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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h+] 게으른 노트 농사

    [with+] 게으른 노트 농사 지면기사

    뗄수 없는 나의 수족, 종이와 필기구 감정의 기후 나타낸 보이지 않는 밭 간간히 옮겨 적는 흥미로운 문장들 물컵의 표면 장력처럼 나를 지탱해 전생에 나무늘보가 아니었을까. 더없이 빈둥거리는, 혹은 빈둥거리고 싶어하는 나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은 많지만 금방 싫증내며 다른데 기웃거리기를 좋아했다. 해야 할 일들을 지속적으로 게을리 하다보니 호기심과 그것을 메모로 번역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고 어느덧 소설을 쓰게 되었다. 메모 또한 한 두 해 만에 생긴 버릇은 아니다. 기자를 하던 시기에 취재노트를 쓰다가 백수가 되

  • [with+] 겸재 그림의 여정

    [with+] 겸재 그림의 여정 지면기사

    미술품 애호가로서 심환지의 혜안 정선 필력에 대한 인정과 신뢰 커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인왕제색도’ 2021년 삼성가 품 떠나 국가에 기증 가치 알아보는 안목 가늠할 수 있어 ‘무릇 물건은 항상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므로 내가 진실로 그림을 좋아하여 이 그림을 얻었으나, 나를 이어서 이 그림을 사랑할 자로 후세에 또 어떤 이가 있을까’. 조선 후기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심환지(沈煥之, 1730~1802)는 노년에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화첩을 얻고 자신처럼 미래의 누군가 역시 이 그림을 아껴주기를 바

  • [with+] 틈새에 낀 옛날집

    [with+] 틈새에 낀 옛날집 지면기사

    슬레이트 지붕 벗겨진 페인트 칙칙 이 집에 들어온후 좋은일 많이 안겨 도심서 단독주택 통째로 쓰는 자유 스페인어 강사와 나눠 썼던 경험도 책 만들고 글·인터뷰 꾸준히 이어져 주인할머니가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났다. 필자가 임대해 쓰고 있는 사무실 공간은 오래된 옛날집이다. 2019년, 필자가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할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 당시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이 집을 떠나 바로 옆의 이동식주택으로 옮겨갔다. 옛날집은 그렇게 2~3년간 비어있었다. 할머니는 필자를 볼 때마다 “우리집에 들어올 사람 없을까? 사

  • [with+] 우리가 A.I.에게 도둑맞은 것들

    [with+] 우리가 A.I.에게 도둑맞은 것들 지면기사

    세상 속도에 적응하자고 달래보다 이런 편리함을 원했었나… 숨가빠 노동서 해방되면 행복할까 고민도 힘듦·불편함은 매순간 사랑하는 것 자동화에 내어준 진짜 삶 되찾을 때 도서관 화장실에 갔다가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바람에 당황했다. 손가락 까닥 안하고 묵직한 문을 통과하는데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편리해서 좋은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 화장실 문 정도는 내 손으로 충분히 열 수 있는데 싶었다. 내가 경험해야 할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도 들었다. 한 시절에서 다른 시절로 건너갈 때 우리는 ‘문을 연다’고 말한다. 사춘기를 지나

  • [with+] 팔리는 노동

    [with+] 팔리는 노동 지면기사

    옷을 사는 기준은 튼튼한가·편한가 작업복 ‘워크웨어’ 검색어로 사용 해외 빈티지숍 재킷 하나에 30만원 일부러 닳고 해지고 기름때 만들어 노동에 대해 갖는 이중적 인식 민망 옷은 주로 온라인으로 사는 편이다. 아무래도 직접 입어보고 살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할 위험성이 높지만 판매상들이 가게 세를 내고 좌판을 벌이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싸지 않겠나 하는 경제성의 원리를 궁리하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옷을 살 때 실패할 확률을 줄이려면 의류회사에서 써 놓은 용어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직접 보지 않고도 옷감의 두께나 강도, 촉감 등

  • [with+] 우롱차를 마시며

    [with+] 우롱차를 마시며 지면기사

    논문 속 일제강점기 시절 이야기 ‘현재와 유사’ 정신없이 빠져들어 1930년대 이애리수라는 가수 예시 서부지법 폭동 드라마 ‘지옥’ 데자뷔 역사 속 사실 수학공식처럼 반복돼 꽤 비싼 값을 치르고 대만 우롱차를 샀다. 비싼 차를 샀으니 다기도 고운 것으로 골라야지. 차판 위에 자사호와 공도배, 찻잔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전기 주전자에서 펄펄 끓는 물을 연신 부어가며 품위도 없이 벌컥벌컥 차를 들이켰다.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상하고 우아한 독서 풍경을 자랑하고 싶지만 실상은 영 아니다. 나는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선 뜨거운 차를

  • [with+] 도서관에서 사람 읽기

    [with+] 도서관에서 사람 읽기 지면기사

    옆사람 나가자 자리 채운 할아버지 책 들여다보는 시늉 않고 잠 청해 책이 없다고 미워할 일인가 생각 책 대신 할아버지 읽기 ‘상상’ 시작 ‘사물·사람’ 어항 속 열대어처럼 놓여 갈수록 집중력이 약해져서 큰일이다. 하나에 몰두해 옆길로 새지 않는 시간을 일종의 모래시계로 친다면, 나는 예전의 절반만한 크기의 모래시계밖에 없다. 그나마 집중력을 길게 유지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인데, 책 기둥을 토템 삼아 디지털 도파민에서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창가쪽 자리에 앉아 겨울나무와 나란히 마주 보고 책장을 펼쳤다. 내 옆 자리의 사

  • [with+] 묵연(墨緣), 만나야 할 그림은 꼭 만난다

    [with+] 묵연(墨緣), 만나야 할 그림은 꼭 만난다 지면기사

    명대 서화 특별전 作 ‘국화 감상’에 조선인 도장… ‘안기’ 선생 소장품 청나라서 활동한 조선인 후예로서 中 4대 서화감정가, 동양미술사 중요 묵연 좇아 한걸음 또다른 인연 기대 2월의 첫날, 중국 명대 서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경기도박물관을 찾았다.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기대됐지만, 사실 그곳에서 ‘그분’의 흔적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설레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보던 중 좌우로 긴 두루마리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그 작품은 명나라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심주(沈周, 1427~1509)의 ‘국화

  • [with+] 낙락장송의 죽음과…

    [with+] 낙락장송의 죽음과… 지면기사

    첫눈의 환호성, 재난 될 줄 미처 몰라 나무 명줄 끊으려 하는 계엄군 같아 허약해져가는 숲의 모습 걱정스러워 막무가내 국헌문란 언제까지 지켜보나 과정 중요하단 말로 스스로를 달래 날이 풀리면서 슬슬 산에나 가보자는 심정으로 며칠 전 청계산에 올랐다. 해의 방향이 겨울과는 확연히 다르다. 햇볕도 양광하다.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 무렵 같다. 벌써 오래 전에 하천변의 버드나무는 은은한 푸른 빛을 뿜어 올리기 시작했다. 요즘 산에 가본 분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지. 산 초입에 절반이 뚝 꺾인 소나무가 길을

  • [with+] 꿈을 다시 데려오고 싶다

    [with+] 꿈을 다시 데려오고 싶다 지면기사

    한강 ‘채식주의자’ 등장인물 영혜 꿈은 정신병자의 말로 비하 당해 문 닫지 못한 채 달리는 택배차량 밥 먹는 작은 동물 쫓아내는 인간 현실 중요한 세상, 사랑할 틈 없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어렵지 않은 구절들로 써져 있지만,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포스트잇을 잔뜩 붙인 책과 빼곡히 써내려간 감상노트를 들고, 독자들과 묻고 대답하며 소설 속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던 중, 소설 속 등장인물인 영혜를 조현병 환자로 규정하는 신문 칼럼을 읽고 깜짝 놀랐다. 작가가 영혜를 병원에 입원시킨 이유는, 그가 치료를 받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