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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톡(talk)!세상] 나는 회의한다, 고로 희망한다

    [톡(talk)!세상] 나는 회의한다, 고로 희망한다 지면기사

    정치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숭고한 일이라 생각했다. 한동안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다. 그게 아니었다. 정치는 너무나도 뻔하고 자명한 것을 아니라고 우기기 위해 패거리를 만들어서 싸우는 기술일 뿐이다. 작금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정치에 대한 회의가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다.사는 게 답답하고 회의가 들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회의주의자 몽테뉴다. 몽테뉴는 자신의 서재 천장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만이 확실하다"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그의 회의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무려 20년 동안 아무런 물리적 강요나 제약도 없는 상태에서 단 한 권의 책 집필에만 몰두했을 정도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에세(Les Essais)'다. 프랑스인들은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프랑스의 고유한 지적 계보를 형성한 작가와 사상가들을 모랄리스트(moraliste)라 불렀다. 그의 가장 앞자리에 몽테뉴의 이름이 있고, 그 뒤로 파스칼과 라 브뤼예르, 라 로슈푸코 등이 포함된다. 모랄리스트 몽테뉴의 정신은 이렇게 압축된다. "뒤흔들고, 의심하고, 따져 묻고, 어떤 것도 단정하지 않고, 어떤 것도 다짐하지 않는 것."(이환 '몽테뉴와 파스칼'에서) 정치혐오, 자체 부정하는듯 해도진영이라는 이름의 '패거리 산물'상대 불신·적개심 극대화 음모론 몽테뉴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회의를 통한 희망 찾기다. 일테면, 역설적 도그마다. 몽테뉴는 기본적으로 학자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학자들이 하는 말은 마치 새들이 모이를 맛도 보지 않고 새끼들의 입속에 넣어주는 것과 같다. 그들은 갈레누스는 잘 알지만, 아픈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를 법률로 가득 차게 하지만 소송의 요점은 모른다."(박홍규,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에서) 정권에 빌붙는 어용학자가 미디어를 활보하고,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폴리페서'가 들끓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몽테뉴의 회의는 크세주(Que sais je, 나는 무엇을 아는가)에서 출발한다