin.com
오미크론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병가' 딜레마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정부에서 자가 격리 기간 중 유급 휴가를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력이 있는 제재가 아닌 탓에 현장에서는 직장인들에게 연차 사용을 강제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27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본인 확진에 한해 일주일간 자가격리 기간을 두도록 한 대신 자가격리에 들어간 노동자들에게 유급 휴가를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상 기업이 노동자의 유급 병가를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다. 감염병 예방법 제41조도 '노동자가 입원 또는 격리될 때 사업자가 유급 휴가를 줄 수 있다'고 규정한다.문제는 해당 법이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미크론 확산이 이어지면서 27일 0시 기준 전국 신규 확진자가 31만8천여 명을 웃도는 상황 속에서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직장인은 많지 않았다. 감염병 예방법 '유급휴가' 권고뿐확진·자가격리자 맘 놓고 못 쉬어"회사는 쉬라고 하지만 연차 써야" 용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지훈(가명)씨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으로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했다. 가족 구성원 2명 모두가 확진된 탓에 온종일 방 안에서만 머물러야 했음에도 그는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김씨는 미리 잡아둔 고객과의 미팅은 간신히 익힌 비대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진행했고 고열에 시달리던 중에도 시시각각 회사에서 걸려 온 연락을 받아야 했다. 수원의 한 기업에 다니는 이지혜(가명)씨도 자가격리 기간 내내 근무했다. 코로나19 확진 이후로 증상이 점차 악화했지만 "노트북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그는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두통이 심해 잠시 잠을 청하려 할 때면 회사에서 꼭 연락이 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회사에서 일하기 싫으면 연차를 쓰라는데 아픈 것도 서러운데 연차까지 소진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이들이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사측에서 운영 중인 '병가 제도'가 없어서였다. 정부에서 유급 휴가를 권하는 것과 달리 일선 현장에선 병가 제도가 자리 잡은 기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나마 대기업과 일부 중견 기업은 근기법상 취업 규칙에 따른 '병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업은 많지 않다는 게 복수 노무사들의 설명이다.대기업 등 일부만 '병가' 취업규칙휴가형태 따른 '생활지원금' 혼란 이는 비단 이들만의 일은 아니다. 온라인에서는 무급 휴가 사용에 따른 정부 생활지원금 신청법, 유급 휴가 지원금 규모 등 관련 문의 글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리꾼들은 '회사에서 유급 휴가를 제공했다면 사측은 정부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더라', '무급 휴가를 쓴 개인은 직접 동사무소에 가서 지원금을 신청해야 한다'는 등의 관련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전문가들은 병가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장 혼선을 줄이고 노동자들의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직장갑질119 최혜인 노무사는 "병가는 사측 자율에 맡겨지고 있다"며 "이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취업 규칙 자체가 없는 곳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최 노무사는 "병가와 상병수당이 법적으로 제도화돼야 한다"고 짚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쉬는 것도 회사 규모 따라… 5인 미만 사업장 취업규칙도 없어)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9일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에 마련된 재택치료 건강모니터링 센터에서 직원들이 재택치료자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2022.2.9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수원시청에서 재택치료추진단 직원들이 재택치료자들에게 지급할 물품들을 배분하고 있다. /경인일보DB
직장 내 병가 제도의 핵심에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이 있다. 현행 근기법에는 '병가'가 명시돼있지 않는데, 이 때문에 대다수 사업장은 '취업 규칙'에 근거해 병가를 운영한다. 그러나 취업 규칙에 병가를 명시하는 것 자체도 사측 자율에 맡겨져 있고 5인 미만 소규모 영세 사업장은 취업 규칙 자체가 없는 곳이 대다수다.5인 미만 사업장은 경기도에만 31만1천680개에 달한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85만4천878명이다. 해당 수치는 2019년 말 기준으로 코로나19 이후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배달 노동자 등 초단기간 노동자 수가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5인 미만 사업장은 더욱 늘었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쉬는 것도 회사 규모에 따라…왜통상 사업장 규모에 따라 병가 제도 운용 여부가 다르다. 사업장 규모는 근기법 적용 대상인 5인 이상이 기준이 된다. 5인 이상 노동자가 소속된 사업장은 휴업수당, 연차휴가, 취업규칙 등 노동자의 쉴 권리가 근기법에 근거해 대체로 보장된다. 하지만 '병가'는 의무 조항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일주일 격리를 하더라도 무급으로 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경기도 5인 미만 31만1천여개주15시간 미만 노동자수 증가 5인 미만 사업장의 상황은 어떨까. 근기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난 해당 사업장은 사실상 노동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시피 하다. 5인 미만 사업장 권리 보장 활동을 하는 권리찾기유니온은 사업장 규모와 별개로 근기법 전면 적용을 촉구하며 길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 하은성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도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병가' '상병수당' 해외에선 병가와 상병수당은 대한민국에서는 근기법상 제대로 명시돼있지 않다. 상병수당은 일정 기간 몸이 아파 일을 못하면 소득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로 사업 취지는 유급 병가와 일맥상통한다. 병가는 법에 규정되지 않았고, 상병수당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 규정이 명시됐지만 시행령에 관련 내용이 없다.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는 다르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2020년 발표한 이슈 페이퍼 '외국의 유급 병가, 상병수당 현황과 한국의 도입 방향'에 따르면 세계 조사 대상국 중 173개국은 이미 법정 유급병가와 상병급여를 도입했다.OECD 회원국중 한국·미국만상병급여·법정 유급 병가 없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상병 급여가 없는 곳은 한국,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뿐이며 이 중 법정 유급 병가마저 없는 곳은 한국과 미국이 유일하다.코로나19 치료 및 예방적 격리가 늘어나며 기존 상병 급여를 확대한 곳도 생겨났다. 독일, 아일랜드, 포르투갈,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선 직장인이 아닌 자영업자에게도 상병 급여를 확대 지급하기도 했다. 이재훈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포괄적 혼합형 보장 체계 구축'을 언급하며 "유급 병가를 법제화하고 상병 급여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너도나도 '병가' 보장해야대한민국에서도 병가 및 상병수당 지급 논의가 최근 들어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 상병수당 시범 사업 공고를 냈다. 복지부는 올해 7월부터 1년여간 시범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형 상병수당 모델'을 만들겠다는 취지다.국회에서도 노동자들의 '쉴 권리' 보장에 나섰다. 21대 국회 들어 코로나19 관련 병가 및 상병수당 관련 법안은 다수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김해을) 의원은 지난 2월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몸이 아프면 일을 하지 못하는 소상공인에게 지급하는 상병수당을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정춘숙(용인병) 의원과 같은 당 박광온(수원정) 의원은 국민건강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더불어민주당 서영석(부천정) 의원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노동자의 아프면 쉴 권리 보장에 나섰다.전문가들 "병가 법제화 필요" 전문가들은 병가 제도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병가는 회사 내규에 따라 정하는데 무급인 곳이 많다"며 "병가를 회사 자율에 맡기는 꼴이라 하루에도 5건 이상씩 사용자와 노동자 문의가 쇄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 공백으로 인해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제도적으로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사용자·노동자 제도 공백 혼란"지원금 통해 임금 손실 보존" 유급 휴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정부 지원금을 적극 활용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박소영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병가를 법제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임금손실이 무서워서 무급병가 대신 연차를 사용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박 노무사는 "병가를 법제화하는 건 다소 먼 이야기일 수 있다"며 "노동조합 단체 협약 등을 통해 연차를 쓰지 않고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지자체 지원금으로 임금 손실을 보전하는 등의 방법이 있으니 현재는 이런 방안을 노동자들이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정부는 코로나19 자가격리에 들어간 노동자에게 유급 휴가를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사업장에서는 연차 사용을 강제하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재택치료자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재택치료 건강모니터링 센터. 2022.3.27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경기도내 코로나19 재택치료자가 14만명까지 급증하면서 각 지자체에서는 코로나19 대응에 매진하고 있다. 화성시청 동탄출장소에 마련된 코로나19 행정안내센터에서 상담원들이 분주히 안내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경인일보DB수원시청에서 재택치료추진단 직원들이 재택치료자들에게 지급할 물품들을 배분하고 있다. /경인일보DB
코로나19 대유행의 혼란 속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어느 때보다 유권자의 강한 질책을 받으며 20대 대통령선거를 치렀다. 선관위 입장에선 감염병으로 인한 유례없는 선거였지만, 미흡한 선거관리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효율적인 선거 관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투·개표에 동원된 지방공무원의 집단 반발과 대선 직전 이뤄진 단일화로 뜻하지 않게 자신의 표가 사표로 처리된 유권자 문제 등은 현행 투·개표 시스템을 다시 성찰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지방공무원의 선거사무 동원은 꽤 오랫동안 곪아온 문제다.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선거사무 종사자 위촉 방식 등 부동의서' 서명운동을 벌였고 한달여 만에 11만374명의 동의를 얻어 각 자치단체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전달했다. 대선前 공무원노조 11만 '부동의'동원된 사무원 방역 대책 미비도 공무원노조는 이미 오랫동안 휴일인 선거일 '강제 동원'에 대한 불만이 커져 온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겹치며 확진·격리대상 유권자에 대한 선관위의 허술한 업무 지시와 불가피한 접촉에 대비한 방역 대책 미비가 더해진 게 이번 선거사무 단체 거부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집단 행동과 함께 공무원 내부 게시판 등에는 개인적인 반감을 드러낸 사례도 속출했다. 성남의 한 공무원은 내부망 익명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선까지는 울면서 하겠습니다만, 지방선거는 못하겠다. 아니 안 하겠다"며 "오늘 투표가 끝나고 저희 팀장님 펑펑 우시는데 진짜 가슴이 아팠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진짜 못해먹겠다. 너무 화가 난다"고 적었다. 이 공무원은 댓글에 "다른 말은 표현할 수가 없고, 사전투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선관위는 시종일관 성남시 직원들을 부리는 느낌이었다"며 "성남시 공직자를 위해 노동조합에서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 달라"고 덧붙였다.투표지 인쇄후 단일화·후보사퇴일부 재외·선상투표 '무효' 전락 문제는 또 있다. 사전투표 개시를 불과 이틀 앞두고 이어진 두 차례 단일화와 후보 사퇴로 재외투표와 선상투표 등 이미 진행된 본 투표 외 제도로 투표한 유권자들의 표가 무효표로 전락했다. 사전투표와 본 투표일에 사용할 투표용지는 지난 1일부터 이미 인쇄를 마친 상태여서 각 투표소에 후보 사퇴를 알리는 현수막 등 안내문으로만 공고할 수밖에 없어 단일화 여부를 잘 알지 못한 유권자를 배려하지 못했다.결국 이번 대선은 전자개표 시스템 도입 이후 무효표가 가장 많이 나온 대선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단일화 없이 치러진 지난 19대 대선 당시 무효투표율(총 투표수 대비 무효표 수)은 0.41%에 불과했으나 이번 대선은 두 후보의 사퇴와 단일화 등 이유로 무효투표율이 19대 대선의 2배를 훌쩍 넘는 0.90%로 집계됐다.선관위 "속히 입법 개선안 낼 것" 중앙선관위는 이번 대선에서 불거진 선거 투·개표 시스템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 방안 모색에 나섰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개선 방안을 발표하긴 어렵겠지만, 불거진 여러 상황을 확인하고 지선에서 보완할 수 있도록 국회에 입법 개선안을 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사전투표 '과노동 비효율'… 사표 줄이기 노력 뒤따라야)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종료된 9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장에서 개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2.3.9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종료된 9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장에서 개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2.3.9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종료된 9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장에서 개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2.3.9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투·개표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에는 '사전투표'가 있다. 20대 대통령선거의 사전투표 수치는 제도 도입 이후 역대 최고 수치인 36.93%를 기록하며 참정권 실현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사전투표 제도 도입 이후 투·개표 선거 사무 동원 인력과 비용이 늘어나 '과노동 비효율'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공존하고 정치 단일화가 만연한 한국 정치풍토에서 재외, 선상투표 등 사전에 투표하는 제도들에서 사표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대선에 동원된 경기·인천 공무원 2만345명=이번 대선에서 선거 사무에 동원된 전국 총 인원은 55만3천여명(추정치)이다. 이 수치는 사전투표와 선거일 투표에 동원되는 사무원과 참관인, 위반행위 예방·단속 인력 등으로 지난해 12월 기준 평택시 인구수와 맞먹는다.선거 사무원 대다수는 지방공무원이다. 각 지역 선관위는 유관기관에 선거 사무원 참여 독려 공문을 보냈지만, 자발적 참여 효과는 거의 없고 사실상 할당이 있어 강제동원에 가까웠다. 이유는 간단하다. 14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급이 6천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선거사무 동원 55만여명 추정14시간 노동 시급 6천원 불과 대부분 지방공무원에 떠넘겨 경기 지역 투표 사무원과 개표 사무원 4만9천125명 중 1만5천265명이 지방공무원이었다. 지방공무원 강제동원 논란이 끊임없이 일자 선관위도 선거사무원 등으로 참여하는 지방공무원 목표치를 50% 이하로 잡기도 했다. 경기지역은 전체의 31.07%로 목표치 아래이긴 하지만, 기타로 분류된 인원을 제외하면 공직자 중에선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인천 지역도 마찬가지로 투·개표 사무원 1만1천440명 중 지방공무원만 5천80명이 동원됐다.익명을 요구한 경기 남부의 지자체 공무원 A씨는 "투표 사무원과 개표 사무원 모두 지방공무원이 공직자 중에선 가장 많다"라며 "선관위 직원들도 투·개표소에 나와 있지만, 실제 유권자 응대와 참관인들 사이의 중재와 선거 사무는 오롯이 지방직에 떠넘겼다"고 토로했다.선관위는 선거사무원으로 동원된 공무원을 사전투표와 본투표를 나눠 집계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현장에선 사전투표로 인해 더 많은 지방공무원들이 동원됐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전국 55만3천여명의 선거 사무원 중에 14만8천여명이 사전투표에 동원됐다. ■ 투표율 제고가 능사인가= 이번 대선 투표 결과로 볼 때 사전투표는 분명 투표율 제고에 기여했다. 하지만 본 투표에 앞서 이틀간 이뤄졌기 때문에 동원을 원치 않은 선거 사무원들에게 강한 반감을 갖게 한 것도 분명하다. 아울러 무효표 급증에 사전투표가 역할을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전투표 직전에 이뤄진 단일화로 이번 대선의 무효표가 지난 19대 대선의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투표를 빼더라도 단일화로 2명의 후보가 사퇴하기 전 투표한 재외, 선상 투표 유권자 표는 총 16만4천986표다. 이 중 사퇴한 후보에게 찍은 유권자의 표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사표로 전락했다. 거소투표제도 손질 필요 조언 이 때문에 재외 및 선상투표 각각 본 투표일 2주 전과 8일 전부터 이뤄지는 만큼 선관위가 등기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보낸 뒤 되돌려 받는 거소투표 제도를 손질해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이공주 상지대 법률행정학과 교수는 "사전투표가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다는 편리성이 있고, 사전투표 기간이 이틀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할지라도 사표와 자유선거 원칙 위배를 비롯한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법률적 문제가 있다"며 "후보, 정당을 떠나 부정선거라는 말이 선거가 끝날 때마다 나오고 선거 사무원으로 동원되는 공무원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운다는 점에서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우리나라 현 실정에 맞는 선거 제도를 형성해야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도입할 만한 해외 투·개표 시스템은=정치권 등에선 투·개표 시스템 개선 등 선거 제도 발전을 위한 자체 연구와 용역 등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마땅한 대안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연구 자료를 보면 미국의 몇몇 주는 선거사무소에서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해 공직사회에 선거 사무 부담을 주지 않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유권자가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받아 작성한 뒤 직접 또는 우편을 통해 제출하는 부재자투표 방식은 모든 주에서 가능하고 오레곤 주에선 모든 선거를 우편투표 방식으로 한다. 전자투표기 도입 국가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일부 주는 개표 정확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고 전자투표기를 사용해 실시간으로 투표기록을 계산해 공표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도 전자투표 전면 도입을 공언한 상태다. → 표 참조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지방공무원 선거사무 동원과 코로나19 확진·격리대상 유권자 부실관리 논란 등 이번 대선에서 선거 투·개표 시스템이 문제점을 드러냈다. 사진은 지난 9일 수원 아주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장 모습. 2022.3.9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정겨운 노랫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여느 전통시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곳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스마트 기술 도입 시범상가(이하 스마트 시범 상가)로 선정한 시흥 삼미시장이다. 지난 24일 찾은 시장은 육안으로는 어떤 스마트 기술이 도입됐는지 알 수 없었다. 시흥 삼미시장에 공급된 '스마트 기술'은 30만원 상당의 태블릿PC가 전부였다. 무인 계산과 스마트 주문 등을 확인하는 용도였다. 이마저도 전체 110여개 점포 중 47곳에만 지급됐는데, 배치한 상가를 찾기가 힘들었다. 정작 이 태블릿PC로 어떻게 주문을 받아야 하는지, 결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상인들이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해서였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된 셈이다.김은문 삼미시장상인회장은 "스마트상점이라고 하는데 예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며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분들도,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고령인 분들이 많다. 교육을 제대로 해준다면 어떻게 활용이라도 해보겠는데 기기만 달랑 던져놓고 아무런 연락도 없다. 그냥 한쪽에 방치해놨다"고 하소연했다.시흥 삼미시장 점포 절반 보급주문 등 이용 상가 찾기 힘들어"교육 해준다면 써보기라도…" 평택 국제중앙시장 역시 같은 시기 스마트 시범상가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에서 6년째 옷 수선 가게를 운영 중인 A씨는 시장이 스마트 상가로 선정돼 가게에 키오스크를 도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곧 포기했다. 도입 비용 30%인 200만원 가량을 자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들어 하루 매출이 3천원에 그친 날이 부지기수. 이런 상황에서 200만원은 벅찬 금액이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수선을 맡긴 옷들로 꽉 찼던 A씨의 가게엔 이날 A씨의 옷 한벌만 걸려있을 뿐이었다.A씨는 "처음에야 이런 게 들어오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을 내야 해서 포기했다. 우리 같은 영세상인에겐 10만원도 큰 돈"이라고 푸념했다.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120개의 점포 중 키오스크를 설치한 점포는 많아야 30개 정도다. A씨처럼 설치비 부담이 주된 요인 중 하나다. 키오스크 설치비의 70%는 정부가, 나머지 30%는 지자체나 상인들이 부담해야 한다. 당초 20%를 평택시가 지원하기로 했지만 시 예산 부족으로 결국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상인들부터 도입하게 됐다. 키오스크 설치, 평택 중앙시장'30% 자부담'에 영세상인 포기정부 기술지원 '반쪽' 현장외면 정창무 국제중앙시장 상인회장은 "원래는 시비 20%, 상인 자부담 10%로 도입하기로 했는데 시 예산이 없어 필요한 분들에 한해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다만 키오스크를 설치한 국제중앙시장 내 다른 점포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키오스크를 설치한 한 음식점은 "한달에 250만원 가량의 인건비를 절감하고 있다"고 호평했다.코로나19 사태로 경제난에 처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정부가 전통시장·골목상가에 스마트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반쪽 사업'에 그쳤다는 평이 나온다. 비용·교육 문제 등으로 스마트 기술이 제대로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시범상가로 지정됐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스마트폰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불편해 네이버 장보기 등 민간 플랫폼 업체의 다른 서비스를 더 활발히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스마트 시범상가 사업은 스마트 기술을 도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일부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도입 여부와 적용 기술은 소상공인들의 선택 문제"라고 설명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기술 도입했지만 소비자 인지도 낮고 사용 불편 '어려움 호소') /서승택·윤혜경기자 taxi226@kyeongin.com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전통시장 등 상점가에 스마트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용이 저조해 오히려 네이버 등 민간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스마트 기술 도입 시범 전통시장이지만 ,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가 활성화 된 평택 통복시장의 모습. 2022.2.27 /김금보기자 arotomate@kyeongin.com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급변하는 상황 속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통시장·상점가에 스마트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비용·교육 문제로 기술이 아예 뿌리내리지 못한 곳이 있는가 하면 어렵사리 도입한 곳 역시 활성화에 애를 먹는 실정이다. 제대로 활용하는 곳에선 만족도가 높지만, 그렇지 못한 점포도 적지 않아 '혈세 낭비'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사후관리가 부족하다는 지적 속에 정부는 그동안의 실적을 분석해 올해 미비점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도입했어도 어려움은 여전= 스마트 기술 도입 시범상가(이하 스마트 시범상가)로 지정된 안양 평촌1번가와 평택 통복시장은 스마트 기술 중 '스마트 오더 시스템'을 도입했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앱 등으로 점포의 물건을 주문하면 배달되는 시스템으로, 정부가 개발했다. 2020년에 스마트 시범상가로 지정된 평택 통복시장은 정부 지원만으로 도입했지만, 지난해엔 국비 지원 비율이 70%가 되면서 평촌1번가 상인들은 20%에 해당하는 80만원을 자부담해야했다. 10%는 안양시가 부담했다.그러나 통복시장도, 평촌1번가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은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 속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앱에 더해 네이버 장보기 등 전통시장 배달 서비스가 활성화된 게 주된 요인이었다. 정부에서 자체 배달 플랫폼을 개발한 이후 이렇다할 홍보가 뒤따르지 않아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낮고 사용하기가 다소 불편해 민간 앱에 비해 소비자들의 이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평택 통복시장 배달 '오더시스템'개발한 앱 '네이버 장보기'에 밀려 통복시장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소비자가 제품을 주문하면 상인들이 상품을 픽업 장소에 가져다놓는 '통복시장 어플' 개발을 지원받았다. 민간 배달앱의 '포장하기'와 비슷하다. 집 앞까지 배송해주는 게 일상이 된 만큼,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네이버 장보기'가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시장 측 설명이다. 시장 관계자는 "앱 개발 지원을 받았는데 아쉬운 점이 많았다. 민간 배달앱과의 연계도 잘 되지 않았다. '네이버 장보기'를 도입한 이후 오히려 점포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평촌1번가 상인들 역시 정부 앱의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스마트 오더를 위한 전자 기기도 제공받는데 상인들이 80만원을 자부담했어도 기기는 정부 소유라는 이유로 폐업할 때 가져갈 수 없다는 점도 불만이다. 조현과 평촌1번가 상가연합회장은 "우선 소프트웨어가 민간 앱에 비해 주먹구구식으로 구성돼있다. 이렇다할 홍보도 없는 데다, 이용도가 높은 민간 플랫폼과 연동도 되지 않아 이것만으로는 매출 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80만원씩 냈는데 기기조차 가져가지 못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필요성 커지지만 곳곳 시행착오…정부 "성과 분석해 미비점 개선"=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소비가 활성화하고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감안해 지난 2020년부터 해당 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지난해 정부 예산은 220억원, 올해는 245억원이다. 올해만 5천500개 점포에 스마트 기술 도입 지원을 예정하고 있다. 지원 기술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주문·예약을 쉽게 할 수 있는 스마트 오더와 가상으로 스타일링·피팅을 체험할 수 있는 스마트 미러, 키오스크, 메뉴를 스마트 기기로 안내·홍보하는 스마트 메뉴보드 등이다. 서빙 로봇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 경기도엔 전통시장·상점가 27곳이 스마트 시범 상가로 지정됐다.상인 20% 자부담 '기기는 국가소유'정부, 245억 들여 5500개 점포 지원사업 3년차 실적 분석·미비점 개선 사업 3년차인 올해 정부는 그간의 상황을 분석해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해당 사업과 관련 "2022년도 사업 추진 시에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 운영상 미비점을 개선하고 경영 혁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 중심으로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중기부 관계자는 "기기를 설치하는 업체에 사용법을 안내하라는 교육을 수시로 하고 있다. 올해는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연령층을 위해 온라인 동영상 교육 과정을 만들어 사용법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승택·윤혜경기자 hyegyung@kyeongin.com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전통시장 등 상점가에 스마트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용이 저조해 오히려 네이버 등 민간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스마트 기술 도입 시범 전통시장이지만 ,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가 활성화 된 평택 통복시장 내 배송센터 모습. 2022.2.27 /김금보기자 arotomate@kyeongin.com
정문화(84)씨는 10년 전 아내가 치매 진단받던 날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에게 갑자기 주어진 치매환자 보호자 역할, 막막함이란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었다.정씨는 당시 아내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40년 넘는 세월동안 평탄하게 이어오던 가정생활도 그래서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는 부부의 남은 삶을 위해 치매라는 병을 제대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이런 그에게 도움을 준 곳이 고양시 일산동구치매안심센터다. 그는 센터의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하며 치매의 원인과 증상, 돌봄방법 등을 배웠다. 교육을 통해 아내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이해하기 시작하니 자신이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보다 선명해졌다고 한다. 정씨는 "지금 아내는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면 기억을 잘 못 한다. 어떤 때는 자식들 얼굴도 못 알아볼 때가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치매에 대해 공부하고, 아내를 있는 힘을 다해 돌봐서 그런지 다행히 병의 진행 속도는 느린 편"이라고 말했다.10년간 아내 돌봐온 80대 정씨'치매안심센터' 도움 간병공부지역사회 환자관리 거점 역할 급속한 고령화의 그늘인 치매라는 병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공언한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치매환자에 대비해 국가 돌봄 기틀을 사전에 마련하자는 취지로 그간 '치매국가책임제'라는 이름 아래 여러 예방·관리사업 등을 추진했다.각각의 사업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지역사회'다. 제4차(2021~2025년) 치매관리종합계획은 '치매환자와 가족,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치매안심사회 실현'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각 지자체에 설치된 치매안심센터는 기본적으로 지역사회 치매관리체계의 거점 역할을 한다. 치매환자를 등록해 관리하고, 조기에 치매를 발견할 수 있도록 검진서비스를 제공한다. 센터는 또 정씨의 사례처럼 치매전문 교육프로그램을 여는 등 환자 가족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병행한다.'책임제' 사업 제대로 정착 안돼실적 위주 불필요 경쟁 지적도 물론 국가 주도로 단기간에 이뤄진 '치매국가책임제'의 여러 사업이 지역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순 없는 단계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치매환자의 지역사회 거주 지원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선 지역의 여건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고, 정량 지표 등 실적 위주 평가로 지역 간 불필요한 경쟁이 발생한다는 지적 등이 나오기도 했다. 경기도광역치매센터 관계자는 "진단 검사 수를 늘려 치매 검진을 받아보라고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편견 없이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치매 친화적인 지역사회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 그래프 참조·관련기사 3면([경인 WIDE] 경기도에 17만7천여명 치매파트너… '따뜻한 시선' 필요)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인 '치매'는 환자와 가족을 넘어 지역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치매 관리 책임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관리주체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지역사회에 인식개선과 더욱 촘촘한 지원이 요구된다. 사진은 수원시 제1호 치매안심마을인 팔달구 지동에 그려진 벽화. 2022.2.20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경기남부지역에선 매일 치매환자 7명이 집을 찾지 못하고, 길거리를 배회한다. 경찰에 실종 신고 접수된 이들 대부분은 다행히 가족을 찾지만, 일부는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지난해 2월에는 파주시 제2자유로를 걷던 80대 치매환자가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적지 않은 수의 치매환자가 매일 길을 잃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치매국가책임제'의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은 필수적이다. 관심은 이해를 수반한다. 치매라는 병을 잘 알지 못하면 관심 자체가 생길 수 없다. 만약 길거리를 떠도는 치매노인을 마주치더라도, 그 노인이 치매환자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그래서 '치매파트너'들이 존재한다. 치매파트너는 자살예방으로 치면 일종의 생명지킴이(게이트키퍼)다. 치매라는 병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치매환자와 가족을 배려하겠다고 다짐한 이들이다. 초등생 이상 30분 교육 '누구나'치매가족 지역사회 열린마음 원해코로나로 사업 대부분 중단 '아쉬움' 20일 오전 1시 기준 경기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치매파트너는 모두 17만7천801명이다. 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30분짜리 온라인 교육 영상을 시청하면 치매환자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치매환자에게 먼저 말을 걸고, 교육에서 배운 정보를 주변에 알리는 치매파트너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치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매파트너 뿐만 아니라, 치매안심마을, 치매공공후견 제도 등 다양한 사업들은 애초에 치매환자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설계됐다.치매환자와 가족들이 바라는 점도 결국 지역사회의 열린 마음이다. 이들은 이미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3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고 있는 문성숙(58)씨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자조모임을 하고 있다. 그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대화하며 치매에 대한 다양한 정보뿐만 아니라, 심리적 위안도 얻었다. 그는 처음 어머니의 증상을 겪을 땐 "우리 엄마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어머니의 변화가 특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문씨는 그러나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 탓에 상처를 받는 일도 왕왕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까지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건 사실이다. 치매환자나 가족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며 "엄마가 치매라는 걸 알리는 게 불리한 상황도 있어서 어떤 모임에서는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박미자 고양시 일산동구치매안심센터 간호사는 "치매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향으로 치매파트너, 치매안심마을, 선도교육 등이 이뤄졌지만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사업 대부분이 중단된 상황이라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치매에 대한 인식 역시 아직 낮은 편이지만 과거와 비교해 나아지고 있는 만큼 지역사회 모두가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치매로 인해 거리를 배회하는 어르신을 위한 보호 쉼터인 수원 권선구 치매안심마을 어르신보호쉼터 2022.2.20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