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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석무 칼럼] 지도자의 말은 온유해야

    [박석무 칼럼] 지도자의 말은 온유해야 지면기사

    '반자유'·'반통일'·'반국가 세력'들국가보안법 적용 엄벌 처할 대상유능한 검찰 동원 왜 처벌 안하나비판자들 공산주의로 몰아선 안돼상식·공정 부응 정치복원 바랄뿐"사회 내부에 암약하는 반국가 세력", "반자유·반통일·검은 선동세력" 등의 말들이 근래 지도자의 언어에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분열을 꾀할 것"이라며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북한을 경계하자는 말이겠지만, 단속과 척결의 대상이 내부 비판 세력을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공안 분위기'의 조성이자 '북풍몰이'의 일환이라는 지적까지 있으니, 말이 너무 무섭기만 하다. 지난해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을 언급하여 권력의 비판 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었다.이런 말들을 듣고 보면 50년 전의 유신독재 시대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1972년 가을, 독재자는 영구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그에 대한 털끝만큼의 비판이 있으면, 그런 비판 세력은 무조건 '반국가 세력' 및 '반국가 단체'라는 딱지를 붙여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내가 겪은 경험을 기억한다. 유신 선포 직후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함성'이라는 유인물을 제작하여 몇 군데에 뿌렸다. 내용은 반민주의 유신을 비판한 글이었다. 악법을 비판한 내용만으로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기가 어렵자, 몇몇 학생들이 데모나 한번 하자고 모여서 논의한 사건과 결부시켜 '반국가 단체 구성 예비음모'라는 죄명으로 모두를 구속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그때 교사 신분으로 유인물의 제작은 물론 학생들의 식당 모임 자체도 모르는 사실인데, 엄청난 고문으로 허위 자백한 학생들의 진술만으로 '함성'지 제작을 지령하고, 학생들 모임도 지시한 수괴로 둔갑하여 구속되고 말았다. 1심 재판은 모

  • [박석무 칼럼] 과천(果川)의 자랑, 다산과 추사

    [박석무 칼럼] 과천(果川)의 자랑, 다산과 추사 지면기사

    19세기 인연 깊은 어진 이들 거론조선 대표 학자… 동아시아 석학추사처럼 다산 현양 하면 어떨까무도한 권력 현인 탄압해선 안돼비애의 땅 과천서 다산 기려보자35년 넘도록 서울서 살다 지난해 봄, 과천으로 이사 와 경기도 사람이 된 지 한해 하고도 절반이 넘었다. 세상에서 주거환경이 가장 좋다는 전원도시 과천, 살아보니 역시 좋은 도시다. 북에는 관악산이 웅장하게 자리잡아 도시를 감싸주고 남으로는 긴 청계산이 나지막하게 병풍처럼 둘러싸며 넓게 뻗어내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선사해주고 있다. 북으로는 서울과 경계를 삼고 서쪽으로는 안양시, 동쪽으로는 성남시, 남쪽으로는 의왕시와 맞대 있으며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다.자연환경만 좋다해서 반드시 좋은 도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도시 안에서 살았거나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 문제다. 옛말에 '현인소과지지 산천유광(賢人所過之地 山川有光)'이라고 현인(賢人)이 지나간 곳에는 산과 내도 빛이 난다고 전해진다. 산천도 빛나게 하는 인물과의 인연이 없다면 그런 도시는 결코 유명한 도시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자연환경의 아름다움 말고도 과천에는 어진 인물들과의 깊은 인연이 있으니 바로 다산 정약용과의 인연과 추사 김정희와의 관계가 매우 깊다. 조선 500년, 과천과의 인연이 깊은 어진이들이 많기도 했지만 우리 시대와 가장 가까운 19세기 동안 인물로는 다산과 추사를 거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누가 뭐라 해도 다산과 추사는 19세기 조선을 대표하던 학자였고 동아시아에서도 윗자리에 있던 석학이었다. '정약용은 재주와 학문이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 경전·사서(史書)·제자백가 이외에 천문·지리·의약·잡방(雜方)의 책까지 넓고 정밀하게 꿰뚫어 알지 못한 것이 없었다. 13경(經)에 대하여 모두 새로운 학설을 세워 저술한 책이 집안에 가득하였다. '흠흠신서'나 '목민심서'와 같은 책은 모두 수사와 재판을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문자이다. 추사 김정희와 견주어도 재주가 높고 실학에 대한 업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 [박석무 칼럼] "이날에 목놓아 우노라"

    [박석무 칼럼] "이날에 목놓아 우노라" 지면기사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논란우리 정부 강제노역 피해자들 무시위대한 독립운동 애국자들의 혼에대못박는 악행 왜 그냥 두고만 보나제발 민족혼 먹칠하는 외교 멈추길을사늑약의 부당함에 분노를 금치 못하던 장지연은 1905년 11월20일 '황성신문'에 올린 글에 '이날에 목놓아 우노라!(是日也放聲大哭)'라는 비통한 마음을 토로했었다. 나라의 국권이 빼앗겨버린 강제 조약이 발표되자 나라를 잃었다고 생각하면서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는가. 장지연의 그 통곡은 당시 온 국민의 통곡을 대신해준 글이어서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아직도 그 아픔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얼마 전 왜정 때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 온갖 노동으로 참담한 고통을 당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로 한국의 대법원은 일본 정부나 기업체가 배상해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일본 정부의 뜻에 따르느라 이른바 '제삼자 변제'라는 참으로 해괴한 이론을 내세워 우리나라에서 배상해주어야 한다고 대법원의 판결을 위반하는 외교를 감행하고 말았다. 일본의 역사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가 말했듯 제삼자 변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정부는 또 다른 굴욕외교를 자행하고 말았다.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여러 논란이 있었다. 마침내 우리 정부는 사도광산에 끌려가 심한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들을 무시하였다. 일본은 그런 강제노역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고 등재를 주장하였다. 우리 정부는 항의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일본의 뜻에 용인해주고만 외교 참사를 일으키고 말았다. 한겨레신문의 다케우치 야스토 인터뷰 기사에 '윤 정부 안보 정책에 밀려, 강제 동원 피해자 존엄 회복 붕괴'라는 제목부터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제삼자 변제'의 연장선상에서 사도광산의 문제도 제기되고 말았다니 이에 우리 국민들이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국가는 국가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국혼(國魂)이 있고 민족혼이 있다. 우리 민족은 민족혼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안중근·윤봉길·유관순 등 애국자들이 나와 민족해방을

  • [박석무 칼럼] 다산의 지혜와 개혁정신을 살려내자

    [박석무 칼럼] 다산의 지혜와 개혁정신을 살려내자 지면기사

    다산, 혜장선사와 깊은 대화 나눈백련사~다산초당 '사색의 길' 순례개혁정신 숭모, 김동연 지사 동참"경세유표, 새로 쓰는 맘으로 공직"실제 정치로 실천하는 세상 오길지난 6월9일부터 11일까지,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이 마련한 '강진순례' 행사에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늘 찾았고 걸었던 길이지만, 강진의 다산선생 유적지를 찾는 일은 나를 언제나 들뜨게 했다. 신산한 유배살이에서도 전혀 좌절하지 않고 수많은 저술에 온 힘을 기울였던 다산이다. 다산의 흔적들을 살펴보는 일은 나를 가장 신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맨 처음 귀양살던 오두막집 '사의재'를 찾아보고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방문하는 일은 생전의 다산선생을 찾아뵙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흥분되는 일이었다.그 오두막집 노파가 운영하던 주막집 골방에서 '상례(喪禮)'를 연구하며 유배의 시름을 이겨내던 선생의 모습이 떠오르고, 가난하고 천한 일반 백성들이 탐관오리들의 탐학에 못 견디며 신음하던 정상에 차마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한탄하던 선생의 모습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적 죄인으로 백성이나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분이어서 책으로라도 남겨 뒷세상 사람들이라도 백성과 나라를 구하는 일에 힘 써달라고 불철주야 저술에 몸을 바친 선생의 그 간절한 애국심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둘째날에는 다산의 지혜와 개혁정신으로 경기 도정을 이끌겠다는 김동연 지사가 우리 대열에 동참해주었다. 만덕산 기슭의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넘어가는 오솔길, 이른바 '다산 사색의 길'을, 김 지사는 행사에 참여한 모든 분과 함께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이 사색의 길이야말로 참으로 많은 사연을 지닌 곳이다. 다산초당에 계시던 10년의 세월, 다산은 시간만 나면 백련사로 넘어가는 사색의 길을 걸었다. 떠오르는 시상을 정리해보고, 나라와 백성을 살려내는 저술의 내용을 구상하는 것도 그런 시간에 이룩하였다. 백련사에는 다산이 그렇게 좋아하고 친하게 지냈던 학승이자 선승인 혜장선사가 있던 곳이다. 혜장은 비록 나이야 다산의 10년 후배였지만, 유교

  • [박석무 칼럼] 독재화가 진행되는 나라

    [박석무 칼럼] 독재화가 진행되는 나라 지면기사

    한국, 민주주의 국가 47위로 추락다산 "법 적용 최측근부터 해야"국민 70% 찬성법 왜 거부만 하나하늘 바라보고 민심 동향 살펴야악행 멈추고 '민주주의 정치' 기대대한민국의 최대 목표는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서는 일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때부터 시작했다고 보면 금년까지 105년 동안 우리는 국가적 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싸우고 투쟁하면서 간난신고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열들이 고문당하고 죽으면서 희생해야 했던가.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은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되었으나, 8·15 후 연이은 독재자들의 집권으로 오랫동안 민주주의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한 국민들은 어두운 터널에서 고통과 신음을 겪어야 했으니 그런 불행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1998년 마침내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가 만개하는 민족적 행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한 결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에서 찬양받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런 민주주의를 성취한 위대한 우리 국민들의 힘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스웨덴의 예테보리대학에 본부를 둔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는 각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하여 공개하는 기관인데, 32개 우수한 민주주의 국가를 일등급 국가로 정해 놓았는데 대한민국은 2019년에 18위, 2022년에 28위로 1등국가 그룹에 포함되어 세계인의 찬양을 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선진국 대열에 오르고 1등급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그러나 지난 3월7일 발표한 연구소의 민주주의 리포트에 의하면 전체 순위 47위로 추락하여 32개 국에서 이탈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으니 이런 부끄러운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래서 이제 가장 수준이 낮은 42개 국가에 포함되어 이른바 민주화에서 독재화(autocratization)로의 전환이 진행되는 나라에 소속되고 말았으니 이런 불행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 민주주의 국가를 1점으로 정했을 때 한국은 겨우 0.6으로, 28위에서 47위로

  • [박석무 칼럼] 다산 선생의 묘제(墓祭)

    [박석무 칼럼] 다산 선생의 묘제(墓祭) 지면기사

    후손들과 무관·선생 학문과 사상탁월한 경세가 애민정신 숭앙하는후학들 모여 올리는 '특별한 제사'공정·청렴하지 않은 공직자 많아묘소앞에서 '공렴' 배워 실천해야계절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4월 봄이 오자, 산야에는 복사꽃이 만발했다. 해마다 피어나는 복사꽃, 그 꽃이 피면 우리는 다산 선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836년 음력 2월22일(양력 4월7일), 복숭아꽃이 만발한 그 날 선생은 75세를 일기로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러니 오는 7일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188주년의 기일(忌日)이다. 선생은 15세의 4월7일, 16세의 홍씨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75세의 4월7일은 선생이 회혼(回婚)을 맞는 날이었다. 회혼례를 치르려고 가족·친척·제자들이 모여들던 그 날 아침 8시쯤 눈을 감았으니 회혼례의 음식들은 제수(祭需)로 변했다.결혼 60주년을 맞은 선생은 깊은 감회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병고에 시달리며 죽음을 기다리던 선생, 그 3일 전인 4월4일, 몽롱하던 정신이 총총하게 돌아와 '회근시(回근詩)'라는 제목으로 시 한 수를 읊었다. "60년 풍상의 세월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가/복사꽃 활짝 핀 봄 결혼하던 그해 같네/살아 이별 죽어 이별이 늙음 재촉했으나/슬픔 짧고 기쁨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 500권 이상의 방대한 저서를 남긴 대학자가 죽기 3일 전에 읊은 시의 한 구절이다. 말하자면 선생의 절필(絶筆)시였다. 결혼하던 무렵에 피었던 복사꽃, 죽음에 임박한 그때에도 복사꽃은 만발했다. 꽃대궐 속에서 다산은 운명했다. 그러면서 그의 인생을 정리한 한 대목은 참으로 멋지다. '슬픔 짧고 기쁨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戚短歡長感主恩)'라는 표현에서 긍정적인 일생으로 평가했으니, 그의 인생관은 또 얼마나 크고 넓은 관대한 삶이었던가.두 번이나 감옥에 갇혀 국문을 받느라 죽음 직전의 고통에 시달렸고, 모략 중상에 걸려 18년의 긴 유배 생활로 찌든 삶을 살았건만, 슬픔은 짧고 기쁨은 긴 인생이었다니, '유림의 대업(儒林大業)'을

  • [박석무 칼럼] 대가를 바라지 말고 도와야

    [박석무 칼럼] 대가를 바라지 말고 도와야 지면기사

    다산 저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아들·제자들 가르친 지혜 보물단지남의 도움 기대 안 하면 편안·화평보답 원하면 절대로 베푸는일 아냐실천 어렵지만 남 돕는 일 노력해야인간은 삶의 지혜로 살아간다.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풍부한 지혜를 지니는 일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인간의 지혜는 생득적으로 타고나는 지혜도 있지만 배움을 통해서 얻는 지혜가 대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육을 통해서, 독서를 통해서 얻어낸 지혜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 대학자요 실학자요 대시인이었던 다산 정약용은 우리 선인들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훌륭한 지혜를 지녔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분의 지혜를 얻기 위해 나는 오늘도 지혜의 보고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다산의 책을 읽어본다.그 책은 다산이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라도 강진이라는 곳에서 유배 살며 아들·형님·제자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가르쳐준 인간 지혜의 보물단지 같은 책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내용이 많아 다산의 편지 내용은 바로 우리 인간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이 되어버렸다. '두 아들에게(寄兩兒)'라는 편지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인간의 삶이라 여기면서,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고, 도와주고 나서는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가를 올바르게 가르쳐주고 있다. 편지는 먼저 남이 자기를 도와주지 않을 때에는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고,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부터 말을 시작했다. "일가친척 중에 긍휼히 여겨 돌보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하는데 이런 것이 바로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여서 그게 바로 병통이라고 했다. 남에게서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바로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라고 했다.그런 병통에서 벗어나려면 바로 남이 도와주기를 바라지 말고 자신이 남을 도와주는 일을 시작하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고 살라는 법은 애초부터 없다고 잘라 말하고 남을 돕는 일을 통해 올바른 지혜를 발휘

  • [박석무 칼럼] 곤궁한 사람에게 온정을 베풀어야

    [박석무 칼럼] 곤궁한 사람에게 온정을 베풀어야 지면기사

    '사회·경제적 어려운 사람들에게한없이 애정 베풀어야' 다산의 뜻죄수도 보살피는게 '목민관 책무'추위에 우리 주변 약자들 챙기고 온정 베푸는 일에 모두가 관심을'목민심서'는 참 좋은 책이다. 새해에 들어서 나는 또 '목민심서'를 꺼내 이곳저곳을 읽어본다. 아직 깊은 겨울철이어서 어려운 때에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올바른 목민관들의 역할인가를 알아보려는 마음에서 해보는 일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약자들, 목민관은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그래서 애민(愛民)편을 뒤적여 보았다. '애민'이란 백성을 사랑하고 아껴주라는 의미여서 거듭거듭 읽어도 읽을수록 가치있는 내용을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힘없고 약하며, 가난하고 병들고, 뜻밖의 재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한없는 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다산의 뜻이 눈물겹도록 자세하게 열거되어 있으니 무심코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우선 양로(養老) 조항부터 보자. 힘없고 가난한 노인들을 보살피자는 내용이니 그 일이 얼마나 값이 높은 일인가. 붙들어주고 도움을 주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노인을, 그들을 외면한다면 사람 사는 세상이겠는가. 둘째, 자유(慈幼)조항이다.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도움도 주어야 하지만 고아들을 돌보고 교육시키는 일,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셋째, 진궁(振窮)조항으로 세상에서 가장 궁하게 살아가는 홀아비·과부·고아·독거노인 등 돌봐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들, 그들을 붙잡아 일으켜 주어야만 한다.넷째, 애상(哀喪)조항으로 상을 당한 불쌍한 집안을 돌봐주는 일이다. 사람이 죽어 슬픔에 겨워 있는 집안을 돌봐주는 일이다. 다섯째, 관질(寬疾)조항으로 중병의 환자나 신체가 온전치 못한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이며, 마지막 구재(救災)는 천재지변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일이다. 이 여섯 가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바로 다산이 말하는 백성(民)이다. 이런 공식적인 약자들 이외에도 또 마음을 기울여야 할 불쌍한 약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형전(刑典), 휼수(恤囚)조항에

  • [박석무 칼럼] 학자나 어진이를 예우해야

    [박석무 칼럼] 학자나 어진이를 예우해야 지면기사

    다산 '목민심서'에서 문안 등 제시지혜뿐아니라 독실한 행실 본보기아름다운 전통 이제는 보기 어려워옳고 바른 일은 영원히 역사로 전해오늘의 목민관들 새겨 들을 이야기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은 학자나 어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전해지는 말이 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임금 아래일 뿐 모든 사람의 위에 있는 사람이 바로 정승이라는 벼슬이었다. 세상에 귀하고 높으며 만인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왕조시절의 정승이었다. 그렇게 높고 귀한 정승이지만, 학자 한 사람은 정승 셋을 감당한다면서 학자 한 사람이 있는 가문은 정승 셋을 배출한 집안보다 더 우대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있다. 그렇게 학자는 우대받아야 할 높고 귀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학문에 버금가는 일은 행실이다. 독실한 행실이 있는 사람 또한 학자처럼 우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산은 '목민심서'의 '거현(擧賢)'에서 목민관(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 등 공무원)이 학자나 어진이를 어떻게 예우할 것인가를 제시하였다.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행실을 돈독하게 닦는 선비가 있으면 마땅히 몸소 그를 방문하고 명절에도 문안을 살펴 예(禮)의 뜻에 맞게 해야 한다(部內有經行篤修之士 宜躬駕以訪之 時節存問 以修禮意)"라고 말하였다.다산의 뜻은 참으로 깊고 넓었다. 학자나 어진이를 찾아보고 배려하는 일은 목민관이 어진이들에게서 훌륭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벼슬과 물욕에서 벗어나 고매한 학문을 연구하고 독실한 행실을 통해 남의 모범이 되는 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그들의 삶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임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아무리 오두막집의 궁한 선비라 하더라도 학행을 닦아 명성이 고을에 자자한 사람은 마땅히 몸소 방문하여 싸리로 만든 사립문이 빛나게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는 일이 바로 '백성들에게 선을 권하는 일(勸善于民)'이라면서 목민관은 마땅히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궁벽한 마을이고, 참으로 가난하여 대문도 없는 싸리로 만든 사립문이 빛나게 해주어야 한다니 그

  • [박석무 칼럼] "속이지 말고 대들며 간(諫)하라"

    [박석무 칼럼] "속이지 말고 대들며 간(諫)하라" 지면기사

    세상이 시끄럽고 나라가 어지럽다. 일본이 핵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여 우리나라에도 그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는 항의 한마디 못 하고 일본이 하는 대로만 지켜보고 있으니 세상이 조용할 수가 있겠는가. 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육사에서 옮기는 일을 공론에 부치지도 않고 한두 사람의 독단으로 결행하려고 하고 있으니 나라가 어지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뜻으로 '선제공격'이니 '힘의 평화' 등 전쟁 불사의 대북 외교를 끌고 가고 있으니 전쟁에 대한 불안이 가셔질 수가 있겠는가.오늘의 정치는 이렇게 시끄럽고 어지럽게만 진행되고 있으니, 이에 대한 해결책을 연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옛 성현의 말씀에서 나라의 난맥상을 해결할 방도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논어'에서 공자의 말씀을 들어보자.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임금 섬기는 도리를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로야 임금을 섬기는 사람이란 3정승, 6판서에 6승지를 비롯한 고관대작이지만 지금이야 대통령을 보좌하는 내각의 총리나 장차관 및 대통령실 비서관 등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참으로 짧은 대답, 공자 왈 '물기야이범지(勿欺也而犯之)'라는 내용이다. '(임금님을) 속이지 말고 얼굴을 맞대고 간쟁한다'라는 뜻이다. 대단히 높은 지혜를 가르쳐 준 말이지만 말 자체가 짧으니 주해(註解)도 짧다. 주자는 '범(犯)은 얼굴을 맞대고 간쟁한다'라고 간단히 풀이했다. '논어고금주'에서 다산은 짧게 보충의견을 더했다. '실정을 숨기고 은폐하는 것을 기(欺)라 하고, (윗사람의) 위엄을 무릅쓰고 간쟁하는 것을 범(犯)이라 한다'라고 말하고는 '예기'를 인용하여 자신의 풀이가 옳음을 증명했다. '임금을 섬김에는 대면하여 간쟁을 해도 숨김이 없어야 한다'라는 것을 제시했다. 핵오염수·홍범도 동상 등 나라 시끌'논어' '소학'선 잘못 지적을 중요시 공자의 짧은 답변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인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임금에게 어떤 일이건 숨김없이 말할 수 있고, 부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